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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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어떤 소재는 소설로서 다루기 매우 민감할 때가 있다. 찬반양론이 팽배할 때는 더욱 그런데, 내가 보기에 팽팽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우리 근현대사는 항상 그 대립이 극렬하다. 일본에서의 독립, 북한과의 전쟁, 힘든 시기를 딛고 고도성장한 현대사…. 자랑스럽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봐도 너무나 아쉽고 슬픈 장면이 많다.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과는 다르게, ‘우리’가 말하는 근래의 잃어버릴(동시에 잃어버리는 중인) 10년 동안 어처구니없는 의견이 크게 득세하고 있다. 여러 방면의 보수화(사실 보수화도 아니다. 진정 보수라면 나라를 위해야 하는데 지금 ‘그들’이 위하는 게 나라인지 기득권인지 알 수 없다)는 사건의 본질을 흐뜨리고 집단 사이의 대립만을 가중시켰다. ‘저쪽’ 사람들이 가장 비꼬는 건 역시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이다. 당시 참혹했던 장면을 보면서 그들은 입에도 담지 못할, 아니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이 어처구니없은 말을 내뱉는다.


  그런 와중에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 소설 <소년이 온다>(이하 ‘소년’)가 출간되었다. 정유정의 <28>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자그마한 모티브를 따왔다면, <소년>은 소설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이다. 이야기는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을 줄기로 벌어진다. 군인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을 찾아주는 일을 돕는 동호부터 함께 일하는 선주, 은숙, 진수, 난리통에 사라진 동호의 친구 정대, 동호 가족의 입을 빌어 80년대 전후를 재구성한다. 일찍이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에서 선보여 다소 익숙한 2인칭 서술의 1장부터 시작하여 각 장마다 인물과 시간적 배경, 서술을 달리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책을 펴는 순간, 동호가 상무관에서 일을 돕는 1장부터 푹 빠지고 말았다. 2인칭 서술의 특별함 때문은 아니다. 다른 다섯 장에 비해 압도적으로 침착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종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호는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에게 죽은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고,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지 모른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의 시선은 당시의 모습을 열정적이게도, 비관적이게도 보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히 타자화하여 목도시킴으로써 비극의 현장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소년>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특히 인상깊은 이는 3장 ‘일곱 개의 뺨’에 나오는 은숙이다. 과거 광주에서 상무관에서 동호와 함께 일했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 한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다. 한 책을 번역출판하기 전, 검열과에서는 번역자가 수배자라는 이유로 은숙을 몰아새우고 일곱 대의 뺨을 때린다. 은숙은 이정도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뺨을 한 대씩 잊어가리라 마음먹는다. 하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뺨은, 입을 아주 살짝만 달싹거리며 무언에 가까운 저항연극을 보면서 오히려 가슴에 더욱 깊이 새긴다.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압제에 항거하는 은숙의 눈물이 빛난다.


  은숙과 반대로 선주는 과거에서 멀어지려 한다. 광주에서의 빨간 기억, 수많은 고문, 그때문에 순탄치 않았던 자신의 삶. 선주는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도망쳤다. 한강이 말하는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하다.(고문 경험자가 남긴 인터뷰에서).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고통의 기억은 몸속에 머무르고 생명을 공격한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그들을 전면에 내새운 한강은 그들을 모두 보듬는다. 2장 <검은 숨>은 이야기 전개상 다소 불필요해 보이지만 결국 한강만의 방식으로 위로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2장은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혼이 고기덩어리와 마찬가지인 썩은 시체에 간신히 연결돼 이 세상에 머물러 서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시체가 썩어가고 비가 내리고, 온통 단편적 이미지로만 이루어져 뒤죽박죽인 기억으로 혼란스러운 그곳에서 혼(魂)들은 서로를 가까이 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위로한다. 서로가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어떤 생각을 주고받을 방법도 몰랐지만, 그들은 마지막 재가 되기 전까지 기척과 고통을 나누며 함께 위안한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진실한 공감만이 깊은 상처를 아물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강은 말한다.


  인구 사십만의 광주에,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팔십만발의 탄환. 먹으로 너덜너덜해지고 종이가 퉁퉁 불 때까지 단어들이 지워진 책. 퍼즐 맞추기를 하듯 신문에 실린 사진. 검열되어 텅 빈 공란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화사하고 태연하고 낯설어 보였다.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데, 한강은 믿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기록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곱 개의 뺨의 고통처럼 쉽사리 잊힌다. 하지만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그들은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된다. 우리는 고귀하다. 그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인상깊은 구절.


  어떤 기억을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진행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하는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될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를 죽이러 온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광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 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게 깨끗이 나를 도와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은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즐 수 있습니까?


_<소년이 온다>, 한강, 134, 135쪽,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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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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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063.


  로맨스소설이라, 이게 얼마만인가. 12년 초 기욤 뮈소의 <종이여자>를 날림으로 읽은 뒤 내 진정 사랑을 해보지 않고는 로맨스 소설을 다시 읽지 않으리란 다짐을 한 지가 어언 2년 반 전이다. 연애를 해봐야 로맨스 소설의 즐거움과 절절함을 알지라는 한 선생님의 말씀대로, 나는 이런 부류의 글을 읽기에는 많이 모자랐다. 그래서 연애 따위는 개나 줘버려, 라고 외치고 여태까지 로맨스를 읽지 않았던 바,


  하지만 <유성의 연인>이라는 왠지 낯익은 제목의 소설을 읽었다. 1608년의 조선시대에서 도도, 단아, 깐깐한 선비 정휘지는 불시착한 UFO와 그 안에 탄 외계 소녀 미르를 만나게 된다. 정휘지는 요상한 단어를 쓰고 홀로그램과 나노입자를 쓰는 미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를 고향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고장난 우주선을 고치기 전까지 둘은 동거를 시작하는데, 아- 남녀칠세 부동석이라 했던가, 같은 공간에서 지내던 둘은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쉽게 사랑이 이루어지면 두 권의 소설을 찍어내는 나무가 아깝지. 정휘지를 사모하던, 양양도호부사의 딸 연수연과 이런 수연을 짝사랑하던 김문혁, 미르를 눈여겨보았던 천문학훈도 백도명이 나타나 사각, 아니 무려 오각관계를 맺는다.


  사람 사이의 일만으로는 이야기를 쉽게 끌 수 없었을까. 작가는 여기에 살인 사건을 끼얹는다. 마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푸른 눈의 미르가 요괴라는 소문이 나돈다. 그 와중에 각 인물들이 다른 인물들에게 품은 마음이 드러나게 되고 오해는 정휘지와 미르를 잠시 멀어지게 만든다. 과연 정휘지와 미르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될까. 타임머신을 다 고친 미르의 마음은 정휘지와 고향 중 어느 곳을 향할까.


  순수한 의미의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타임리프가 주는 캐릭터의 시간적 배경의 차이에서 인물 간의 호흡과 유머가 생겨나고, 스릴러와 추리를 살짝 얹음으로써 전체적인 틀이 완성된다. <유성의 연인>을 끝까지 읽은 바, 정휘지와 미르의 사랑을 공고히 만들어주는 사건이 오히려 소설의 주(主)라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를 잘 구성하고 흥미로운 여러 이야기를 능숙하게 뭉쳐둔 것이 큰 장점이다. 다만 얼개가 약간 약한 점이 흠이다. 왠지 몇 달 전까지 굉장히 유행했던 한 작품을 보는 듯한 기시감도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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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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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2012년, 창비 세계문학 첫 11권이 출판되었을 때 단연 돋보이던 책이었다. 제목을 다르게 달고 나온 <젊은 베르터의 고뇌>도, 새빨갛고 두꺼운데다 두 권짜리인(!!!) <돈 끼호테>보다도 말이다. 제목부터 느낌이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보라색이라니, (의도치 않게) 이렇게 불길한 색의 표지라니, 참 판타스틱한 책이다.


  유독 첫 문장이 맴도는 소설들이 있다. 너무 아름답든, 충격적이든 말이다. <게 가공선>도 그런데,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라는 첫 문장은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1926년 북양어업 게 가공선에서 린치와 가혹학 노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 사건을 조사해서 쓴 책이 <게 가공선>이 되겠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 데려다가 바다로 내몬다. 고된 일을 그냥 시키면 안 될 것 싶으니, 회사는 '국가적 산업', '러시아와의 국력 싸움'이라는 간판을 내건다.


  뭐든 일이 안되면 '일본제국'을 들먹이다. 일본제국의 거대한 사명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가야 한다. 일본제국을 위해 모두가 떨쳐 일어나야 할 '때'라는 이유로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나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에게 채찍질을 한다. 기업의 부 증진을 '국가적 부의 원천 개발'이라는 식으로 결부시켜 일을 하는 데에 헛된 긍지감과 자부심을 심어 감쪽같이 합리화시켰다.


  견고하다 못해 도를 넘어 꽉 막힌 국가주의는 자연스레 작은 단위인 사람(국민)을 더욱 작게 만든다. 폭풍우가 치는 깜차까 바다에서 카와사끼선을 잃어버린다. 이틑날, 카와사끼선 수색을 겸해서 게 무리를 쫓아 본선이 이동하는데, 이유는 우습게도 인간 대여섯 '마리'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카와사끼선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밤에는 425명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눈앞에서 보고서도 높은 보험금 때문에 괜찮다고, 차라리 가라앉으면 득 보는 거라고, 선원들은 말한다. 감독들은 애시당초 노동자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나친 국가주의는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하다. 홋카이도오의 대대적 철도 건설 사업이 있었는데, 철도의 침목이고 간에 그것들 하나하나가 말 그대로 시퍼렇게 부어오른 노동자의 주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많은 노동자가 죽어나갔다. 배 윈치 가로대에 잡부를 묶어 매달아 벌을 주기도 하고, 노동을 피해 숨은 이를 화장실에 가두어 변기에서 서서히 죽게 만든다. 모두 큰 것을 위해, 이 잡는 것보다 더 간단히, 인부들은 맞아 죽었다.


  하지만 큰 사고에 갇힌 이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한다고 해도 무력감이 생기면 포기하고 적응하게 된다. 탄광 광차로 운반되어오는 석탄 속에 엄지나 새끼손가락이 섞여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자나 아이 들조차 그런 것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들여졌던 것이다. 모두들 보이지 않는 굵은 쇠사슬을 질질 끌고 다니는 격이다.


  무려 90년 전 이야기인데도 이 책이 이리도 재밌고 실감나게, 동시에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현재에서도 소설에서 묘사한 장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팔려간 사람, 국가적 사업을 위해 죽어나간 수많은 노동자,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끔찍한 일도 태연히 꾸며대는 '위에 있는 인간'들, 하지만 눈 번히 뜨고 당하기만 하는 보통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는 모습이다.


  과연 국가의 개념이란 무엇인가. 나와 국가 중 어떤 것이 위에 있어야 하는가.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신나게 응원하던 모습을, 김규항이 불편하게 보았다는 이야기가 얼핏 수긍이 가기도 한다. 다수결의 원칙과 공리주의의 지나친 결벽도 슬슬 의심이 간다. 무너진 벽 뒤에서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벽을 열면 안전한 쪽의 사람이 위험하니 그들을 구하지 않고 벽을 더 굳게 쌓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당신에게 고한다. 국민 편이라고? 웃기고 있네, 개똥이야!


* 참고로 발췌문이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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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0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예전에도 한번 출판됐는 데 책의 저자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거장이라 하여 참으로 읽고 싶었는 데 구하지 못 하던 중, 출판이 되어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나요 ㅎ
제가 한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읽는 중 이었거든요 배가 침몰하는 데 그게 돈이 더 남는다는 것 장면을 보며 세월호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섬찟하네요...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네요 ㅎ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한 번 들어와 봤습니다. 글 깔끔하시게 잘 쓰시네요 ㅎ 양손으로 쓰시나봐요 ㅎㅎㅎㅎ

양손잡이 2014-07-04 03:34   좋아요 0 | URL
저도 근래의 여러 사건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장면이 주욱 펼쳐지는 것 같아 아쉽고 아쉬웠습니다. 앎은 얕지만 우리나라 노동환경이나 부의 불평등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으니 <게 가공선>을 타게 되었네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키보드는 당연히 양손으로 두드립니다 ㅎㅎ
 

땡스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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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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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


미래에는 공유(share)가 단지 경제적인 걸 아끼고 평등을 위한 미덕의 의미로만 사용되진 않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교통 공유 형태의 기업이 큰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카쉐어링은 사업의 형태보다는 사회 공동체의 한 가지 형태로 나타났지만, 큰 도시의 게스트 하우스만 봐도 공유경제가 은근히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는 매우 성행한다. 혼자 여행할 때 홀로 편히 쉴 수 있는 모텔이나 찜질방을 찾기도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도 한다. 특별한 목적을 가진 집이지만 이는 분명 셰어하우스의 한 형태임이 분명하다. 경제적인 면보다 주거에 더 초점을 맞춰보면 하숙이나 기숙사 등이 책에서 말하는 셰어하우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는 셰어하우스에 대해 다수가 한 집에서 살면서 개인 공간인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지만 공용 공간(거실, 화장실 등)을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책에서 말하는 셰어하우스는 아예 남남인 사람들이 모여 주택이나 맨션을 임대하여 완전히 혼자 사는 원룸(개인 방)과 가족이 함께 사는 집(공용 공간)을 적절하게 나눈 형태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면 정이 떨어질 수 있다. 하물며 오랫동안 따로 살던 사람들인데, 불편함이 없을 수 없다. 개인공간이야 그렇다 치고 공용공간에서 각자 생활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서로 워낙 다르게 생활하니 불편함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명확한 규칙과 이를 철저히 지켜야 공동체 생활에 금이 가지 않을텐데, 당연히 쉽지 않다. 타인과의 새로운 삶이 펼쳐질 거라 기대하고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이라고 한다.


타인과의 다름이라는 큰 단점이 있음에도 셰어하우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다름’이 함께 살기의 단점이자 장점이 된다. 타인을 받아들이고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점을 아는 순간부터 타인이라는 이름의 우주를 받아들이게 된다. 여러 정보와 가치관을 접함은 곧 삶이 풍부해짐을 뜻한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같이 산다는 것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에 큰 강점으로 다가온다. 퇴근 후에 텔레비전과 컴퓨터만이 친구였다면, 셰어하우스에 입주하는 순간은 아주 가까운 이웃이 두셋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 단 한 마디 인사도 고독감을 해소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식사 시간이 즐거워지고 대화 상대가 있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책은 셰어하우스에 실제 거주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실어 더 실재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저자의 나라인 일본에만 해당할 거라고? 국내 출판물에는 국내의 셰어하우스 입주자의 인터뷰를 별도로 수록하였다.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인 셰어하우스에 대해 실거주자가 쓴 책인만큼 셰어하우스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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