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일어선다. 그림자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걸, 가여운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전자상가에서 소박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은교와 무재. 도저히 삶을 견딜 수 없어질 때 사람들의 그림자가 일어선다. 일어서는 그림자를 붙잡는 것에 대한 초현실적 상상에서 출발한 이 소설, 따뜻한 죄책감이 흐른다. 소설이 떠오르게 만드는 어떤 기억이 아프다. 

소년 무재의 부모는 개연적으로, 빚을 집니다. 
개연이요? 
필연이라고 해도 좋고요.
빚을 지는 것이 어째서 필연이 되나요?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글쎄요, 하고 무재 씨가 나무뿌리를 잡고 비탈을 내려가느라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 것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자칭하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조금 난폭하게 말하자면, 누구의 배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17~18p) 
   

 

 

무재의 아버지. 개연적으로 빚을 질 수밖에 없었던 그는 가족을 부양하다 논리적 인과관계에 따라 개연적으로 빚을 지고, 개연적으로 사망한다. 전자상가의 사람들이 개연적으로 각자의 아픔을 겪고 개연적으로 일어선 그림자를 지니게 된다. 그들의 고통이 개인 문제가 아닌, 개연적인 어떤 구조 때문이라는 걸 그들은 안다. 그림자를 눌러두기엔 그의 존재가 지닌 가치가 지나치게 가볍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너무 쉬이 가볍게 말하기 때문이다. 철거가 예정되어 있는 전자상가, 상가에서 아버지는 장사를 했다. 사람들은 쉽게도 상가가 있던 곳을 슬럼이라고 말한다. 그곳에 대한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도.  

아버지가 여기서 난로를 팔았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나 누나들하고 와 보면 멀리서부터 그가 가게 앞에 의자를 내어 두고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중략) 손에 기름이 밴다고 순대 밑동에 신문지를 감아서 내어 주던 모습이나, 집으로 돌아갈 때 동전 몇 개를 쥐여주던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 선명한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장사를 어떻게 했을까 싶은 만큼 말도 서툴고 여러 모로 서툰 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함께 순대를 먹으며 앉아 있다가도 사람이 지나가면 슬쩍 일어나서 무엇을 찾느냐고, 뭐가 필요하냐고 말을 걸곤 했어요. (중략)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하고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씨는 말했다.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113-115p) 

    

   아버지에 대한 무재씨의 기억이, 그 지극히 절제된 서술이 몹시도 슬펐다. 의연할수록 슬픔은 더욱 와닿기 마련이다. 죽어가기 여드레 전, 절제된 서술로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담긴 소설 <팅커스>에도 그런 의연한 슬픔이 드러나 있다. 죽어가는 남편을 보면서도 애써 웃어보는 아내의 시선이 기억에 남아 기록해본다. 

사타구니의 암으로 인한 첫 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았을 때 두 다리가 해변의 죽은 바다표범처럼 부어오르고 나무토막처럼 단단해진 것도 어쩌면 운동 부족 때문인지 몰랐다. (중략) 그의 아내는 밤에 침대에서 남편의 파자마 속 다리를 만질 때면 떡갈나무나 단풍나무가 떠올라, 지하실 그의 작업장으로 내려가 사포와 착색제를 가져다 마치 가구처럼 반질반질하게 다듬고 붓으로 색을 칠하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해야만 했다. 한번은 내 남편이 탁자라니,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으려다 큰 소리로 씨근거리기도 했다. 그런 뒤에 너무 마음이 안 좋아 울고 말았다. (14p)

 

  

  아버지는 많이 말랐다. 반세기 넘게 사용한 몸은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한다. 이삼 주에 한 번 아버지의 발톱을 잘라 드린다. 아버지의 발톱은 꼭 아버지처럼 말랐다. 고목나무처럼 마른 아버지의 발톱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언젠가 이 발톱이 영영 말라버릴 날이 올 것임을 생각하면 선득해지곤 한다. 백의 그림자와 팅커스를 읽으면서 고목나무 껍질처럼 마른 아버지의 발톱을 떠올렸다. 그 순간엔 눈물이 나서 쑥스럽게도 지하철 역 앞에서 혼자 훌쩍대고 말았다. 

  누군가 발견하거나, 발견하지 않거나.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있다. 안간힘을 써서 그림자를 누르며, 그림자를 따라가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며. 그보다 큰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고, 추억하며. 오가는 길이 번거로울까 스무 개의 알전구에 다시 한 개의 알전구를 추가해주는 오무사 할아버지의 마음으로, 몇만원 짜리 중고차를 타고 데이트를 하는 소박한 연인의 마음으로.

  새해엔 조금 더 따뜻했으면 좋겠다. 무재와 은교, 그들이 떠난 먼 길, 반드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은교씨와 무재씨가 그 새벽녘 꼭 누군가를 만났길, 뜨거운 국물도 마시며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라도 주억거려봤길 바란다. 무재씨와 은교씨의 소박한 말투를 타 분야 MD님과 흉내내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숫기없고 간이 덜 밴 말투를 따라하다 보면 조금쯤 기름기가 빠지는 느낌이다. 

  올해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를 꼽자면 이 책을 만족스럽게 프로모션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반면 이 책의 초판 1쇄를 지니고 있다는 건 먼 훗날 몹시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현재 판매중인 도서도 초판 1쇄일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만난 가장 희고 맑은 슬픔, 황정은의 白의 그림자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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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2010-12-2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주신 부분들 때문인지 엠디님의 아쉬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백의 그림자'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곧 읽어보겠습니다. 엠디님도 새해엔 조금 더 따뜻하시길. : )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2-29 11: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타가 있어 고치러 들어왔다 실시간으로 보았네요. ^^; 읽어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강력 추천합니다. ㅎㅎ 따뜻하게 연말 나시고 새해도 따끈하게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 그런데 왜 뼈를 그리자는 거지요? 
- 기록입니다. 느낌을 기록해서 보관하자는 겁니다. 
- 사진으로 해보시지 그랬어요?
- 다 실패했습니다. 오래 삭은 뼈의 내부구조의 느낌이 사진에 담기질 않았어요. 그게 인간의 뼈라는 걸 표현해야 되는데...... 아마 연필로 그리셔야 될 겁니다. (153쪽)  

  사진이 할 수 없는 일을 연필은 할 수 있다. 사진보다 정확한 세밀화가 그렇듯, 김훈의 연필도 그렇다. 김훈은 강점이 분명한 작가다. 현실을 재현해내는 신묘한 문장력, 개성적이고도 명쾌하고, 모호한 대신 매섭다. 재현 대상이 수백년 전 실존했던 한 인간의 내면이든, 폐경기를 맞은 여인의 저물어가는 삶이든 김훈의 연필이 닿으면 지나칠 정도로 치밀하게 현상이 재현된다. 지나치다. 김훈의 글을 읽을 땐 늘 그런 생각이 든다. 글이 지나친 게 아니라, 글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의미이다. 여성의 내면을 그리는 글을 쓰기 전에 수개월을 코스모폴리탄 유의 잡지를 탐독한다는 이 작가는, 때론 무안하게 혹은 잔인할 정도로 명징하게, 어떤 감정을 굳이 끄집어 낸다. 예를 들면, 

 교도소에 갇힌 아버지를 떠올리며, 교도소 지붕에 눈이 덮여서 따듯하고 아늑할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안쓰러워서 생각을 버렸다. 때 아닌 생리혈이 밀려나오려는 것인지, 몸속 깊은 곳이 화끈거라고 허벅지 안쪽이 불안했다.  (18쪽)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48년생 남자 작가인 김훈이. 이런 문장을 만나면 정말 '몸속 깊은 곳이' 긁히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젊은 여자이다. 조용하고 깔끔하고, 다소 이기적인 느낌이다. 계약직 공무원으로서 식물 세밀화를 그리게 되어 군인과 숲과 연구자와 식물과 곤충을 만났다. 소설은 가족과 일과 어쩌면 연애, 한 여자의 일상 근처를 배회한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역사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세밀함은 때로 잔혹해진다. 부패한 아버지는 자신의 보스를 대신해 죄를 뒤집어 쓰고 교도소에 갇혔다. 아버지의 충정 덕분에 일찍 출소하게 된 아버지의 직장상사 최국장이 가석방된 아버지를 맞았다.  

 - 제수씨도 고생이 많았소. 그래도 빨리 나와서 다행이지. 저 친구 심성이 착실해서 복받은 거요. 아, 그 안에 있으니까 제수씨가 만들어준 김장김치 생각이 나더군. 솜씨는 여전하신가. 
어머니는 잠자코 따라왔다. 최국장이 또 말했다.
- 아직 따님은 출가 안 시켰나? 우리 아들은 지난겨울에 장가보냈어. 내가 출소자라고 해서 사돈 쪽에서 내켜하지 않았는데, 저네들끼리 좋다니까 성사가 되더군. 그러니까 따님도 짝 생기면 빨리 보내시오. 우리 애하고는 인연이 안 닿았던 모양이지. 
 최국장은 우리 가족들의 생애에 스며든 오욕들을 맛보기로 재탕하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딸린 아우디를 타고 최국장은 돌아갔다. (139쪽)

   해마다 당연한듯, 어머니는 최국장의 집 김장을 도왔다. 최국장의 망나니 아들과 여자 사이에 잠시 혼담이 오갔던 것도 사실이다. 최국장에게 굴종했던 이 가족의 역사는 오욕 그 자체였다. 소설은 이 짧은 재회로 한 가족의 부조리를 순식간에 재현한다. 최국장의 에쿠스로.

   세밀함이 지나치다. 이 장면을 본 순간 나 자신의 오욕의 역사가 떠오른다. 그게 촌지라는 것도 모르고, 국민학교 시절 엄마가 시험 때마다 담임에게 해다 바쳤던 갓김치, 물김치... 각종 명목으로 요구하는 말이 석연찮음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애써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 음식솜씨가 좋으시다는 말에, 어쩌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 순간의 움츠러들던 기분이 선명한데, 우습게도 그 여자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 조... 몇번 중얼거리며 엄마한테 전화를 해 물어볼까 하다 그만 두기로 한다. 엄마는 아직도 그 선생님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오욕의 역사는 반복된다. '올드 닉'에 의해 감금당한 방. 일요일 선물과 롤리팝, 전기로 남자는 여자를 애원하게 할 수 있다. 

"난 뭐 식료품이나 나르고, 쓰레기나 치우고, 애들 물건이나 사러 다니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천창 얼음이나 벗겨주면 되는 하인이지 뭐." 
빈정거리는 것 같았다. 뒤틀린 목소리로 반대되는 말만 한다는 뜻이다. 
"고마워요." 
엄마 목소리 같지 않았다. 
"덕분에 훨씬 밝아졌어요." 
"이것봐 그렇게 말하니까 좋잖아." 
"미안해요. 정말 고마워요." 
"마지못해 한마디 하는군." 
"식료품도 고마워요. 청바지도." (68 쪽)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여자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남자를 침대로 끌어들이고, 남자에게 간절하게 생존을 조른다. 오욕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여자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제 아이의 머리에 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오욕의 역사가 다시 전면에 떠오를 수밖에 없다. 납치와 감금, 그리고 탄생. 이 소설은 극단적 상황에 처한 엄마와 아이를 두고 폭력과 존엄의 문제를 다뤘다. 

김훈의 소설보다 훨씬 충격적인 소재를 택했고, 김훈의 소설보다 훨씬 센세이셔널하지만, 한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최소한의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잘 쓴 소설이라 잘 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소설 역시 내 오욕의 역사를 건드려 다시 괴로워졌다. 아이가 화자라 직접적인 묘사가 없는데도, 건너서 보는 고통이 너무도 생생해서.... 

나는 살고 싶었고, 몹시 무서웠고, 가능하면 별 일이 없길 바랐고, 살고 싶어서 내가 별 게 아니라는 걸 최대한 불쌍하게 말해야 했고, 내가 별 게 아니라는 걸 말하면서도 사실 마음 속으론 내가 그렇게 별 게 아닌 것만은 아니라고 또 생각하고 있어서 몹시 억울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왜 잘못한 게 없는 내가 불쌍한 양 움츠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랬다.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가 했던 말이며 행동은 당당히 내 오욕의 역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있다. 그러니 그녀도 잊기 쉽지 않았겠지. 사랑스럽고 용감한 재키잭 왕자가 있었어도. 잊으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우타노 쇼고의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제외하곤 요즘 읽은 책들이 하나 같이 무겁다. 우타노 쇼고는 비극을 엔터테인먼트화 해서 오히려 읽기 편했다. 역자의 말 대로 '깨소금맛이다' 싶게 결말을 즐기게 되기까지 했다. 훑어보는 책이 무거운지, 생존이 무거운지, 오욕이 무거운지 모르겠지만  근래 컨디션이 썩 좋은 건 아니다. 경영 MD님껜 <번뇌리셋>을 선물받았고, 인문 MD님 자리에선 <왜 나는 우울한 걸까>를 발견하고 레알 돋았다. <늦어도 11월에는>처럼, 11월은 연애마저 우중충하니, 이 일을 어찌할까.

   사랑이야말로 이 덧없는 것들의 중대사업이라고 말한 김훈의 말대로, 의외로(!) 희망을 말하는 것에 가까운 소설들을 보고서도 오욕의 역사가 떠오르는 걸 보면, 역시 11월은 해피엔드에 안녕을 고해야 할 계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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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2010-11-1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앞부분밖에 안봤는데요. 저도 그 부분 읽으면서 그생각 했어요. 강산무진에 나오던 단편(제목은 기억이 안나고)에서 목젖과 산도를 떠올리며 묘사하던 부분 보면서 되려 내가 진저리치던 기억도 막 다시 떠오르고. 현의 노래에서 오줌누던 장면의 비릿함도 생각나고... 안그래도 읽으면서 김훈의 여성에 대한 묘사만 한번 모아볼까, 생각했었는데, 어쩐지 내가 못견딜 것 같아서 ㅎㅎ

그나저나, 이 새벽까지, 고생이십니다. 덕분에 잘 읽었지만요.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1-16 15:36   좋아요 0 | URL
저도 강산무진 즈음이었던 걸로.. <화장>과 <언니의 폐경> 사이에 한 인터뷰를 봤었는데, 그때도 하 여성을 직조하는 데에 대한 집요함이 느껴져서 숨이 가빴었지요... 새벽 소리가 붙을래면 그래도 한 두세시는 되어 주셔야... ㅎㅎ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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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표정인 것 같았다.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들은 너그럽고 친절하며 느긋한 동시에, 어디에도 매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하자면 방관자와 같았다. 어쩌다 그 정비소 안에 발길을 들여놓게 되었는데 그냥 누군가가 손에 스패너나 렌치를 쥐여 준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일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나는 정비사"라는 자부심도 없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오후 5시만 되면, 또는 8시간의 근무 시간만 채우면, 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더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임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근무 중에조차 벌써 자신들의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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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해 시인 저자행사에 다녀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덜 장엄했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제법 유쾌한 구석까지 있었다. 분쟁 지역을 떠돌다 온 시인의 이력이 무색하게도. 물론 그 이야기가 가벼웠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허각'도 아닌데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시인의 말과, 이 시집 정말 좋은데... 직접 말로 할 수도 없고... 유의 위트 사이사이 날 선 분노와 고독한 의지 같은... 날카로운 말이 있어, 자꾸 마음이 불편해졌다.

 

  생활은 빠르고, 편리하다. 휴대 전화를 이용해 시인의 인터뷰 기사를 검색해 읽고,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글을 남기며 시인과 독자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면서 '시집답지 않게' 1면부터 한 글자씩 읽어보았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시집이었다. 이 시집은 확실히 서사였다.

 

저기요,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스윽슥 손가락 하나로 세계의 속옷이 벗겨지고 
나는 지금 광대한 지구의 달리는 한 점에 앉아 
국경 너머 누구와도 한순간에 접속되어 
우린 팔로우 팔로우 빛의 파랑새로 지저귀고 
내 작은 손바닥 안에 거대한 지구마을이 들어선다 (중략) 

나는 눈을 감고 스윽슥 
아이폰 모니터를 벗기고 들어간다 
공돌이로 살아온 내 기억의 속살을 
아이폰을 생산하는 수많은 하청 노동 현장을   (중략)

우리 시대의 영웅이자 구루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의 뒷면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자들의 세계화를 본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아이폰의 뒷면 中>

 

그러다 발견한 이 시에 순간 아팠다. 박노해의 시를 읽고 아프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라던가. 이 시에 대한 생각은 곧 김점용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내가 살아남은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이 문장은 2010년의 펀치라인이 될 것이다. 이토록 절망적인 통찰을 적어도 올해엔 경험한 적이 없는 듯하다. 촌각을 다투는 업무에도 불구, 잠시 숨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어야 했을 정도로 막막하고 미안하고 서러웠다. 소설과 밥벌이의 현장은 분명 백만 광년 쯤은 떨어져 있음에도... '숨을 멈추고', '입술을 깨물고', '무릎이 꺾이는 듯한 충격' 등의 소설적 형용이 얼마나 쑥스러운지... 파도 같은 일렁임이 현실이 되어 다가왔을 때,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웹상에서 검색되는 글과는 시어 일부가 달라졌기에, 전문을 적는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따뜻한 절벽, 한 둥지 안에 독수리 형제가 나란히 있다. 부모가 먹잇감인 바위너구리를 들고 나타나자 형은 날카로운 부리로 동생의 살을 쪼아 헤집어 먹이를 쳐다보지도 못하게 한다. 그렇게 하루나 이틀이 지나는 사이 동생은 서서히 죽어간다. 부화한 지 3일 만에 동생이 죽기까지 형은 부리로 1,569번을 쪼았다. 

   뱀상어는 몸속에 알을 낳는다. 그 안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자유롭게 헤엄치며 서로를 잡아먹는다. 새끼들은 이빨이 자라고 몸집이 커진다. 이들은 더 작은 새끼들을 잡아먹는다. 최후로 한 마리가 남을 때까지 이 과정은 반복된다. 그사이 어미는 1만 7천여 개의 알을 낳아 계속해서 먹이를 제공한다. 

   내가 살아남은 데도 다 이유가 있다. 

<김점용 / 메롱메롱 은주 / 생명이 밉다 전문>

  

 

  

  사적이고 소소하고 구체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에서, 김애란은 특히 빛을 발한다. 전 지구적, 전 생태계적으로 뻗어가는 미안함을 개인적 영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김애란의 소설을 인용해본다. 아직 소설집이 되어 나오지 않은 이 소설에서, 짝사랑의 아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슬픔으로 화한다.  

   나의 '생활'을 발견해줬던 선배의 남루한 현실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아주 어렸을 적 기억속의 남자애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고향으로 향하려던 나는, 고향에 가는 대신 여름의 뜨거움에 몸을 맡기고 어둡고 습한 나의 자취방에서 어린 시절의 그 남자애를 떠올린다. 그 애는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었다. 그 순간 발휘되었던 '나'의 폭력성을 나는 기억한다.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아찔함에 그 애의 손목이 다 긁혀 피가 나도록 꽉 붙잡았던 나의 우악스러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며 그 애의 목소리는 얼마나 높고 어수선했는지. '나'를 구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우쭐해하며 열띤 목소리로 수다를 떠는 그 애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마음도,그 아픔도. 때론 이렇게, 풋풋하고 오래된 마음마저도 상대방에선 그저 미안하기만 한 일이 되지 않는지. 아! 얼마나 아팠을까, 그녀는 그제야 생각한다. 이십 여 년도 훌쩍 지나서... 

 

 갑자기 목울대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올랐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그처럼 쉬운 생각을 그동안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그러자 불현듯, 내가 살아있어, 혹은 사는 동안, 어디선가 누군가 많이 아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 많이 아팠을 거라고. 그리고 견뎠을 거라고.
  

<문학동네 59호 / 김애란 / 너의 여름은 어떠니 中>

  

 

  S전자의 처녀들에 관한 박노해의 시를 읽고, S사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수많은 고유명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의 죄책감도 없이. 내 '컨비니언트'한 삶을 위해 누군가는 불합리한 노동을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내 쾌적한 심리를 위해 누군가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십년 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아팠을지. 불현듯. 무심코. 갑작스레.  

  김훈은 인간은 치사하고 비루하고 던적스럽다고 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던적스러움을 기억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미안했다는 사실까지는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슴이 아닌 머리로라도. 처절하지 않은 지루한 생활인인 나, 처절해질 의지조차 없는 평온한 생활인인 나는, 그대만은 사라지지 말라는 시를 암송하며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만 '투사' 시인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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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11-0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살아남은데는 다 이유가 있고, 그러니 그대는 사라지지 말아야 하는데.

참 좋은 시예요. 잘 읽었습니다.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1-04 10:58   좋아요 0 | URL
아... 저의 비관돋는 글을 명리플로 순식간에 긍정적으로 치환해주시네요. 세상엔 좋은 글이 참 많네요. 매일 반성은 하는데, 행동의 개선은 없는 요즈음입니다. ^^;; 감사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유치원에서 모두 배운다. 가장 중요한 대원칙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러나 아는 대로 행할 수 있는 군자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산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추가하며.

    픽션이란 본디 거짓말이다. 그러나 소설가의 거짓말에 대해선 아무도 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짓말이 더 능청스러울수록 독자는 찬사를 보낸다. 태곳적부터 간직해 온, 거짓말을 하고 싶은 음습한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fame and fortune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소설가란 직업은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이제 첫 소설집을 발표한 <퀴르발 남작의 성>의 작가 최제훈은 그 호사를 몹시도 즐거이 누리고 있는 듯하다. 

 

눙치듯 건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의 상식을 교란한다. 표제작은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의 카니발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짧은 컷으로 교차시킨다. 이야기를 이야기가 감싼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영화는 몰락한 여배우의 영웅담이 되기도 하고, 어느 강의실의 페미니즘 교재가 되기도 하며, 매카시즘에 반하는 고도의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모두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을 너무도 능청스럽고 치밀하다.

문장 너머의 작가는 숨가쁘지도 않을까. 작가의 거짓말은 점차 대담해진다. 아이를 잡아먹고 살며 젊음을 유지한다는 남작 얘기를 하다, 창조자에 대응하는 탐정 셜록홈즈 이야기를 건네다 다시 중세 마녀 사냥에서 프랑켄슈타인을 거쳐 자신이 벌여놓은 모든 거짓말을 한 자리에 모아 자신의 거짓말을 충돌시킨다. 그야말로 거짓말의 향연. 유치원 이후, 하나의 관념으로 굳어졌던 "거짓말 하지 마라" 그 금기를 넘어선 이야기는 점차 신명이 난다. 이쯤 되면 거짓과 현실은 더 이상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만 속을 뿐이다. 아주 오래된 금기를 넘어선, 거짓말의 세계는 그만큼 환상적이니까.

 

자신이 만든 환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침몰한 도일 경과 자신을 매혹시킬 현실에 목말라 환각제에 의지한 나. 이 양극단의 고뇌는 어딘가 닮아 있지 않나? (중략) 나의 사소한 재주는 역시 사물을 관찰하고 추리하는 것뿐이지. 덕분에 나는 지금 인간의 상상력이 감히 미치지 못하는 속도로 무한히 재창조되는 현실 속에서 다시금 자유를 느낀다네.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中 

 

    소설을 읽으며 내내 이장욱의 단편집을 떠올렸다. 잿빛으로 점철된 음습하고 능청스러운 거짓말의 기록. 어쩐지 기분 나쁜, 음습한 누군가가 털어놓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약간의 구취와 해묵은 옷에서 나는 탈취제 냄새가 동반된 쾨쾨한 냄새와 함께, 지난 계절의 곰팡내와 죽은 세포가 들러붙은, 각질이 일어난 입술을 움직여서, 억양 없이, 별스럽지 않다는 듯한 말투로, 자그만 목소리로, 작은 눈을 슬쩍 치켜뜨며, 속사포처럼. 우아한 여동기의 임신과 한 가정의 몰락, 50대 아줌마와의 성경험을 털어놓던. 그의 이야기를 믿고 싶지 않지만, 마력처럼 끌리는 그의 목소리. 거짓말이라 웃어 넘기고 싶지만 어쩐지 돌아서, 홀로 현실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목소리. 이야기란 본디 이토록 음습한 것. 그래서 더욱 탐독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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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10-0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정 바탕에 하얀글씨면 눈 아파요. 글씨도 잘 안 보이구요
서재쥔장이라면 맘대로지만, 알라딘 MD면 보는 사람도 배려해야하지 않을까요?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0-12 17:38   좋아요 0 | URL
피드백이 늦어 죄송합니다. 스킨 수정했습니다~ 포토샵 할 시간이 없어 기양 바꾸어야 하겠네요 ^^;;

바꿔요 2010-10-06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이구 깜짝야,,
저도 눈아파서 들어왔다가 안보고 다시 나갑니다.
읽을 수가 없어요. 넘 심해요. --;;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0-12 17:39   좋아요 0 | URL
제 시력이 과도하게 좋아 생각을 못했네요. 스킨 수정했습니다~

전철 2010-10-1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침 출근길에 읽고 가요. 고맙습니다^^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0-12 17:39   좋아요 0 | URL
퇴근은 언제나 즐겁게! 감사합니다~

사과쨈 2010-10-13 0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스킨바꾸셨군요.
저는 그 검은바탕이 좋았는데 ^^ 아이쿠, 스킨 이야기 자꾸하는것 실례일것 같네요.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표지에 있는 남작의 표정이
태곳적부터 간직해온 거짓말하고싶은 음습한 욕망과 참 닮아있어요 !!!
소설가라는 직업! 그 점에서 만큼은 정말 호사스러운것 맞네요 ^^
이 책 읽고싶어요.

한국소설/시/예술MD 2010-11-03 00: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의 예술세계에 공감해주시다니 감읍하여 눈물이.... ㅠ_ㅠ 한번 읽어보셔요. '한국소설'이라는 어떤 임의의 범주에서는 확실히 벗어나 있는 소설이랍니다. 전 아주 즐거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