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사러 이웃 동네에

 

 

 

 

 

1.

 

아이가 눈을 뜨자마자 도넛이 먹고 싶다고 한다

꿈에서 도넛을 맛보았다고, 도넛을 사오라고 한다

 

 

2.

 

도넛 사러 가는 버스에서 선 채로 까무룩 잠이 든다 

실내인가 바깥인가 어두운가 밝은가 추운가 더운가

알 수 없다 오직, 나는 지금 여기서 사형에 처해진다

교수형인가 참수형인가 거열형인가 책형인가 팽형인가

모르겠다 오직, 태곳적 선고가 지금 실행에 옮겨진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버스 안의 몸이 출렁이자 

까무룩 들었던 잠에서 깬다 아, 또다시 그 악몽!  

슬레이트 지붕 집, 허름한 단칸방에 또 비가 샌다

사형은 이제야 집행된다 나는 빗방울을 피해

방구석 곰팡이 벽에 몸을 처박고 혼자 떤다

두 다리는 허공에서 대롱대롱 허우적허우적

 

에이씨, 죽기 싫은데, 사형은 더 싫은데

변비와 비만 유발하는 도넛도 싫은데

 

 

3.

 

'도넛'의 이데아에 부합하는 동그란 도넛은 어디에 있나

요즘은 우리 동네에도 이웃 동네에도 도넛이 푸대접이다

 

 

4.

 

오늘밤도 아이는 꿈에서 도넛 테두리를 먹을까 

뻥 뚫린 도넛 구멍은 무슨 맛일까

정체 불명 사행 집행의 맛일까

 

 

 

 

*

 

- 며칠 전 아이의 꿈 얘기와 <크리스피 도넛> 찾아 삼만리^^; 갔던 일. / 지난 주 한 학생의 이상한(?) 시 합평 중... 꿈에서 사형 집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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