테렌스 맬릭 감독이 필름 위에 새긴 21세기형 '실락원'이랄까. 같은 얘기를 가지고 디즈니 스튜디오에선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를, 테렌스 맬릭은 이렇게 사색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디즈니의 [포카혼타스]가 나빴단 얘긴 아니다.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 나는 [포카혼타스]가 [인어 공주]나 [라이온 킹] 같은 당대 디즈니 애니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작 [뉴 월드]는 영적 층위와 현상적 층위에서 모두 해독 가능한, 자연과 인간을 그리며 노래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미국 건국 초기 유럽인들의 신대륙 개척 혹은 식민화에 대한 영화일까? 사실 영화 초반엔 꽤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온 개척자들과 원주민들의 대립과 전투 묘사에 쏟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정치적 알레고리로 접근해도 별 무리는 없을 성싶다. 예컨대 영국인 스미스 선장(콜린 파렐 扮)이나 존 롤프(크리스찬 베일 扮) 두 남성을 유럽 식민국으로, 원주민 포카혼타스(코리언카 킬쳐 扮)를 미지의 개척지로 환원하는 식의 해석도 합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허나 아련한 느낌 몇 가닥 쥔 채로 감상을 마친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작품을 난도질해가며 박제하고 싶지 않다. 이건 무엇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서로 혼(魂)으로 소통한 두 남녀에 대한 애틋한 전설이다. 그들이 주고받은(혹은 그랬어야 했을) 사랑이라는 의식과 기억에 대한 영화이고 우리가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잊혀진 태초의 기억, 그 원형에의 노스텔지어에 대한 영화다.

 

 

 

 

표면적으론 가슴 아픈 사랑 영화이나 그 이전에 자연의 영화다. 테렌스 맬릭 감독의 카메라는 작품 대부분을 인간을 품은 대지와 강, 바다, 나무와 하늘을 담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여러 서적과 영화들로 전해졌듯, 여기 신대륙 원주민들은 세상만사 모든 것을 자연과 영혼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다. 그런 순수하고 평온한 기운이 포카혼타스라는 여주인공의 시선과 독백을 통해서 영상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그녀가 삶을, 타자를, 세계를 마주하는 태도는 스미스나 존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그들을 온전히 품어낸다.

 

 

 

 

이 영화는 또한 한 여인의 행적보다 그 내면에 치중한 시적인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스미스 선장과 마음의 대화로 사랑을 속삭이던 원주민 족장의 딸 포카혼타스에서 다른 남자 존의 아내가 되어 가정을 이룬 영국 부인 레베카로 살다 간 여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미스와의 재회, '당신과의 사랑이 한낱 꿈인 것 같았는데 그 사랑만이 진실이었다'는 그 앞에서 조용히 아쉬움을 묻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모든 주변 사물과 사람들을 포용하며 초연히 죽음을 맞게 되는 그녀를 카메라는 시종 자연의 품성과 연계하여 우리 기억 저편의 잊혀진 대륙, 아메리카 신대륙 아닌 본연의 '신세계'로서 두 시간 넘게 응시하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와 대기의 순환을 고즈넉하게 담아낸 영상이,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오너의 음악이, 배우들의 흔들리던 눈빛과 서로 마음으로 주고받던 대화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같은 주제라도 내겐 [트리 오브 라이프]의 고양된 간증보다 [뉴 월드]에서 나지막히 속닥이던 사랑의 넋두리, 아련한 향수(鄕愁)의 읊조림이 더 간절히 와닿았다. 아직도 작품에서 전해지던 감정의 떨림, 그 여진에 가슴 먹먹하다. (★★★★☆) 

 

P.S. 인디언 말로 '포카혼타스'는 작은 장난꾸러기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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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1-22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며 막 두근대는, 꼭 찾아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이런 보석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서쪽섬님.

풀무 2016-01-23 05:52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최고작은 여전히 [천국의 나날들]을 꼽게 되면서도 70년대의 자연주의적이라 할만한 두 작품과 그와는 반대 궤도를 맴도는 듯한 최근작들 사이에 [씬 레드 라인]과 [뉴 월드]가 있고 그 전작을 두루 살필만한 가지가 있는 영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리한 감상글을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그리고.. 참 오랜만에 뵙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워낙에 게으른 서재 친구라.. 반갑습니다 프레이야님.
 
에너미
드니 빌뇌브 감독, 제이크 질렌할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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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질서일 뿐이다. (Chaos is order yet undeciphered.)' 영화 오프닝에 제시되는 화두를 영화에 맞추자면 이렇게 쓸 수 있겠다. '도플갱어는 아직 의식되지 않은 자신의 무의식 내지 또다른 욕망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원작 [도플갱어 (The Double)]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소설을 각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에너미]는 한마디로 괴작이다. 허나 망작은 아닌, 되려 모호함이 겹겹의 다의성으로 확장되는 가작 이상의 영화다. 

 

권태로운 일상을 이어가던 역사학 교수 아담(제이크 질렌홀)은 동료가 추천한 2005년 영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Where There's a Will There's a Way)'를 보던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배우 앤서니(역시 제이크 질렌홀)의 존재에 이끌려 그를 찾아 나서지만 그로 인해 스스로의 실존에 위협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처음엔 만남에 뚱했던 저돌적인 성격의 앤서니가 되려 자신과 얼굴은 물론 목소리에 흉터 자리까지 똑같은 아담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아담의 연인 메리(멜라니 로랑)에게까지 흥미를 느끼면서 서로의 삶을 바꿔보자 제안한다. 앤서니의 임신한 아내 헬렌(사라 가돈)에게 기묘한 끌림을 느끼던 아담 역시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두 사람 간의 기이한 불안과 혼돈의 정체성 게임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국을 맞는다. 

 

연출 의도 자체가 영화를 어떤 결로 읽어도 통하는 텍스트로 열어둔다. 내 경우 어찌 봤느냐,면 앞서 언급한대로. '도플갱어는 아직 의식되지 않은 자신의 무의식, 또다른 욕망이었을 뿐', 자신의 삶에 위기감과 환멸을 느끼던 주인공 아담이 도피처(도피자아)로서, 욕망의 해방구로서 도플갱어 앤서니를 만들어낸, 한 사람이 겪는 두 겹의 삶에 관한 영화로 봤다. 내가 짚은 층위에선 아담과 앤서니가 동일인물이고 헬렌은 아내이며 메리는 혼외연인이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쾌락을 추구하고픈 욕망에 추동됨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결국 다시 현실로 소환될 수밖에 없고, 자꾸만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욕망 덩어리, 도플갱어 앤서니는 그에게 위협적인 존재 즉, 가공할 적(enemy)이 된 셈이다. 따라서 메리와 함께 앤서니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아담에게 마지막 순간 지금껏 앤서니를 통해서만 접촉하던 금기시된 욕망을 대변하는 거미가 엄청난 위압감으로 현현하는 건 수순이다. 결국 아담은 자아 통제에 실패한 것이다.

 

도입부와 중반부에 등장하는 거미(를 짓이기는) 여인이나 잿빛 안개로 자욱한 도시에 서있는 대형 거미 등 거미의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한편으로 중간중간 카메라가 스쳐 지나며 잡아내는 황색 도시 하늘을 덮은 전신줄, 아담이 도플갱어 앤서니를 찾게 되는 인터넷 웹 자체, 마지막 앤서니와 메리가 타고 있던 차가 전복되면서 방사형으로 금이 간 차창 등을 통해서 거미줄 이미지가 간접적으로 반복된다. 아마도 드니 빌뇌브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 주인공 아담 스스로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도시의 이쪽과 저쪽을 묶어놓고 거미줄에 스스로 걸려들었다'는 얘길 하고 싶었던 듯하다. 전반적으로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다소 식상한 감이 아쉽지만 주인공 아담을 통해서 잿빛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웃픈 초상을 볼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우화이고 희비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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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9-19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 아주 식상하고 지루했는데, 서쪽님이 마지막 인용하신 `도시의 이쪽과 저쪽을 묶어놓고 거미줄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해석, ˝카프카의 작품을 데이빗 크로넨버그가 영화로 만든 것 같은 인상˝ 부분은 아주 잘 캐치하신 듯!

풀무 2015-09-19 12:42   좋아요 1 | URL
제 경우는 예전에 들떠서 [그을린 사랑]을 봤다가 드니 빌뇌브 감독에게 무척 실망했던.. 그 반사작용인지 이후 [프리즈너스]와 [에너미]는 되려 그보다 재밌게(?) 본 편입니다. 헌데 정말 이 작품은 너무 크로넨버그 스타일이긴 했죠..? :) 제가 그간 알라딘에 자주 접속하지 못했었는데 아갈마님도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자주 뵈었으면 합니다.
 
고스트 : 보이지 않는 사랑
오오타니 타로 감독, 마츠시마 나나코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영화가 플레이 되면 CJ와 파라마운트 그리고 어느 일본 영화사 로고가 차례로 지나간다. 그렇다. [고스트: 보이지 않는 사랑]​은 1990년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한 히트작 [고스트: 사랑과 영혼]이 개봉 20주년을 맞아 아시아 버전으로 리메이크된 한일 합작영화다. 일본에 도자기를 배우러 온 한국 도예가 김준호(송승헌 扮)와 잘 나가는 신생 인터넷 기업의 사장 나나미(마쓰시마 나나코 扮)의 애틋한 사랑 얘기. 여자 쪽이 모종의 음해로 영혼이 되어 남자 곁을 맴돈다는 설정으로 남녀 역할이 바뀐 걸 제외하곤 원작 [사랑과 영혼]을 그대로 답습한다.

 

 


안이한 기획부터 식상한 연출까지 요즘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한참 부족한데다 두 주연 배우 간의 화학작용마저 그닥이다. 결정적인 패착은 바로 저 백허그 녹로 장면으로 대변된다. 스토리에 캐릭터, 세트와 배우들 동선까지 그대로 따라한대도 주요 장면마다 지겹도록 민망하게 반복되는 '언체인드 멜로디' 만큼은 꼭 다른 곡으로 바꿨어야 했다. 차라리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OST로 쓰던지(읭?). 화면 속 두 남녀는 물론이고 이걸 공짜라고 끝까지 감상하며 앉아있는 옆사람과 나까지 딱하게 여겨지던. 다만 캐주얼 차림 위주의 송승헌 영상 화보집으로서의 가치는 있달까. 그의 팬들에겐 소장 가치가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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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1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ㅎㅎ 이렇게 쉬원한 리뷰라니요!! 이 영화 듣보잡이지만 다 본 듯 합니다아~~~~더구나 서쪽섬님 부부의 그 지겨움(?) 적나라하게 느껴지네요~~~ㅋㅎㅎㅎ

풀무 2015-09-15 08:49   좋아요 0 | URL
영화 한 편 보면서 옆사람이 이래 하품을 많이 하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자기가 먼저 보자 해놓고..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웃케이스 없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오노 마치코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영화가 시작되면 어느 사립초교 입학사정 가족 회견장. 면접관들이 아이 아빠에게 아이 장점에 대해 묻는다. 아빠는 자식이 엄마를 닮아 착하고 다정한 성격 같다고 한다. 단점은 뭐냐고 묻는다. 장점과 같은 얘기인데 너무 유순하다 보니 무슨 일에든 승부근성이나 끈기가 없어 애비로서 아쉬울 때가 있다고 답한다. 작품 전반의 기조와 메시지를 함축한, 인상적이고도 모범적인 도입부다. 도시 정글에서 패배를 모르고 승승장구, 대기업 중견 간부 자리까지 오른 주인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신의 기질과 전혀 딴판인 외동아들 케이타(니노이야 게이타)는 어떤 의미에서 낯선 타자였고 의문부호였다. 그러니 케이타가 자신과 아내 사이의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의 입에서 탄식처럼 뱉어진 말은 매정하게도 '역시 그랬었군!' 한마디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6년이란 세월을 같이 한 아들이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두 가정의 파란과 적응 과정을 차분히 소묘하면서 소위 유전과 환경, 낳은 정과 기른 정에 대하여 되새기는 영화다. 도시 중산층 가정과 시골의 평범한 가정, 매사 철두철미하고 냉정한 부자 아빠와 가난하지만 자상한 아빠를 대비하고 아우르며 가족의 의미, 진짜 행복에 대해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허나 무엇보다 한 사내가 남자에서 아버지가 되는 영화다. 아버지라는 이름에 부여된 진정한 가치는 자본 정글에서 자신을 포함한 식구들 생계를 책임지는 수컷 이상임을, 생존과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 밑에 깔려 있던 스스로의 유년기를 아이를 통해서 마주하며 복원하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는 인간적인 성장 과정임을 넌즈시, 그러나 아프게 상기시키는 영화다. 

 

​이 한 편의 작품에 대해 피상적으로 단점을 지적하긴 쉽다. 지금껏 여러 영화와 티비 드라마에서 다뤄온 케케묵은 소재에 도시와 시골, 냉철한 위너 아빠와 친밀한 루저 아빠라는 이항분포 도식화. 허나 세상을 그리 명료하게 딱 잘라 저울질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두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안이하지 않다. 가족은 선천적인 유전, 혈연 관계가 아니라 후천적으로 함께 하며 서로의 가슴의 새겨진 역사로 이뤄진다는 둥 섣불리 고색창연한 모토를 내세우며 정치적으로 세련된 척도 않는다. 의례 그러려니 하는 사건들은 솎아내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닿아 이루는 관계란 단순히 어울려 섞이는 것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이라는 믿음을 사려깊게 우려낸다.

 

6년 간 같이 살던 케이타를 생부생모에게 보내고 친자 류세이를 데려와 살면서 난항을 겪던 중 우연히 케이타가 몰래 찍어둔 자신의 예전 일상 사진들을 보게 되면서 눈물을 쏟던 주인공 료타의 모습에 나마저 울컥했다. 그는 친어머니와 떨어져 살 수 밖에 없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품었던 원망을 떠올리고 스스로 최고 가치라 여겼던 능력있는 남편, 성공한 아버지로서의 외길이 케이타에게 얼마나 깊은 흉터를 남겼으며 지금 류세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을지 헤아린다. 그리고 당장 해결할 순 없지만 서서히 서로에게 배어들기 위한 한걸음 망설여 내딛는다. 사람이 성숙하고 타인과 교감함에 있어 샛길이나 쳡경은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깨치고 묵묵히 견뎌내며 시행착오를 건너야 할 시간, 유장한 세월의 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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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1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풀무 2015-09-15 08:48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거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마가리타 테레코바 외 출연 / 마루엔터테인먼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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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똑같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런 바람이 불었고, 그런 소나기가 왔었습니다. 방 안은 어두웠습니다. 석유등도 그때는 꺼져 있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어머니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우리들은 정말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들을 모릅니다.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 나를 흥분시키고 내게 역겨운 모든 것 - 이 모든 것을 나는 마치 거울 속을 보듯 영화 속에서 보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 나를 밝고 따뜻하게 해 주는 것들, 내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모든 것, 나를 파멸시키는 모든 것... 인간은 최소한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충동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충동이든 타인의 충동이든... 

 

이 영화는 인간을 실어증의 저주로부터 구해 줍니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생각을, 불안과 교만한 생각들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 영화는 나 자신에 관한 영화입니다.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 관객들로부터의 편지 인용부 -

 

실어증 치료를 받는 소년. 이 영화를 그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공간이 해체되고 융합되며 진행되는 인간의 지각, 기억과 회상의 탐구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우리 자신에 대한 정밀화이자 풍경화라고 한다면 어떨까.

 

1930년대와 2차대전 시기, 70년대의 시간들이 서로 기승전결 없이 교차한다. 소년의 고향집 방 안에서 비가 내리고 우중에 모닥불이 타오르며 기존 영화들의 평면적인 공간 개념들이 모두 해체된다. 그리고 소년의 기억과 미래 혹은 현재를 통해서 가깝고도 소원한 존재였던 어머니와 전시에 항상 부재하던 아버지, 고향 이웃 사람들의 단상, 사실적인 다큐멘터리 풍의 뉴스 릴 전쟁자료 화면, 원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답습하는 주인공의 인생유전 등 다양한 삶의 파편들이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시적인 영상으로 꿈결처럼 흘러간다. 

  

1991년에서 92년으로 가던 겨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거울]이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작품을 기존에 없던 전혀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정신적인 차원을 재창조 해냈다고 '읽었다'. 그러나 감독 본인에 따르면, [거울]은 우리 스스로 멀어진 근원적인 존재 양식을 응시하며 기존의 영화 매체가 잃어버린 시간의 리얼리티를 복원하고자 한 작품적 귀결, 규정될 수 없는 존재와 흐르는 시간의 포착이자 '봉인(封印)된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읽기보다는 보고 들으며 체험해야 한다. 일관된 주제에 따라 단선적으로 시퀸스들을 연결하는 전통적인 드라마 투르기의 논리로는 이 작품에 본연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섣불리 분석하거나 박제하려 들면 길을 잃는다. 아니, 무수히 많은 길이 얽혀 있기에 그 모든 도구적 이성이 세상과 인간의 근원에 접근하는 데에 있어 무력할 수 있음을 확인한다는 표현이 옳겠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를 '시적 서정성의 논리'라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인 영화 문법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의 사고 전개 법칙과 삶 그 자체에 훨씬 더 근접하게 닿아 있다. 개별 존재의 정서적 구조의 특별성을 인식함으로써 섬세한 삶의 본질, 그 복잡성을 이루는 가닥의 미세한 한 올까지 작품에 담아내려는 타르코프스키만의 표현 양식이며 미학이고 철학이다. 그 긴밀한 정서적인 연결, 흐름에 오감을 맡겨야 한다. 직관으로 느끼고 그 속을 '살아야' 한다.

 

영화 애호가들은 한 영화 속에서 구성, 줄거리, 주인공 그리고 보통 예측 가능한 결말을 기대하는 데 익숙해 있다. 따라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요소들을 찾게 되며, 결국 대부분은 실망에 가득 차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물론 영화의 화자 이노켄지 스모크투노프스키가 흉내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예의 구체적인 인간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에 관한,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우리처럼 살아갈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일 뿐인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 세상에 살고, 동시에 이 세상의 일부를 이루는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우리는 가볍고 간단하게 감상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작품에 인용된 바흐의 음악과 아르제니 타르코프스키의 시(詩)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 영화는 우리들이 별과 바다 또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듯이 그렇게 보아야만 할 것이다.

 

- 「봉인된 시간 -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중,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물리연구소 팜플렛 인용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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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1-1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 제 인생의 영화입니다. 씨네마떼끄에서 봤는데 보고 나서 10분 정도... 그냥 가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타르콥스키 영화제 한번 했으면 좋겠네요...

풀무 2015-11-17 08:32   좋아요 0 | URL
작년 요맘때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했었는데.. 전작은 아녔지만 말이죠. 올봄 종로3가 서울극장 자리로 옮겼다는데 한번도 가보질 못했네요. 언제 또 한번 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