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한 집

 정찬 (2013.2) / 문학과 지성사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한 한 소년이 엄마를 죽였다. 소년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하는 신문 기사라면 이런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다. “‘존속살인범’이라는 말의 섬뜩함은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뽀얀 피부의 소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이 사건을 서술하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빛이 창을 통해 집 안으로 비스듬히 스며들었다.” 이렇듯 소설은 불현듯 독자를 사건의 한복판에 던져놓는다.


  정찬의 소설 <정결한 집>은 “그러므로 어머니를 죽이지 않으면 나를 죽일 수 없다”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를 소설적인 방식으로 건조하게 그린다. 소녀 명희와의 조우와 그들이 이야기하는 죽음과 폭력의 세계. 시체놀이를 하는 이들의 모습처럼, 소설은 불길함을 불현듯 던져놓는다. 죽은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일주일에 세 번은 청소를 했을, 죽은 어머니가 없는 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봤을, 마침내 난간에 누웠을 어떤 소년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도록.


  “제가 죽음의 심연에 얼굴을 처박지 않았던 것은 저에 대한 의문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는 학자처럼, 우리는 죽을 걸 알면서도 안간힘을 써가며 산다. 병역기피자로 고초를 당했던 아버지도, 나치와 마오쩌둥 하의 인간들도, 용산 4구역 재개발 사업지 푸른 망루의 사람들도 드리워진 폭력을 피할 수 없다. 폭력으로 이루어진 이 정결한 세계 속에 불현듯 던져진 우리에게, 정찬의 소설은 섭리 같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작고 귀한 실마리가 된다.




*주 >

한겨레, <‘엄마 살해범’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던 그 소년>, 2012년 3월 9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8&aid=000213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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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의 사랑, 자아, 학교폭력 등을 주제로 한 '지식소설'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 이남석 저자가 꿈을 찾는 진로의  심리학 책을 출간했습니다. 사계절 출판사와 이남석 작가가 나눈 대화를 소개합니다. 도움 주신 사계절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뭘 해도 괜찮아 -꿈을 찾는 진로의 심리학>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청소년 책을 몇 권 내면서부터 중고등학교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생들을 만나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려고 “꿈이 무엇인지”를 꼭 물어보았죠. 그런데 반응이 극단적이었습니다. 확고하게 직업을 결정했다며 꿈의 설계가 끝났다고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예 꿈을 찾지 못해 한숨을 짓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두 가지 모두 문제가 있었습니다. 좋은 진로 계획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그 간격을 넘어서는 생각의 징검다리를 놔주자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청소년 주인공 태섭이 진로 문제로 고민하고 좌충우돌하면서 꿈을 찾아나가는 지식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요. 주인공 태섭이 현실에서 도피해 게임과 판타지 소설을 즐기는 모습이나 진로 문제로 고민하면서 하는 행동들이 오늘날 청소년의 모습을 잘 담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심리학자여서 그런지 오늘날 청소년들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도 받고요. 실제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고 대화하십니까? 또 주인공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십니까?


대화를 포함한 인간관계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 달에 적어도 5개 정도의 학교나 기관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합니다. 수십 명에서부터 어떤 때는 전교생까지 만나지요. 그러나 가장 대화가 잘 되는 것은 학생 수가 적을 때입니다. 


학생 수가 적으면 제가 말한 내용에 자극을 받고 용기를 내어 눈물을 흘리면서 고민을 털어놓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한두 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꼭 그런 일이 있죠. 잘 모르는 작가에게도 눈물을 보일만큼 외롭고 상처가 깊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하지만 단순한 동정은 아닙니다. 저는 상처투성이였던 제 과거와 만날 뿐만 아니라, 제 두 딸의 현재, 그리고 눈앞에 있는 학생의 고통과 만나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떠올립니다. 저는 눈물을 삼키며 냉정하게 답을 해요. 제가 당장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학생의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급적 인지적/정서적 각성이 될 수 있는 말들을 해줍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반응을 잘 살펴보지요.


그런 일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캐릭터를 만들 때 활용합니다. 그러면 책 속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가 강연장에서 제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또다른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런 식으로 저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학생들을 계속 만나며 이야기를 얻고 있기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해요.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아 행복한 삶으로 가도록 안내한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긴 인생을 보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진로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진로 교육의 목적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 스스로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생각의 근육, 경험의 근육이 붙은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진로 교육은 주인공이 바뀌어 있어요. 학원, 유학원, 각종 학습 컨설팅, 체험 프로그램 설계자들은 일부 엄친아와 엄친딸을 세상의 주인공인 양 설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그들을 따라가라고 유혹하고 있죠. 그건 남들이 인정하는 멋진 ‘역할’로서 살라고 하는 거예요. 자신의 특성과 좋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놔두지 않고 ‘역할 모델’을 정하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하지요. 


그러나 누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성장해야 비로소 행복도 성공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이 되지 않고, 목적 그 자체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진로 교육의 길입니다. 





“성공이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무식하게 도전해라. 몸을 움직여 부딪쳐 보면 좋아하는 일도 찾게 되고 결국 성공과 행복으로 가게 된다.”는 등의 메시지가 가슴에 크게 다가왔습니다. 혹시 선생님 자녀분도 이 책에 쓰신 것처럼 진로 지도를 하고 계십니까?


저는 실제로 제 딸이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써요. 제 딸들은 세상이 인정하는 영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인정하는 행복한 아이, 자기의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입니다. 또 웃기 위해서는 눈물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점점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를 보며 저도 함께 성장하고 있죠. 진로 지도란 결국 제가 성장 비결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용기 내어 말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임을 저도 새삼 깨달으며 살고 있습니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읽히기 전에 본인이 먼저 읽고서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어 큰 도움을 받았다며 좋게 평가하고 있어요.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호소력이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불안한 미래에 겁을 먹는 것은 솔직히 어른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괜히 안정적인 척하면서 좋은 직업을 정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애들에게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불안정하더라도 열정을 가지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지 않나요? 실은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쓴 측면도 있습니다. 


사람은 심리학적으로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받은 약한 아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꼭 관심만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아프지만 계속 성장하고자 하는 힘을 갖고 있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손을 잡고 몇 번 빛과 바람을 쐬면 신이 나서 어두운 골방을 박차고 나올 아이이기도 하죠. 그런데 어른으로 살다 보면 무조건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그 아이를 자꾸 골방에 숨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많은 것을 얻은 사람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힘들고 불안한 아이가 계속 골방에서 울고 있으니까요. 


저도 그랬거든요. 제 글에는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며 사회 경험을 하느라 골방에 자신을 가뒀던 제 경험이 어쩔 수 없이 녹아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어른들도 공감을 많이 하시지 않나 싶네요. 

현재 청소년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불행히도’ 어른들이니 어른부터 각성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다행히도’ 어른들은 일을 추진할 때 동원할 수 있는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자원이 청소년보다 더 많으니 잘하면 가족 모두가 꿈을 찾아 행복하게 되는 반전의 기회도 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부디 용기를 내주세요. 그리고 행복을 누리세요.      





아동‧청소년작가로서 그간 좋은 책을 많이 내셨어요. <자아 놀이 공원>, <아빠, 게임할 땐 왜 시간이 빨리 가?>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 <주먹을 꼭 써야 할까?>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요. 앞으로 어떤 책을 낼 계획이신가요?


제 딸들이 읽고 생각을 키울 책을 직접 쓰자는 생각으로 작가를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그 마음을 더 확장시켜 글을 쓰려고 해요. 


세상을 살면서 좋은 일만 생길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지요. 그러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과거와 달리 너무 많아졌어요. 죽음에 대한 통찰을 통해 삶에 대한 애정과 회복력을 기르는 지식소설을 썼습니다. 이 책은 원고가 완성되었으니 곧 출판사를 통해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심리학적 지평을 인문학 전반으로 더 확대시켜 ‘시간’에 대한 새로운 지식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시간은 삶의 기본 조건으로서 제가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제예요. 그동안 십년 넘게 독서와 사고를 축적한 것인 만큼 청소년과 성인을 아울러 많은 독자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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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가을,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아름다운 장편소설을 발표한 김연수 작가를 만났습니다. 소녀들, 바다, 이야기,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인터뷰 진행 협조해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일부 질답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

 

<원더보이>, <지지 않는다는 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까지 최근 반가운 소식이 이어졌는데, 강행군이라 고되지 않으신지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책이 나오고는 인터뷰 하고 지내고 있고, 간간히 산문을 쓰고 있어요.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생각을사실 많이 안 하고요. (웃음) 몇 가지 생각 간단히 하고, 잠을 자요. 옛날에는 일을 하다 늦게 잤는데 요즘은 빈둥거리면서 늦게 자네요. 티브이보고 음악 듣다가 팟캐스트 듣다가 하면 세시, 네 시가 돼요. 예전엔 늦게 자도 쪽잠을 자고 여섯 시엔 깼었는데, 요즘은 일이 없으니까 열한 시쯤 일어나요. 예전 학창시절의 생활이죠. 밥 먹고 나와서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중국 계간지에도 연재하셨고, EBS 라디오 낭독도 하시는 등, 하나의 소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오셨는데요, 여러 매체에 어떤 감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번역된 소설은 짧아지더라고요. 분량이. 많이 썼는데 이렇게 짧아지는가? (웃음) 제가 중국어를 모르니까 번역된 원고는 알 수가 없고요, 좀 낯설긴 하더라고요. 다른 언어로 된 걸 보니까. 저는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과연 아름답게 됐을까생각도 들고.

 

또 낭독할 때는, 약간 객관화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읽어주니까요. ‘이 부분은 이런 얘기였구나, 놀랍게도’,  ‘이 부분은 긴장되네.’ 전 긴장되게 쓴 게 아닌데. 그런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고요. 또 낭독을 하면 내 이야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전개가 되는지를 측정을 할 수가 있잖아요. 쓸 때는 모르지만, 한 시간 동안 이야기의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가 객관적으로 체크가 되요. 낭독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제가 썼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조마조마하더라고요.

 

 

 

전작 <원더보이>가 소년의 이야기라면, 이번 <파도가…>는 소녀들의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카밀라와 지은, 특히 우리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녀들의 이야기지만, 다른 소설 쓰듯이 감정이입을 하려고 했어요. 소녀들에 대해 제가 아는 것들, 지식을 가지고 상상을 계속 해서, ‘아마 그럴 것이다.’하는 결론이 날 때까지 충분히 오랫동안 생각을 하려고 했고요. 선입견, 뻔한 반응을 피해가면서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서 알아내는 거죠. 이상하게도 제가 소년기를 지나왔는데도 <원더보이>의 소년보다 여자들이 더 생생한 것 같아요. 제가 좀 이상한 건지, 제가 여자 쪽에 더 맞는 건지. 여자 쪽은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소년은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웃음) 싶기도 했고요.

세 번째 장, ‘우리부분을 쓸 땐 책을 딱 한 권 봤어요. <소녀들의 사생활>이라는 책이고요, 그 책 표지서부터 제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느낌을 받았어요. 소녀들은 서로 이렇게 질투가 심하구나, 친한 친구인데도 원래 질투가 심하고, 소문을 많이 내는구나. 그런 외국 사례들을 봤고요.

소녀들이 실수로 뭔가를 저지르고 큰 일이 벌어진다,’ 질투라는 모티프는 처음부터 생각했었어요. 시골 학교에서 쟤는 걸렙니더하는 쪽지가 오는 장면, 처음에는 십대 때 장난으로 시작 한 일이 큰 일을 만든다, 는 게 모티프였어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된 거죠.

 

 

 

연재 당시와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희재>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으로 제목을 정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희재>도 써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원래는 <희재>라는 제목이 중요한 모티프예요. 근데, 희재가 너무 중립적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어떤 소설인지 알기가 어려운 것 같은 느낌. 마지막 순간까지 제목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민을 했죠. 제 경우엔 새로 만들어내는 경우는 잘 없고, 주로 제가 쓴 글에 제목이 있어요. 몇 번 이런저런 제목을 생각해냈는데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이 제목을 생각한 거죠. 처음에는 여러 제목 중 하나였는데, 점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맞는 것 같더라고요. 이 제목이 책의 많은 걸 대변해준다고 생각해요. 서정적인 것,’바다라는 소재,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뒤에 이어지는 문장(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가 이 책의 주제인 점도 있고요.

 

 

 

 

 

지은과 카밀라, 소녀는 소녀가 되고

 

카밀라의 지은 찾기가응답하라 1987’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섯 개의 상자로 정리된 추억같은 소재를 보면 기억과 사물이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님의 이전 책에서도 어떤 시기에 대한 세밀한 기억이 주요 모티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에 대한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럼 이야기는 어디에 있느냐. 흔적들에 있다는 거죠. 유품이 흔한 예겠죠. 유품 속에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이야기를 우리가 모를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세계는 남아있잖아요. 골목이라든지, 이런 곳엔 이야기투성이라는 거죠. 물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제 소설에서 일반적이에요. 이야기가 숨어있으니까, 우리가 모를 뿐이죠. 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카밀라라는 애가, 뭔가 있을 것 같은 사진에서 숨어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거잖아요. 그런 방식이 제가 이야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철학 같은 도입부랄까 그래요.

 

 

 

카밀라의 이야기를 여는 첫 소제목이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입니다. 처음 읽었을 땐 맛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운명적이라는 느낌도 들고, 동백꽃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었을 때의 지은을 상상해보면 카밀라 역시 사랑으로 빚어진 아이라는 걸 이 문장이 말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소제목으로 이 문장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카밀라에게는 네가 왜 네가 됐는지 대답을 누구도 못해주고 있잖아요. "카밀라는 카밀라니까 카밀라인 거지." 이런 답은 무책임한 얘기인 거죠. 이 아이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되는 존재예요. ‘너는 이러 저러 했기 때문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말해주는 대신 너는 이야기가 없는 애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니까, 첫 제목은 이 아이가 정체성이 없는 아이임을 말하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장면, 문장을 꼽을 수 있을까요?

 

다 좋긴 한데요… (웃음) 앞부분에 많이 있어요. 카밀라가 처음에 진남에 왔을 때, 눈 내리는 거 보는 장면…. 그리고 꿈 장면도 되게 좋고요. 엄마 연락이 안 와서두 개의 꿈을 꾸는데, 오로라 물고기랑 파란 달 보는 꿈이 있는데, 그 꿈은 사실 제가 꿨던 꿈이에요. 파란 달이 뜨는 걸 꿈에서 본 적이 있어요. 공을 들인 장면은 바다에 뛰어드는 장면이에요. 유람선 노래가 들리고 있고, 여러 가지가 중첩되어 있는 장면. 그 장면은 쓰는 동안에 되게 숨이 막힐 정도의,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나중에 연재를 하면서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는데, 앞에 너무 잘 써가지고 그만 못 둔 부분이 있어요. (웃음) 앞부분 카밀라 나온 부분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카밀라한테 감정이입이 많이 되어서, 카밀라라는 여자애에게 이 얘기를 끝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끝까지 써주고 싶다는 생각, 끔찍한 결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담당 md가 적어둔 좋은 문장을 함께 실어봅니다. :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 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 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소녀들이 겪는 수난이 이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고생의 자살, 입양아의 뿌리 찾기.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어쩐지 따뜻한 느낌의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실포옹같은 단어들도 그랬고요,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이라는, 카밀라의 첫 사진에 대한 명명도 뭔가를 믿고 싶게 만드는 제목이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결말에 대해 몰랐어요. 처음에는 얼토당토 않은 소문, 이에 개입된 당사자들의 증언, 그보다 깊은 아무도 모르는 일, 그 아무도 모르는 일이 아름다운 사랑이지 않을까. 이 정도만 생각을 한 거죠. 제가 결말을 모르는 상태로 카밀라를 따라가다 보니 수많은 가능성이 있더라고요. 성폭행더 끔찍하게는 오빠의 딸, 아무도 모르는 사람의 딸까지. 수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저는 그 중에 하나 제일 좋은 걸 선택하고 소설을 썼어요.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하면서요.

 

다 쓰고 보니 나는 카밀라 편에 서서 소설을 쓴 것 같아요. 나는 카밀라를 좋아하니까, 카밀라가 많은 이야기 중에 다른 이야기를 믿지 말고 이 이야기를 믿어라 라는 입장에서 소설을 쓴 느낌이에요. 뜻밖에도 카밀라가 사진을 보면서도 이런 제목을 붙여놓은 거죠. 생각보다는 괜찮은 곳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이 세계가 낫다고 생각을 하는 애니까. 카밀라도 이 세계의좋은 점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결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말은 못하겠어요. 어떤 게 진짜 이야기라고. 여러 이야기가 있고, 카밀라가 그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카밀라의 성격으로 봐서는 그 중에 제일 나은 이야기, 이희재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희망 같은 것을 믿는 아이니까요. 쓰는 입장에서는, 독자들도 그렇고 카밀라와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접근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카밀라는 이런 결과로 태어난 거야…' 작가 입장에서 결말을 지어 먼저 생각하지 않고, 24년만에 찾아온 입양아의 눈으로 카밀라가 처한 상황에 접근하고 싶었어요.

 

 

 

 

 

바람의 말, 파도의 말, 이야기

 

‘바람의 말 아카이브라는 설정처럼, 이 소설의 큰 줄기는 바람의 말(풍문)을 모아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풍문은 SNS로 진화했고요. 진실을 기워 모아, 점의 이야기를 선의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진실이라는 게 존재 한다고 봐요. 그렇지만 한번 살고, 그 뒤에 사람들이 회상을 하잖아요. 그건 진실이 아니라고 봐요. 똑같이 회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보거든요. 서로서로 얘기가 다 다른 거고요. 진실은 있는데,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거죠. 결국엔 스스로 채택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서사를 만들듯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생의 서사를 채택해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거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어쨌든 한 가지 방법을 택해서 그게 내 인생이라고 얘기하는 거잖아요. 자기 인생의 진실은 자기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달려있는 거겠죠. 수많은 눈도 있고 소문도 있을 거고요자기가 자기 인생을 어떻게 쓰는가, 이게 중요하고, 그게 진실이 되는 거죠. 우리가 입양아처럼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니까, 자기 정체성을 처음부터 추적해봐야 할 경우는 잘 없지만, 대신 우리는 평생에 걸쳐서 찾아왔겠죠. 입양아인 카밀라의 시선처럼, 우리도 구성된 삶을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김연수봇bot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있는건 알고 계신가요? 실제로 SNS를 이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연수봇은 알고 있어요. SNS는 쓰지 않습니다. 처음엔 보고 검색하기도 했는데, 좋은 얘기도 있고 나쁜 얘기도 있더라고요. 처음엔 나쁜 것들이 신경을 쓰여서 안 봤어요. 대부분 오해죠. 당연히 나에게 나쁜 말이니까, 나쁜 말은 오해라고 생각하죠. 근데 오해면 기분이 안 나빠야 되잖아요. 그런데도 신경이 쓰이니 그럼 진실이라는 뜻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죠. 그럼 계속 보자, 이런 마음이 안 생길 때까지. 계속 나쁜 것만 찾아서 보는 둥 마는 둥 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가까운 사람들 말 정도만 귀 기울여서 듣는 편이에요. 멀리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기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되잖아요. 다른 사람이 저에 대해 쓴 걸 보면, 많은 경우가 나하고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저도 다른 누군가에 대해 그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거고요.

 

무엇보다 할 일이 너무 많아가지고 (웃음) SNS를 할 수 있는 틈이 없는 데다가, 저는 대답을 하는 것도 한참 걸려요. SNS는 속성상 바로 답이 나오는 걸 요구하더라고요. 사안이 생기면 바로, 악플이 달리면 바로, 이런 게 너무 힘들어서저는 심지어 고치거든요.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고치는데, 수정할 여유도 없이 막 올라가는 거니까 힘들더라고요. 블로그만 해도 손으로 쓰는 것에 가까운데, SNS는 말을 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말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지, 매체 자체가 별로 안 땡기는 거죠. 힘들어요.

 

미투데이 계정도 삭제하신 걸로 봤습니다.

 

처음에 미투데이는 시끄러운 곳이 아니었는데, 점점 과방 같더라고요. 과방에 모여있는데 내가 들어오고 작가님 어제 이거 보셨어요, 이런 과정이 계속되는 것 같았어요. 원래 제가 과방에서 여러 사람하고 얘기 안 하고 구석에서 있는,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SNS는 느낌이 라운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저랑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바람의 말'에 연관된 이들은 현재 영화감독, 사회활동가, 진보 교육감 후보 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살고 있습니다. 그 시절을 아예 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쁘다는 생각,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의 현재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왜냐하면, 일이 벌어진 이후, 어떤 사람이든 회상은 나중에 하게 되잖아요. 저는 어떤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도, 그 이후에 자기가 되게 나쁜 짓을 했다라고는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어떻게 견디고 사나요. 처음엔 자신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나중엔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이 유지가 안 되잖아요.

 

25년이 지난 뒤에 어떤 애가 지은이의 딸이라고 하면서, 우리 엄마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하면 누구라도 "너네 엄마한테 내가 큰 잘못을 했다."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그 일은 끔찍한 일이고 모르는 게 좋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선 그게 맞아요. 내가 도와줄라고 했는데 너희 엄마가 거부했다. 이게 저 입장에선 거짓이 아니라는 거예요. 모든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보고 나면 잘못된 기억이라는 걸 알 순 있겠죠. 그러나 이미 기억은 흩어졌고, 그 뒤에도 계속 살아왔으니, 자신의 삶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거잖아요. 힘든 애들 도와서 대학을 보낸다든지, 이런 좋은 기억이 있으면 그런 실수는 없어지는 거죠. 신이 아닌 이상, 우리는 누구도 객관적으로 그 일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죠.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쓸 때도 교장이나 최성식이나 이 사람들이, 죄책감을 갖고 감추거나 이러지 않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스스로는 자기가 진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신해숙이 신경 쓰는 건 지은의 딸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남편의 말이 거짓일까 하는 것. 최성식은 그 신해숙의 오해가 제일 문젠 거예요. 정지은이 어떻게 됐고,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겠죠. 나쁜 사람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뒤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다 까먹었겠죠. 미옥이라는 사람은 분명히 나쁜 짓을 했어요, 했는데도 까먹었어요. 자기가 원인이라고 생각을 안 해요. 그걸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최종적으로는 책에는 쓰지 않았는데, 지은이 죽고 나서 그 해 여름 방학 때 미옥과 유진이 싸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유진이 네가 죽인 거라고 말하고, 그래서 둘이 그래서 의절해요. 유진은 미옥이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옥은 강하게 거부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해요. 지은이 죽게 된 과정은 잊고, 지은이 아빠 때문에 자기 아빠가 죽은 것만 기억을 하는 거죠.

 

미옥은 바람의 아카이브에서 기억을 보면서 비로소 대면을 했겠죠. 우리는 다 미옥이 입장이 된다고 봐요. 내가 착각을 있고 있는 거죠. 그러다 진실을 한번쯤 대면할 때가 있잖아요. 아주 끔찍한이미지로 치면 에어리언의 괴물 같은, 그게 진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요눈뜨고 볼 수 없는, 너무 끔찍한 추악한, 근데 그게 진실이에요, 그 사람한텐. 그래서 진실을 대면할 수가 없는 거죠. 진실은 끔찍하게 생겼지만 모순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것일 거라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의 진실엔 조금씩 모순이 있으니, 우리가 만약에 객관적인 진실을 대면하게 되면, 끔찍한데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겠죠.

 

 

 

 

 

소설을 읽는 이들, 우리

 

진남을 처음 상상할 때 통영을 생각하셨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투박하고 활기찬 통영이라는 도시의 느낌이 진남과 겹쳐졌습니다. 주요 장소로진남을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 생각한 이야기가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통영을 배경으로 하는 청춘소설이었어요. 400-600매 짜리, 일본풍의, 경쾌하고 짧은 소설을 생각했어요.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남자애랑 동물소리를 잘 듣는 여자애가 나오는 태풍이 다가오기 사흘 전의 이야기. 서울 가고 싶어하는 시골 애들 이야기. 처음 연재하려는 건 이거였고요. 수업 중 여고에서 선생님에게 쪽지가 날아오는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안 떠나는 다른 이야기였어요. 쪽지가 날아오는 이야기의 배경은 경상도 보수적인 동네예요. 두 이야기를 생각하다 이 두개가 결합을 해버린 거죠. 지은의 얘기에 흔적 정도가 남아있지만. 원래 청춘 소설을 썼으면 "동물 소리는 알아듣는데 왜 내 말은 못 알아들어." 이런 대사가 나왔을 거예요. (웃음)

 

두 얘기가 합쳐지면서 통영으로 배경이 잡히게 됐어요. 보수적인 동네가 갑갑하기도 하고, 보수적인 동네면 훨씬 다르고 훨씬 어두운 얘기가 됐을 거예요. 정말 끔찍했을 거라, 피하고 싶었어요. 연재 제의를 받고, 일년 간 처음 이야기를 짤 때는 통영에 가서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서 동피랑마을 레지던스도 알아보고 했었는데요, 이야기가 합쳐지니까 얘기 특성상 도시를 직접 쓰기가 부담스러워져서, 아예 도시 취재를 안 했어요.

 

(진남은 통영의 옛 지명이라고 합니다.)

 

 

 

미국, 태평양, 일본, 방글라데시, 진남 같은 장소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요즘 김연수를 사로잡은장소들이 궁금합니다.

 

몇 년간 계속 서귀포예요. 서귀포 배경으로 소설도 썼잖아요. 여전히 가고 싶어요다른 곳은 아직까지는 크게제겐 서귀포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작가를 사로잡은 캐릭터가 있다면.

 

제 주인공이니까 좋아하지만. 카밀라 되게 좋아해요. 귀신을 보면서 살겠다 말하는 장면 같은 거되게 멋있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에밀리 디킨슨, 페터 한트케 같은 우아한 문장가들이 주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번역자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김연수 작가가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가 궁금합니다. 추천하고 싶은 책도 궁금하고요.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가는 나한테 없는 걸 가졌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제이디 스미스 라고.영국 소설가의 <하얀 이빨>이라는 작품은 어마어마해요. 이야기가 끌리거나 이런 사람은 아닌데 무진장 수다스러워요. 이야기 자체가. 그래서 21세기의 찰스 디킨스다 이런 얘길 많이 하더라고요. 제겐 이런 수다스러움이 없어가지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런 사람들이에요. 살만 루시디 같은 사람들. 방언 터지듯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저희가 쓰는 소설엔 없는 면이라, 부럽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엔 <옆구리의 발견>이라는 시집이 좋더라고요. 저자분이 젊고, 예전의 장석남 시인 같은 사람들이 쓰던 시 같았어요. 여전히 시는 이렇게 새로운 시인들이 계속 나오는구나, 생각했어요. 시는 역시 새로운 시인들이 좋아요. 소설은 오래 쓴 소설이 좋고요. (웃음))

 














 

 

다음 작품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게 될까요? 현재 연재중이신 <소설가의 일> 에세이로 만나볼 수 있을지요.

 

장편은 내후년, 2014, 2015년 즈음이 되지 않을까 해요. 연재중인 에세이는 내년일 거 같고요. 단편집이나 소설가의 일은 내년일 것 같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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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태연한 인생을 오랜만에 발표한 은희경 작가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발랄한 말투와 반짝이는 표정, 은희경 작가와 나눈 대화를 공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우연히, 태연하게

 

우연으로 완성한 소설이라는 작가 후기를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만들게 된 우연’, 소설을 쓰는 동안 은희경 작가에게 벌어졌던 일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소설에도 쓸 때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녹기 마련이에요. <새의 선물>을 쓸 때도 그랬어요. ‘할머니라는 인물이 처음 제가 구상할 때는 그렇게까지 큰 비중은 아니었어요. 그 소설을 절에 가서 썼거든요. 공양주 할머니 두 분을 매일 대하니까, 그 일상 속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소설 속에서도 비중이 커지더라고요. 작가한테 일어나는 일들이 소설에 영향을 주는 건, 다른 작가에게도 그렇고, 다른 소설에도 그래요.

 

특히 이 소설이 그런 성격이 강했던 것은, 원래 쓰려고 했던 소설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소설이 안 써지는 작가 이야기를 쓰자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다음 설정부터 우연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이를테면 사고죠. 사고친 거예요. (웃음)

 

 

 

원주, 연희동, 스페인 말라가, 프랑스 파리, 중국 시안, 미국 뉴욕. 이렇게 여러 도시를 떠돌면서 쓰신 글이라고 들었습니다. 소설속 인물들도 정적이라기보다는 동적인데요, 떠돎이 소설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그렇겠죠? 그런데, 제가 막 (의도적으로) 다니면서 쓴 건 아니었고요, 소설을 쓰는 일년 동안 우연히 여행이 너무 많았어요. <태연한 인생> 속 이야기는 6일 동안 일어난 일이잖아요. 장소도 신도시 안이고요. 사건만 보면, 볼륨만 보면 그렇지만 그 바깥에 액자처럼 류의 이야기가 있어요. 시간도 류가 태어나기 전, 공간도 다른 나라고요. 그렇게 이 이야기에 볼륨을 준 거죠.

 

이야기가 이렇게 된 데엔 제가 여행자였던 것도 영향을 주긴 한 것 같아요. 6일간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부모의 인생까지 술술, 이야기가 흘러가게 썼던 게 여행자로서의 그런 감정, 정서적인 기조가 분명히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소설 속에서 재정의된 단어가 인상적이었어요. 패턴 / 개인 / 고통 / 고독 / 매혹…… 이 단어들 중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작가 자신을 가장 매혹시킨 단어가 궁금합니다.

 

 

출발할 때 내가 왜 원래 쓰려던 소설을 못쓰는가, 내가 패턴에 갇힌 것 같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패턴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언제나 그랬지만, 소설을 써가면서 인물들이 작가들 끌어가요. 인물들의 삶을 얘기하면서 결국 사랑 얘기가 됐어요.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고독이 따라와요. 사랑이 매혹으로 시작되지만, 매혹의 시기가 지나고 각자 인생에 편입되면서 서사가 시작되고, 서사가 시작되면서 사회 안에 들어가니까, 사회 안의 패턴, 편견, 이데올로기가 매혹을 왜곡시키잖아요. 그런 과정이 좀 나왔어요. 시작은 패턴, 점점 고독과 고통, 나중에는 삶의 매혹…… 그런 단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마지막에는 인간이겠고요. 제 다른 소설에도 그런데,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 절벽에 도달한 순간 약간 허무한 것, 그 허무가 삶에 스케일을 준다고 생각해요. 허무를 의식하지 않으면 삶은 좀 얄팍한 것이고요, ‘인간은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허무 속으로 종결된다.’ 이런 생각을 가질 때 삶을 보는 시각에 스케일이 생긴다고 봐요.

 

 

 

소설 안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듯, 이 이야기에선 고독, ‘허무가 그리 부정적인 의미로 보이진 않습니다.

 

 

고독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피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고독을 부정적으로 보고,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 할 때의 기분, 그때의 감정이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그런 얘기를 했어요. 병도 그렇고, 상처도 그렇고, 고독이나 고통도 우리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읽으며 인상적인 아포리즘(aphorism)을 여럿 발견했습니다. 오래 멈춰두고 읽게 되는, 단언하는, 선언적인 문장들을 어디서 길어오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을 쓸 때 저도 이 이야기의 흐름에 휩쓸렸어요. 적어놨던 걸 쓰거나 한 게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주인공들의 상황을 생각할 때 제 마음이 많이 동화되었어요. 가령 고독으로 왔다가 고통으로 자리잡는 거구나.’ 이런 문장은 쓰면서 저도 많이 깨우친 거죠. 결국 사람은 누구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사람 자체가 고독한 거고, 그게 고통이구나, 저 또한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병이나 고통이나 같이 사는 거라는.. 그런 생각을 했고요. 이야기를 쓰면서 공부가 많이 됐어요. 이 이야기 속 세계에 닿았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글을 읽을 때, 누가 쓴 문장을 보면서도 그런 게 더 많이 들어오는 거예요. 실현되는 운명에서 도망치려 해도, 부정적인 것, 피하고 싶은 것들에서 벗어나려 해도, 결국 그런 것들이 나를 더 고통스럽고 고독하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소설에서 이야기된 문장들도…… 내가 그런 질문속에 사로 잡혔기 때문에 더 그래서 주목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소설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 유난히, 다른 소설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었다면, 다른 소설은 이것에 대해 쓰겠어라는 의도가 있었고, 그걸 만들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어요. 그렇지만 이 소설은 정말로 정해진 의도가 없었어요. 이 전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에서는 예를 들면 편견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같은 저 나름의 강한 메시지가 있었어요. 그걸 꼭 말해줘야 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었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제가 뭘 전달하겠다는 생각이 없이, 허우적대는 인간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어요. 그래서 소설 쓰는 과정이 더 공부가 많이 된 것 같아요.

 

 

 

S시에서 류가 요셉을 떠나는 장면은 이야기 속 두 인물에겐 필연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류가 요셉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들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달라졌을까요?

 

 

어쩐지 처음부터 류가 요셉을 떠난 걸로 설정을 했어요. 그게 더 맞을 것 같았어요. 나중에야 이 감정을 어떻게 설득시키나 고민이 많이 됐어요. 두 사람의 헤어짐을 의도를 갖고 설정한 게 아니고, 그냥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먼저 정해놓고, 이해해보려고 했어요. ‘왜 그렇게 절정에서 떠나야 했을까?’

 

정답은 없겠죠. 결국 두 사람도 류의 부모님처럼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류의 부모처럼 같이 살 수는 있었겠죠. 류의 독백을 처음에 설정할 때는 서로 사랑하지는 않는, 사이가 별로 안 좋은 직장동료처럼 살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했어요. (선택받은 입장인) 어머니도 자기 선택에 의해 살아가는 아버지 같은 사람을 선망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고요. 떠나겠다는 류의 결심도 선택이며. 그 역시 사랑의 실천이라고 나중에는 생각을 했어요. 불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부모님처럼 될까 떠나버린 류의 선택도 결국 고독했지만요.  어머니의 선택, 혹은 류의 선택, 어떤 게 결과적으로 좋았을까. 사랑을 이루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고요, 서로 다른 둘의 방식이 섞이며 흘러가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소도 카페입니다. 광장도 밀실도 아닌 카페라는 공간, 공적인 공간이면서도 개인의 공간인 요셉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은희경 작가가 자주 찾는 카페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성격이 좀 산만해서, 집중을 잘 못해요. 차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잠깐 비는 시간에 어디서 뭘 한다든지 그러질 못해요. 나 혼자만의 공간이 갖춰져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요. 그래서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는 건 원래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카페에 가면 당장 다른 사람 얘기부터 들어오니까요.

 

소설이 안 풀렸을 때 다른 방식으로 해보면 다른 이야기가 올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소설은 미리 준비를 하고, 적당한 장소에 들어가서, 그 준비된 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으로 썼다면, 이 소설은 나 자신을 기계를 정비하듯…… 나 자신을 준비해두고 뭘 써야 할지는 모르는 상태였어요. 모르고 어딘가로 가는, 그런 기분이었고, 그 대신 제 감각이 열려있는 것 같았어요. 쓰겠다는 생각이 있는 상태, 모든 감각이 열린 상태로 카페에 가서 저에게 다가온 모든 게 이야기가 되고, 묘사해야 할 장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카페라는 장소가 가지고 있는 이런 특성들이 저한테 들어온 것 같아요. 지금 현재 내가 있는 시간과 장소를 관찰하는 것에 제 모든 에너지를 썼어요. 제가 쓰고 있는, 만나고 있는, 눈에 띈 풍경...... 이런 것들이 빨려들 듯 소설 속으로 들어갔어요.

 

 

 

은희경, 매혹의 세계

 

 

 

류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극장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 은희경에게 극장이란, 그리고 최근 즐겁게 본 영화가 있다면.

 

영화를 자주 봐요. 비행기에서도 잠이 안 와서, 뉴욕에서 오는 길에 다섯 편을 봤어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지난주에 본 <조지 해리슨>이에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상상마당음악영화제에 출품된 건데요, 멋졌어요. 제가 음악 견문이 넓지 않아서, 좋아하는 것만 들어요. 클래식도 브람스 교향곡 1번만 듣고요. 비틀즈도 계속 들었어요. 비틀즈를 들으면서 쓴 <그것은 꿈이었을까>라는 소설도 있고요.

 

비틀즈 외엔 의 비틀즈와 의 비틀즈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지 해리슨이라는 새로운 아티스트를 조명한 걸 보니까, 이런 선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틀즈는 네 명이잖아요. 조지 해리슨도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걸 하고 싶은데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만 하니까, 그들이 곡을 만들어놓으면 한 소절마다 기타 반주를 막 넣는 거예요. 그런 갈등 때문에 상처를 받다가 해체한 다음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예술을 하는 과정을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예술이라는 것이, ‘자기라는 걸 표출할 때 가장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예술은 정말 혼자 하는 것이고, 객관적 성취와 관계없는 것이다…… 명상의 세계에 빠진 조지 해리슨이, 그것을 자기의 독창적인 예술 형태로 만드는 과정이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예술가와 대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비틀즈가 처음에는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였잖아요. 돈을 막 많이벌고 해체한 다음에, 황량한 대저택을 사가지고 자기가 직접 언덕과 호수를 막 바꿔놓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게 멋져 보였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도 멋있었고요. 영화 얘기를 더 해도 되나 (웃음) 조지 해리슨이 죽음을 맞는 장면에서 그냥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켜놨어요.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흥행이 되는 그런 영화도 봐요. 좋아해요. 그런데, 그래도, 뭐랄까. 불편한 영화를 봤을 때 더 재미를 느껴요.

 

 

 

카페에서 요셉이 누군가를 관찰하는 신, 그리고 그 관찰이 대부분 틀린 것으로 드러나는 신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의 단면을 관찰해 서사를 만들어내는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도 누군가를 관찰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편이신지요.

 

 

저도 사실은 많이 하고 다 틀리거든요 그런데 위축되지 않아요. 왜냐면 작품 속 리얼리티랑 현실 리얼리티는 좀 다른 거예요. 그게 리얼리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상상을 많이 해요. 식당에 갔는데 가족사진이 걸려있더라고요, 멀찌감치 있는…… 젊은 여자랑 아버지 같은 노인이 사진에 있어요. 저는 저긴 며느리고, 저 사람은 시아버지……’ 이렇게 가족관계를 상상했는데 다 틀린 거예요. 딸이었어요. (웃음)

 

작가의 권능은 현실을 알아맞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포착된 상황을 내가 진짜인 것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작가의 권능이라고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제가 저 테이블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이런 관계일 거야.” 라고 말했는데 사실이 아니면, 사람들이 에이 엉터리야이랬어요. 그런데 전 틀린 게 더 작가답다고 생각해요. 창조해내는 거지, 현실을 알아맞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틀리는 게……

 

 

 

요셉, , 도경, 이안, 이채 등 소설 속 인물이 선명한데요, 이 사람들 중 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제일 몰입한 건 예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내가 얘기하려고 하는 고독이나 고통이나 매혹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 설명하는 인물이기도 해서요.

쓰면서 재미있었던 건 그래도 요셉이죠. 악역을 쓸 때가 재미있어요. 파격적인 걸 대신 해소할 수가 있으니까요. 너무 인품이 뛰어나고 성격이 좋은 인물을 쓸 때는 갑갑해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주인공을 만들어놓으면 극단적인 것도 할 수 있고, 즐거워요. 쓰면서는 요셉 부분이 즐거웠어요.

참 제가 설정한, 첫 일회 분 일부를 쓸 때, 토지문학관을 갔어요. ‘글 안 풀리는 작가를 써야겠다는 생각 외에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토지문학관에 그 당시 영화감독이 유독 많았어요. 그래서 이안은 영화감독이 됐어요. (웃음)

 

 

 

마지막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노래하기어떤 삶일까요. 이것을 태연한 인생이라고 봐도 될까요.

 

 

글쎄 그렇겠죠. 소설 속 인물들이 다 태연한 것 같긴 해요. 태연하려고 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요셉 같은 경우는 독설이냐 위악 같은 걸로 하는 거고, 이안 같은 사람은 자기는 아니다, 남과 다르다, 이런 자기기만이 있는 거잖아요. 도경 같은 경우에는 알려고 하지 않잖아요.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고, 불감 상태에서 그냥 떠라 하고, 자기라는 걸 내세우지 않고, 묻어가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죠. 그런 식으로 태연하다는 게 방식이 여러 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고통이나 고독에 주목해서 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 태연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도 가장 태연하다는 개념을 잘 설명해주는 인물이 류니까요. 류의 삶 자체가 태연한 거니까, 류에게 태연하다는 말을 붙이는 게 가장 맞겠죠.

 

 

 

작가 은희경의 태연한 나날

 

 

 

소설 속 소설가 요셉의 이야기처럼, 소설이 쓰이지 않는 때가 있는지, 그런 때면 무엇을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소설이 안 써질 땐 주변 사람들…… 이 제 곁을 떠나는 게 좋겠죠. (웃음) 아무래도 예민해지고 그래요. 토지문학관 작가 집필실 갔을 때, 주말 같은 때는 술자리도 있고 그런데요, 제가 평소엔 유쾌하게 술 먹는 타입인데요, 글이 안 써지면 내내 우울해가지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못마땅하고 이해 안 하려고 하고 그런 까칠함이 있어요. 그런 점이 주인공의 성격을 만든 셈이죠. 굉장히 비관적이 되기 때문에, 그 무렵에는 제 눈에 안 띄는 게 좋아요. (웃음)

 

 

 

허연, 함성호, 황병승, 서정주 등의 시가 소설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은희경이 읽는 시, 좋아하는 시가 궁금합니다.

 

 

다른 소설가들도 그렇고.. 저도 시를 많이 읽어요 가장 정련된 문장이니까 문장학습 기분으로도 읽고요. 소설은 서사를 가지고 말해야 되니까, 보수적인 관습을 따라야 하는 게 있잖아요. 시는 훨씬 더 새로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위적으로 말하니까 읽어요. 소설 속에서 읽은 시는 제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것이에요. 평소에 언젠가 소설에 한번 써먹어야지생각도 했었고요.

특히 <침향>… <비밀과 거짓말>에 서정주 시인을 많이 인용했어요. 시 전집 두 권을 굉장히 자주 읽었거든요. 그때 <침향>의 세계를 언젠가 써야 되겠다고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고통과 고독과 매혹과 허무의 세계로 흘려 보내느냐, 침향의 세계로 보낼까생각을 많이 했어요.

 

소설에도 썼지만, 저는 원래 <가지 않은 길> 같은, 그런 시가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침향>을 봤을 때 이 스케일에 비할 수 없구나…… 역시 이 세계가 깊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서정주 시에서 시공간을 넘는 활달한 상상력 같은 걸 많이 느꼈어요. 이런 게 훨씬 깊은 사유라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작품들, 문장들을 생각하면 우연히 되어진 소설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결국 오래 생각했던 문장, 오래 생각했던 이야기가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걸 느낄 때 영감이 왔다고 하는 거예요. 뭘 쓰려고 앉아있을 때, 모든 게 굉장히 열려있어요.  포착이 되는 예민한 상태에서, 내 안에 있는 걸 여는 거죠. 전혀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되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있었던 나와주면 그게 영감이라고 생각해요. 번개같이 떠오르는 게 영감이 아니라요. 내가 느끼고 알고, 갖고 있었던 것들이 마침 딱 적당하게 떠오르는 것이 저는 영감이 오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종종 그런 때가 있었어요. 이 부분을 쓰면서 아 그 시가 있었지……’ 생각이 드는. 그런 감각이 있어서 가까스로 소설을 완성했죠. (웃음)

 

 

 

이안의 영화에 등장할 술자리 장면을 보며, 또 소설의 마지막을 읽으며 어쩐지 술이 마시고 싶어지는 소설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 술자리 같은술자리였다고 할까요.

 

작가들이 어떤 장면의 디테일을 상상할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상상이 안 돼요. 제 경우엔 조금이라도 단서가 있어야 상상이 되거든요. 미용사는 쓸 수 있어요. 본 적이 있으니까요. 조경사라든지 전혀 모르는 경우는 공부를 해야 되겠죠. 상상을 해도 상상의 기초적인, 단서가 없으면 안 되거든요.

술자리는 제가 익히 잘 아는 장소니까, (웃음) 사실은 모든 장면을 구체적으로 머리에 동선을 그려요. 이 소설에 나온 것들, 수필 심사라든지 대단찮은 영화제, 이런 것들도 그 기간에 저한테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었던 거거든요.

 

제가 상상한 술자리는요. 제가 홍상수 감독이 <첩첩산중, 2009>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영화 찍는 장면을 봤어요. 나중에 어떻게 쓰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모르는 것을 봐둬요. 정유미씨, 이선균씨가 술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쓴 거예요. 그 영화의 동선으로 소설 속 술집의 동선을 쓴 거죠. 그래서 영화를 봐두는 것도 좋아요. 할리우드 영화, 블록버스터 무비도 취재는 안 되지만, 동시대인으로서 감수성에서 뒤지면 안 되니까, 또 제가 재미있어서 보지만, 또 다른 쪽 영화는 제가 취재 삼아 보는 게 있어요. 감독만의 독특한 시각, 정서의 포착, 그런 게 필요할 때 이전에 봐둔 게 적당히 나와주기를 바라고 경험해놓는 거죠. 영화와 관련되어 제가 구경해놓은 것들이 도움이 됐어요. 현실성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제가 거기서 마음속에서 취재를 해놨기 때문일 거예요.

 

영화 찍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가서 본다, 그러면 취재가 돼요. 그때는 내가 이미 어떤 의도를 갖고 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눈으로 보게 돼요. ‘술집 장면을 써야지생각을 보면 내가 원래 갖고 있던 상투적인 틀만 나올 거예요. ‘무조건 구경해놔야지생각하고 보면 다른 걸 볼 수 있어요.

 

 

 

은희경 작가가 최근에 보고 있는 책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바르가스 요사 책을 보고 있어요. 대가들이 나이 들어서 쓴 소설들을 최근에 좀 찾아서 읽어보고 있어요. 젊어서 쓴 소설에 비하면 나이 들어 쓴 소설은 느슨하면서 간명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전성기가 있다고 할 수 없겠지만,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있잖아요. 그런 작품에 비해서 조금 더 대중적이에요. 그것들을 재미있게 봐요. 마르케스 것도 그렇고 요사도 그렇고요.

 

 

 

작가 소개가 독특합니다. “유럽 도시의 카페와 로키산맥 캠핑장 모두 좋아한다. 개콘과 소지섭과 못 밴드와 키비를 좋아하고, 예쁜 사람들을 편애한다.”와 같은 문장으로 은희경을 설명하고 있어요. 작가 은희경이 요즘 좋아하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그때랑 달라졌나…… 산문집(<생각의 일요일들>) 낼 때 제가 쓴 거거든요. 그게 일년전이에요. 그 사이에 뭘 좋아하게 됐을까…… 여전히 뭐…… 그때 이후로 달라지게 된 것은 크게 없는 것 같아요. 태연한 인생이 하나 더 생겨서,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된 정도? 농담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이상할 것 같아요.

이 소설을 내면서 뭔가 해소를 한 거 같아요. 그 동안 혼란에 빠져있었고, 그러면서 화도 나고 했어요. 실컷 욕할 일 실컷 욕했다는 기분도 있고요. 그래서 이제, 다른 소설이 쓰고 싶어졌어요.

 

 

 

그렇다면 은희경 작가가 쓰게 될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쓰려고 했는데 못 쓴 얘기를 다시 쓰겠죠. 그 얘기는 장편이고요. 장편과 단편은 쓰는 기분이 달라서 단편은 귀여운 기분으로 써요. 장편을 연이어 썼으니까 단편을 당분간 쓰려고 하고요, 그 다음 장편은 제가 쓰려고 했으나 쓰지 못했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제 나도 패턴이라는 거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으니까, 이제 써지겠죠? (웃음) 다시 그곳으로 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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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 2012-08-10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책도 기대할게요
 

  등단 41년, 비로소 '엄마' 이야기를 꺼낸 김주영 작가를 집무실에서 만났습니다. 김주영 작가의 열정적인 목소리를 공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잘 가요 엄마 (2012.5)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다시 장편소설로 뵙게 되었습니다. <잘 가요 엄마> 출간 후 근황이 궁금합니다.

 

제가 많은 책을 냈는데요, 한 권짜리 소설도 대여섯 권 되고, 다섯 권 넘는 것도 대여섯 가지 되고.. 그런데, <잘 가요 엄마> 내고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요. 책을 사봤다는 사람도 상당히 많이 있고, 문단에 있는 동료들도 이메일로 감상을 얘기하고 해서 상당히 들떠있는 형편이에요. 이 소설을 내가 한 일년 반쯤 걸려서 썼어요. 다섯 번 내지 여섯 번을 고쳐 썼고,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 소설 쓰기 위해 보냈고요. 책이 나온 후엔 방송국이니 여기저기들 불려 다니고 하느라고…… 굉장히 바쁘고, 다른 걸 생각할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치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는 게 고맙죠.

평소엔…… 때때로 시간 봐서 운동하고, 많이 걷습니다. 여기서(: 인터뷰는 장충동에 위치한 김주영 작가 집무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출발해가지고 청계천을 갔다 오거든요. 요즘 하고 있는 일이 대부분 그래요.

 

 

 

 

나의 십대는 그렇게 야금야금 메마르기 시작했다

 

오래 삭혀온 문장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김기림의 시 <>의 문장(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 이야기를 처음 쓰기로 마음 먹었던 때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소설을 읽어본 사람들은 짐작하겠지만 제가 어머니와 같이 지낸 소년 시절의 생활은…… 뭐랄까…… 솔직하게 얘기하면 누더기 같은 인생이었어요. 소풍 가는 날도 운동회 같은 날 도시락을 싸주지 못할 정도로 어머니가 굉장히 가난했고, 또 품팔이로 몇 식구를 외삼촌 식구를 또 나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셨고, 그리고 울타리 없는 집에 살면서 집안의 애옥살이 같은 것이 여과 없이 노출이 되는 그런 수치스러운 생활을 했고요. 그러다 일본에 징용 갔다가 돌아온 사람과 뭐 혼례 같은 것도 치르지 않고 같이 살았고, 나이가 늙어서도 아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두려워서 될 수 있는 한 저하고 연락을 끊고 살았고요. 남들이 들으면 정말 그랬을까의심할 정도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정분 같은 게 돈독하지 못했죠. 이게 어머니와 나 사이에 하나의 응어리로 남아 있었는데요.

 

어머니만 그런 게 아니고, 저도 자라면서 그런 어머니하고는 간격을 두고, 사이를 두고, 거리를 두고 살았죠. 왜냐하면 제가 살았던 고장이 안동문화권에 있는 조그마한 고장인데요, 거기서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품팔이를 하는 여자, 가난을 안고 살았던 여자, 아버지가 없는 아들을 데리고 사는 여자, 그러면서 또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은 여자는 거의 사람 취급을 안 할 정돕니다. 저도 어머니를 멀리하고, 어머니도 아들의 장래에 흠집을 낼까 멀리했어요. 서울에 올라와서 몇 십 년을 사는 동안 단 한번 단 하루…… 오셨을 정도로요. 그 동안 살아오면서, 야금야금 내 인생이 메말라갔다는 식으로, 때로는 어머니가 없으면 못살 것 같은 그런 절절한 심정으로 같이 살았고 때로는 너무 그리웠고, 때로는 미치고 싶도록 원망했고 저주했고, 또 때로는 너무나 덤덤했고, 어머니 자체가 싫었고. 이런 아주 우여곡절이 많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죠.

제 나이가 칠십이 넘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되면서 아, 내가 정말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은 좋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물론 픽션과 논픽션이 교차되고, 소설 속 이야기가 전부 사실은 아니지만, 어머니에게, 내게 있던 어머니 상을 써보자는 데서 이 소설을 착수하게 됐죠.

 

 

 

소설 속 의 어린 시절이 무척 구체적이었습니다.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얘기로 읽히는 작품인데요,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억을 더듬어서 말하자면, 소풍 가는 날 도시락이 없어서, 이웃집에 가서 그릇을 빌려다가 도시락을 싸서 갔었어요. 그런데 그걸 축구공처럼 차고, 모래 바닥에 처박아두고 그랬어요. 감자 고구마니까, 그걸 물에 씻어서 먹는데, 창피스러워서 바위 뒤에 숨어서 먹었던 그런 기억…… 술지게미 같은 것을 먹고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술 먹고 왔다고 벌 주고 그런 기억이 있어요. 그 다음에 새 아버지가 들어오죠. 집에, 생전 처음 보는 엷은 화장을 한 어머니의 얼굴에 느꼈던 배신감, 거부감. 엄마를 피해 항아리 속에서 잤던 기억. 어머니가 나를 찾아주기를 바랐지만, 결국 오지 않았던 기억. 본래 제가 어머니와 같이 잤었는데, 새 아버지가 와서 같이 잘 수 없게 되고, 건넌방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데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고 보듬어 안고 잤던 기억…… 이런 여러 가지들이 있죠.

 

전부 다 내가 겪었던 겁니다.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에서 반복되었던 배신감 같은 것, 어머니를 너무너무 그리워했던 정황…… 소설에는 안 나왔지만 늘 끼니를 굶어서, 운동회 날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어요. 뛰지 마라. 엎어지면 배가 고파 못 일어난다. 운동회는 뛰어야 되잖아요. 그런 기억. 이런 게.. 실제 있었던 일들이죠.

 

 

 

열등감이라는 키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중 인물이 느끼는 열등감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열등감이 어디서 오느냐, 제 경우엔 가난이에요. 요새 젊은 사람들은 가난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얘기 안 하지만, 겪었던 나로서는 일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게 가난의 흔적이에요. 지금 내가 먹고 살게 되었어요. 만약 집에 사람을 초대하지요. 그 사람한테 네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물어보지 않아요. 잡채든 만둣국이든 전이든,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쟁반에 포개놓아야 직성이 풀려요. 그게 내가 겪었던 가난에서 온 거겠죠. 내가 굉장히 우산이 많습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 없이 학교를 다녔었어요. 지금도 어딜 길거릴 가다 우산 좋은 게 있지요, 필요 없는데 삽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게 이런 가방이 없었어요. 가방 다 들고 다녔거든요. 난 무명으로 만든 책보자기에 들고 다녔어요. 그래서 좋은 가방 있으면 무조건 삽니다. 그게 다 어디서 오느냐, 어릴 때 책가방을 가지고 다니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 우산을 쓰지 못하고 다녔던 보상심리, 먹지 못하고 자랐던 보상심리. 이게 요즘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만치 가난의 흔적이라는 게 일생 동안 내게 남아있어요. 꼭 흔적만 남아있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일들이 내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거죠.

 

청년 시절 사십 대까지 여자를 미워했습니다. 덮어놓고 아무 이유 없이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어머니 때문에. 어머니가 할 수 없이 새 아버지를 맞아들였지만, 나는 하는 수 없이 견디다 못해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어머니를 저주하는 거죠. 어머니를 저주하는 게 여자를 싫어하는 방향으로 틀어진 거죠. 어릴 때 겪었던 모든 것은 그 사람 인격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게 내가 표본이에요. 알고 지내는 교수 한 분이 오늘 소설을 읽고 이메일을 보냈어요. 자기는 손에 흙을 묻히고 살지 말아라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랐다, 유복하게 자랐다. 이런 문구가 있더라고요. 그분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요. 남을 헐뜯는다든지, 남의 공과를 가로챈다든지 이런 게 없어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서울이란 도시에 친척이란 없어요. 내 혼자 떨어져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죠. 상당히 위태로운 사람입니다. 늘 생각합니다. 침착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헐뜯지 않고, 험담하지 말고, 아주 정상적인 생각을 갖고, 모범시민으로서의 생각을 유지해야 된다. 그렇게 내 스스로를 가다듬지요. 나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돌격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비틀어져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간이 사시적이고, 한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편안하게, 관대하게, 세상을 바라보려고 늘 마음을 가다듬죠.

 

 

 

귀신 얘기를 하는 애숙이 누나를 두고 천성적인 이야기꾼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작 <빈집>에서도 내 안의 더부룩한 것들이 이야기를 하게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 소설을 읽으며 김주영 작가가 지닌 이야기의 원형을 읽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소설가들 대부분이 말입니다. 모두들 가슴속에 이야기 한 자리씩은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어릴 때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든지, 이념의 문제에 몰입해서 거기에 빠져들었다든지. 빠져들어서 자기 자신을 망치고 인생을 망치는, 그런 일을 겪었다든지. 혹은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행패 같은 것에 상당히 저항을 가지고 있고, 그 불합리한 측면을 일찌감치 느껴서 이탈한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다 갖고 있습니다. 소위…… 한 시대의 이단아들이라고 볼 수 있지요. 시대에서 한발 물러서서 자기가 사는 시대를 바라보는,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죠. 그게 바로 이야기의 원천이라고 생각됩니다.

 

애숙이 누나도 원래는 원래는 어머니의 딸인데 어머니가 애 둘을 기르기가 뭣하니까 외삼촌한테 맡기죠. 외삼촌한테 맡기면서 니는 외삼촌 딸이다이렇게 되죠. 그걸 애숙이는 알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거죠. 거기서부터 저 엄마가 내 엄만데 나는 왜 엄마란 소리를 못하고, 숙모에게 엄마라고 하고, 삼촌에게 아버지라 그래야 하느냐. 주인공과 방학마다 만나면 너네 엄마 어떻게 지내고 있냐 자꾸 묻게 되죠. 이런 것이 하나의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겁니다. 이야기의 바탕을 실지로 체험하게 되는 거고, 그러면서 애숙이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꾼이 되는 거죠. 정상적으로 자라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얘기를 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삶은) 얘기의 원천이 아닙니다. 얘기의 그릇이 없죠. 너무나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요. 소설가가 가난한, 소외된, 변두리에 사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 사람들에게 얘기가 많기 때문이에요.

 

 

 

한 이불 속에서 어머니의 가슴 속에 손을 넣고 잠들 수 없게 되면서 나는 일찌감치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었다

 

아들이 쓴 엄마 이야기라 그럴까요.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울타리 없는 집에서, 그 집서 사는 사람 어머니와 나뿐입니다. 방이 두 개 있었지만, 가난하니까 겨울에 방 하나에 군불을 때기 어렵죠. 산에 가서 나무를 할 수 없고, 나무를 사야 하니까요. 그런 방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자지요. 될 수 있는 대로 체온을 유지하려면 어머니가 나를 안고 잘 수밖에 없습니다. 새 아버지가 들어오면서부터 그 평온하고 안온했던 잠자리가 나로부터 떠나버린 거죠. 어머니 옆엔 새 아버지가 있어야 되니까요. 옛날 습관대로 자다 보면 제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아요. 새 아버지가 잠든 나를 건넌 방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그걸 깨닫고 울죠. 다시 건너와서 낯선 사람에게 앙탈을 할 수도 없는 거고. 한대 얻어맞을 수도 있는 거고 말이죠. 누워서 울지요. 울다가 잠이 들어요. 근데 새벽에 보니까, 자고 보니 너무너무 따뜻한 거예요. 엄마가 나를 안고 팔베개를 해 갖고 주무시는 거예요. 그런 기억은 정말 안 잊혀질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내가 어머니에게서 격리되기 시작하면서 내 어린 시절의.. 너무나…… 바람 부는 들녘 한 가운데 혼자선 것 같은 그런 외로움을 겪게 되지요. 정신 상태가 황폐해져 가는, 그런 외로움이요. 정상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애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하죠. 황폐해진다든지, 건조해진다든지……

 

 

 

객지생활과 거짓말은 찰떡궁합이라는 것을 나는 알아채고 말았다. 거짓말이 아니면 나는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객지생활이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했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이 느끼는 객지그리고 그 객지에서 작가님을 살게 한 거짓말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로부터 떠나와서 객지생활을 지금까지 하고 있지요. 객지에서 공부하고. 그때 나이롱 학생이었어요. 객지 떠돌면서 살다 보면 문득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너 누구냐. 그 다음에, 객지 떠돌아다니니까 주머니에 돈이 없지요. 뭘 먹어야 하는데…… 먹는 일, 옷을 사 입는 일, 거처하는 일…… 공부하지 않으면서도 공부하는 척 하는 일,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일.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으면서 아는 척 하는 일. 이게 모두 거짓말로서 커버가 되는 거예요. 임시 회피가 가능한 거죠. 하나의 허상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 허상에 대해 이건 허상이다라고 양심적으로 얘기를 해버리면, 이 객지생활을 해나가기가 힘들지요. 그래서 자꾸 거짓말하게 되는 거예요. 만약 어떤 여자가 굉장히 좋다 결혼하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했을 적에, 이 여자가 내게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대학교 다녔냐, 방이라고 얻을 돈 있냐. 이 남자는 얘기합니다. 나는 근사한 대학 나왔어, 사법고시 준비하고 있어, 나 지금 예금이 삼억이나 있어, 이런 거짓말 한단 말이에요. 거짓말을 함으로써 가까이 갈 수 있고 정복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거짓말을 나 역시 하고 다녔던 거죠. 그러나 거짓말로 임시로 불편한 것은 피할 수 있지만, 내 정신 상태가 좀먹어 들어간다는 건 모르죠. 나 거짓말 많이 했죠.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느 것도 내게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상황도. 돈 없고 가난하고, 형편없는 학교 다니다 말았고, 손을 뻗어도 상류 사회엔 범접할 이가 없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살아남으려면 거짓말 해야 했었죠. 그 거짓말에 대해서…… 이 소설을 통해서 참회한 거죠.

 

이 소설에 어머니와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런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이 언급을 해놨습니다. 무허가 화장장에서 시신을 태우잖아요. 기다리던 사람이 시끄러우니까 뒤에 채석장으로 가지요. 사실은 채석장이 허가가 난 곳이고, 화장장은 무허갑니다. 무허가인 화장장 직원이 와서 시끄럽다고 항의한다 이거야. 이렇게 부조리한 사회예요. 그리고 이…… 가족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고 봐요. 아내가 여행을 갔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고, 연락도 안 하고, 아이들이 다 컸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연락할 정도. 이게 우리가 말하고 있는 소위 가족이라는 거다. 얘기한 거도 있고요. 상당히 사회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인물들이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도 소설을 읽으며 했습니다.

 

 

결핍......이죠. 어머니하고 교류를 안 하고 사니까요. 어머니에게 아들로서 해준 최소한의 지원…… 그걸로 불효를 땜질하려는 심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셔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거예요. 울음이 나오지 않고 자기 일상이 그대로 가지 않습니까? 심지어 내가 가기 전에 어머니가 화장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죠. 어머니와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삶 자체도 가족에 대한 개념이 안 잡혀있었던 거죠. 부인에게도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당연히 연락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혼자 가면서 어머니 시신을 안 봤음 좋겠다고 생각하죠. 구질구질하니까. 화장하기 전에 시신을 보게 되면서 드디어 어머니에 대한 가치를 점점 하나 하나 조금씩 느껴가는 거죠. 어머니의 앙상한 가슴 갈비뼈 이에 붙어있는 건포도 같은 젖꼭지. 내가 밥으로 먹었고, 그 가슴에 얼굴 파묻고 울었고, 웃었고, 그 가슴에 손을 얹고 잤던…… 젖가슴으로서가 아니고 영혼을 내가 이어받은 거예요. 그걸 어머니 시신에서 비로소 내가 느꼈다는 거죠. 그래서 참회라는 얘기가 나온 겁니다. 시신하고 염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가족들에 대한 일들은 한동안 생각조차 하기 싫었어. 그뿐이겠어. 당장 살아남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어서, 지나온 일 따위 돌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어

 

인터뷰 진행중인 서재에도 책이 굉장히 많네요. 김주영 작가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합니다.

 

 

주로 조선시대의 야삽니다. 고 다음에.. 조선 후기 산업사. 침실의 사회사라든지. 엉덩이의 재발견이라든지 유혹의 역사라든지 똥오줌의 역사라든지, 이런 책들이요. 야사에 속하죠. 정사가 아니죠. 많이 보고 있고. 객주라는 소설 열 권째를 쓰려고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한번 봤던 조선 후기 상업사를 다시 꺼내서 읽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권하고 싶어요.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포로수용손데 말입니다. 독일군이 패하고 러시아군이 진군해옵니다. 수용소에 갇혀있는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이 다 물러나고서도 자유로워져도 그대로 있어요. 왜 그대로 있냐. 그 수용소 생활에 젖어있기 때문에 수용소 바깥 생활이 두렵기 시작한 거예요 아 그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우리 인간이 처해있는 벽은 나약함도 아니고, 무슨 신이 없다고 해서 절망도 아니고요, 습관의 노예가 되는 것이 우리에겐 가장 두려운 점이라는 얘기를 이 책이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줄 쳐가면서 읽었어요. 이밖에 <고선지 평전>이라든지 <습관의 역사>같은 책도 좋은 책이고요.

 

 

   

 

 

 

 

 

 

 

 

 

 

 

 

 

 

 

 

 

 

 

 

 

 

 

 

 

 

여행에서 경험한 것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가장 최근 경험한 여행지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지금 내 사무실에도 항상 여행 떠날 채비가 되어 있어요. 여행도 글 쓰는데 도움을 많이 주지요. 나는 낯선 사람이 두렵지 않아요. 하도 여행을 다녀서, 팔십살 먹은 노인도 두렵지 않고, 대통령도 두렵지 않습니다. 난 영어 못해요. 근데 영어 하는 사람 만나도 하나도 두렵지 않아요. 만약 서로 못 알아들어요, 그럼 헤어지는 거예요. 그런 배짱이 있지요. 가장 최근에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세 군데를 갔다 왔죠. 20일 정도, 메콩강 중심으로 한 나라들을 보고 왔어요. 그 근방에 4500만의 인구가 살고 있어요 4600키롭니다. 저 중국의 티베트에서부터 시작해가지고. 남중국으로 흘러 들죠. 정책방송이라는 데서 그 여행은 칠월 달에 방영이 될 겁니다. ( : 7 5~8, 길 위의 작가 김주영, 메콩강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예정입니다.)

 

 

 

김주영 작가에게 있어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 글을 쓰게 하는 원천은 어느 지점일까요, 더불어 다음에 들려주실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우선 객주 10권을 쓴다는 거고요. 배우도 그렇고, 정치하는 사람도 그렇고, 음악하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글을 쓴다는 게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내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일이에요. 내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거.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때, 그건 치욕이에요. 어딘가 끌려가면서 사는 거거든요. 주체는 도깨비지 내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살지 않고, 내 스스로 내 자신을 통제할 수 있으며, 내 스스로를 내가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글 쓰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니까요. 내가 나를 통제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신념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솟아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제가 술을 잘 먹거든요. 술값을 벌자면 글을 쓸 수밖에 없지요. 내가 술값을 쑥쑥 잘 내요. 요샌. 카드가 있으니까요. (웃음) 그걸 벌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겠지요. 여행가기 위해, 여행비를 벌기 위해 글을 쓰고요, 내 스스로를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글을 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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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1동 2012-11-07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주영작가님의,글을 읽어 보고 싶어져요..왜냐면, 너무나 진실되여, 사실이 아닐지라도 다 읽고 싶어요...지금세대는 이런, 예전 고생를 모르잖아요..그래서 책을 남겨, 아들이 보아주엇으면 하는 바람입니디...

장영길 2012-11-09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달 그날에 섬진강의 시인의 어머니와 김주영씨의 어머니를 함께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칠십이 넘어서도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찡하게 울게 만들었 답니다.
김주영씨 속이 후련 하시겠습니다. 잘읽고 공감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
우리들 세대에 흔히 있든 여러 여건의 이야기였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