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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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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8 패티 스미스.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데,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 전시회 소식을 듣고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자기 삶을 갈아 반짝이 가루랑 섞어 예쁜 뭔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면, 그걸 보여주고 싶어했다면, 암암 가야지. 두 남자가 왕관을 쓰고 포옹한 채 춤추는 듯 꿈꾸는 듯한 모습을 검색으로 보고 나니 그 실물 사진을 꼭 보고 싶어졌다. 이제 시작되는 봄날이었고 햇살도 좋고 맑은 날이었다.(벌써 너무 오래 전이 되어 버렸다.) 조퇴하고 도심으로 나가 사진전을 보는 일은 뭔가 꿈 같은 일이지만 이루는 게 어렵지는 않은 꿈이었다. 대부분의 사진은 흑백이었고, 지팡이에 달린 해골장식과 메이플소프의 얼굴이 닮아 보였다. 고통과 추함이 아름다움과 닿는 지점을 여러 사진을 통해 느끼는 일은 묘했다. 마른 몸의 누드 사진 속 주인공은 패티 스미스라고 했다. 사진을 찍은 작가와 음악가의 숨은 이야기가 더 궁금해서 책을 검색하다가 패티 스미스가 써낸 회고록을 발견하고 냅다 사서 읽었다.
책을 읽다가 패티 스미스의 노래 몇 곡을 찾아 들었는데, 으응, 내 취향은 아니었다. 굳이 그 시절 노래를 들으라면 너무너무 잘 부르는 재니스 조플린이 있잖아. 이 책에도 패티가 재니스 조플린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패티는 짐모리슨 공연도 가고, 앤디 워홀도 보고, 지미 헨드릭스도 만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 공연도 보고, 하여간에 내가 고딩 때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좋아한다고 멋도 모르고 트로트 듣듯 따라 듣던 노래를 만든 수많은 이들을 직접 만난 이야기를 잔뜩 풀어 놓았다.
로버트와 패티가 젊은 시절 창작과 예술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며 함께 지낸 날들을 지켜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죽은 친구에 대해 그리워하고 로버트의 부탁대로 쓰게 된 이야기니 미화된 부분 많긴 하겠지만, (사실 많은 예술가 연인이 그렇듯 로버트도 가끔은 좋고 대부분은 개새끼가 아니었을지) 그래도 덤덤하게 좋았던 일 위주로 적을 수 있는 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라서 가능했을 것 같다.
패티가 로버트의 동성애 또는 양성애 성향을 알고 많이 충격 받는 장면에서 나는 그리 놀랄 일인가 싶었다. 워낙 자존감이 낮다보니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랑의 경계가 너무 커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어느날 내 사랑이 나 사실 남자도 좋아해, 해도 아 그러냐, 할 것 같은 기분. 그렇지만 질투는 느끼겠지. 상상해보니 남자가 내 남자 빼앗아가면 빡칠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패티와 로버트는 연인이 아니게 된 이후 다른 연인과 잘 지내면서도 계속 친밀했고 로버트의 생애 말까지 교류하며 지낸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어느 순간에 있다는 건 상당히 부러운 일이었다.
타버린 검은색처럼 강렬한 사진들을 남기고 활활 불타 사라진 로버트를 보면 예술 같은 거 아름다움 같은 거 너무 캐고 다니지 말고 그냥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까, 사랑이나 실컷하다 늙어 죽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밑줄 긋기
-우린 서로 배고프지 않은 척하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내가 보석 상자를 여는 부분에서 로버트는 항상 울부짖듯 말했다. “패티, 안 돼……”
우린 서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언제나 나는 착한 애인 척하는 못된 애였고, 로버트는 못된 척하는 착한 애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곤 했다. 우리는 커가며 착한 애였다 못된 애였다를 계속 반복했고 결국 내면의 양면성을 인정하게 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됐다. 우린 둘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면세계를 지녔던 것이다. (21)

-로버트의 기도는 그저 꿈이었다. 우리 둘 다 로버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긴 했지만 그는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스스로 영혼을 팔고 싶어했다. 나는 숨겨진 채로 소중히 간직되길 바랐지만.
나중에 그가 말했다. 교회가 그를 신에게로 이끌었고, LSD가 그를 우주로 이끌었다고. 예술은 그를 악의 세계로 이끌었고, 섹스는 그가 계속 악마와 함께 지내도록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87)

-“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그가 다시 이 말을 했다. 로버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공간이 멈춘 듯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139)

-어린 시절 가게 쇼윈도를 지나치며 어머니에게 왜 저 유리창을 그냥 발로 차 깨부수면 안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암묵적인 규칙이 존재하고 그런 규칙을 지켜야만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모든 것이 정해져 있어, 일정한 규칙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 안에 존재하는 파괴적 충동을 억제했고, 그런 에너지를 창조적인 예술 행위로 바꾸려 애썼다. 하지만 여전히 정해진 규칙에 대한 반항심은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로버트에게 어린 시절 쇼윈도를 깨부수고 싶었던 경험을 얘기했더니 나를 놀리며 말했다.
“패티! 나쁜 아이였구나.”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진 않았다.
반대로 샘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반응은 달랐다. 그에겐 어린 시절 그 자그마한 발로 쇼윈도를 후려 차는 장면을 상상하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더니 그가 말했다. “차버려, 패티 리, 내가 보석으로 풀어줄게.” 샘과 함께 있으면 온전한 나로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자신의 면면을 속속들이 이해해주었다. (231)

-로버트는 자기 정체성을 곧잘 악마라고 규정짓곤 했는데, 어느 정도는 농담 삼아 한 말이고 어느 정도는 남들보다 특별해 보이려고 그랬다. 나는 가만히 앉아 그가 가죽 코드피스를 차는 걸 바라보곤 했다. 그는 분명 사탄보다는 자유분방함과 카타르시스를 사랑하는 디오니소스에 가까웠다.
“특별해 보이려고 악마 흉내를 낼 필요는 없어. 그러지 않아도 넌 특별해. 예술가는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거야.”
로버트는 다가와 나를 안았다. 코드피스에 눌렸다. “로버트, 찔리거든? 못됐어.”
“말했잖아, 나 못됐다고.”그가 윙크하며 말했다. (248-249)

.. 사진은 내가 찍은 거 아니고 다른 관람객이 찍은 거 퍼 온 거...전시회 가서 한 장도 안 찍고 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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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1-04-19 1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메이플소프란 영화를 볼까말까 했거든요..열반인님 글 읽으니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금 찾아보니 청불이네요ㅎㅎ 은근 기대중 >_<

반유행열반인 2021-04-19 18:53   좋아요 1 | URL
영화도 있었군요 ㅋㅋㅋ작가 생애나 성적 지향 취향 보면 청불일 것 같긴 하네요 ㅋㅋㅋ

han22598 2021-04-29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반님 덕분에 알게 되네요 ^^ 그런데, 저분들은 왜 왕관을 썼을까요? 서로가 서로의 빛나는 면류관? 머..이런 의도일까요? (개무식자의 해석 ㅎ)

반유행열반인 2021-04-30 11:06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처음 보았는데 느낌 있더라구요. (한 편으론 저들 모두 늙을 수 있었을까 괜한 걱정) 자기 둘만의 왕국에선 퀸앤킹 하고 행복한 거 아닐지, 아님 오늘 너랑 있으니 태어난 날 우리 둘다 생일 이런 건지 사진 찍은 이가 일찍 돌아가셔서 물을 수도 없네요 ㅎㅎㅎ해석은 남은 우리 몫이지요 개무식이라니요 ㅋㅋㅋ고견이십니다.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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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되새기며 미안해하고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빌고 세상이 나아지도록 바라는 마음 밖에 보탤 게 없다. 살아남은 분들이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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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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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김홍모.
2014년에는 너무나 무감하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삼 년 뒤에야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차례로 읽었다. 뒤늦게 슬픔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돌아가신 분들께도 너무 미안하고 맘 아프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통과 고통이 아직도 많아서 침몰 당시의 무심함이 내내 죄스러웠다. 만화 펀딩 소식을 듣고 책을 구매해서 받아 보았다. 그렇게 기억하고 이런 이야기라도 보면서 되새기며 미안해하고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빌고 세상이 나아지도록 바라는 마음 밖에 보탤 게 없다. 살아남은 분들이 더 건강하게 더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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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4-14 07: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014년 저도 그때...내 땅굴에 파뭍혀서 헤매고 있을 때라서.. 그저 지나쳐 버리고...그래서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늘 남아 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4-14 15:45   좋아요 3 | URL
네 저도 비슷한 땅굴의 시기였나 봐요. 뒤늦게 미안하네요.

새파랑 2021-04-14 07: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그때의 안타까운 기억이 나네요 ㅜㅜ 살아남으신 분과 가족분들의 고통이 아직도 얼마나 크실지.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4-14 15:47   좋아요 3 | URL
정말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고 그러기 위해 뭘 더 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계절이네요

Yeagene 2021-04-14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절대로 잊어선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이렇게 관련된 책과 영화가 계속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반유행열반인 2021-04-14 15:48   좋아요 3 | URL
네 이렇게 책이나 컨텐츠 같은 게 계속 나와야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었구요 ㅠㅠ

붕붕툐툐 2021-04-14 2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구~ 또 그날이 다가옵니다.. 이런 펀딩이 있는 줄 몰랐네요. 함께 읽고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4-16 19:00   좋아요 1 | URL
구할 수 있었는데 아무 것도 못한 죄책감과 무기력감이 너무 큰 것 같아요. 뒤늦게나마 알고 또 그런 일 없도록 날 세우는 게 남은 사람들의 일인가 싶네요.
 
[eBook]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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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1 사쿠라기 시노.

이사가 나흘 후로 다가와 요즘은 버리는 게 일이다. 5년 간 이사 없던 집에는 뭐가 이렇게 바리바리 쟁여져 있는지, 이쪽 구석 쑤셔내고 돌아서면 저기에도 뭔가 꽉꽉 채워져 있다. 조금 놀라기도 한 게, 이제 버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어진 내가 미련을 많이 털어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발코니 가득 버릴 것을 잔뜩 내놓았다가 분리수거일에 싹 비우고 나면 쾌감에 가까운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러니 버리십시오. 묵직하게 이고지고 있는 것들 싹 다. 그런데 책은 안 버리는 나새끼야...ㅋㅋㅋㅋ 법교육연구 같은 학술지랑 대학 대학원 때 공부하던 자료들만 버렸다. ㅋㅋㅋ 거의 십 몇 년을 다시 펴보지도 않을 걸 왜 지고 있었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주고받던 편지도 대부분 버렸다. 스쳐가는 이름 중 지금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신기할 지경. 아싸여. 고립된 이여.
어제도 실컷 버리고나서 보관이사라 냉장고도 비워야 하는데 어쩌냐, 하다가 병 아래 조금 남은 화이트와인도 마셔버리기로 했다. 문득 여기에 가향 탄산수 섞으면 스파클링 와인 아냐? 하고 섞어 마셨는데, 진짜 술술 넘어갔다! 읽고 있던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의 사유미와 노부요시 커플이 맨날 술에 탄산수니 뭐니 타서 츄하이?라는 걸 해 먹길래 뭐야 일본놈들 왜 술에 물타, 했는데 직접 해 보니 이분들, 술 맛있게 먹을 줄 아네 싶었다. 여러분, 남은 화이트와인이 안 없어지면 빅토리아 탄산수 피치를 조금 섞으시면 향미 풍부한 스파클링 와인이 됩니다. 레드와인에 로즈힙 탄산수 섞으면 로즈와인인가? 키위도 섞어볼까, 하면서 신나했는데 와인 다 마셔서 없다…
책을 절반 이상 봤을 때 나보다 일본을 잘 아는 곁의 사람에게 삿포로역이면 어느 동네야, 물었더니 엄청 북쪽, 추운 동네라고 했다. 그제서야 추운 훗카이도 배경인 걸 알고 겨울을 실감하며 읽었다. 그래도 횡단보도 앞에서 하얀 입김이 얼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장면 묘사는 오버다. 곁의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도 영하 이십도 되어도 그런 일은 없잖아…하고 어이없어 했다. 그 추운 훗카이도도 여름에는 삼십 도가 넘는다!(고 소설에서 알게된 사실.) 어머니 살던 집을 밀어버리고 토지 40평 남짓을 팔면 겨우 900만원 남는대 이상해 했었는데 훗카이도니까 그렇지, 하고 이해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부동산 이야기할 때만 열정적이 되어버린 경제 공동체, 동업자여… 이번에 정리하다가 각트 포스터 버린다니까 순순히 그러라고 하던 왕년의 팬 그대여… 수 년 전 그 시디 발매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날 12월의 러브송 이란 타이틀이 담긴 시디를 줘서 와 이런 낭만적인 면이? 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시디에 있는 응모권으로 내한하는 각트의 악수회 신청을 하려고 여러 개 사고 그 중 하나를 날 준 것이었다. 어쩐지 시디가 개봉되어 있더라...이번에 집 정리하다보니 그 시디 같은 게 자꾸 나와서 아니 대체 몇 개를 산 거냐고 버럭 했다.ㅋㅋㅋㅋ결국 악수회 당첨 안 되었지…
일본 소설은 잘 안 봤는데 그 감성에 잘 울리는 친구가 권해줄 때마다 조금씩 보게 되었다. 이번 소설도 순간순간 징 같은 거 울리는 감성 터지는 문장이 많았다. 가난하고 자리 잡지 못한 남자와 질투심과 외로움이 많아 연인 주변의 이성만 봐도 며칠을 꿍 하는 여자 보면서 귀엽기도 하고 아 저거 왜 알 거 같니 하고 재미있고 편하게 읽었다. 커플과 그 커플 주위의 나이든 커플이나 커플이었던 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구성도 큰 사건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은은하게 잘 풀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누구와 함께하든 둘이 편한데. 살림 합쳐 삼대가 같이 살 예정인 마당에 전에도 앞으로도 복작대며 살겠지만 책으로나마 단둘의 삶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단둘이어도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 여기저기 다른 사람과 이어질 일이 자꾸 생긴다는 걸 보여주니 또 좋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이하게도 사유미와 옆집 다키 할머니 둘의 이야기로 노부요시가 안 나오고 마무리되는데, 다키가 료 짱 거리면서 어린 가수 좋아하는 거 보니 한국에 임영웅에 열광하는 어머니들처럼 일본도 비슷하구나 하고 또 재미있었다.

아, 다 읽고 나서 맨뒤에 서지정보 보는데 몽실북스란 작은 출판사가 관악구에 있어서 또 괜히 반가웠다. 우리 동네 출판사에서 나온 거야 ㅋㅋ그 근처 벚꽃빛깔을 나는 알아ㅋㅋㅋ사소한 걸로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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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1 1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위스키랑 보드카는 당연하지만 남아있는 소주나 연태도 탄산수 섞어 먹으면 맛있어요^^
(책보다 술에 관심이 더 가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11 11:37   좋아요 3 | URL
열거하신 액체 중 근 몇 년 간 먹은 게 탄산수 뿐이라 놀랐어요 ㅋㅋㅋ술쪼렙은 맥주나 홀짝 저건 처음 사본 와인이었어요. 연태가 뭔지 찾아보러 가요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4-11 11:40   좋아요 3 | URL
무려 30도가 넘는 고량주군요 ㅎㄷㄷ 원래 탄산 있는 맥주 제외 모든 알코올 음료가 탄산과 죽이 잘 맞는 걸 덕분에 알았습니다 ㅎㅎㅎ

han22598 2021-04-11 12: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파클링 와인 좋아해요 🍷 크하! 반님 이사 잘 하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1-04-11 12:4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섞어 먹어보니 그게 스파클링 와인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Yeagene 2021-04-11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파클링 와인 좋아하는데...
언제 와인 남으면 탄산수랑 섞어마셔야겠네요ㅎㅎ열반인님 꿀팁 감사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1-04-11 20:34   좋아요 1 | URL
레몬 계열은 안 해봤는데 의외로 피치랑 와인 어울렸어요!!!

붕붕툐툐 2021-04-11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님도 버리는 것의 즐거움을 체험하고 계시는군요~ 그래서 이사가 좋은 거 같아요. 강제적 정리가 되니까요~ 벚꽃빌깔을 안다니 참 시적인 표현이에용~

반유행열반인 2021-04-12 06:46   좋아요 0 | URL
뒤늦게 버리기 재미 들어서 막 버리고 있어요 ㅋㅋㅋㅋ이 동네 꽃이 산골짜기라 늘 늦는데 올해는 너무 빨리 졌네요 ㅎㅎㅎ

하나 2021-05-09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디 일화 재밌네여.. 저 아는 분도 남편되신 분이 연애 때 닭다리를 2개 다 줘가지구 와 이거는 찐사랑이다... 이러고 결혼 결심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원래 퍽퍽살만 먹는 사람이었다고.... ㅋㅋㅋ 다 그런거죠 모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25   좋아요 1 | URL
저도 다리랑 날개는 내 거 퍽퍽살은 곁의 사람 거 라서 사이 좋게 지내요 ㅎㅎㅎ

하나 2021-05-09 21:27   좋아요 1 | URL
보기 드문 천생연분이네여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5-09 21:30   좋아요 1 | URL
왜 날 날개랑 다리를 줘가지고...다 두 개씩이잖아...

하나 2021-05-09 21:36   좋아요 1 | URL
결혼하자는 뜻이죠 모 ㅋㅋㅋㅋㅋ
 
[eBook]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 한겨레출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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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조지 오웰.

중학생 때 동물농장을 읽었지만 기억이 안 난다. 고등학생 때는 1984를 읽었는데, 흠뻑 빠져서 여러 번 읽었다. 일단 내가 태어난 해가 제목이라 좋았고, 태어나기 거의 40년 전에 쓰인 소설이라는 게 신기했고, 논술문이나 수능 대비 때마다 언급되는 이 소설, 인용되지 않는 부분들이 생각보다 야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사회 비판작이 아닌 연애소설로 읽었다. 작년에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재미있게 봤던 것도 1984와 유사성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마릴린 맨슨의 노래 가사에서 인용된 걸 보고 반가움을 느꼈던 당신은 허리 아래에서만 반역자야, 같은 말들. 그런 말을 건넬 만한 사랑스러운 줄리아와 윈스턴의 짧은 봄날 같은 사랑. 좋았다.
그리고 왠지, 요즘 꼬맹이들 실시간 원격수업 한다고 웹캠을 종일 켜놓도록 강요하는 걸 보면 드디어 텔레스크린이 실현되었구나, 하고 섬뜩함을 느낀다. 화상회의는 나조차도 삼십분만 해도 고역이라 카메라와 마이크를 꺼놓곤 하는데 심한 경우 6-7교시 내내 카메라를 켜고 모니터 앞에 앉아 감시 받는 아이들을 본다. 우웩. 이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선진 첨단 교육인가요. 어떤 아이는 모니터랑 화면 보면 토할 것 같아서 수업 참여 못하겠어요, 하고 질병조퇴를 했는데 정말 이해되는 장면이었다…그러니까 엄청난 소설인 건지, 우리 오세아니아 수령님들이 여기에서 영감을 얻으신 건지…(위대한 소설의 역기능)
어쨌거나 꽤 오랫동안(거의 두 달) 조지 오웰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1984도 20년 만에 다시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어 (그리 잘 쓴 소설은 아니지만, 하고 혹평하는) 펭귄판 서문과 앞머리를 살짝 읽었다. 다시 봐도 재미있을까, 나는 이걸 다시 연애소설처럼 읽게 될까, 어느 시대나 다가올 수 있는 통제와 권력 독점과 자유를 말살하려는 시도에 몸서리치며 그에 저항하는 우리 인간 파이팅 하고 읽을까, 아직 모르겠다.

내가 좋아한 1984는 조지 오웰의 유작에 가까운, 40대 후반 죽기 직전 발표된 소설이었다는 걸 에세이의 연보를 보고 알았다. 부랑자 수용소, 프랑스의 하급 병원, 서점 직원, 비비씨 라디오방송 제작자, 버마 간수(경찰?), 그리고 글쓰기가 본격적인 직업이 되기까지 오웰이 쓴 다양한 글들을 통해 1930-40년대의 영국인과 유럽인의 삶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스위프트 좋지만 제정신은 아닌 놈이야(ㅋㅋㅋ), 하는 글(‘정치 대 문학-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과,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디스하는 톨스토이를 또 다시 디스하는 글(‘리어, 톨스토이이 그리고 어릿광대’)이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톨스토이와 처음 마주하는 요즘인데 오웰이 너 리어왕 까는 거 네 삶이랑 오버랩 되서 그러는 거 아니냐, 그거 너무 오버고 부당한 평가인데 하는 게 막 공감되고 웃겼다. 대문호가 대문호 까는 글을 또다른 대문호가 깐다...그럼 나는 조지 오웰을 까야 하는 것인가… ‘정말 정말 좋았지’와 비슷한 형식으로 학령 시절의 끔찍함을 열거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시도해볼지 아닐지는 모르겠다.

왜 자꾸 모르겠다고 하는지...글이 명료하고 주관이 뚜렷하고 생각하는 방향도 비슷해서 와 닿은 부분이 많은데 또 가끔 어렵고 지루하기도 해서 오래 읽었다. 분량이 많기도 했지…글이란, 시민이란, 작가란 이래야지, 하는 부분에 공감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실천하기란 망설여져서 자꾸 모른다 모른다 하고 회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그만큼 비겁한 놈이 되었다. 정치 기사와 투표소를 피하고 드러나지 않는 쪽으로 숨는 쪽을 택했다. 그러고도 투덜투덜은 여전히 잘 하지. 그런 나새끼라서 이 책을 읽으며 신념을 위해 에스파냐 내전에 투신하고, 좋은 직업을 버리고 빈민가의 삶까지 내려가 보는 오웰처럼 할 자신이 도무지 없어서 조금 창피했다.

+밑줄 긋기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간,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 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 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뒤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교수형’ 중. 1931.8.-사형 반대 이딴 소리 안 하고도 이렇게 절실하게 쓰다니...논픽션인데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런던 같은 도시에서는 딱히 병원에 가야할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보면 그런 사람을 거의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된다. 거창한 얘기를 아무리 해도 그들에겐 시대착오적이고 겉도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명백한 편집증 환자를 대할 때면 그가 요구하는 책을 따로 빼놓았다가 그가 나가자마자 서가에 다시 꽂곤 하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들 중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고 책을 가져가려 한 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주문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건 그들에게 정말 돈을 쓰고 있다는 환상을 준 게 아닌가 싶다. (‘서점의 추억’중. 1936.11.-ㅋㅋㅋㅋㅋㅋ알라딘 온라인 서점은 어떤가요...말씀 좀 해보세요 서점 직원 출신 작가님...)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과거는 현재보다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다. 과거가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여러 해에 걸쳐 따로 일어난 일들이 돌이켜 볼 때 하나로 압축되며, 우리의 기억 중에 원래 그대로의 진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914-1918년의 전쟁이 지금의 전쟁엔 부족한 웅장하고 대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은 주로 그뒤에 있었던 책이나 영화나 회상 때문이다.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중. 1940.가을.-그러니까 라떼는 타령 그만 하라 그 말인 거죠...)

-그런데 문학은 국경을 넘어갈 수 없는 유일한 예술이기도 하다. 문학, 특히 시는, 또 그중에서도 서정시는 일종의 가족끼리만 통하는 농담 같은 것이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가 아니면 거의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영국 최고의 시인들이 유럽에서는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널리 읽히는 시인이라 해봐야 바이런과 오스카 와일드 정도인데, 전자는 엉뚱한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후자는 영국인의 위선에 희생됐다는 이유로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거론되는 것은, 그다지 분명치는 않으나 철학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체계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심지어 논리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는 것이다. (‘영국, 당신의 영국’중. 1940.12.-영국러가 영국 뚜드려 팸...)

-그가 보는 역사는 과학적인 인간이 낭만적인 인간에게 거둔 승리의 연속이다. 주술사 대신 과학자가 통제하는 ‘합리적’이고 계획된 형태의 사회가 조만간 보편화될 것이라는 그의 견해는 아마도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과 그런 사회가 코앞에 닥쳤다고 하는 건 다른 문제다...초기의 볼셰비키는 어떤 식으로 작정하고 보느냐에 따라 천사일 수도 마귀일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웰스의 유토피아가 아닌 ‘성인의 지배’를 도입했으며, 그것은 영국 역사가 경험했던 ‘성인의 지배’처럼 마녀재판으로 흥이 난 군사독재였다.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중. 1941.8.-조지 허버트 웰스가 빙구였다고 열심히 설파하는 이 글 보면서도 왠지 타임머신이나 투명인간 같은 소설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중. 1942.가을-이 암울한 세계관...전쟁 가서 험한 꼴 못볼 꼴 보고 오면 사람이 저렇게 될 수 밖에...나새끼는 언제 어디서 무슨 전쟁을 치르고 온 거냐...)

-전체주의 시대에 시는 살아 남을지도 모르고, 특정 예술 또는 반예술(이를테면 건축 같은 것)은 압제의 덕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문작가는 침묵 아니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산문 문학은 이성주의와 개신교 시대 및 자율적인 개인의 산물이다. 때문에 지적 자유를 말살한다는 건 언론인을, 르포 작가를, 역사가를, 소설가를, 비평가를, 시인을 차례로 무력하게 만드는 일이다. 미래엔 개인의 감정이나 충실한 관찰이 없어도 가능한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 생겨날지도 모르나, 지금으로선 그런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르네상스 이후로 우리가 누려온 자유주의적 문화가 사실상 끝날 경우, 문예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물론 인쇄물은 계속해서 이용될 텐데, 완고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떤 유의 읽을거리가 살아남을지 추측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신문은 아마도 텔레비전 기술이 더 고도화될 때까지 존속할 것이나, 산업화된 나라의 다수 대중이 신문 외에 어떤 유의 읽을거리를 필요로 할지는 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무튼 그들은 읽을 거리에 대해선 몇몇 다른 취미에 드는 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조금도 없다.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와 ‘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 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 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재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문학 예방’중. 1946.1.-그러니까 나새끼가 등신이 되면 쓰기고 뭐고 다 망한다 이 소리죠...)

-이 글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오류가 있지만, 문장이 아주 고약하다는 것 말고도 공통되는 특징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든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자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해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는 점점 줄어들고, 조립식 닭장의 부품처럼 이어붙이는 ‘어구’는 늘어나는 식으로 산문이 이루어진다.
...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을 때는 수동태를 절대 쓰지 않는다. (이 번역문 자체가 구려서 내가 맘대로 짧게 고쳐버림 ㅋㅋ 원문: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뭐야 이게…)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정치와 영어’중. 1946.4.-남의 말 안 듣는데 여기 쓴 말 잘 들으면 구린 글 절반은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열심히 새겼다. 못 지키겠지만...심지어 저 위에 쓴 글에도 여기서 하지 말란 짓 엄청 해 놨겠지...ㅋㅋㅋ)

-나는 나무나 물고기나 나비나(내 경우엔 첫 대상인) 두꺼비에 대한 어린 시절의 애정을 간직함으로써 보다 평화롭고 상식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강철과 콘크리트 말고는 찬양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주의가 설파되면 인류는 증오와 지도자 숭배 외에는 남아도는 에너지의 배출구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봄은 이곳 런던 N1 지구에도 찾아왔고, 우리가 봄을 향유하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새삼 흐뭇한 일이다. 나는 두꺼비들이 짝짓기를 하거나 토끼 두 마리가 덜 여문 옥수수를 두고 권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보고 서 있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나의 즐거움을 막고자 할 중요한 사람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보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두꺼비 단상’중. 1946.4.-두꺼비에서 봄을 누리는 마음. 이런 거 좋음...)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 되어 있던 때였다. (‘나는 왜 쓰는가’중. 1946.여름.-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하고 딱 때리는데 왜 멋있냐...)

-어떤 책 때문에 노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놀랄 경우, 책의 장점이 무엇이든 즐기지 못할 수 있다. 책이 자신에게 대단히 해롭거나 남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보인다면, 그 책에 아무런 장점도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미학 이론을 세울 수도 있다. 오늘날의 문예비평이란 주로 그런 두 가지 기준 사이를 교묘히 오가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즉, 즐거움이 견해차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한테 해로운 걸 즐기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스위프트처럼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별난 세계관을 가졌으면서도 엄청난 인기가 있는 작가가 바로 그런 예다. 우리가 자신은 야후가 ‘아니’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우리가 야후라 불리는 걸 개의치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 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 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병과 더러움과 기형에 대해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스위프트는 사실상 무언가를 지어내다기보다는 배제하고 있는 셈이다. (‘정치 대 문학-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중. 1946.9-10-그러니까 제가 사드도 읽고 맨슨도 듣고 그랬던 거예요...는 유아기적 고착 증세...)

-톨스토이는 사실상 우리가 번식과 싸움과 투쟁과 향유를 그만둘 수만 있다면,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상에 묶어두는 다른 모든 것들(한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편애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포함해서)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고통스러운 생의 과정은 끝나버리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은 하늘나라를 원치 않는다. 지상에서의 삶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나약’하거나, ‘죄’가 많거나, ‘재미’보기를 갈망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꽤 많은 즐거움을 누리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생은 고통이며 아주 어리거나 아주 어리석은 자들만이 달리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봐서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인 건 기독교적 태도다. 그런 태도의 목적은 언제나 속세 생활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벗어나는 것이며, 일종의 천국이나 열반 속에서 영원한 평화를 찾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본주의적 태도는 투쟁이 계속되어야 하며, 죽음은 삶의 대가라고 본다. (‘리어, 톨스토이이 그리고 어릿광대’중. 1947.3.-안녕하세요. 평범한 인간1입니다. )

-죄는 누가 저지르는 무엇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 그냥 일어날 수도 있는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삼보한테 매를 맞던 바로 그 순간에 전혀 새롭게 번뜩 떠올랐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내 유년 시절이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으니, 집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일은 내 소년 시절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교훈, 즉 나는 내가 착해지는 게 ‘가능하지 않은’세계에 던져졌다는 교훈을 심어주었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에게서 ‘신체적’인 위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의 거대한 몸집, 볼품없고 뻣뻣한 신체, 거칠고 주름진 피부, 축 처진 눈꺼풀, 누런 치아, 그리고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퀴퀴한 옷과 맥주와 땀과 담배의 냄새! 아이에게 어른이 못나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는 대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렇게 봤을 때 최상인 얼굴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는 자기 자신이 모든 면에서 생기 넘치고 깨끗하기 때문에 피부나 치아나 혈색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아이가 나이에 대해 갖는 착각이다. 아이는 서른 이후의 삶을 잘 상상하지 못하며, 사람의 나이를 판단할 때 엄청난 실수를 범한다. 이를테면 스물다섯인 사람은 마흔으로 보고, 마흔인 사람을 예순다섯으로 보는 식이다...그리고 아이는 나이 먹는 일을 거의 가당찮은 재앙처럼 여긴다. 무슨 신비로운 이유 때문에 자기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가 보기에, 서른이 넘은 사람은 누구나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살아가는 이유도 없이 그냥 살아 있는, 즐거움이라곤 없는 괴상한 존재인 것이다. 아이가 보기엔 아이의 삶만이 진짜 삶이다.

그러나 이젠 그곳도 내 마음을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곳의 마법은 더 이상 나에게 미치지 않으며, 내겐 플립과 삼보가 죽었으면 하거나 학교가 불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랄 만큼의 원한도 남아 있지 않다.
(‘정말, 정말 좋았지’중. 1947.5.-어른들 잠자는 머리 맡에 붙여 놓고 기도문처럼 읽고 자야 할 글이다...아이들 대할 때 항상 이 글을 떠올리며 쭈그리가 될지어다...ㅋㅋㅋㅋㅋㅋ마지막 문단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시간이 그 추악한 것들을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 거야.)

-이제는 누구도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이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할 수는 없게 되었다...오늘날 문단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두려움 속에 살고 글을 쓴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여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그룹의 여론에 대한 것이다. 다행히 대개는 두 개 이상의 그룹이 있을 뿐더러, 어느 순간이든 지배적인 정통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정통성을 거스르자면 낯이 두꺼워야 하며, 때로는 몇 년 동안 수입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다.

과학적인 것이든 유토피아적인 것이든,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는 당장 권력을 잡는다는 기대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였다. 달리 말해 왕이나 정부, 법, 감옥, 경찰력, 군대, 깃발, 국경, 애국주의, 종교, 기존의 도덕관을, 그리고 사실상 모든 질서를 철저히 경멸하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모든 나라의 좌파 세력들이 도저히 이길 수 없어 보이던 압제에 맞서 싸웠던 기억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으며, 그런 ‘특정’ 압제, 즉 자본주의만 전복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웠다. 더욱이, 좌파는 자유주의로부터 확연히 의심스러운 믿음을 이어받았다. 그것은 진실이 널리 알려지면 박해는 절로 패퇴하리라는, 혹은 인간은 본래 선량하며 외부 환경 때문에 부패하는 것일 뿐이라는 믿음이었다. (‘작가와 리바이어던’중. 1948.3.-70 몇 년 전에 왜 지금 이야기를 통찰하시죠...이 부분 읽다가 이 글이 1984보다 더 예언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70몇년 째 세계대전 이후에도 유토피아 타령 하던 새끼들이 하나도 안 바뀌고 오히려 다 망쳐놨던 것 뿐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나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어떤 제약이 있어야 하며, 그 제약은 닭고기 수프를 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인가 생각해봤을 때, 비인간적이다. 인간됨의 본질은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때로는 신의를 위해 ‘흔쾌히’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정다운 육체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금욕주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고, 결국엔 생에 패배하여 부서질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다(이는 특정한 타인에게 사랑을 쏟자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다). (’간디에 대한 소견’중. 1948.가을.-이 오빠는 아파서 죽어가면서도 무려 간디를 까고 있어..ㅋㅋㅋ식민지배의 죄인인 대영제국의 견찰 출신 주제에ㅋㅋㅋㅋ그래서 더 빠져든다...까기의 달인...왠지 이 글 보면 순순히 금을 넘기면 유혈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협박하는 문명의 간디가 자꾸 어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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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4-09 2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스위프트, 기아 대 재난시 아기들을 요리하는 법을 쓴 (풍자?) 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도 오래 전에 읽어 이 또한 가물거리는데. 조지 오웰이 디스했었군요. ^^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3   좋아요 4 | URL
말씀해주신 글까지 덧붙이면 스위프트 진짜 제 정신 아닌 놈이 맞는 것 같은데 오웰은 그래도 세상에 여섯 권만 남긴다면 그 중 하나는 걸리버지예! 하는 걸 보며 걸리버가 읽고 싶어졌어요 ㅎㅎㅎ(디스하다 좋아하다 하는 오웰 팬심ㅋㅋ)

붕붕툐툐 2021-04-09 23: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열반님이 태어나신 해에 놀라고 갑니다.(왜 놀랐는지는 비밀입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4   좋아요 4 | URL
으아니 이유 좀 같이 알고 같이 놀라면 안 될까요? ㅋㅋㅋ

2021-04-1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11 0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4-09 2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1984를 읽으시다니 놀랍네요. 전 그때 만화책 본거 같은데 ㅎㅎ 이글 보고 빅브라더라는 단어가 안떠올라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ㅜㅜ 텔레스크린이 진짜 현실로 나타난거라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네요^^

반유행열반인 2021-04-10 07:27   좋아요 4 | URL
만화책도 보고 문학도 한국문학이랑 고전문학 중에 야시꾸리한 명작만 골라봤습니다ㅋㅋ끄고 켜는 거만 맘대로 할 수 있어도 다행인데 웹캠에 집안 사정 비칠 거 생각하면 (배경 가리기 기능이 있다해도...)저는 으으 싫더라구요 ㅋㅋㅋ

공쟝쟝 2021-04-10 13: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오~ 일전의 조지오웰 에세이 책대 담배 보면서 ㅋㅋㅋ 얽 의외로 매력적?? (왠지 조지오웰 꼰대 느낌이지 않아요??ㅋㅋ)하면서 왜쓰는 가도 읽어볼까 했었는 데!! 게다가 조지오웰 소설가보다 에세이를 많이 썼다고 해서 좀 놀랐고 ㅋㅋ 암튼 하지만 저는 1984도 아직 안본 쪼렙인지라.. 살포시 읽고 싶어요 에만 체크하도록 한다 ㅋㅋ
무튼 1984가 (야한) 연애 소설이었구나... 아하?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3:38   좋아요 3 | URL
1984부터 보심이 ㅋㅋㅋ이 에세이 모음집에 가장 전성기인 1946년 경 글이 많이 실려 있어요

Yeagene 2021-04-10 14: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꽤 오래전에 1984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열반인님은 연애소설 느낌을 받으셨군요 ㅎㅎ 좀 신기합니다.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6:58   좋아요 2 | URL
세상 달달한 연애하다가 패대기치는 기분이랄까요 ㅋㅋㅋㅋ예진님도 읽으셨군요!!

syo 2021-04-10 17: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1984년 생이셨지요. 그렇지, 조지 오웰 느낌 약간 있어.

반유행열반인 2021-04-10 18:48   좋아요 4 | URL
뭐라는 거예요 조지 오웰은 1903년생이야 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11 01:31   좋아요 5 | URL
아~ 두분의 티키타카는 정말 유쾌. 통쾌. 상쾌!(언제적 유행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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