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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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유현준.

딱 일 년 전에 빌렸다가 펼치지도 못하고 반납했다. 신문 기사에서 부동산 정책에 관해 유현준 교수가 인터뷰를 한 걸 보니 딱 마음에 들어서 다시 빌렸다. 이미 인터뷰 보고 책 빌렸다 그저 그랬던 경험 (강준만 덕에) 해 놓고도 또 같은 짓을 반복하는 나란 인간. 그래도 오랜만에 책읽기 시동 걸고 술술 읽혀서 다 읽은 책이다.
건축과 공간에 대해 지식과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교양서였다. 대신 깊이와 전문성은 떨어지고, 이거 정말 학문적으로 과학적으로 맞는 소리냐 싶게 전에 텔레비전에서, 영화에서 봤어, 하는 사례들이 등장했다. 재미는 있어도 신뢰는 살짝 떨어진달까. 그리고 저자 자신을 칭할 때 필자는- 하는 게 거슬렸다. 그냥 나는, 하면 안 되나. 쓰는 자아에 대해 너무 의식하는 것 같아서 필자는- 하는 말을 보면 왠지 웃기다. 그래서 그럭저럭 쓴 글인데도 그런 주어에서 자꾸 깨네, 했다. 텔레비전을 안 봐서 잘 몰랐는데 저자가 알쓸신잡에도 나온 모양이다. 유시민과 정재승, 하는 챕터에서 전작하고도 빠이빠이 한 선생님 얘기 나오나 하고 긴장했는데 그냥 낚시같은 제목이었다. 나도 봤던 비트코인 토론 장면을 살짝 인용한 거였는데 굳이 이름을 끄집어 낼 필요도 없는 별 내용 없는 부분ㅋㅋ
박원순 서울역 7017이랑 오세훈 한강 르네상스 언급되는 부분은 이제사 읽으니 또 기분이 묘했다. 과거의 사람들은 (저자 포함 나도 포함) 지금이 이럴 줄 몰랐겠지. 둘은 피라미드 만리장성 남기듯 도시에 자신을 새기고 싶었을까. 물 위에든 고가 위에든 뭔가 둥둥 띄우고들 싶었을까.
겨우 인테리어에나 신경 쓸만큼 건축에 무심한 도시인에게 도시 구석구석 다양한 공간을 다르게 볼 눈을 틔워준 점은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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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9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10 0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5-10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분 요즘 책 많이 내시는 것 같아요.알쓸신잡 덕분인 것 같은데요ㅎㅎ
열반인님 정리는 좀 되셨어요?조금 여유가 생기셨나봐요:)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1:01   좋아요 3 | URL
네 저는 티비 나온 줄도 모르다가 옆 사람한테 이야기하니 더 잘 알더라구요 ㅎㅎㅎ옷장은 열어볼 엄두를 못 내고 보이는 곳만 치우고 다시 책을 폈어요 ㅎㅎ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진님!

syo 2021-05-10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자는‘ 진짜 별로예요. 🤦 그거 너무 권위적으로 보이고 후지다- 라는 인식이 좀 유행해서 자동으로 사장되면 좋겠다 싶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5-10 16:06   좋아요 2 | URL
제가 이 책의 필자는-이 별로라고 싶었던 게 어쩌면 전에 syo님이 그거 별로야-해서 맞아맞아 하고 설득되어 그런가 싶기도 해요 ㅎㅎㅎ

하나 2021-05-11 19:29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어떻게 저렇게 기계처럼 신간을 쓸까 싶은 분들 있었는데, 걍 논문쓰듯 써서 그런 거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5-11 19:30   좋아요 1 | URL
저는 논문쓰듯 소설을 써내는 기계가 되고 싶네요 ㅋㅋ논문도 안 써 본 놈 올림 ㅋㅋ

하나 2021-05-11 19:32   좋아요 2 | URL
저도 안 쉬운데 성격상 비교적 쉬운놈들이 있는 거 같다는 느낌적 느낌(소설은 안됨ㅋㅋ)
 
에콰도르 라 파파야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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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날인데, 시댁 식구들이 오신다. 대충 배달음식 시켜 먹겠다는 말에 엄마는 며칠 전부터 장을 봐서 한우로 불고기랑 미역국이랑 잡채랑 이런저런 반찬을 아침 일찍부터 잔뜩 해 놓고 외할머니댁에 가셨다. 불효의 돌을 괴서 다른 어디에다 효도를 한다. 내가 음식을 부지런히 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엄마 하지 마, 다음부턴 하지 마, 해도 먹고 살려면 해야지, 이런 때나 해 먹지, 하고 근 십 년을 손님맞이마다 음식 하느라 바쁘다. 누군가의 노동과 시간, 에너지를 갈아 넣어야만 맛있는 집밥 잔치 음식을 먹는다. 자본을 투입해도 집에서 만든 맛은 안 난다고 굳이 자기를 갈아 넣는 삶이란. 사랑일까 길들여짐일까 하지 마, 해도 굳이 하는 마음이란. 
 분주한 주방 옆에서 작은꼬맹이 잡채랑 불고기랑 비벼 밥 먹이며 이틀 전에 볶았다는 커피나 내리는 어버이날의 불효녀. 애가 애를 낳아 어울리지 않게 또다른 어버이. 큰꼬맹이가 색종이 여러 장을 들여 새빨갛고 분홍분홍한 카네이션을 접어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뒷면에는 세계 최고의 엄마께, 아빠께, 할머니께, 라고 적혀 있다. 과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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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08 12: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기를 갈아 넣는 대표적인 메뉴 중 하나인 잡채 ㅠㅇㅠ 친정엄마의 사랑이란..에고고 할많하않입니다. ㅋㅋ다만 (또르르)

반유행열반인 2021-05-08 13:27   좋아요 4 | URL
늘 하는 건 안 어렵다 하시면서도 골이 난 듯 음식 하시는 거 보면 그냥 하지 말지 싶은 ㅋㅋㅋ

파이버 2021-05-08 12: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불고기 잡채 미역국 다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들이네요ㅜㅜ 어머님의 마음이란...
어버이날 까먹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집에 전화해야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8 13:24   좋아요 4 | URL
그래서 아침에도 맛있게 먹고 조금 이따가 식구들 오시면 또 맛있게 먹을 예정입니다 ㅋㅋ

페넬로페 2021-05-08 13: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두가지 생각이 떠오르네요~~
친정 엄마는 딸의 시댁식구를 위한 요리를 해주는 사람인가?(살짝 열받음)
난 여태껏 잡채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데 어떡하지?(살짝 걱정됨)
근데 요즘 보니 저보다는 딸아이가 훨씬 요리를 잘하더라고요(안도의 한숨)
어쨌거나 저도 나중에 딸아이를 도와주고 있을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5-08 13:26   좋아요 4 | URL
제가 글을 좀 오해하게 썼나 싶은데 늘 맞이 하는 쪽에서 음식 마련해서 반대로 제가 시댁 가면 음식 하나 안 하고 실컷 얻어 먹고 설거지 한 번 정도 돕네요 ㅋㅋㅋ그런데 우리집 오실 땐 제가 제대로 못하니 굳이 엄마가 나서시고 결론은 제가 불효녀인 걸로 ㅋㅋ 그러면서 제 딸에게는 일찍 음식 하는 법을 익히렴 하고 나몰라라 하는 중이네요...

페넬로페 2021-05-08 13:30   좋아요 4 | URL
에고 오해는요~~
제가 잘 알죠^^
지금은 못하시지만 울 엄마는 저의 집에 올때마다 음식 해주시고~~저는 시댁가면 형님이 완벽히 해 주시는것에 숟가락만 얹고^^요즘 저의 시댁분위기는 남자들이 설겆이하는 분위기라 참 제가 편하게 살고 있어요~~ㅋㅋ

하나 2021-05-09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아! 하나와따!!

반유행열반인 2021-05-11 17:24   좋아요 1 | URL
아 나 왜 이 댓글 이제 봤어 ㅋㅋㅋ웃음 이틀 버퍼링 남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11 17:25   좋아요 1 | URL
막 나름 짜잔! 했을 건데 하나무룩했을 거 같다 ㅋㅋㅋ미안해요 ㅋㅋㅋㅋ

하나 2021-05-11 19:25   좋아요 1 | URL
회심의 시도긴 했는데 더 재밌는 걸로 받아주셔서 서운함 삭 잊었어여 ㅋㅋㅋㅋㅋㅋ

하나 2021-05-0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잡채 맛있겠다... ˝불효의 돌을 괴서 다른 어디에다 효도를 한다.˝ 이 와중에 문학적이셔... 저는 어제 아침 일찍 용돈 부치면서 이거는 인영이(엄마 이름ㅋㅋㅋ)만 쓰도록 해... 이랬더니 개조아하시던데??? ㅋㅋㅋㅋㅋ 이걸로 외할머니랑 맛있는 거 먹으면 안돼? 이러시길래... 인영이 엄마는 인영이가 챙기구... 이거는 인영이만 쓰란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랬더니 완전 넘어가심... 세계 최고의 엄마라고 해봐야게따 내년에는 (금방 배움)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28   좋아요 1 | URL
세계 최고의 는 이미 있으니 우주 최고로 갑시다 ㅎㅎㅎ우주 최고의 인영이(우리 삼촌 이름이네 혹시 호랭이띠세여 어머님이? ㅎㅎ)

하나 2021-05-09 21:35   좋아요 1 | URL
우주 최고 좋네여.. 호랭이는 아니고(가끔 화낼 때 그러하긴 함) 아들이 귀한 집이라 아들 낳으라고 남자 이름 지은 거라 영희 선희를 피해감... 아들 낳기 직전 이모 이름은 미남인데 요즘 보면 개간지나는 거 같아요 ㅋㅋㅋ
 

사월의 독서는 정말 부진해서 만화책 넣고도 네다섯 권만 완독했다. 4월15일에 살던 집을 나왔고, 4월24일에 새집으로 이사했다.
인테리어는 직영공사로, 인테리어 업체 없이 알아서 필요한 공정마다 섭외하고 일정짜고 재료도 사고 감독하는 식으로 했다. (요즘엔 이런 걸 반셀프 인테리어라고 한다더라…) 직장 나가면서 아침 저녁으로 한 번 씩 드나들어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크게 구멍나거나 일정 밀리지 않고 아흐레 만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집공사를 마쳤다.
(인테리어 사이트가 아니니 집 사진은 간략히 투척 ㅋㅋ)

엄마는 백삼십 들고 가출했던 십오년 전에 비하면 (빚은 졌어도 천 배 가까운 곳에 살게 되었으니) 출세했네, 했다. 정말 그런가, 그렇네. 사고 싶은 책 잔뜩 사고 읽지도 않은 채로 쟁여둘 공간을 가졌으니. 붙박이장롱 하나 맞춘 거 빼면 가구도 가전도 그대로 가져와서 예전 집과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7평 남짓 커진 공간은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고 낙낙해진 느낌이다. 3층에서 15층으로 승천? 남서향에서 정남향으로 승진? 한 것도 역시나 출세다. 창밖으로 옹벽과 메타세콰이어가 보이다가 이제는 앞동 피뢰침이랑 비행기 지나가는 걸 보면 어리둥절하다.

보관 이사를 해서 지난 주에 입주하는데, 몇 년 전 이사 잘해주신 업체를 다시 섭외했는데 문제는 나온 날과 들어온 날 책 담당자(나름 이사업계의 일꾼분들 분업이 철저하다)가 바뀌었다. 훨씬 할아버지로. 옆에 주방 담당자 분이 ‘책이 하도 많아서 공부 좀 하셔야겠소’ 농치길래 무슨 소린가 했는데 아무래도 책 정리를 처음 해 보신 분 같았다…
책짐 나르는 분들의 얼굴은 뭐랄까 농사 안 짓는 사람이 거름 지게 지는 듯한 고단하고 지긋지긋한 표정을 보는 듯했다.
다른 짐은 별것 없어 금세 정리가 되었는데 책은 자꾸 책이 먼저 오고 책장들이 순차로 늦게 올라와서 정리가 늦었다.
책 포장한 분이 분명 테이프로 책장 위치와 좌우상하 다 표시해 두셨는데, (나도 빤히 보이는데) 오늘의 대타 책담당님은 한참 멀거니 어쩔 줄 모르시다가 자꾸 엉뚱한데 책을 마구 꽂으셨다. 어차피 정리 다시 해야지, 하고 포기하고 적당히 꽂아주세요 했는데… 이사 마치고 나니 책짐의 상황이 처참했다. 다 꽂지 못한 책을 이방저방 책탑으로 쌓아두고 가셨는데 ㅋㅋㅋ책장은 왜 다 듬성듬성 비어있어…진짜 개빡쳤다.

이사가 끝나도 끝난 게 아니라 또 일주일 내내 물건 자리 잡고, 치우고, 버리고, 아직 옷 정리는 손도 못댔고 주말 되자마자 책부터 제자리 잡기 했다. 직접 나르며 온 집안 책들을 다 뒤집어 엎고 보니… 이사해주신 분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빌어먹을 똥같은 폐지들, 왜 끝이 없어, 다 버려버릴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일요일 오후에야 책은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워낙 많이 버리고 자리 모자랄까 봐 걱정된다고 일부는 막 이중삼중 꽂아 처박아버렸더니 책장에 휑덩그러니 자리가 많이 남아 아싸 이제 새 책 사도 둘 곳 생겼다…하는 말종이여…

거실 한 벽은 당연히 책

철학책들은 제일 구석에 따로 처박음

들어오는 입구는 꼬마책

안방 책상 위에도 책

그 옆에도 책

화장대 옆은 장식장 같은데 책장 아닐텐데 하여간에 책

방2도 만화책 이중으로 꽂은 책장. 이 책장만 내가 정리 안 했는데 진짜 각잡은 거 봐…

만화책장 옆에도 기역자로 책장

방과 방 사이에도 책장

방3에는 딸래미책 (이 방 발코니에도 책장 세 개나 되지만 오래된 잡동사니 책 다 처박아놔서 지저분해서 사진 안 찍음…ㅋㅋㅋ)

주방에도 당연히 책장

식탁 뒤에도 책장

엄마가 이사오시면 엄마방과 거실에 책장 두 개 더 늘 예정…

이제 그만 쌓고 좀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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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5-09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신림동 열반 투어 해본 입장에서 엄청난 출세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여!! ㅋㅋㅋㅋ 조만간 또 놀러가께여!!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27   좋아요 1 | URL
꼭 놀러오세여 ㅋㅋㅋ신림동 투어 즐거웠는데 ㅋㅋㅋ어디갔다 이제 왔담 ㅋㅋㅋ

하나 2021-05-09 21:30   좋아요 1 | URL
진짜로~ 일찍 퇴근하는 날 알려주면 바로 가께열 ㅋㅋㅋ 이제 약간 급한 불 꺼서 사회성 있는 자아 꺼낼 수 있어서 왔어열 ㅋㅋㅋㅋㅋ 보고 싶었지만 내 동생이 내 방문 앞에 금줄 친댔다.... ㅋㅋㅋㅋㅋㅋㅋ 지만 예술하나? <<<<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32   좋아요 1 | URL
아 뭔가 쑥과 마늘만 먹고 제대로 매운 거 만들었을 거 같은 기대감 ㅋㅋ저는 책도 쥐콩 만큼 읽고 아무 것도 안 썼대여!!! 하나님께 막 이름!!! 열반이 안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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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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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8 패티 스미스.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데,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 소식을 듣고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자기 삶을 갈아 반짝이 가루랑 섞어 예쁜 뭔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면, 그걸 보여주고 싶어했다면, 암암 가야지. 두 남자가 왕관을 쓰고 포옹한 채 춤추는 듯 꿈꾸는 듯한 모습을 검색으로 보고 나니 그 실물 사진을 꼭 보고 싶어졌다. 이제 시작되는 봄날이었고 햇살도 좋고 맑은 날이었다.(벌써 너무 오래 전이 되어 버렸다.) 조퇴하고 도심으로 나가 사진전을 보는 일은 뭔가 꿈 같은 일이지만 이루는 게 어렵지는 않은 꿈이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흑백이었고, 지팡이에 달린 해골장식과 메이플소프의 얼굴이 닮아 보였다. 고통과 추함이 아름다움과 닿는 지점을 여러 사진을 통해 느끼는 일은 묘했다. 마른 몸의 누드 사진 속 주인공은 패티 스미스라고 했다. 사진을 찍은 작가와 음악가의 숨은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책을 검색하다가 패티 스미스가 써낸 회고록을 발견하고 냅다 사서 읽었다.
책을 읽다가 패티 스미스의 노래 몇 곡을 찾아 들었는데, 으응, 내 취향은 아니었다. 굳이 그 시절 노래를 들으라면 너무너무 잘 부르는 재니스 조플린이 있잖아. 이 책에도 패티가 재니스 조플린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패티는 짐모리슨 공연도 가고, 앤디 워홀도 보고, 지미 헨드릭스도 만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공연도 보고, 하여간에 내가 고딩 때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좋아한다고 멋도 모르고 트로트 듣듯 따라 듣던 노래를 만든 수많은 이들을 직접 만난 이야기를 잔뜩 풀어 놓았다.
로버트와 패티가 젊은 시절 창작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함께 지낸 날들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죽은 친구에 대해 그리워하고 로버트의 부탁대로 쓰게 된 이야기니 미화된 부분 많긴 하겠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 연인이 그렇듯 로버트도 가끔은 좋고 대부분은 개새끼가 아니었을지) 그래도 덤덤하게 좋았던 일 위주로 적을 수 있는 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라서 가능했을 것 같다.
패티가 로버트의 동성애 또는 양성애 성향을 알고 많이 충격 받는 장면에서 나는 그리 놀랄 일인가 싶었다. 워낙 자존감이 낮다보니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랑의 경계가 너무 커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어느날 내 사랑이 나 사실 남자도 좋아해, 해도 아 그러냐, 할 것 같은 기분. 그렇지만 질투는 느끼겠지. 상상해보니 남자가 내 남자 빼앗아가면 빡칠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패티와 로버트는 연인이 아니게 된 이후 다른 연인과 잘 지내면서도 계속 친밀했고 로버트의 생애 말까지 교류하며 지낸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어느 순간에 있다는 건 상당히 부러운 일이었다.
타버린 검은색처럼 강렬한 사진들을 남기고 활활 불타 사라진 로버트를 보면 예술 같은 거 아름다움 같은 거 너무 캐고 다니지 말고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까, 사랑이나 실컷하다 늙어 죽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밑줄 긋기
-우린 서로 배고프지 않은 척하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내가 보석 상자를 여는 부분에서 로버트는 항상 울부짖듯 말했다. “패티, 안 돼……”
우린 서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언제나 나는 착한 애인 척하는 못된 애였고, 로버트는 못된 척하는 착한 애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했다. 우리는 커가며 착한 애였다 못된 애였다를 계속 반복했고 결국 내면의 양면성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됐다. 우린 둘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면세계를 지녔던 것이다. (21)

-로버트의 기도는 그저 꿈이었다. 우리 둘 다 로버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긴 했지만 그는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스스로 영혼을 팔고 싶어했다. 나는 숨겨진 채로 소중히 간직되길 바랐지만.
나중에 그가 말했다. 교회가 그를 신에게로 이끌었고, LSD가 그를 우주로 이끌었다고. 예술은 그를 악의 세계로 이끌었고, 섹스는 그가 계속 악마와 함께 지내도록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87)

-“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그가 다시 이 말을 했다. 로버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공간이 멈춘 듯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139)

-어린 시절 가게 쇼윈도를 지나치며 어머니에게 왜 저 유리창을 그냥 발로 차 깨부수면 안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고 그런 규칙을 지켜야만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 일정한 규칙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파괴적 충동을 억제했고, 그런 에너지를 창조적인 예술 행위로 바꾸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정해진 규칙에 대한 반항심은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로버트에게 어린 시절 쇼윈도를 깨부수고 싶었던 경험을 얘기했더니 나를 놀리며 말했다.
“패티! 나쁜 아이였구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진 않았다.
반대로 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은 달랐다. 그에겐 어린 시절 그 자그마한 발로 쇼윈도를 후려 차는 장면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더니 그가 말했다. “차버려, 패티 리, 내가 보석으로 풀어줄게.” 샘과 함께 있으면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의 면면을 속속들이 이해해주었다. (231)

-로버트는 자기 정체성을 곧잘 악마라고 규정짓곤 했는데, 어느 정도는 농담 삼아 한 말이고 어느 정도는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려고 그랬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가 가죽 코드피스를 차는 걸 바라보곤 했다. 그는 분명 사탄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카타르시스를 사랑하는 디오니소스에 가까웠다.
“특별해 보이려고 악마 흉내를 낼 필요는 없어. 그러지 않아도 넌 특별해. 예술가는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거야.”
로버트는 다가와 나를 안았다. 코드피스에 눌렸다. “로버트, 찔리거든? 못됐어.”
“말했잖아, 나 못됐다고.”그가 윙크하며 말했다. (248-249)

.. 사진은 내가 찍은 거 아니고 다른 관람객이 찍은 거 퍼 온 거...전시회 가서 한 장도 안 찍고 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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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04-19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메이플소프란 영화를 볼까말까 했거든요..열반인님 글 읽으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금 찾아보니 청불이네요ㅎㅎ 은근 기대중 >_<

반유행열반인 2021-04-19 18:53   좋아요 1 | URL
영화도 있었군요 ㅋㅋㅋ작가 생애나 성적 지향 취향 보면 청불일 것 같긴 하네요 ㅋㅋㅋ

han22598 2021-04-29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반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 그런데, 저분들은 왜 왕관을 썼을까요? 서로가 서로의 빛나는 면류관? 머..이런 의도일까요? (개무식자의 해석 ㅎ)

반유행열반인 2021-04-30 11:06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느낌 있더라구요. (한 편으론 저들 모두 늙을 수 있었을까 괜한 걱정) 자기 둘만의 왕국에선 퀸앤킹 하고 행복한 거 아닐지, 아님 오늘 너랑 있으니 태어난 날 우리 둘다 생일 이런 건지 사진 찍은 이가 일찍 돌아가셔서 물을 수도 없네요 ㅎㅎㅎ해석은 남은 우리 몫이지요 개무식이라니요 ㅋㅋㅋ고견이십니다.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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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되새기며 미안해하고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빌고 세상이 나아지도록 바라는 마음 밖에 보탤 게 없다. 살아남은 분들이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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