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에는 외국어를

 

 

 

 

 

아이가 반항하는 건 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호르몬의 명령이지

思春期란 애벌레 나비의 탈바꿈 같은 것, 놀라지 말고, 아이야   

그럴 때는 외국어를 배우렴 낯선 말을 익히다 보면 금방 청년기

청춘이 너를 기다린다 사랑도 하고 일도 하고 늙어도 가야지

 

어른이 반항하는 것도 몸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역시, 호르몬의 명령

반항은 반향에 가깝고 눈 멀고 귀 멀고 침도 목도 마르다, 어른아

그럴 때도 외국어를 배우렴 시간도 넘치는데 더 열심히 배우렴 

낯선 말을 씹다 보면 更年期도 끝, 경로당에 가야지 죽기도 해야지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생굴처럼, 멍게처럼 뭉텅뭉텅 빠져나오는 핏덩어리를 느끼며 초경 월경 폐경, 이국소녀의 이름 '패경옥'을 닮은 세 낱말을 떠올렸고 그 속에 공히 들어 있는 '經'을 곱씹으며 죽는 날까지, 적어도 마지막 月經의 그날까지 외국어를 공부하겠노라고 다짐한다

 

 

 

*

 

 

 

 

 

 

 

 

 

 

 

 

 

직접 읽은 건 아니고 '갱년기에는 외국어를'이라는 말이 인용된 것을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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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었다

 

 

 

 

초등 1학년에서 2학년으로 가는 겨울방학

엄마가 죽었다

캄캄한 밤에 병원 불빛만 너무 환해서 무서웠다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울지 않았다 울지 못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3학년에서 4학년으로

4학년에서 5학년으로

계속 엄마를 몰래 찾아다녔다

학교 구석구석 아파트 구석구석

 

 

 

*

 

어젯밤 어디 동영상인가 뉴스에 달린 서너줄 댓글을 보고...울컥했다.

한편 '엄마가 죽었다' 이후 울기는커녕 여자친구와 코미디 영화를 보고 섹스를 한 일인. 하지만 그는 죽음이 뭔지 아는 나이고 섹스도 할 줄 아는(?) 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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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사러 이웃 동네에

 

 

 

 

 

1.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도넛이 먹고 싶다고 한다

꿈에서 도넛을 맛보았다고, 도넛을 사오라고 한다

 

 

2.

 

도넛 사러 가는 버스에서 선 채로 까무룩 잠이 든다 

실내인가 바깥인가 어두운가 밝은가 추운가 더운가

알 수 없다 오직, 나는 지금 여기서 사형에 처해진다

교수형인가 참수형인가 거열형인가 책형인가 팽형인가

모르겠다 오직, 태곳적 선고가 지금 실행에 옮겨진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버스 안의 몸이 출렁이자 

까무룩 들었던 잠에서 깬다 아, 또다시 그 악몽!  

슬레이트 지붕 집, 허름한 단칸방에 또 비가 샌다

사형은 이제야 집행된다 나는 빗방울을 피해

방구석 곰팡이 벽에 몸을 처박고 혼자 떤다

두 다리는 허공에서 대롱대롱 허우적허우적

 

에이씨, 죽기 싫은데, 사형은 더 싫은데

변비와 비만 유발하는 도넛도 싫은데

 

 

3.

 

'도넛'의 이데아에 부합하는 동그란 도넛은 어디에 있나

요즘은 우리 동네에도 이웃 동네에도 도넛이 푸대접이다

 

 

4.

 

오늘밤도 아이는 꿈에서 도넛 테두리를 먹을까 

뻥 뚫린 도넛 구멍은 무슨 맛일까

정체 불명 사행 집행의 맛일까

 

 

 

 

*

 

- 며칠 전 아이의 꿈 얘기와 <크리스피 도넛> 찾아 삼만리^^; 갔던 일. / 지난 주 한 학생의 이상한(?) 시 합평 중... 꿈에서 사형 집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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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과 생강

 

 

 

 

 

상강과 생강은 발음만 비슷한 게 아니랍니다  

 

맨 다리의 찬바람이 알싸하고 목구멍이 까슬까슬할 때

길쭉한 초록 잎과 가지 끝, 땅밑에 박힌 생강을 캐와요

개성 돋는 생강의 얼굴과 몸을 생선회처럼 얇게 저며요

좋은 꿀에 절여요, 설탕을 섞어도 좋아요

 

오늘 첫 서리라니

조만간 올서리 무서리 된서리도 내리겠네요

앞마당에 감도 어서 따야겠어요

진하고 따끈한 생강차에 잣을 띄워 마셔요

 

자연의 시간은 얼마나 정확한지

징그럽도록 파란 생강 초록 잎보다 징그러워요

너무 징그러워서 오늘도 감동합니다

 

 

*

 

霜降. 지난 10월 23일 금요일에.

 

 

 

 

 

 

 

 

 

 

 

 

 

 

 

 

황인찬, 저 시집 중 어디.... 풀이 징그럽게 파랗다...

 

 

어릴 때 생강을 키운 적이 있다, 물 컵에. 수경재배 -_-;;

 

https://photo-ac.com/ko/photo/55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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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너무 좋다! 시도 좋고, 시를 읽는 행위, 시를 읽는 나의 모습 다 좋다. 시집은 막간에 읽을 수 있어 참 좋다. 이동 중에, 버스/지하철 기다릴 때, 아이 기다릴 때. 가벼워서 가방에 넣어도 부담이 없다. 때문에 나는 무거운 시집을 싫어한다. (민음사는 왜 시집을 하드커버로 ㅠㅠ)

 

 

 

 

 

 

 

 

 

 

 

 

 

 

 

안도현 시집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능소화...>인데, 그가 왜 이리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전 시집까지 읽어볼 여유가 없어 조금 아쉽다. 원래도 드믄드문 읽던 허연. 김행숙은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지루했지만^^; 고도, 카프카 등의 시, 그런 시화(시-되기, 시-만들기)가 좋았다.

 

 

 

 

 

 

 

 

 

 

 

 

 

 

 

좀 더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뒤적, 뒤척인다. 이런 느낌, 좋다. 정독하지 않아도, 완독하지 않아도 좋다. 심지어 예습, 복습하지 않아도 좋다. 이런 자유로운 독서, 좋다. 책읽기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병률은 젊지는 않지만 이미지 위치를 잡다 보니...

 

 

 

 

 

 

 

 

 

 

 

 

 

 

 

 

양안다, 강혜빈은 아주 젊은^^; 시인이다. 방금 본 제목이 마음이 드는 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이 책들은 조금 미뤄둔다. 박준은 언제 다시 읽을 기회가 좋겠다. 내가 뭘 놓쳤나 싶은 아쉬움이 있는 시집.

 

 

 

 

 

 

 

 

 

 

 

 

 

 

 

지금 검색하다 알았다. 황동규의 신작 시집이 나왔다. 냉큼 주문해야겠다. 선생님, 계속 건강하시고 '즐거운 편지'를 써주세요! 나는 시집을 보면 가방에 넣고 싶다. 가방에 넣은 시집을 꺼내고 싶다. 꺼낸 시집을 펼쳐 보고 싶다. 펼친 그곳, 활자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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