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악마 네로 , 태어나다..
독일에서13일의 금요일을 '재수가 나쁜 날'로 여긴다... ...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날이 바로 '17일의 금요일'이다. 게다가 11월을 운이 좋지 않은 달로 생각한다. 그러니 11월 17일 금요일, 더구나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천둥 번개가 치고 후드득 비까지 쏟아지는 날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임에 틀림없다. 이런날 마돈니나가 새끼를 낳았다. 그녀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고양이 중 수컷 한 마리는 온통 새까맸다. 마돈니나가 검은 고양이를 낳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검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천둥번개가 치던, 11월 17일 금요일 낮 열두 시에 태어났다.-12쪽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새 네로는 날카로운 발톱이 난 앞발로 농가를 휘젓고 다녔다.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작은 주둥이를 벌려 닭이 낳아 놓은 알을 먹어 치우기도 했다. .. .....어리석은 닭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단단히 얼어 버렸고, 그 뒤로는 아무 불평 없이 매일네로에게 알을 갖다 바쳤다. 그 뒤로는 아무 불평 없이 매일 네로에게 알을 갖다 바쳤다. 네로는 닭들이 바치는 알을 돌에 깨서 후루룩 마셨다. 그러고는 능청스럽게 초록빛 동그란 눈을 꼭 감고 가르랑거리며 쩝쩝거렸다. 알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에는 로자를 불러 남은 것을 먹게 해 주곤 했다.-14쪽
로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코를 고는 듯하더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이빨 사이로 혀를 축 늘어뜨린 채 후른 사팔눈을 영원히 감고 말았다. 네로는 마치 돌이 된 것 같았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린 채, 먹지도 않고 몸을 핥지도 않았다. ... .... 네로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슬픔에 잠겨 이졸데의 무릎위에 누워있었다. 그 덕분에 생쥐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돌아다니며 수군댔다.-81쪽
네로는 열 시간 동안 바구니에 있어야 하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깊게 한숨을 쉬고 몸을 둥글게 만 채 아무 소리 없이 잠이 들었다. 오래 전 동생 로자와 함께했던 첫 여행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독일보다 더 푸르고, 더 가까이에서 별을 볼 수 있었던 이탈리아의 밤을 꿈꾸었다. 벽난로에서 나는 나무 냄새와 15년동안 잊고 있었던 어미 마돈니나에 대한 꿈도 꾸었다. '엄마! 나 집으로 가요.'-84쪽
"나의 왕자님! 나의 천사! 나의 토깽이! 네로야, 어디에 있는 거니??" 네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졸데가 농가에 와서 농부에게 네로에 대해 물어 볼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농부에게 모습을 보이면 이졸데에게 네로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졸데는 울면서 떠났다. 네로는 그 모습을 보며 건초더미에 머리를 묻었다. 별장 덧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와 뒤이어 차에 짐을 싣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이졸데의 목멘 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자동차가 출발하자, 네로는 건초더미에서 기어 나와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탁해진 눈으로 자동차가 골목을 돌아 교회 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네로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녕, 이졸데! 잘 살아야 해요. 로베르트, 이졸데에게 잘해줘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졸데는 우리 없인 못 살잖아요."-100쪽
네로는 농가로 내려갔다. 화단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던 농부가 네로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그 악마 녀석 아니냐?" 농부는 네로에게 한 마디만 던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농부와 네로는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농부는 주름진 손을 뻗어 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왔다." 농부는 다시 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네로는 그런 농부 옆에 앉아 천역덕스럽게 털을 핥았다. 저만치에서 그리기올리나가 신선한 이탈리아 생쥐를 물고 달려오고 있었다.-100~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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