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의 철학 여행 - 소설로 읽는 철학
잭 보언 지음, 하정임 옮김, 박이문 감수 / 다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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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철학 <이언의 철학 여행>. 두근두근하게 하는 책이었어요.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주제인 만큼 소설이라는 형식이라고 해도 술술 이해된다기보다는 조금은 만만하게 철학이라는 것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열네 살 소년과 신비한 노인의 지적 모험을 소설로 풀어낸 <이언의 철학 여행>은 교양 철학 입문서로 제격입니다. 꿈속에서 만난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이언의 밤의 모험, 꿈속 대화 내용을 부모님과 토론하는 시간, 그리고 친구 제프와 그 지식을 일상에 적용해보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이 모든 것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이뤄져 읽는 내내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한국 철학사 발전에 기여한 고 박이문 교수의 감수의 글과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정신 운동"이라고 말하는 안광복 철학 교사의 추천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지식 / 자아, 이성, 정신 / 과학 / 참과 거짓 / 신 / 악 / 동양 사상 / 종교와 이성 / 자유의지 / 이기심, 과학 / 논리 / 사회, 정치, 돈 / 윤리와 도덕까지 13가지 주제에서 철학사의 오랜 논쟁들과 현대 쟁점을 다룹니다. 13가지 주제는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설적 재미도 풍부하지요. 소설로 읽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또 다른 책 <소피의 세계>와 비교하면 이 책은 아이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어 논리 감각과 토론 실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되기도 합니다.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세계 철학사를 장식한 153명의 스타 철학자들의 잠언과 문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동양인 최초 미국철학회 회장 역임한 김재권 철학자도 있어 반가웠어요. 철학자라고 해서 우리가 익히 생각하는 철학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생물학자, 작가 등 사상사에 발 걸친 인물들이 분야를 망라하고 등장해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화 <트루먼 쇼>, <매트릭스>,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명대사도 나오는데 철학 사상이 연결되어 있어 작품의 재발견 재미도 있었어요.


이언의 꿈속에 나타난 노인은 이언에게 철학의 효용을 일깨웁니다.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죠. 현상과 실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저는 이 단어만 들어도 경기날 듯 진저리 나지만 이언은 저보다 훨씬 낫네요. 이언은 처음엔 당황하고 억지를 부리지만 차츰 '왜'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철학이 일종의 범죄 현장 수사와 같다고 생각한다. 수사관은 그 어떤 정보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왜?'라고 물으면서 현장을 검증해 나간다. (…) 당신의 세계는 우리의 범죄 현장이다. 우리와 함께 하는 여정이 당신에게 직접적인 답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 여행의 장점이라고 믿는다. 철학은 결국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최첨단 기술이니까." - 책 속에서


소설 구성이라 쉽게 읽힐 뿐 그 속에 담긴 수준은 높습니다. 이언과 노인의 대화 내용을 다룬 논쟁의 주제가 각주에 빼곡히 등장하는데 이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멋진 철학 책이 된다고 하지만 저 같은 철학 초보자는 까마득한 이야기로 보이기만 합니다. 그만큼 소설에 철학 논쟁이 멋들어지게 잘 버무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처음엔 "그런 건 학교에서든, 직업을 갖는 데 있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하며 강짜를 놓기도 하고, 노인의 질문에 대답하기 급급했던 이언은 서서히 질문을 하게 되는 입장으로 바뀝니다. 더 많은 호기심이 불러낸 질문들입니다. 노인과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동안 진리라고 믿고 있던 것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신분석가 엄마와 생물학자 아빠와 토론하는 시간도 재미있습니다. 노인과 꿈속에서 나눈 대화는 부모님과의 토론, 논쟁을 통해 한결 정리됩니다. 이때 부모님도 서로 관점이 다를 때가 있어 하나하나 따져보는 시간이 흥미진진해집니다.


친구 제프와 함께 있을 때 생기는 일들은 더 오묘한 느낌입니다. 원하는 것을 뭐든 볼 수 있는 망원경과 박테리아의 생각까지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가진 친구라니.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듭니다. 이언 혼자 또는 제프와의 산책 때는 노인과 만나서 얻은 지식과 부모님과의 토론에서 정리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보는 시간이 됩니다.


아기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사람일까?, 생각으로 고통을 지울 수 있을까?, 모든 것이 결정된 세계에서 나는 자유로울까?,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 등의 질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뀌는 이언의 여정을 함께 해보세요. <이언의 철학 여행>은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고 교감하며 인생의 더욱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길잡이입니다.


부록에 실린 '더 깊은 질문들'은 살아 있는 철학적 사유에 독자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언의 여정을 잘 따라왔다면 한층 달라진 사유의 맛을 조금은 알게 될 겁니다.


소설적 재미는 이언의 여정에 담긴 비밀이 밝혀지는 타이밍에서 더욱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이 책의 탄생 비화라고나 할까요. 순서대로 읽으면 좋지만 끌리는 주제부터 먼저 읽어도 무리는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여행 파트는 잊지 말고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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