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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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나에게 가장 다가온 책은 업다이크의 『캔 타우로스』였지만 거듭 읽는 사이에 조금씩 처음의 광채를 잃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최고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는 계속 최고의 소설로 남았다. 불현듯 생각나면 나는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는 없었다. 어떻게 이리도 멋질 수가 있을까 감탄했다.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멋진 소설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할만한 인간조차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했던 나는 『노르웨이 숲』 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 를 찾아 읽었고,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소설가를 만났으며 그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었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글이나 그의 인터뷰에서 피츠제럴드에 대한 애정을 종종 확인하고는 했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교 시절부터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라면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기 전 부터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끈질지게 번역해 왔다고 밝혀왔다. 피츠제럴드의 작품 『라스트 타이쿤』을 번역한 후의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나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번역해왔다.피츠제럴드는 나의 출발점이자 일종의 문학적 영웅이다." / (2022년 4월, 산케이 신문) 라고 전하기도 했다.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고르고 기획해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책으로, 피츠제럴드가 작가 활동 후기에 발표한 단편소설 8편과 에세이 5편이 담겨있다. 한국어판 『어느 작가의 하루』 무라카미 하루키가 번역한 일본어판과는 달리, 영미문학 전문 번역가인 서창렬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글을,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민경욱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번역했다.



어느 작가의 오후

F.스콧 피츠제럴드

인플루엔셜



여행지에서 수록된 단편소설과 에세이를 휘리릭 읽었던 나는, <엮은이의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츠제럴드의 후기의 작품들을 고른 이유를 듣고는 앞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다시 읽었다. 읽기에서의 희미한 느낌이 재독에서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 독자들도 함께 발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엮은이의 중에서, p362


소설보다도 에세이에서 전해지는 감정들이 더욱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모든 인생은 망가져가는 과정이지만(망가지다, p303)'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다니! <망가지다(The Crack-Up)>, <붙여놓다(Posting It Together)>, <취급주의(Handle with Care)>라는 제목의 이른바 '망가진 3부작' 하루키도 매우 좋아해 읽고 읽었지만, 나이가 먹어야 적당할 같아 번역을 아껴둔 작품이라고 한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망가진 3부작' <나의 잃어버린 도시>라는 에세이를 염두에 둔다고.



'대단히 낙관적이던 한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모든 가치가 붕괴되는 일을 경험'했는지 <망가지다>와 <붙여놓다>를 통해 이야기하던 피츠제럴드는 <취급주의> 에서 '지각있는 성인이라면 어느 정도 불행한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것' 이라며 운을 떼지만 '이런 사실을 확실히 파악하는 데 몇 달이 걸렸지만, 나는 이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라고 다짐하기도 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산 탓에 더욱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인생의 내리막길. 알코올에 의존하고, 후배 작가들에게 추월당한다는 초조함과 경제적인 궁핍, 아내의 신경쇠약으로 고통받고 있던 말년의 피츠제럴드. '인생이 낭만적인 것이라는 믿음이야 말로 너무 이른 시기에 거둔 성공의 대가이다(p354)' 라면서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본능과 굳건한 의지를 작품의 곳곳에서 확인하게 된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몰아본 탓이었을까. 생뚱맞게도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라는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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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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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 말로는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

혁신적인 희곡과 산문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스웨덴 한림원, 2023 노벨문학상 선정사유





멜랑콜리아 I-II

Melancholia I-II

욘 포세

세계문학전집 431

민음사




소설 『멜랑콜리아』는 19세기 말 실존했던 노르웨이의 풍경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의 비극적 일생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는 1995년과 1996년에 따로 발표된 「멜랑콜리아 I』과 「멜랑콜리아 II』 를 묶어 합본으로 출간했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현지 출간 당시 노르웨이 순뫼레 문학상, 멜솜 문학상 등을 받았고,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의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위대한 유럽 문학 70대 작품'에 선정된 포세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는 작품이다.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1인칭 독백으로 시작하는 1부는 그의 생애 중 이틀을 다룬다. ( 각각의 하루는 연속되지 않고 시간의 간격이 있다. ) 화자인 '나'는 같은 노르웨이 출신 화가 한스 구데가 교수로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 유학을 와 수업을 들으며 풍경화가가 되고자 하는 인물이다. 소설 속의 첫번째 날인 1853년의 어느 늦가을 오후, 교수가 아틀리에를 방문하여 그의 그림을 볼 예정이지만 화자는 퇴짜를 맞을까 걱정이 가득한 나머지 '아주 멋진 보라색 코듀로이 양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한스 구데를 만나기 싫다'(p11) 라고 생각하며 '오직 침대에 누워있고 싶을 뿐' 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극대화된 그의 불안한 내면은 1인칭의 의식의 흐름 기법의 서술 속에서 반복되는 단어와 문장을 통해 극명하게 표현된다.


멜랑콜리아. 소설의 제목을 다시 들여다본다. '멜랑콜리' 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떠올리게 되는가. 나는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떠올리고, 이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가의 고독하고, 조금은 낭만적인 모습을 이어 떠올려보게 된다. ‘우울’ 혹은 ‘우울질’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멜랑콜리(melancholy)의 원어는 고대 그리스어 멜랑콜리아(melancholia) 로, 이 용어는 처음부터 낭만적인 우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향적인 기질 뿐만 아니라, 욕심이 많고, 감정적이며, 나태하다고 여겨지는 기질이었다. 특히 중세에는 멜랑콜리아가 기독교의 7가지 대죄중 하나인 '태만 acedia'과 관련된다고 해석하면서 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 멜랑콜리아를 특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이 생겼다. 15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가 “우울질 없이는 창조적 상상력 기대할 수 없고 모든 창조는 이것으로부터 연유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한 예다. 예술가의 우울질이 천재성을 강화해준다는 믿음 때문에 창의적 예술성이나 정신적 노동과 멜랑콜리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 생각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나 또한 중요한 일을 앞두곤 불안에 사로잡힌다. 주인공처럼 이 일을 하기에 자격이 없을 거라고, 일에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에 갇힐 때도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곤 한다. 누구나 느끼는 불안과 우울이란 감정은 독자들에게 주인공의 불안이 낯설지 않게 다가오게 한다. 그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그가 사는 하숙집 주인의 딸인 헬레네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실력에 대해 자만과 자기 경멸 사이를 오고한다. 실력에 대한 자만은 그의 동료들을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 과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들'로 나누기도 한다.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다른 화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나는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린다.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림을 못 그린다.

p207



단어와 문장이 반복되지만, 반복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정보가 추가되어 있다. 독자들은 밑에 가라앉아 있던 정보들을 읽어내며 인물들의 사연과 내면, 그리고 이야기의 흐름을 유추해야 한다. 주인공이 혼잣말로 내뱉는 문장은 연극 배우의 대사처럼 시적이다.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역자는 한 인터뷰에서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미 문학과 달리 북유럽 문학은 빠른 전개나 줄거리에 기대지 않는다. 욘 포세, 페르 페터슨, 로이 야콥센 같은 스칸디나비아 문호의 작품은 반나절 또는 하루의 이야기가 책의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그만큼 내면 이야기 위주다. 언뜻 난해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오래도록 두고두고 읽을 수 있고 그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라며 욘 포세의 작품이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는 독자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그의 작품을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그 특유의 아름다운 리듬감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터"라고 전했다. 

( 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4891#home )

 


주인공의 독백에서 반복되는 키워드 중에 화자의 내면을 유추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희고 검은 천', '아버지', '빛' 등의 키워드들. 지인들과 독서토론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희고 검은 천

안 돼. 지금은 안 돼.

그 희고 검은 천, 그 검고 흰 천은 지금 내 앞에 나타나선 안 된다. 내게 오면 안 된다.

p162



그의 생각은 상상과 망상 사이의 경계를 지나버린지 오래다. ‘희고 검은 천’ 이 그의 앞에 나타나는 것은 그가 시달리는 환상 중의 하나다. 소설 초반에 등장했을 때는 그가 자신의 환상을 인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앞에 나타나선 안 된다’ 라고 되뇌는 장면이 추가되는 것을 보니 그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타인과의 대화 중에 희고 검은 천이 나타나면 결국 ‘도대체 누구와 대화하는 거죠?’ (p162) 라는 식의 질문을 받는다. 이 정도면 타인과 어울리며, 일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시간이 훅 지나 185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주인공이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두번째 날이 놀랍지 않다. 두번째 날에서 그는 '나는 오늘 가우스타 병원에서 도망칠 것이다. 화가가 가우스타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건 말도 안된다.' 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과거와 현재, 환영과 환청 등이 혼란스레 중첩되는 주인공의 내면이 한층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역자의 말 중에서, p518 )' 가우스타 정신병원에서의 독백에서는 특히 '빛' 이라는 키워드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헬레네와 아버지를 떠올릴 때 등장했던 '빛'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온종일 당신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마치 하늘처럼, 빛처럼 나를 맴돈다. 당신은 내 가슴속에 자리한 하늘이자 빛이다. 헬레네, 나는 이처럼 당신을 그리워한다. ( p136 )


햇살이 눈부셨다. 빛이 내 눈 속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외면의 빛과 내면의 빛을 말하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면의 빛이라고 했다. ( p119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스치는 갖가지 생각 조각들은 떨쳐 버려야만 했다. 근심과 걱정거리, 심지어는 즐겁고 기쁜 생각들조차 내 머리속에 깃들자마자 조각조작 부수어 떨쳐 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내면은 고요해질 수 있었다. 고요함이 나의 내면에 자리를 잡고 내게 신의 자비가 내리면 나는 빛 속에 들어설 수 있다. 그 빛은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기품 있고 우아하게 반짝이는 빛, 묵직하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가벼운 빛,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빛, 나는 그러한 빛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빛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빛을 느낄수 없다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빛을 느낄 수 없다면 신의 자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의미지만, 가끔은 빛을 느낄 수 없어도 우리는 신의 자비 속에 있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p121)


두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빛'은 그 의미가 더욱 구체화된다. '혼란 속에서 주인공에게 상징적인 현실, 덧없음과 가닿을 수 없는 신성을 의미( 역자의 말 중에서, p518 )' 하고, 더 나아가 '탈출구'로까지 의미를 확장한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차분해져야 한다. 그러면 저 멀리 있는 환한 빛이 내 속에서도 반짝일 수 있을 것이다. 전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차분해지면 내 안에서도 빛이 생겨날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고군분투할 필요 없다. 나는 차분해져야 한다. 나는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이 되어야 한다. 나는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 빛이 되어야 한다. <중략> 내 가슴속을 휘젓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한데 모여 가느다란 직선으로 변하고 그 직선이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의 내면은 텅 비어 하얗게 변할 것이고, 나는 차분해질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비울 것이다. <중략> 세상일과 갖가지 의미들을 지우고 내면에서 반짝이는 빛, 구름 사이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빛, 내 눈에 보이는 빛과 함께 앉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무도 그릴 수 없는 훌륭한 그림을. 나는 내면에 빛을 간직한 채 아버지 곁에 앉아 있을 것이다.

p258



2부는 1부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뒤 치매를 앓고 있는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누이 올리네의 이야기로 옮겨진다. 올리네가 점점 흐릿해지는 기억을 더듬으며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흔적을 더듬어가게 되는데 3인칭으로 서술되는 형식이다. 1부의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실존 인물이라면 2부의 올리네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다. 합본으로 읽게 되니 독자들은 1인칭과 3인칭 시점을 오가며 실제 역사와 소설적 상상력을 버무린 매력을 더욱 느끼게 된다. 소설 『멜랑콜리아』는 욘 포세의 작품 중에서는 독특한 위상을 지녔다고 소개되어 있다. 예사로운 일상 속 삶이라는 부조리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평범한 인물을 주로 그리던 작가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죽은 후에야 인정을 받은 노르웨이의 비운의 풍경화가인 라스 헤르테르비그(1830~1902)는 오늘날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풍경화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욘 포세가 한 인터뷰에서 "헤르테르비그의 그림에서 보았던 어떤 것을 꺼내고자 했다" 라고 밝혔던 것처럼, 그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작품에서 찾아낸 것은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우울(혹은 불안)과 광기, 빛에 대한 희구였던 것일까.


 



(왼)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해안 풍경'(1855) @구글아트프로젝트 , 

(오) 닐스 비욘슨 묄러가 그린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초상화. @노르웨이 국립박물관 홈페이지


올리네는 이미 가족 대부분을 떠나보내고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이다.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남동생 라스의 모습, 음성 등 모든 흔적을 뒤쫓는다. 기억을 잊을 때마다 좌절하며 파편처럼 부서지는 올리네의 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두 남매의 고통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불안과 혼돈을 겪는 인물의 내면에 보다 깊숙하게 들어가게 된다.


욘 포세는 본질적으로 형태와 내용이 서로 얽혀 있다고, 즉 내용도 본질적으로 양식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작가다. 소설 『멜랑콜리아』 에서도 반복적이고 간결한 문장, 의식의 흐름 기법 등 독특한 형식이 내용과 밀착돼 독자를 끌어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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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오노 가즈모토.다카다 아키 엮음, 이진아 옮김 / 베가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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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팬데믹을 통과하며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세계에서 철학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는 일본 PHP연구소의 오노 가즈모토와 편집부가 '신실재론'을 내세우며 주목받는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Markus Gabriel 과 진행한 인터뷰를 편집한 형태로 엮은 책이다. 이전 슬라보예 지젝이 팬데믹을 철학적으로 사유한 책을 읽은 기억도 떠올려보면서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마주해보는 시간.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마르쿠스 가브리엘

베가북스



제1장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에서는 같은 종, 즉 호모 사피엔스인 각 세계의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직면하여 동일한, 특정한 반응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바이러스 그 자체보다는 바이러스의 '표상'에 반응하고 있음을 먼저 이야기하며 시작한다. 그리고 팬데믹 이전과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여러 가지의 예로 설명하는데,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유럽에서 취해진 록다운 조치에 대한 이야기를 근대 초기의 정치철학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연결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홉스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록다운 이론인데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의 표지는 국가에 의한 폭력과 경찰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페스트가 유행했던 상황을 그린 것으로, 의사들이 페스트 감염 예방용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것이 칼 슈미트 등이 언급했던 국가의 비상사태를 가리키는 '예외적인 상태'인 것이다. 이 예외적인 상태에서는 정부, 즉 행정기관이 독재 체제로 통치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말살하는 형태의 독재가 아닌 예외적인 상태에서 국가를 위협하는 문제가 국가의 결단을 좌우하는 독재 정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놓여있는 상황이 이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가 속한 독일에서는 '독재'라는 단어가 더욱 조심스러운 터라 그는 '유럽 국가들은 위생 독재의 모델을 도입했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각 장의 말미에는 인터뷰와 별개로 저자의 칼럼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선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이 좀 더 부연 설명되어 있다. 1장의 경우 홉스의 사회계약설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의 중학 교과서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이었던 터라 더욱 관심 있게 읽었다. 


제2장 '국가와 국가의 연결' 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예외주의를 이야기하고, 미국과 독일에서 쏟아진 음모론에 대해서도 다루는 등 국제 문제를 화두로 삼아 엮는다. 음모론의 온상으로 넷플릭스의 픽션영화들을 지목하거나, 정치화되어버린 언론, 소셜 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한다. 일본에서 요청된 인터뷰다 보니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독일, 그리고 EU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일본의 상황 또한 지적하면서 나름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윤리적' 인 부분을 강조한다. 윤리적인 정치가로서 독일의 정치가 앙겔라 메르켈을 언급하기도 하고, 윤리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사회의 조건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눈다.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세계화의 신자유주의적 해석이 환경을 파괴하고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기에, 신자유주의 경제가 만들어낸 부보다도 그것이 파괴한 부가 더 컸다고 주장하며, 그렇기에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은 이제 끝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제4장 '새로운 경제활동의 연결' 의 윤리 자본주의 미래와 연결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3장 '타인과의 연결' 에서는 SNS의 심각한 문제를 풀어 해석한다. 본인이 바라지 않는 자기를 강요하는 SNS는 사람을 바꿔버린다는 지적은 크게 공감하게 되는 지점이다. '소셜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체성(Identity)을 강매해 큰돈을 벌고 있다(p174)' 라며 새로운 소셜 미디어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하고, 일본인, 독일인, 뉴요커의 커뮤니케이션을 비교하면서, 토론을 어려워하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힌트를 제안한다. 디지털 교류가 크게 보급되어 있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사회적 고립이 높아진 통계를 제시하면서, 앞으로의 공동체와 '고독'의 형태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혼자 있는 것' 과 '고독'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다양한 측면으로 '연결'과 변화에 이야기하던 저자는 마지막 제5장 '개인이 살아가는 본연의 자세' 에서 그가 '신실존주의(Neoexistentialism)'라 부르는 사고방식에 기반을 두고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생의 의미란', '신의 정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들이 글 사이에 놓인다. 



마르쿠스 가브리엘은 일본 NHK 의 프로그램 '욕망의 자본주의 2019’, ‘욕망 시대의 철학 2020’ 등을 통해 일본에서 인지도가 더욱 높아진 철학자다. 



일본  NHK, 욕망 시대의 철학 2020


그가 『지나치게 연결된 사회』 5장에 걸쳐 이야기하는 '연결'에 관련된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 듯하다.  '사람과 바이러스의 연결' , '국가와 국가의 연결',  '개인과 개인 사이의 연결' 이다. 이 세 가지에 관한 철학자로서의 견해를 마주하고, 그가 예견하는 윤리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다 보니 그의 다른 책들이 저절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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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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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친치아 기글리아노 그림의  「나는 비비안의 사진기」 란 그림책을 만났었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어보며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에 대해 함께 찾아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아이가 좋아했던 「신비한TV 서프라이즈」 라는 프로그램에서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녀석이 아는 사람이라며 좋아하기도 했었다. 


비비안 마이어란 인물에 대해서는 이렇게 짤막한 단편 지식으로 알기는 했었으나 막상 그녀의 작품을 감상해볼 기회는 없었다. 여러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잘 알려진 사진들만 보고 그렇게 호기심을 접었었다. 그러다 이번 「비비안 마이어」 란 '공인된 최초의 전기' 라는 책을 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북하우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윌스트리트 저널」의 최고 마케팅 경영자로 일해왔던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해온 자신의 경력을 활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생애를 둘러싼 비밀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14만 장에 이르는 비비안 마이어의 아카이브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허락받고, 특유의 끈질김과 인내를 발휘하여 이 책의 집필의 기초를 마련한다.



덕분에 하드커버로 480여쪽에 이르는 이 책  「비비안 마이어」 에는 미출간 작품을 포함한 400여점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책 뒷부분에 정리된 찾아보기를 통해 비비언 마이어에 대한 키워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저자가 참조한 방대한 분량의 참고 문헌 또한 수록되어 있다. ( 수록된 도판에 대한 찾아보기까지 제공되었으면 완벽한데! 아쉽게도 제공되지는 않는다. ) 





저자는 비비안 마이어의 유년기, 뉴욕에서 보낸 십대 시절을 서술하고, 프랑스와 뉴욕에서의 초기 작품들과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함께 보여준다. 비비안이 사진 교실에 다녔다거나 정규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뉴욕에 있는 동안 사진계와 교류하려고 노력하는 등, 실제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을 관찰하고 끊임없이 연습하면서 기술을 습득한 걸로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비비안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조건을 포착하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로 비비안을 설명하고는 한다.'(p142) 라고 말한다. 



비비안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타인과 함께하는 능력을 발전 시키지 못하고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작업에서 만큼은 인간의 애정을 예리하고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초기 작품의 뮤즈였던, 자신이 돌보았던 조앤과 그 가족을 떠났을 때의 일화는 그녀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여러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면서, 비비안 스스로도 '자신이 따뜻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뉴욕의 뮤즈, 1952년



비비안의 강박적 '저장 장애' 에 대한 이야기도 안타깝다. 어린 시절에 좌절과 분열을 경험한 사람은 정체성 문제와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다 통제감을 얻기 위해 저장 장애가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은 흔히 사람을 신뢰하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문제가 생기며, 감정의 깊은 공허함을 채우려고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집착할 수 있다.'(p265) 라고! 비비안이 보모로 일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비비안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의 주제와 기술은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 피사체를 조금 덜 보여주는 방식' 이다. '패턴을 인지하고, 공간을 배열하고 구성하며, 프레임 안에서 빛과 움직임을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는 능력'(p270)을 타고났다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비비안의 사진에서 배경으로 작용했던 사회문제에 대한 부분 또한 흥미로운 주제였다. '비비안은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포괄적이고 본질적으로 고민한 것'(p307) 같다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한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권리향상,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립과 사회정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인종 관계, 뉴욕



비비안의 자화상 사진의 변화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더라도 그녀에게 중요한,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된 아이템을 사진에 담은 오래된 습관에서 그녀의 인생을 유추해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게 사진을 남기는 일상은 마치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는 일상 모습과 같아서 친근감이 들면서, 나도 그녀처럼 기록을 남기도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 사실 나도 일종의 기록광, 어쩌면 저장장애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지라.. ) 그녀가 셀피(Selfie)의 원조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컬러 자화상, 시카고, 1970년대 중후반



그림자 자아, 시카고, 1967~1968년


마침 일하는 곳 근처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터라 곧 방문 예정이다.  「비비안 마이어」를 읽으며 비비안의 생애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녀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도 알아갈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책 속에 수록된 사진 중 관심이 가던 작품을 실제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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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보통날의 그림책 2
칼릴 지브란 지음, 안나 피롤리 그림, 정회성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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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를 만나고 나서 온라인에 발췌해놓고, 벽에 붙여놓았던 글이 있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 )」 에 나오는 '아이들' 에 관한 글이다. 당시 류시화 시인의 번역으로 읽었었는데,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로 시작하는 시는 아이를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리라는 내 다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주되 영혼의 집까지 주려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들이 꿈에서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 시를 멋진 일러스트와 함께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사랑, 결혼, 선과 악, 일, 자유 등의 삶의 근원적인 주제에 대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전하는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  「예언자」 가 아이들 눈높이 맞춘 그림책으로 나왔다. 한 페이지,한 페이지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다. 




예언자

The Prophet

칼릴 지브란 지음, 안나 피롤리 그림

보통날의 그림책 - 02

책 읽는 곰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는 두 줄의 프레임이 그려진 페이지에 제목과 발췌된 텍스트가 놓인다. 프롤로그처럼 진행되는 처음의 이야기는 가상의 도시 오르펠리스에서 12년간 머무르며 고향으로 데려다줄 배를 기다리던 예언자 알 무스타파가 주민들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시작된다. 



모든 주민이 작별을 아쉬워하는 가운데 떠나기 전 한 가지 부탁이라며 그가 깨달은 진리를 들려달라고 청한다. 그에게 들은 진리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아이들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전할 테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면서 말이다. 처음의 시작은 '사랑' 에 대하여, 이어 '결혼' 에 대하여 이어지는 질문은 다른 이들의 '아이들', '나눔', '기쁨과 슬픔', '옷', '사고파는 일', '죄와 벌', '자유', '이성과 열정', '우정', '쾌락', '작별' 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언자(The Prophet )」 원문은 스물 여섯가지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림책에는 아이들과 이야기해볼 수 있는 열 세가지의 주제가 담겨있다. 



안나 피롤리 (Anna Pirolli)






일러스트레이터인 안나 피롤리 (Anna Pirolli) 는 이전 다비드 칼리와 작업했던 「난 고양이가 싫어요」 란 그림책에서 만나본 적이 있는데, 이번 그림책의 일러스트는 붉은 색을 주조로 한 선명한 색감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낸 터라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전 책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림을 먼저 보고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인지를 짐작해본다. 해와 달, 빛과 어둠. 이 장면은 '기쁨과 슬픔' 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대들은 슬픔과 기쁨 사이에 저울추처럼 매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비어 있을 때만 평온한 가운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p20)





'죄와 벌' 에 관한 일러스트를 보자. 개인적으로 이 그림은 일러스트만으로는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텍스트를 읽고 나서야 시 속의 '나무 전체의 묵인 없이는 잎사귀 하나도 노랗게 물들지 못합니다'(p27) 란 문장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텍스트가 놓인 옆 페이지에서 나무 주변의 붉은 색 옷을 입은 사람들을 노란 옷을 입은 이가 쳐다보고 있다는 것도 놓치지 마시길. 




이 그림책은 '보통날의 그림책'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의 전 연령을 아우르는 그림책을 엄선하여 독자에게 선보이는 시리즈다. 그렇기에 아이도, 함께 읽는 어른도 저마다의 느낌으로 책을 감상하게 된다.   



「예언자(The Prophet )」 는 1923년 뉴욕 크노프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차례도 절판되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놀랍다. 순수한 문학서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철학적이고 순수한 철학서로 보기엔 너무나도 문학적이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인 칼릴 지브란이 짧은 생을 통해 추구했던 것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영성과 물질주의, 동양과 서양의 화해였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를 모태 신앙으로 하여 성경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지만, 이슬람교나 그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즘으로부터도 많은 영향 받았다. 그는 여성의 억압이나 교회의 폭정에 분노했고, 당시 서아시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자유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의 그러한 행적 때문에 한때 이슬람 사회에서는 칼릴 지브란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우기도 했다. 



그림작가가 해석해 낸 또 다른 이미지를 만나는 시간이기에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칼릴 지브란의 시는 더욱 새로운 방향의 생각들을 이끌어 온다. 오랜 만에 만난  「예언자」 의 문장은 더욱 좋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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