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 외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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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정무역은 1950년대 말 미국 텐사우전빌리지를 시작으로 1960년대 유럽에서 본격화되고,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시장의 확대 및 국가간 긴밀한 연대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전세계적으로 공정무역의 홍보와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일어났다. 현재는 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선포하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상품과 그 취지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슈퍼마켓과 같은 일반 유통 시장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전체 무역거래의 총량으로만 본다면 아직 적은 거래량(2005년 기준 전체 무역의 0.01%를 차지함)이지만, 공정무역의 가장 큰 시장인 유럽과 미국에서 FLO(공정무역 라벨 상품)라벨 상품의 소비증가율은 두 자리수에 달한다. 즉, 새로운 시장, 새로운 시작으로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며, 또한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던 만큼, 이 책을 접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다. 물론 내 반가움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빼앗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책으로 돌아가 보자.

공정무역이란 정보와 기술력, 유통에 있어 이미 소외되어온 생산자에게 거래의 투명성과 존중, 공정한 무역 조건을 제공하여 지속가능한 생산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무역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 공정무역 기구, 자원 봉사자와 활동가들, 적극적 소비자들, 심지어는 비윤리적 무역의 주체인 다국적 기업들의 역할마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낼 힘을 지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주목했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책에서 매우 자주 읽을 수 있듯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보니 공정무역으로 수혜받는 사람들이 생겼더라, 혹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더라, 보기 좋더라,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었더라, 유럽은 소비자 인식이 우리보다 높더라, 그래서 부럽더라, 공정무역총회에 참석하고 이런 일정들을 수행했다, 어떤 단체의 누구와 만났다, 정도에 500쪽에 가까운 지면을 할애했어야 했을까? 저자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책으로, 좀더 엄밀히 이렇게 쓰여진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잘 보여줄 수 있었는지 적어도 나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즐겨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었기에 공정하지 못한 무역이라고 하는가. 밥값에 버금가는 가격을 치르며 구매하는 소비자 가격에 어떤 간섭이 있길래 커피재배 농가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아이들도 노동에 참여해야 하는지, 꽤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쵸콜릿에는 무슨 문제가 있길래 카카오 농가는 점점 대규모 플렌테이션으로 대체되고, 자작농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며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인지, 한 장에 몇 만원을 호가하는 티셔츠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 어째서 인도의 목화 농가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런 궁금함 뒤에 숨어 있었던 의혹들이 해소되면 당연히 폭력적 무역구조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가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대안이 제시될 것이다. 또한 대안으로 제시된 공정무역의 성과가 아직은 미약하더라도 명쾌하게 제시된다면 소비자는 일회적 자선이 아닌 적극적 소비자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비자를 변하게 하는 시장적인 접근은 필수사항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낭만적인(?) 한 편의 기행문을 읽으며, 나는 저자가, 또한 이 책의 편집자가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출판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저자 본인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 책 먼저 출간하는 일이 옳은가. 물론 저자는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마친 한 개인으로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진정성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안쓰러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공정무역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간된 책에는 현지에서 찍은 조악한 사진자료를 아무런 감수도 하지 않은 듯 사용하고, 저자가 여행한 시점에는 사용되었더라도 현재는 쓰이지 않는 단체명(2009년 IFAT는 WFTO로 변경되었다)을 고집해서 사용할 이유가 있었다면, 최소한의 설명으로 혼동을 막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교체되고 있는 FTO로고도 계속 옛날의 것을 고집하고 싶었다면, 최소한 현재 교체되고 있는 로고를 삽입할 정도의 성실함은 왜 찾아 볼 수 없는 것인가.  

물론 나의 불편함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왕 [한국공정무역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그것이 한국공정무역을 대표하는 것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컨텐츠를 포함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인 자료들은 국제공정무역기구(WFTO)를 비롯해 영국공정무역연합, 미국공정무역연합 등의 홈페이지를 참고했더라고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문제다. 

커피 가격을 1달러라고 상정하면,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8센트다.(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즉, 소비자 가격의 10% 미치지 못한다. 50% 정도는 중간상과 다국적 기업에 돌아간다. 나머지는 소매상과 생산국의 세금등으로 흡수된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철저히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채널을 차단하는 다국적기업의 노력때문이었다. 국제무역기구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은 이 비밀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질 좋은 커피를 공정한 가격으로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공정무역기구들은 중간상을 배제하여 유통 구조를 최소화하고, 국제시장에서 커피 최저가격을 책정해 놓음으로써, 생산량 증가로 가격 폭락이 오더라도 생산자에게 돌아갈 위험을 최소화 시켰다. 그리고 제품의 질을 유지하는 일에 힘썼다. 소비자들은 점점 공정무역 제품에 신뢰를 보냈다. 시장에서 공정무역상품은 제품 자체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 선호된다는 것, 그것은 공정무역의 청신호이자, 공정무역이 살아남을 답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책 말미에 유럽의 경우를 소개하며, 시장 지향적인 접근에 관심을 보였다. 그나마 반가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저자나 편집자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도로 서점에 나왔다고 책이 팔리거나 읽히지 않는다. 읽을 만 해야 읽히고 팔리는 것이다. 시장 지향적이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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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1-25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나는 공정무역여행. 이었어야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반가운 대목은 아무래도 구색인 것 같고....

굿바이 2010-01-26 11:35   좋아요 0 | URL
구색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

가모가와 2010-01-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도로 서점(또는 시장)에 나왔다고 ...팔리거나 읽히지 않는다. 읽을 만 해야 읽히고 (팔리만 해야) 팔리는 것이다. 시장지향적이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서평이 공정무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시장지향'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주는 것 같으네요...

굿바이 2010-01-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속가능한 소비,뒤에 숨겨진 매커니즘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미 무역을 극복할 대안이 없는 경제구조에서 이왕이면 공정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럴려면 당연히(?)시장에서 선택되어져야 하니까 '시장 지향적'일 수 밖에 없겠구나 싶은거죠.
 
<책탐>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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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의 들머리에서 작가는 "분석과 비판보다는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고 적고 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현학적인 학자들이 넘치는 세태에서 이는 갸륵하고 또 갸륵한 마음이고 실천이다. 하여 그의 표현대로, 부지런히 서점을 돌아다니며 서가에 꽂힌 보석들을 찾아내는 '등뼈 찾기 순례'에 기꺼이 동참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책과 마주앉았다.   

책은 크게 네 개의 꼭지, 희망, 정의, 정체성, 창의적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시 주제에 부합하는 책들로 소분되어 있다. 이 주제만을 보더라도 작가의 성향이나 품성을 대략 읽을 수 있다. 또한, 작가는'등뼈 찾기 순례'를 통해 이 시대의 희망과 정의,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창의적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의 노력이 결실맺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작가가 소개한 책들 중 어떤 책들은 이미 읽었고, 어떤 책들은 애써 외면했었고, 어떤 책들은 초면이었다. 소개된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작가가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책들을 소개받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또한 감사할 일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평가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그가 소개한 책들 중 두서너 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그리고 그것을 소개하는 작가의 생각에는 동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희망'이라는 주제로 묶인 책들이 그렇고, '정의'라는 주제로 분류된 책들이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작가가 살아생전에 내 글을 읽을 일이 없을것임으로 나는 지금 한없이 용감할 수 있다.  

작가는 '노먼 베쑨'과 '체 게바라'를 소개하며 이념이 아닌 실천을 말하고 싶어했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인간에게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고, '조지프 E.스티글리츠'의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카를 알브레히트 이멜'의[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서는 정의가 왜 필요한지 역설하고 싶어했다. '마리아 블루멘크루'의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을 보며 아직도 제국주의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했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워든]이나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들려주며 우리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하고자 했다. 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도 동감한다.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작가가 안타까운 것일까.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작가가 왜 이리 순진하게 느껴지고 답답하기조차 한것일까.  

인간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이 말을 할 때, 이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인지, 그가 처음 꺼내는 말인지, 그가 두려워서 하는 말인지 따져본다.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고, 울었고, 끌어안았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라면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운이 없게도 그런 이들을 쉽게 볼 수 없었다. 그저 세상을 향해 목울대를 울리거나, 정직한 근본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인간만이 희망이다,를 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답답함의 이유를 알겠다. 작가가 한없이 착하고 정직한 근본주의자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를 어째.  

그렇지만 나는 작가도, 이 책도,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어떤 책에도 딴지를 걸 마음이 없다. 그리고 양서를 찾아 기꺼이 세상에 알려준 작가의 노력에도 감사한다. 출판계에 얼마나 많은 지충이 서식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적어도 여기 소개된 책들은 나무의 죽음을 욕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부디 이 좋은 책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뜻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지는 않지만, 책 한권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아직은 믿는 그러나 정작 식탐밖에 남지 않은 나는, 여기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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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08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이 말을 할 때, 이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인지, 그가 처음 꺼내는 말인지, 그가 두려워서 하는 말인지 따져본다."
햐. 대단하신 굿바이님.
제일 후자인 나를 간파하신. 하하

굿바이 2010-01-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동우님은 전자가 아닐까요? 제 깜냥으로는 전자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신부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무진장 괴롭혔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여튼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그때, 신부님이 "그래도 인간이 희망이란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 문장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멀쩡한 사람되기는 틀린 모양입니다.
 
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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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듣는 모든 말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아우렐리우스


정조(正祖)시대에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한문의 문체를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되돌린다는 의미로 소품, 소설, 고증학처럼 고문과 다른 이질적인 언표들을 ‘바른 곳으로 되돌린다’ 라는 취지가 담겨있다. 조선 역대 왕들 중 가장 지적인 왕이라고 지목될 정조가 이와 같은 정책을 표명한대는 당파간의 미묘한 정치게임의 논리도 숨어 있겠지만, 더 나아가 문체가 갖는 중요성 즉, 한 시대의 사유체계이자 지식인들을 옥죌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세적 사유체계를 벗어 날 수 있었던 소품과 소설들이 규제되고, 조선 후기 문학은 일정부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역사 미셀러니 사전]을 읽으며 불현듯 문체반정이 생각난 이유는 저자의 집필 동기에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또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내용은 모두 생략했다.” 라고 밝히며 “이 방법론들은 흥미와 관심유발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내용만 다룬다.”라고 적고 있다. 나는 '과연 역사서가 작가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재단되어도 무방한가'라는 의문과 '21세기에 역사서는 새로운 형식의 문체들로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하고 정조와 연암 박지원을 떠올리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자연사, 문화사, 생활사, 과학사라는 소단원으로 묶어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거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거의’ 다. ‘거의’ 는 말 그대로 ‘어느 한도에 매우 가까운 정도’다. 따라서 이것은 어느 한도에 매우 가깝기는 하나 그 한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한도의 어디까지가 매우 가까운 정도인지도 모호하다. 하여, 우리의 영리한 작가는 ‘nearly’라는 단어를 통해 이 책 한 권에 쏟아질 수 있는 비난을 교묘히 비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큰 어려움 없이 책을 읽어 나가던 도중 책의 머리말에서 느꼈던 당혹감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나타났다. 다름아닌 책 105쪽의 인쇄술에 대한 설명이다. 작가인 엔털 패러디가 쓴 글을 보자. “700년경 목판 인쇄술이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이 기술은 한국에서 개발된 활판 인쇄술과 같은 형식이었다. 1450년대 에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개발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위의 문장을 읽어 보면 목판 인쇄술은 일본, 활판 인쇄술은 독일이 최초인 것처럼 읽히기 쉽다. 내 눈에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읽힌다. 그럼 사실은 어떻게 다른가!

첫째, 이것은 1337년에 간행되어 실물이 전하는 금속 활자본 “직지” 를 언급하지 않아 여전히 금속 활자는 서양에서 먼저 발명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경”보다 20년을 앞서는 우리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을 언급하지 않아 목판 인쇄술 역시 일본에서 먼저 시작된 것처럼 읽힌다.
물론, 혹자는 내 의견이 신경증이며 열등감이라고 말하거나 빗나간 애국심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난히 책에 대한 관심이 많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자국의 인쇄술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에 흠집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은 피할 길이 없었다.

여기서 나는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힌 의도를 다시 되짚을 수 밖에 없다.
“나는 내가 동의하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또는 지루하다고 느끼는 내용은 모두 생략했다.” 라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 인쇄술과 관련한 우리의 유물은 그가 동의 할 수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루하기 때문에 생략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빠져나간 것들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의 기술방식에 박수칠 수 없으며,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의 역사서는 미셀러니와 패러디의 형태로 발전할 것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에 대해서 만큼은 나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취한 태도는 연암 박지원의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부분을 문제 삼아 전체를 다 잘못이라고 말 하는 것 역시 일반화의 오류다. 하여 이 책 일부의 미흡한 점을 들어 전체를 깍아내릴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작가는 자신의 책에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는 책은 더욱 그렇다. 여타의 유용한 정보들이 있음에도 내가 이 책을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우렐리우스의 이 말로 이 책의 서평을 갈음할까 한다.

“우리가 듣는 모든 말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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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09-12-08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도저히 따라갈수 없는 책읽는 부족민들의 지적욕구와 독서편력.

아우렐리우스가 하였다는 이 말은 매우 가슴을 칩니다.
"우리가 듣는 모든 말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우리가 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작금의 사회 곳곳.
중구난방 범람하는 소리소리들은 사상(Thought)의 폼을 잡고 있더라도 죄 의견(Opinion)일 뿐이지요.
하나의 의견에 존재를 걸어야 하는 비극.
현대라는 것. 시스템이라는 것..흐음


굿바이 2009-12-0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매우 난처한 상황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게 뭐냐면, 진리란 존재하는가? 뭐 그런거죠. 모든 비극의 시작이 '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라고 가정을 세우고 막 달려드는 자세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있긴 있냐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렐리우스의 말도 일정 부분 한계를, 물론 제가 딛고 넘어야 할 한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달마처럼 동쪽으로 쭉 가보던가 해야지, 요즘은 마음이 참 산만합니다.

언제,기회가 있으시면 지혜를 좀 나눠주세요^^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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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쓰는 일, 그리고 소설을 어떤 형식으로 풀어나갈지를 고민하는 일이 작가의 집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힘든 작업이었노라고 어느 문학 잡지에 밝혔다. 그래서인지 신경숙 작가 소설 첫 문장의 대부분은 그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도, 짐작하건데 신경숙 작가처럼, 혹은 그보다 더 안쓰럽게 써내려간 문장이 아닐까 싶었다. [긴터널]이라는 단어가, [밤의 밑바닥]이라는 단어가, [하얘졌다]는 단어가 그리고 이 단어들을 연결한 문장이 오랜 수행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작가의 글을 미문이라 말하는 독자들의 평가가 도를 지나친 호들갑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는 또 간간이 김훈 작가를, 그의 책 [현의 노래]를 떠올렸다. 물론 김훈 작가가 제 육신에 연결된 연필로 제 몸을 갈 듯 써내려간 독하게 간결하여 아름다운 문장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써내려간 심하게 절제되어 아름다운 문장은, 미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판이하게 다른 미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굳이 어느 한 편을 편들라고 한다면 김훈 작가의 문장에 손을 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인정하기 싫지만 서사적인 사람이다. 

눈의 고장을 찾은 한 사내, 시마무라가 느끼는 각기 다른 두 여인을 향한 연민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결이 고운 눈과 달리 매우 성긴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나는 이제 사랑을 두고, 누가 누구를 더 연모하는지 따지는 일이 맥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썩 유쾌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짖던 풍월이 있으니 "가도 아주 가지는 안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앉아서 하염없이 그 무엇을 생각합니다" 라는 시 속 화자의 넋두리가 곱게만 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너무나 인간적인, 전적으로 내 기준에서 인간적인, 주인공을 욕하자니 입이 아프고, 그저 주인공의 띄엄띄엄한 감정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신발까지 숨겨 가며 밤낮으로 시마무라의 방을 드나드는 고마코의 연정을 나무라자니 이 뭐랄까, 고마코의 철없는 행실이 욕망의 대상을 향한 것인지, 욕망 자체를 향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으니, 딱히 그녀를 희생양으로 이름 붙이는 일도 어쭙잖다. 그러니 그저, 욕망 자체를 즐겨라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지 않겠는가 싶었다. 이쯤되면 작가인들 혹은 난들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감정 그 자체를 사랑하겠어요, 라고 볼 붉히는 어린 처자를 두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눈 쌓인 그래서 밤도 하얘지는 풍경보다, 요코가 역장을 향해 내지르던 목소리가 더 밟혔다. 뭔가 멀리서 부르는 소리, 그것이 심리적인 거리이든 실제적인 거리이든 상관없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대상을 향해 발화하는 소리가 계속 나를 붙들었다. 상대가 제대로 알아들었을지, 또한 그 상대가 무엇을 알아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존재인지, 더 나아가 그것이 대상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주체를 향한 것인지 자꾸 궁금해졌다. 그러면서 요코가 역장을 향해 동생을 부탁한다는 사뭇 괴이한 외침에 어느 영화에서 봤던 여주인공의 "오겡끼데스까"라는 대사가 묘하게 중첩되었다. 어쩌면 시마무라도, 고마코도, 요코도 그저 서로 멀리 서서 서로를, 서로라고 오해하는 무엇을 불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침묵은 아니지만 침묵과 별 다를 것 없는 소리들을 길게 혹은 짧게, 무엇이든 파묻을 수 있는 눈의 고장에서, 내지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정녕 사랑은 사람의 일인지라 알 수 없는 것이고, 또 쓸쓸한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힘을 뺀 척, 모르는 척, 그저 비경을 그리는 척 들려주고 있었구나 싶으니 그의 명성이 거져 얻어 진 것은 아니었구나 싶다. 

마지막으로 같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눈 내리는 고장의 풍경을 어여삐 여기시는 것 같아,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천승세 작가의 [혜자의 눈꽃]이라는 작품에 묘사된 눈 내리는 밤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앞서 밝혔지만 나는 서사적인, 그래서 적잖이 촌스러운 미감을 갖고 있는 터라 이 대목이 그리 좋았다. " 어느 날 밤이었다. 솔가지가 보채이도록 바람결이 드셌다. 설화의 무더기가 땅으로 내리는지 간간이 퍽 퍼억대며 봉창이 울렸다. 먼 산 속의 수목들이 쌓이는 눈을 못 이겨 가지를 찢는 모양이었다. 생지 부러지는 소리도 어쩌다가 바람결에 섞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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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국-글로 그린 그림
    from 바느질하는 오후 2009-11-29 21:01 
    ▣책읽는 부족 독후감 * 샛별님의 독후감 http://blog.daum.net/gniang/16150206 *웬디님의 독후감 http://blog.aladdin.co.kr/wendy99/3221771 *동우님의 독후감 1- http://blog.daum.net/hun0207/13291011 2-...
  2. 설국 - 여행지 로맨스
    from moratorium life 2009-11-30 07:08 
    설국(세계문학전집 61)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출판사 민음사 펴냄 | 2009.01.20 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요코미쓰 리이치 등과 감각적이고 주관적으로 재창조된 새로운 현실 묘사를 시...
 
 
동우 2009-11-26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설국의 미문에서 김훈을 떠올리는 굿바이님의 문학적 내공은 글을 써 본 사람만의 옛롭지 않은것. 말씀듣고 생각컨대 김훈의 문체에도 깃든 허무의 느낌. 그 미감은 다를지언정. 아름다운 문장을 이토록 생각하는 사람이 스스로 서사적이라니. 하하. 그러나 굿바이님 시마무라와 구마코와 요오코는 서사적으로 접근하여서는 아니될.. 이 소설의 매력.흐음. 천승세도 저와 같은 문장을 썼군요, 그 분 소설 읽은지가 하도 오래 되어서.. 옛날 작가들 원고지의 한칸 한칸 메워 나갈때 한올한올 문장에 기울이는 정성은 디지털 휘발성의 요즘 글쓰기와는 달랐겠지요. 천승세는 아마 박화성의 아들이었지요?

굿바이 2009-11-2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화성 작가의 기념관이 목포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이것 저것 보고 다녔는데도 어째서 저는 천승세가 박화성 작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아마 박화성 작가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영문학을 공부한 여성이었다는 것과 이광수 작가가 등단을 권유했다는 것 그리고 박화성 작가의 작품만 들여다 보느라 왠지 대어를 놓친 듯한 기분입니다. 선생님 때문에 중요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죠, 아름다운 문장에 매몰되는 주제에, 스스로 서사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을 선생님께 들켰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꿈꾸는 것들은 비유적으로 거의 만주벌판을 말 달리셨다고 말씀하시는 우리 아버님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삶이 참....힘듭니다^^

후니마미 2009-11-29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천승세 작가의 문장은 김훈의 그것처럼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려 애쓴 게 분명합니다. 여러 번 읽어 봅니다.

설국의 묘미는 아마 누군들 그렇겠지만 첫 문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눈의 나라로 밤의 밑바닥까지 하애지는 그 나라로 가서
세상의 일을 잊고 싶은 것,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독자인 저도 그 눈의 나라로 들어가자마자
일체의 논리를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 남자 왜 이래? 따위?
이 글을 쓰던 때의 일본, 그 시기의 일본 남성이라면 제국주의의 이상에
정신이 없던 그때. 동아시아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데올로기에서
이렇게도 잘 벗어나서 전혀 그런 시간 조차도 그런 공간이었다는 것도
모를 이런 글쓰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은... 그런 삐딱선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
눈 때문이었습니다
ㅎㅎ

서사 없는 문학이 가끔은 무척이나 화가 나다가도
또 간사한 독자인 저는 이런 문학, 역사와 사회를 전혀 모르쇠하고
사랑이나 허무 에 관해 쓴 글이 마구 마구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아름다운 문장에 폭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시마무라에게 빠진 고마코처럼,눈 나라의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문장이 마음에 들면 앞 뒤를 안 재고 빠져드는 간사한 독자입니다 저는. ㅎㅎ


저는 설국에서 풍경만을 봤는데
굿바이님은 요코가 역장님을 부르는 소리에서부터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한 울림을 읽어 내셨군요 탁월한 읽기...

김훈의 문장, 천승세의 문장도 문장이지만
굿바이님의 문장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전에 언젠가 살짝 엿본 굿바이님의 글에서
문학에 대한 열망 또는 문학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다는 느낌을 가졌더랬는데
그래서 한국에 사는 한 여자로서 우리 모두 공지영은 될 수 없지만
독후감 모임에 끌려 우리끼리 노는 장을 마련한 게 아닐까요?
둘러 보니 아줌다 되어서 이렇게 노는 여자도 몇 없더군요 ㅎㅎ
30대에 비해서 지나치게 저자신에게 관대해진 저는
책읽는 부족원이라도 되어 살아가는 것을 흐믓해 하고 있답니다

굿바이 2009-11-30 11:2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것들에 쏠리는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은 턱도 없는 제 욕심을 자양분으로 더 잘 자랐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다 지난 일이지만 말입니다. 지금은 좋은 글, 좋은 작가를 읽는 재미가 더 쏠쏠하고 그저 주위에 능력있는 친구들을 보면 막 응원해 주고 싶고 합니다.

웽스북스 2009-11-2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요코의 목소리에 대한 묘사가 유난했죠. 도대체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해하면서, 상상하면서 그렇게 읽었던 것 같아요.
2. 전 만으로 20대라 그런지 아직도 개여울을 즐겨 부릅니다. ㅎㅎ
3. 저 금각사 안갔다왔어요~

굿바이 2009-11-30 11:29   좋아요 0 | URL
1. 그렇지? 너무 궁금했어, 그 느낌이, 떨림이, 그런데 너무 궁금하니까 심지어 [은하철도 999]의 메텔양 목소리까지 겹치면서, 이건 무슨 음모가 분명하다고 혼자 키득키득 거렸어.

2. 서른 중반을 넘은 나 역시 개여울을 매우 즐겨 부르기는 하지. 그렇지만 이게 좀 달라지기는 했어. 힘 조절이 좀 된다고 할까?ㅋㅋㅋ

3. 너무 잘했다고 막 신나하고 있어. 금각사는 같이 보자.

후니마미 2009-12-10 15: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서른 중반
눈치챘고요. ㅋㅋㅋ

저는 마흔 중반 올해로 끝나고
한달 후면 40대 후반이 됩니다. ㅠㅠ

도치 2009-11-30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하게 시마무라에게만 관심이 묶여있어서 풍경의 묘사나 여인들의 속내도
읽어내지 못하고 말았네요. 몇몇 장면에서 언젠가 본 인상 깊었던 일본애니메이션의
여러장면들이 겹치기도 했습니다만 역시 여행자 시마무라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없
었습니다. 여러 부족원들의 독후감을 통해서 새로 읽는 기쁨은 참 뿌듯합니다.

굿바이 2009-11-30 11:47   좋아요 0 | URL
시마무라를 여행자 시마무라,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에서 도치님의 생각이 얼뜻 엿보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여인들의 속내가 보이질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그걸 알아서 뭣 하겠습니까? 그런걸 아느니 김장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도치 2009-11-30 13:4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방랑자보다는 여행자가 제가 생각했던 느낌에 부합하는 표현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면 또 새롭게 다가오겠죠.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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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를 이해하느니 차라리 MB를 이해하고 말겠다고, 지난 세기 많은 여류 작가들이 다룬 '전근대적 심성'을 어떻게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나는 매우 과장되게 절망했다.   

물론 이 책이 주는 재미를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영향력을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으며, 시절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공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허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남녀 관계를 정색하고 설명하려 드는 자세를 어찌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어디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다섯 자매의 캐릭터에 덤으로 등장하는 '자체 짜증' 남자 주인공들을 이토록 정교하게 확대 재생산 할 수 있는지 작가의 참을성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물론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입을 통해 서로의 문제 의식을 공유하기도 하고 가끔은 가뭄에 단비 같은 댓구 놀이를 하기도 하지만 뭐랄까 그 설명 또한 너무 작위적이어서 눈에 거슬리니 나는 책을 읽는 자체가 고문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내 불쾌의 원인이 단순히 작가의 설정과 해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대를 뛰어 넘어 오만과 편견 패밀리들과 유사한 인간 군상들이 내 주위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래서 각기 주인공의 대사와 겹쳐지는 현존하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나는 더 불편했던 모양이다. 공포스럽지만 실로 현존하는 '베넷 부인'을 비롯해 '리디아'까지 나는 알고 있다.

시절이 변하였다고는 하나 씁쓸하고 뻔한 인간의 내면이 그리 빨리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 결혼이, 신데렐라 언니 만큼의 쇼킹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대충 감정과 현실을 물 타보려는 속셈이 어디 그들 뿐이겠는가,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고,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 비틀거려야만 꿈틀이라도 할 수 있는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뭐 그렇게 너도 나도 아는 일이니까, 대충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그만이지, 이것 저것 홀딱 벗겨 멀리 끌고 나와 이것도 저것도 목숨도 연명하기 힘들 때까지 들여다 보고 파헤치지 말자고 슬쩍 사랑 타령에 물 타보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런 것이 사랑이라니!

마지막으로, 어째서 기발한 뚝심에 자유로운 영혼, 미학적 완성도를 갖춘 사랑은 그리 드문 것이더냐고 묻는다. 질문을 접한 몇 몇 친구들이 말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  

"아아~ 밥은 먹고 다니지만 서도 여전히 황홀하고 불안한 사랑이여! 어디 있긴 있소! 아~ 신종 인플루엔자 시대의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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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0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21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우 2009-10-20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 것이 사랑이라니!"
아, 굿바이님.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사랑은 사랑이지요.

나는 반쯤 읽었습니다.
그러함에도 굿바이님의 이른 답안에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19세기 무렵.
특히 영국이라는 사회.
그 어디 '콜레라 시대의 사랑' 꿈꿀수 있으리오.

쟁님 넙치를 멸치로 패러디하였듯, 나는 제국의 오만과 변방의 편견이라는 패러디가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영국 안방마님의 편견은 아직 이문구나 이보 안드리치를 방해합니다그려.
아직 열흘 남았지요? 하하

굿바이 2009-10-21 11:17   좋아요 0 | URL
동우님! 동우님의 패러디가 완전 기대되는 되요^^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나 사랑은 사랑이지요'라는 말씀이 여러 번 읽힙니다. 그렇지만 막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어리석음이 쓰나미처럼 밀려 옵니다. 사람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도치 2009-10-20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넙치에 비하면 쉽게 읽혀지는 책인데 게을러져서 진도가 잘 안나가네요.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사람대하기도 낯설고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이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삼분의 일쯤 읽었는데 저는 그냥 그시대의 사랑이
요즘의 사랑과 큰 차이가 없는듯 합니다.

여성과 남성의 서로간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

굿바이 2009-10-21 11:14   좋아요 0 | URL
일단 저를 제외한 독자들이 여전히 호응하고 있다고 볼 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소가 이 소설의 개연성이라면, 개연성이라는 것이 소설에 구현된 세계와 경험세계의 밀착 정도라고 볼 때 그 시대의 사랑이나 요즘의 사랑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인정하기 싫어라 하고 있습니다^^ 미련하죠?

토깽이민정 2009-10-30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은 서평이네요!
혼자 와하하 하고 웃었어요.

ㅋㅋㅋ

이런 가식과 허영속에 사는 사람들이 넘치는 것도 사실인데,
또 실제로 옆에서 봤으면
뒤에서 엄청 씹어주었을 법한 인물상이죠?ㅎㅎㅎㅎ


굿바이 2009-11-02 10:38   좋아요 0 | URL
민정이가 서울에 있었으면, 요즘 아주 화제거리 많은데 아쉽다^^
주위에 비슷한 군상이 널려있거든~

후니마미 2009-10-3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어놓고도 여전히 딴 책 읽다가 놀러 다니다가
정작 오늘이 10월 마지막 날이군요
휘리릭 우리 부족 마실 다니면서 올린 거 노획하고 있사옴, ㅎㅎ
벌써 쓰셨는데도 얼렁얼렁 건져 올리지 못한 책 배 선장의 게으름 인정하옴.

제가 제 것을 아직 낚아 올리지 못하고 있던 바람에 말이에요.

이 책의 주인공들 중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무지기 많지요?
버르장머리 없는 뇬들 하고
밥맛인 남자들 하고...
일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는 구조..

그런데 말이어요. 저는 이 걸 이 나이에 읽게 됨을 감사하혀요
스무살 때 읽었으면,
결혼 그 후를 말해주지 않는 사랑과 결혼의 드라마처럼
인생은 행복한 결혼으로 모두 다 되는 줄로
이 책의 글을 교과서처럼 알고 말았을 거에요
아니 그 책 안 읽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고달픈 인생 오래 겪었세요
ㅎㅎ
오늘 저녁 독후감을 올리려고 하겠지만
지금부터 나가서 10 시간쯤 놀다 올 거에요

수업을 나가는데요 그 곳이 홍상수 감독의 최근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배경이 되었던 집
수영장 있는 팬션이랍니다.
주강현 선생님 모시고 하는 수업요 ㅎㅎ
그래서 아이구 독후감 보다 거기에 정신이 다 팔려 버렸어요

굿바이 2009-11-02 10:40   좋아요 0 | URL
주강현 선생님 수업은 재미있으셨나요? 왠지 기대됩니다.

고달픈 인생 겪으셨다는 말씀에 한참 웃었습니다. 언제 한 번 뵙게되면 고달픈 인생에 대해 배틀이라고 한 번 해야겠습니다.

hohoya 2009-10-31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나봐요.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으면서 제인 오스틴이라는 여성에 대해 품었던 날카로운 반감이 둥글둥글 다른 모양을 잡기 시작했어요.
그런 반감은 오히려 동우님이 비교하신 김수현 작가에게 보내고 있답니다.
모처럼,책부족 덕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이제는 돌이키려해도 돌이킬 수 없는 사춘기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와
문득 부엌 가스렌지 앞에서 뒤집개를 쥐고 서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

굿바이 2009-11-02 10:42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뭐 좀 거슬린다 싶으면 여전히 부글부글합니다.
그나저나 김수현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요.
날씨가 추워집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후니마미 2009-11-02 14:3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부엌에서 뒤집개 쥐고 계시다하니
저는 다음 포스트에 부침개가 올라올 것이라고 기대 만땅하는..
ㅎㅎ

2009-11-04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실 독후감은 한번 읽고 갔는데, 다시 오니 그새 달린 쪽글이 또 다른 재미네요 ㅎㅎㅎ 그전 책들보다 소화가 좀 쉽다는 관계로 전 좀 후하게 썼나봐요.

예전에 지인이랑 드라마의 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드랬어요. 저는 요즘 드라마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온통 사모님들 투성이라 짜증이 난다. 좀 더 서울의 달 스러운 드라마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어요. 그랬더니 친구 왈, 현실에서도 안그래도 복닥거려서 죽겠는데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자기는 안 그러고 싶다. 그나마 눈이라도 편하게 해서 보고 싶다. 눈이 즐거운데 뭐 어때..드라마잖아. 이러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나눌때만해도 난 친구 이야기가 당췌 귀에 들어 오지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런 사랑이야기를 읽고 나니, 그래 소설이잖아..귀여운 것들.. 그래도 요정도는 나와지네요.

굿바이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