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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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고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 데, 사실 그럴수도 없거니와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하고 타인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p.44 너의 여름은 어떠니) 살면서 내가 가장 세게 잡은 누군가의 팔뚝이...... 갑자기 목울대로 확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사막에서 만난 폭우처럼 난데없는 감정이었다.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뺨위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간절히 움켜잡았던 누군가의 팔뚝이. 내가 너무 절박해서 몰랐을 그들의 상처가. 어떤 흉터로 남았을까 되묻게 되는 밤. 누군가는 손을 뿌리치고 떠났고, 누군가는 주저하며 혹은 기꺼이 잡혀주었다. 떠나거나 남거나 결론과는 상관 없이 아팠을 텐데. 누구라도. 세게 쥐면 아팠을 텐데. 많이 아팠을 텐데.

그러고 보면 나는 언제나 뿌리치지 못해 잡혀주는 편이었다. 안 아픈 척 시원하게 웃어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억울했다. 결국 뿌리칠거면 일찍 손사래 치거나, 결국 잡힐 거면 그냥 괜찮다 웃을 것을. 후회된다. 그런데 몰랐다. 몰라서 결국은 더 아프게 했을까.

“(p.316 서른)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예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서른 무렵에야 어렴풋이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한테 왜 그랬어?’라는 질문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라고 되물어야 한다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한사람의 몫을 해야한다는 성인이 되고 고작 10년도 안되서, 너무 많이 상처입고 또 너무 많이 상처주고 있는 ‘죄 많은’ 스스로에 대해서. ‘피해의식’이 아닌 ‘가해의식’을.

정말 몰라서 혹은 알아채지 못해서. 나만 보여서, 내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이제는 알고도 모르는 척 확신범이 되어.
저지르는 죄들. 불가피한 눈 감음.
그런 기억들이 떠올라서 울고 싶었다. 어쩌다가. 나.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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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편의 단편 모두, 슬프고 답답했다. 그리고 묘하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을 다루고 있으며 나와 가까운 이야기같다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 데. 그런 (참혹한) 일 들이 일어나는 것 빼고 무엇이 비슷한가 더듬어 보았다. 그건 소설 속 인물 모두에 배어있는 ‘가난’의 냄새.

“(p.214 큐티클) 아직 젊고, 벌 날이 많다는 근거없는 낙관으로 나는 늘 한 뼘 더 초과되는 쪽을 택했다.”

심지어 일상의 소소한 과시적 소비로 자기만족을 하고있는 ‘큐티클’의 주인공에게서도 가난의 냄새는 났다. 보다 높은 경제력의 배우자를 만나서 신분상승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별수 없을 것이다. 이내 ‘벌레들’ 속의 부부가 될 것이고, 그렇게 소설 속의 청년들 대다수는 중년의 ‘기옥’ 혹은 ‘용대’가 될 것이다. (정년 퇴직 이후에도 벌어야 하므로) 택시운전을 하거나, (출산 육아 이후 경력 단절을 겪고 없는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청소와 전단지 돌리기를 마다 않는. 가난한 그리고 평범한 현실속의 우리. 즉, 언제나 쉽게 교체되곤 하는 값싼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력.

각각의 소설이 빚어내는 비극적 상황들에서 ‘보편적 가난’을 뺀다면 ‘비극’도 ‘상황’도 만들어 질 수 없다. 차라리 그들이 가난에 허덕였다면 덜 비극적이었을 것이다. 공기처럼 보편적으로 가난한 인물들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나야말로 보편적으로 가난하고, 언제고 쉽게 교체될 수 있는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기 때문이었다. 소설 속의 누구도, 지어는 중년과 노년에 걸쳐있는 ‘용대’와 ‘기옥’도 연민하기는 아직이르다.

“(p.297 서른)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서른을 넘어선 나는 자라 그들이 될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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