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감독 김기덕 - 김기덕 바이오그래피 1996-2009
마르타 쿠를랏 지음, 조영학 옮김 / 가쎄(GASSE)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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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온도

 

  불편해야 진실에 가깝다. 따뜻하고, 다감하고, 온화한 거리엔 희망이 넘쳐나긴 한다. 하지만 그 희망은 대책 없기 일쑤고 진실과는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좋은 생각 가득한 월간 잡지를 읽는다고 세상이 좋은 것으로 넘실대는 게 아닌 것과 같다.

 

  삶의 실체는 언제나 도덕적, 미적 판단을 유보한 뒷골목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낭만성이나 연민의 눈길을 앞세우지 않은 채 그곳에 발 디뎌야 제대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쉽게 생의 뒷골목을 들여다 보려하지 않는다. 구차하고 불편부당한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면서까지 제 영혼을 구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파랑새를 찾는 틸틸과 미틸처럼 희망이란 아득한 꿈을 찾아 나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나은 삶이라고 은연중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피에타」에서도 여전히 세상은 희망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말한다. 너저분하고 적나라한 화면은 트라우마 깊은 감독 내면의 분신처럼 다가왔다. 관람자는 불쾌하고 불편한 화면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범한 눈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삶의 넌더리를 날 것으로 훑어대는 불친절한 카메라의 눈. 어쩌자고 감독은 저 비루하고 음산하고 가학적인 구원의 세계로 우리를 잡아끄는가.

 

 

  불편하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지난한 세월, 감독에게 뱄을 상처와 아픔의 철학이 세상을 향해 공명 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 나온 그가 말했다. ‘음침하다’는 세간의 그의 영화 선입견에 대해 ‘영화는 제가 바라본 세계이고, 제가 본 세상의 온도를 표현한 것’이라고.

 

 

  세상은 살아내는 자마다 다 다르고, 그 삶을 바라보는 온도 또한 각자 다르다. 평범하고 미온적인 온도보다 싸늘하고 냉정한 온도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건 언제나 김기덕이 말하는 방식이다. 불편해도 내가 김기덕 영화를 신뢰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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