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신심 #일침중에서 #조선시대풍경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파초>란 글이 있다. 여름날 서재에 누워 파초 잎에 후득이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때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을 아껴 파초를 가꾸노라고 썼다. 없는 살림에도 소 선지에 생선 씻은 물, 깻묵 같은 것을 거름으로 주어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로 길러 낸 일을 자랑스러워했다.앞집에서 비싼 값에 사갈 테니 그 돈으로 새로 지은 서재에 챙이나 해 다는 것이 어떻겠느냐 해도, 챙을 달면 파초에 비 젖는 소리를 못 듣는다며 들은 체도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파초 기르는 것이 꽤 유행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파초 사랑도 유난했다. 파초는 남국의 식물이다. 겨울을 얼지 않고 나려면 월동 마련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폭염 아래서 파초는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로 초록 하늘을 만들어 눈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그래서 파초의 별명이 녹천이다. 이서구의 당호는 ‘녹천관‘인데, 집 마당의 파초를 자랑으로 여겨 지은 이름이다.


파초 잎에 시를 쓰며 여름을 나는 일은 선비의 운사로 쳤다. 여린 파초 잎을 따서 그 위에 당마라 왕유의 [망천절구]시를 쓴다. 곁에서 먹을 갈고 있던 아이가 갖고 싶어 한다. 냉큼 건네주면서 대신 호랑나비를 잡아오게 한다. 머리와 더듬이, 눈과 날개의 빛깔을 찬찬히 관찰하다가 꽃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향해 날려 보낸다. 이덕무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런 운치 말고도 옛 선비들이 파초를 아껴 가꾼 것은 끊임없이 새 잎을 올라오는 자강불식의 정신을 높이 산 까닭이다. 송나라 학자 장재라는 파초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초의 심이 다해 새 가지를 펼치니
새로 말린 새 심이 어느새 뒤따른다
새 심으로 새 덕 기름 배우길 원하노니
문득 새 잎 따라서 새 지식이 생겨나리

芭蕉心盡展新枝
新券新心暗已隨
願學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


잎이 퍼져 옆으로 누우면 가운데 심지에서 어느새 새닢이 밀고 나온다.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늘 이렇듯 중단 없는 노력과 정진을 통해 키가 쑥쑥 커 나가는 법이다.

*****
새벽에 일어나 <일침>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한 구절씩 꺼내 읽고 적던 시간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새삼 깨닫곤 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파초에 시를 필사하여
편지를 보내던 마음을
파초신심 네 글자로 되새겨 봅니다.
오늘도 낭비하는 시간없이
오롯이 하루에 충실할 수 있기를 빌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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