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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첫 소설집이 나왔을 때 어느 일간지의 기자가 보르헤스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그를 읽었지만, 심지어 그의 전집을 대략 다 봤지만,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무지, 보르헤스는 너무 어려웠다! 정말이지, 너무 어려웠다!  

 

 

 

 

 

 

 

 

 

 

 

 

 

학생들의 기말고사 답안을 읽다가,,  한 학생이 나보코프의 <절망>과 분신테마 관련 얘기를 써나가던 중 보르헤스의 <원형의 폐허>를 언급한다. 아뿔사! 이런 소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방학이 되자마자, 부산의 부모님 집의 창고에서 썩기 직전에(너무 많은 책이 습기와 벌레의 희생양이 됐다ㅠ.ㅠ) 구원(!)한, 손때 묻은 보르헤스 전집을 다시 꺼냈다. 자, 그렇게 미뤄 두었던 작가를 다시 한 번 본다.

 

 

 

 

 

 

 

 

 

 

 

 

 

 

무척 날렵하고 세련된 표지의 이미지가 여전히 좋다.(시인 박상순이 디자인한 걸로 안다.) 암튼. 얘기하기 편한, 즉 읽기 편한 작품들은 <픽션들>에 실린 대표 단편들([피에르 메나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원형의 폐허] 등)이지만, 그에 관한 얘기는 지금 쓰는 원고에서 하게 될 테고,  한데 덩달아 같이 읽은 작품들이 그냥 묻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게다가 메모 해놓은 것도 너무 많아서, 좀 긁어오려고 한다.

 

 

 

 

 

 

 

 

 

 

 

 

 

 

 

 

대체로 보르헤스는 '반복'(그러니까 '차이와 반복')에 예민했던 듯한데, '쓰기보다 읽기'라는 말에 포함된 것이 결국 그런 얘기일 듯하다. 그게 소설적 형식의 빌자면, 결국 분신 테마이다. <원형의 폐허>가 그 중 제일 잘 쓴, 거의 충격적인 소설인 것 같고. 소설적인 형상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런 것들도 있다.

 

 “그의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의 얼굴(그 당시의 형편없는 그림들을 보아도 그 어떤 사람과도 닮지 않은), 방대하고 환상적이고 자극적인 말들 뒤에도 단지 약간의 냉기, 그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꾸어지지 않은 꿈만이 있었을 뿐이었다.”(56)

죽은(혹은 죽기 직전) 셰익스피어와 신의 대화:

오랜 세월 동안 헛되이 그토록 많은 사람이었던 저는 이제 한 사람, 즉 나 자신이 되고 싶습니다.” 회오리 바람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그에게 대답했다.나의 셰익스피어여, 나 또한 나 자신이 아닌 걸. 나는 마치 네가 너의 작품을 꿈꾸었던 것처럼 세계를 꿈꾸었지. 그리고 내 꿈의 형상들 속에 마치 나처럼 수많은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무도 아닌 네가 존재하고 있는 거지.”(59) (전체와 무()」, <칼잡이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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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쉽게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지만 그건 비교적 장치(=기교)에 가까운 것 같고, 그 기저에 깔린 것은 아무래도, '역사와 악몽은 반복된다'라는 암울한 세계관인 것 같다. 요컨대, 피에르 메나르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똑같은(!!!) 소설을 쓰려는, '완전한 일치'의 이념을 실현하는, 그런 무익하고 암담한 글쓰기와 같은 시도. 그는 이걸 '지적인 행위'라 부른다. 원래, 지적이라는 것은 이런 것, 쓸모없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게 결국은 자기복제, 를 낳는다. 이런 작품도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르헤스는 자산의 문학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고, 바로 그 문학이 나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몇 페이지의 좋은 글을 썼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그 글들이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이미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의 것도 아니고, 단지 언어 또는 전통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명백하게 소멸할 운명을 가지고 있고, 단지 내 자신의 어떤 순간들만이 남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잖는가.”(66)

나는 우리 둘 중에서 누가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66)(보르헤스와 나. )

 

 

늙은 보르헤스가 아침 10, 영국, 템스 강(?) 거리의 한 벤치에서 젊은 보르헤스를 만나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또 어떠냐.

 

불가능한 것에 대한 본질적 공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경악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나는 자식을 가진 아버지였던 적이 없었지만 내 살과 피로 만들어진 자식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그 가련한 청년에게 물밀듯 밀려오는 사랑을 느꼈다.”(15).([타자])

 

겸사겸사, 그가 갖고 있는 책은 도... 키의 <악령>이다. 그 러시아의 대가는 슬라브 민족 정신의 미로를 가장 깊게 파고 들어갔던 사람이에요.”(15) 라는 찬사도 곁들여진다.

 

비슷한 주제로 역시나 충격을 주는 단편은 1983825. '보르헤스'가 자살을 하려고 여관방을 찾아갔는데, 숙박계를 보니 이미 내 이름이 있다. 내 이름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이미 씌어 있고, 잉크는 아직 말라 있지도 않은 채가 아닌가.”(147)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눈 다음 그가 묵고 있는 319호실로 간다. 그리하여, 나보다 좀 늙은 그와 대면. “기이한 일이군 - 그가 말했다 - 우리는 둘이면서 하나로군. 그렇다 해도 이게 꿈에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148)

 

 그것은 자네 기억의 저 깊은 곳, 꿈들의 조수 아래에 머물게 될 걸세. 자네가 그것을 글로 쓰게 된다면 자네는 자신이 환상적인 단편 하나를 쓰려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거야. 그것도 내일이 아니라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가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그와 함께 죽은 것이었다. 나는 맥이 풀린 채로 베개 위로 몸을 구부렸으나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 

밖에서는 또 다른 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155) ( 1983825일)

 

 

보르헤스는 아마 세계문학에서 가장 지적인 작가, 따라서 가장 염세적인 작가가 아닌가 싶다. 도무지 그의 소설에는 사람 얘기가, 세상 얘기가 전혀 없다!  책에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소설. 그나마도 너무 짧아, 잠시 졸거나 딴 생각하면 그냥 끝이다..-_-;; 달리 말하면, 그런 식으로 읽어도 번득이는 문장이나 장면에 눈이 따끔, 해진다. 이런 것. 

 

 

돈키호테는 결코 자신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의 광적인 독자였던 알론소 끼하노의 반영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39) (어떤 수수께끼」)

 

-- 몇 세기 동안의 망명 끝에 돌아온 신들(cf. 니체.)과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모든 것은 그 신들이 말을 할 줄 모른다는 의구심(아마 과장되었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수세기에 걸친 몰락과 망명의 삶은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요소들을 거의 탈취시켜 버렸던 것이다. (...) 불현듯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마지막 패를 돌리고 있고, 그들은 교활하고, 무지하고, 그리고 마치 갇혀 있는 늙은 짐승들처럼 잔인하고, 그리고 만일 우리가 두려움이나 동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그들은 급기야 우리들을 파멸시켜 버리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육중한 권총들을 끄집어냈고(우리들은 그 꿈 속에서 돌연 권총을 가지고 있었고) 즐겁게 신들을 쏘아죽였다.”(61-62) ([꿈]

 

 위에 적힌 쪽수는 모두 황병하 번역본이고, 이번 기회에 새 번역본으로 <픽션들>을 다시 읽었다. 송병선 번역도  좋다. 참조한 전기도 기대 이상이었다.(어지간한 논문들보다 낫더라는...-_-;;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못 되지만, 스페인어권 문학 연구자들이 좀 분발했으면 한다..-_-;;)

 

 

 

 

 

 

 

 

 

  

 

 

 

 

 

 

 

 

공부를 아주 잘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고, 내게 공부는 책을 아주 많이 읽고 또 아주 좋은 책을 쓰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소설(문학) 창작과 소설(문학) 연구가 딱히 다른 일이 아니었는데, 좀 더 뒤, 너무 다른 종류의 활동임을 알게 된다. 좀 더 뒤, 그럼에도 계속 두 가지 일을 어영부영, 엉거주춤 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다른 대안도 없음을 또한 발견한다. 더 젊어질 수도 없고, 또 공부만이, 읽고 쓰는 것만이 살 길이다. 모선배의 자조섞인 농담대로 "이 나이에 내가 뭘 어쩌겠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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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길어진 <고슴도치> 연재를 마친다.

 

성장소설(가족소설)을 쓰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 2007년 여름 오랜만에 고향에 다녀왔고, 우리 가족이 살았던 부산의 여러 동네를 아버지와 함께 순례했다. 나름 절치부심 끝에 두툼한 소설을 썼지만 참혹할 만큼 형편없는 놈이 나왔다. 그 다음에 썼던 소설에는, 딱히 성장소설이 아니었음에도, ‘성장소설의 매혹이라는 이름을 붙여보기도 했다. 언젠가 살릴 수 있길 바라며 통째로 버린 그 원고들 대신 <고슴도치>를 완성했다. 동화의 문법을 빌렸는데, 아니, 동화를 쓴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쓰고 보니 동화가 아니었다. 뿐더러 성장소설에 필수적인 성장이 없는 소설이 나왔다. 말하자면, 걸어도 걸어도, 걸어서 걸어서 제 자리임을 보여주는 소설. 그런 느낌을 안개 속의 고슴도치(노르슈테인)를 처음 봤을 때 받기도 했다.

 

2008년 초, 여동생이 거제도 **리에 있는 초등학교로 발령받았다. 어릴 때처럼 단 둘이 손을 꼭 잡고 에 갔다. 섬마을 선생님이라니. 동생의 학교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를 다닌 거창 **리의 학교와 너무 비슷했다. 학교 뒤쪽으로 넓고 푸른 논밭 대신 넓고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는 것이 달랐을 뿐. ‘구덩이 오막살이를 이어받는 얘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은 유학생활 이후 내 거처가 된 원룸()에서 나왔다. 이듬해에는 추석을 맞아 외갓집이 있는 영도에 갔다. 얼치기 일문학도에서 초등특수교사로 옮아가기 전 동생이 일 년간 근무했던 재활원도 거기 있었다. 덕분에 이야기를 얼추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 계속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일기장이 기억하는 최종 탈고일은 2011330일이다.

그 사이 영도다리 밑, 점집 한 군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내 이름의 한자도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하는 점쟁이 할아버지의 점괘가 참, 교과서였다. “마흔이 되면 인생이 전연 달라질 거요.” 전연 달라진다면 그건 인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자기기만이 없으면 좀처럼 넘기 힘든 것이 인생의 고비()인 것도 맞다.

 

지금보다 조금은 더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었을 열여덟 살의 나를 잡아다가 족쳐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왜 그토록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느냐. 워낙 오래 된 꿈이니까 더 어린 나를 소환하여 추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소설 쓰는 나는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원한에 사로잡혀 턱없는 오만함과 궁상맞은 열패감 사이를 오가는 인간, 균형 잡힌 자존감이란 전혀 없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장 아끼는 나는 소설 쓰는 나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 답인즉, 인생이 걸어서 걸어서 제 자리인 만큼이나, 대놓고 동어반복이다. 나는 소설가니까.

 

철저히 고독만 먹고살며 소설을 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 의 본성, 나아가 이야기(소설)의 본성임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리적 관점에서는 소설과 같이 올린 세계문학 관련 글들이 오히려 좋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렇기에 더더욱 <고슴도치>를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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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은 아이들 앞에 봉제 인형이 쏟아졌다. 하얗고 푹신푹신하고 커다랗고 둥근 얼굴에 털실을 만든 곱슬머리가 붙어 있는 것이 꼭 양배추 같았다. 어떤 인형은 머리카락에 리본을 달고 있고 어떤 인형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모자를 쓴 녀석도 있고 빨간 머리도 있었다. 표정도 제각기 달랐다. 입 모양이 열십자로 꿰매져 시무룩해 보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실이 반달처럼 박혀 활짝 웃는 녀석도 있었다. 동그란 구멍이 뚫린 녀석은 꼭 뭔가에 화들짝 놀란 것처럼 보였다. 코의 모양새도 조금씩 다 달랐다. 하지만 눈이 없다는 점에서는 전부 똑같았다. 양배추 인형에게 눈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 할 일이었다. 양배추 인형의 얼굴이 하나둘 완성되었을 때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따로 요를 깔았다. 소영이는 가람이의 손목을 자기 손목에 묶었다. 잠결에도 방 밖을 나가는 버릇이 있어서였다. 정은이는 소영이 옆에 꼭 붙어 누웠다. 그러곤 한 손을 소영이 배 위에 얹어 놓은 채 잠이 들었다. 간간히 정은이가 잠꼬대를 하며 웅얼거렸다.

 

고슴도치가 곰을 만나 함께 밤하늘의 별을 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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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 삶과 죽음 사이 -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1564-1616), <햄릿>(1601)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초연 년도는 1601년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거뜬히 지났음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살아있는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작품의 골조를 이루는 중세 덴마크 왕정의 비극(물론 셰익스피어의 순수 창작물은 아니다) 속에는 각종 서사 장르의 단골 메뉴(유령, 복수, 정쟁, 연애, 광기, 살인, 자살, 결투 등)가 총동원되어 있다. 인물들도 주인공뿐만 부차적 인물과 단역에 이르기까지 또렷한 형상과 성격을 자랑하고 대사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시구나 철학적 아포리즘에 맞먹을 만큼 도발적이고도 함축적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미루는 햄릿의 우유부단함, 행동이 아닌 행동 없음이 희곡의 플롯을 이끌고 가는 것도 흥미롭다. 부왕-유령이 즉각적인 복수를 명령했음에도, 이어 그 스스로 올린 연극을 통해 숙부(클로어디스)의 죄를 확인했음에도 햄릿은 쉽사리 그를 죽이지 못한다. 유혈 복수가 장려, 심지어 요구되는(“살인에는 정말 성역이 있어선 안 되고, 복수에 한계는 없어야지.”(169) 시대였고 햄릿이야말로 용맹한 다혈질의 전사였음을(폴로니어스 살해 장면을 보라) 상기한다면 더더욱 놀라운 대목이다. 5막 내내 복수-행동은 없고 그것에 대한 , , ”(70)뿐이다. 이는 짐승 같은 망각인가, 아니면 결과를 너무 꼼꼼하게 생각하는 비겁한 망설임”(149)인가.

 

 

 

 

 

 

 

 

 

 

 

 

 

 

 

 

 

햄릿에 대해 괴테는 지극히 도덕적인 한 인물이 자기가 도저히 감당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던져버릴 수도 없는 무거운 짐에 짓눌려 파멸한다고(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말했다. , 영웅이 되는 데 필요한 억센 감각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훗날 프로이트가 내놓은 해석은 주지하다시피 무척 당돌하고 발칙하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햄릿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를 제거하고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차지한 남자”, 즉 억압돼 있던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실현한 남자에게 복수하는 일만은 양심상(!) 할 수 없었다(프로이트, <꿈의 해석>)는 것이다. 햄릿을 근친상간과 친부살해의 틀로 읽어내려는 유혹은 여전하지만(어니스트 존스, <햄릿과 오이디푸스>) 그렇다고 수수께끼가 온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햄릿>(<맥베스>와는 달리) 인물의 내적 정황을 담아낼 수단, 객관적 상관물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위 실패작이라고 보는 견해(T. S. 엘리엇, 햄릿과 그의 문제들)도 있다. 한편, 투르게네프를 비롯한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은 햄릿을 (행동의 대명사인 돈키호테와 비교하여) 비대한 자의식과 사유에 얽매인 인텔리겐치아의 전형(‘잉여 인간’)으로 이해했다.

 

 

 

 

 

 

 

 

 

 

 

 

 

 

 

 

 

실상 햄릿의 가장 큰 매력은, 작품 자체가 그렇거니와, 그 성격상의 모호함과 흐릿함인 것 같다. 가령, 유령의 출현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햄릿과 그의 대화는 호레이쇼와 마셀러스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즉 단 둘만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어머니의 내실에서도 그는 유령을 보고 심지어 말도 주고받는데, 거트루드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부왕-유령은 곧 햄릿(‘-지식인’)의 내면에 깃든 또 다른 자아(‘행동-전사’)의 극대화된 표현이 아닐까. 다른 인물들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시동생과 결혼한 거트루드는 아들의 날선 비난에 시달리지만, 당시 여성의 입지를 생각하면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향한 클로어디스의 감정도 단순히 정치적 야욕과 육욕의 발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 내 죄 썩은 내가 하늘까지 나는구나. 난 인류 최초의 형제를 죽인 저주를 받고 있다.”(123) 회한에 사로잡힌 이 카인의 후예에게는 분명 복잡한 전사(前事)가 있었을 것이다. 오필리어의 광기와 자살을 비롯, 모두 상서롭지 못한 결말을 맞는 폴로니어스 집안도 그 나름의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결국 문제는 삶과 죽음 사이의 길항이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94-95)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라는 문장은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김정환 번역, <햄릿>)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말과 관련하여 가장 주의를 끄는 인물은 묘지 인부이다. 그는 오랜 세월 시신을 다루어온 까닭에 생로병사에 무감각한데, 오필리어의 시신을 묻을 무덤을 파다가 나온 해골 중 하나가 선왕의 어릿광대 요릭의 것임을 금방 알아본다. 그것을 손에 든 채 햄릿이 호레이쇼 앞에서 늘어놓는 말이 새삼스럽다. “안됐다, 불쌍한 요릭. 그를 안다네, 호레이쇼. 재담은 끝이 없고, 상상력이 아주 탁월한 친구였지. 자기 등에 나를 수도 없이 업었는데, 지금은 () 알렉산더 대왕도 땅 속에선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나?”(183-184)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에 대해 어떤 표상을 갖기가 힘들다. 그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잘 썼고, 과장하자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와 모든 인간형을 두루 섭렵한 유일한 작가였다. 그가 엄연한 영국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민족(지역) 문학이 아니라 보편적인 세계문학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극작가였을 뿐더러 연출가이자 극장 소유주이기도 했던 그는 살아생전에 물질적인 풍요를 누렸으며 여덟 살 연상의 부인과도 백년해로했다. 작품 창작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을 테지만 이 역시 오늘 날의 영화 작업처럼 흠이 아니라 그의 인화력을 방증하는 것이다. “뒤틀린 세월. , 저주스런 낭패로다, 그걸 바로잡으려고 내가 태어나다니.”(52) 15장에서 이렇게 한탄하는 햄릿과 달리,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 황금시대의 주역, 즉 시대와도 호응한 작가였다. 과연 천재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 <책앤>7월호.

 

-- <햄릿>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투르게네프의 <돈키호테와 햄릿>을 읽던 참에) 일종의 의무감에서 읽었고,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더라(나는 오히려 <맥베스>를 좋아한다). 반면, <햄릿>에 대해 쓰려고 이런저런 참고서를 뒤지던 중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정말 십수년만에(!) 다시 봤는데, 반가워서 가슴이 다 콩당거리더라. 취향이란 참, 이런 것이다!

 

 

 

 

 

 

 

 

 

 

 

 

 

 

 

 

 

 

-- 겸사겸사 <오셀로>와 <리어왕>을, 역시나 십수년만에(!), 슬쩍 다시 봤다. <오셀로>는 사랑(질투)보다는 오히려 (오셀로의)  계급의식이 더 돋보이고, 주인공들 보다는 이아고가 좀 수상쩍게, 즉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리어왕>은... 재산이 얼마가 되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꼭 쥐고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노후 생활 지침서로 꼭 읽어야 하는 명작임을 새삼 확인했다..^^;;  글구, 딸도 소용없다는, 잘 키운 아들 하나, 세 딸 안 부러워...~~ -_-;;

-- 덧붙여, 가장 훌륭한 <리어왕> 중 하나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이 영화!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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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만찬이 따로 없다. 남편의 통영 얘기는 간장 양념에 총총 썰어 넣은 쪽파 같다.

오줌은 여 아무 데나 싸고 큰 거 마려우면 우리 집으로 오이소, 라고 하는 데 미치는 줄 알았어. 무슨 방이 화장실도 없냐.”

숙박료 2만원. 처음에는 너무 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만했다. 성인 남자의 몸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쪽방에 화장실은커녕 수도시설 자체가 없었다. 남편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반쯤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밤을 보낸 공간의 비루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후다닥 짐을 챙겼다. 그리고 오줌은 여 아무 데나 싸고일단 차를 몬 다음 큰 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했다.

부장님도 진짜, 그쪽에 마땅한 숙소가 없다는 말도 안 해준 거야. 거기에 비하면 완주나 합천은 완전히 양반이더라고.”

아참, 그 오디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어?”

우리 경쟁사로 옮겨갔대. 걔네들, 순 양아치거든.”

남편의 얘기가 더 이어진다. 대리점을 내주고 양아치 소리를 듣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는 않는다.

 

10.

 

추석을 일주일 앞둔 주말, 함안에 성묘 가는 날이다. 외갓집 성묘도 겸하기로 했다.

남편의 회사차로 시댁 도착.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였으나 미혼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은 샤워 중이다. 온 가족이 6인승 차에 탔을 때는 815. 남편의 회사 차는 시동생이 몰기로 한다. 한편 이 쪽, 시아버지 차의 운전대를 잡은 것은 시아주버니다. 그 옆에는 시아버지가 앉고, 그 다음 열에는 나와 남편이 두 아이를 끼고 앉고, 마지막, 다락방과 같은 느낌의 구석 자리에는 시어머니가 앉는다. 이런 식의 배치가 된 것은 손자손녀와 한 차에 타려는 시어머니의 열망,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엄마와 아빠 옆에 앉히려는 그녀의 배려 덕분이다. 오만 사람 고생을 다 시키면서까지 굳이 친정 쪽 성묘도 가겠다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우아하게 푸는 셈이다.

 

오후 2시경, 시아버지의 고향 도착.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토를 해대던 우진이는 땅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쌩쌩, 건강해졌다. 막 선잠을 깬 건우는 불쾌감도 잠시, 평생 처음 보는 특이한 풍경에 격렬한 호기심을 보인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자기를 안는 사람에게는 방실방실 미소로 화답한다. 이 사람은 시아버지의 당숙모이다. 그녀는 해마다 이맘때면 추어탕 밥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이한다. 동네어귀의 도랑에서 잡은 추어와 직접 가꾼 채소와 방아를 넣고 끓인 귀한 음식이다. 민어조기 구이, 오이소박이, 가지나물 무침, 부추전과 같은 평범한 반찬도 토속적인 맛깔스러움을 뽐낸다.

당숙모, 화장실도 개조하셨네요?”

이른바 통시가 있던 자리에 세면대와 양변기를 갖춘 어엿한 신식 화장실이 들어섰다. 얼기설기 엮어 세워둔 싸릿대도 걷어내고 철문도 하나 달아놓았다. 이런 변화 때문에 자그마한 곁채가 오히려 생경하다.

엄마, 그 귀신 할머니 아직 있을까?”

우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척 문고리를 톡톡 두드린 다음 문을 연다. 전래동화처럼 늙은 꼬부랑 할머니는 언제 죽었는지 온데간데없고 온갖 잡동사니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다.

식후의 성묫길. 마을 뒤쪽, 좁다란 계곡 하나를 끼고 잡초만 무성한 넓은 밭이 보인다. 조만간에 채석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좀 더 들어가자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봉긋 솟은 두 개의 봉분 주변에는 시할머니를 묻은 날 심었다는 백일홍 나무가 무던히 잘 자라고 있다. 시골의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무덤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일이십 분이다.

 

화창한 오후, 우리는 소담한 시골길을 벗어난다. 우리, 즉 나와 남편과 우진이와 건우. 추수를 앞둔 벼들의 빛깔과 광택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라는 말이 선사하는 설렘도 크다. 그러나 차가 국도의 허리를 자르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초로의 영문학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이제 막 예술적인 집에 당도한 그의 형과 형수, 즉 나의 부모의 왁살스러운 소리도 들린다. 우진이의 몸을 꽃밭 삼아 활짝 피었던 열꽃과 건우의 의식을 앗아갔던 경련이 동시에 내 몸을 덮칠 것 같다. 불현듯,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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