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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흥행에 크게 성공해 4편까지 나온 <여고괴담>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학교라는 공간은 참으로 괴담이 나올 만한 여지가 많은 곳이다. 그놈의 성적이 뭔지, 그것 때문에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선생들은 학생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차별하며 쥐 잡듯이 잡고...모든 학교마다 나름의 괴담이 존재하는 것도 학교 생활 자체가 이미 충분히 공포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섯 번째 사요코>는 지방의 한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무대로 한다. 그 학교에는 '사요코 전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좀 복잡하다. 학교 3학년생 중 한 명이 사요코가 된다. 사요코는 일 년 동안 남몰래 활동(?)하다가 졸업식 때 다음 사요코를 지명하므로, 사요코는 대를 이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사요코가 무엇을 하느냐. 매 3년마다 학교 축제 때 연극을 공연해야 한다. 그러니까 1년,2년째의 사요코는 다음 사요코가 누가 될지 전달만 해야 하는 역할이고, 3년째 사요코가 무사히 연극을 마치면(즉 남들에게 적발되지 않고), 그 해의 대학입학률이 대풍년이라 이거다.
사요코 전설이 처음 시작된 지, 18년째 되는 해. 그러니까 여섯 번째 사요코가 연극을 해야 하는 해에 한 여학생이 전학을 온다. 그녀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쓰무라 사요코. 더욱더 공교로운 것은 불의의 사고로 죽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세 번째 사요코와 이름이 같은 것이다. 역할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세 번째 사요코가 한이 남아 다시 돌아온 것일까? 과연 엄청난 미소녀인 쓰무라 사요코 주변에서는 기이한 일들이 연속해서 벌어지고, 총명하고 잘 생긴 전형적인 온다 리쿠표 남자 주인공인 슈는 학교에 감도는 사요코 전설의 실체와 쓰무라 사요코의 정체를 파악해나간다.
최근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온다 리쿠의 데뷔작이다. 그녀 작품의 원형이 될 만한 것들, 이를테면 학교라는 독특한 공간과 사려 깊은 미소년과 미소녀들, 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자연현상이나 학창시절 등에 대한 그녀만의 신선하고 섬세한 고찰 등이 모두 들어 있다. 온다 리쿠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독자들의 '공감'을 잘 얻어내서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 후배와 대화를 하다가 본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요일까지 학교에 나와 자율학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무 심한 거 아니냐며 어이없어 하는 후배에게 사실 그 자율학습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일요일날 집에 있으면 뭐하겠는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시덥잖은 농담따먹기를 하고, 선생님 시선을 피해 만화책을 읽고, 쉬는 시간마다 달려가 과자를 사 먹는 그런 일상들이 너무 좋았는걸. 온다 리쿠는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따금 이대로 영원히 자신의 내면에 각인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장면들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언젠가 분명 이런 시간을, 이렇게 옆에서 멋대가리 없는 교복을 입고 무방비 상태의 얼굴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유키오의 목소리를 그리운 마음으로 떠올릴 순간이 올 것이다(...) 그보다 넷이서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그는 마음 한구석으로 알고 있었다. 설사 네 명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다 해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체감, 네 명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다는 편안함, 세상 질서의 일부가 된 듯한 충족감을 맛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누구든 학창시절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작가가 담담히 털어놓는 학창시절의 이 우정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된다. 작가와 독자와의 끈은 여기서 단단히 이어진다. 이 공감을 바탕으로 온다 리쿠는 우리 모두가 통과해왔던 지난 날의 상큼한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과연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답다. 그러나 <여섯 번째 사요코>는 고등학교 시절의 우정에 대한 찬가만은 아니다.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분명히 섬뜩한 공포의 순간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절정 부분인 여섯 번째 사요코의 연극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불을 끄고 펼쳐지는 연극은 개인이 아닌 집단이 조성하는 무의식적인 공포감을 자극하며, 실제로 무서운 것이 아님에도 한 명이 무서워하면 그 무서움이 전염되는 '공포의 전염'을 아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사실상의 클라이맥스로 손색이 없으며, 그동안 보아온 온다 리쿠의 작품을 통틀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데뷔작이라 그런지 약간 갈팡질팡하는 흔적이 보인다는 점인데, 아니 어쩌면 이 작가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네버랜드>라는 작품에서도 애초 구상과 달리 쓰다보니 주제와 내용이 바뀌웠다고 하더니,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도 그런 흔적이 보인다. <여섯 번째 사요코>에서는 사요코가 한바탕 독자들을 떨게 만드는 호러소설(연극 장면에서 이 부분은 성취된다)의 요소와 4명의 남녀 학생들이 소박한 애정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 심지어 사요코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함을 암시하는 공포스런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유머러스한 말장난까지 정신없이 섞여있어 조금 혼란스럽다. 물론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그간의 모든 의문이 시원하게 해소되지는 못한다. 이것(호러소설)도 저것(청춘소설)도 놓치기 싫어 이것저것을 모두 담으려 시도한 작가의 마음은 알겠다만, 각각 이것과 저것의 매력을 일정 부분 잃은 사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질적인 두 요소의 간극이 제법 느껴져, 데뷔작다운 부족함도 약간은 눈에 띈다는 결론을 내린다.
p.s/ 그간 온다 리쿠의 작품을 거쳐간 리쿠걸(?) 중에서 쓰무라 사요코가 최강의 미소녀가 아닐까?
등장인물 중 한 명의 독백이다.
"정말 예쁘구나. 앞으로 해가 갈수록 더 예뻐지겠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최고로 예뻐.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나 혼자 친구로 독점하다니 왠지 벌이라도 받을 것 같아."
도대체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