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래서 지금 한양은 고사하고 왕도를 둘러싼 지역 전체에서 사람들이 물괴로 변해 멀쩡한 사람 하나 없는 지경이오. 사람들 말로는 궁도 범해져서 임금도 물괴가 되었다 하더이다.


-네. 이놈, 그 요망한 입 다물지 못할까? 어디 전하의 안위를 가지고 망발이란 말이냐?


-망발은 무엇이 망발이란 말이요.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오.


한성부 소식을 전하던 사냥꾼에게 동영이 놀라고 대노해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무엇이 망발이란 말인가? 그들 주위에 바위와 평지마다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지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쉬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그런 그들을 거쳐 동영이 예까지 왔던 길을 서둘러 짚어가고 있지 않는가? 


-임금이 그리된다 해도 뭐 그리 망측한 일이겠소. 충신인 김종서 대감을 비롯해 숱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조카에게서 왕좌를 찬탈한 대악인이 아니오. 이제는 그 조카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지 않소. 


-옳고 그름은 역사를 누가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 결국에는 현군으로 기록될지 뉘 알겠느냐?


-옳고 그름을 그리 알 수 없는 시대라 이런 일이 나는 게 아니겠소?


........................................................


예탁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옹기종기 앉아있는 틈바구니를 다니다 치마와 저고리가 피투성이인 자기 또래의 한 소녀보았다.


-괜찮으시오? 


-예, 아씨. 저는 괜찮습니다. 흑흑.. 괜찮아요.


예탁이 자기 또래의 천민 소녀에게 안스러워 묻자 소녀는 아마도 가족을 흉사에 잃은 것인지 괜찮다는 말을 하며 서러움에 북받쳐 울고 말았다.


-쟈도 그렇네. 


예탁 뒤 건너 자리에 있던 무리 중 아낙네 한 명이 예탁과 말을 주고받던 소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다친 손을 잡아 유심히 보더니 말을 이었다.


-야도 물리고 멀쩡하네. 다른 사람들은 다 물리면 물괴로 변하던데 너는 어떻게 괜찮은 거여. 


-저도 모르겠어요. 


아낙은 뭐 시비 붙을 꺼리라도 발견한 것처럼 자기 자리에서 그 소녀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 손을 끌고 왔다. 아낙이 핏자국이 낭자한 그녀 저고리의 고름을 풀어 당기자 어깨의 깊은 상처가 보였다.


-니랑 쟈랑 뭣이 어떻길래 괜찮은 거여?


-내가 그걸 어떻게 안대유? 아프니께 그냥 놔 주시랑께유. 


예탁도 두 소녀를 유심히 보았지만 깡마른 천민 소녀와 아낙이 데려온 투실하게 살찐 소녀에게서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딸도 저 처자들과 같은 또랜데 물괴가 되고 말더만 이 처자들은 어떻게 괜찮은 거야?


아낙이 소녀들을 모아 놓고 시끄럽자 소녀들 뒤에서 농부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자가 놀라 물었다.

..............................................................


지민은 놀라 가마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다른 이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곁에서 지성은 가마꾼들과 함께 이게 무슨 일이냐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때 그들 곁으로 사냥꾼 무리가 걸어왔다. 


-철재야, 저거라도 먹자.


도끼를 든 남자가 잠시 전 동영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 사냥꾼에게 나무에 메어진 동영의 흑마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염석아. 한 명 정도라면 타고 빠져나가는 게 더 낫겠지만 저 사람들 예까지 도망 오며 먹지도 못했을 테니 먹는 게 맞겠다 싶다.


-맞긴 뭐가 맞다는 말이요. 이런 명마를 잡아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오?


도련님이 애지중지하는 명마를 잡아먹겠다며 들이닥치는 무지몽매한 자들을 가로막으며 지성이 나섰다. 


-명마? 명마가 사람을 살리면 그때는 더 유명한 말이 되는 거 아니냐? 


-내버려 두거라.


도끼를 든 염석의 말에 동영이 지민 곁으로 다가오며 지성을 말렸다.


-마님, 신행길에서 타고 가던 말을 잡아먹는다니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쩐단 말이냐? 신행길에서 더는 갈 곳이 사라졌지 않느냐?


지민이 하는 말은 당연한 말이었으나 동영은 본가의 모두가 어찌 되었을지 걱정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살고 나서 후일을 도모하자는 생각이 앞섰다.

예탁은 가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며 동영을 먼 발치에서 보고 시댁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이런 일을 겪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본가를 걱정할 동영의 마음을 헤아리기 쉽지 않겠구나 싶어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무슨 물괴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이 다 당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들 곁에 와 예탁이 다행스러울 수도 있는 소식을 전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부인. 


-저들 중에 물괴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는데 상처만 있을 뿐 멀쩡하지 뭡니까?


-이들 말로는 물괴에 당하면 끝이라던데 그게 아니었소.


동영은 희소식에 다행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어찌 된 일일까 하는 의아함이 일었다. 


-그거 너무 기대 마시오. 내가 이미 살아난 이들을 보았는데 오직 젊은 처자들 중에서 일부만 그러하오.


-젊은 처자는 괜찮단 말씀이셔요?


철재가 희소식을 부정하는 말을 했지만 지민은 너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거 내 생각에는 아마도 처녀만 괜찮은 것 같아. 그러니 첫날밤은 보내고 신행을 나섰을 이 신부는 걱정을 해야 할테고 아마도 처자는 괜찮겠지.


염석의 그 말에 지민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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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러니 이유를 치고 선왕을 복위시키자는 것이 아니오.


-이 자가 미친 게로구나. 네 정녕 목숨을 내놓고 싶지 않다면 어이 내게 와 폐왕 복위를 운운하는 것이냐?


공신인 홍윤성을 찾아와 재야 사림의 남효온은 당당한 것인지 미친 것인지 폐왕이 된 이홍위의 복권을 논하고 있었다. 홍윤성은 남효온의 주장보다도 자신을 찾아온 것 자체가 이후 자신에게 문제 삼을 이들이 있을 것이 자명하기에 '이 자를 어찌 처리해야 할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도 그리 오래 할 고민이 아니었다.


-이 중차대한 문제를 내가 왜 공을 찾아와 논하는 것인지 정녕 모르겠소?


남효온은 홍윤성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다소 짧은 그 시간 동안에도 계속 얼굴을 쓸어내리고 점점 땀을 흘리며 눈은 점점 충혈되어 갔다. 그가 그런 낯색으로 발작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몇 차례나 꺾으며 홍윤성에게 묻자 홍윤성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방 한편에 장식된 사인검을 조용히 들었다. 


하지만 그가 등을 돌린 사이 남효온은 어느새 온 얼굴의 혈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땀구멍으로 피를 흘리는 듯 붉은 기가 가득한 낯빛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뜻을 내 알 필요가 있겠는가.. 공이야말로 오늘이 공의 마지막 날임을...


홍윤성은 말을 하며 남효온이었던 이 생명체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을 향해 돌아서며 사인검을 휘두르려다가 흠칫 놀라 말을 잊고 말았다.


-무엇이냐... 네 정녕 무엇이란 말이야?


붉은 피를 덮어쓴 듯한 그것을 향해 소리치는 홍윤성에게 그것이 달려들었다. 혈안이 터질 듯이 크게 뜬 눈으로 보랏빛 입술 사이의 흰 이빨을 드러내며 그것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그는 검을 들어 그것의 배를 관통하였다. 하지만 배가 뚫리면서도 그 기세 그대로 달려든 그것은 홍윤성의 양팔을 부여잡고 선 미친 듯이 홍윤성의 목을 물어뜯었다.



5


-여기서 좀 쉬어 가시지요. 다리도 아플 텐데...


아직 해가 서산마루에 있을 때쯤 가마꾼 네 명이 메고 있는 호피로 덮여있는 가마와 그 옆에 가마를 지친 듯 따라오는 지민을 돌아보며 흑마를 탄 신랑 동영이 말했다. 가마 안의 예탁은 가마를 타고 있는 자신이 다리 저릴까 봐 걱정해 주는 동영의 세심함에 가슴 깊이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구나' 생각했다.


-아니옵니다. 서방님 어찌 이 늦은 시각에 지체하겠사옵니까?


-그래도 오랜 신행길이니 잠시 쉬어 가는 것이 맞겠지요. 아픈 다리도 좀 풀어야 하지 않겠소.


신부인 예탁의 말에 대꾸하는 듯했지만 동영의 눈은 지민을 향하고 있었다.


-예. 아기씨 아니.. 마님 가마꾼들도 지칠 터이니 잠시 쉬어가시지요?


-잠시들 쉬시게나.


동영 곁의 종자인 지성이 동영의 눈치를 보고는 가마꾼들에게 지시했다. 


가마에서 내린 예탁은 가마를 향하고 있는 동영의 눈길을 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인 영 대감을 찾아온 동영의 모습을 보고 잘생긴 도령이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호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년 사이 사주단자가 오가고 혼사에 이르기까지 말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사이였다. 게다가 첫날밤에도 합환주 몇 잔 마시고 곯아떨어져 첫날밤도 치르지 못한 사이였기에 신랑에 대한 커다란 호감 같은 건 없었는데 가마 안의 자신이 피로할까까지 걱정해 주는 따스함에 소록소록 정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에 말을 메어둔 신랑이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다. 예탁은 낭군의 배려와 애정만 있다면 시집에서의 삶도 견딜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탁은 그를 보며 마주 미소 짓고 있는 지민을 보지 못했다.


-힘들지는 않으셨소.


-제가 힘든 것보다 가마꾼과 이 아이가 힘이 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기 저 바위에 앉아 조금 쉬시겠소?


널따란 바위 위에 예탁과 동영이 앉자 예탁의 앞에 지민이 동영의 곁에 지성이 서있었다. 


-정아, 너도 예 앉거라. 


-제가 어찌..


예탁이 지민을 보고 권하였으나 지민은 짐짓 사양하는 체 했다.


-어서 앉으라는데두.. 나야 예까지 앉아 왔지만 넌 그 먼 거리를 꼬박 걷지 않았느냐?


-예, 마님... 


-부인 잠깐 쉬고 계시오. 요깃거리라도 구해 오겠소. 가자 지성아!


지민이 바위 위에 앉자 동영이 사냥을 하려는 것인지 열매라도 따오려는 것인지 지성과 함께 가자고 재촉했다. 지성은 조금 가다가 자신도 모르게 예탁과 지민이 있는 바위를 돌아보고 말았다.


-정아. 저 지성이라는 이가 너를 맘에 있어 하는 모양이구나.


-마님, 망측한 말씀 마셔요.


지민은 예탁의 말에 짐짓 화가 났지만 용케 참으며 대답했다. 


-어이. 뿔이 난 게야. 너와 내가 나이가 같은데 이제 나도 혼인을 하였으니. 너도 짝을 찾아야 할 게 아니냐? 지성이라는 자가 나이도 너와 비슷하고 용모도 저리 출중하니 네 짝으로 어떻겠느냐?


지민은 이미 자신에게 마음을 보인 동영에게 남은 생을 의탁할 생각이다. 비록 자신의 본래 신분을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앞길이 창창할 대제학 자제의 첩이 되어 남은 생을 여유롭게 보내고픈 욕심이 있었다. 그런데 저런 종자놈과 짝을 이뤄야 한다니... 순간 예탁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가 일었다.


-그런 흉한 소리 마셔요. 저는 그냥 혼자 살겠습니다.


-하하.. 알았다. 알았어. 네 마음이 정해지면 그때 얘기하자꾸나.



6


-도련님, 이제 이 산만 넘으면 마을인데 길을 재촉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는 다리도 안 아픈 게냐? 네 말마따나 산만 넘으면 마을인 것을 좀 쉬어간들 어떻겠느냐? 


동영이 말하는 찰나 지성은 나무들 사이에서 빛 좋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다행이다 싶어 소리쳤다. 


-도련님 개복숭아 열매가 있습니다. 저것으로 마님 쉬시는 동안 잠시 요기는 되겠습니다.


-이놈아 너는 어찌 같이 걸어서 온 소녀 배주린 것은 걱정 안 하고 마님 걱정만 한단 말이냐?


개복숭아를 열심히 따고 있던 지성은 뭔가 들킨듯해 서둘러 둘러댔다.


-저희 같은 종들이야. 조금만 먹어도 힘이 나겠지만 마님은 귀하디 귀하게 자라신 분이라 금새 배가 주리면 어쩌나 걱정을 했을 뿐입죠.


-뛸 일도 없고 걸을 일도 적던 규수와 뛰어야 살 수 있고 허드렛일에 힘겨운 소녀 중 더 주린 이가 뉘겠느냐?




동영과 지성이 개복숭아를 싸 들고 오는 사이, 산 넘어 마을에서 일련의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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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머님, 소녀이옵니다. 

 

예탁이 대청에 올라 옷매무새를 바로잡더니 사분합문을 향하며 고하였다. 

 

-예탁이냐. 어서 들어오거라.

 

예탁의 어머니 정 씨 부인은 새삼 반갑고 안쓰러움을 느끼며 예탁을 불렀다.

 

예탁이 들어오자 정 씨 부인은 다잡던 마음과는 다르게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예탁의 손을 잡았다.

 

-얘야,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구나. 시댁에 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데 이 어미가 매일을 너에게 살가운 말보다 규방 예절 따위나 운운했구나?

 

-어머니, 이제 시댁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소녀에게 시댁에서 사랑받으며 저희 가문에도 누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라는 말씀의 의미를 소녀가 어이 모르겠사옵니까?

 

정 씨 부인은 예탁의 말에 꾹 참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다. 얘야. 너는 이제 김 씨 문중의 사람이 되나 언제나 영 씨일 게다. 어찌 시댁 문중의 사람으로만 살아가겠느냐? 그리고 우리 가문이던 김 씨 문중이던 네가 어찌 조금이라도 누를 끼칠 아이겠느냐? 멀리 떠나보내는 너에게 무슨 말이던 해야겠기에.. 정말 해야 할 말을 못했구나.

 

-예? 

 

예탁은 자신이 아직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어머니께서 또 가르침을 주시려는 거구나 싶은 마음과 자신이 이렇게 모르는 게 많다는 데 대한 답답함이 일었다.

 

-언제든 행복해야 한다. 참고 참는 것이 다가 아니란다. 네 나름의 행복을 찾으려 하고 의미를 찾아야 살아낼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같은 시간, 곳간에서 내일 요리할 곡물을 꺼내던 정이 어멈이 마침 자신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던 딸을 불러 세웠다. 

 

-정아, 이리 조용히 오거라.

 

정이 어멈의 딸은 조금 숙연한 심정으로 곳간에 들어섰다.

 

-엄마 이제 나는 가야 할 것 같수. 이제 엄마 혼자 예서 어찌 살지 걱정 이우.

 

-지민아. 이제 네게 할 당부도 마지막일지 모르겠구나. 우리 가문이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멸문 당한지 벌써 11년이다. 이 한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죽은 듯이 살려 했으나, 관노가 되지 않으려 이 시골 유학자의 집에 숨어들어 추노꾼의 눈을 피하고자 노비가 되기를 자처한지도 그렇게 흘렀구나. 이제 네가 아기씨의 몸종이 되어 안산까지 가야 하니 걱정은 된다만, 6살 때의 너를 기억하고 지금의 너를 찾으려는 이들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구나. 다만 이젠 아기씨의 신랑이 된 동영 도령이 너를 몰라보는 것이 의아하구나?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정말 감쪽같이 모르는 것인지 두렵기도 하구나... 얘야, 우리 여기서도 도망가야 하지 않나도 생각했지만...

 

-어머니, 그럼 관노가 되었어야 할 어머니와 저를 찾는 추노꾼에 영 씨 대감님이 보낼 추노꾼까지 어머니와 소녀가 다 피해 살 수 있을까요?

 

영 씨 대감집과 이 마을에서 언제나 정이라 불리던 지민은 어느새 본래 자신의 신분에 맞는 말씨로 어머니에게 피한다고 피해질 수 없다는 걸 납득시키려 했다. 

 

-하지만 동영 도령이 끝내 너를 알아보면 어쩐다는 말이냐? 

 

-어머니, 동영 도령은 기껏 6살의 저를 두어 번 봤을 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당상관 영감의 어린 여식이던 저와 이제 자신에 처의 몸종으로 마주하는 여종이 같은이라고 어찌 여기겠습니까?

 

지민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는 말은 제법 그럴듯했으나 사실 어머니에게 사실을 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동영 도령은 그녀를 알아봤기 때문이다.

 

 

3

 

아직 예탁 아기씨와 혼담이 오가기도 전인 작년 봄, 유학자로서 명망 높은 영보겸 대감댁에 동영 도령은 아버지 김해인 대제학의 분부로 대국에서 건너온 희귀서적을 선물하고자 온 적이 있다. 그때 사랑방으로 안내받은 동영은 마침 사랑방 마루를 닦고 있던 지민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뭘 그리 보십니까, 도련님? 그저 저희 댁 아기씨 몸종입니다요. 

 

안내를 마친 행랑아범은 점잖게 생긴 도령이 생긴 것과 다르게 정이를 미심쩍게 계속해 쳐다보니 걱정되는 마음에 지민을 보며 말했다.

 

-정아, 뭘 그리 열심히 해. 오늘 오신 대감마님의 손님이시다. 도령께서 들어가셔야 하니 너는 어서 물러가거라. 

 

그리 말하고 행랑아범은 정이가 자신을 따라나서라는 듯 앞서 사랑채에서 물러갔다. 그를 뒤따라 가려는 지민의 팔을 잡으며 동영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오늘 저녁 내게 오시오. 내 낭자의 오라비 벗으로서 부탁하오. 

 

그리 말하고 동영은 지민의 팔을 놓았다. 지민은 설레는 듯 두려운 듯 알 수 없는 심정을 감추며 걸음을 재촉하며 물러갔다. 그런 지민을 동영은 따듯한 눈빛인지 일렁이는 눈빛인지 가늠할 수없는 빛으로 지켜보았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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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으~


재혁은 술이 덜 깬 건지 몸이 다 찌뿌듯한 것 같은 느낌에 기지개를 켜면서 침대에서 눈을 떴다. 지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어제 너무 마셨나 봐.. 몸이 말을 듣지를...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자신의 팔을 내리다 말고 재혁은 흠칫 놀랐다. 


=이건.. 이건..


-그제 침입자들로부터 공격이 있었어. 널 끝내 보호하지 못했어.. 재혁아, 미안해!


지은이 갑작스레 무거운 어조로 말했지만 재혁의 귀에선 이명이 울리는 듯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재혁의 얼굴은 말할 수 없이 어두웠다.



14


텔레포트기에서 지은이 닭을 꺼내 냄비에 담고 미소를 지으며 재혁을 돌아봤다.


-재혁아! 오늘은 전통요리 영상에서 배운 닭곰탕 같이 만들어 보자. 


식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그런 지은을 바라보던 재혁은 한참이나 지나 한 마디를 했다.


-닭은 이제 질려버리겠어. 


-무슨 소리야! 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닭 요리잖아.


-난 더 이상 인간이 아니야! 사이보그가 됐으니까 변하는 게 당연하잖아.


-아니야. 너의 뇌도 미각도 감각의 일부도 그대로야. 변할 리가 없잖아.


-일부.. 그 일부 외의 것들이 변했나 보지.


재혁은 그 말을 하고 주거공간에서 돌아서 나갔다. 지은은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런 재혁을 붙잡을 수 없었다.



15


지은은 세미를 설득해 재혁의 강화 의체에 연결해 재혁의 일상을 훔쳐봤다. 세미도 재혁의 안정이 걱정스러워 별 대응 없이 지은의 말에 따랐다. 지은은 승완과 웃고 있는 재혁의 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지만 한없이 슬프기만 했다. 웃고 있는 재혁의 눈빛 속에서 공허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혁 씨, 며칠째 의체 이식 적응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있어. 현재 상태로는 디폴트 모드 신경망의 작용이 정상일 리 없어. 


-어떻게 해야 해... 나 이제 어떻게 해.. 너, 니가 재혁이에게 그날 영상을 보여줬어?


-어쩔 수 없었어. 재혁 씨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그날 영상만 보여 달라고 요구했거든.


-그걸 보여주면 어떡해...


-너야말로 다리 부상 입은 재혁 씨를 전신 의체 이식을 해 버리고는 그게 숨겨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재혁이가 어땠는데.. 그 영상을 보고..


세미가 말없이 지은이 궁금해하는 그날의 재혁 모습을 입체영상으로 공간에 띠웠다.


: 재혁은 멍한 채 다리가 잘린 자신을 안고 시술처로 옮기고는 마취를 시키는 지은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지은이 생존 유지 장치에 재혁을 연결하고는 의료기기로 재혁의 목을 절단하는 장면을 보고는 재혁은 넋 나간 듯 서있다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16 


재혁은 손톱만하게 드래건 마운틴이 보이는 건너편 빌딩 정상에서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 아무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곁으로 지은이 다가왔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세미가 의체에 연결만 하면 바로 어딨는지 알 텐데 앓는 소리는..


한결 밝아진듯한 재혁의 목소리에 지은은 한숨을 놓는듯했지만 한편으론 잘못된 코딩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지은이 답이 없자 재혁은 말을 이었다.


-저기 보이지? 우리 드래건 마운틴...


-어! 정말 손톱만하네. 좁지 않은 공간인데.


-저기가 나 어릴 때 가족들이랑 같이 살던 곳이었어. 우리 엄마 아빠 영상은 너도 봤지?


-그래. 넌 눈은 아빠를 닮고 코는 엄마를 닮았더라. 그러고 보니 니 헤어스타일도 너희 아빠 판박이야. 유행도 모르니 넌.


-그래, 어릴 땐 참 행복했어. 의체 전복 단체라는 데서 우리 집에 폭탄을 터트려서 엄마 아빠 모두 돌아가시기 전까진...


-아...


지은은 안타까운 탄식을 했다. 그리고 재혁과 즐거운 날들은 많았지만 재혁이 이렇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처음이라 요즘 재혁과의 서늘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늘만은 다행스러운 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커서 생각해 보니까 너무 우스운 거야. 우리 집엔 키우던 강아지까지 모두 자연체였어. 하다못해 강화 의수나 강화 의족을 한 사이보그는 그 강아지 마저도 아니었다고. 그런데 왜 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야 했지 왜..


-그 의체 전복 단체라는데는 그저 혐오와 폭력을 분출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지 대상이 누구냐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 대상 없는 폭력에 너희 부모님이 희생되실 이유는 없었는데..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를 상황에 지은은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젠 내가 있어. 언제까지나 난 니 곁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게..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일 거야. 언제나..


재혁이 지은의 말에 한참을 물끄러미 지은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보험사에서 보험금으로 저 드래건 마운틴을 건축해 주고 날 대학까지 마치게 해줬어. 난 고고학이나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존재한 한반도 남북국시대사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생계를 위해 의학과 공학을 전공했어. 그리고 많은 날을 드래건 마운틴 전체를 운영해주는 세미에 의존했지. 하지만 세미는 목소리뿐이잖아. 뭔가 함께이면서도 나날이 외롭고 허전했어. 아니 허탈했다는 게 맞겠지.


지은은 이제 재혁이 자신과 만나게 된 날을 이야기할 거라 짐작했다. 


=재혁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 걸까?


이런 생각에 명확히 답할 수 있던 날들 보다 사이보그가 된 재혁이 지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몹시 두렵고 궁금했다.


-그러다 GOA사의 네오 아마토르를 알게 됐어. 최상의 연인... 나만의 연인... 이런 카피가 날 더 절실해지게 만들었지. 그래서 널 만나게 된 거야. 너를 처음 보는 순간 난 내 이상의 연인이 너란 걸 알 수 있었어. 니가 나를 알아 가는 그 순간.. 니가 내게 의지하던 그 순간, 나도 너를 알아가는 것만 같고 네게 의지하게 되는 것만 같았어...


지은이 재혁의 다음 말과 행동을 예측하려는 동안 재혁은 잠시 말을 그치고 있다가 지은을 돌아봤다.


-있잖아. 너와 함께 깨어나고 요리하고 함께 걷고 웃던 그 모든 순간이 소중했어. 널 원망하려고도 해 봤지만 그 모든 날들이 빛나고 있더라... 우리 같이 도봉산 암벽 등반 갔던 날 기억해?


-응. 그날 좀 위험했지.


-그렇지만 행복했어. 넌 두렵다고 했지만 난 나 자신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거든.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일 거라는 걸 믿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난 그날 너와 언제나 함께 일 거라는 확신이 더 확고해진 날이야. 절벽에서 떨어지는 내 손을 니가 잡고 놓지 않았을 때. 나도 생각했어 이 손을 나 역시 언제까지나 놓지 않겠다고. 실내에서 가상 등반을 해본 것 외에는 그날 실제 암벽을 탄 게 나도 처음이었어.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건 네가 있어서였고. 

넌 니가 나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을지 몰라도 실제로 네게 의존하고 있던 건 나였어. 


-아니야. 니가 내게 의존했던 것만이 아니잖아.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한 거야.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거야. 그런 게 사랑이라며.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집착이었어. 의지한다는 그 순간 집착이 돼버린 거야.


-집착이 나쁜 거야? 집착은...


-아니야.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고.. 네게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게 나였지... 집착하지 않는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서로를 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거라고... 내가 먼저 네게 말했었지.. 하지만...


재혁이 자신의 의체를 내려다보며 흐느끼듯 말했다. 


-이건 그런 집착이 아니야. 서로를 위하는 그런 집착이 아니라고. 나만의 연인을 원했던 건 이렇게 물건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지은아 봐.


재혁이 두팔을 벌리고 말을 이었다.


-이게 사랑이니. 이런 게...


지은은 많은 변명과 대응 루트가 언어 회로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재혁이의 심정이 지금 어떤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이 이상의 심정으로 몰아넣을 대응을 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나 널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그래서 니가 자기학습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하고 싶어. 우리 사랑을 처음부터 다시 코딩하고 싶다고. 하지만 이젠 모두 늦어버렸어.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게 됐다고. 


지은은 다급히 말했다.


-아니야 재혁아! 여기서부터는 다시 코딩할 수 있는 거야.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돼... 넌 그러면 안 돼.


-널 미워하고 싶었는데. 널 사랑했던 날들만 떠올라... 하지만 그런데도 널 더 이상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말을 마치고 재혁은 빌딩 정상에서 지은을 바라보는 채로 허공에 눕듯이 뛰어내렸다. 지은은 재혁이 뛰어내리자 뒤따라 바로 몸을 날렸다. 재혁과 지은은 서로의 손이 닿을 듯한 거리를 두고 위 아래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재혁을 내려다보며 떨어져내리고 있는 지은은 자신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손만 내밀면 지은의 손에 닿을 거리에서 재혁은 바닥에 가까워졌을 때쯤 지은에게서 등을 돌려 바닥을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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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침입자입니다. 재혁 씨, 침입자가 있어요. 의식을 찾아야 합니다.


의체 판매처에서 신상 의체 진열대 아래 소파에 쓰러진 채 잠든 재혁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은은 세미의 경고에 고개를 돌려 의체 판매처 입구를 주시했다.


-세미, 그들이야?


-니가 말하는 그들이 지난번에도 침입했고 억지를 부리던 그 사이보그들과 인간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맞아 그들이야.


-그렇단 말이지.


뭔가 싸늘한 어투에 지은은 자신의 연인 보호 프로그램에서 경고 모드 레벨1을 활성화했다. 그와 동시에 세미의 경고의 말이 들렸다.


-지난번 침입 이후 구형 디지털 해킹에 대비해 놨더니 그걸 예측했나 봐. 레이저 제어기로 문을 절단하고 있어.


-저 정도면 대인 살상을 의도한 거야. 세미 너도 그렇게 판단하지.


-음. 공공안전 통제부서에 연결할 게.


-아니야. 내버려 둬. 저들과는 코인 문제가 얽혀 있어서 공안부서에서 알아서 좋을 게 없어.


-재혁 씨가 부채는 모두 상환했어. 코인 이체 기록이 있는걸.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불법 대출 문제로 재혁이가 귀찮아지는 건 생각 안 해.


-이미 문이 거의 다 절단됐어. 개방되기 직전이야.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은이 말없이 연인 보호 경고 모드 레벨을 5로 올렸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드래건 마운틴 의체 판매처의 콘씰로라티 합금 정문이 쓰러졌다. 


-실내조명 전원을 차단해, 세미.


-알겠어.


문이 개방되고 환한 빛이 스며 나오기에 당황했던 침입자들은 조명이 꺼지자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섰다. 


-이런. 다정한 시간을 방해했네 그래.


의안을 낀 남자가 말했다. 


-형님, 아무것도 안 보여요.


-그러게 새꺄. 밤에 오면서 스플렌데스코도 안 가져오는 놈이 어딨냐? 너도 안 했냐?


의안의 남자는 손에 레이저 제어기를 들고 있는 검은 옷에 사나이에게 짜증을 부리더니 의수를 한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적외선 안경을 꼈습니다. 형님.


-아, 이 구닥다리 골동품 같은 놈들 진짜..


-허튼소리들은 니들 공간에 가서나 하고. 빨리 여기서 나가 줘.


지은이 단호하게 말하자. 의안의 남자는 가소로운 듯 피식 웃었다.


-안 나가면 어쩔 건데. 니가 인간 보호 3원칙을 깰 수 있을 것도 아니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은이 의수 진열대에 인테리어용으로 장식된 디스크를 뽑아 그의 머리 위로 던졌다. 의안의 남자가 놀라서 위를 쳐다보자 고정되어 있던 장식용 고전 샹들리에가 디스크에 끊어지며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샹들리에의 장식이 그의 정수리를 뚫으며 그는 그 자리에서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즉사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검은 옷의 사나이가 놀라 소리쳤다.


-뭐야? 어떻게 된 거예요? 형님. 


-형님 돌아가셨다.


의수를 한 남자가 비장한 목소리로 마지막 말인 듯 내뱉으며 지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은은 다시 장식용 디스크 하나를 뽑아들고는 가볍게 몸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적외선 안경을 벗겨 버렸고 그의 발 뒤로 디스크를 던지며 그를 살짝 밀었다. 의수를 한 남자는 디스크를 밟으며 미끄러져 장식장 손잡이에 머리를 부딪히며 바로 숨이 끊어졌다. 


검은 옷의 사나이는 귀를 찢는듯한 소음들에 놀라 보이지도 않는 사방을 향해 아무렇게나 레이저 제어기를 쏘아댔다.


-재혁아! 


레이저가 재혁의 왼 다리를 절단하자 지은은 비명을 질렀고 그녀의 연인 보호 경고 모드 레벨은 최상인 6으로 상향되었다. 지은의 눈빛이 파랗게 광채를 냈고 그녀는 레이저를 이리저리 피하며 검은 옷의 사나이에게 다가가 레이저 제어기를 든 그의 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는 부러진 팔의 손에 들린 레이저 제어기를 그의 머리로 향하게 하고는 그의 신경에 전기 자극을 줬다. 그러자 소리치던 그 남자의 손가락 근육이 수축하며 방아쇠를 당겨 레이저가 그의 머리를 꿰뚫었다.


-재혁아! 


침입자들 문제를 모두 해결했지만 그녀의 경고 모드는 해제되지 않았다. 그녀는 미칠 듯이 재혁에게 달려가 그를 살피더니 그를 안고서 세미에게 소리쳤다. 


-세미, 세트 C를 개방해 줘.


-재혁 씨는 의료조치가 필요해. 넌 의료용이 아니잖아. 당장 병원에..


-지금 상황이 긴급하잖아. 재혁이 다리가 잘렸어... 나도 재혁이 일이 뭔지 알고 싶어서 의학 프로그램과 공학프로그램을 자기학습했어. 어서 세트 C를 열어 줘.


세미는 GOA사 최신형 AI의 성능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프로그램에 오류가 날 것 같은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도 재혁의 안전과 안정이 최우선이기에 의체 시술처 문을 개방했다.



12


시술대 위에 재혁을 눕힌 지은은 아련한 눈빛으로 재혁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결심한듯 미간을 찌푸리며 재혁의 얼굴에 마취용 마스크를 가져다 댔다. 재혁의 옆 시술대에는 I-516, 13버전 업 강화 의체가 놓여 있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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