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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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철학 <이언의 철학 여행>. 두근두근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주제인 만큼 소설이라는 형식이라고 해도 술술 이해된다기보다는 조금은 만만하게 철학이라는 것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열네 살 소년과 신비한 노인의 지적 모험을 소설로 풀어낸 <이언의 철학 여행>은 교양 철학 입문서로 제격입니다. 꿈속에서 만난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언의 밤의 모험, 꿈속 대화 내용을 부모님과 토론하는 시간, 그리고 친구 제프와 그 지식을 일상에 적용해보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뤄져 읽는 내내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 철학사 발전에 기여한 고 박이문 교수의 감수의 글과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정신 운동"이라고 말하는 안광복 철학 교사의 추천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지식 / 자아, 이성, 정신 / 과학 / 참과 거짓 / 신 / 악 / 동양 사상 / 종교와 이성 / 자유의지 / 이기심, 과학 / 논리 / 사회, 정치, 돈 / 윤리와 도덕까지 13가지 주제에서 철학사의 오랜 논쟁들과 현대 쟁점을 다룹니다. 13가지 주제는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설적 재미도 풍부하지요.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또 다른 책 <소피의 세계>와 비교하면 이 책은 아이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 논리 감각과 토론 실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철학사를 장식한 153명의 스타 철학자들의 잠언과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양인 최초 미국철학회 회장 역임한 김재권 철학자도 있어 반가웠어요. 철학자라고 해서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철학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생물학자, 작가 등 사상사에 발 걸친 인물들이 분야를 망라하고 등장해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 <매트릭스>,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명대사도 나오는데 철학 사상이 연결되어 있어 작품의 재발견 재미도 있었어요.


이언의 꿈속에 나타난 노인은 이언에게 철학의 효용을 일깨웁니다.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저는 이 단어만 들어도 경기날 듯 진저리 나지만 이언은 저보다 훨씬 낫네요. 이언은 처음엔 당황하고 억지를 부리지만 차츰 '왜'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철학이 일종의 범죄 현장 수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수사관은 그 어떤 정보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왜?'라고 물으면서 현장을 검증해 나간다. (…) 당신의 세계는 우리의 범죄 현장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여정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여행의 장점이라고 믿는다. 철학은 결국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최첨단 기술이니까." - 책 속에서


소설 구성이라 쉽게 읽힐 뿐 그 속에 담긴 수준은 높습니다. 이언과 노인의 대화 내용을 다룬 논쟁의 주제가 각주에 빼곡히 등장하는데 이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멋진 철학 책이 된다고 하지만 저 같은 철학 초보자는 까마득한 이야기로 보이기만 합니다. 그만큼 소설에 철학 논쟁이 멋들어지게 잘 버무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처음엔 "그런 건 학교에서든, 직업을 갖는 데 있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하며 강짜를 놓기도 하고, 노인의 질문에 대답하기 급급했던 이언은 서서히 질문을 하게 되는 입장으로 바뀝니다. 더 많은 호기심이 불러낸 질문들입니다. 노인과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동안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신분석가 엄마와 생물학자 아빠와 토론하는 시간도 재미있습니다. 노인과 꿈속에서 나눈 대화는 부모님과의 토론, 논쟁을 통해 한결 정리됩니다. 이때 부모님도 서로 관점이 다를 때가 있어 하나하나 따져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해집니다.


친구 제프와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일들은 더 오묘한 느낌입니다. 원하는 것을 뭐든 볼 수 있는 망원경과 박테리아의 생각까지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가진 친구라니.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이언 혼자 또는 제프와의 산책 때는 노인과 만나서 얻은 지식과 부모님과의 토론에서 정리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보는 시간이 됩니다.


아기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사람일까?, 생각으로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결정된 세계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는 이언의 여정을 함께 해보세요. <이언의 철학 여행>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교감하며 인생의 더욱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길잡이입니다.


부록에 실린 '더 깊은 질문들'은 살아 있는 철학적 사유에 독자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언의 여정을 잘 따라왔다면 한층 달라진 사유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될 겁니다.


소설적 재미는 이언의 여정에 담긴 비밀이 밝혀지는 타이밍에서 더욱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이 책의 탄생 비화라고나 할까요. 순서대로 읽으면 좋지만 끌리는 주제부터 먼저 읽어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여행 파트는 잊지 말고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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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 한국인의 비밀 무기
유니 홍 지음, 김지혜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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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chi라는 영어 표기가 눈길을 사로잡는 책 <눈치>. 유니 홍 저자는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 덕분에 눈치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거주하며 다양한 문화 차이 한가운데서도 빠른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눈치 덕분이라고 하고요.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TV 뉴스 분야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유니 홍 저자는 한국인의 '눈치'를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눈치 Nunchi - 1. 눈짐작, 2. 자신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밀 무기. 3. 남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살피는 섬세한 기술, 4. 쿨한 나라를 만든 한국인이 보유한 초능력


한국인의 비밀 무기라는 부제를 달았을 만큼 눈치는 한국인의 '정' 문화처럼 한국인 고유의 정서, 행동인 걸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평소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다", "눈치가 없다." 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숱하게 써 온 '눈치'라는 단어를 이번에 제대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눈치는 살면서 유연한 인간관계 유지를 위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홍길동전>은 눈치로 역경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약자의 생전술인 만큼 눈치가 없으면 자신이 가진 특권을 잃게 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아 최소한의 눈치만 있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요. 한국은 '고맥락 문화권'이어서 말보다는 몸짓, 표정, 전통, 주변 사람, 침묵 등을 통해 전체적인 맥락을 유추하면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눈치라는 게 참 쓸모 있는 거라는 걸 깨닫습니다. 사람들은 말과 행동은 곧잘 잊어버리지만 그때 느낀 감정을 잊어버리지 않기에 숙련된 눈치 달인은 분위기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삶의 필수 요소로서의 '눈치'를 갈고닦기 위한 기술을 알려주는 책 <눈치>. '무엇보다도 해를 끼치지 마라'가 핵심 원칙입니다. 눈치 없는 사람의 변명 레퍼토리 중 하나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말했어야지!"인데,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 일쑤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손해를 보고,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타입이라고 해요. 눈치가 있으면 사는 게 좀 더 수월하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주변 분위기를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눈치 빠른 사람입니다. 공감이랑 비슷한 느낌도 드는데 공감에선 속도가 중요시되진 않습니다. 진정한 눈치 달인은 그 사람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든 없든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거죠.


일상의 다양한 곳에서 자연스럽게 눈치를 쓰고 싶다면 눈치의 법칙 8가지를 잘 익혀야 합니다. 선입견을 버리고, 관찰자 효과에 집중하고, 일단 지켜보고, 입을 다물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고, 예절은 언제나 옳고, 숨은 뜻을 잘 알아채고, 의도치 않게 해를 끼치는 것도 나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민첩하고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연애, 직장 등에서 실제 적용한 사례를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 이해하기 쉽습니다.


에둘러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소통이 난무하는 직장에서는 특히 눈치가 필수입니다. 항상 눈치의 스위치를 켜두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싸우다 지치지 않으려면 눈치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눈치는 무작정 '열심히'가 아닌 '똑똑하게' 일하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치가 가장 늘 때는 가장 불안할 때라고 합니다. 그만큼 눈치는 약자의 비밀 무기인 셈이죠. 편견, 자신감 결여 때문에 생기는 비합리적인 불안감과 눈치에 바탕을 둔 공포는 엄연히 다르다는 걸 짚어줍니다. 관찰하면서 적응하는 능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게 눈치입니다.


위급할 때 더 강하게 해주는 강력한 내면의 힘, 눈치. 서양인 입장에선 이 눈치가 신비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공동체 사회에서 사회적 소통을 위해선 이제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한 눈치? 눈치를 쓰면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선입견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만하고 즐거운 분위기 메이커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준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신다움을 잃는 게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안전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진정으로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능력이니까요.


재미있는 건 눈치 연습에 좋은 게임이 우리가 자주 하고 예능에서 자주 보던 바로 그겁니다. 숫자 세며 일어나는 눈치 게임과 묵찌빠. 해외에서도 핫해지는 게임이 될 것 같은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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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살의 - JM북스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손지상 옮김 / 제우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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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꽃>, <암흑소녀>, <성모> 등 화제의 미스터리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의 반전 미스터리 소설 <유리의 살의>.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질 못해서 최근엔 살짝 거리를 뒀던 장르여서 오랜만에 읽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역시 이 맛에 읽는 거지! 싶을 정도로 <유리의 살의>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사람을 죽였다고 스스로 신고하는 첫 장면부터 영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가 자리 잡습니다. 누군가를 살해한듯한 여자의 혼미한 정신 상태에 어떤 사건인지 궁금해집니다.


잠시 후, 여자는 병원에서 깨어납니다. 그런데 고3의 기억을 마지막으로 이후의 기억이 사라져 있습니다. 현재 마흔하나에 결혼까지 한 마유코. 갑자기 남편까지 있는 중년의 나이에, 사람을 죽인 용의자 신세가 되었다는 거에 충격을 먹습니다.


마유코는 20년 전에 벌어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장애를 가지게 되었고, 수십 분 만에 기억을 잃습니다. 마유코의 부모는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로, 당시 마유코 역시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다 과속하던 차에 치여 뇌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유코를 친 자동차 운전자가 지금의 남편입니다. 사고 1년 후에 기억장애를 가진 상대와 결혼했다니. 벌써 의심 한 자락을 던지는 작가입니다.


기억장애가 있는 용의자라니. 자수는 했지만 범행은 기억 못 하는 마유코를 두고 형사는 당황스럽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모두 마유코가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전개는 마유코가 살해한 피해자의 정체에 있습니다. 바로 부모를 살해했던 묻지마 살인범이었던 겁니다. 무기징역을 받고도 환각 상태 심신 미약 판정을 받아 감형을 받고 가석방된 그가 마유코에게 죽은 겁니다.


마유코는 부모님의 복수를 했던 걸까요. 그렇다면 기억장애가 있으면서 어떻게 복수를 실행했을까요. 용의자의 기억은 없지만 동기가 확실해지니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고구마 백만 개쯤 선사하는 마유코의 기억은 읽는 내내 답답증을 안길 뿐입니다. 수십 분 만에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시전하니 형사도 이젠 알아서 상황 요약을 줄줄 읊을 정도입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날카로운 물체의 감촉이라든지, 죽어가던 남자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니 마유코는 어쨌든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체포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분명 죽인 것도 완전히 잊어버렸을 거라며 말이죠.


<유리의 살의>에는 마유코의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 유카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간병을 맡게 된 유카는 오빠와 남동생에게 서운한 게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에게 더 부끄럽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며 간병에 대한 보상을 자꾸 찾는 자신의 모습에 자기혐오에 빠졌습니다.


어머니의 병세가 점점 감당이 되지 않자 시설에 입소했지만, 마음이 계속 불편합니다. 간병이란 보고 싶지 않은 부모의 모습까지 봐야만 하는 거고, 당사자가 되니 점점 꼬여가고 뒤틀립니다. 어머니는 대가 없는 사랑을 쏟아부어 주었는데, 자신은 손해 안 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를 간병한다는 것에서 형사 유카와 마유코 남편의 상황이 겹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에서 남편의 행동이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역시 초반에 작가가 던진 의심대로 사건의 진실은 남편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요.


"인간이 지닌 감정 가운데 가장 격렬한 감정일 터인 살의조차 내 마음에는 남지 않아.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게, 묵묵히 침묵을 지킬 뿐." - 책 속에서


수십 분마다 내 존재를 잊은 채 한 줌 남은 기억을 더듬어가는 삶이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메멘토>처럼 기억상실과 살인이라는 소재는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인 것 같아요. 거기에 독자의 예상을 깨뜨리는 절묘한 반전은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우린 이제 밋밋한 플롯만으로는 자극을 덜 받으니까요.


<유리의 살의>에서도 메일과 일기로 자기 기억을 유지하면서 부모님의 복수를 원한 마유코의 표면적인 이야기 속에 숨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살인 미스터리물을 읽으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도 맞닥뜨릴지 모르겠어요. 반전 이후의 여운이 꽤 있는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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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 10만 명이 함께한 서울시교육청 인문학 강좌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1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스마트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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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드림 콘서트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 청소년뿐만 아니라 인문학 초보도 읽기 좋은 옴니버스 형식의 책입니다. 코로나로 지속가능한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한 서울시 대표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2.0은 유튜브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에서는 400여 개 강좌 중에서도 가장 먼저 만나봐야 할 열 가지 주제를 선정해 수록했습니다.


교실에서는 알려주지 않지만 삶의 바탕이 되는 인문학.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는 청소년에게 삶의 본질적 물음을 던지로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생각의 싹을 틔우는 출발점이 되는 책입니다. 신화, 철학, 문학, 미술사, 스토리텔링, 영화, 환경, 인공지능 등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한 주제를 다룹니다.


신화하면 그리스 신화와 북유럽 신화 정도만 알고 있었다면 이번엔 켈트 신화의 매력을 한 번 만나보세요. 세상 모든 요정들이 대부분 켈트 출신이라고 합니다. 켈트 신화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는 문화 콘텐츠 곳곳에서 이미 만나고 있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세계관에 등장하고 있거든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신, 영웅, 상상의 동식물처럼 신기한 존재가 많은 만큼 상상력의 보고인 신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는 신화가 무엇인지, 왜 신화를 알아야 하는지 근원적인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하는 신화에 대해 알려줍니다. 인간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화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지혜와 사랑을 합쳐 만들어진 단어가 철학입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철학이라는 학문만큼 선입견 큰 것도 없지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는 철학은 어려운 게 아니라 일상적인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지혜를 사랑하면서 자신을 채워가는 삶이 바로 '철학함'이라고 말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이야기할 때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결 구조를 통해 자유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고, '나'를 찾아가는 자아발견에서는 다양한 고전 문학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 등 딱딱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합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미래의 생존을 위해서 어떤 태도로 이 땅의 생명체들과 공존해야 하는지, 온택트 문명에 선 우리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던 뉴노멀 현장을 살펴보는 등 나의 목소리를 내며 생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 삶을 위해 가져야 할 인문학적 태도에 대해 들려줍니다.


글쓰기에 도움 되는 스토리텔링 작법에 대한 주제도 흥미로웠어요. 이슈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깊은 질문을 낳게 하는 동력이 될 노하우를 알려줍니다.


양식의 억압에서 벗어나 문화혁명 시대에 이르른 오늘날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복잡한 미술사를 쉽게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각적 진실에 근거한 모방 시대에서 어떠한 예술도 허용하는 다원주의적 시대에 들어선 예술의 역사와 방향과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습니다.


여러 분야를 다루고 있는 <교실밖 인문학 콘서트>는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취향 발견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와 미래가 요구하는 콘텐츠의 융합과 통섭, 재해석의 정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리타분한 인문학이 아닌, 학문의 경계를 허물며 흥미진진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창의성의 무한함을 일깨웁니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도표로 밋밋함 없이 진행하는 구조도 흥미를 끌어당깁니다. 해당 주제에서 함께 보면 좋을 책과 영화를 소개하고 있어 더 많은 콘텐츠를 접목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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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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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기욤 뮈소 작가하면  로맨스 소설 작가로 인식하고 있었던 터라 제 취향상 먼저 손이 가지는 않았었는데 이번 기욤 뮈소의 신작 <인생은 소설이다>는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구성으로 쓰인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서 드디어 기욤 뮈소 작가의 세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최근 그의 작품에 작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끌리더라고요.


<인생은 소설이다>에는 두 명의 작가가 등장합니다. 먼저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 플로라 콘웨이는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작가입니다. 데뷔작에서부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세 권의 책을 썼지만, 단 한 번도 언론에 나서지 않아 신비주의 작가로 유명합니다. 세 번째 소설은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했음에도 시상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플로라는 현재 심신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6개월 전 아파트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도중 실종된 딸 때문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타나지 않고 적막한 집. 찾는 '척하기'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기분은 꺼림칙해집니다. 현관문도 굳게 잠겨 있고 혼자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조건인데도 딸의 종적이 묘연합니다.


도대체 딸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납치라면 누가 왜 어떻게 한 건지 경찰 수사도 지지부진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실종 사건은 언론과 대중에게 흥미로운 먹잇감이기도 합니다. 딸의 실종이 그저 오락거리 대상이 되었습니다. 악의적인 기사에다가 용의자 취급받는 작가는 삶의 의욕을 잃습니다.


플로라의 소설을 담당하는 출판사 대표는 이제 그만 플로라에게 글을 쓰기를 종용합니다. 플로라의 소설을 독점하고 있어 출판사도 플로라가 성공할수록 함께 명성을 얻었기에 플로라의 책이 나오지 않게 된다면 타격이 커집니다. 출판사를 부자로 만들어준 플로라는 딸이 태어나자 육아에 전념하며 공백기를 가지겠다고 선언했었습니다. 인생의 우선순위가 소설에서 딸로 바뀐 셈이죠. 하지만 이제 그 딸이 사라졌습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글이 제격이라며 소설을 쓰도록 설득하는 출판사와 이제는 껄끄러운 관계가 됩니다.


"고통은 작가에게 이상적인 연료가 될 수 있어." - 책 속에서


이쯤 되면 출판사 대표가 범인일까? 하는 생각이 들법하지만 기욤 뮈소 작가는 여기서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게 꼭두각시 인형처럼 누군가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플로라는 깨닫습니다. (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갓능력이었어요.)


여기서 두 번째 작가가 등장합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가 다짜고짜 작가를 불러내며 작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겁니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을 한 겁니다.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겪는 이는 플로라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로맹 오조르스키 작가입니다.


로맹은 글쓰기에 매달리느라 결혼생활이 파탄나 아들의 양육권도 잃고 그 역시 삶의 의미가 없어진 상태에서 스무 번째 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열아홉 권의 소설은 모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잘나가는 작가였는데 이혼 과정에서 생긴 악의적인 모함 때문에 삶이 피폐해졌습니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매번 눈 덮인 에베레스트 산 아래에서 맨발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 책 속에서


출판계 전설로 불리는 재스퍼 역시 소설 속 소설에 등장한 플로라의 출판사 대표가 한 것처럼 비슷한 말을 합니다. 작가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남기면 아들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아빠를 무척 자랑스러워할 거라고, 소설에 전념하라고 합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픽션 세계 속에서 헤매는 작가의 세계를 보여주는 <인생은 소설이다>.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이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며 등장인물이 자신을 창조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두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집니다. 현실세계로 나오는 길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문학 세계나 예술 세계에선 종종 가명을 사용해 문학적 분신을 하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진 엘레나 페란테처럼 끝끝내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들도 있고요. <인생은 소설이다>에서는 유명 작가로 사는 두 사람의 압박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대표 인기 작가인 기욤 뮈소의 작가관과 소설관이 반영된 걸까요. 지금 우리 삶에서 유행하는 부캐처럼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플로라는 로맹의 클릭 한 번으로 존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그렇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플로라와 로맹의 이야기는 다시 한번 반전의 반전을 거듭합니다. 계속 의심 들게 하는 (엉뚱한 곳에!) 상황을 유도하는 기욤 뮈소의 매력적인 전개와 기발한 반전 요소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왔어요.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 스타일도 양념처럼 등장해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페이지 터너라는 명성에 걸맞게 술술 잘 읽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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