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추운 겨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황정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말이 느리고, 이야기가 또렷하고, 가능하면 정확한 구사를 사용하려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눈 밝은 독자가 먼저 발견한 작가, 황정은 작가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는 창비출판사에서 도와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최초의 기억과 최초의 질문

 

만나 뵙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전작 <백의 그림자> 이후 황정은 작가의 책을 기다린 독자가 많습니다. 그간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식, 웹진문지문학상, 엔솔러지 북 등에서 이름을 뵐 때마다 반가웠는데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을 쓰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작년 한해 동안은…… 문장 라디오 진행하는 것 말고는 거의 아무 것도 안 했고요, 이것저것 고민하며 지냈습니다. <뼈 도둑>이라는 단편을 하나 썼고요.

 

 

 

 

 

 

 

 

 

 

 

 

 

 

 

 

 

표제작 <파씨의 입문>에서 최초의 기억과, 최초의 질문과 최초의 정서가 시작된 지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도서 보도자료에도 “이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요, 표제작을 <파씨의 입문>으로 정하진 이유가 있을까요?

 

작품집에 넣을 단편들을 모아둔 폴더 이름이 파씨의 입문이었어요. 나중에 다른 제목을 생각하려니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파씨의 입문이 되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쥐덫을 놓으면서도 죽어가는 쥐를 걱정하고 도시의 빈민 고양이를 걱정하는 시선(묘씨생 中) 등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고 들리지 않는 것들까지 염려하는 윤리적인 글을 읽으며 이런 시선이 때론 피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작은 소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적어도 저한테는 중요한 소리들이고요.

저는 상당히 둔감한 편이에요. 학교 다닐 때 별명이 형광등이었고요. 맞아도 바로 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 한참 있다가 아, 하거나…… 제가 특별히 예민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윤리적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또 그렇게 연약한 사람도 아니예요. 그 정도 듣는다고 막 피로하다거나…… (웃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안 들리는 소리를 억지로 들으려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간신히 그 정도로 들을 뿐이라서, 집필하면서 나름 그런 면에서의 고통이 있죠.

 

 

 

파씨는 쥐의 조그만 머리뼈 안에서 일어날 일들을 생각합니다. 두통은 어떡하고요. 아버지. - <파씨의 입문> 213쪽

 

그렇다면 그대들에게는 먹고사는 것 외에 중요하게 여기며 추구하는 다른 것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삼가 묻는다면, 고양이 따위가 알까, 도대체 다른 것들을 추구할 수 없을 정도로 먹고 살기만으로도 각박한 인사를 길에서 빌어먹는 고양이 따위가 알까,라는 면박이나 들을 수 있을까. 먹고살기를 방패 삼아 이 몸처럼 조그만 생물과의 공생조차 생각할 여지를 두지 않는 짐승의 대답이란 기대할 것도 없는 것이다.
몸이고 보니 외로우면 울었고 배고프면 먹었다. - <묘씨생> 114쪽

 

 

 

 

 

 

아껴읽는 이야기, 소설의 풍경

 

전작 <백의 그림자>에서 은교와 무재씨의 연애의 풍경도 그랬고, 소설집 속 <디디의 우산>의 인물들의 연애나, <뼈 도둑>, <양산 펴기> 등의 작품 속 연애도,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이 주로 나타나는 게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소소한 풍경을 황정은 식 연애의 풍경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황정은식 연애 풍경이라기보다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상, 이게 정말 막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부정적인 의미로든 긍정적인 의미로든…… 그런데 연애라는 것이 본래 그런 일상의 공유 혹은 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굳이 누구식, 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연애 경험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소설집 속, 9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계속 일정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문장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면서도 “따옴표”안에 대화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대화를 한다기보단 서로의 독백을 하고, 그 독백을 들어주는 듯한 화법도 인상적이었고요. 아주 유별난 단어를 쓰지 않음에도 마음을 울리는, 시적인 문장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문장은…… 동물적인 촉으로 쓰는 것 같고요. (일동 웃음) 어떤 원칙을 정해두고 쓰는 것이 아니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에 의지해서 쓰는 편인데……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이런 걸 정해두지는 않았고요. 읽을 때는 복잡한 문장, 간결한 문장, 해체된 문장, 전부 색色을 느끼면서 즐겁게 읽는 편이고, 다만 쓸 때는 ‘나름 깔끔해지자’라는 생각을 하고요. 이런 생각이 강박이 되기도 하고…… 그 밖엔 거의 본능인데…… (웃음) 기본적으로 말버릇 베이스에 동물적인 촉……이 아닐까 해요 (웃음) 문장 하나를 써두고 골똘히 생각하는 일이 많아서 하루 작업량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문장과 문장 사이라고 해야 하나, 여백에 뭔가를 자주 심어두는데 이건 그러니까…… 문장을 쓸 때보다는 그 문장과 이어지는 다른 문장 ‘사이’에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서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렇습니다.

 

 

 

회사는 유연하고 여러분은 자유롭다고 말하는 이들, 집이 없는 자들에게 더 비싸게 팔았어야 했는데 아쉽다고 말하는 이들, 배척당한 종교임에도, 죽은 후엔 종교식으로 마지막을 치러야 하는 아이러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쁜 것’들이 일상적이고, 실용적이고, 크게 나쁜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니어서 더 슬펐습니다. 이런 풍경을 발견하시는 순간은 주로 어떤 때인지 궁금합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내가 겪고 있는 일, 주변의 사례, 이런 과정을 통해 접하게 되는 거죠.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일상적으로. 그러니까 어떤 ‘순간’이 있다기보다는 거의 일상이면서 불시, 라는 것이 적당하겠네요.
나쁘다고 표현을 하셨는데…… 저는 사실 어떤 한 두 개의 커다란 나쁨보다도 일상에서 소소하게 벌어지는 사소한 나쁨들이 좋지 않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압도적인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에 내가 ‘이 세계는 참 나쁘다’라고 말할 경우 이 나쁨은 결국 소소한 일상을 통해 발생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반면 마땅히 화가 날 상황에, 화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독백하듯 토로하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화를 내기보단 다독이는 느낌이었는데, 분노도 위로도 아닌 그 중간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디디와 도도’처럼 마땅히 화가 날 상황에도 그저 그 상황을 이야기하며 웃어넘기는 모습 같은 게 인상적이었어요.

 

말씀하신 내용은, 화가 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 의사가, 그렇게 뭐랄까 타성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사례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 아닐까 했어요. 전문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는 최선의 말을 한 것이니까 나쁘다고 하긴 뭣하죠. 건강에 좋지 않아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인 건 당사자들이 더 잘 알잖아요.
디디와 도도가 병원을 나와서 정류장에서 대화하는 상황도, 누군가에게 화가 났다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은 있는데 해결할 방법은 멀거나 없고, 그러니 정류장에서 하나마나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이 얼마나 쓸쓸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가렵고 아픈데 방법이 없으니까 참…… 뭐랄까,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각자, 특히 디디가 마음이 아팠겠다, 분노보다는 일단,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디디와 도도는 병원 아래층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남더러 다짜고짜 일을 그만두라니 그 의사 웃긴다고 말을 나누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각자 타야 할 버스를 타고 헤어졌다. <디디의 우산> 169쪽

 

 

 

소설 속에선 고독한 인물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고독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독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윤리적일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출간된 <고독의 위로>라는 책을 함께 생각하며 소설을 읽기도 했습니다. 소설 속 이들이 겪는 고독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고독이라기보다 쓸쓸함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고독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말씀엔 적극 공감을 하고요. 쓸쓸함을 충분히 느끼고 있고, 쓸쓸하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기 때문에 타자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내가 쓸쓸할 때, 내가 고독을 느낄 때, 그 쓸쓸함이나 고독을 없애고 지워버리려는 노력을 한다는 게 더 공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쓸쓸함은 누구나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잖아요. 나 쓸쓸하네, 이렇게 나의 내면도 들여다보고, 이런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쓸쓸함을 느끼는데 너는 어떠니, 하면서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여지도 생기고요. 그건 윤리라기보다는…… 타자의 가능성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로 꽉 찬 경우보다는, 자기의 쓸쓸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경우에 타자의 여지가 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보고 싶어요
나 떨어지고 있어요
무척 쓸쓸하답니다 <낙하하다>, 72쪽

 

 

 

 

 

 

굳세게, 휩쓸리거나 부러지지 않으면서

 

언제 처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 소설이 가장 쓰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을 써야겠다, 해서 소설쓰기를 시작한 게 아니에요. 많이 한 얘기라 식상할 텐데…… (웃음) 이십대 중반과 후반에 건강이 되게 안 좋았어요. 아무 것도 못하고 지내다가 나을 무렵이 되니까 뭔가를 되게 배우고 싶었고요. 제가 내신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웃음) 그래서 내신 반영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문예창작과에 응시했어요. 실기시험이 있었는데 몇 시까지 와서 몇 분 안에 뭘 써라, 이런 게 힘들더라고요. 딱 세 줄을 쓰고 나왔어요. 물론 떨어졌고요. 그럼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아보다가 소설 수업을 듣게 됐고요. 일단 쓰니까 안 쓰는 걸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소설쓰기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기가 참 어려운 작업인 것 같아요. 겁도 없이 시작을 한 거죠.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렸고요.
그리고 최근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마감이 다가와서…… “써야겠다!” (웃음) 반은 농담이고요. 마감이라는 동기가 있었고, 작년엔 내내 쓸 수 없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가 하반기쯤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1월에요. 그때쯤 복잡한 일들이 좀 정리되었고.
실은 작년에 제가…… 왜 쓰는가라는 고민을 했거든요. 고민이 진행되다 보니 어감이 달라지더라고요. 처음엔 ‘왜 쓰는가’ 하다가 나중엔 ‘그러게 너 왜 쓰고 있냐’ 이렇게 무력감이 심해졌고요. 쓰는 작업 자체에 관해서 회의하게 되고…… 작년 가을에 그런 고민을 좀 정리하고, 11월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소설에 대해 무기력함을 느끼셨다는 건……

 

소설에 대해 무기력함을 왜 느꼈냐면, 뭐랄까…… 제 경우,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밝지 않아요. 허무하달까, 공허를 상당히 느끼는 편이고요. ‘많이 세상이 이상하다!’라고 자주 생각하는데, 최근 이삼 년 사이에 세계가 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세계라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짐작했던 것보다 더 참혹하고 말이 안 되게 이상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여태 이렇게 굴러왔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구를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어서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 이런 걸 고민하게 되었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소설 쓰는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없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작업 자체에 무력감을 크게 느꼈어요. 나는 세계가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소설로는 무엇도 바뀌지 않아…… 이런 생각.
그러다가 <百의 그림자>를 읽고 전에는 별 생각 없이 스쳐가던 공간을, 더는 별 생각 없이 스쳐갈 수 없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소설을 읽은 후 그 공간을 지나갈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아주 힘들다고 생각하는데요, 자기 생각 바꾸는 것도 사실 힘드니까…… 그런데 소설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 약간의 방향 전환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작지만 결코 작지는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쓰는 과정에서 일단은 나부터 뭔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고…… 그 ‘달라짐’이 실제 세계를 살아가는 내게 정말 필요하고…… 너무 오래 놀기도 했고…… 그래서 작년 말부터 다시 쓰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책, 최근 읽고 계신 책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는 제가 집필을 하고 있어서요, 쓰는 동안엔 잘 읽지 못합니다. 그래도 최근에 읽은 책은 <달팽이 안단테>예요. 선호하는 문장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각각의 문장을 각각의 재미를 느껴가며 읽는 편이고요. 다만 누군가의 문장을 읽을 때 그 문장을 쓴 사람에 대해 상상을 많이 하게 되는 문장을 좋아합니다.
책은…… 문학과는 표면적으로 크게 상관이 없는 책들을 읽는 편이고요. 간단하게 대답을 드리자면, 가리지 않고 읽습니다. (웃음)

 

 

 

첫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는 “쓰고 싶은 것을, 딱 쓰고 싶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쓰고있다.”고 하셨고, 두 번째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는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터프함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무지막지한 인간이 되고 싶단 뜻은 아니고요, 제가 가지고 있는 코어core 같은 게 있어요. 이걸 유지하고 키우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활에서나 문학에서나 굳세게, 휩쓸리거나 부러지지 않으면서, 잘 버티고 싶습니다.

 

 

 

자주 뵈었으면 좋겠는데, 기다림이 길었습니다. 앞으로 기대해볼 수 있는 소설은 무엇일지, 차기작 일정을 듣고 싶어요.

 

얼마 전에 경장편 원고 1차 분을 마감했고요, 계간지 문학동네에 봄과 여름, 두 차례로 분재될 예정입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제 소설들, 특히 <百의 그림자>와는 또…… 달라요.(웃음)

 

 

 

<파씨의 입문> 도서 페이지에도 많은 분들이 좋은 이야기를 남겨주고 있습니다. 알라딘에도 황정은 작가를 기다려온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인터뷰를 읽어주실 독자 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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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늦은 감 있는 인사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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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otopia 2012-03-1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황정은 작가님 :)!
 

 

 

한겨울, 평창동의 조용한 미술관에서 신경숙 작가를 만났습니다. 작가님은 직접 구운 고구마를 살갑게 건네주시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고향인 '정읍'에도 며칠 다녀오셨고, 눈이 오면 옆집 눈도 쓸어주고, 그리고 소설도 읽고 쓰고 하며 지낸다고 하시는 신경숙 작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 진행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도와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신경숙의 2011년, 국경 너머에서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작가님께서 한국을 비운 새 2008년작 <엄마를 부탁해>가 다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 체류 중, 신발을 몇 켤레나 준비하셨는지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콜롬비아대학 객원 연구원으로 가면서 짐을 일년 예정으로 쌌어요. 여름이라서 여름 신발밖에 안 사서, 신발은 거의 거기서 사서 신었죠. 여러 켤레 사서 신고 그랬네. 맨하탄서 있었는데요, 길이차가 있으면 또 불편한 도시가 맨하탄이에요. 그래서 처음부터 계획도 차 없이 살자, 했고, 아파트도 맨하탄에 얻어서 걸어다녔어요. 그렇다보니 신발이 정말 많이 필요했지. 밖에 나가면 걸어 다녔어요. 블록이 넓지 않고, 지도가 잘 되어 있고, 찾아가기 좋은 도시였어요. 맨하탄 사람들은 뉴욕에서 자연스럽게 지하철 타거나 걸어다닌대요. 그런데 지하철이 오래되고 덥고 그래서, 좀 우리 한국 지하철 같지가 않아요. 놀랄만한 풍경들도 많고, 그래서 지하철을 안 타려면 걸을 수밖에 없는 거죠. 걸으면서 지냈어요.

 

그리고 거기 간 이유는, 일년 동안 좀 안식년 같은 휴식기를 주고 싶었어요. 뉴욕이라는 데가 새로운 문화들이 아주 빠른 시간에 순환되는 곳이고 탄생되는 곳이라 거길 택했었고, 몇 개월 동안 익명의 존재로 아주 편안하게 지냈죠. 매일매일 무슨 일이 일어나니까, 미술관이나 공연들이 많아요. 링컨 센터에 연계되어 있는 많은 공연장들에서, 프로그램을 잘 찾아보면 뮤지컬이라든지 산보 나가서 볼 수 있는 재즈 공연이나 음악회나 댄스 같은 게 많아요. 무료로 하는 데도 굉장히 많고요.

 

 

백수 한량처럼 몇 개월 지내고 아이고 이거 참 좋구나. 하다가 인제 이 나온 이후 깨졌지. 스케줄이 있이 간 게 아니고, 거의 없이 갔었어요. 책때매 간 게 아니었는데, 공교롭게 그 책이 나오는 거하고, 일정이 맞았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현장에 있어서 책 만드는 현장을 또 보게 되었고, 책이 출판되어서 서점에 깔리는 것도 보게 되었죠. 투어 프로그램이 짜여서 미국과 유럽 쪽에 동시에 책이 나왔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도 한 열 개 도시쯤 투어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낭독회도 하고, 사인회도 하고. 그랬었고요. 유럽쪽은 두 달 동안 짧으면 3, 길면 5박 그런 스케줄로 이동을 하면서 스페인, 노르웨이,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이스라엘, 영 그런 나라들, 한 열 나라들을 다녔어요. 책 인터뷰도 하고, 서점에 가서 사인회도 했고요. 바로 책이 나온 데에선 사인만 하기도 했었고요, 현지 출판사서 마련해놓은 작가들과 함께 낭독회한 적도 있었고요, 스페인인에서는 30분 간격으로 인터뷰만 했고요. 굉장히내 인생에서가장 번다한 이동과, 아주 수많은 인터뷰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그래도 각 나라에 갔을 때마다 서점 가는 재미도 있고, 그랬어요. 한국 책이 처음 나오는 나라도 있었으니까요. 그 서점에 꽂혀있는 걸 보면 즐겁기도 했었고.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일년이 그렇게 짧게 지나갔어요. 그리고 돌아왔죠. 지금은.

 

 

영어로 책이 나오고 난 다음에 해외 판권이 더 많이 계약이 됐다고 해요. 처음엔 열여덟 나라였는데, 영어 책이 나오고, 책에 대한 반응도 좋았었고 해서 계약된 나라가 32개국이 되었지. 열여섯 나라에선 나왔고, 계속 나오고 있어요. 내년에도 미국에선 하드커버 말고 페이퍼북으로 다시 나올 거고요. 알라딘에 연재했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도 크노프 에디터랑 서로 메일 주고받으며 얘기하고 있는 중이에요.

 

귀국은 팔월 말에 했는데, 일본에도 책이 나와서 구월과 시월에 일본에 두 번 왔다갔다 했었고요, 호주에도 그 사이 다녀오고 했어요. 그 후엔 <모르는 여인들> 교정지 붙잡고, 내 책상에 돌아와서 앉았죠. 그냥 한 해의 시간을 <엄마를 부탁해>와 함께 보낸 것 같아요. 2008년에 나왔으니 4년째죠. 이 책은 새로운 시작이랄까, 다른 작품으로 가는 징검다리랄까. 그 시간들에 <모르는 여인들>이 있어요. 너무 오랫동안 묶어주지 않아서 수록 작품들 사이 시간이 길어요. 그래서 약간 긴장했었죠. 그 시간을 뚫고 나오지 못하고. 좀 낡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해 내 검열은 통과했어요.

 

 

 

 

 

 

 

 

 

 

 

 

 

 

 

 

 

 

 

2004년 작품인 <그가 지금 풀숲에서>의 주인공의 직업으로 MD가 나와서, 인터넷 서점 MD로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가 사실 MD가 뭐야 이럴 때예요. (웃음) 현대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직업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은 보편화가 된 인터넷 신문 같은 것들이 안정화가 될 수 있을지 어쩔지 실험단계에 있는 상태였거든요. 대기업에 자기 할 일이 있고,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가. 옮겨가는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던 거라서요.

<아름다운 그늘>이라든지 <외딴 방>이라든지, <풍금이 있던 자리>라든지. 그런 작품들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하는 건, 대부분 책이 나온 지 15, 20년 가까이 되는데도, 그렇게 시간을 잘 견디고 뚫고 나와서 아직도 지금젊은 독자들하고 옆에 같이 있다는 거예요. 너무 감사하고 기뻐요.

작품에도 나이가 있다면, 나이가 든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게 이제 낡은 거죠. 그런 걱정을 좀 했는데, <모르는 여인들>은 다행히 그걸 잘 통과해준 것 같아요.

 

 

 

 

 

 

 

 

 

 

 

 

 

 

 

 

 

 

 

 

물론 이전에도 만나셨지만, 작년, 올해 세계의 많은 독자를 더욱 많이 만나셨을 텐데요, 미국이나 유럽 독자들은 만나면 어떠신지요? 우리 나라 독자와 차이가 있을지요?

 

받아들이는 게 좀 다양했어요. <엄마를 부탁해> 같은 경우는 오히려 우리나라 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은 그 세계가 익숙하니까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게 있는데요, 국경너머 독자들이나 리뷰를 쓰는 분들은 뭐랄까새로운 거예요 이게. 문화 자체가 새롭고,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지고 해서 오히려 작품이 풍성하게 읽히는.. 경우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딱히 엄마 이야기로만 읽지 않고, 세대간 문제로, 전통과 현대의 거리를 메우려고 하는 작품으로 읽는 경우도 있었어요. 엄마보다도 오히려, 엄마라는 상징을 잃어버린 가족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 우리가 대부분 태어난 데서 살지 못하잖아요. 대부분 교육이나 직장 문제로 대도시로 나가거나 국경 너머로 나아가거나 하고, 그게 우리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상태잖아요. 그러다 보니 유목민 상태, 인데요. 이 작품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으나, 모두 다 대도시로 나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로 읽는 사람도 있었어요. 태생지를 떠나, 대도시나 국경 너머로 나가서 이동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엄마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작품에 느끼는 반응이 더욱 각별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미네아폴리스(Minneapolis)인가 하는 도시를 갔는데, 미국인 할아버지 한 분이 책을 열일곱 권인지 열아홉 권인지를 쌓아가지고 사인을 받으러 왔어요. 그 분하고 얘기를 조금 하게 됐는데, 할머니가 먼저 작품을 읽다가 여기 당신이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 그랬대요. 왜 아버지가 엄마보다 항상 빨리 걷잖아요. 그 할머니께서 거기서부터 너무 잘 읽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는데, 북클럽 회원들한테도 읽게 하고 싶어서 아홉 시간을 운전해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비슷하게 걷나요?” 물으니 노력을 할 뿐이라고.” 하시던데,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요.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우리랑 거의 똑같은 느낌이에요. 소설에 나오는 박소녀 엄마와 이스라엘 엄마가 비슷해요. 음식이라든지 집의 환경도 비슷하고요. 물론 문화적인 차이는 있죠.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똑같은 걸 발견하려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서 나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에 대해 이건 너무 한국적이고, 한국 문화가 스며들 듯이 문장에 있는데, 외국독자들이 이해를 하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도 세계문학을 번역해서 읽고, 또 그 문학 속 세계가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에, . 다른 점들에 매혹되어 읽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아마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번역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여행이기도 하잖아요. 나는 한국어로 썼지만 다른 나라말로 번역이 되어서 그 나라 말을 쓰는 사람 사이를 여행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엔 묘하게, 작품뿐만 아니라 나도 작품과 여행을 같이 했네요. 엉켜있어요. 경험하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요. 시간이 좀 지나면어떤 식으로든지 정리되고작품으로도 나오는 장면이 있을 테죠작가가 머문 공간이나 실어내는 시간이나이런 것들이 특별하게 숨기고자 하지 않는 이상 곧 작품의 무대가 되고 그러니까요.

( : 신경숙 작가는 이국의 독자들과, ‘엉켜있는시간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쉬었습니다. 그 침묵마다 그가 경험한 풍경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단편쓰기, 사진찍기

 

책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반짝이는 이미지와 보일 듯 말 듯 선 여인, 그리고 초록과 푸른 정조이 책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표지를 출판사에서 만들어가지고 왔을 때였어요. 그때 나는 마음 속으로 표제를 <모르는 여인들>로 할까, <세상 끝의 신발> 이렇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표지를 본순 간 <모르는 여인들>로 표제를 정하게 됐죠. 제 표지를 많이 해주신 송윤형씨가 너무 예쁘게 잘 해줬어요. 이 책 속 일곱 편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시간 속에서 각자에게 은연중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 이야기 흐름을 상징하는 역할도 제대로 하는 것 같고 했어요. 뒷모습이라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아트책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이 여인의 모습도 균형이 묘해요. 탁자에 팔을 대고 있고. 발도 아주 약간 어긋나게 하면서 짚고 있잖아요. 상징하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에 내가 사인해서 세워놓잖아요. 그럼 정지되어 있는 게 아니고 어딘가로 막 이동하고 있는,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요.

 

 

 

8년 만에 출간된 소설집입니다. 2003년 소설에서 2009년 소설까지, 총 일곱 편이 모여있습니다. 단편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히 과작(寡作)인데요, 이렇게 간간히 단편을 만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이유가 있을까요? 더불어 단편쓰기와 장편 쓰기의 차이점에 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단편들 사이에 장편이 있어요. <리진>, <엄마(를부탁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나는 단편을 쓸 때는 단편만 쓰고, 장편을 쓸 때는 장편만 쓰고 이렇게 밖에 못해요. 성향이 그래요. 특히 장편 쓸 때는, 장편 쓰는 시간이 길잖아요. 그 기간 동안 거의 거기에 몰두해서 단편을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두 가지 일을 한번에 못해요.

 

그러다 보니 이 작품들은 어떤 장편이 시작되기 전, 혹은 끝나고 난 후에 주로 쓰여졌어요. 작업 안 하고 생각만 하고 있을 때요. 개인적으로도 나를 유지시켜주고 있는 관계가 깨져서, 너무나 균형을 잃고 헤맬 때라든지. 또 사회적으로도 매일매일 뉴스 지면을 장식하는 너무나 큰 사건에, 머리를 둔중한 걸로, 날카로운 걸로 얻어맞은 것 같은 날들이 계속될 때그럴 때 나 스스로 이 작품들을 쓰면서 다른 시간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두워진 후에>라는 작품을 쓸 때는, 그 작품에 등장하는 그 여자를 이 세상에 탄생시키고 싶었어요. 너무나 어두운, 한쪽은 이미 어두워져 있는 세상의 다른 한편에 그 매표원 여자를 세워두고 싶었어요. “네 그러세요.” , “네 그래요.” 라고 말해주는 여자를 탄생시켜서 세상 속에 섞어놓음으로써 제가 인간에게 가지고 있던그런 것들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발적으로 쓴 작품이 많아요 단편은 특히요. 모든 작품이 다 자발적이지만, 소설집 속 단편은 암묵적으로라도 이런 작품을 쓰겠다.’하는 약속 없이, 청탁이나 이런 거 없이 썼어요. 완성되면 이런 작품이 쓰여졌는데 실어줄 수 있겠냐.’고 말을 하거나, 혹은 청탁이 와서 쓰여진 작품을 주거나 그랬었죠.

 

단편을 쓸 때는, 유장하게 흘러가는 시간 중 한 순간에 집중이 돼요. 사진 찍기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사진 렌즈에 맞출 때 빛과 표정과 시간과 이걸 다 한 렌즈 안에 담아서 이미지를 만들어내잖아요. 단편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반짝하는 그 순간 같은. 그러나 장편은, 그 반짝하는 그 순간이 확장되죠. 굉장히 넓고, 뭐라 그럴까단편으로 볼 수 없는, 하나의, 더 큰 세계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빤한 이야기지만.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다르고요.

그러나 나로선 쓰는 마음이 다른 건 아니에요. 다만 시작한 이후 완성하는 시간이, 장편은 너무 길잖아요. 그래서 옆에 항상 살고 있는 것 같애. 장편 속에 있는 화자들이. 신경숙이 먹는 게 아니라, (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이라면 윤이가 어떻게 먹었을까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래요. 장편 쓸 때는 소설 속의 인간들하고 함께 숨쉬고, 살아가고 하느라 오히려 소설 바깥의 관계들하고 단절되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행이 되지 않아요. 그 리듬이 깨져서요. 리듬을 한번 깨면 회복하기도 너무 힘들고 해서. 그런 차이가 있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당시엔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소설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셨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단편소설을 쓰는 풍경에 대해 묘사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땐 그랬죠. <엄마를 부탁해>때문에 너무 바깥일도 많고 휘둘리고 했을 때라서, 그 중심을 잡아주는 게 나한테는 <어디선가 나를 찾는..>을 연재하는 시간이었어요. ‘어쨌든 새벽 세시에서 아홉 시까지 작품에 집중하자.’해서 그 시간에 일부러 빼놨죠. 대부분 그 시간에 해요. 내가 일상이 번다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쓰게 되면, 사실은 대부분 작품 쓰는 것에 시간을 보내죠. 배고프면 먹고, 쓰고, 졸리면 또 자고, 또 쓰고이런 스타일을 꽤 오래 유지해왔는데. 40대 지나고 하면서, 다른 일들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그렇게만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어쨌든 시간을 좀 더철저하게 운영해서 써야 하는 상태에 놓였어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오전시간까지 작업하고그래요. 그 시간에 집중이 가장 잘 되기도 해요. 어두웠을 때 깨나서 밝아지는 그런 느낌이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마음 <모르는 여인들>

 

 

표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모르는 여인들>에서 처음으로 영상을 통해 소설을 낭독하는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지태, 정인기 등의 배우의 목소리로 읽히는 이야기와, 작가님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읽히는 소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낭독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을 쓸 때 가장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사실은 소리 내어 읽어보는 일이에요. 내 작업실에서. 낭독을 해보면 언어가 이렇게 좀그 문장에 맞지 않고 겉도는, 걸리는 게 눈으로 볼 때보다 확실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가장 적절한... 언어를 찾을 때 읽어보면서, 걸리는 걸 수정하고 하는데요. 물론 그걸 낭독이라고 할 순 없지만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그영상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특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한 구절 낭독을 했고, 또 전체적으로 다 같이 낭독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 낭독을 할 때는 조금 독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작가의 말 낭독할 때는 내 말을 내가 써놓고 내가 낭독하니 조금 이상하구나, 이걸 그대로 책을 보지 않고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죠. 그러나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고요. 즐거웠어요. 출판사 옥상에서 했던 것 같은데, 야외에서, 새도 지나가고 하는 곳에서 함께, 뒤섞이는 기분도 들었고요. 낭독시간 좋아해서 즐거웠어요.

 

대화대사?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 대사들을 뽑아서, 대사만 듣고도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알 수 있는 문장을 택한 것 같은데요, 대부분 그 <모르는 여인들>에 나오는 그 남자 , 나의 화자의 이십 년 전 남자친구가 겪는 상황에 대해서, 자기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 부당하다는 느낌을 같이 받나봐요. ‘이게 왜, 내 인생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느냐.’하는. 부당한 느낌을 가지고 낭독을 하니까,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유지태씨는 낭독을 모노드라마처럼 잘하던데요? 아 역시 배우던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표제작의 나직함이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더 이상 떨리지 않기에 불행하지 않다는 여인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불안정한 시기, 떨리는 시기를 겪고 있는 젊음에게, 선생님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소설에는 이십 대라는 시간이, 젊음의 시간들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있진 않지만, 그래요. 이십대는아름답고, 열정적이고, 정직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시절이 아닐까 해요. 그 시절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시절인지, 자기 감정들이 백프로도 넘게 투영되는 시간이 얼마나 빛나는 시절인지 당시에는 몰라요. 당시에는 알고 있어도 약간 곤란할 거 같아요. 내 생각엔. 발등 앞에 떨어진 그 불안과 고독을, 정해지지 않은, 불투명한 앞날 때문에 잠 못 자는 날도 많고 방황하는 시간도 길고 그렇잖아요. 그런데항상 그 시간이 계속되지는 않아요. 차라리 그게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모르는 여인들>에 나오는 이십 대의 어느 순간은, 아주 빛나는 시절이지만, 그런 나에게는 벅찬,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고. 그 순간을 내가 지탱하기 어려워서 나와,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들을, 타인들을 저버리게 되잖아요. 그런데훗날…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다음에, 또 다시 나를 만나게 하고나는 본적도 없는, 내가 저버린 그 사랑하는 사람의 아내. 그리고 그 아내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주고받는 노트를 읽게 되죠. 또 그걸 읽으면서... 사십 대가 되었어도 불안한 나의 일상을 어느 순간 사랑이 감싸주게 되잖아요. 참 미묘한 관계들인 거죠.

뭔가를 저버리게 되는 순간에도,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에도, 그런 순간들은 우리가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땐 정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거죠. 물론 ?”라는 질문은 항상 남아있지만요.

 

내가 언젠가도 한 얘기 같은데, 시간은 직선으로 반듯하게 흘러가진 않아요. 뒤섞여있는 거예요. 원처럼. 십대의 어떤 날들이 사십 대의 어느 날에 불쑥 찾아와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그런 역할도 하는 거고요. 이십 대의 어떤 날들이 지금, 사십 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거고요. 그래서 그게 십 대든 이십 대든 삼십 대든, 내가 어떤 순간을 만나든 그 순간을 최상의 순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해요.

 

언젠가는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겠죠. 오랜 시간 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아픔이든, 상처든, 혹은 기쁨이든 하는 감정들과요. 그러나 그 이십 대의 불안한 상태, 아픈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언젠가는 그게 누그러지기도 하고, 오히려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옮겨가기도 해요. 마음이요. 언젠가, 그 순간을 보며 내 앞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데, 그런 거를 알게 되는 때가 이십 대는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기울인 뭔가가 어긋났을 때 거기에 매몰되어 다른 시간을 향해 나가지 못하는 상황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렇기도 하죠.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 지금 이 순간은 20년 후, 30년 후, 또 다른 어떤 순간하고 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때까지 가봐요. 가보는 것이 우리의 기본기본적인 약속인 것 같아요. 이렇게... 약간 빛이 바랜 듯이 여겨지는, 그렇지만 거기서 반짝반짝 거리고 있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많이 쌓여있는 삶을. 그런 삶은하루하루살아내야 쌓이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40대쯤, 이 모르는 여인들에 나오는 그런 시간들을 마주치게 되면, 완전해서 평화로운 게 아니라, 그런 불완전한 것들에 대한 이해랄까, 혹은 불완전한 것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라는 게 찾아온다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실지로 그런 것 같아요.

 

이십 대일 땐 서른이 되는 게 너무 막막했고, 서른쯤 되니까 마흔이 지나면 무슨 생각으로 살까, 무슨 즐거움으로 살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실은 삼십 대나 사십 대나 인생으로 보면 사춘기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언제나 아까 말했던 순간순간들, 시간에 다다르면서, 어떤 상태를 겪겠지만, 그 상태 자체가 다가 아니에요. 같이 있는 거야. 과거도 같이 있고, 여기서 나갈 때는 저기 앞날도. 다 섞여있는 거예요. 그러니 자기가 아주 성의있게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시간에 비추어서 순간이 찾아오겠죠. 내면이 진심으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순간이라든지, 평화라든지 그런 순간이요. 오는 거는 와요. 완성된 상태로 오진 않겠지만,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살아간다는 것인 것 같아요.

 

 

 

 

 

순간순간 발견해내는 선의의 빛

 

소설 속 일상의 풍경이 무척 구체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 내린 시골집 풍경, 이들이 먹는 소박한 음식, 명동 롯데백화점, 독일의 거리 등. 이러한 삶의 풍경은 평소 경험하며 얻으시는 것인지요? 생활에서 소설까지, 구체적인 발상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지가 어언 30년이 넘어서게 됐어요. .... 놀라운 세월이잖아요. 어느 공간에서, 도시에서 30몇 년을 살게 되면 자기 식의 지도가 생겨요. 광화문을 바꿔놓고, 버스노선을 바꾸는 통에 최근에는 다 깨졌는데, 그래도 내가 걸어 다니는 골목이나 땅이나 도시의 풍경들이, 내 마음속에 쌓여있죠. 대학 때 특히 많이 다녔던 길은 명동성당, 롯데백화점, 남산 이런 곳이었어요. 시간이 지나서 나는 그 길에서 사라졌지만, 젊은 나는 언제나 거기서 걷고 있죠.

 

지금도나는 개인개인들이 살아내는 일생이, ‘한낱이라는 말이 필요없는 신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치루어 낸 십대 이십 대 삼십 대.… 오십 대 육십 대…. 이런 시간 속에 장소도 다 다르게 각인되어 있겠죠. 그러니까 작품 속에 각인된 장소들은 내 마음 속에 각인된 세상일 거고요. 열다섯 살에 서울에 첫 발을 디뎌서, 이사도 무지하게 많이 다녔어요. 열일곱 번인가 다닌 거 같애요. 그렇게 다니는 동안 갖게 된 골목에 대한 이미지라든지... 그런 게 쌓여있죠. 그게 구체적으로 지명되고, 지시되지는 않는다고 해도요. 서울을 떠나서 다른 도시에 살면서 거기를 여행하다 문득 깨달은 건데요. 국경 너머 다른 도시에 가면 가능하면 최대한 그 도시를 구석구석 알아보려고 살펴보고 찾아가고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어느덧 서울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나더라고요. 내가 서울에 대해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애써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난 거의 강남은 몰라요. 강북서 살았기 때문에, 외국보다 더 낯선 도시예요. 그래서 돌아가면 서울 구석구석을 여행하든지, 잘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디터(: <엄마를 부탁해> 영문판을 발행한 크노프 출판사의 에디터)가 서울에 왔을 때 일주일 동안 나도 서울을 다시 보는 마음으로 돌아다녀본 적도 있었어요.

 

물론 장소들은 작품 속에서 똑같이 등장하진 않아요. 그러나 장소들은, 특히 공간이 어느 소설 속에 등장할 때는 그 작가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화분이 쌓여있는 마당’(: 소설 <화분이 있는 마당>)이나그 마당이 있는 집에 내가 아주 자주 드나들던 어떤 시절도 있었고, 그 시절도 데리고 온 풍경이 있었어요.

 

물론 그때, 내가 그 집을 드나들 때의 상태 그대로 나오는 건 아니에요. <화분이 있는 마당>. 아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느닷없이, “너하고는 앞날을 꿈꿀 수 없기 때문에 이제 그만 만나자그런 편지를 받는 걸로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건 단순한 편지가 아니죠. 자기 세상을 파괴해버리는 편지인 거죠. 그렇게 단절되어가는 순간을 어떻게 견뎌나갔는지를 추적하는 걸로 그 작품이 쓰여졌고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한테 음식을 대접받고, 이야기를 이쪽 사람이 아닌 저쪽 사람한테 하게 되면서 잃어버린 말을 찾고, 치유 받는 그런 소설이 된 거죠. 그러나 공간은, 그런 작품 속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살았던 어느 시간 속에서 내가 봤던 느낌들이겠죠. 작가가 경험한 공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작품에서도 시골과 도시가 같이 나오는데, 언제부턴가 도시 자체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어요. 일부러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이 도시 속에 스며들고 익숙해진 것 같아요.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라, 이들의 불안과 떨림, 슬픔과 좌절이 더욱 크게 와닿았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만나는 나쁨은 거대한 악이라기보다는 소소한 부조리에 더 가까운데요,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더 상처받아야 하는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부조리들이 더욱 사무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일상 속,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과 고독의 풍경에 특히 주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보통 상처라고 간단하게 표현하는데, 사실은 많은 것들이 그렇게이루어져 있어요. 내가 원인을 제공해서 그런 결과를 얻게 된 거라면 내 책임이고 감당해야 되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사실 인생은 도대체 수긍할 수가 없는, 어떻게 이렇게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지? 이런 일로 훨씬 더 많이 이루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작품을 쓰면서는 수긍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비관, 절망 분노, 저항감, 이런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고 해도, 내가 문학작품에 대해선 끝없는 것들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작품을 쓰고 나면 오히려, 분노보다 더 먼 것을 가리켜요. 분노에 함몰되지 않아요. 더 먼 시간을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문장 안에서, 찾아내게 되고 발견하게 돼요. 우리가 어떤 길을 간다면, 가는 동안에 보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날카로운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치워놓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우리가 모두가 다 그렇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예기치 않은, 너무나 예상하지 않았던, 그리고 인간적으로 생각해볼 때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는지, 그런 질문에 까지도 계속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삶의 일부분인 것 같아요.

 

단순한 상처라는 말로 해결되지 않는 더 깊은 게 있어요. 그것또한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인 거예요.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것들과 함께, 가는 거죠. 대신에 앞으로나아가는 거죠.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느닷없이 이유도 자기는 모른 채 가족을 모두 연쇄살인마에게 잃어버린( : <어두워진 후에>) 상황을 어떻게 감당해요. 그래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폐가에 가서 살던 남자가 너무나도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 한 여자. 그 여자의 모습에서 다시 살아볼까, 도시로 돌아오면 새 신발을 사 신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역할도 역시 사람이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그렇게 상처도 주지만, 다시 돌아가 볼까. 다시 시작해 볼까. 그런 희망도.. 역시 사람이 준다는 거죠.

 

일상은 정말 중요해요 우리한테.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걸로 인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그 여자를 통해서 보는 거잖아요. (어두워진 후에 中) 여자 쪽도 상황이 좋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잖아요. 남자에게 결핍된 부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너무나 가지고 싶어했던 우물도, 여자의 집에는 자연스럽게 있고 한 것처럼요. 그런 것들 것 보게 해주는 것이내 작품의 한 역할이라고, 역할이었으면 했나 봐요. 균형이 이렇게 맞추어지길 바랐고요. 어차피 소설이라는 거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발견해내주는 게 아닐까, 했어요. 삶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요. 새로운, 아주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기도 하지만,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잊어버리고 지나가고 무시해버린 것들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이 작품들에 여기저기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봐요. 수면 위로 떠올라있는 사람들 속에서가 아니라 익명의 존재들. 내가 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존재들이 지니고 있는 강인함, 아름다움, 슬픔. 그 존재들을 통해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발견해나가는 관계로 얽혀있는 게

 

 

 

말하기보다는 듣는, 고요한 인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을 잃은 인터뷰어(<화분이 있는 마당>), 잡지사 에디터이자 아버지의 말을 들어주는 여성(<세상 끝의 신발>), 시어머니의 말을 들어주는 아내 (<그가 지금 풀숲에서>), 10년의 외로움을 나누는 친구(<성문 앞 보리수>) 등의 인물들,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무던히 들어주는 존재들을 보며 소통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인물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듯, 소설 역시 독자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고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많이 등장하죠. 현실에서 결핍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소설 속에 많이 들어가 있을 거예요. 누구 이야기를 좀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어떤 한 존재가 참혹한 상태에 처해도, 자기 이야기를 진실하게 들어주는 다른 한 존재만 있어도, 한 사람만 있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들어주는 것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어요. 소통이라는 것도 사실, 내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되잖아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래야 되는 거고요. 들어야 하는 시절에 우리가 놓여있는 것 같아요. 소설 자체도, 사실은 쓰지만, 듣는 게 아니고 쓰는 거지만, 나랑 연결되어 있는 이 시간을 함께 통과해나가고 있는, 특히 나랑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소설가라고 생각해요. 내가 들은 이야기가 문장으로 탄생되는 경우도 많을 거고요,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더라도 내 작품 속에 등장해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들은 나랑 같이 살면서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이 아닐까요.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느낌으로라든지, 삶을 사는 그 자체의 모습으로든지내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들려 준그런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글쓰기도 계속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독자랑 작가랑도 어떻게 보면 그런 사이겠죠. 듣고 들어주는 관계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각박하고 엄혹한 세상을 사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서로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놀랍습니다. 연쇄살인마의 팬클럽이 생기는 현실이 놀랍지 않은 나날이라, 도요타 자동차 수리비를 받지 않는 주인의 이야기가 더욱 놀라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 작가님께서 해주신, 이웃의 눈까지 모두 치우신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치우지 않고 그냥 둘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연결된 존재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작은 배려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하나씩, 그런 것들이, 내가 한 순간순간의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영향을 준다니까. 인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걸 간직하게 하고요. 내가 계속 치우면, 우리 옆집은 자기도 언젠가 치우진 않을까, 해요. 내가 집을 오래 비웠는데, 누가 치우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 유지되잖아요. 아마 옆집서도 치우지 않았을까. 그렇죠. 같은 길을 가는데 기와나 이상한 게 있으면 치워주고 그러면 돼요. 이런 건 시간도 안 걸리는 일인데.

 

어머니나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내가 듣는 이야기가 그래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내가 겪어서가 아니라 그런 거 같아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해준 어머니가 고마워요. 지금 우리는 반대잖아요. 맨날 조심하라. 그게 안타까운 시대에 살고 있죠.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도 당장 여동생이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나를 만나러 오면 야단치고 그래요. 어린애들이랑 통화하면서도 뭘 조심해라 이렇게 얘기해야 되는 것도 정말 마음 아프죠. 나는 그렇게, 그런 얘기를 별로 안 듣고 성장한 게행운이었던 거 같아요. 우리 어머니는 항상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고 했거든요.

 

우리 어머니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느냐고 하면, 서울이라는 곳에 어머니가 혼자 왔을 때, 어머니가 길을 잘 모르니까 오빠 집까지 모르는 사람이 데려다주고 했어요. 시대가 그랬는지, 지금은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기는 하겠지만. 그런 것들, 별볼일 없는 것 같은 삶들이 어느 순간순간 발견해내는 선의의 빛. 그런 것들이 그냥 지나가지 않아요. 그게 쌓여서, 그때 만나고 헤어져 다시 볼 일이 없는 그 사람한테도 간직되는 순간이 된다는 거죠.

 

 

 

 

 

 

소설 속, 독자의 자리

 

소설을 읽으며 먹는 것이 곧 삶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화분이 있는 마당에서 여인이 말을 잃은 주인공에게 차려준 상차림이 그랬고, ‘어두워진 후에에서 낯선 남자에게 차려주는 여인의 소박한 상차림이 그랬습니다. 독자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면 어떤 음식을 대접하고 싶으신지요.

 

내가 좋아하는 상은 이런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땐 생일 때.. 받던 밥상인데 삼색나물이나, 조기, 김 구운 거. 그리고 미역국, 맑은 미역. 그리고계란찜이나그렇게 있는 밥상 너무 소박한가?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밥상이에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밥상이면, 이게 선물도 그렇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선물이면 실패하는 게 없듯이. 장조림도 넣을까? (웃음)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데요, 어떤 소설로 만나뵐 수 있을지, 다음 작품 이야기를 살짝 여쭤봐도 될까요?

 

2011년은 작가생활 27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는 글을 쓰지 않는 안식년을 가져보자 했던 해예요. 그러니 2012년에는 이제 글 쓰는 해를 만들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이라고 할 순 없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또 마음 안에서 부딪치고 있어요. 그 전에... 단편을 한편 쓸 거예요. 제가 뭘 보고 느꼈다고 해서 그게 바로 작품화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오래오래 쌓이고 나오고, 되기를 기다리고, 그래요. 2011년이 나한테 굉장히 많은 것을 새롭게 보게 하는 해이기도 했어요. 그 이야기들이 작품화 될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에 내가 쓰려고 한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요.

 

 

 

알라딘에도 독자분들께서 남겨주신 메시지가 많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라고 말씀해주시는 주은맘님, 신경숙 작가님을 닮고 싶어 작품을 필사중이라는 april, 글이 써지지 않을 때마다 작가님의 글을 읽곤 한다는 정은혜님, 구로공단, 쪽방생활, 산업체 학교 등의 글을 읽으며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벌꿀함유님, 신경숙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온 마음으로 울어보았다는 지니님. 여고시절 만난 신경숙 작가님의 글이 평생 지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책읽는장여사님. 이렇듯, 신경숙 작가의 글을 아껴읽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분들한테는,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 정말 질문을 수없이 해보고, 질문을 하고 난 다음에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그때부터는 그 일에 항상 가까이 가려고 하고.. 그 일에 자기 자존을 깊이 걸었으면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인회 같은 데 가면 독자 분들이 가끔 찾아와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요. 내가 <깊은 슬픔>이나 <풍금이 있던 자리> 냈을 때 나이가 서른이었으니까, 그 무렵부터 계속같이 해왔던, 해왔다고 했었던 분들이죠. 얼굴이 아무래도, 시간이 쌓여있는 얼굴로 변했겠죠. 그럴 때면 같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고 그래요. 아까 말했듯이 시간을 함께 통과해온 사이인 거잖아요. 내 작품들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지금 20년 전에 썼던 작품도 지금 독자들과 함께 호흡할 때 내가 가장 기쁜 건, 그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줬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한 묘한 안도감그런 것도 있고 그래요. 독자가 나에게는 매우 큰, 힘이죠. 우리도 인제, 강이 이렇게 있다면작품이 가운데에, 강처럼 있다면 양쪽에 서서 서로 빛이 나게 살자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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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겨울, 홍대 만화 카페에서 꽁지머리를 질끈 묶은 최규석 작가를 만났습니다. 사계절 출판사, 알라딘, 작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풍성한 시간이었습니다. 최규석 작가의 활달하고 까칠한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은 알라딘 공식 트위터 (https://twitter.com/@aladinbook )를 통해서도 중계되었습니다. 사진 촬영은 사계절출판사에서 도움 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청소년 MD 김효선

 

 

 

 

 

 

지금은 없는, 이야기?

 

 

반갑습니다. 이번 책,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신간 출간 이후, 독자들의 반응을 실감하시는지요?

 

8년 동안 알아보는 사람이 두 명인데, 반응은… (웃음) ( :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최규석 작가 특유의 꽁지머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데뷔 후 딱 두 분이 길에서 알아보셨다는 얘기를 특유의 어투로 전해주셨습니다.) 사실 책 내는 사람이 독자 반응을 직접 실감하기는 쉽지는 않아요.

 

 

 

우화라는 형식을 택했다는 점이 충분히 모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만화가 아닌 우화 형식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대체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유형의 책에는 TV동화에 나올 법한 교훈을 기대하는데요, 우화 형식을 빌어 이토록 까칠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발상의 전환으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시작하는 작가의 말에서 <마시멜로 이야기>등을 언급한 부분은 놀랍기도 했고요. 이번 우화집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군대 있을 때였나처음으로 그런 류의 책을 읽었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책을 취향에 맞춰 볼 수 있는데, 군대 가서는 들어온 것만 봐야 되잖아요. 그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이런 책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책이 팔리고 있다니. 그 이후 세상에 이런 부류의 책이 엄청나게 나온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었고요. 동화 행복한 세상>은 아르바이트로 그림 그리는 일도 했었어요. 시나리오들을 보니까 마치 진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적혀있는데요, 실제 있었던 일이라도 나쁜이야기인데근데 그걸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틀어준대. 너무 끔찍하고 무서웠어요. 이거를 좀, 비슷한 형식으로 똑같이 맞받아치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화라고 하는 장르 자체가 정치적인 연설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었고요, 기존의 따뜻한 이야기랑은 사실 관계가 없죠. 그렇지만 최근엔 그런 유의(비판하는) 우화들이 사라졌어요.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 걸 다시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근데 아까 얘기했다시피(TV동화 같은) 모든 걸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사고방식, 그런 사상을 전파하는 사람들은 우화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잖아요. 굉장히 긴 우화. 그렇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엄청 논리적인 책들이니까. 그들과 같은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똑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오래 가잖아요. 우화라는 게. 물론 성공적인 우화여야 오래가는데, 비유가 적절하고, 짧으면 엄청난 기간 동안 살아남죠. 어떤 세밀한 비판 같은 경우는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잊혀지지만, 우화는 시기가 지나고 나도 유지가 되니까요. (비판하고 싶은 무엇에 대한) 분위기가 끌어 오를 때 누군가 이 우화를 다시 생각을 하겠죠? 그런 기대감? 그럼 재밌겠다? 하는 생각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까운 미래, 언젠가는 없길 바라는우리들의 불편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와 같이 제목을 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제목은 편집자님께서 던져주고 의미를 부여하라고 하셔서 (폭소)

 

편집자 : 그 이후에 던져줬는데, 아 괜찮다 싶었던 계기가 있잖아요? (폭소)

 

, 일단 느낌이 좋았어요. 왜냐하면은 <습지생태보고서> 때의 좋은 기억이 있어서요. 그때도 순수하게 사장님 아이디어는 아니었고, 그렸던 꼭지를 가지고 제목을 정한 거였는데, 그 제목도 좋았으니까요. 실은 한 꼭지,  <지금은 없는 동물>을 보고 <지금은 없는 이야기>라는 제목을 받았어요. 제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필요한 이야긴데, ‘지금은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물론 다들 현실을 그리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은 있지만, 직설적으로 반영해내는 이야기가 드물어졌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전부터 많이들 써먹던 방식이 사라졌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불과 20, 10년 전 정도까지만 해도, 단편 애니메이션에 우화적인 형식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전통들이 유치하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국에서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직설적인 것에 낮은 점수를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숨겨야 고급스럽다는 생각, 그게 뒤틀린 기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결론적으로 제목은 있어야 되는 이야기그런 의미로 받아들였죠.

 

 

 

 

우화, 이 까칠한 매력

 

 

텍스트만 읽는다면 한시간 안에도 읽을 수 있는 양인데도, 실제 읽는 데에는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읽고 좀 멈추고, 잠시 후에 다시 읽어야 할 정도였어요. 천사를 죽이는 장면 같은 게 그랬는데, 실제로도 논란이 되었었다고 들었고요. (, 많이 까였죠.) ‘지금은 없는 동물이야기 등도 충격이었어요. 압축적인 형식의 이야기라 오히려 장면의 충격이 더한데요, 이러한 감정적인 자극, ‘충격을 전하신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그냥이야기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일 거고요, 두번째는 제가 워낙에 독자 입장일 때 그냥 무딘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제 기준으로 창작을 하게 되면, 사람들하고 받아들이는 게 좀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공룡(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저는 웃긴 이야기. 쾌활한 개그,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화를 내더라고요. 사람마다 다르니까, 감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저한테 있는 성격 중의 하나가 실질적이지 않은 충격에 대해서 좀 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본능이 있어요. 실제로 일어나는 끔찍한 일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지 않으면서 둘리라는 가상의 캐릭터, 천사라고 하는 상상 속의 존재가 다치는 것에만 이렇게까지 반응할 필요가 있느냐, 하고 나름 반항하게 되기도 하고요. “당신들 왜 그래요?” 하는. (웃음) 문화 영역 안에서는 가능한 모든 공포, 가능한 모든 끔찍함이 자유롭게 통용이 되고, 현실에서는 그런 걸 하나하나 없애가는, 그런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볼 때는 뒤집어진 것 같아요. 아니 지금, 파업 한 번 했다가 열아홉 명이 죽는 세상에서, 이 정도를 가지고 끔찍하다고 할 것은 없죠. 그런 불만이죠. 작가가 독자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 안 되는데, (웃음) 독자들이 문화영역에 대해서는 무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웬만하면 모든 걸 취향의 잣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문학에서 분노했던 것들을 현실에 반영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인상적인 문장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더는 가위바위보라는 규칙을 지킬 수 없는, 손을 다친 사람에게까지 규칙이란 언제나 지켜져야 하니까 규칙인 거야라고 말하며 면박을 주는 장면이 무척 마음 아팠습니다. 입시 제도에서 농어촌, 장애인 전형 같은 작은 배려에 대해서까지 불평등혹은 역차별을 말하는 모습도 겹쳐졌고요.

 

규칙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한 거죠. 규칙의 목적이 중요한 거잖아요. 판결도 그렇죠. 법을 만든 목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잖아요. 이미 만들어진 규칙에 붙잡힌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교육을 시키고, 대학에서 사람을 뽑아서 교육을 하는 이유가 뭐냐, 하는 생각이 들고요.

제가 볼 때는 그러니까 실제로 법이라고 하는 게, 사람들을 억누르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제일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불법파업이라던가, 이런 거에 대해 사람들이 비난을 하잖아요. 그것도 착한 사람들이. 아니 할 말이 있으면 합법적으로 잘 하면 될 걸, 왜 불법적으로 얘기를 하느냐고 하고요.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죠.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모든 걸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파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합법파업이 되기 힘들잖아요. 그런데 규칙을 만들어 놓고 넘어서면은 비난을 한단 말이죠. 법을 왜 만들었냐를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파업은 노동자들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데,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되면법인데 지키라고 말을 하려면 애초에 다른 수단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파업이나 시위에 대해서 착한 사람처럼만 얘기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세상 사람 다 착하면 뭐가 될 것처럼 말하는데, 아니라는 거죠. 계속해서 새로운 법들이 생겨나는데, 점점 자기인생에 올가미를 만드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제일 상위에 있는 기준,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의, 그런 게 있어야 하고 그걸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중심엔 그런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 우리 공동체가 지녀야 할 제일 상위에 있는 기준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너무 긴 이야기라서요 (웃음) 다음 작품을 통해서… (폭소)

 

 

 

 

독자와 나눈 이야기 1 -최규석, 당신은?

 

여기서부턴 알라딘 독자분들의 질문입니다.

 

Q. 가위바위보는 잘 하시나요?

 

요즘 하루에 한번 하고 있어요 가위바위보. 작업실에서 커피잔 놓는 걸로요. 몇 번 하다 보니 가장 처음 내는 게 뭔지를 까먹었어요. 보통은 찌를 많이 내더라고요. 평소에 묵을 먼저 내서 이긴 경우가 많아요.

 

 

Q. 최규석 작가는 아침형 인간이신지요?

 

오늘도 ( : 약속시간은 오후 4시였습니다) 늦잠을 자서 늦었습니다…. (일동 폭소)

 

 

Q. 꽁지머리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편해요.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 머리가 보통 빡빡머리거나, 모자를 쓰거나, 묶거나. 이 중 하나예요. 꽁지머리가 편한 건 머리를 매일 안 감아도 된다… (웃음) 곱슬머리고 해서 만지고 바르고 하지 않으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꽁지머리가 제일 편한 스타일이죠. 가지고 있던 바리깡이 있었는데, 친구가 이사를 가면서 가져가버려서 그래서 머리를 못 깎아서 기르게 되었죠

 

 

Q. 프로필을 보니 참 미남이신데, 콧수염을 기르시는 이유가 있는지요?

 

콧수염도 결국 게으름의 소산인데요, 면도를 하기 시작하면 항상 해야 되잖아요. 약속이 잡히거나하면 해야되니까. 사실 이건 표면적인 이유고, 심층적인 이유는 길러도 되기 때문이죠. 직업적인 자유로움이랄까요. 일종의 과시 행동인 것 같기도 해요. 모두가 칙칙하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자랑질이 아닐까… (웃음)

 

 

Q. 학생들도 가르치시는데 혹시 학생들 작업물 보시면 요즘 학생들 경향이 느껴지시는지요?

 

요즘 학생이라고 따질 것 없이 경향이 항상 비슷하죠.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일단은 다양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 때는 자기를 감동시켰던, 정점에 있던 한 작품에 대해 만들기 때문에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모두가 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타가 될 작품을 구상을 하죠. 그러다 나이가 들면 저 같은 사람이 되기도… (웃음)

 

 

편집자 : 작가님은 옛날에도 그런 학생 중 한 명이 아니었던 건가요?

 

저는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신기한 거예요. (웃음) 나는 왜 그런 학생이 아니었지? 그러니까 누가 중3병이라고 하더라고요. (폭소) 저는 튀고 싶었던 거죠. 튀는 아웃사이더가 되고 싶었던 거겠죠. 학교 다닐 때도 전혀 다른 작업을 했었어요. 했었죠. 그때부터 르뽀 만화 같은 게 하고 싶기도 했고.

 

Q. 트위터랑 페이스북은 안 하시죠? 블로그는 계획이 있으신지.

 

블로그는 조만간 옮겨갈까. 생각중이에요. 지금은 홈페이지를 운영하는데, 더 이상 시스템이 안 받쳐주는 것 같더라고요. 오류가 생겨서, 귀찮아서 넘어가야 하겠어요.

 

 

Q. 존경하는 만화가나 어렸을 때 너무 좋아했던 만화가 있으신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만화가 뭐가 있었지? (아니면 지금 아끼는 작품은 뭐가 있을까요?) 훌륭한 작가가 갑자기 너무 많이 생겨가지고, 기쁘면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윤태호 선생님을 제일 존경해요. 지금 현재, 한국 작가 중에는. 다른 잘나가는 작가들, 예를 들면 주호민 강풀 하일권 이런 사람들 볼 때는 부럽고, 훌륭하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 나랑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해요. ‘이 다른 게 아니고 길이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래도 윤태호 선생님은 저와는 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규석이 말하는 최규석의 세상

 

결혼 이후 달라지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번 책도 본래 조금 더 일찍 나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결혼 등을 겪으시며 미뤄졌다고 들었어요.

 

초기엔 적응기가 필요했죠. 항상 해가 뜨면 퇴근을 하는데, 집이 사람이 있으니까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일을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늦지 않게 집에 가야 되는, 그런 상황이 생겼죠. 요즘은 다시 가고 싶을 때 가요. 결혼 전하고 비슷한 패턴이라, 아무 차이가 없어졌어요. (웃음)

책 작업은 저도 빨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대부분의 작업이 되어 있던 거고, 고민할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조금씩 수정하는 게 오히려 더 오래 걸리더라고요. 처음에 기획해서 떠오른 느낌 대로 하면 되는데, 이미 한 거를 다른 느낌으로 바꾼다고 하는 게 어려웠어요.

 

 

 

 

우화보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은 세상입니다. 최근 최규석 작가를 가장 놀라게 한 뉴스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일 아픈 뉴스는 아까 얘기했던 그 쌍용차 뉴스일테고요, 근데이게 놀라운 뉴스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죠. 많긴 또 너무 많았지. 제일 놀라웠던 뉴스는 나무 사소한 뉴스라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몇 달 된 거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뭔가를 안 해가지고굉장히 짧은 뉴스가 되어서 나왔었어요. 대국민 성명 발표였던가? 무슨 작은 일이 생겼는데 발표를 안 했는데, 그걸 안 한다고 뉴스가 나왔어요. 그래서 깜짝 놀랐죠. 놀랍지 않나요? 얼마나 뭘 했으면어떻게 안 하는 게 뉴스가 될 수가 있지. 굉장히 놀라웠었죠. 더 놀라운 건 사람들 반응이었어요. 사람들이 정말로 물들었구나. 이 분위기, 이 상황에 얼마나 익숙해졌으면, 뉴스 거리도 안 되는 거를. 뉴스라고 내보내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었죠.

 

 

 

 

어떤 분들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앞부분 에피소드 몇 가지에서만 최규석 작가의 그림이구나하는 게 느껴지고, 그 뒤에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다양한 시도를 이 책을 통해서 해보고 싶으셨던 건가요?

 

원래 작품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긴 해요. 두 가지 목적이 있죠. 일단 그게 재미있으니까, 또 스타일이 이야기에 맞아야 되니까. 스타일 하나를 가지고 계속 발전시키는 작가 중 대가가 많죠. 쌍뻬 같은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같은 스타일인데 점점 훌륭해지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지잖아요.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한번 하고 나면은 좀 지겹다고 할까, 지겹다기보다는 다른 걸 해보고 싶은 거죠. 이걸 어떻게 그리는 거지? 궁금하거든요. 작품으로 나온 적은 없지만 연습장에 귀여운 캐릭터, 미사일 가슴 그런 걸 연습하기도 했어요. (웃음) 다른 만화를 보다가도 어떤 감성으로 그리면 이런 그림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면 그 그림의 법칙을 따라가보고 발견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스타일이 고정이 안 되고 계속 바뀌네요. 대가가 되기 힘든 성격이라고 봅니다. (웃음)

 

 

 

 

<나는 꼼수다>가 화제인데요, 나꼼수팀에서 제작한 가카달력에도 만화가 열두 분께서 참여하셨습니다. 이렇듯 만화를 그리며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드러내는 다른 작가분들도 많이 계신데, 작가로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때론 부담스러우시진 않으신지요.

 

, 달력. 할 말이 많아요. 왜 안 부른 거야, 나 티셔츠도 공짜로 그려줬는데.. (웃음) 옛날에 일년 전쯤 딴지에서 티셔츠 만들 때 제가 한 적이 있어요. 판매가 좀 부진했던 것 같긴 한데… (폭소) 그래도 연락을 할 수도 있지 않았나. 강풀 작가께도 연락해서 따지고 그랬어요. 주호민 작가한테도 연락을 했어요. “야 그 연락이 어디서 온 거야?” “글쎄요? 도영이형(=강풀작가)…” 그래서 강풀 작가에게도 전화를 했죠. “형 그거 누가 연락이 온 거야…?” “…모르겠다.” 그래서 잠깐 슬펐었어요.

 

만화가들이 눈에 띄게 계속 활동을 했었죠. 벌써 몇 번째야. 효순이 미선이때부터, 탄핵, 악법, 사대강 등등. 촛불집회 때도 있었고. 어쨌든 계속 활동을 하죠. 일단 더 쉽게 눈에 띈다는 장점 때문에 만화가들의 활동은 쉽게 기억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만화가들은 기본적으로 좀더 감정에 다가서는 그런 종류의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빨리 확산되고, 더 오랫동안 기억되고 그런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또 글 위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만화라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성향 차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얘기했다시피 분석하고 비판하고, 그런 것들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잖아요. 사실 만화가들은 직업이 만화가일 뿐이지. 기본적인 인식하는 방식이라든지 그런 건 일반인에 가깝거든요.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기능을 가진 대중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 훨씬 더 쉽게 사람들에게 확산이 되는 게 아닌가….

 

 

 

 

최근 최규석 작가가 주목한 책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최근 읽은 책을 추천 받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우화 작업하려고 책을 좀 읽긴 했었어요. <긍정의 배신>,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그런 것들을 읽었었죠. 소재를 찾기 위해서… (웃음) 몇 달 되긴 했는데 괜찮게 읽었던 책은 <사치열병>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전에 창비에서 <부자 아빠의 몰락>이라는 책이 나왔었는데 그 책의 확장판이죠. ‘이라는 우화는 그 책을 보고 만들었어요. 가장 돈이 많은 사람들의 소비패턴이 최하층의 소비패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이에요. 이런 소비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고리를 끊는 방법이 뭐냐까지 제시한.

왜 방법 얘기를 하냐면, 우화를 하면서 갑갑했던 건 문제점을 지적만 하다보니, 사람들이 회의적이 되거나 냉담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많이 느꼈어요. 어떤 독자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경쟁체제에 이미 익숙해진 한 개인이 이 이야기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개인이 일상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없거든요. 그런데도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물으시니까. 우화라는 형식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들이는데, 그 이유는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까마귀 이야기를 보고 분수에 맞는 인생을 살아야 된다, 이런 결론이 나면 안 되는 거죠. 애초에 공작이 못 들어오게 막는 방법이 제일 쉽잖아요. 제일 먼저 시작한 사람들의 속도를 줄여주는 게 필요한 건데, 우화 형식에선, 사고가 확장되기가 쉽지가 않죠. 그런데 대한 불안감, 불만그런 걸 좀 느끼고 있어요. 어쨌든 너무 막 회의주의적인 태도를 담은 책이라고는 생각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만 이 이야기를 읽고, 이 상황을 보고 슬퍼하고 넘어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 책임이 아니다. 책을 만드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어요. 책에 안 담았으니 느껴달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웃음)

 

 

 

 

 

 

 

 

 

 

 

 

 

 

 

 

 

 

 

독자와 나눈 이야기 2 -최규석, 당신의 이야기

 

 여기서부터 다시, 알라딘 독자 질문입니다.

Q. 글을 쓸 때는 어떤 것에서 모티프를 얻으시는지요? 책상에서, 삶 속에서? 혹시 일상적인 것에서도 영감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일상은 아니에요. 일상을 소재로 삼으면 훨씬 더 가벼운 작품들이 되겠죠. 현실이 모티프죠.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 이런 게 제일 큰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놀랄 일인데 안 놀란다거나, 안 놀랄 일인데 놀란다거나,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고 넘어간다거나. <습지생태보고서> 할 때 그런 게 되게 많았죠. 사람들이 뭔가를 반응을 해놓고, 일상으로 흘려 보내는 것들? 엄청나게 중요한 건데, 그게 중요하다는 걸, 삶의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거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들. 저 사람은 조금 전에 굉장한 심리적인 변화를 겪었는데 안 겪은 척 넘어가네? 이게 뭘까? 하고 고민하는 과정들. 그런 게 되게 재미있어요. 통속적 감정을 다루는 게 제일 좋은데, 그걸 못하고 있어가지고. ‘여기서 일어난 특별한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배경을 그리고 싶고요, 그렇다 보니 주인공도, 사건도 하나도 안 특별한 이야기가 되네요.

 

소재 선택에서 오는 한계랄까, 능력의 한계는 있어요. 어렵긴 해요. 그래도 제가 하는 작업 방식이 어쨌든 재미있으니까, 이 작업방식을 유지하겠죠. 우화 같은 경우는 거의 책이나 신문, 이런 데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두꺼운 책 읽고 우화 하나 쓰고, 그랬어요.

 

 

Q. 책을 보면 내용이 어두운데요, 실제 성격도 그러신지요?

 

작가들은, 어두운 얘기를 하는 작가일수록 밝은 경우가 많아요. (편집자 - 밝아요. 웃겨요. 헛소리 많이 하고. 웃음.) 실제로 작품도 그렇고 성격도 그러면 친구 하나도 없겠죠. 그리고 제 작품이 어두운 건 아녜요. 웃기잖아. 습지 이런 거개그맨들 만나보면 엄청 심각해요. 실제로. 작품이랑 작가의 성격은 실제로 많이 다르죠.

  

 

Q. 유머감각과 개그코드의 기원이 궁금합니다

 

군댑니다. 군대. (웃음) 군대 가기 전에는 진짜 재미없는 사람이었어요. 진짜 진지하고, 날카롭고. 논리만 앞세우는, <습지생태보고서>의 최군 같은, 그런 캐릭터였죠. 굉장히 윤리적인 사람. 칸트적인 인간이었어요. 웃지 않으면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요. 선행이라는 건 선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거니까, 제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죠. 지금도 그런 성격이 남아있긴 한데요, 그렇다보니 제가 하는 이야기도 삭막했어요. 그만큼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제가 옳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요, 군대에 있으면서 옳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이제 안 거죠. 도둑질도 막 하고, 다른 소대 가서 훔쳐오고, 그랬어요. 헌병 출신이어서 나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군인이 영창에 들어오면 기합도 줘야 되고. 반말로 수감자들한테 말도 하고요. 헌병이라고 해서 수감자들에게 반말을 해서는 원래 안 되는 거잖아요. 미결수예요.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예요. 재판이 끝나고 죄인이라고 판명이 나도 반말을 할 수는 없고, 욕을 할 수는 없는 건데. 그래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내 윤리를 관철시키기가 굉장히 쉬웠던 거죠. 왕따 시키면 당하면 되고, 학교 쫓아내도 취업할 것도 아니고, 아무 문제가 없었죠. 잃을 게 없으니까 윤리적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군대에서는 교도소 가고, 맞아야 되고, 그러다 보니 자신의 한계가 느껴졌고, 이런 걸 느끼고 나니 유머감각이 생기더라고요. 정말 진지하게 직시해버리면 너무 인생이 고달파지겠죠. 그래서 보긴 보는데 웃기게 보는 거죠. 스스로를 비웃으면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경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유머감각이 생겼습니다. (웃음)

 

 

Q. 최규석, 당신이 생각하는 청춘이란?

 

청춘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묶을 수 있는지는 사실 의문이 들어요. 다만 접점을 넓혀가며 상처받고 알아가고 놀라고, 그런 시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춘기때는 자기를 알아가는 시기라고 한다면, 청춘, 청년기때는 세상을 알아가면서 부딪치는 자기를 인식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 시기를 벗어나고 나면 더 이상 잘 안 아프거든요. 그때 최대한 자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놓지 않으면 좀 갑갑한 인생을 살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요. 저도 그때는, 언제나 인생이 똑같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급할 게 없다, 나중에 하면 되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때 해야만 가치가 생기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Q.  밝고 경쾌한 작품을 할 생각은 있으신지요?

 

충분히 밝고 경쾌하다고 생각해요. 밝고 경쾌한 작품을 안 한 건 아니죠, 했었는데.. (웃음) 작품의 스타일은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전. 이창동 감독에게 <스파이더 맨>을 만들라고 하진 않잖아요. 이상하게 만화가한테 그런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홍상수 감독한테 다른 거 할 생각 있냐고 묻진 않잖아요. 만화가 밝고 명랑하고 그래야 한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고요. 이 작가한테서 이런걸, 저 작가한테서 이런 걸 택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대신 희망적인 건 해보고 싶어요. 밝고 명랑하진 않더라도, 제 작품에서 뭔가 진짜 희망이랄까, 이런 건 못 보여준 것 같아서요. <습지..>도 마지막에 야매로 (웃음) 끝낸 거라서. 진짜 묵직한, 땅바닥에 뿌리를 내린 이런 희망은 없었거든요. 얄팍하게, 포장지만 씌워 끝을 냈는데. 저도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하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희망의 지점,을 찾아내면 될텐데 내 개인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잘 못 찾겠어요.

 

 

Q. 포털쪽에 신작을 연재하실 생각이 있으신지? 웹툰을 그릴 생각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웹툰, 하고 싶죠. 하고 싶은데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네이버나 다음 사람들… (대폭소) 청소년들, 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봤음 좋겠다 싶은 그런 작품의 경우에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기존 작가이기 때문에 어디에 하자고말하는 게 어려운 건지, 아니면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 프로세스가 어려운 건지, 좀 어렵긴 하네요. 만화가 하면 일단은 청소년들의 우상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 데서 오는 허탈함이 있죠. 도대체 여고생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 (폭소)

다른 후배 작가들은 팬들이 보낸 쪼꼴렛이 와있다더라, 팬클럽도 있고 팬카페 막 이런 것도 있는데 저는 그렇진 않거든요. 이상하다, 나는 왜 팬카페가 없지? 생각해보니 팬의 연령층이 문제구나, 싶더라고요. 소녀팬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털로 가야한다는 강한 압박을 느끼고 있어요.

아까 처음 질문해주신 것처럼, 독자들의 반응을 알기가 힘들어요. 독자분들이 격하게 반응하고, ‘울었어요…’ 하는 내용의 팬레터가 온다거나그런 걸 위해서는 포털로 가야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물론 포털로 간다고 해서 그렇게 될지는 사실 모르겠습니다. 받아줄지도 모르겠고… (대폭소) , 네이버에 40대 남성 독자층을 끌어들일만한 작품이 없다고 하는데, 그 부분은 제가 메꿔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웃음)

 

 

 

 

 

끝나지 않는 이야기

 

앞으로도 우화작업을 계속하실 생각이신지 궁금합니다. 현재 작업중인 것이 있다면 미리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종종 할 생각이 있어요. 작업 자체가 재미있고요, 간간히 하고 싶어요. 현재 작업중인 건다큐멘터리 만화잡지고요.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단편 하나를 급하게 했고요. (: 현재 최규석 작가의 단편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책에 실려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장편해야죠.

 

 

 

 

 

알라딘 저자만남도 예정되어 있는데요( : 12 19, 이리카페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렸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게 될 <돼지의 왕>의 연상호 감독님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셨는지요?

 

연상호 감독이 <습지생태보고서>의 녹용이잖아요 (웃음) 연상호 감독의 여자친구도 처음엔 의아해하다가 상호와의 교제가 길어지며 녹용이를 실감하고 있다고 해요. 근데 정말 닮았어요. 사슴과 인간이 어떻게 닮았나, 하시겠지만 진짜 닮았어요.

 

두 작품 모두 충격적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네요.

 

충격은 돼지의 왕이 클 수 있는데, 세밀함에 있어서는 우화집이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폭소)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네요. <돼지의 왕>이 훨씬 잘 나가기 때문에… (웃음) 책에도 개와 돼지라는 우화가 실려있는데요, 그게 원래 돼지의 왕 오프닝으로 들어갈 목적으로 만든 거였어요. 주인공 철이가 만든 우화인 거였죠, 원래 컨셉은. 그러므로 그 작품이 좀 유치해 보인다면 시적 화자가 중 1이기 때문에, 1을 상정하고 만든 거다.. 그런 변명을 하고 싶고요. (웃음)

 

 

 

알라딘 독자, 특히 알라딘 서재분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고 있는데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백 소녀팬 부럽지 않은, 훌륭한 알라딘 독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알라딘에만 가면 국민작가라는 게알라딘에서만큼 팔려주면 제가 거의 공지영 작가처럼 되지 않을까… (대폭소) 알라딘이 국내 1위가 되면, 저도 따라서 국민 작가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웃음) 그러니 알라딘 분들, 알라딘 독자분들 그리고 알라딘 승승장구하시길. 제발다들 부자되시길가슴 깊이 기원하고요. (대폭소) 숨은 여고생 팬도, 숨어있지 말고 격하게 반응해달라고 전해주시고요.

평소에 책을 많이 보는 분들이 보면 감흥이 적으실 수도 있는데, 책을 잘 안 읽는 분들이, 감동을 받으시더라고요. 책이 나온 후 누나들한테 책을 돌렸는데요, 30-40대 정말 생활인인 분들이, 그동안 제 책을 주면 수고했다’, 아니면 왜 맨날 이런 것만 하니?’하던 분들이 이번 책은 정말,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하시는 걸 보면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러니 평소에 책을 안 보시는 분들에게 권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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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규석 작가, 인터뷰가 떳어요!
    from 엄마는 독서중 2012-01-14 13:01 
    우연히, 정말 우연히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클릭했는데, 최규석 작가 인터뷰가 올라 있었다.  한국소설/시/청소년MD l 2012-01-10 19:40 http://blog.aladin.co.kr/line/5346044 자칭 큰누나답게 일빠로 댓글을 남겼다.^^알라딘의 최규석 매니아라면인터뷰의 마지막 문단에 격하게 공감한다에, 김어준처럼 500원 건다.ㅋㅋㅋ인터뷰 기사를 읽으셨으면 댓글에도 인색하지 말기를...우리가 비록
 
 
순오기 2012-01-1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인터뷰가 올라왔는데 몰랐네요.
그래도 댓글은 자칭 큰누나답게 일빠! ㅋㅋ
마지막 문단 격하게 공감하며~~~ 알라딘이 국내 1위가 되기를 두손 모아 기원합니다!!^^

순오기 2012-01-14 12:22   좋아요 0 | URL
다른 작가들은 인터뷰 사진도 올려주드만, 왜 왜 왜~ 여긴 사진이 하나도 없어욧?ㅜㅜ

한국소설MD김효선 2012-01-18 17: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최규석 작가님께서도 순오기님께 감사드린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사진은 서재 규격에 맞지 않아 저자파일에 넣었습니다. 아래 주소에서 봐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interview.aspx?AuthorSearch=@174403&InterviewId=141

잘잘라 2012-01-14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사진 없는 인터뷰 기사는 무횹니다 무효!!!!
^^

한국소설MD김효선 2012-01-18 17:20   좋아요 0 | URL
헉.. 사진 추가해 두었습니다. ^^;

수퍼남매맘 2012-01-1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보고 작가의 전작이 궁금해졌습니다. 저랑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사진도 함께 올려 주세요. 꽁지 머리 보고 싶습니다. 여고생팬은 아니지만 여기 40-50대 팬들을 무시하지 말라구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2-01-18 17:21   좋아요 0 | URL
최규석 작가님도 '누님'들의 파워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진 추가했습니다.

책가방 2012-01-1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 여중생 팬이 둘이나 있는데...ㅋ
팬도 여러 종류라... 초콜렛 보내는 열정은 없어도 찾아서 읽는 열정은 있답니다.
40대 남성도 하나 있긴 한데 책의 용도가 베개정도라... 규석님의 책을 추천하면 읽어줄까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2-01-18 17:21   좋아요 0 | URL
40대 남성 독자가 특히 자신있다고 하시니, 괜찮지 않을까요? ^^; 주변 분들께도 추천해주셔요. 저도 놀라워하며 읽었답니다.

라로 2012-01-16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순오기님 떄문에 다는 댓글,,,사진 빨리 올려주세요,,,ㅎㅎㅎ

한국소설MD김효선 2012-01-18 17:21   좋아요 0 | URL
사진 추가하였습니다... ^^;;
 

어느 가을, 홍대 카페에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소설집을 낸 김경욱 작가를 만났습니다. 소설과 소설쓰기, 그리고 소설 읽기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진 촬영 등은 창비 출판사에서 수고해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한국소설 MD 김효선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안에서

 

 

처음 책을 봤을 때부터, 제목이 강렬하고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표지의 이미지도 그렇고요. <신에게는 딸이 없다>라는 책도 있는데요, 표제작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의 제목을 지으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라는 게 서양 속담이에요. 다른 책을 읽다가 그 문장을 보고 문장이 의미심장해서, 언젠가는 한번 제목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그 제목에 맞는 내용을 구상하게 되어 제목을 붙였죠.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하드보일드하다는 느낌입니다. (네 그렇죠. 무겁죠. 심각한 얘기들 같고, 진지하고.)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에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보일 듯 한하고요. 전작은 연애소설 <동화처럼>이었고,  (연애소설도 이전 소설보다 말랑한 거였는데) 이후 유독 하드보일드한 면이 많은 소설들을 묶어내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네 그렇죠. 그게 조금 더 이제까지 제가 써오던 것에서는 튀는 소설이죠. 시기적으로는 이번에 써온 게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쓴 글이에요. 장편은 2009년에 썼고요. 그러니까 장편 쓰기 전부터 써오던 글이고, 또 장편하고 단편 작업이 다른 것도 있고요.

독자분들 입장에서는 동화처럼으로 저를 처음 접하게 된 분들은 굉장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데, 예전부터 커트코베인, 장국영, 위험한 독서(: 누가 커트코베인을 죽였는가, 장국영이 죽었다고? 위험한 독서)를 쭉 읽어오셨던 분들은 좀 더 하드보일드해졌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표제작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동 성폭력과 복수라는 주제는 무척 강한편입니다. 현재 발표된 소설보다 자극적이고 강하게, 얼마든지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절제된 느낌으로 쓰신 게 특히 인상 깊었어요.

 

제가 워낙, 절제된 표현을 좋아하고요, 사실은 그 이야기의 모티프가 된 사건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인데,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건의 자극적, 선정적인 내용이 아니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와 관련된 인물들, 혹은 주변의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생각들을 하는가. 거기에 더 초점을 맞췄어요. 그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모습이요. 그 할아버지가 사적인 복수에 나갈 수밖에 없게 된 환경들, 사건을 당한 소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사적 복수에 나선 환경들, 신의 이름으로 감행한 사건, 그리고 복수의 허망한 끝.

여기서 복수가 허망해진 데에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 같은 경우엔 피해잔데, 피해자가 복수를 하지만 여전히 약자로 남는 모습. 이미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이 복수 후에도 여전히 계속 소외되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더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재개발단지의 노인이 믿는 과 아파트단지 사람들이 믿는 이 같은 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 노인의 복수극에서 이게 신의 뜻이다라고 말했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또 종교갈등도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한 노인의 복수극에 이라는 절대자가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노인이 주사위를 던지는 장면, 신의 뜻을 발견했다고 믿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은 그 장면에서는 주사위를 통해 드러난 건 신의 뜻이 아니고 노인의 의지가 드러난 거죠. 결국 해석에도 자기자신의 의지가 반영이 되는 거잖아요. 노인은 그 장면을 통해서 자기의 복수의 정당성을 신의 이름으로 찾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저는 특정한 종교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종교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아요. 종교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종교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어떤 것을 하게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소설에서도 종교를 믿는 인물로 설정하게 되었죠.

 

 

 

 

 

 

김경욱 소설, 천천히 읽기

 

연애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연애의 여왕>이라는 단편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연애소설의 여왕이 쓰는 연애와 이 소설의 연애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99%>에서도, <연애의 여왕>에서도 이들은 나름의 연애를 하고 있는데, 그 연애에도 계급의 문제, 욕망의 문제가 빠지지 않습니다. 소설에서연애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연애라는 것도 다양한 인간관계 중의 하나잖아요. 결국은 관계라는 측면에서 접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의 특정한 부분이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접근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에서 쓰인 이미지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언어로 보여주기보다는 이미지로 보여주시는 장면이 그랬는데, 다시는 복권을 사지 못하는 청년이 마지막 희망을 잃은 모습이라든지, 견고하게 계급을 가른 아파트 단지라든지, 챔피언 허리케인의 마지막 뼈와, 120g의 체중이라든지말하기보단 보여주면서 오히려 더 여운이 길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단은, <태양이 뜨지 않는 나라>의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그렇게 읽힐 수 있다고 썼어요. ( :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김경욱 작가가 생각한 의미와, 인터뷰어가 읽은 의미 사이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복권이라는 건 자기 자신의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탈출구로서 복권을 사는 건데, 복권을 사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요행에 의지하지 않고, 현실을 자기 힘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응시하겠다, 이렇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썼어요. 자신의 힘으로, 자기 의지로 바라보고 요행따위는 바라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그게 오히려 반대로 느껴지기도 했네요. 어머니가 버리고 갔던 동전도 묻어버리는 것에서, 누구에 대한, 사회에 대한 원망도 없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겠다는 뜻으로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이미지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이미지보다는 장면화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한 장면을 여러 가지 장면으로 만드는 걸 고민을 하거든요. 이렇게 장면화하는 방식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방식보다 독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지 않나 싶고요,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여운을 만들어냈으면 해요.

 

 

이전 작중 드라마화된 작품도 여럿 있는데요 (: <장국영이 죽었다고?>, <누가 커트코베인을 죽였는가> 등의 작품이 드라마로 방영되었습니다.) 이 역시 소설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드라마라는 건 전혀 다른 장르이기 때문에, 저는 소설을 쓰면서 영상매체로 옮기기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쓰진 않고요, 대신 소설을 쓸 때 장면화를 고려합니다. 그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말하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각 소설들의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한 장면만 더 보여주면 끝이 보일 듯한데 정확히 그 앞에서 이야기가 종결되는 듯했는데요, 희미한 희망 혹은 희미한 변화의 기운 같은 것이 느껴져서 여운이 더욱 깊었습니다. 단편의 결말을 이렇듯, 완전히 닫히진 않은 상태로 맺으신 이유도 여운과 장면에 관한 것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독자분들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 마지막 하나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두려고 하고요.

 

 

덕분에, 잘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이야기 하나를 읽고 많이 쉬어야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중간에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요, 바로 다음이야기로 몰입하기엔 좀 힘들기도 했고요. 정성을 기울여서 독서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웃음)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인간들이 각 이야기마다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몇몇 이야기의 비극성과 적이 명확합니다. 소설을 읽노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실의 부조리며 비극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소설에 반영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늘, 소설이라는 게 결국은 작가가 살아가는 시대며 사회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사회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동시대 살아가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양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전에 썼던 작품집에서도 그랬고요. 특별히 이 작품집이 그런 생각이 강해진 건 아니고요, 그 전부터 그런 생각을 쭉 가져왔고 그때그때 제가 관심이 가고, 많이 생각했던 문제들. 혹은 제 안에서 생겨난 질문들, 이런 것들을 이야기로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김경욱, 쓰며 읽고 생각하는

 

 

최근에 에세이집이 출간되었습니다.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도 글을 실으셨는데요, 소설가로 산다는 것이 김경욱 작가님께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저는 특별히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고 의식하진 않아요. 소설을 쓸 때는 내가 소설을 쓰고 있구나 의식을 하죠. 단지,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늘, 어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은 있어요. 글로 쓸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출근도 퇴근도 따로 없는 '' 같아요. 어떤 순간, 어떤 상황에 제가 글로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특별히 늘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네 그렇습니다.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글을 읽고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특히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글쎄요. 글쓰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열정인 것 같아요. 내가 꼭 이거를 하지 않을 순 없다 하는 것, 그리고 하는 순간에는 그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것 같아요. 다른 문학적인 창의적인 방법론보다 그런 열정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근래에 김경욱 작가님께서 읽고 있는 책, 그리고 최근 눈여겨보고 있는 작품이 궁금합니다.

 

아 제가, 최근엔 <더블린 사람들>을 다시 읽고 있어요. 거의 한... 20대 초반에 읽었으니까. 20년 가까이 되어 다시 읽고 있는데요, 호기심이 생겨요. 나이가 들어서, 20대 초반에 읽었던 거랑 느낌이 다를 거란 말이죠. 사실은 그런 다른 점이,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울림, 다양한 의미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론 제가 겪어온 세월이 작품이 다르게 읽히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품을 다시 읽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 자신을 다시 읽는 작업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 최근에 읽은 책 중 좋았던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아 작년에 읽은 책 중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라는 책, 칼럼 매캔의 작품이 있어요. 쌍둥이 빌딩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야기. 그 작품이 되게 좋았어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잖아요. 실제로 줄타기 한 사람이 쓴 글이 있어요 <나는 구름 위를 걷는다>, 소설을 읽고 그 책도 읽어보게 되었고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죠.

 

그렇다면 언제나 항상, 늘 추천하게 되는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도 작년부터 추천 많이하고 다녔고요 (웃음) 최근엔 필립 로스의 소설들이 좋더라고요. <휴먼 스테인>도 좋았고, 그 다음에 코맥 매카시도 좋아해요. <로드>도 좋았고

 

 

영문학을 전공하셨잖아요, 특히 영미문학을 좋아하시는지요?

 

영문학을 전공해서는 아니고요, 제가 원서를 읽는 건 아니니… (웃음) 미국소설들이 재미있더라고요. 미국소설의 전통이라고 할까요? 미국소설의 특징이 조금, 장면이나, 보여주기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어봐도 그렇고. 장편이나 단편 모두. 취향의 문제인 것 같은데, 저는 그쪽이 더 좋더라고요.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것보다는 보여주는 방식이요. 그래서 미국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아한다고 말씀해주신 작품이랑, 김경욱 작가님의 소설에서 공통점이 읽히는 듯하네요.

 

그렇겠죠. 제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쓰고 싶을 테니까, 아무래도 영향을 받겠죠.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단편, 혹은 장편 언제쯤 만나뵐 수 있을지요.

 

다음 작품은.. 글쎄요. 제가 늘, 장편- 단편 - 장편 이런 리듬으로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장편을 써야 될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을 해서 (웃음) 장편 한번 구상해보려고요. 아마도 내년 쯤에는 본격적으로 진행을 해야되지 않을까, 이런 정도만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분들이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페이지의 100자평, 리뷰 등에 좋은 말씀을 많이 남겨주세요. 그런 독자분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알라딘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글쎄요. 결국은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를 하는 거니까요, 제가 특별히 독자 여러분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얘기는 없어요. 이 책을 내고 독자 여러분의 얘기나 말씀을 들으면, 그에 대한 답은 다음 작품으로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이 책을 읽으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얘기는 다음 작품에 담겨있을 겁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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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소설 MD의 2011 추천작 중간점검

  2011년에도 수백 권의 책을 (만져) 보았습니다. 수십 권의 책을 만나고, 또 수백 권의 책을 떠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갈 때까지 다시 수백 권의 책을 만나게 되겠지요. 이쯤에서 2011년 중간 결산! 외국소설 MD가 10권을 (링크 참조), 한국소설 MD가 10권의 소설과 5권의 시집을 골랐습니다.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책,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은 책은 눈물을 머금고 선택에서 배제했습니다. 순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귀가도  / 윤영수 / 2011년 3월

   소설다운 소설,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그립다면 이 소설을 눈여겨 볼 일이다.  읽고난 후 무언가 치받치는 이야기. 읽고난 후 어떤 방식으로든 삶이 변하는 이야기. 전통적이고 희박해진 가치에 관한 이야기. 선하고 약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바닷속 거대한 산맥처럼, 끝내 의지하고 사는 이야기. 윤영수의 연작소설집 <귀가도>는 귀갓길은 고단하여 아름답다.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삶의 순간, 예리하게 찍어낸 스냅사진 같은 장면에 마음이 쓰인다. 심상한 지하철 귀갓길 풍경의 속물성(도시철도999)이라든지, 평생을 학대받고 살아온 아내 혜순에게 떠나지 말아달라고 편지를 쓰는 남편의 뻔뻔함(떠나지 말아요, 오동나무)라든지. 윤영수의 소설은 거대한 악, 스펙터클한 설정 없이도 충분히 이야기가 빛날 수 있음을 잘 말해준다.

  작가와의 만남 역시 좋았다. 좋아하는 작품을 읽고,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사오십 명의 사람들이 같은 감상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작가에게 직접 사인을 받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꾸밈도 과장도 없는 정갈한 문구를 다시 본다.  

  특히 인상깊게 읽은 단편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의 일부를 첨부한다. 너무도 착하고 순박한 주인공 유순봉, 그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기천웅씨에게 학대를 받고, TV 솔루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다. TV 너머, 타인의 불행을 소비하는 나는 누구인가. 오프라 윈프리는 매일매일 감사노트를 씀으로써 십대 미혼모에서 세계 여성의 멘토가 되었노라 말한다. 그러나 그 성공담 뒤, 유순봉과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고맙다 말해도 대답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 매일을 "어머니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이가 끝내 "어머니, 사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만 울고 말았다. 

 

책속에서

  피디가 수고했다며 선심 쓰듯 말했습니다. "미림이를 위해서, 성희롱은 딱 한 번뿐이었던 걸로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도 곤란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촬영팀은 뭐했느냐고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고요." 차에서 나오기 전에 나는 남은 힘을 다 짜내어 말했습니다. "저 사람, 지금 잡아가주세요. 되도록 빨리 데려가세요." 어머니, 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려야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가 정말 힘드네요. 중계차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동안 나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칵 죽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곁에 가면 안 될까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152쪽)

  "갖가지 나무들이 있습니다. 어떤 나무들은 모양은 볼품없지만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쭉쭉 하늘로 뻗어올라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나무도 많고요 그들이 다같이 모여 숲을 이룹니다." 내가 말을 덧붙였습니다. "나무들끼리 서로 화내거나 싸우지 말고 잘 어울려 살면 좋겠습니다. 웬만큼은 양보해가면서요." "그럼요 유순봉씨 말이 맞습니다." 의사의 칭찬에 나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163쪽)

 

 

저녁의 구애 / 편혜영 / 2011년 3월

  전업작가가 된 이후 편혜영 작가가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집. 야릇한 표지처럼 기이한 이야기가 심장을 두드린다. 편혜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병든 아이를 태우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을 달리며 병원을 찾는 길,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살견의 울음소리. <사육장 속으로> 히스테릭한 영화 같던 공포는 이제 일상을 잠식했고, 그리하여 더욱 정교해졌다. 

  매일 같은 시각 지하철을 타고, 매일 같은 시각에 복사실 문을 여는 학교 직원이 있다. 누군가 선로에 떨어져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 남자가 걱정한 것은 같은 시각 지하철을 탈 수 없고, 그러므로 같은 시각 복사실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동일한 점심) 대학시절 등교길, 유일한 등교 수단이던 지하철이 어느 40대 가장의 자살로 막힌 적이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지각을 하지 않을 방법이 있는가 하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나는 휴대전화로 지하철이 오지 않는 지하철 선로를 찍었다. 매일 같은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꽃을 바치는 것보다 먼저.

   시스템이 인간을 지배한다. 매뉴얼에 따라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순간, 이곳이 바로 리빙 헬임을 알아차리는 순간. 편혜영의 소설이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더 자주, 더 오래 빛나는 글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편혜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나는 이미 책장을 넘긴다.

 책속에서

   기계는 돌아갔고 통조림은 만들어졌고 기한에 맞춰 납품되었고 선적되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 휴게실에 모이는 것도 같았다. 뚜껑을 딴 통조림을 기준점 삼아 둥글게 모여 앉았다. 통조림 뚜껑을 딸 때는 밥을 먹는 것인지 제조 후 검사를 하는 것인지 잠시 헛갈렸으나 막상 먹기 시작하면 생산과정의 일부라는 듯 기계적으로 입을 놀렸다. 통조림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직원도 없었지만 내색하며 싫어하는 직원도 없어서 밥을 먹는 내내 모두 묵묵했다. (…) 기계에서 풍기는 소음과 공장 안에 떠도는 냄새 때문에 미감을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고 떠들어댔지만, 다음 날 시간에 쫓겨 그냥 뚜껑만 딴 통조림으로 밥을 먹었을 때는 다시 입맛이 돌았다. (통조림 공장 中)
 

 

  

  화투치는 고양이 / 이화경 / 2011년 2월

   발군의 역사소설 <꾼>을 선보였던 이화경 작가의 소설집. 대개 특정 작가의 소설집을 읽다 보면 특정한 스타일, 특정한 분위기의 변주임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 소설집은 각 소설마다 주제와 분위기가 너무도 상이해 더욱 즐겁게 읽었다.  

  '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한 묵념'이라는 말을 외우지 못해 창피를 당하고 스스로 말문을 닫은 소녀. 뒷방의 할아버지에게 화투를 배우며 생의 비의를 깨닫는다. 생쥐 고기를 먹듯 고약한 삶의 시작을. (화투 치는 고양이), 가장 행복해야 할 나의 생일, 언니의 남자친구에 의해 죽임을 당한 친구를 보며 생의 폭력성에 소스라치는 소녀의 감수성. (지구에 오신 걸 환영해요)의 이야기는 소녀들처럼 섬세하다. 반면 육식성 형에 가려 초식성 삶을 살아온 남자의 실존(초식)에 관한 이야기는 무겁고, 비전향 장기수인 노신사가 봉사자로 온 여인을 만나며 애정과 오욕, 자기혐오와 그리움을 그려낸 이야기(예사로운, 예사로운 사랑)는 애틋하기 그지없다. 사랑과 공포와 그리움과 유머, 다채로운 이야기의 공통점은, 어떤 이야기를 펼치든 제법 읽을짐하다는 것이다.

책속에서

 당신이 고통받고 힘들 때, 내게로 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할 따름이오. 미조(迷鳥)를 아시오? 보통 때에는 그 지방에 살지도 않고 날아들지도 않지만,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는 도중에 예기치 않은 폭풍 따위로 인해 길을 잘못 들어 헤매는 새 말이오. 당신의 불안한 눈빛, 무척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안면 근육의 미세한 경련을 대문 앞에서 맞닥뜨리면서, 감옥 안으로 잘못 들어온 한 마리 새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소. 그러나 누군들 미조가 아니겠소. 우리 모두 지상에 깃들 처소를 마련하지 못하고 헤매는 떠돌이새가 아니겠소. 

<예사로운, 예사로운 사랑> 113쪽

 

 

 

염승숙 / 노웨어맨 / 2011년 3월  

 

   "산다는 건, 어느 구름에서 비가 올지 모르는 거란다." 이 소설집은 갑자기 비를 맞은,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일이면 손이 사라질 남자, 내일이면 목욕탕에서 때를 밀 수도 없는 사실에 절규한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을 적절히 조합해 치열한 현실의 모습을 그려냈다.

  표제작 <노웨어맨>이 인상적이었던 건 신용, 파산, 구제, 대출, 회생 등의 현실적 제약이 물리적인 것으로 변해 인간의 표면에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가짜를 만들어 파는 남자, 자신의 아버지가 노웨어맨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자의 절규, 아무 것도 아니라니.  

보이지 않는 것들에 항상 매혹되어왔다는 작가의 말을 읽는다. 손목을, 존재를 잃고 사라져가는 사람들. 이 소설집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책속에서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는 증후군처럼 번져나가는 노웨어맨 현상에 대한 기삿거리들로 넘쳐났다. 노웨어맨이라는 것이,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인지 혹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인지, 그 뜻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하고, 장공수는노웨어맨이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생각했다. 그리고 불쑥불쑥 머리꼭지까지 치받는 화를 참기가 어려웠다. 모두가 가짜인데, 진짜를 흉내내기에 급급할 뿐인 세상에 살고 있을 뿐인데, 그런데 노웨어맨이라니, 아무것도, 아니라니. <노웨어맨, 68쪽>
 

 

 

 

 

 김이설 / 환영 / 2011년 6월  

2010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의 독자 낭독회에서 작가를 만났다. 고요하고 순한 분이 이토록 독한 글을 쓴다는 사실이 놀라워 다시 보았다. 언젠가 소설집을 내게 된다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고 말하던 작가가 두번째 경장편을 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남편을 고시원에서 만나 아이를 낳고, 옥탑방에서 사는 삶. 아이를 맡기러 간 시댁에서 금반지를 훔치는 여자, 여자는 스스로 현실이 된다. 여자는 돈을 벌기 위해 백숙집에서 일을 하고, 스스로를 팔고, 그러면서도 살아남겠노라 다짐한다. 가족이 남긴 빚, 아이의 장애, 모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나는 누구보다도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193쪽)" 라고 하며. 이토록 질기고, 독하고, 모질 수 있을까. 김이설의 소설은 과도한 교화도, 과도한 감정이입도 없이, 실현불가능한 값싼 희망 대신 '현실'을 치밀하게 쌓아올린다.   

책속에서

 "여기가 처음이라더니, 할 만해?" 
어느새 다가온 이모님이 무 한 조각을 내밀었다. 알싸하고 달짝지근한 겨울 무였다. 
"돈 버는 일이 다 그렇죠, 뭐." 
나는 무를 우물거리며 치마를 탁탁 털었다. 괜히 멋쩍었다. 부스스한 먼지가 일었다. 
"젊으니까 그런 일이라도 하지. 너네들은 좋겠다." 
"날씬하고 젊으니까 손님들이 너만 찾고. 넌 더 좋겠더라." 
좋은 일인가. 생전 처음 보는 사내 앞에서 옷을 벗고 받는 돈이었다. 금반지도 생기고 화장품도 생기고 옷도 생겼다. 그래도 옥탑방에 살고, 통장의 잔액은 늘지 않았다. 나는 능숙하게 다리를 벌렸지만, 물가에 서 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81쪽)

 

 

 

 하재영 / 달팽이들 / 2011년 3월

  남자친구가 여자에게 말했다. 넌 달팽이 같다고. 관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달팽이 껍데기 속으로 파고든 삶. 소설 속 여자의 삶은 도시 원룸생활자의 삶의 전형이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텔레비전, 인터넷, 작업, 잠으로 생활을 나눠 단조로운 삶을 산다. 가끔 들려오는 옆집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일 거라고 상상하지만, 정작 실제로 그녀를 만난 적은 없다. 언제나 상상하던 모습은 불륜에 빠진 직장여성. 그러나 실제의 그녀가 그렇지 않음을 알고 주인공의 완전무결한 원룸이 흔들린다.

  관계를 거부하는 사람들. 위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인사하기보단 타이밍을 맞춰 마주치지 않게 나가려는 나 역시 그들과 같다. 같이 밥먹어주는 아르바이트가 존재하고, 열등감에 폭식을 해 몸을 불리는 여자가 존재한다. 껍데기 속에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에 관한 유머러스하고 씁쓸한 이야기.

책속에서
 

 "왜 불륜관계라고 생각하셨어요?" 
중년남자가 끼어든다. 나는 입을 다문다. 왜 그렇게 생각했던가. 
"글쎄..... 아무튼 그 여자는 퇴근하고 나면....." 
"피해자는 직장에 다니지 않았어요. 대학생이었거든요." 
또 중년남자.   
"그랬.....나요?"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B102호 여자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그녀는 잠자리에서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유부남인 옛 애인과 불륜관계에 있는 사람이었나 쇼핑을 즐기고 정장을 자주 입는 사람이었나 (...) 절도, 살인, 강간, 납치..... 세상은 여섯 달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B102호의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기사에 등장하는 익명의 피해자들이 모두 그녀인 것만 같다.  <달팽이들. 51쪽> 

 

 

 

 최제훈 /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1월 

  <퀴르발 남작의 성> 역시 2010년 가장 돋보이는 한국소설 중 하나였다. 최제훈 작가가 내놓은 첫번째 장편소설. 진정한 '거짓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소설의 숲. '악마'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을 지닌) 카페 주인의 초대장을 받은 회원들이 눈덮인 산장에 모여 온갖 살인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장르소설적 문법에 충실한 밀실살인으로 보이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속 주인공들의 이면, 거짓말이 밝혀지고, 소설이 소설을 물고 오고, 이야기는 미궁으로 빠진다. 꿈인지, 현실인지, 소설인지 소설 속 소설인지 알 수 없는. 

  잔인한 상상이 이어지는 이야기. 모질고 여문 이야기에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단 하나의 미스터리 소설, 가장 완벽한 소설을 향한 욕망도. 최제훈의 소설에선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느껴진다. 그게 최제훈의 소설을 계속 읽게 되는 이유다. 

책속에서  

산장에는 이제 한 사람만 남았다. 메이는 그곳에 없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기약도 없는 시간을 버틴다. 죽은 자들의 살로 허기를 달래면서. 
괜찮아, 중요한 건 살아남는 거야. 우선은 그것만 생각해. 내가 살아 있는 한 거야? 그런데, 내가 누구지?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알 수 있겠지. 살아 있는지, 누가 살아남은 건지..... 이젠 못하겠어. 나..... 너무, 졸려. 나도 그래. 그래도 우리 조금만 더 버텨보자. 이젠 그냥 자도 되지 않을까? 게임은 이미 끝났잖아. 정말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 감당할 수 있겠어, 잠이 들면 찾아올지도 모를 여섯번째 꿈을? 여섯번째 꿈...... 그게 뭐가 됐든, 알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래. 그러니 기운 내자. 만일 우리가 지금 악마의 꿈속에 들어와있는 거라면,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악마가 잠을 깰 때까지. 그럼, 이번에는 내가 먼저 시작할게.  

지난 금요일 저녁, 우리 일곱 명은 산장에 모였어. 하지만 정작 우리를 초대한 악마는 오지 않았지.....   <π, 275쪽>

 

 

   
최수철 / 침대 / 2011년 6월  

  "죽음은 삶을 위한 침대이고, 삶은 죽음을 위한 침대다. 천하만물, 우주만상은 각기 서로에게 침대다. 만인은 각자 서로에게 침대다."(94쪽) 지적인 문장을 선보여온 최수철 작가가 6년 만에 발표한 묵직한 소설. 그러나 무게감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한 그루의 나무가 침대가 되어 백여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침대가 겪은 사람과 세상, 삼라만상이 짤막짤막하게 스쳐 지나간다. 탄탄하면서도 능수능란한 구성 속, 무궁무진한 인간사의 세파가 스친다.

  침대를 둘러싼 명상록을 읽는 듯한 스타일이 명확한 이야기 속. 마음에 드는 문장을 툭툭 발견한다. 예컨대 "그러나 그들은 한순간에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침대에 누울 수는 있어도 꿈꾸는 법을 잊었고, 사라진 꿈을 되살려낼 방법을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193쪽)"같은. 침대에서 태어나 침대에서 사랑하고 침대에서 살며 침대에서 사망하는 게 우리의 삶, 침대의 항해는 기기묘묘하다. 묘하고 어둑어둑한 에로티시즘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책속에서 

한 남자에게 다소 특이한 애인이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연락이 잘 되지 않다가, 며칠 간격을 두고 한밤중에 그의 방으로 몰래 찾아들었다. (...) 장례를 치르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그녀는 두 사람의 추억이 침대를 중심으로 이뤄져왔고, 심지어 침대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목수에게 부탁하여 그 침대로 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을 그 속에 뉘었다. 그러고는 관뚜껑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에 몰래 옆자리로 파고들었다. 그의 곁에 누울 때, 그녀의 귓가에서는 생전에 그가 밤마다 그녀에게 했던 말이 생생하게 울리고 있었다.
"
당신은 내가 죽으면 내 관속으로도 들어올 여자야." (287쪽)

  

 

 
 백가흠 / 힌트는 도련님 / 2011년 7월

  문학인이라고 할 때 느끼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가 적어도 내겐 있다. 감각을 불콰하게 자극하는 야생적인 이미지를 살려내는 소설가 백가흠, 그의 세번째 소설집은 문학인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포트레이트에 가깝다. 지금 백가흠이 쓸 수 있는 글과, 지금 백가흠이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의 본령, 그리고 지금 백가흠이라는 작가가 위치해있는 곳이 소설집에 담겨있다.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는 건 용기있는 일이다. 마지막 소설 한 편만 쓰고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을 결심을 한 소설가.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세상에는 못나게 구는. <힌트는 도련님>의 주인공 소설가가 소개받은 예쁜 여자에게 스스로가 소설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교보문고로 여자를 데려가는 부분은 백미다. 인기없는 책이라 찾을 수 없다며 민망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습고 매력적이다. 

  색과 지향이 확실한 밀도있는 단편의 향연 덕택에 읽는 내내 즐거웠다. 백가흠스러웠던 소설, <쁘이거나 쯔이거나>에서 끝내 아내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매매혼으로 한국을 찾은 아내를 학대하던 사내들의 폭력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역시 백가흠이구나 싶다가도, 왜소증에 걸린 사내의 삶의 풍경을 보여주었던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를 보며 슬쩍 웃게 된다. 독해져야 한다, 소설의 일부를 옮겨 놓는다.

책속에서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이 좀체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누군가 이 와중에 방귀를 뀌었는지 탁한 냄새가 사람들을 자극시킨다. 벨을 눌러야 하는데 손이 닿질 않는다. 그는 살을 맞대고 같이 왔던 여자에게 천장에 붙어있는 벨을 눌러달라고 부탁한다. 여자가 벨을 눌러준다. 손이 빠져나간 그녀의 가슴에 그의 턱이 가 닿는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여자도 알고 있는지 별로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을 뚫고 정류장에 내리는 일이다. '독해져야 한다.' 그는 속으로 다짐한다. 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몸을 억지로 틈 사이로 밀어 넣는다. 그의 왜소한 몸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과 사람 사이, 틈 없던 틈으로 천천히 밀려 들어간다.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 157쪽>

 

 

 

 그녀석 덕분에 / 이경혜 지음 / 2011년 3월 

 청소년 소설은 생기있어 좋다. 밝은 소설이든, 밝지 않은 소설이든 청소년 소설의 이야기는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건강한 데가 있다.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청소년 소설을 낸 이경혜 작가의 두번째 작품인 이 책은, 단편 세 편과 중편 한 편으로 이뤄져 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건강과 활기가 넘치는 그 나이의 치기와 떨림, 그리고 고민이 담겨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그녀석 덕분에>는 바퀴벌레가 내가 되고, 내가 바퀴벌레가 된, 호접지몽 같은 이야기이다. 고3인 내 자리를 대신한 바퀴벌레와, 바퀴벌레 대신 자유를 찾은 '나', 기발한 설정 속 철학적 메시지가 있다. 진짜 나보다 더욱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바퀴벌레, 바퀴벌레의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하고 싶던 것이 음악임을 깨닫는 나. '나'가 나답게 살 수 없다면, 더 나다울 수 있는 존재에 '나'를 양보하는 게 옳지 않은가. 비단 청소년만의 고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깊이가 있다. '그녀석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진짜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 청소년의 것으로만 남겨두기엔 아쉬운 게 사실이다.    

 

 

한국소설/시 MD가 추천하는 2011년의 시 역시 가능하면 지금보다 더 많이 읽혔으면 싶은 시집을 선정하려 노력했습니다. 허수경의 새 시집은 도저히 넣지 않을 도리가 없어 넣었습니다.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을 덧붙이는 건 무의미한 듯해, 시집만큼은은 아름다운 문장들을 발췌하는 것을 중심으로, 덧붙이는 말을 최대한 갈음하려 합니다.

  

허수경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2011년 1월

 "심장은 뛰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가장 뜨거운 성기가 된다. 아직은 뛰고 있는 차가운 심장을 위하여 아주 오래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다." 시인의 말을 본 순간, 이 시집을 사랑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수수께끼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애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은?  
이별만 있었네 (..)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횟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 

 따뜻한 이마를 가진 계절을 한 번도 겪은 적 없었던 별처럼
나는 아직도 안개처럼 뜨건하지만 속은 차디찬 발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그냥 말해보는 거야 

적혈구가 백혈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삶이 죽음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그때처럼 

차곡차곡 접혀진 고운 것들 사이로
폭력이 그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것처럼
폭력이 짧게 시선을 우리에게 주면서
고백의 단어들을 피륙 사이에 구겨넣는 것처럼

 

 

 

 박형준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2011년 7월

시인의 낭독회, 사회를 맡은 젊은 시인은 감히 서정의 귀환이라 이름붙이고 싶다고 말했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가슴 떨리는 제목처럼, 이 시집을 읽으며 몇 번이나 마음이 아팠다. 소개할 수 있는 시가 한정되어 있어 아쉬울 뿐.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들려줄 게 없는
봄 저녁
나는 바람 냄새 나는 머리칼
거리를 질주하는 짐승
짐승 속에 살아있는 영혼
그늘 속에서 피우는
회양목의 작은 노란 꽃망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꺼풀에 올려논 지구가 물방울 속에서
내 발밑으로 꺼져가는데
하루만 지나도 눈물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우리는 무사했고 꿈속에서도 무사한 거리
질주하는
내 발밑으로 초록의 은밀한 추억들이
자꾸 꺼져가는데  

(전문)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달에 기어간 흔적이 있다 
펄럭거리는 잎맥 자국이 있다
대야의 물로 성(性)을 씻는 여인
자신의 아랫도리를 바라본다 

거울 속에서 민달팽이가 긴다 

녹색 셀로판지로 된 
여인숙 출입문 밖에 바다가 와 있다
여인이 사라지고
대야의 물 환하다
쭈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깊어가는 거울 속

(전문)

 

 
계단의 끝 - 여림을 추억함

나는 반지하도 아니고 일 층도 아닌 지층에 산다. 그림자는 매번 계단 끝에 굴러떨어진다. 산비탈에 선 남양주장례식장, 얼어 있는 낙엽, 비 내리는 봄밤 내가 사는 집 현관에 옹이처럼 달라붙은 살구꽃. 그 순간의 이미지로 계단 아래 살고 있다. 그리고 늦은 밤에 귀가하면 나는 그림자와 함께 계단의 끝을 향해 다시 올라간다

 

 

 

 김언희 / 요즘 우울하십니까? / 2011년 4월 

 제목부터 쎄다. 시는 더 쎄다.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메시지, 상스러운 단어와 키치적인 그림의 조합. 어쩐지 나빠지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이 시집을 읽는다. 이 시집을 읽으면 뭔가가 풀리는 느낌이다.    

 

마그나 카르타
- 선언하면서 동시에 절규할 수 있다면  


아침부터 썩어 있을 권리가 있고
하루를 구토로 시작할 권리가 있소
매사에 무능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알아듣는 것을 나만 못 알아들을 권리가 있소
껌껌한 콘크리트 방주를 타고 밤마다 대홍수의 꿈을 꿀 권리가 있소
머리 위로 똥덩이가 둥둥 떠다니는 꿈을 밤마다 꿀 권리가 있소
에미 애비도 몰라볼 권리가 있고 딱 오 분만 모친의 부고(訃告)를 즐길 권리가 있소
곡(哭)을 하면서 다리를 떨 권리가 있고 병풍 뒤에서 휘파람을 불 권리가 있소
파니스 안젤리쿠스를 페니스 안젤리쿠스로 번번이 고쳐들을 권리가 있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수음을 할 권리가 있소
수음을 하면서 숨이 끊어질 권리가 있소
더이상 미래가 궁금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젓가락 행진곡만 삼십 년을 칠 권리가 피가 나도록 칠 권리가 있소 (...)
먼눈이 또 멀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 발가락으로 젓가락질을 할 권리가 있소
대공원의 비둘기가 내 정수리에 버젓이
똥을 눌 권리가 있는 것처럼

 

 

 

 김윤이 / 흑발 소녀의 누드 속에는 / 2011년 3월

   
 흑발, 소녀, 누드. 시집의 제목부터가 서정이다. 내 속의 미숙함이 사무칠 때 이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언덕 위의 집 


온 산 활활 물들이는 소리, 등성이 타고 앞마당까지 내려왔더랬죠 잡목들 파수 서던 언덕 위의 집. 날 앞서 늙는 씨앗 수북 배달됐더랬죠
지금도 마당가에는 배냇젖을 뗀 감꽃마냥 져요 뚝, , 성급하게
해가 져요,

하학종이 들리고 사람 태우지 않는 화물열차 지나가요
기ㅡ일게 기ㅡ일게
나는 코스모스 돌아 집으로 가요 풋감을 드시는 그리운 할머니, 나는 왜 자라지 않나요

 


  
 

유희경 / 오늘 아침 단어 / 2011년 6월
  

이 시집의  제목을 본 이후, 가끔 오늘 아침 내가 떠올린 첫 단어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사라져가는 것들, 나는 그 뒷모습에 자주 매혹된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1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벽 한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 나는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할 수있을까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간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이 간판이 하나 걸린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당신을 한 벌의 수저와 묻는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무덤
먼지의 뒤꿈치들 사각거린다





무를 사러 나왔는데 밑동 잘린 눈이 내린다 당신, 무얼 상상했기에 이리도 하얀 눈이 내리나 그렇게, 하얀 눈을 맞으며 걸어간다 한 사내가 넘어진다 일어나 툭툭 털어내는, 그의 잠바가 흐리다 익숙한 이미지를 더듬어 다시 눈이 내리고 나는 고요 그 중간쯤을 올려다본다 내일은 무를 말릴 것이다 나는 오독오독한 그런 상황이 참 재밌어 또 슬프다 함께 사라져버릴 것들 그리고 잊혀가는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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