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도서관에 갔다가 여행기만 읽고 왔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책을 도저히 무심하게 안 본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나의 종교는 여행입니다.'
'국경을 넘는 건 사고의 경계를 넓히는 작은 퍼포먼스다.'
이런 구절을 발견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건 내가 먼저 써야 할 표현인데...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숲이 오늘따라 자작나무숲으로 보이고, 푸른 하늘은 저 멀리 히말라야의 라다크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래 이런 날은 이런 여행기가 제격이다. 약간의 한숨과 더불어.
p. 106...태초의 인류가 식량을 찾아 유랑한 것처럼, 여행은 영혼의 식량을 찾는 문화적 유랑이다. 숙련된 여행자일수록 대단한 것들을 구경하려고 욕심내지 않는다. 유랑하며 만나는 풍경에 마음을 주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드는 우연한 시간을 사랑한다. 여행은 정신의 유목이다.
p. 185...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을 하면 으레 파키스탄과 이란이 등장했다. 다음으로는 시리아, 예멘, 리비아 순이었다....여행자들이 손꼽는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죄다 이슬람 국가라는 것이다.....가본 사람들은 안다. 이슬람 국가들은 순박한 천사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이런...쯧...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예멘, 리비아.....모두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다. 다시 한숨이 나온다.
친구가 준 이 책은 진도가 안 나간다. 그간 인도여행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는 이제 아주 까탈스러운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구성은 용모단정한 모범생을 연상시킨다. 마치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여행을 한 것 같은 정형화된 구조 때문에 현장감이 몹시 떨어진다.
여행은 '도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