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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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문명」 에 이은 고양이 시리즈 「행성」 시리즈를 읽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세계로 오랫만에 초대되어 즐겁다. 인간 이외의 존재를 통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해왔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작품 속에 늘 등장해왔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또한 이야기의 중간마다 존재감을 뽐낸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은 어느새 확장판까지 나왔으며, ESRAE (Encyclopé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Etendue) 란 이름으로 「행성」 에서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웰즈 가문의 인물들 또한 등장한다. 이번에는 로망 웰즈 교수가 등장한다. 작가의 팬들에게는 익숙한 설정이지만 새로운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갈 수도 있으려나.





행성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열린책들



전작 「문명」(Sa majesté des chats, 2019) 에서 프랑스 시뉴섬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던 고양이 바스테드와 그 일행들은 「행성」 에서 미국에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야기 초반의 등장인물(동물?) 들이 전작에서 이어지는 터라 자세한 소개 없이 곧바로 사건으로 진입하고, 몇몇 캐릭터들은 초반에 사망하기도 한다. 이 책으로 <고양이 시리즈>를 시작한 독자라면 살짝 허망하기도 할 듯. 



미국은 <프로메테우스> 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쥐의 간을 공격해 파괴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개발했지만, 이내 쥐들은 바이러스에 대처할 방법을 찾았다. 결국 사람들은 고층 빌딩으로 몸을 피한 뒤 1층에서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모두 박아 지상과의 연결을 원천 차단한다. 그렇게 미국에서는 공중 생활을 하는 인간 공동체가 탄생하게 되었다. 힘겹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으나 배 위에서 쥐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던 바스테드 일행들은 맨하튼의 고층 빌딩에 사는 이들에게 구조된다. 이곳의 공중 세계는 집라인을 설치해 타워마다 자리 잡은 공동체 간에 교류가 가능하다. 도르래 장치에 매달린 의자를 타고 빌딩간을 이동해 다닌다. 그 외에 자율 비행이 가능한 드론을 활용한 수송 시스템을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주식은 쥐다. 빌딩의 아래층에는 버섯도 재배하고 지붕에서는 소량이지만 과일과 채소농사도 짓는다. 전력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으로 해결하고 빗물을 물탱크에 받아서 쓰고 있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바스테드는 '무서운 번식 속도와 놀라운 진화 능력을 보여주는 한 동물 종의 침략을 받고 이곳에 쫓겨 와 있는 현실(p146)' 을 슬퍼한다. 



미국의 공동체는 유럽처럼 무종교인 대 종교인, 가난한 자들 대 부자들의 대결로 내전이 벌어진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다양한 공동체 간에 동시다발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들은 이것을 <부족 전쟁>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현재는 101인의 부족 대표단이 모여 회의에서 다수결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 이들은 의장을 선출하며, 현재의 의장은 힐러리 클린턴. ( 맞다. 우리가 알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이다. ) 바스테드가 나중에 힐러리 클린턴과 부딪히며 의견대립을 할 때, 그녀에 대해 쏟아놓는 평가는 신랄하다. 



이렇듯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실존 인물들을 교묘하게 이야기 속에 등장시킨다. 책 이야기를 종종 나누는 회사 동료 중에 찰스 부코스키를 언급하며 자신의 이루지 못한(?) 이상형이라며 농담을 하고는 했었는데, 당시 작가의 마초성(?)에 대하여 나름 치열하게 대화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스테드가 미국에 와서 만난 고양이의 이름이 부코스키라는 것을 읽으며 웃음을 터뜨린 이유다. 



주인공 바스테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여러 평가들을 읽다보면 조금씩 뜨끔하게 되는 부분들을 만난다. 어찌보면 제 3의 눈을 통해 지식을 쌓은 바스테드 자체가 동물에서 인간화된 것은 아닌가 싶은 순간도 있다. 


문득 인간이란 존재의 문제가 뭔지 알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을 행복보다 불행을 위해 쓴다. 인간들은 신이라는 것을 상상해 만들어 내고 그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서슴없이 죽인다. 인간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바람을 피운다고 상상하고 그 사람과 헤어진다. 훌쩍거리는 집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커플끼리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종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오랜 세월 영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 p124




미국 쥐들의 대장은 알카포네라는 이름의 쥐다. 유럽의 쥐보다 덩치가 큰 종이다. 이 쥐들은 고층 건물의 아래층을 이로 갉아 무너뜨리고 만다. 동화 <아기돼지 3형제>에서 가장 튼튼한 집은 벽돌집이었건만, 현실 속 벽돌집 같은 곳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쥐들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불을 다룰 줄 알았던 전작 「문명」 의 빌런 티무르마저 미국에 도착하여 알카포네와 연합을 이루고야 만다. 



바스테드는 인간 부족들의 앞에 나서 자신이 이 상황을 해결할 아이디어가 있다고 말하며, 이에 대한 대가로 103번째 부족의 대표자격을 달라고 주장한다. 고양이들을 새로운 부족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고양이 바스테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과대망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고양이라는 평을 받곤 하는 바스테드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조금씩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서 변화해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바스테드는 현재 인간의 역사를 통해 '독재'에 대한 흥미를 내비치는 중이다. 



내가 전투에 임하는 자세를 봐서 알겠지만 나는 <순한 고양이>가 아니에요. 효율을 추구하는 고양이죠. 나에 대한 판단은 후대가 내릴 거예요.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작은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단이 요구되는 야심 찬 계획을 가진 사람들보다 착해 보이긴 하겠죠. (.. 중략)


최악의 독재자들은 대부분 천수를 누린 뒤 사랑하는 가족과 헌신적인 시종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생을 마감한 반면, 개혁가들은 제거되거나 처형되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는 강한 지도자로 사람들 위에 군림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p239~241



이후 인간의 102개 부족( 이야기 중반에 기갑 여단 장병들이 102번째 부족으로 합류했다 ) 의 총회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계속 싸워대는 것을 보며 바스테드는 인간들은 오로지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반박한다라고 말하며, 남과 다른 점으로 자신을 정의하려고 하지 공통점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이렇게 <앞뒤가 막힌>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시각을 확장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2권에서의 바스테드의 변화가 더욱 궁금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서둘러 다음 권을 펼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몰랐던 지식들을 서술하고, 주인공들은 물론 함께 읽는 독자들도 그 지식들을 통해 변화하도록 이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지식들과 관련된 사건과 모험 요소, 그리고 상상력들이 덧붙여지면서 흥미로운 서사들을 완성한다. 이번 권에서 나는 '오스카, 비스마르크의 고양이' 에 대한 토막 지식이 재미있었다. '언싱커블 캣 샘(Unsinkable Sam)' 혹은 불침묘 샘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제공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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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 개론 - 실무에서 통하는 UX 기본기 다지기
앙투안 비조노 지음, 백남지 옮김 / 유엑스리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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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에서 언급되는 UX 개념, 그리고 적용되는 이론이나 방법론은 매우 다양함에도, 일을 통해 익혀나가다보면 경험해봤던 것들만 주로 떠올리게 되는 듯 하다. UX 에 관련된 키워드를 떠올려보자. 디자인 씽킹, 페르소나, 애자일, 스크럼, 린 스타트업, 디자인 스프린트.. 등등 여러가지가 엮인다. 분명 들어봤었는데 '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더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 나는 이 책을 넘겨본다. 제목 그대로 UX 실무의 기초적이고 중요한 개념을 입문자 눈높이에서 정리해놓은 책이다.

실무에서 통하는 UX 기본기 다지기

앙투안 비조노

유엑스리뷰

최근 시작된 프로젝트는 워터폴 방법론을 벗어나기로 했다. 팀원들은 스크럼으로 가야한다느니, 린 스타트업으로 가야 한다느니 방법론에서부터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애자일 방법론 중 가장 잘 알려진 모델인 스크럼은 '애자일 선언문'에서 정립한 개념으로 인간중심적 사고와 프로젝트의 결과를 중시하며 불확실성을 염두에 둔다. 단어는 본래 럭비 용어로, 여럿이 팔을 바짝 끼고 횡대를 이루어 상대편과 밀치락달치락 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용어다. 처음부터 제품의 모든 기능을 세밀하게 설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에, 한정적인 기능만 탑재한 첫 번째 버전을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사용자의 평가를 반영하고, 그 후 개발을 진행하면서 사용자의 실질적 욕구에 맞춰 제품을 수정해나가는 방법이다.

스크럼은 프로세스의 경험적 관리, 즉 경험주의에 기초한 이론이다. 경험주의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며, 익히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꺠달음을 얻는다고 믿는 것이다. 스크럼은 반복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법으로 예측성을 확보하고 리스크를 통제하는 데 유용하다.

- 스크럼 가이드 중에서

애자일 프로젝트는 여러 개의 스프린트로 구성된다. 스프린트는 하나의 개발 주기로,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2~4주간 진행된다. 요구사항인 스프린트 백로그는 스프린트 중에 수정할 수 없으며, 기존의 작업 지시서가 없어 사용자의 요구를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리스크도 있다.

린 스타트업은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최소 기능 제품(MVP, )을 개발한다. 결함이 없는 완벽한 제품, 모든 기능이 구현된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학습 과정에 꼭 필요한 요소로, 제품 기획자가 시장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p72)

IT 업계는 그동안 제품이 실제 효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해왔는데 이러한 접근법을 '저스트 인 케이스 ', 즉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방식이라고 부른다. 고객에게 유용할지도 모르는 기능을 일단 개발해두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인터페이스가 복잡해지거나 제품 사용이 어려워지는 등 사용자의 '인지적인 노력' 이 요구되는 문제점이 있다. ( 매우 공감되는 지적이다. ) 이제는 비용과 복잡성을 줄이고 '저스트 인 타임 ', 즉 사용자의 요구가 파악되는 '정확한 때'에 기능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후 「UX 개론」에서는 린 스타트업을 위한 도구인 린 캔버스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Part1 에서 UX 실무를 위한 주요 방법론을 풀어낸 후, Part2 에서는 좋은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한 여러가지 기법들을 정리해놓고 있다. 사용자의 요구란 무엇인지,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페르소나'와 연결해보는 접근법이나 '기회/해결책나무' 라는 접근법을 설명한다. 그리고 상호작용에 대한 여러 이론을 언급하고 인간의 지각 시스템이나 인지 시스템, 그리고 운동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법을 요약한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고려한 최적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 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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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산만함의 시대, 우리의 뇌가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
리사 이오띠 지음, 이소영 옮김 / 미래의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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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점점 덜 사회적이 되고 점점 더 주의가 산만해지며, 우리가 누구인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행동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후손들에게 물려줄 지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대해 점점 더 신경쓰지 않는다. 기억도 없고 관심도 없고 고개를 들 능력도 없으며 더 이상 인내심도, 심지어 미소도 없는 우리는 어떻게 될까? (p21)



8초 인류

산만함의 시대, 우리의 뇌가 8초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

8 secondi

리사 이오띠(Lisa Iotti)

미래의 창



픽션의 내러티브 형식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TV 장르인 다큐픽션 및 탐사보도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 리사 이오띠는 디지털 기기의 남용과 디지털 집착의 위협에 대하여 정신적인 측면과 신체적인 측면에 대하여 골고루 살피며, 자신의 호기심을 풀기 위한 여정을 이 책  「8초 인류」 에 담는다. 자신의 개인적인 일화를 내보이며 운을 떼고, 일화에서 건져낸 주제에 대하여 관련된 자료를 찾아 읽거나 전문가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풀어낸다. 복잡한 이론제시나 실험결과를 통한 논증이 담긴 무거운(?) 전문서라기보다는 살짝 진중한(?) 칼럼을 읽는 느낌의 책이랄까.


개인적 일화에 대한 서술은 정경이나 심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 덕분에 얼핏 에세이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저자는 로마의 한 카페에서 모든 이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 의 횡포를 경험한다. 마주한 상대보다 페이스북 알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더 이상 결례로 인식되지 않는다거나, 아무 거리낌없이 삶을 전시하는 이들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 삼가함의 미덕을 없앴고 그와 함께 수치심도 사라지게 만들었다.(p32) "



이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인터넷 연결에 대한 기사들과 책으로부터 면전에 있는 사람을 배제하거나 무시한 채 스마트폰을 보는 행동을 나타내는 새로운 표현을 발견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전화Phone 와 무시Snubbing 을 조합한 '퍼빙phubbing' 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퍼빙은 "사회적 배제의 한 형태"로, 퍼빙을 당할 때 "소속감, 자존감, 성취감 및 조절능력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위협"할 수 있다. 이 퍼빙의 영향이 궁금해져서 좀 더 찾아보니 이에 대한 많은 후속 연구들과 기사들이 검색되어 한참을 인터넷에 머무르게 되기도 했다. 


모바일 기기가 우리에게 단순한 디지털 장치를 넘어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고 삶을 더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때론 그 무언가는 플라시보 효과를 주는 가짜약이거나 잘 때 끌어안고 자는 애착인형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통해 우리의 뇌에서 활성화 되는 영역은 약물을 복용할 때와 동일하다. 이 영역은 중독에 관련된 영역이기도 하다. 게시물에 단순히 하트나 '엄지척'을 누른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에 대한 저자의 사색은 어느새 거대한 신경과학 실험실 안으로 이동하고,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읽거나 관련된 전문가들을 만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는 상호 작용을 좋아하고,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며, 우리를 사랑하는(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 사람들을 사랑한다. '좋아요' 를 눌러주는 사람에게는 '좋아요'로 보답한다. 그것이 서로 친구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 상호성의 원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 그리고 우정, 사랑, 즐거움의 놀라운 보물상자인 이 도파민 고리( 이것을 사로잡은 것이 모든 뉴로 마케팅의 꿈이다 )는 너무나 간단하게 버튼 하나로 활성화된다. '좋아요' 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뇌는 그것을 사회적 보상으로 받아들여 도파민 시스템을 활성화시키고 우리가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부추긴다. 이 고리는 무한히 자가재생되며 반복된다. 


- 「8초인류」, 5장 '좋아요', p177



'쾌락의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동일한 자극을 주목하고 강화하는 일부 물질이 방출되며, 쾌락의 경험은 기억에 고정되어 특정 경험과 관련된 즐거움을 기억하고, 뇌는 그 경험이 반복되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도파민을 방출한다' 라는 요약은 얼마 전 읽은 「도파민네이션」 이라는 책의 내용과 맞물리기도 했다.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p65)' 디지털 기기가 우리의 집중력을 어떻게 흐트러뜨렸는지 조목조목 짚어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나와 내 주변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만성적으로 산만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사회는 이를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 「8초인류」, 2장 '8초의 집중력',  p77




멀티태스킹에 강하다고 주장해왔던 나로서는, 멀티태스킹을 많이 할수록 중요하지 않은 것과 중요한 것을 분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실험결과를 보며 힘이 빠졌다. 사소한 일에 맞게 머리를 단련시켰고 그 결과는 사고의 뒤죽박죽이 된 것이란다. 멀티태스킹은 집중력 상실과 외부 자극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대신 도파민 중독을 만들어 뇌에 효과적으로 보상한다고!! ( 난 도파민 중독이었던가!!. )


저자가 인용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익스플레인, 뇌를 해설하다 The Mind, Explained > 도 찾아 보고 싶게 한다. 다큐 속에서 나온 사자를 만난 멧돼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스마트폰 알람으로 긴장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빗대어 이야기한다. 이어 저자는 철학자 한병철의 문장을 발췌하고, 보르헤스의 소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를 통해 디지털 소화불량에 대해 이야기하며 더욱 책에 몰입하게 한다. 



기술의 참회자(whistleblowers) 라는 단어와 그들과의 인터뷰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의 디지털 집착에 주요 책임이 있는 실리콘 밸리의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들의 사람들, 즉 우리의 뇌를 빨아들이고 우리를 스마트폰에 달라붙어 있게 만들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은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플레이스테이션도 없는 '사원 같은 학교'(p162)에 보내고 있다는 아이러니 또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캐서린 프라이스는 「스마트폰과 헤어지는 법」 에서 스마트폰은 '역기능적 관계에 있는 전형적인 파트너로, 나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나를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라고 했다. 저자는 이를 '약간의 쾌락이 깃들어 있는 자해' 라고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저자는 '장기적인 보상을 선택하고 단기적인 보상을 포기하도록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라는 말을 인용하며 우리가 다시 삶의 통제권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보여주기 식이 된 과잉연결의 세상에서 나 자신의 균형과 정신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를 생각해보게도 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해결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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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아지는 책
워리 라인스 지음, 최지원 옮김 / 허밍버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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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시리즈 김은주 작가와 「나라는 식물을 키워보기로 했다」 에서 콜라보 작업을 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워리 라인스. 성별, 인종, 나이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심플한 라인과 채색으로 그려낸 통찰력있는 일러스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글과 그림을 엮은 그림책이자 그림 에세이  「기분 좋아지는 책」 을 독자 앞에 슬며시 내민다. 




기분 좋아지는 책

워리 라인스 지음 / 최지원 옮김

허밍버드



그림책을 펼치면 검정색 선으로 그려진 흰색 인물이 자신이 작가인 '워리 라인스' 라고 밝힌다. 그 옆에는 '희망이' 란 이름의 노랑색 인물이 밝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인사한다. 페이지를 넘기면 '걱정이'란 이름의 파랑색 인물이 등장한다. 이 세 명이 작가가 '당신에게 바치는' 즉, 독자에게 바치는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인터넷이 아닌 책으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작가의 치열한 노력이 이 책  「기분 좋아지는 책」 에 담겼다. 작가의 출간 프로젝트 기록인 셈이다. 늘 작가의 창의력을 마비시키는 근원이었다는 '불안'은 이번 출간 프로젝트에서도 덮쳐온다. 작가는 심리상담사의 조언대로 이 불안감을 형상화하여 의인화를 시켜보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 속에 '걱정이' 가 태어났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워리 라인스는 걱정이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간다. 



책을 구상하는 초반부터 걱정이는 온갖 걱정을 늘어놓는다. 기회에는 절망과 좌절이 뒤따른다느니, 네가 쓴 책을 읽고 할 사람이 존재하겠냐느니 딴지를 걸어댄다. 워리 라인스는 우선 [헌사 목록]부터 작성하기로 한다. ' 이 책을 당신에게 바칩니다 ' 라는 녹색 테두리의 페이지들에는 용감한 걱정꾼에서부터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 나일지도 )에게도, 깜빡깜빡하는 사람( 또 나일지도? ) 들이 소환되어 있다. 단순한 라인의 일러스트로 그려진 인물의 유머스러운 몸짓과  곁들여진 위트있는 단어들에 웃음이 터진다. 



 


걱정이와 계속 대결하는 워리 라인스. 걱정이는 작가의 [생각에 관한 그림] 원고를 살펴봐주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파란색 테두리의 페이지에 그려진 일러스트들이다. 인스타의 한 컷에 올라와있음직한 일러스트들이 한 페이지씩 펼쳐진다. 한 페이지마다 그려진 '생각에 관한 그림' 들에는 각자의 제목들 또한 붙어있다. '생각의 생태계'란 제목의 페이지는 의식적 사고와 무의식적 사고를 표현하고 있는데, 매우 공감이 되는 한 컷이라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번에는 빨강 테두리의 페이지에 [감정에 관한 그림] 이 이어진다. '일어나서, 옷을 입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감에 빠진다' 란 문장의 페이지에서 헛웃음 한번 짓고, '좁아지는 시야' 란 제목의 페이지의 터널 속 장면에서 쓴웃음을 지어보게 되기도 한다. 내게도 이른바 '웃픈' 장면들로 다가오는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갈피를 못잡는 워리 라인스. ( 물론 걱정이가 갈피를 못잡는 것이겠지만 )에게 파랑 테두리 페이지의 [걱정에 관한 그림] 을 그린 노트가 열린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자각하고, 존재적 불안에 압도당하기' 라거나, 걱정에 관한 네 가지 선택지는 '싸운다'(빨강) 거나 '도망친다'(노랑) 거나 '얼어붙는다'(파랑) 거나 이 세가지 색을 모두 포함한 일러스트의 '지랄발광한다' 라는 생각.  걱정에 관한 그림을 보며 걱정이는 매우 좋아한다. 워리 라인스가 네가 좋아서 그린 게 아니라 어떻게든 널 없애고 싶어서 연구해본 거라는 말에 잠깐 의기소침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활기를 되찾는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걱정이 넌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까!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 


p135




작가가 걱정이와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어느새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다. 드디어 [공감에 관한 페이지] 는 걱정이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그런데 그때 등장하는 커다란 검정 인영(人影). 그건 지구상에서 완전히 멸종된 종족인 줄 알았던 '독자'!!!! ( 나도 언제 멸종했었던가? ) "조심해야 해. 독자는 눈으로 이야기를 빨아들이는 희귀종이라고 들었어." 라고 서로 속삭이며 독자를 신경쓰던 그들은 슬쩍 [사랑에 관한 그림] , [희망에 관한 그림] 을 내민다. 그리고 첫 페이지 이후 실종된 희망이를 함께 찾아줄 수 있겠느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작가는 고백한다.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불안과 걱정에 대해 듣고, 독자들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게 조금은 쉬워졌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


혹시 저처럼 가끔씩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저 몇 페이지 뒤에 가있는 것 뿐이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아. 이 한 문장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책의 제목이 완성된 순간이다. 독자로서의 내게 「기분이 좋아지는 책」 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생각과 감정, 걱정, 공감에 대한 삶의 모습을 위트있는 일러스트와 희망찬 나레이션으로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에 매료되버리게 되기도 한다. 작가의 이야기는 어느새 내 이야기가 되어 작가와 차 한잔 앞에 두고 수다를 떨며 후련하게 감정을 털어낸 기분이다. 작가가 '당신을 위한 책(This book is for you)' 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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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디자인 씽킹 수업 - 비즈니스를 위한 전략적 디자인
이드리스 무티 지음, 현호영 옮김 / 유엑스리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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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모델이나 신제품의 개발,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경영전략의 하나로 우수성이 입증된 디자인 씽킹에 대하여 저자는 비즈니스와 디자인의 교집합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포괄적인 개념보다는 컨설팅 측면에서 실제 적용될 방법론적 절차(프로세스)를 먼저 접했다. 아이데오(IDEO)의 6단계 디자인씽킹 프로세스, 스탠포드대학교 D스쿨의 5단계 디자인씽킹 프로세스 등 4~7단계로 제시되는 프로세스를 테일러링하고, 이에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기반의 절차 등이 함께 적용된 프로세스를 실무에 적용해보며 사람의 '니즈'를 깊이 '공감'하여 비즈니스화 하는 방법론이자 도구라고 배웠다. 이는 이성보다는 감성, 분석보다는 공감에 가까우며 고객의 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와 니즈를 포착하여 반복적 실행을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라고 외웠다. ( 이해한 것이 아니라 외웠다.. 라는 것이 포인트... )

이렇게 막연하게 아이디어 발상법이나 디자인 과정 혹은 도구로서만 이해했던 디자인 씽킹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더욱 폭넓게 다시 이해하게 되는 중이다.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스쿨이 기업 경영자들을 위해 개설한 디자인 씽킹 프로그램을 책으로 배울 수 있도록 재구성한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디자인 씽킹은 비즈니스와 예술, 시스템과 혼란, 직관과 논리, 콘셉트와 실행, 재미와 형식, 그리고 통제와 권한 사이에서 마법과 같은 균형을 찾아내는 것'(p66) 이기에 전략적 혁신에 대한 인간 중심 접근법의 프레임워크라고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 프로세스보다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면한 역동성과 불확실성을 해결하는 프레임워크, 업무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비즈니스 디자인' 이란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에 없는 미래의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것과 기존의 비즈니스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리디자인하는 것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기존에는 통계적 접근이나 재무적 지표를 통해 비즈니스 현안에 접근했다면, 디자인 씽킹에서는 고객의 '경험'을 중심으로 대상을 파악한다. 이는 사용자 경험 분석에 관한 학습과 경험이 축적되면 더욱 좋다고.

1장과 2장에서 디자인 씽킹에 대해 풀어 소개한 후, 3장에서 경영 전략으로서의 디자인 씽킹을 상세히 풀어내는데, 디자인 씽킹 활용에 필요한 비즈니스와의 교차점과 디자인과 비즈니스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생각의 기준점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내용은 직관적이고, 내용을 담고 있는 페이지의 편집은 감각적이라 더욱 눈에 들어오며 집중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디자인 씽킹 솔루션을 비즈니스의 도전과 연결시킨 4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비즈니스 도전과제로서의 '표준화' 를 디자인 씽킹 솔루션에서 '인간화' 로 매핑한다. 이 '표준화'란 것은 효율화를 추구하는 대신 자칫 혁신의 적이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하는 부분이지 않던가. "인간다움의 본질은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조지 오웰의 말을 인용하며 '디자인 씽킹을 하는 이들은 회사나 파트너, 브랜드 대표, 그리고 최종 고객과 상의하는 방식으로 제품/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이 서로 대화하도록 장려'해야한다고 설명한다. 디자인 씽커들은, 제품 혹은 서비스나 브랜드의 결과로 나타나는 심오한 순간으로, 그러한 감정들을 격려하고 키우는 사람의 손길이 닿는 지점에도 민감해야 한다고 전한다. 훌륭한 디자인은 고객경험에 있어 더욱 부드럽고 인간적이며 감성적인 측면들에 유리하도록 표준화를 거부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조직에 디자인 씽킹문화를 구축하는 방법을 풀어낸다. 이를 위해 우선 전략과 기획이 무엇이 다른지 여러 측면으로 설명하면서 다양한 사례를 들며 서두를 열고, 현재의 문제점과 여러가지 미래의 도전과제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디자인 씽킹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여, 장기적 기획에 디자인 씽킹 방법론을 적용하는 법, 비즈니스의 핵심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씽킹 전략 등에 대한 힌트가 필요한 이들에게 권해보게 되는 책이다. 조직들이 디자인의 원리들을 내재화하는 법을 실용적으로 설명하여 전통적으로 일하는 방식 뒤에 숨겨져 있던 기회에 대한 인사이트를 갖게 해주는 등, '디자인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디자인 씽킹 기반 비즈니스 혁신의 주도자'로 이끄는 책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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