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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
사쿠라기 시노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1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20210411 사쿠라기 시노.
이사가 나흘 후로 다가와 요즘은 버리는 게 일이다. 5년 간 이사 없던 집에는 뭐가 이렇게 바리바리 쟁여져 있는지, 이쪽 구석 쑤셔내고 돌아서면 저기에도 뭔가 꽉꽉 채워져 있다. 조금 놀라기도 한 게, 이제 버리는 일에 망설임이 없어진 내가 미련을 많이 털어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발코니 가득 버릴 것을 잔뜩 내놓았다가 분리수거일에 싹 비우고 나면 쾌감에 가까운 홀가분함을 느낀다.
그러니 버리십시오. 묵직하게 이고지고 있는 것들 싹 다. 그런데 책은 안 버리는 나새끼야...ㅋㅋㅋㅋ 법교육연구 같은 학술지랑 대학 대학원 때 공부하던 자료들만 버렸다. ㅋㅋㅋ 거의 십 몇 년을 다시 펴보지도 않을 걸 왜 지고 있었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주고받던 편지도 대부분 버렸다. 스쳐가는 이름 중 지금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신기할 지경. 아싸여. 고립된 이여.
어제도 실컷 버리고나서 보관이사라 냉장고도 비워야 하는데 어쩌냐, 하다가 병 아래 조금 남은 화이트와인도 마셔버리기로 했다. 문득 여기에 가향 탄산수 섞으면 스파클링 와인 아냐? 하고 섞어 마셨는데, 진짜 술술 넘어갔다! 읽고 있던 ‘둘이서 살아간다는 것’의 사유미와 노부요시 커플이 맨날 술에 탄산수니 뭐니 타서 츄하이?라는 걸 해 먹길래 뭐야 일본놈들 왜 술에 물타, 했는데 직접 해 보니 이분들, 술 맛있게 먹을 줄 아네 싶었다. 여러분, 남은 화이트와인이 안 없어지면 빅토리아 탄산수 피치를 조금 섞으시면 향미 풍부한 스파클링 와인이 됩니다. 레드와인에 로즈힙 탄산수 섞으면 로즈와인인가? 키위도 섞어볼까, 하면서 신나했는데 와인 다 마셔서 없다…
책을 절반 이상 봤을 때 나보다 일본을 잘 아는 곁의 사람에게 삿포로역이면 어느 동네야, 물었더니 엄청 북쪽, 추운 동네라고 했다. 그제서야 추운 훗카이도 배경인 걸 알고 겨울을 실감하며 읽었다. 그래도 횡단보도 앞에서 하얀 입김이 얼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장면 묘사는 오버다. 곁의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도 영하 이십도 되어도 그런 일은 없잖아…하고 어이없어 했다. 그 추운 훗카이도도 여름에는 삼십 도가 넘는다!(고 소설에서 알게된 사실.) 어머니 살던 집을 밀어버리고 토지 40평 남짓을 팔면 겨우 900만원 남는대 이상해 했었는데 훗카이도니까 그렇지, 하고 이해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부동산 이야기할 때만 열정적이 되어버린 경제 공동체, 동업자여… 이번에 정리하다가 각트 포스터 버린다니까 순순히 그러라고 하던 왕년의 팬 그대여… 수 년 전 그 시디 발매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날 12월의 러브송 이란 타이틀이 담긴 시디를 줘서 와 이런 낭만적인 면이? 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시디에 있는 응모권으로 내한하는 각트의 악수회 신청을 하려고 여러 개 사고 그 중 하나를 날 준 것이었다. 어쩐지 시디가 개봉되어 있더라...이번에 집 정리하다보니 그 시디 같은 게 자꾸 나와서 아니 대체 몇 개를 산 거냐고 버럭 했다.ㅋㅋㅋㅋ결국 악수회 당첨 안 되었지…
일본 소설은 잘 안 봤는데 그 감성에 잘 울리는 친구가 권해줄 때마다 조금씩 보게 되었다. 이번 소설도 순간순간 징 같은 거 울리는 감성 터지는 문장이 많았다. 가난하고 자리 잡지 못한 남자와 질투심과 외로움이 많아 연인 주변의 이성만 봐도 며칠을 꿍 하는 여자 보면서 귀엽기도 하고 아 저거 왜 알 거 같니 하고 재미있고 편하게 읽었다. 커플과 그 커플 주위의 나이든 커플이나 커플이었던 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구성도 큰 사건이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 은은하게 잘 풀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누구와 함께하든 둘이 편한데. 살림 합쳐 삼대가 같이 살 예정인 마당에 전에도 앞으로도 복작대며 살겠지만 책으로나마 단둘의 삶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단둘이어도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 여기저기 다른 사람과 이어질 일이 자꾸 생긴다는 걸 보여주니 또 좋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이하게도 사유미와 옆집 다키 할머니 둘의 이야기로 노부요시가 안 나오고 마무리되는데, 다키가 료 짱 거리면서 어린 가수 좋아하는 거 보니 한국에 임영웅에 열광하는 어머니들처럼 일본도 비슷하구나 하고 또 재미있었다.
아, 다 읽고 나서 맨뒤에 서지정보 보는데 몽실북스란 작은 출판사가 관악구에 있어서 또 괜히 반가웠다. 우리 동네 출판사에서 나온 거야 ㅋㅋ그 근처 벚꽃빛깔을 나는 알아ㅋㅋㅋ사소한 걸로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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