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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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는 흔히 도시적인 감성으로 표시된다. 짧고 담담한 문제 속에서 현대인이 도시 속에서 느끼는 단절감과 고독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버스데이 걸]이란 소설은 이런 하루키의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은 단편인 이 책은 '카트 멘시크'라는 독일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매우 세련된 감각으로 출간되었다. 도시 속에서 느끼는 단절감과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마치 [애프터 다크]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인 여성은 스무 살의 생일을 맞이한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로 음식을 나르고 있었는데, 스무 살의 생일 하루만은 아르바이트를 쉬기로 한다. 그러나 대신 일하기로 했던 친구가 몸살이 걸려 별 수 없이 스무 살의 생일날도 변함없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별로 특별한 계획도 없었던 그녀는 실망감도 없이 일을 한다.

"실제로 그녀는 그다지 실망하지도 않았다. 함께 생일날 밤을 보냈어야 할 보이프렌드와 며칠 전에 심각한 말다툼을 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교제해온 상대로, 다툼의 원인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하게 얘기가 꼬이면서 오는 말에 가는 말로 응수하는 거친 말다툼이 한바탕 이어진 뒤, 지금까지 두 사람을 이어주던 유대감이 치명적으로 손상되고 말핬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녀 안에 돌덩이처럼 딱딱해져서 죽어버린 것이 있었다. (P 10)"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보통 레스토랑과 다름이 없다. 단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레스토랑과 같은 건물 빌딩 604호에 레스토랑의 주인이 살고, 그 주인에게 매니저는 매일 저녁 6시 식사를 배달해 준다는 것뿐이다. 비가 쏟아지고 손님이 별로 없던 스무 살의 그녀의 생일날, 하필이면 매니저는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녀에게 오늘 저녁 하루 사장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을 부탁하고... 저녁 6시 604호로 찾아간 그녀는 한 노인을 맞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특이한 부탁을 한다. 스무 살의 생일을 기념해서 그녀의 소원을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이고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히 선택하라는 말고 함께... 노인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그 소원이 그녀의 삶을 바꾼다. 과연 그녀는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그 소원은 그저 노인의 장난이었을까.

하루키의 소설은 현실세계와 현실 이면의 세계를 오가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현실 이면의 세계는 아주 우연히 들어가게 된다. [태엽갑는 새]에서 주인공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다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1Q84]에서는 육교 다리를 내려가다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애프터 다크]에서는 호텔 방의 한 공간에서 잠을 자다가 들어가게 된다. 하루키 소설의 현실 이면의 세계는 하루키가 만든 상상의 공간이지만, 현실과 다를 것은 없다. 현실 속의 모든 것이 그대로 재현되고, 현실의 사람들도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무언가가 상실되어 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 세계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하루키는 이런 소설적 장치를 통해 현대인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그렇다면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 역시 스무 살에 우연히 들른 604호실에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스무 살 이후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짧은 소설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어려 가지 암시들이 등장한다. 먼저 스무 살을 담담히 맞는 그녀의 자세이다. 또한 생일은 축하하는 노인의 말 역시 의미심장하다.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P34)"

오랜 시간이 된 후 스무 살의 생일날을 회상하는 그녀의 대사에도 이런 암시가 등장한다. 스무 살의 생일날 빌었던 소원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귓볼을 긁적였다. 예쁜 모양의 귓볼이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P 57)"

이전의 하루키의 소설처럼 알듯 모를 듯,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모호함이 이어지는 소설이었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이 느끼는 세상과의 단절감과 고독감은 더 깊이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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