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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그러니깐, 난 모르지만 이 책을 읽는다.
볼테르라는 이름이 주는 무거움은 발랄한 책표지나 '낙천주의자 캉디드' 라는 역시 발랄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키는 책은 아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소설' 에 대한 역자후기에서 작가는 낙천주의라는 당대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철학적 논쟁 중에서 라이프니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라이프니츠의 틀에 박힌 듯한 낙천주의를 공격하는 것일까? 반대로 니체나 쇼펜하우어와 같은 비관주의 또는 염세주의의 편에 가담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제3의 철학을 택할 것인가? 그 대답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는 시점에서야 알게 될것이다. 라고 하지만.
철학문맹인 나야 뭐 라이프니츠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30장으로 나뉘어진 철학소설( 동화) 을 킥킥대며 읽어낸다. 만년에 신으로까지 추앙되었다던 볼테르의 책에 대한 불손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 꽤나 재미있다.
독일의 한 성에 살고 있던 캉디드란 소년이 남작의 딸 퀴네콩드와 사랑에 빠진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성에 머물던 시절에 그는 팡글로스라는 철학선생(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를 대변하는) 을 만나 그의 사상을 흡수하게 된다. 어느 날 퀴네콩드는 팡글라스가 파케트라는 조그맣고 예쁜 하녀에게 '실험물리학' 수업 실습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보며 팡글로스 박사의 지론인 '충족이유'와 '원인과 결과'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고 자신도 박식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 차 설레는 마음으로 젊은 캉디드를 찾는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퀴네공드와 캉디드가 병풍 뒤에서 아주 우아하게 입을 맞추었을때 마침 지나가던 남작이 이 '원인과 결과'를 보게 되고 캉디드는 엉덩이를 발로 세게 걷어차이고 성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후 유럽의 여러나라와 아메리카까지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사랑 퀴네콩드를 찾아가는 긴 여정의 이야기이다. 그 중간중간에 팡글라스와 퀴네공드의 오빠가 나타났다 죽었다, 죽은줄 알았더니 다시 살아 나타났다 그러면서 역사 속의 여러 폭동과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기쁨과 행복과 불행과 배신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책에서 캉디드는 순수한 소년에서 낙천적인 청년으로 그러다 죄를 짓게되고 "아, 애석하게도! 제기랄! 나의 옛 주인이며 친구이며, 처남이 될 사람을 내가 죽이다니!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라는 내가 벌써 사람을 셋이나 죽였고, 그 중에 신부가 둘이나 되다니!" 끊임없이 도망치고, 그러면서도 순수한 사랑 퀴네공드를 찾아 헤매인다.
불행과 배고픔과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여행하다가 흘러든 '엘도라도' 는 황금의 땅 모든 것이 완벽한 곳. 길거리의 모두가 낙천주의자인 곳. 그리고 신을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 없는 곳. " 그럼 종교가 둘일 수도 있나?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종교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신께 경배한다오." 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이는 그 곳에서 뛰쳐나오자마자 불행한 흑인 노예를 만나고 그는 낙천주의를 버릴 수 밖에 없겠다고 부르짖는다. '낙천주의가 뭐지요?"라고 묻는 하인에게 " 아! 인간이 불행할 때도 모든 것이 잘 이루어져 있다고 우기는 일종의 광기라네." 라고 답한다. 그러니깐 이것이 낙천주의에 대한 볼테르의 입장인 것일까?
모든 불행한 일들을 겪은 등장인물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최선의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 낙천주의를 대변하는 팡글라스를 대변하는 캉디드에게 '이래도 세상은 최선의 것이냐?' '이래도 내가 행복해보이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그런 모든 불행한 일들을 겪어낸 사람중 한명인 예전에 교황과 공주의 딸이었던 노파는 결국 캉디드가 바라던대로 모두가 모여 살게 된 그 때가 되자 또 묻는다. "나는 어떤 것이 더 불행한 삶인지 알고 싶어요. 검둥이 해적들한테 1백번이나 겁탈 당하는 것. 엉덩이 한 쪽을 잘리는 것, 불가리아인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는 것, 종교화형식에서 죽도록 매맞은 다음 교수형을 당하는 것, 교수형 당한 수 다시 해부 당하는 것, 그리고 갤리 선에서 노를 젓는 것,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겪은 이 모든 불행들, 아니면 아무 할 일 없이 이곳에서 지내는 일들 중에 가장 나쁜 것이 무엇이오?"
결론은 좀 모호하다. 철학적인 의도가 개입된 철저한 목적소설이라는 이 책은 끊임없이 낙천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관주의 염세주의를 대변하는 자(마르탱)들의 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 현실적인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 모든 이들이 모여 있는 와중에 누군가 말한다. " 추론을 그만두고 일합시다. 일을 하는 것만이 삶을 견딜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