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위조사건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8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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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헤밍웨이 위조사건, 조 홀드먼


(스포 있음)


  확실히 흥미로운 소설임은 인정해야겠다. 무거운 마음을 환기시키고자 잠깐 들었는데,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으니 말 다했다. 작은 판형에 다소 큰 글씨, 250쪽으로 중편소설분량이지만 이토록 집중력있게 읽은 소설은 오랜만이다.


  이야기는 사기 공모로 시작한다. 헤밍웨이의 아내는 한 기차역에서 그의 초기작품을 모두 도난당한다. 잃어버린 원고를 위조해서 떼돈을 벌어보려는 사기꾼 캐슬, 영문학자 존 베어드, 존의 아내 리나, 그리고 도발적인 팬지가 등장한다.


  1/3까지는 사기 사건일 뿐이다. 존은 헤밍웨이가 초기에 쓰던 타자기를 구하고, 타자기 글씨의 미묘한 배열, 그의 소설적 습관까지 흉내내어 이야기를 지어낸다. 평이하게 나가던 이야기는 존 앞에 나타난 헤밍웨이에 의해 순식간에 SF로 흐르게 된다.


  존이 가짜 원고를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순간, 세상에 정해져 있던 미래가 달라지는 문제가 생긴다, 고 헤밍웨이는 말한다. 아마 이 헤밍웨이는 시간선의 질서를 지키는 ‘무엇인가의 존재’인 듯 보인다. 헤밍웨이는 미래를 제대로 돌려놓고자 존을 죽인다.


  하지만 존은 그도 모르고 헤밍웨이도 모르는 이유로 다른 시간선에서 부활한다. 부활은 아니고, 일종의 평행우주에서 존재하는 다른 ‘존 베어드’로 깨어난다. 거기서 다시 헤밍웨이를 만나고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는 또 다른 우주로 넘어간다. 과연 존은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까. 모든 우주에서 그가 죽는다면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헤밍웨이라는 실존적 인물과 아내가 원고를 잃어버리는 실제 사건을 적절히 버무려 몰입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존이 다른 우주로 갈 때마다 달라지는 자신의 과거와 주변 인물들을 비교하는 것도 한 재미다. 특히 시간을 거슬러 진실(?)을 되감기 형식으로 표현하는 후반부의 24장이 백미다.


  어려운 설명 없이 흘러가기에 약간은 소프트한 SF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평행우주 개념도 적절히 사용했다. 다만, 결말부가 조금 붕 뜬 느낌이다. 해설이 아니었으면 결말을 조금 해석하기 힘들다. 소설 안에서 설명과 묘사가 조금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서 사람들이 SF를 어려워하고 즐기기 쉬운 스페이스 오페라만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텍스트 자체가 주는 힘은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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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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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나마 아는 사실을 풀어쓸만큼 재주가 있지도 않다. 그래서 간단한 소회만 남긴다.


  우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편 건,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지 정확이 200일이 된 날이었다. 연인들이 그토록 챙기는 200일 기념일과는 달리, 아픈 소식을 기리는 특별한 날을 머리에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티비에서 흐르는 영상을 쳐다보지 않고 꾸역꾸역 밥을 넘기기에 바빴다.


  사실 외면하려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눈물 흘리기 싫다고, 지겹다고, 그리고 무섭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눈을 감고 귀를 막기 일쑤였다. 이제 무엇이 주(主)가 된지 모를 정도로 무관심해졌다. 사실, 그랬으면 안됐는데 말이다. 사고가 나서 자신들이 위험에 처한줄 뻔히 알면서도, 아이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살기 위한 이기심이 아닌, 남겨질 자들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였다.


  미안하다는 영상을 봤을 때도 그랬지만, 소설가 황정은이 쓴 글 속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다시 봤을 때 눈물이 흘렀다. 기숙사 휴게실에서, 다 큰 남자가, 그것도 눈물 몇 방울 찔끔 흘린 게 아니라 울음을 참기 힘들어 꺽꺽거렸다니, 이런 추태가 다 있는가. 울음은 그칠 수 없었다. 십여 분이 지나서야 감정을 추스르고 가까스로, 글을 계속 읽었다.


  표제작인 소설가 박민규의 ‘눈먼 자들의 국가’는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낭송되었다. 일부러 찾아듣지 않았기에(바로 위 문단의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음이다) 어떤 분위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매우 차분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박민규의 전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어떤 의미로 평이하다. 감정을 거의 배제하고 사실관계(라고 추정되는 사실)로만 쓰인 글이기에 더욱 가슴 저민다. 이번 일을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이 글이 빛을 발한다. 차분함을 가장한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통킹만 사건을 언급하며 중의적 표현을 하는 위트도 발휘한다.


  니체를 인용한 시인 진은영의 글도 생각해볼 만하다. 니체는 고통받는 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신 그 고통 앞에서 수치심을 느리라는, 상식적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말을 한다. 슬픔을 같이 이해해주는 것이 연민 아니던가? 하지만 고결한 자와 비교했을 때 연민의 정을 가진 선한 자는 자기 역량의 최소치만을 사요한다. 니체는 이런 도덕주의자들을 “마비되어 더이상 힘을 쓸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앞발을 갖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 그런 겁쟁이”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바로 이 점에서 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보고 느끼고(사실 느낀다고 믿는) 눈물 흘리는 이들이 무능력함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 황종현은 사고 이후 한참 유행했던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내보인다. 이 노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사멸하지 않았음을, 오히려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노래다. 모종의 순진성을 띈 이 노래를, 임형주는 미성으로 순수하게 부르지만, 사실 세월호에 탑승했던 학생들이 당한 사고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불분명해서 당혹스럽다고, 황종현은 말한다. 우리는 이 노래를 함께 듣고 대중의 슬픔에 동참하여 그들을 편안히 보내주려고 자신을 설득하는 건 아닌가? 니체가 말한 연민을 갖고 말이다.


  책의 앞은 작가들로, 뒤는 학자들로 구성되었다. 다소 읽기 쉬운 글들로 몰입시키고 감정을 고조시킨 뒤, 머리를 식히고 차분한 시각으로 세월호를 보는 형식을 취한다. 250여쪽이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안에 담긴 무게는 세월호에 마구 적재된 짐들과, 아팠던, 그리고 아픈 이들의 마음에 비하지 못한다.


  박민규의 글 마지막을 곱씹으며 마치자.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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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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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근래에 근사한 영화관련 도서가 두 권이나 출간되었다. 하나는 소설가 김영하의 <보다>이고, 다른 하나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하 실험)이다. <보다>는 책 소개에는 써있지 않지만 보고나니 글의 출저가 대부분 영화잡지 씨네21인 듯했다. 이에 나는 출판사(문학동네)와 홍보담당자에게 엄청 분노한 바 있다. 물론 김영하의 글은 그 자체로 매우 좋다. 다만 씨네21 구독자로서 왠지 모를 화가 날뿐이다. (사실 전작 <살인자의 기억법>에 대한 실망과 분노도 한몫 했다) 다행히 <실험>은 <보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소개부터 씨네21발 글임을 알린다.


굳이 두 책의 만족도를 말하자면, 나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겠다. 다시 말하지만 김영하의 글이 싫었다는 뜻이 아니다. 김영하도 나름대로 재밌는 글을 썼다. 직업이 소설가여서 그런지 전에 봤던 산문과는 언뜻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에 읽었던 산문은 보통 생활이나 문학, 문화을 말했지만 <보다>는 익숙한 영화에 대한 글이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신형철은 그와 전혀 반대의 글을 써냈다. 씨네21을 구독한 지 벌써 4년이 다되어가는데 신형철의 글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아마 조그마한 아이패드 미니로 조그마한 글씨를 보자니 눈이 아파서 멋대로 페이지를 넘겨버렸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에 비해 축 처지고 무거운 글이다. <보다>가 영화를 다소 다르게 읽었다면 <실험>은 깊게 파고든다. 자신은 문학평론가기에 영화의 서사를 주로 다루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와 서사의 흐름, 인물 사이의 상징에 대해 쓴다.


(저자는 평론이 아니라고 했지만)평론집에 대해 독후감을 쓰자니, 저자가 이미 헤쳐놓은 영화에 대해 딱히 분석할 거리도 없고 능력도 없기에 더 이상 글을 길게 쓰기란 무리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리도 바보멍청이인 걸...  여튼, 근래에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고 진도가 빨리 나간 책이다. 어렵다고 한 독자들이 많은데 아마 소개된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몰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말이 나와서, 책에 소개된 영화를 말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부 - 사랑의 논리 : <러스트 앤 본> <로렌스 애니웨이/가장 따뜻한 색, 블루> <시라노; 연애조작단/러브픽션/건축학개론/내 아내의 모든 것> <케빈에 대하여> <아무르>

2부 - 욕망의 병리 : <피에타> <다른나라에서> <뫼비우스> <우리 선희>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

3부 - 윤리와 사회 : <더 헌트> <시>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늑대소년> <설국열차>

4부 성장과 의미 : <스토커> <머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 <노예12년>

5부 - 부록 :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사랑니>


(책이든 영화든)메타북을 재밌게 보기 위해선 그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커야 하고, 소개된 작품들을 많이 감상할수록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책 선택은 매우 좋았다. 반 정도의 영화를 봤으며 나머지는 스토리 요약이나 평론이라도 보아서 흥미를 가졌던 작품들이었다. <케빈에 대하여>나 <아무르>, <스토커> 글은 내가 생각한 것을 더 보강시켜주다. 영화를 보고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피에타>나 <다른나라에서>, <멜랑콜리아> 글은 영화를 깊게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보지 못한 영화라도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영화를 모두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워낙 스토리 소개를 잘하기도 했거니와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분석을 해줬으니, 사실 새끼 새마냥 입만 벌리고 먹이가 입에 들어오기만을 바라면 될 정도다. (사실 이는 메타북의 최대 단점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영화를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일은 이 세상 거의 없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보다>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다. 색다른 시선을 원한다면 <보다>를, 조금 더 깊고 심각한 시선을 원한다면 <실험>을 추천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당신이 이 두 책의 존재를 안 순간 한 권을 취사선택할 수 없음을. 결국 두 권다 볼 것임을, 내 장담한다.


※ 나 혼자였으면 읽지 않았을 책인데(신형철이라는 저자의 무거움과 제목의 불가해성이 가장 큰몫을 했다) 책 모임에서 한번 읽어보자 했더니, 오 웬걸, 나에게 이렇게 잘 맞는 책이 있는가 했다.덕분에 평론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도 심어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쓴 첫 글이 이따위 수준의 독후감이라니! 오호 통재라) 신형철에 반해 저자의 전작 <몰락의 에티카>를, 평론과 비평에 반해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나 비평집(이번에 산 백지은 비평집 <독자시점>)을 읽을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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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 아마존 ‘킨들’ 개발자가 말하는 콘텐츠의 미래
제이슨 머코스키 지음, 김유미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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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 제이슨 머코스키


  세상은 점차 디지털로 바뀌어간다. 음악은 LP에서 CD로, 다시 mp3로 탈바꿈하였다. 영화는 큼지막한 필름통에 들어 있다가 비디오로, 그리고 수많은 확장자를 가진 무형의 파일로 바뀌었다.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은 점차 데이터화돼간다. 데이터가 진짜 ‘작품’을 대체하지 못한다며 옛것을 찾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이미 그 흐름은 단지 몇 메가- 또 기가로 바뀐지 오래다.


  많은 부정이 뒤따르지만 책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유통업체 아마존이 내놓은 전자책리더 킨들은 미국의 독서 습관을 서서히 바꾸었다. 수많은 책들이 디지털로 변환되었고, 전자책으로 먼저 소개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말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불티나게 팔렸다. 이미 많은 소설류가 활발하게 킨들로 읽히고 있다.


  킨들 개발팀에 있었던 저자는 책이 디지털로 완전히 변하리라 확고히 믿는다. 100년 후면 전자책이 아닌 그냥 ‘책’이라 불릴 것이라 말한다. 킨들의 개발자이고 수많은 전자책을 다룬 개발자이기에 아무래도 우리 범인들보다는 디지털 컨텐츠의 미래를 더욱 자세히 전망한다.


  하지만 전자책을 보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것만큼 편하지는 않다. 전자책리더기가 아이패드가 됐든 킨들이 됐든 텍스트가 주는 느낌이 영 다르기 때문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들은 글은 모두 같은 내용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기에 뭐가 그리 다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번 리더기로 책을 들여보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책이란 텍스트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표지, 글자체, 종이질, 줄간격, 여백, 디자인이 모두 합쳐져야 책이란 하나의 ‘상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문장을 읽는 것은 전자책이나 종이책 사이의 인지적 차이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손으로 종이를 만지며 느껴지는 감촉과 책 자체가 주는 무게감은 심리적 안정감, 익숙함을 떠나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을 다르게 만든다.


  아직 종이의 해상도를 넘은 전자책리더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태블릿류 제외) 사진첩이나 미술책은 일반 책보다 네 배 정도의 해상도를 가진다. 패널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실제 책의 밝기를 따라오지도 못한다. 종이의 사각거리는 소리, 약간 오래된 종이 냄새도 구현하지 못한다. 영원히 새것인 것 마냥 플라스틱내를 풍길 뿐이다.


  분명 종이책은 아직 전자책보다 우월하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다. 과연 100년 후에 종이책이 남아 있을까? 지금처럼 마구 소비되는 상품일까? 지금이야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기술의 발달은 어떻게든 우리의 독서를 변화시킬 것이다. 1900년과 2000년의 간극을 생각하면 2100년은 정말 까마득히 오랜 후다.


  현재로써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우월한 것은 휴대성밖에 없다. 단 삼백 권의 책을 보관하려 해도 큰 책장 하나가 필요하지만 데이터로 변환된 전자책은 용량만 차지할 뿐 실질적인 부피는 전자책리더기만 하다. 물론 무게도 딱 기계만큼이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 여행을 가도 수많은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종이책의 최대 단점인 보관의 불편함을 한번에 날려버린다.


  위에서 언급한 전자책의 단점은 미래의 기술 발달로 점차 사라질 것이다. 패널이 종이의 해상도를 넘은지는 오래고 매끈한 겉모습은 표지의 질감을 갖게될 것이다. 종이책을 넘기는 것 같은 애니메이션(이조차 구시대적 기술의 산물이지만!)이 구현되리라. 종이의 냄새가 좋다는 이들에게는 심지어 그 냄새까지 재현할지도 모른다. 이런 기술의 발달에 초기 킨들 개발 시 한 페이지에 몇 개로 할 것인지 등의 고민한 ‘감성’까지 더해진다면 독서의 방향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아직까지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체제가 아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일 뿐이다. 사람들은 전자책이 종이의 느낌을 100% 재현하지 못하기에 꺼려한다. 동시에 종이가 주는 익숙함 때문에 액정에 표시된 단순한 글자의 나열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16세기의 부유한 독자들은 인쇄물이 필경사들이 손으로 직접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성이 부족하고 기계적이라고 멸시했다고 한다. 물론 글자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기 위해 뇌는 자주 멈춰야 했고 이는 독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 손으로 남긴 글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가?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취향의 이동은 과거를 답습할 것이다.


  역사가 이토록 디지털화를 증명하지만 전자책의 주류화는 멀고도 멀어 보인다. 전자책리더기의 하드웨어적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하이퍼링크로 모두 연결된 단 한 권의 책, 단순히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닌 여러 감각을 아우르는 리딩2.0 등의 컨텐츠적 발전도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사실 기어다니기는 커녕 몸을 뒤집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무엇을 사랑해도 무방하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라는 고민은 디지털의 장점이 인쇄의 장점을 압도하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했을 때 해도 무방하다. 사실 ‘무엇으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이 중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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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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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71, 074. 부활. 톨스토이.


이미 읽은 지 한참 지난 책... 세네 줄로 짧게 써본다.


분명히 읽었던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 기억의 <부활>은 죄지은 남자가 죄 때문에 한참 고뇌하다가 결국 유죄를 받아들이고 유형을 가는 이야기다. 거기에 쏘냐라는 여자가 옆에 붙어 함께... 읽다보니 기억났다. 이 스토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물론 죄와 벌도 온전히 읽은 게 아니라, 맨 앞과 맨 뒤 각각 수십쪽씩밖에 읽지 않았다)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그렇게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소설들(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을 무진 재미없게 읽다가 때려쳤던 나로서는 러시아 소설은 항상 무섭다. 빅토르 위고처럼 곁가지로 빠지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집중하기 힘들다. 거기엔 러시아식 이름도 한몫하는데, 이놈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는데다가 지들 맘대로 애칭으로 부르느라 더더욱 헷갈린다.


부활도 그러긴 마찬가지다. 주인공격인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의 이름이 너무 많다. 거기다 그들이 만나는 인물들도 엄청나다. 감옥과 죄수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상류사회의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제각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줄줄이사탕으로 인물 소개가 계속된다. 덕분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감옥에 투옥된 이들의 사연을 깜빡해버렸다. (다른 책을 동시에 읽느라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 아닌 변명)


소설은 제목처럼 부활을 다룬다. 흔히들 생각하는 하나님의 부활은 아니다. 네흘류도프는 땅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며 적은 소작료만을 받고 농민들에게 넓은 땅을 나눠준다. 억울하게 투옥된 이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이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네흘류도프는 당시 부조리한 사회관습을 깨는 혁명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젊은 시절, 네흘류도프와 순수한 사랑을 나눴지만 타락한 네흘류도프에 의해 자신도 타락하게된 마슬로바.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고 유형지로 향하는 마슬로바는 유형수들과 지내며 차차 예전의 순수함을 찾아간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모두 악한이 아니다. 정치가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택도 없는 이유로 가둔 정치범과 지극히 일반적인 사람도 있었다. 이들과 가까워진 마슬로바는 타락한 과거를 차차 잊는다.


네흘류도프와 마슬로바는 각각 위와 아래로부터의 사회 개혁(또는 인식 바꾸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부활>의 백미는,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네흘류도프의 청혼을 거절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위'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뚝심으로 서려는 '아래'의 결연한 모습이 빛난다.


책은 읽기 자체가 매우 재밌다. 여러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다만 톨스토이가 만년에 쓴 책이어서인지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너무나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톨스토이의 생각을 담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형태를 빌린 긴 논설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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