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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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이스탄불이라는 제목에 이끌렸다. 술탄아흐메트 지구에 있는 톱카프 궁전에도 들르고,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마리아의 손 모양' 앞에서 소원도 빌고 싶다. 볼거리가 가득하다는 지붕이 있는 시장 '그랜드 바자르'에도 가고, 돌무쉬를 타고 갈라타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의 언덕에 있는 탁심광장에서 이스티크랄 거리까지 가보고 싶다. 이스탄불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곳으로 유명한 거리라고 한다. 예전에 여행공모전에 제출했던 터키 배낭여행 계획서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읽었던 몇 권의 터키 관련 책과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가 터키 혹은 이스탄불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이다. 지극히 미미한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꼭 여행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곳에 관한 두꺼운 책 한 권이 너무나 읽고 싶었다.

오르한 파묵, '터키 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 작가'로 더 알려져 있고, 200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 민음사에서 펴낸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책의 두께에 지레 겁을 먹고 책장을 넘겨보지도 못 했다. 이전에 터키 문학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더 망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수식어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발행된 '검은 책' 또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두꺼운 책 두 권으로 이루어졌음에 지루함마저 느껴졌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특별한 일 없는 휴가 때라든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시원한 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읽어 볼 의향이 있다.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에서도 '검은 책'에서도 이스탄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이스탄불을 이야기한다. 자전 에세이인 만큼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오르한 파묵 자신에게도 이 책은 소중한 보물이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와 이스탄불의 변해온 이야기를 함께 들려 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어쩌면 군데군데 사진이 없었다면 조금은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도시 그리고 추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두 가지 이야기의 결합이 꽤 흥미롭게 읽혀졌다. 누군가의 비밀 일기장을(더 정확하게는 일생을 적은 자서전이라고 해야 할까) 몰래 훔쳐 읽은 기분이다. 어릴 적 어린이 영화에서 보았던 커다란 마법의 책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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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시 - 글도 맛있는 요리사 박재은의 행복 조리법
박재은 지음 / 지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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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스러운 책 한 권을 읽었다. 왠지 고상해 보이는 표지에 빨간색 글자가 눈에 띈다. '밥시'의 저자 박재은은 음식 이야기를 너무도 맛있게 들려준다. 그녀가 진행하는 요리 프로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밥시'를 읽은 것만으로 그녀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저자는 말보다 요리로 세상과 소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행복하단다.

어릴 적에 내가 보는 엄마는 요리사였다.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서 맛있는 간식거리를 내놓은 듯 엄마는 요리를 잘하셨다. 화려하지 않아도 소박한 음식들은 꿀맛이었다. 밀가루에 우유를 넣고 달걀을 풀어 반죽한 뒤, 찜통에 찐 버터 빛깔 빵, 냄비에 살짝 태워서 설탕을 솔솔 뿌린 감자나 다디단 찐고구마, 돼지고기에 여러 재료들을 썰어넣고 빚어서 프라이팬에 익힌 뒤, 빵 사이에 껴먹는 햄버거, 직접 만들어 튀긴 돈가스, 핫케이크 위에 갖은 재료를 올리고 피자 치즈를 잔뜩 올려 만든 엄마표 피자 등 집에서 만들어 주시던 음식은 사먹는 것 못지않게 맛있었다.    

저자는 음식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옛날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영화 이야기나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물론 그 이야기들을 음식과 관련하여 달콤한 목소리로 막힘없이 쏟아내고 있다. 여러 가지 조리법이나 외국 음식에 대한 설명들이 요리 과정을 직접 보는 듯 느껴질 정도이다. 어느 멋진 곳의 여행기를 읽을 때 혹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쾌감을 맛보았다.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니라도 먹는 시간은 정말 행복하다. 설렁탕이나 갈비탕에 김치와 깍두기를 넣어서 먹거나 노릇노릇 구워진 생선살을 발라 한 숟가락 뜬 따끈한 밥 위에 올려 먹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입맛 없을 때 양푼에 밥과 데친 콩나물을 넣고 파와 냉이가 잔뜩 들어간 양념 간장에 비벼 먹으면 맛있다. 일식, 중식, 양식도 좋아하지만 집에서 해먹는 대부분이 한식이다. 요리법이 어떻든 자신의 입맛에 맞는다면 무엇이든지 최고의 음식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저자 박재은의 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모락모락 따끈한 조밥에 능이버섯 국과 들기름 발라 구운 김, 칼칼한 맛의 부추김치, 그리고 약주 한 잔. 마음마저 따뜻해진다. 그녀의 책이 또 나온다면 읽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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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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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제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넘겨보았을 때 향기가 났다. 분홍빛 속표지와 잘 어울리는 향기였다. 이외수의 장편소설 '괴물'이나 '장외인간'도 재미있게 읽었고, 우화상자 '외뿔'이나 사색상자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산문집 '뼈' 그리고 이외수 소통법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이외수의 생존법 '하악하악'도 거리낌없이 선택할 수 있었다. 이외수의 글을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처음 읽었던 장편소설이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짤막한 글들의 모음집이라서 부담되지 않고 술술 읽혀지는 책이다. 그가 궁금한 점, 그의 경험,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의 생각, 읽는 것만으로 웃기는 이야기들, 사실을 토대로 한 호통, 여러 제목의 시리즈 등 마치 익살스러운 해학문학을 읽는 듯하다.

이외수 책에서 또하나의 볼거리는 그림이다. 간단한 듯하면서 작가의 하고 싶은 말이 녹아있는 듯한 그림들도 좋았다.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살며 사라져가는 동식물을 세밀화로 되살려내고 있는 화가 정태련이 이외수와 만났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에서는 야생화의 모습을 너무도 예쁘게 그려주었는데, '하악하악'에서는 민물고기 65종을 실제와 같이 표현하였다. 제목 '하악하악'은 팍팍한 인생을 거침없이 팔팔하게 살아보자는 인터넷 어휘이다. 처음에는 왜 물고기 그림이 가득한지 엉뚱해 보였는데, 제목의 '팔팔하게 살자'는 뜻과 물고기의 그림이 어울릴 수 밖에 없다. 정태련은 민물고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무려 3년을 전국의 산하(山河)를 떠돌았다고 한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은 눈을 떼지 못할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향기나는 예쁜 책을 읽었고 그래서 기분이 좋다. 짧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글이 태반이고 마음에 드는 구절도 많다. 책표지를 보신 할머니께서 작가의 외모를 보고 한마디 하셨지만 상관없다. 난 그냥 이외수의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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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있었다 - 그리고 다시 한 사람...
김종선 지음 / 해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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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예뻐서 제목이 마음에 와닿아서 읽고 싶었다. 그냥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아팠다. 내가 겪었던 아픔이 군데군데 묻어났다. 대학 시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이별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느낌과 함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사랑과 이별했을 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이대로 생이 끝나버렸으면,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나면서 정도 많이 들었지만 다투기도 많이 다투었다. 장난으로 결혼하자는 말도 했었지만 크게 싸우고 나서는 한 번만 더 싸우면 헤어지자고도 했었다. 3년을 만나고 헤어졌을 때 한동안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떠올랐고 길었던 시간이 아깝고 분하기도 했다. 이별했지만 이별할 때의 그의 눈빛은 악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도 아팠을 거라고 생각한다. 헤어지고서 사귀었던 시간만큼 흐른 지금까지 한번도 마주치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다. 같은 동아리였는데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다. 소개팅을 할 때마다 그와 비교를 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건지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별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내용이다.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아픔은 매한가지일테니.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울음을 꾹 참았을 때처럼 머리가 멍하게 아파왔다. 그런데도 쉬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잠시 책을 덮는다면 이별의 아픔을 또 한번 펼쳐야 할 테니까.

파스텔 톤의 일러스트가 예쁘다. 동화책을 보는 느낌이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인데 머리로 울어서 마음은 아팠다. 그와 함께 갔던 식당이나 극장, 공원에는 갈 수가 없었고, 휴대폰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는데 머릿속에는 그의 번호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가 항상 데려다주던 집 앞까지 혼자 걸어올 때는 외로웠고, 길을 가다 그와 뒷모습이 비슷한 사람을 보면 깜짝 놀랐다. 여러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더욱 슬프고 아팠다. 지내면서 울고 싶을 때 다시 꺼내볼 것 같은 책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설 용기를 얻었다. 옛 사랑에 얽매여있던 끈이 그동안은 느슨해진 상태였다면 이제는 그 끈을 풀어버릴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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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 - 한 발 다가서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
박종현 지음 / 시공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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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말부터 일주일 정도 여유가 생겼다. 계획했던 호주 패키지 여행이 인원 미달로 취소되어 일본을 갈까 제주도를 갈까 고민하다가 혼자서 가기에 아직 용기가 부족한 것 같아 3박 4일 전라도 여행을 다녀왔다. 하지만 '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를 읽고 나니 혼자 여행해도 괜찮을 듯한 곳이 일본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일본인데 막상 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 스무 살에 일본 여자와 사랑에 빠지며 일본과 첫 인연을 맺었다는 저자 박종현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사람들 앞에서는 간을 빼줄 정도로 친절하고 상냥한 일본인이 혼자일 때는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쌀쌀맞고 고독감마저 감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을 무서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대인 관계의 긴장감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니 무서울 정도이다. 일본인들은 차를 마실 때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도 혼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주위의 시선이 신경쓰일 것이 분명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일본 여행을 혼자 해도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을 것 같다. 혼자서 길을 걸어도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이상한 눈으로 흘끗거리는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한국 친구와 달리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며 관계를 유지하는 일본 친구. 그것이 일본 사회에서 '친구 사귀기'의 기본이라지만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친구의 형제와 부모님도 마치 내 가족같이 대하는 문화가 훨씬 보기 좋지 않은가. 이번 전라도 여행에서는 고등학교 친구 집에서 두 언니와 이야기도 나누고 남동생과 맥주 한 잔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친구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맛있는 밥을 먹으며 옛날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도 해드렸다. 이렇듯 살갑게 대하는 우리 문화야말로 정겹고도 따뜻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냄새강박증의 나라 일본, 회의를 좋아하는 일본인, 겸손을 넘어 걱정이 팔자인 그들, 자신감 없는 일본인들의 성격을 커버해 줄 수 있는 '명품', 야구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는 일본인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5장 그들만의 스타일 엿보기에서 음식이나 동네 책방, 거리나 산책로 부분이 재미있었다. 각 장의 뒷부분 '도쿄 스케치'에서 소개해주는 맛집도 일본을 여행하게 되면 꼭 가보고 싶다. 일본 사람은 물론이고 그들의 문화에도 한 발짝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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