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햇빛이 빛나던 어느 오후, 둘세 로사 오레야노는 카니발의 여왕이 되어 재스민 왕관을 썼다. 다른 후보들의 어머니들은 그런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둘세 로사가 그 지방에서 가장 힘 있는 상원의원 안셀모 요레야노의 외동딸이기 때문이라고 투덜댔다. 여자들은 이 소녀가 매력적이고 품위 있으며, 피아노도 잘 치고 그 누구보다도 춤을 잘 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더 아름다운 경쟁자들이 있다고 수군거렸다. 그들은 오건디 옷을 입고서 화관을 쓴 채 시상대에 서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런 이유로 몇 달 수 엄청난 불행이 오레야노 가족의 집을 습격해서 수많은 죽음을 야기했을 때, 몇몇 여자들은 고소해하기도 했다. 이런 불행을 수습하는 데는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미의 여왕을 선출하던 밤에 산타 테레사의 시청 홀에서는 무도회가 열렸고, 머나먼 마을의 청연들이 둘세 로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녀는 행복한 표정이었고, 너무나도 우아하게 춤을 추었기 때문에, 청년들은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왔던 마을로 되돌아가자, 한결같이 그녀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둘세 로사는 이 세상 최고의 미녀라는 뜻밖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고, 이후 그 누구도 감히 이런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폭로할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피부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눈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는 과장된 묘사는 입과 입을 통해 전해졌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덧붙이곤 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시인들은 둘세 로사라는 여인을 상상하면서 그녀에게 바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상원의원 오레야노의 집에서 꽃피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소문은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자기가 둘세 로사를 알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25년 간 그는 시를 외우거나 여자를 쳐다볼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내전에만 관심이 있었다. 면도를 하기 시작한 이후, 그의 손에서는 무기가 떠난 적이 없었고, 오래 전부터 화약소리를 들어가면서 전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입맞춤과 어머니가 부르던 성가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가 항상 전쟁에 참가할 명분이 있었던건 아니었다. 휴전 기간동안에는 그의 도당들이 쳐부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억지로 이루어진 평화의 시기에도 그는 해적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폭력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적들이 있을 때에는 그들을 찾아 사방으로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그것들을 만들어내야만 했을 때에는 전쟁의 그림자와 싸우곤 했다. 아마 그가 속했던 정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그는 비밀스런 존재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변했고, 그것으로 폭력을 선동할 명분이 모두 끝나버렸던 것이다.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마지막 임무는 산타 테레사 마을을 징벌하는 원정이었다. 백이십 명의 도당을 이끌고 산타 테레사 사람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고 , 반대파의 주모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밤을 틈타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공공건물의 창문을 향해 마구 총격을 가했고, 교회의 문을 부수고서 말을 탄 채 제단까지 진입했으며, 그들의 길을 막던 클레멘테 신부를 짓밟아 버렸다. 또한 자모회가 광장에 심었던 나무들을 불태운 다음, 전쟁을 부르짖으며 전속력으로 언덕 위에 자랑스럽게 서 있던 상원의원 오레야노의 저택을 향해 나아갔다.

 상원의원은 자기 딸을 가장 외딴 정원에 있던 침실에 가둬놓고 그 정원에 개를 풀은 다음, 충성스런 열두 명의 하인들을 이끌고 타데오 세스페데스를 기다렸다. 바로 그 순간 그가 생전에 수없이 불평했던 것처럼, 무기를 들고 자기 집의 명예를 지켜줄 남자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이 한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아주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언덕 중턱에서 밤을 공포에 떨게 만들면서 다가오고 있던 백이십 개의 가공할 만한 횃불을 보았기 때문이다. 상원의원은 아무 말 없이 마지막 남은 탄약을 나누어주었다. 이미 모든 것은 예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날이 밝기 전에 전쟁터에서 남자답게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내 딸이 숨어 있는 방의 열쇠를 들고 가서 내가 지시한 의무를 수행하라"

상원의원은 총성이 시작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둘세 로사가 태어난 것을 보았고, 그녀가 걷기 시작할 때에는 그녀를 무릎에 안아주었으며, 겨울철 저녁때에는 귀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그녀가 피아노치는 소리를 들었으며, 카니발의 여왕으로 화관을 썼던 날에는 모두 울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음 편히 죽을 수 있었다. 어쨌건 딸아이가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손에 포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원의원 오레야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전쟁터에서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싸웠지만, 맨 마지막으로 남을 사람이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열두 명의 친구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계속해서 저항한다는 것이 쓸모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는 배에 한 방의 총알을 맞았고, 그러자 그의 눈은 희미해졌다. 그는 간신히 자기 소유지를 에워싸고 있는 높은 벽으로 기어올라가는 그림자들만을 분간할 수 있었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세 번째 정원으로 몸을 끌며 들어갔다. 개들은 그가 땀과 피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체취를 알아보고,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그는 자물쇠에 열쇠를 집어넣어 무거운 문을 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던 그의 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둘세 로사를 보았다. 아이는 카니발 축제에서 입었던 오건디 옷을 입고 있었으며, 왕관을 장식하고 있던 꽃들로 자기 머리를 단장하고 있었다.

"얘야, 이제 시간이 되었다." 그는 방아쇠를 잡아당기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 밑에는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 둘세 로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살려주세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안셀모 오레야노 상원의원은 열다섯 살 먹은 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타데오 세스페데스가 딸에게 무슨 짓을 할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러나 둘세 로사의 티 없는 눈에는 말할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자기 딸이 목숨을 구하면, 반드시 자기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둘세 로사는 침대 위에 앉았고, 그도 딸 옆에 앉아서 문을 향해 조준했다.

죽음에 신음하던 개들의 울부짖음이 잠잠해지자, 빗장이 열리고 걸쇠가 공중으로 치솟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방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상원의원은 여섯 발의 총알을 쏘고 의식을 잃어버렸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죽음으로 신음하는 늙은이를 품에 안은 채 재스민 화관을 쓰고 있던 천사를 보자,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런 동안 천사의 흰옷은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늙은이를 다시 바라보고 동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폭력에 취한 채 여러 시간 동안 싸워 기운이 없었기 때문었다.

" 이 여자는 내 거야." 그는 자기 부하들이 그녀에게 손을 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

환한 화염에 물든 채 우중충한 금요일이 밝았다. 언덕 위에는 깊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지막 신음소리마저 잠잠해지자, 둘세 로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의 분수로 향했다. 전날만 해도 목련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제는 잿더미 한가운데 있는 외로운 웅덩이에 불과했다. 둘세 로사가 입고 있던 하얀 오건디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그녀는 알몸이 될 때까지 천천히 그 옷을 벗고는 차가운 물 안으로 드어갔다. 태양은 자작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녀는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던 피와 자기 머리칼에 말라 붙어 있던 아버지의 피를 씻으면서 물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몸을 깨끗하게 씻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침착하게 폐허가 되어버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서 몸을 가릴 것을 찾았다. 그녀는 하얀 무명 시트를 두르고 상원의원의 유해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밖으로 나갔따. 그들은 상원의원의 다리를 묶어 언덕 기슭으로 끌고 갔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가련하게도 누더기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따. 그러나 사랑의 안내를 받은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시체를 모포로 둘둘 말았고, 그 옆에 앉아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산타 테레사의 마을 주민들은 용기를 내어 오레야노 가족의 집으로 올라오던 중에 그렇게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주민들은 둘세 로사를 돕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어주었고, 그때까지도 불에 타고 있던 잔해의 불을 껐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대모와 함께 그녀의 역사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다른 마을에 가서 살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그러자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다시 그녀의 집을 짓기 시작했으며, 그녀를 지켜줄 여섯 마리의 사나운 개를 선물했다.

 목숨이 붙어 있던 그녀의 아버지를 끌고 간 그 순간부터, 그리고 타데오 세스페데스가 문을 닫고 가죽 허리띠를 푼 순간부터, 둘세 로사는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이후 30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이런 생각을 한시도 떨쳐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미소와 착한 마음씨를 모두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 한편 그녀가 아름답다는 명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음유시인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노래를 불렀고, 심지어는 그녀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집안과 농장의 허드렛일을 지시하고, 말을 타고 자기 소유지를 돌아다녔으며, 시리아 상인들처럼 억척스럽게 물건을 사고팔았고, 정원에 목련과 재스민을 길렀다. 저녁이 되면 남자 바지와 장화와 무기를 벗어버리고, 향내 나는 가방에 담겨 수도에서 도착한 멋진 옷들을 입었다. 밤이 되면 방문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하녀들은 손님들에게 케이크를 담은 접시와 아몬드 음료를 대접했다. 그런 동안 그녀는 피아노를 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가 정신병원의 환자복을 입지도 않았고, 갈멜 수녀원에 신참 수녀가 되지도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오레야노 가족의 저택에는 자주 파티가 열렸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자 이내 사람들은 예전의 비극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 살해다한 상원의원을 기억 속에서 지우게 되었다. 유명하고 돈 많은 신사들은 둘세 로사의 현명함과 아름답다는 명서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강간당했다는 과거의 흔적을 극복하고 청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든 청혼을 거부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의 사명은 복수이기 때문이었다.

*

타데오 세스페데스 역시 평생 그날 밤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몇 시간후 그가 징벌 원정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도시로 길을 떠나자, 이내 죽은 상원의원의 시체를 잊어버렸고, 도취되어 있던 폭력의 감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어두운 방안에서 우아한 춤옷을 입고 재스민 화관을 쓴 채 그의 거친 행동을 묵묵히 참아내던 소녀의 모습이 엄습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붉게 물든 채 갈기갈기 찢겨진 옷에 대충 가려져 있었고, 의식을 잃은 채 가련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평생 동안 매일 밤 그는 잠에 드는 순간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정부군이 주둔하고 권력을 손에 쥐게 되자, 그는 부지런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자 내전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를 타데오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산 저쪽에 농장을 구입했고, 정의롭게 농장을 관리했으며,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둘세 로사 오레야노의 환영만 없었더라도 그는 어느 정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의 얼굴과 위로를 찾기 위해 품에 안았던 모든 여자들의 얼굴, 그리고 평생에 걸쳐 찾았던 수많은 살아 속에서도, 그는 카니발의 여왕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불행했던 것은, 종종 음유시인의 시구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이었다.

젊은 둘세 로사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났고, 이내 그의 마음을 온통 차지해 버렸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55세 생일을 축하하는 긴 연회 테이블 머리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테이블보 위의 재스민 꽃봉오리 사이로 벌거벗은 한 소녀를 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 악몽이 그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그를 마음 편히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하고 쳤고,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들은 흔들거렸다. 그는 모자와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타데오 씨, 어디 가세요?" 어느 마을 유지가 물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채 급히 그곳을 빠져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힘들게 그녀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불행을 겪었던 그 집에 항상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따. 그는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때에는 도로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거리는 더욱 짧아 보였다. 주위 풍경은 수십년을 지나오면서 이미 바뀌어 있었지만, 언덕의 마지막 커브를 돌자 오레야노 집안의 저택이 보였다. 마치 그의 도당들이 그 집을 무력으로 침공했을 때를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곳에 그가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했던, 강가의 돌로 지은 견고한 벽이 있었다. 또한 그곳에 화염에 휩싸였던 나무 창틀도 있었고, 상원의원 부하들의 시체를 매달았던 나무도 있었으며, 개들을 죽였던 마당도 있었다. 그는 문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단. 그는 감히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 자기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덤불 사이로 빛나는 치마를 두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모든 생각의 힘을 동원하여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저녁 여섯 시의 은은한 햇빛 속에서 그는 둘세 로사 오레야노가 정원의 오솔길로 둥둥 뜨듯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머리칼과 하얀 얼굴, 조화로운 몸짓, 너풀거리는 그녀의 옷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기가 이미 30년이나 지속되었던 꿈속에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오는군요. 타데오 세스페데스."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말했다. 시장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머리칼도 회색으로 변했지만, 그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의 손은 해적의 손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시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 난 평생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어." 그는 너무나 창피해서 들릴까말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둘세 로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사형집행인의 흔적이 아니라 단지 신선한 눈물방울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30년 동안이나 길러온 증오를 마음속에서 찾으려 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할 일이 있으니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순간을 떠올렸고, 이 남자가 저주의 포옹을 할 때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의 유해를 무명 침대시트로 둘둘 말던 새벽의 순간을 되살렸다. 그리고 완벽한 복수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니 정반대로 깊은 우수만을 느낄 뿐이었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키스를 하면서, 그 손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그러자 그녀는 시시각각 미리 징벙을 음미했지만 감정이 생각에 등을 돌렸고, 결국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겁을 했다.

다음 날부터 두 사람은 억압된 사랑의 수문을 열고서 처음으로 그들의 가혹한 운명 속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닐며 자기 자신들에 관해 말을 했다. 물론 그들의 인생을 뒤틀어놓은 숙명의 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거름이 질 때면 그녀는 피아노를 쳤고, 그는 그 음악소리를 부드러운 뼛속 깊이 느끼면서 담배를 피웠다. 마치 행복이 망토처럼 그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아고, 과거의 악몽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는 저녁을 먹은 후, 이제는 아무도 끔찍했던 옛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던 산타 테레사로 향하곤 했다. 그는 최고의 호텔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며, 엄청난 술과 음식이 난무한 요란한 파티를 벌이고 싶어 했다. 그는 모든 남자들이 꿈을 잃어버리던 나이에 사랑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는 청춘 시절의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둘세 로사를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에워싸고 싶었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에게 주려고 했고, 그것으로 자기가 젊었을 때 했던 못된 짓을 늙어서나마 보상하고 싶어 했다. 가끔씩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최소한의 원한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단지 서로 공유하는 사랑의 빛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한 달이 지났다.

결혼 이틀 전이었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정원에 파티 음식이 차려질 테이블을 준비하고 있었고, 파티에 쓰여질 새들과 돼지들을 죽이고 있었으며, 집을 장식하기 위해 꽃들을 꺾고 있었다. 둘세 로사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았다. 그녀는 거울에 비춘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카니발의 여왕으로 화관을 썼던 날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기의 마음을 속일 수가 없으며, 그를 사랑하기에 자기가 계획했던 복수를 절대로 할 수 없고, 상원의원의 영혼도 잠재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자 재봉사와 작별인사를 한 다음, 가위를 들고 지난 30년 동안 텅 비어 있었던 세 번째 정원의 침실로 갔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책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는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집 끝으로 달려갔다. 정원사들의 도움으로 그는 빗장 걸린 문을 부수고 30년 전에 재스민 화관을 쓴 천사를 보았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살아오면서 평생 동안 꿈 속에서 보아왔던 모습 그대로의 둘세 로사 오레야노를 발견했다. 그녀는 피 묻은 오건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영혼이 사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를 기억하면서 90세를 살 때까지 자기의 죗값을 치를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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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1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읽을때도 참 ' 강하다' 는 느낌을 받았지만, 글로 옮기면서는 계속 입에 맴도는 문장들이 많더라구요. 급작스레 바뀌는 시간의 흐름이라던가 간결하면서도 뭐랄까 이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왔던 틈과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슴을 치는 문장들이요. '개들은 그가 땀과 피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체취를 알아보고,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신데렐라의 함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9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20살 처녀, 억만장자의 상속인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살인사건입니다.

나는 그 사건의 탐정입니다. 또 증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입니다. 게다가 범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네 사람 모두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미스테리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보다 더 끄는 광고문구를 본 적이 있었던가?!

프랑스 작가 세바스띠엥 자프리조의 이 작품은 '추리기법을 쓴 소설' 이다. 탐정이자 증인이자 피해자이자 게다가 범인이도 한 상속녀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무척이나 머리 아프고 피곤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진짜 피곤하고 페이지 넘기기가 곤욕일 정도였다.) 그러나 끝의 결론을 보기 위해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조금 읽다보면 트릭은 쉽게 눈치챌 수 있으나, 결정적인 결과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나 알 수 있다. ' 신데렐라의 함정' 이라는 말로. ( 이건 절대 스포일러 아님)

'신데렐라의 함정'은 짧은 중편이고, 그 뒤에는 또 '살인급행 침대열차' 가 있다. 결론이 조금 허무해서 그렇지,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침대칸에서 죽은 여자를 수사하며 동승했던 승객들의 시점으로 재구성된 이 작품도 꽤나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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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리 2005-03-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당연히- 그리고 곧 주문 ㅋ

미세스리 2005-03-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웩! 출고예상시간 72 시간!!!

비츠로 2005-03-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MB가 출간되기 전 이 책 광고문구가 너무 흥미로워 3년전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가서 자유추리문고로 본 기억이 나는군요.

하이드 2005-03-1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사실, 광고문구가 정말 궁금증을 마구마구 자아네요. 읽는 중간이 좀 안 넘어가서 그렇지, 다 읽고 나서는 작가가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
 

Jane Urguhart 의 'Away' Kel님의 서재에서 호퍼 그림과 함께 문장들을 써 놓았는데, 정말 가슴을 쳤던.

Matthe Sharpe 의 The Sleeping Father

Sideways: The Shooting Script

 Sideways: The Shooting script  ( Alexander Payne ( Contributor), Jim Talor)

Rex Pickett 의 Sideways : A Novel

분명히 작년에 샀었던 책인데, 아무리 찾아도 없음. 아마 올림푸스 펜하고 같이 걸어나간듯 보인다. -_-+

Thomas Hardy 'The Mayor of Casterbridge' 하디의 소설이 읽고 싶었던 어느 날 장바구니에 넣어놨었던.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2005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2005

엊그제 2003 버젼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나니, 나도 다시 가지고 싶어짐. 근데, 2005버젼이 있으니 요걸로 ^^a

Tortillitas para mamá

A collection of lyrical translations and Spanish texts of Latin American nursery rhymes. Ages 5-9.
Copyright 1987 Reed Business Information, Inc

아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보고 아마존 검색하다가 담아두었던 책.

Anna Gavalda ' I wish someone were waiting for me somewhere'

계속 구하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히 발견. 표지도 예뻐서 덥썩

Jane Urguhart ' Stone Carvers, The '

Jane Urguhart의 책 하나 더

 

이런, Time Out Travel Guide도 없고, 미스테리 페이퍼백도 하나도 없네 -_-a

언제나 그렇지만 주문하고 나면 사야할 책이 마구 떠오른다.

배송비가 너무 올랐다.

60불이 넘는다. 대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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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5-03-1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맨날 배송비 생각에. 아직 해외 쇼핑몰에서 주문 한 번도 안해본 매너라죠. 더 중요한 이유는. 한번 맛들이면 가계파탄날게 두려워. 으으으... 리히테르 프라하 실황 언제나 재고 있던데. 이거 원. 알라딘 해외 쇼핑몰 주문 모임이라도 조직해볼까요? ㅎㅎㅎ

하이드 2005-03-1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되고도 남았을터인데, 아마존이 워낙 세일만 하고 마일리지 비스므리한것도 없어요 -_-a
 



사실 알라딘에 나와 있는데, 이름 모자이크 한건 좀 웃기지만 ^^;;

암튼, 저 3명 당첨중에 한명이 나다. 으흐흐

내가 얼마전에 올렸던 '2월'이란 제목의 페이퍼에 장정일의 '생각' 에 대해 불평한 글이 있다.

파본이였는데, 알라딘에서 바꿔주길 기다리고 있는동안 잃어버렸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보내주겠다고.

그 책에 대한 나의 리뷰는, '나만 좋은' 리뷰라고나 할까? 리뷰를 쓸 때 저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서도. 장정일의 책의 비꼬는 어조, 신랄한 어조를 책한권 분량만큼 접하고 나서 리뷰를 쓰면 전염되어 뭐랄까, 존 버거의 책을 읽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리뷰를 쓰는 것과는 또 달리 한쪽 입구리를 살짝 올리고, 금방이라도 코웃음 칠것 같은 세상에 대한 저자의 '매' 에 감정이입되어 나도 뭔가 삐뚜한 마음으로 리뷰를 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름대로 '좋았다' 라는 글이였지만, 팔리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였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보내준다니 그 맘이 고마웠는데, ( 원래 그런거에 감동 잘한다.)

오늘 다시 연락이 와서, 이벤트 당첨되신 분하고 같은 분 아니냐는거다. 맞다. 음흐흐.

그래서 내가 받을 책은

장정일의 '생각' 과 우리 시대의 인물 읽기( ;;; 두명으로 좁혀졌다) 노무현,김기덕, 장정일을 받게 되었다.

무려 네권. 공짜로.

책 받으면 내가 젤루 먼저 리뷰 올려야지. ( 아직 나오지는 않은듯. 검색에 뜨지 않는걸 보면)

흐흐흐 자랑할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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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09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넘 부러워요. ^^

하이드 2005-03-09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 히히 우리나라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책은 아직 기회가 안 닿아 못 읽어 봤는데, 좋은 기회가 될것 같아요.

하이드 2005-03-09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출판사가 알고보니 SF 시리즈도 많이 내주는 고마운 출판사더군요 ^^

마늘빵 2005-03-0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해요. 부럽다. 이벤트를 빨리 찾아먹어야지... 당첨시켜줄지는 모르겠지만.

marine 2005-03-0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은 이벤트에 자주 당첨되시는 것 같아요 전 여태까지 당첨이란 걸 돼 본 적이 없습니다

날개 2005-03-0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축하드려요..^^* 자랑할만 하시네~ 역시 하이드님이셔요!

미세스리 2005-03-0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당첨! 축하드려요!

반딧불,, 2005-03-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축하드려요.

하루(春) 2005-03-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읽고 싶어서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축하해요. *^^*

하이드 2005-03-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워낙 대충 쬐끔이라도 끌리는 이벤트상품은 다 사다 보니, 물먹는것도 많지만, 별 기대 안해도, 가끔 걸려주니, 어찌나 좋은지요 ^^ 휴머니스트 진중권 미학책 이벤트 걸린 이후 올해 들어 벌써 두번째네요. ^___^ 근데, 새벽 네시에 들어와서 글 올렸는데, 오타여와이군요. sideways 마야처럼 I'm the queen of the typo. -_-a 영화보고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왔을 뿐인데!!!

물만두 2005-03-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울보 2005-03-0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부럽다,,

놀자 2005-03-0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2월은 참 빨리 지나갔다. 책읽을틈도 없이... 라고 변명을 해본다.

25. [생각] 장정일|양장본 |286쪽|188x128mm (B6)- 그러니깐 쪼끄만 책.

이것저것 잡다구리한걸 모아서 책을 냈구나. 생각 들었던 것.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이라면, 장정일은 음주운전자를 성범죄자보다 싫어한다.와

 장정일은 대구에 산다. 와

 그리고 삼국지를 사 볼까? 다.

이 책은 파본으로 왔고, 알라딘에 세번 얘기했는데, 결국 반납하러 안 왔다. 그 와중에 책을 잃어버렸다.

암튼 내외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을 남겨준 책.

26.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원제 And Our Faces, My Heart, Brief as Photos(1984)

     존 버거 |김우룡 옮김| 반양장본|132쪽|222x141mm

  그렇구나 2월에 나는 처음으로 존 버거를 접했구나

  그것도 이 깨끗하고 하얗고 단정하고 고요한 책으로.

  이 책이 첫 만남이라 좋았다.

 

 

27. 행운아 -어느 시골의사 이야기|A Fortunate Man| 존버거 지음. 쟝 모르 사진 김현우 옮김

반양장본|184쪽 | 188x 128mm (B6)

 두 번째 만남.

 존 버거와 장모르의 '사샬'이라는 어느 시골 의사 이야기.

 

 

'사샬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 사샬은-우리 사회의 끔찍한 현실에 비추어볼 때- 행운아이다.'

존 버거는 시골 마을 의사인 사샬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일을 하지(알지) 못하는 우리의 끔찍한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것조차도  그의 관찰을 벗어나지 않고 차근차근 이야기 된다. 우리가 의사에게 의존하는 이유,  몸이 아플 때 관계의 단절과 그 단절을 이어주는 의사의 역할, 의사와 환자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풀어낸다.

한 편의 고요한 풍경 사진으로 시작한 이 글의 마침은 사샬이 일을 할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의 인용이다. 그 논리는, '그 금욕적인 특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긍정적 비전의 씨앗을 그 안에 담고 있다. '

"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 매일 누군가 죽어가죠-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데, 그 생각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줍니다."

나도 리뷰를 이 인용으로 마치고 싶지만, 사샬박사의 직업관과 같은 그의 다짐은 가장 투박하고, 거칠면서도 죽음만큼 강력한 말이라는 사족을 달지 않을 수 없다.

늦게나마 존 버거를 만나게 된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행운아' . 다.

28. 전쟁중독 |조엘 안드레아스 지음 . 평화네트워크 엮음|반양장본 | 72쪽 | 257*188mm (B5)

미국이 군사주의를 차버리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 | 원제 Why the U.S. Can't Kick Militarism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만나게 된 책

 * 이 전쟁중독이 미국 국민과 전세계 사람들을 도대체 어떤 지경에 빠뜨리고 있는가?

 * 도대체 그 비용은 또 얼마인가?

 * 전쟁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 그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29.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진 지음 유강은 옮김 |반양장본 | 310쪽 | 223*152mm (A5신)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역사 에세이 | 원제 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

 처음으로 만난 하워드 진.

  명쾌하고 알기 쉽다.

  100% 이해가는건 아니지만, 이해되는 부분에 대한 공감은 순수하고 강렬하다.

 

인간은 폭넓은 스펙트럼의 특질을 보여주지만, 보통 이 중 최악의 것만 강조되며 그 결과 너무나도 자주 우리는 낙담하고 용기를 잃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건대, 용기는 결코 꺾이지 않는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 - 물론 충분히 많은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정의를 위한 이러한 싸움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바로 인간이다. 잠시라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순간에도 남들과는 달리 아무리 작은 일이지만 무언가를 행하는 인간이다. 또 영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행위라도 불쏘시개 더미에 더해지면 어떤 놀라운 상황에 의해 점화되어 폭풍 같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30. 장미 도둑 |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반양장본 | 277쪽 | 210*148mm (A5)| 원제 薔薇盜人

퇴락한 스트리퍼와 정리해고 당한 카메라맨의 온천장에서의 하룻밤의 이야기인 수국꽃 정사로 시작해서 너무도 완벽한 부하 직원을 중매해주려고 불렀다가 어머니랑 데이트 나가버리는 다소 황당한 가인으로 끝나는 여섯개의 단편 모음집.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각기 다른 이야기일진데, 왜 나에게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마음에 남는걸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사다 지로가 극우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얘기들을 이렇게 가슴치는 얘기를 쓰는 사람인데. 

 

31. 사랑을 먹고 싶다 - 유승준

뻔한 기획의 맘에 안드는 편집의( 왕 불편한 페이지 보기. 책 중간에 떡.) 과장된 글.  여행가면서 들고간 책인데 짐만되고, 완전 후회스러웠음

 

 

32. 긴 머리 공주 - 안너마리 반 해링언 글,그림, 이명희 옮김|양장본 | 30쪽 | 257*188mm (B5)

 한 동안 그림책 많이 보다가 점점 안 보게 되었는데,

 이젠 좀 안 맞는다 싶은 것이..

 그래도 손탠의 책은 여전히 좋다.

 

33. 독초컬릿 사건 -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 |반양장본 | 324쪽 | 204*132mm

 

앤소니 버클리 콕스는 프랜시스 아일즈의 본명이다... 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리스트를 만들면서 읽어봐야지 하고 꺼낸 책인데, 대략적인 스토리를 보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약간은 지루해하며 읽었다. 너무 기대가 컸던가, 제목만 보고 너무 발랄한 추리소설을 기대했었나보다.

 

34. 세상 끝의 풍경 - 쟝모르.존 버거 지음. 박유안 옮김 |184쪽 | 223*152mm (A5신)|At the edge of the World

책의 시작은 ' 내 친구 쟝 모르를 스케치하다' 라는 제목으로 존 버거의 쟝 모르에 대한 이야기가 일곱장 정도 나와 있다. 35년이 넘는 그들의 우정. 존 버거는 쟝 모르의 모습에서 '소년'과 ' 개'를 본다고 한다. '관심 어린 무관심'의 사진을 찍고, 모든 것을 보았지만 여전히 모든 피사체에 놀라움을 가지고 사진으로 담는 사람. '세상끝' 에서 쟝 모르의 우정을 받아 누렸음을 감사해하는 존 버거의 짤막한 글이 끝나면, 이제, 드디어  at the Edge of the World 로 시작되는 쟝 모르의 여행기가 시작된다.

번역자님께서도 답글 달아주셔서 황송했던 리뷰 ^^a ( 비록 나의 딴지에 대한 답글이긴 했지만서도 ;; ) 출판사에 직접 질문도 했던 책. 책은 참- 좋았다.

35.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반양장본 | 288쪽 | 211*150mm| Essays in Love

 리뷰에 내가 찍은 사진을 끼워 넣은 신개념 리뷰 ^^ a (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발렌타인데이에 읽고 불끈 해버린 리뷰에 추천도 많이 받았다. 으흐흐

  한마디로. 좋.았.다.

 근데, 여행의 기술도 이마만큼 좋았으니, 왜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더 번역되어 나오지 않는걸까?!!

36.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반양장본 | 268쪽 | 220*132mm

원제 Como Agua Para Chocolate (1989)

 내가 본 가장 섹시한 소설.

 

 

 

 

 

37. 숲을 지나가는 길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양장본 | 430쪽 | 210*150mm|원제 The way through the woods

 역시 좋았던 콜린 덱스터의 책.

 옥스퍼드 살인사건만큼이나 좋았다.

 역시 나의 각주에 대한 딴지에 번역자님의 긴 답글을 볼 수 있다.

 각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추리소설계의 고수분들의 답글에 담겨 있다. 기다리던 작품이 새로 나와서 다들 왔다가 허접한 내 리뷰만 덜렁 남겨 있었던지라, 그 아래 답글 달아주셨다. ^^a 

역시 재미로 각주 투표까지 했다.

38. 무진기행 | 김승옥 | 양장본 | 440쪽 | 223*152mm (A5신)

 아무리 봐도 좋을 글귀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 오는 여귀가 뿜어서 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

누구나 마음 속에 '무진'을 가지고 있다. 그곳으로 도피하거나, 그곳에서 치유당하거나, 그곳에서 위안과 안심을 얻거나간에. 그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장소일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고 각자의 관념속에만 존재하는 곳일 수도 있겠다.

39.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반양장본 | 163쪽 | 225*132mm|원제 雪國

 책 읽는 때가 맞을 때가 있다.

 perky님이 빠리 가기전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을 읽었는데, 그의 무덤을 보고 꽃다발을 남기고 왔다거나

 알랭드 보통의 '나는 왜 사랑 하는가'를 발렌타인데이에 읽어버렸다던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눈이 유난히 귀했던 2005년 겨울 눈 내리는 날 읽고 있었던것처럼.

그랬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어제 서울에 (사실상) 첫눈이 내렸다. 눈다운 눈이 내렸단 말이다. 그리고 잠깐잠깐 내렸던 눈은 내가 집에 쳐박혀 있을때만 와서, 뉴스에서나 볼 뿐이었다. 폭설에 차량정체인 강원도 저 곳은 우리나라인가? 눈발을 맞으며 새벽길을 나서는데, 문득 화가 치밀어올랐다. 카페인이 들어가기 전인 잠결이였지만, 그 감정은 분명 '분노' , '화' 로 분류될 수 있었다. 이런 날은 산에 가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그 감촉을 발바닥 뿌리부터 느끼며, 산의 침묵을 들어야 하는데, 이따금 나뭇가지가 얹힌 눈이 버거워 털어내면 나뭇가지위의 그것이 바닥에 쌓인 더 많은 눈 위에 조금은 거칠게 내려앉는 소리만 들릴뿐인 그런 산을 타야하는데. 예전 어느 구정에 산과 눈과 까치와 하늘밖에 없었던 겨울 한라산에서처럼. 혹은 언제나 공상만 하는 겨울바다에 가야하는데, 검은 바다가 꿈틀대고, 하얀 눈발이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들어줘야 하는데.

40.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지음

독일 소설 재미없다 재미없다 하다가 읽게 되었다.

 역시 잘 안넘어가는 관념적인 책.

쉽게 넘어가는 책만 읽다가 읽어낸 이 책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좀 버거운 독서경험이었지만, 몇권 더 읽으면, 다시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재미있었을' 때도 분명 있었으니깐.

 

헉. 이게 다다;;;

2월은 참 빨리 지나가서, 나는 책 읽을 틈이 없었다. ㅜㅜ 고 핑계를 대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굵직굵직한 책들이 보인다. 존버거를 처음을 만나서 읽은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행운아' 그리고 쟝모르의 '세상끝의 풍경' .콜린덱스터의 새로운 모스경감 시리즈가 해문에서 나와줬고,  역시 하워드 진이란 행동파 지성인도 처음으로 접했다. 고등학교때 문제집에서 보고 처음으로 진지하게 읽어버린 김승옥의 '무진기행' 그리고 다른 단편들도 무지 좋았고, 미루고 미루던 조엘 안드레아스의 '전쟁중독'도 읽어버려 속이 시원하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 알랭드 보통의 '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은 것도 2월의 큰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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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3-0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많이 읽으시고도... 백조는 반성합니다 ioi

urblue 2005-03-0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읽으시는군요. 전 만화랑 동화 빼고 8권. 뭐 나름 선방했다 생각하는 중입니다만. ^^

마태우스 2005-03-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권이나....대단하십니다. 하워드 진은 아직 못만나봤구요, 아다사 지로,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근데 유승준이 따라올테면 따라오라는 그 유승준은 아니겠죠? 뻔한 기획이라고 하니 갑자기 의심이...^^

마태우스 2005-03-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월엔 10권 읽었다고 좋아하고 있었어요.

마태우스 2005-03-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2월 합쳐서 39권이면, 1년에 약 250권 가량 읽으시겠어요???

하이드 2005-03-05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40권인데, 무얼 한권 빼신건가요? -_-a 이미지가 없는 '애서광 이야기'? 30분이면 읽는 그림책들? 아니면, 키리코 나나난의 만화책이요? ^^a

하이드 2005-03-0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에 365권이 목표!라고 하고 싶긴 하지만, 대충 300권 정도 생각하고 있어요.
3월엔 시작부터 성적 좋습니다. 3/5까지 일곱권이요 ^^ 3월은 31일이나 있으니 많이 많이 읽을꺼에요~ 룰루~

울보 2005-03-0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정말로 대단하세요,,
전 언제 저렇게 읽어보나요,,,,,부럽기만 합니다,

마늘빵 2005-03-05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대단하세요. 근데 31일은 제 생일인데...ㅋㅋ

perky 2005-03-0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전 지금까지 (1월 2월) 16권 밖에 못 읽었더라구요. 왜이리 속도감이 안나는 건지..

비로그인 2005-03-0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시네요. 평균 320쪽짜리 한권 읽으시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

하이드 2005-03-0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따라 틀리죠 뭐. 그렇게 빨리 읽는 편은 아닌데, 지금 읽는 책은 재미 없어서 400페이지쯤 되는 문고판인데, 어제 내내 잡고 있었어요. -_-a

2005-03-07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4-0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 도둑을 읽을라고 부려 놨거든요...아사다 지로가...극우라고요...가슴치는 이야기네요...진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