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를 읽는다 1부의 후반부에서는 니체가 초인사상을 예술과 사회에 적용하고 있는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니체는 예술 역시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로 나눈다.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예술은 삶을 긍정하는 예술이다. 심지어 삶의 비극적이 요소까지도 긍정으로 받아들인다. 반대로 인간을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예술은 현실세계를 부정하고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즉 니체에게 있어서 예술은 세상의 비극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긍정하는 것이다.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예술은 현실세계에서 보이는 끔찍한 현성들조차도 이 세계가 갖는 무궁한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긍정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세계가 갖는 그러한 무궁한 힘을 흔쾌히 긍정하고 자신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삼는 건강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삶을 승화시킨다.(P64)


니체의 이런 예술관은 [비극의 탄생]이란 책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나눈다. 아폴론적인 것은 이상적인 것이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다. 즉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것은 현실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그 현실을 긍정하며, 현실을 춤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세계는 자신의 무궁무진함에 기쁨을 느끼면서 삶의 최고의 전형인 비극적 영웅까지도 아낌없이 희생한다.그러나 비극적 영웅은 이러한 희생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긍정한다. 아니 그는 오히려 고통을 찾아다니고 그것과 대결하면서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본다. 비극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찬양이며 이러한 인간이 갖는 힘의 충일 상태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고통조차도 삶을 보다 충실하게 만드는 자극제로 작용한다. 비극적 영웅은 창조와 파괴를 거듭하는 세계의 현실을 흔쾌이 받아들이면서 세계의 충일함을 반복한다. 니체는 이런 의미에서 세계와 비극적인 영웅을 '디오니소스적이 인것'이라고 부르며 진정한 예술은 이러한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으로 충만해 있다고 본다.(P68)


나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인간'이란 단어를 접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과연 니체의 이런 생각은 그의 생애의 어느 부분에서부터 시작했을까? 약한 것을 경멸하고, 강한 것에 대한 무한한 긍정은 어떤 연유로 그의 사상에서 싹트기 시작했을까?


철학자의 사상과 그의 삶을 연관시키는 것은 올바른 철학적인 탐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학문적인 탐구가 아닌, 니체라는 한 인간에 대해 알고싶다. 그는 왜 그렇게 약함을 경멸했을까? 그리고 왜 그렇게 힘을 추구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자신의 약함을 부정하게 하고, 무엇이 그렇게 자신이 갖지 못한 힘을 추구하게 했을까? 내가 니체라는 사람을 철학자가 아닌, 인간으로 알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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