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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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8 패티 스미스.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데,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 소식을 듣고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자기 삶을 갈아 반짝이 가루랑 섞어 예쁜 뭔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면, 그걸 보여주고 싶어했다면, 암암 가야지. 두 남자가 왕관을 쓰고 포옹한 채 춤추는 듯 꿈꾸는 듯한 모습을 검색으로 보고 나니 그 실물 사진을 꼭 보고 싶어졌다. 이제 시작되는 봄날이었고 햇살도 좋고 맑은 날이었다.(벌써 너무 오래 전이 되어 버렸다.) 조퇴하고 도심으로 나가 사진전을 보는 일은 뭔가 꿈 같은 일이지만 이루는 게 어렵지는 않은 꿈이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흑백이었고, 지팡이에 달린 해골장식과 메이플소프의 얼굴이 닮아 보였다. 고통과 추함이 아름다움과 닿는 지점을 여러 사진을 통해 느끼는 일은 묘했다. 마른 몸의 누드 사진 속 주인공은 패티 스미스라고 했다. 사진을 찍은 작가와 음악가의 숨은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책을 검색하다가 패티 스미스가 써낸 회고록을 발견하고 냅다 사서 읽었다.
책을 읽다가 패티 스미스의 노래 몇 곡을 찾아 들었는데, 으응, 내 취향은 아니었다. 굳이 그 시절 노래를 들으라면 너무너무 잘 부르는 재니스 조플린이 있잖아. 이 책에도 패티가 재니스 조플린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패티는 짐모리슨 공연도 가고, 앤디 워홀도 보고, 지미 헨드릭스도 만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공연도 보고, 하여간에 내가 고딩 때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좋아한다고 멋도 모르고 트로트 듣듯 따라 듣던 노래를 만든 수많은 이들을 직접 만난 이야기를 잔뜩 풀어 놓았다.
로버트와 패티가 젊은 시절 창작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함께 지낸 날들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죽은 친구에 대해 그리워하고 로버트의 부탁대로 쓰게 된 이야기니 미화된 부분 많긴 하겠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 연인이 그렇듯 로버트도 가끔은 좋고 대부분은 개새끼가 아니었을지) 그래도 덤덤하게 좋았던 일 위주로 적을 수 있는 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라서 가능했을 것 같다.
패티가 로버트의 동성애 또는 양성애 성향을 알고 많이 충격 받는 장면에서 나는 그리 놀랄 일인가 싶었다. 워낙 자존감이 낮다보니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랑의 경계가 너무 커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어느날 내 사랑이 나 사실 남자도 좋아해, 해도 아 그러냐, 할 것 같은 기분. 그렇지만 질투는 느끼겠지. 상상해보니 남자가 내 남자 빼앗아가면 빡칠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패티와 로버트는 연인이 아니게 된 이후 다른 연인과 잘 지내면서도 계속 친밀했고 로버트의 생애 말까지 교류하며 지낸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어느 순간에 있다는 건 상당히 부러운 일이었다.
타버린 검은색처럼 강렬한 사진들을 남기고 활활 불타 사라진 로버트를 보면 예술 같은 거 아름다움 같은 거 너무 캐고 다니지 말고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까, 사랑이나 실컷하다 늙어 죽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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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서로 배고프지 않은 척하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내가 보석 상자를 여는 부분에서 로버트는 항상 울부짖듯 말했다. “패티, 안 돼……”
우린 서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언제나 나는 착한 애인 척하는 못된 애였고, 로버트는 못된 척하는 착한 애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했다. 우리는 커가며 착한 애였다 못된 애였다를 계속 반복했고 결국 내면의 양면성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됐다. 우린 둘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면세계를 지녔던 것이다. (21)

-로버트의 기도는 그저 꿈이었다. 우리 둘 다 로버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긴 했지만 그는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스스로 영혼을 팔고 싶어했다. 나는 숨겨진 채로 소중히 간직되길 바랐지만.
나중에 그가 말했다. 교회가 그를 신에게로 이끌었고, LSD가 그를 우주로 이끌었다고. 예술은 그를 악의 세계로 이끌었고, 섹스는 그가 계속 악마와 함께 지내도록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87)

-“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그가 다시 이 말을 했다. 로버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공간이 멈춘 듯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139)

-어린 시절 가게 쇼윈도를 지나치며 어머니에게 왜 저 유리창을 그냥 발로 차 깨부수면 안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고 그런 규칙을 지켜야만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 일정한 규칙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파괴적 충동을 억제했고, 그런 에너지를 창조적인 예술 행위로 바꾸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정해진 규칙에 대한 반항심은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로버트에게 어린 시절 쇼윈도를 깨부수고 싶었던 경험을 얘기했더니 나를 놀리며 말했다.
“패티! 나쁜 아이였구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진 않았다.
반대로 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은 달랐다. 그에겐 어린 시절 그 자그마한 발로 쇼윈도를 후려 차는 장면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더니 그가 말했다. “차버려, 패티 리, 내가 보석으로 풀어줄게.” 샘과 함께 있으면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의 면면을 속속들이 이해해주었다. (231)

-로버트는 자기 정체성을 곧잘 악마라고 규정짓곤 했는데, 어느 정도는 농담 삼아 한 말이고 어느 정도는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려고 그랬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가 가죽 코드피스를 차는 걸 바라보곤 했다. 그는 분명 사탄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카타르시스를 사랑하는 디오니소스에 가까웠다.
“특별해 보이려고 악마 흉내를 낼 필요는 없어. 그러지 않아도 넌 특별해. 예술가는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거야.”
로버트는 다가와 나를 안았다. 코드피스에 눌렸다. “로버트, 찔리거든? 못됐어.”
“말했잖아, 나 못됐다고.”그가 윙크하며 말했다. (248-249)

.. 사진은 내가 찍은 거 아니고 다른 관람객이 찍은 거 퍼 온 거...전시회 가서 한 장도 안 찍고 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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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04-19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메이플소프란 영화를 볼까말까 했거든요..열반인님 글 읽으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금 찾아보니 청불이네요ㅎㅎ 은근 기대중 >_<

반유행열반인 2021-04-19 18:53   좋아요 1 | URL
영화도 있었군요 ㅋㅋㅋ작가 생애나 성적 지향 취향 보면 청불일 것 같긴 하네요 ㅋㅋㅋ

han22598 2021-04-29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반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 그런데, 저분들은 왜 왕관을 썼을까요? 서로가 서로의 빛나는 면류관? 머..이런 의도일까요? (개무식자의 해석 ㅎ)

반유행열반인 2021-04-30 11:06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느낌 있더라구요. (한 편으론 저들 모두 늙을 수 있었을까 괜한 걱정) 자기 둘만의 왕국에선 퀸앤킹 하고 행복한 거 아닐지, 아님 오늘 너랑 있으니 태어난 날 우리 둘다 생일 이런 건지 사진 찍은 이가 일찍 돌아가셔서 물을 수도 없네요 ㅎㅎㅎ해석은 남은 우리 몫이지요 개무식이라니요 ㅋㅋㅋ고견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