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없었고, 갑자기 만화책의 세계에 빠져버리는 바람에=_= 귀찮아서 쓰지 않았던 영화 리뷰를 간단히 써볼까 한다.
하긴, 요즘은 별로 재밌는 영화도 없어서 영화도 잘 안봤다. 

  

하하하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싫은 소리중 하나가 남자들이 낄낄대는 소리인데, 딱 그런 느낌의 영화다.
사실 홍상수 영화들이 거의 그런 편이었던 것 같은데, 남자가 보기엔 공감될지 몰라도 여자가 보기엔 기분 드럽다.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사람들이 좀 웃었던 것 같은데, 어느 부분에서 웃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웃긴건지, 우스운건지...
이런 게 진짜 남자라면 난 그냥 2D 세계의 꽃소년에게 평생을 걸고 사는게 낫겠다.
아..역겹고 기분나빠....-_-; 


  

하녀

옛날에 이 원작영화를 봤던 것도 같은데, 워낙 어릴때라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와 원작이 스토리가 똑같았는지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원작은 조금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그런 원작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를테면 에로틱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긴 한데, 장면의 구성미는 있을지라도 전체적인 연출 능력의 부족인지 긴장감이 살지 않고, 캐릭터의 심리묘사같은 건 전혀 되어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해서,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수 없다. (그나마 서우가 연기한 싸모님의 심리만 이해할수 있달까.)
배우들은 꽤 고급이니까 배우들의 연기력 부족이라고 볼 수는 없겠고, 뭔가 신비한 척 독특한 척 하려는 부분에서 박찬욱 영화의 느낌을 받았는데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들긴 한다.
옛날 영화의 리메이크라 그런지 스토리도 너무나 전형적이고, 중간중간 삽입된 작위적인 연출은 솔직히 유치하기도 했다.
너무 단순해서 의도를 알수 없다.
상류층의 삶의 방식을 비웃으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치정극을 다루려는건가.
전자라면 너무 멍청했고, 후자라면 실패했다.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죽어있는 느낌이 줄곧 들었는데, 모든 캐릭터가 수동적이라 생동감도 공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나마 점수를 줄수 있겠는데, 대배우들이 몇몇 출연했음에도 그다지 공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소 실망스럽긴 했지만, 재미없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이트메어

옛날 공포영화 리메이크물을 잘 보러가지 않는 편이지만, 공짜표는 남아돌고 도무지 볼 영화는 없어서 새로운 <나이트메어>를 보았다.
우리의 살벌한 꿈친구 프레디 크루거의 인상이 좀 변한 것 같더라.
훨씬 악랄하고 장난기 있는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어딘지 처량해 보여서 아쉽다.

원작을 본게 벌써 초등학교때의 일이라, 지금은 내용도 가물가물한데, 보다보니 인상적인 씬들에서는 기억이 되살아 나더라. (천장에서 피가 쏟아지는 장면이라던가, 시체가 학교복도에서 질질 끌려가는 장면이라던가, 욕조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프레디의 손이라던가...그런 씬들.)
내용은 예나 지금이나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영화에 몰입해서 봐야겠다는 부담감이 없어서인지 단순한 대로 재밌다.
지금와서 이 영화를 무섭고 잔인하다고 말하기는 웃기는 일이고, 옛날 영화를 새로운 시대의 비주얼로 확인하겟다-정도의 느낌으로 보러가면 좋을 것 같다.
지나치게 전형적이긴 한데, 욕심을 많이 부리지 않고 쓸데없는 반전같은 거 덧붙이지 않아서 괜찮았다.
리메이크의 깔끔한 선전. 어쩐지 겸손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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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인형 - Air Doll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겉보기와 다르고, 초반과 후반이 다른 <공기인형>.
배두나는 공기로 가득찬 섹스돌-그것도 세일에 판매되었던-을 연기하고, 인형같은 얼굴이라 보기는 힘들지만, 참으로 인형같은 인체를 지녔다는 생각은 들면서도 막상 디테일은 참 아쉬웠다. 인형일 때의 모습에 버젓이 숨을 쉬고 있다거나, 바람이 빠져가는 모습이 보기에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부족하긴 했으나, 어차피 이게 SF환타지 영화도 아니고 이런 아쉬운 점을 건너뛰도록 하자.

대인기피증을 가진 어느 아저씨의 공기인형으로 살아가는 노조미는 어느 순간부터 낮에는 인간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고, 밤에는 아저씨를 기다리는 인형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시간,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비디오가게 아르바이트생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인형이면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사태가 벌어지고, 지금까지 남아있던 인형으로써의 삶에 조금씩 염증이 생기게 된다.
검은 그림자가 갖고 싶고, 누군가의 옛 여친도 되어보고 싶은 노조미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대도시에서 공기인형처럼 텅비어가는 현대인들의 각양각색의 모습도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가 전해주려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포스터만 봐도 대충은 알수 있고,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나 캐치할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포스터의 달달한 느낌과 색다른 러브스토리가 찾아온다는 둥의 카피같은 것은 무시하고 영화를 보는게 정신건강에는 좋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분명하게 알겠는데 불필요할 정도로 적나라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그 메시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이 영화 최대의 실수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을 소재로 그린 많은 일본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우리나라에 출시된 영화들도 다 보지는 못했지만...)들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감상주의가 내게는 참으로 낯간지럽고 교과적인 허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 역시 초반부터 그렇게 흘러간다. 일본 특유의 영상들, 초 순정만화에나 나올 법한 감상적인 대사들.
다소 낯간지럽긴 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는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무리수를 던진 것이 이 영화를 마냥 재밌고 감동적으로 볼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다소 잔잔한 와중에 단순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가운데, 인간의 공허함이나 역겨움같은 것을 지나치게 비약해버리는 바람에 갑자기 영화는 호러 영화로 빠져버리는데, 이것 또한 공허하구나-라고 말하기에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에서 행위의 이유를 찾을수가 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아서 오히려 잔잔한 초반부보다 설득력이 더 떨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최악의 작품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너무 오버해버린 느낌이다.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고 해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정서는 분명 다르고, 그렇기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본 영화들에서 딱 좋은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오버하는 바람에 망해버리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은 건지 모르겠다.
또, 상냥하고 감상적인 감정보다는 차갑거나 비틀어져있거나 다소 불편할 정도의 감정쪽이 내 개인적인 취향에는 더 잘 맞는 편인데도, 일본영화에서는 이런 나도 극복할 수 없는 어떤 불쾌할 정도로 가학적인 지점들이 있다.
그것 역시 나와 다른 삶의 방식이라면 또 그럴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기행들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는 막연하게 나마 깨닫게 할수 있어야 기본은 되어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잘 못 생각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단순명쾌한 메시지를 가지고, 감상주의에 빠진듯 싶다가도, 어느 순간 불필요할 정도로 불편해지고, 쓸데없이 엽기적인 샛길로 새버린다. 종잡을수 없이 변덕스럽고 괴팍한 여자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대화법은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다.
누군가 내게 이런 식으로 말를 걸어온다면 한 대 후려갈길 듯.

p.s 배두나가 필요 이상으로 벗는 것도 조금 짜증. 장르가 에로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두나 몸을 보라고 만든 영화도 아닌데, 필요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너무 벗긴다 싶더라. 이런 불필요한 부분들이 영화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찾을수가 있어서, 메시지가 단순한데 비해서 런닝타임이 좀 쓸데없이 늘어난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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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전에 교보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친구가 한참 늦어지길래 이 책을 집어들고 대충대충 읽어본다는 것이 3분의 1이나 읽어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한참후에, 지금에서야 이 책을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세...세일하길래....!!!!)
이런류의 범죄 심리학에 관련된 책은 참 많이 읽은 편이고, 추리소설도 많이 보는 편이기 때문에 더이상 새로울 게 없다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꼼꼼하게 읽고 또 읽어보게 되는 건 왜일까.
인간 마음속에 존재하는 끝을 모르는 어둠을, 나는 그렇게도 알고 싶은 것일까.

이 책은 FBI 심리 분석관이자, 연쇄살인범 (Serial Killer)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로버트 K. 레슬러가 연쇄살인범들의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인터뷰 했던 내용을 근거로 만들어진 책이다. 작가가 당시에 처해 있던 상황, 연쇄 살인범들이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라던가, 이들의 끔찍한 범죄들, 이 범죄자들을 인터뷰하고 연구함으로써 얻어낸 살인자의 내적, 외적 프로필을 추측하는 기술- 프로파일링에 대한 이야기들을 상세히 바라볼 수 있는 책인데, 이런 류의 책을 많이 읽었음에도 이 책이 그중에 가장 잘 쓰여졌고 자극적인 부분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읽으면서 작가 나름의 자기 자랑에 코웃음나긴 했지만,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고 열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니 자신과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리라 생각하기도 한다.

남의 나라 얘기로만 느껴졌던 연쇄살인에서 우리나라도 이제 자유롭지 않다.
책에 적혀있듯이, 작가 로버트 K. 레슬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70,80년대를 거치면서 눈에 띄게 연쇄살인이 늘어났다니, 연쇄살인이라는 것이 비단 어느 인종이나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연쇄살인범의 부류를 비조직적 살인자, 조직적 살인자로 나누는데, 비조직적 살인자는 이른바 정신병자로, 꽤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고 누군가에게 계시를 받았다는 둥의 허황된 환상을 실제로 여기는 편집형 정신분열증 환자를 뜻한다.  이들의 범죄에는 패턴이 없고, 잔인무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악의는 없다. 이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범죄가 무척 우발적이라 범행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노력따위 하지 않고(그럴만한 냉정한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차를 몰고 살인을 저지르러 나가는 경우도 극히 적으며, 자아가 분열되어 살인을 저지르는 자아와 평범한 인간인 자아가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러한 정신병적인 모습이 주위에서도 쉽게 탄로난다고 한다.
작가는 어느 시대에나 일정한 비율로 이런 비조직적 살인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늑대인간같은 설화속의 존재들이 옛시대에도 있었을 이런 정신병자들에 근거한 것이 아닐까-하고 혼자 추측해보았다.
70-80년대를 지나면서 연쇄살인이 늘어나게 되는 것은 조직적 살인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인데, 몇년전부터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사이코패스라는 존재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이들의 범죄에는 이성이 있고, 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 아주 똑똑하고 교활한 살인자도 있다.
어디선가 읽기로는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연쇄살인범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고 하던데, 이들이 범죄로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과 더불어 기묘한 환상을 키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어린시절은 대체로 불우한 편인데, 꼭 경제적으로 불우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차가운 부모라던가 자식에게 화풀이하는 부모 역시 이 불우한 환경에 속한다.
이들의 범죄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키워온 삐뚤어진 환상을 토대로 하나씩 계획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조직적 범죄의 대부분이 성범죄로 이어지고, 애초에 있었던 기묘한 환상 자체가 삐뚤어진 성욕에 근거해 있단다.

최근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여러 끔찍하고 잔학한 성범죄들과 연쇄살인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게 될 수 밖에 없었는데, 미국의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기술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발전하게 되었나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건 너무 무리한 얘기일까.
유아성폭행을 저지르고 만취한 상태라고하면 감형되는 나라. 살인자에게 고작 몇년 형 때려놓고 금새 다시 나와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만드는 나라. 과연 제대로된 정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
중간에 살인자도 죽어버려서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나라도 종신형 3번 연속으로 선고받기-같은 법은 왜 존재하지 않을까?
왜 범죄자들도 갱생될수 있다는 허황된 꿈에 부풀어 있을까?(연쇄살인범들의 대부분은 아주 오랜시간 삐뚤어진 환상을 되풀이해와서 돌이킬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갱생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한다.)

무서운 게 살인범인지, 이 나라의 법인지 모를 나라에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어떻게 내 아이를 낳아놓고 건강히 자라주기를 바랄수 있을까.
위혐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고, 사회 역시 피해자를 지켜줄수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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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코담배케이스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9
존 딕슨 카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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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용실에서 읽기 시작해서, 미용실을 나올때 다 읽은 책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빠르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눈길을 사고잡는 추리소설이다.

남편의 외도에 지쳐 이혼을 한 젊은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기로 하는데, 모든 것이 다 잘되어가고 있던 순간, 전남편이 침실로 찾아와 폐악을 부리게 되고, 두 사람은 건너편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이 건너편 집이란 주인공 여자가 결혼하기로 한 남자의 집인데, 약혼자의 아버지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을 목격하고도 자신이 목격자라고 말할수 없는 상황. 왜냐면 상황을 설명하자면 자신이 전남편과 그시간 함께 있었다는 것도 함꼐 설명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의 오해가 생기는 바람에, 자신이 살인자로 몰리는 상황에 처하고 마는데....

존 딕슨 카의 책은 몇권 더 읽어보았던 것 같다. <화형법정>에서부터, <벨벳의 악마>, <구부러진 경첩>,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는 <황제의 코담배케이스>까지 읽었는데... 뭐랄까. 정도의 차이는 다르겠지만 결말부분에 가면 나는 똑같은 감상을 얻게 된다.
초반부와 중반부까지는 상당히 설득력있고 흥미진진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데, 후반부에 가면 다소 어이 없어지거나, 시시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화형법정>같은 책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했던 추리소설중 하나였다.)
섬세하고 즐겁게 표현된 캐릭터 묘사도 좋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서 드라마틱한 연출이 자유자제로 이루어지는 느낌이라서 읽어내려가기는 참 재밌긴 한데, 항상 내가 납득되지 않는 결말이 나와버려서,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황제의 코담배케이스>같은 경우는 결말이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었고, 그럴 만도 하다...싶은 면도 있긴 했지만, 예상외로 심심한 결말에 또 맥이 빠져버렸다.
하긴 추리소설에서 뭘 얻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긴 하면서도, 항상 막판에 다르면 그간 책을 읽어온 시간에 대한 허무함과 책을 읽는 도중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일종의 배신감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작가. 그럼에도 계속 읽고 있었던 이유는 존 딕슨 카의 책을 더 읽어보면 그 매력을 알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 마음에서 였는데, 여전히 실패. 그래서 앞으로는 읽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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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0
앤절라 카터 지음, 이귀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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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화를 각색한 잔혹동화들이 인기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미 있는 이야기를 전복시키는 스타일의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터라, 한때 꽤 많이 쏟아져나오는 바람에 삼류로 흘러가던 잔혹동화 이야기들도 꽤 재밌게 봤었는데, 이 책 <피로 물든 방>을 그런 류의 잔혹동화로 치부할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이미 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시 지어낸 새로운 이야기이거나, 색다른 해석, 잔혹동화라고 치기에는 다소 난해한 점도 많고, 이야기를 완전히 전복시켜 사람 깜놀하게 만드는 재주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원래 있는 동화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도 볼 수 있다-정도로 조금 더 현실적인 해석으로 풀이해놓았다고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있는 동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을 때 막연하게 느꼈던 찝찝한 느낌, 막연하게 야했던 것만 같은 느낌, 막연하게 무서웠던 느낌이 어디에서 근거했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달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린 시절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아이들이 무서워했던 부분은 푸른 수염이 자신의 옛 아내들을 죽여서 아무도 모르는 방에 전시해놓았다는 사실 뿐이었을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집이 커다란 푸른수염을 가진 남자가 "알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숨기는 척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린 아내에게 열쇄를 쥐어주며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 당부하며 묘하게 훔쳐보기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으스스하기도 하다.
또는, 돈많은 이 과묵한 푸른 수염이 하필이면 어린 신부를 데려다 놓았다는 사실 또한 꽤 기묘하고 에로틱 하지 않았을까.
표제인 <피로 물든 방>은 이 <푸른 수염>의 이야기를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놓은 이야기로써, 동화로 읽을 때 막연히 기묘하고 으스스했던 분위기가 어디에서 근거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푸른 수염> 뿐만이 아니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던가 <빨간 모자>, <미녀와 야수>, <장화신은 고양이>, <백설공주>같은 동화들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 놓고, 조금더 노골적인 장르들을 원작의 으스스함에 더해낸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는 기묘한 날 것의 냄새가 난다.
향긋하지만은 않은, 조금 더 동물적인 살냄새라던가, 소녀의 생리혈같은 불안정하고 기묘한 기운이 모든 단편에 깔려있어, 전체적으로 몽환저이고 에로틱하면서도 으스스하고, 귀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꼭 기묘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면 딱 좋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단편들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요점을 확실히 알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편이고,(뒤에 해설보고나 조금 알수 있을 정도.) 분위기와 개성이 넘치다 못해 독자를 압도시켜버리는 필력 또한 인정하지만, 해설자의 말처럼 이것을 패미니즘과 연관지어 볼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이 단편들이 오히려 소녀가 처녀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동화들의 여주인공들이 "순수"와 "무지"에서 출발했으나, 환경에 의해, 아니 그보다는 자기자신의 변화에 의해, 욕망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순간, 더이상 순수한 소녀가 아니라 욕망을 가진 한 여자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이 단편집에서 그러한 과정들을 겪은 여자들은 기묘하게도 마녀같은 느낌을 풍긴다.
이 책의 작가 앤절라 카터는 "영문학의 마녀"라고도 불린다는데, 책을 읽다보면 왜 그녀에게 그런 별명이 주어졌는지 막연하게 동감하게 된다.
꽤 강렬한 소설이라서, 다소 난해한데도 불구하고 참 매력적이어서, 지루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기회가 닿으면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언젠가 읽어봐야겠다.

p.s.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은 반양장본보다는 양장본이 느낌이 훨씬 좋은듯 싶다.
앞으로는 양장본으로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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