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의 [신앙과 지식]의 마지막 부분에는 <그리고 유탄>이란 소제목이 붙어있다. 이 소제목의 의미 역시도 앞의 소제목인 <지하 납골당>처럼 정확히 파악을 하지 못 했다.  이 역시 데리다의 직접적인 글로 그 의미를 유출해 본다.

"이러한 전제 혹은 일반적 정의가 제시되었고, 정해진 지면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으므로, 이제 최종적인 15개의 제안을 낱알을 떼어내듯, 유탄을 던지듯, 산종된, 경구문의, 불연속적인, 병렬적인, 단호한, 직설적 혹은 가상적인, 경제적인, 한마디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전보문 같은 형식으로 궤도를 띄워 올려보자"(P161)


쉽게 이야기해서 시간이 없으니 앞의 전개보다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압축적으로 주제를 정의하겠다는 말 같다. 그래서일까. 데리다의 [신앙과 지식] 중에서 이 부분이 가장 읽기가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데리다는 앞에서 언급한 종교의 두 가지 원천, 즉 '기계적인 것''성스러운 신성성'을 다시 언급한다.(이 용어는 베르그송의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가져왔다.) 여기서 기계적인 것이란 이성의 인식 안에 있는 경험 가능한 것이고, 성스러운 것은 이성의 인식 밖에 있는 경험 불가능한 것이다.(이 두 영역의 구분은 칸트의 이성이 한계에 대한 개념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리다는 '기계적인 것'이라는 용어를 '원격과학기술'이란 용어로 바꾸어 현대 인터넷 문화에 적용한다. 베르그송은 종교가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정적인 종교에서 동적인 종교로  도약하려면 둘의 관계가 상호공존적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리다는 이 과정을 '세계 라틴화'라고 부른다.

이런데 이런 '세계 라틴화'의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의 자가 면역 기능'이 발동한다. 종교가 스스로를 해체하면서 종교를 보호하는 미디어가 오히려 종교를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종교 전쟁이 발생한다.


 

앞 부분에서 데리다는 앞 부분에서의 '자가 면역'과정을 이제는 '남근 현상'이나 '남근적인 것'이라는 모티브로 설명한다. 역사상 세계에 존재하는 남근의 모티브는 생명의 생산과 함께 생명의 희생의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남근적인 것, 그것은 또한 페니스와는 다르게 일단 자신의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면, 사람들이 일으키고, 전시하고, 물신으로 숭배하고, 행령을 지어 끌고 다니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닌가? 사람들은 가상의 가상이라고 할 거기에서, 계산 불가능한 것을 가지고 셈하고 계산하면서, 원격과학기술적인 기계, 즉 생명에 봉사하고 있는 이러한 생명의 적을 설명하기에, 종교적인 것의 잠재적 자체, 즉 죽어 있기에 자동적으로 생명을 초과하는/경계 위에 살아 있는 것으로서, 그 유령적인 판타스마안에서 부활한 것으로서 가장 생생한/살아 있는 신앙, 그러니까 신성한 것, 온전히 무사한 것, 무손한 것, 면역된 것, 성스러운 것, 한 마디로 하일리히를 번역하는 모든 것과 동맹을 맺게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논리의 역량 혹은 능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닌가?" (P163)

 

결국 데리다는 '남근적인 것'이란 종교의 신성성이 기술적인 것과 만나서 도약하는 과정에 대한 또 다른 모티브이다. 그리고 이런 종교성은 스스로를 파괴하며, 생명에 대한 희생을 야기한다.

"그렇다면 또한 동일한 움직임에서 명백한 이중의 전제 설정을 설명해야 한다. 즉 한편으로 생명에 대한 절대적 존중, '절대 죽이지 말라'는 명령, 낙태, 인공수정 등 설령 유전자 치료 목적이라 해도 유전적 잠재력에 대한 수행적 개입을 금하는 '체제 유지적인'금지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전쟁, 그들의 테러 행위와 대량 살상에 대해서는 심지어 언급조차 하지 않는) 희생제의적 소명이 있는데, 그것 역시 보편적이다." (P167)

 

데리다는 마치 종교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고 있다.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신성성과 기술성의 결합으로 생성된 종교성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자신을 보존하고, 또한 자신을 파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교와 디지털 문화와 만남을 통해 종교의 자가 면역성, 또는 남근 현상과 만나고 있다. 데리다는 이것이 미디어 문화를 통한 테러와 파괴의 양상을 띄고 있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