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6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권은 좀 힘들었지만, 하권은 무척 재밌게 거의 한번에 파파박 불태웠다. 스스로 읽어낸 게 너무 장해서 독후감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오늘 책갈피 꽂은 곳을 중심으로 다시 읽는데, 다시봐도 자꾸 심쿵(!)한다.
아니, 뭐 이렇게 글을 잘썼어?!?! 하면서..



🤧빅토르 위고 할아버지, 상권 읽으면서 프랑스의 TMI라고 피곤해 했던거 사과드릴게요. 근데, 이 소설 말예요.. 칠순 다 되서 쓴 글 치고 너무 리비도 폭발 아닌가요? 뭣도 없는(?)장면을 이렇게 유려하고 야하게 쓰시면 어떡합니까.

“척추에는 그 고유의 꿈들이 있다. 그는 아무렇게나 발길을 옮겨 놓으며, 인적 없는 곳에서 흔히들 그러하듯, 되는 대로 몸이 흔들거리게 내버려 두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면 횡설수설하기가 용이하다. 그의 생각이 어디로 향하고 있었을까? 그는 그것을 차마 자신에게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로 향하고 있었을까? 아니다.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별들이여, 그대들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 (...)
사람들은 왜 연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사로잡힌 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남자는 한 여인의 영혼을 통해 포로가 된다. 그녀의 살을 통해서도 포로가 된다. 때로는 영혼보다 살을 통해 더욱 꼼짝 못하는 포로가 된다. 영혼이 정인이라면, 살은 안주인이다. (...) 살이란 미지의 것의 표면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살이 수줍음으로 도발을 자행한다. 그보다 더 큰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없다. 그 뻔뻔스러운 것이 부끄러워한다. 그 순간에 그윈플레인을 뒤흔들며 그를 붙잡고 있던 것은 표면에 대한 무시무시한 사랑이었다.

200년 후에 태어났으면, 위고 할아버지는 완전 거장 영화감독 되셨을 듯. 일단 주인공 외모부터 너무 시선강탈(입이 찢어진 웃는남자라니!!)이고요, 주연급 조연(?)인 조시언 여공작은 왜 양쪽 눈 색깔 마저 다른 설정인건데요.
곱씹어 상상할수록 그림이 너무 좋잖아!!😭

“...그윈플레인은 푸른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하늘의 시선과 지옥의 시선 앞에서 차츰 넋을 잃었다. 여인과 남자는 서로에게 음산한 황홀경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홀리고 있었다. 그는 흉측한 모습으로,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즉 두 사람 모두 전율할 공포로 서로를 홀리고 있었다."

평생 책상에서 글만 쓰셨을 것 같은 분이, 연인들이 사랑에 빠지는 부분은 또 어찌나 찰지게 묘사하시는지.. 흑.. 말라가는 연애세포가 다 촉촉해졌음.🤤

무엇보다, 정말 적절히 터져주시는 극적인 연출과 찰진 대사.

“모든 상원 의원에게 깊은 존경을 받는 노인, 워턴 백작 토머스가 기겁한 듯 벌떡 일어섰다.
「이게 무슨 일이오? 누가 저 사람을 회의장에 들여놓았소? 즉시 저 사람을 내치시오.」
그렇게 고함을 치더니, 그윈플레인을 거만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누구요? 어디에서 나오셨소?」
그윈플레인이 즉각 대답했다.
「심연에서.」


심연!! 심연에서!!
그로테스크한 얼굴로 잉글랜드 피어들 놀래키며 등장해서 치는 대사.. 200년 전 연출이라 하기엔 너무 세련된 것 같다.

그뿐이게. 막 얽힌 것 같은 플롯인데 나중에 여기저기 던진 떡밥들은 다 제대로 결산하시고, 반전까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TMI라고 대충대충 읽다가는 큰코 다칠뻔. 아, 이 사람이 그사람이았어? 그 내용이 이것땜에 나온 거였어??

뭐지?!?! 이 소설?!?!
대문호의 까오란 이런 것 인가...!!

*

“경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경들께서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지만,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헐벗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윈플레인.
세상에서 가장 엄숙한 공간에서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심각하게 하지만, 그의 말이 결연할수록 의회장에 앉은 귀족들은 박장대소한다. 기형으로 변형된 그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사실 울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무엇을 보고 웃었던가? 그의 얼굴에 새겨진 웃음을 보고 웃은 것이다.
그가 영영 그 흔적을 간직하게 된 가증스러운 폭력, 지워지지 않을 즐거움의 표시로 변한 훼손, 압제자들 밑에 짓눌린 백성들의 거짓 만족감의 영상, 고문을 가해 만든 기쁨의 가면, 그가 얼굴에 달고 다니는 냉소의 극치, 국왕이 그에게 저지른 범행 증명서, 백성 전체에게 왕권이 저지른 범죄의 상징, 그것이 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그것이 그를 짓눌렀다. 그것은 분명 망나니를 규탄하는 고발장이었건만, 희생자를 단죄하는 판결문으로 변했다.
(...) 그들은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그들은 그윈플레인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배를 갈라 간과 심장을 뽑아 내고, 내장을 몽땅 그들에게 보였건만, 그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이러했다. 「코미디로군!」 비통한 일은 그가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서운 쇠사슬이 그의 영혼을 묶고 있어서, 그의 사유가 얼굴에까지 올라오는 것을 막았다. 안면의 왜곡이 그의 영혼까지 미쳤고, 그리하여 그의 양심이 분개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양심의 말을 부인하며 낄낄거렸다.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그는 〈웃는 남자〉, 눈물 흘리는 세계를 떠받치고 서 있는 카리아티데스였다.”


책을 통틀어 가장 결정적일지도 모르는
이 연설 장면이 너무 가슴 아팠다.
웃어야만 하는 형벌이라니. 가혹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백성들은 그윈플레인처럼 웃음(감정노동)이라는 형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음모냐고? 불평이 곧 음모이다. 무엇이 범죄냐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범죄이다. 비참함은 스스로를 감추고 입을 다물지니, 그러지 않을 경우 비참하다는 사실 자체가 대역죄이다.”

*
극적인 장면들, 시 같은 대사들, 매력적인 인물들.
문장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 특유의 블랙유머.
장황한 듯 하지만 나중에는 다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되는 설명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풍자와 비평.

어렵게 읽고 나니, 왜 대작인지 알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한번 읽고 싶은 모처럼 읽어낸 고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덧, 다 읽고 아쉬워서 영화(2013년 개봉한거)봤는 데.. 영화는 그냥 보지마세요. (뮤지컬은 안봐서 모름)



콤프라치코스는 콤프라페케뇨스처럼 스페인어인데, 복합어로 〈어린아이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콤프라치코스는 어린아이 장사를 했다.
아이들을 사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그들을 훔치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훔치는 일은 또 다른 사업이다.
그 아이들을 무엇에 썼을까?
괴물을 만들었다.
왜 괴물을 만들었을까?
웃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은 웃기를 원한다. 왕들도 마찬가지이다. 거리의 광장에는 곡예사가 있어야 하고, 왕궁에는 어전 광대가 있어야 한다.

흔히 밤이 내린다고들 하지만, 반대로 밤이 피어오른다고 함이 옳을 것이다. 어둠이 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쪽에는 이미 밤이었으나, 위쪽에는 아직도 낮이었다.

살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대리석이 아니라는 데 있다. 팔딱거리고, 전율하고, 홍조를 띠고,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이 살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또한, 딱딱하지 않되 단단하고, 차갑지 않되 희며, 고유의 떨림과 결점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살의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생명이라는 사실이다. 대리석은 죽음이다. 살은, 그 아름다움이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경우, 벌거숭이가 될 권리를 갖는다. 살은 눈부심을 너울 삼아 그것으로 자신을 덮는다. 벗은 조시언을 본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팽창된 반짝임을 통해 그 조각상을 보았을 것이다.

데아는 빛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었고, 그윈플레인은 삶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이었다. 분명 두 사람은 절망한 이들이었다. ... 두 슬픔이 서로를 흡수하면서 극치의 경개로 진입하고 있었다. 추방된 두 존재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두 공백이 결합해 서로를 채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에게 없는 것으로 상대방을 지탱했다. 한 사람의 가난으로 다른 사람이 부유해졌다.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보물이 되었다. 만약 데아가 소경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그윈플레인을 선택했을까? 만약 그윈플레인의 얼굴이 흉측한 기형이 아니었다면, 그가 데아를 선택했을까? 그가 불구를 원하지 않았을 것처럼, 아마 그녀 또한 기형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윈플레인의 용모 흉측한 것이 데아에게는 얼마나 다행인가! 데아가 소경이라는 것이 그윈플레인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가! 천우신조로 이루어진 그 배합이 없다면 그들은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서로에 대한 경탄할 만한 욕구가 그들의 사랑 저 아래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윈플레인이 데아를 구원했고, 데아가 그윈플레인을 구원했다. 비참함끼리 만나 서로 집착하는 현상이었다.

그윈플레인이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이들의 지옥으로 이루어졌군요.」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두 암흑이되, 충만한 적막 속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영겁의 세월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두려워하던 별이 앞에 와 있다. 그것은 더 이상 별이 아니고 하나의 세계이다. 미지의 세계이다. 용암과 이글거리는 숯불의 세계이다. 한없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삼킬 듯한 경이로움이다. 그녀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오직 그녀밖에 없다. 무한의 밑바닥에 있던 석류석, 멀리서 볼 때는 금강석이던 그것이, 가까이에 와서는 도가니로 변한다. 우리는 그 화염에 휩싸인다.
그리고 낙원의 열기에 타올라 우리가 연소되기 시작함을 느낀다.

나를 짓밟아요. 그러면 나를 더 사랑하게 될 거예요. 나는 그 사실을 잘 알아요. 내가 왜 당신을 열렬히 사랑하는지 알아요? 당신을 멸시하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나보다 하도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주제단 위에 모시는 거예요. 높은 것과 낮은 것을 뒤섞는 것, 그것이 곧 카오스인데, 나는 카오스를 좋아해요. 모든 것은 카오스로 시작해 카오스로 끝나지요. 카오스가 무엇이죠? 하나의 광막한 더러움이에요. 또한 그 더러움으로 신은 빛을 만들만들었고, 그 수채 구멍으로 세계를 창조했어요. 당신은 내가 어느 지경까지 타락했는지 몰라요. 진흙 속에서 별 하나를 빚어 보세요. 그것이 나예요.

그윈플레인은 자신의 운명이 폭소에 영영 파괴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그곳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되, 가루가 되면 영영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처한 장소에 따라 좌우된다. 그린박스에서는 성공이던 것이, 상원에서는 추락이었고 참사였다. 그곳에서는 갈채였던 것이, 이곳에서는 저주였다. 그는 자신의 탈 이면과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그의 탈 한쪽 면에는 그윈플레인을 받아들이는 백성의 공감이 있었지만, 다른 쪽 면에는 퍼메인 클랜찰리 경을 배척하는 세력가들이 있었다. 한쪽 면에서는 인력이 작용했고, 다른 쪽 면에서는 반발력이 작용했다. 그러나 두 힘 모두, 그를 어둠 쪽으로 이끌어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