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워칭 - 보디 랭귀지 연구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눈썰미가 없어서 곤란할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오해 받기 쉽고, 그 때문에 자책하기 일쑤다. 우선 주부로서 보자면, 냉장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른다. 겨자 소스나 케첩이 든 칸을 찾아내지 못하고, 캔맥주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나는 헤매고 금세 다른 식구들은 잘도 알아낸다. 딱 보면 아는데 왜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간단다.

 

 

  사람 보는 눈썰미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한, 몇 번 본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봤더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주 본 동네 병원 의사도 가운을 벗으면 알아보지 못한다.

 

 

  오늘도 그랬다. 독서클럽 한 회원이 오래 전에도 나와 같이 독서 모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상대방이 더 당황했다. 내 눈썰미 없음이 또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사람을 잘 기억해주는 것도 인간관계에 대한 예의가 될 수 있을 터인데, 같은 상황에서 한쪽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다른 쪽은 눈치조차 못 챈다면 그보다 민망하고 미안할 데가 있을까.

 

 

  이러니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다음에 저 사람을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강박 관념이 생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면서, 왜 기억하면 좋은 것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까? 지우고 싶은 것은 지우고 떠올리고 싶은 것만 남기는 마법의 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사람이 완벽하면 무슨 재미로 살 것인가? 질질 흘리고, 풀썩 주저앉고, 쩔쩔 매봐야 진정 산다는 것의 숭고함을 알게 된다. 완벽한 일상만 꾸린다면 세상이 제 위주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명민한 눈치 때문에 피곤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설픈 눈썰미가 가져다주는 자책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위안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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