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자유]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 <폭력의 자유>는 언론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것은 한국현대사에서 국가 폭력에 관한 내용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거의 최초로 우리나라 언론의 역사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독립국가가 생긴뒤부터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 왔으며 특히 국가와 어떤 관계적 결탁을 통해서 권력적 언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 언론의 총체적 역사를 쓰려면 그 사람의 누구안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언론의 총체적 역사를 쓴다는 것은 언론의 역사 한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가장 적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김종철이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언론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살피는 것은 이 책이 어떠한 질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에 첫발을 내딧였다. 그 당시는 국가에 의해 언론이 통제된 시기였기 때문에 언론인들은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하여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투쟁했다. 바로 저자 김종철은 1974년 10월에 시작된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적극 가담했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언론인 110명과 함께 강제해고 당하였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두 번이나 옥살이를 하였다. 그리고 한겨레 신문의 창간에 참여하고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언론의 중심에 서있었던 저자는 평생 언론의 자유와 정론운동에 힘썼고 언론인으로써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의 억압에 펜으로 싸워온 언론계의 거목이다. 저자의 이력만 보아도 대한민국 언론사에 대한 이 책의 가치를 가름해볼 수 있다.

 

언론사에 대한 이 책의 범위는 그야말로 총제적이라고 할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시대의 언론에서부터 이승만 정부와 장면 정부의 언론, 박정희 시대의 언론, 박정희의 죽음부터 전두환 정권의 언론, 노태우 정권시기의 권력과 언론 유착에 대해, 김영삼 정권과 보수 언론의 관계에 대해, 김대정 정권의 언론에 대해, 노무현 정권과 조중동의 극한의 대결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권력과 언론의 관계를 모두 조망한 그야 말로 대한민국 언론사라고 말할수 있다.

 

저자 김종철은 대한민국 언론사를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헌납하고 권력에 붙어 폭력의 자유를 누린 굴욕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폭력의 권력을 감시한 민주적 권력이라고 하지만 김종철은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치욕의 역사를 감추고 있는지 그것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언론은 권력에 붙어서, 특히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때 자신이 자유를 언납하고 민중들에게 폭력의 굴레를 덮어씌운 굴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대에 와서는 권력과 대자본에 붙어서 오히려 폭력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자체가 폭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언론에 오래동안 몸담은 경험과 기억을 되살려 근현대의 언론이 얼마나 권력의 야합의 역사였는지 치밀하게 정리하였다.

 

책이 상당히 두껍지만 저자의 경험과 기억을 통해서 재구성되고 서술된 이 <폭력의 자유>는 잘 읽히고 각 정권마다 어떻게 언론이 정권과 관계를 맺어왔고 언론의 기능을 가져 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 언론에 대한 역사는 이 한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의 가치의 기본은 바로 ‘자유’에 있다. 언론이 권력과 야합하지 않고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때만 언론은 참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흔적을 찾아서
바바라 해거티 지음, 홍지수 옮김 / 김영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 <신의 흔적을 찾아서>. 이 책은 오래전에 읽었던 <신의 지문>이라는 책과 제목이 흡사하여 잠시 그 책의 개정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신의 지문>이라는 책은 한 고고학자가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명속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문화적 유산이 있는 것을 보고 동일한 신의 지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신의 흔적을 찾아나서는 책이였다. 대단히 흥미로웠던 책이였고 또 당시에 꽤나 많이 읽히는 책이였다. 이 책 <신의 흔적을 찾아서>도 동일한 의도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 바바라 해거티가 최신 과학의 도움을 받아서 신이 있다면 반드시 흔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적하는 책이다. 종교서적은 아니지만 과학서적도 아니고 그 중간에서 신의 존재를 더듬어 보려는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려는 책이다.

 

영성을 과학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책이다. 이러한 시도는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살짝 빗나가면 사이비 과학이 되고 영성의 입장에서 보면 진지하게 접근해 봐야 영성의 실체의 실루엣만을 스쳐가듯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즉 이러한 시도는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바바라 해거티라는 미국인이다. 서양인들이 종교적 특성을 파악할 때 대부분 그 종교는 기독교이다. 이 책의 저자도 기독교인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가 파악하려는 종교적 실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적 체험이였다. 종교적 현상을 분석하는 서적들은 이미 많이 나와있다. 가장 유명한 책으로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나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종교의 신비한 현상들을 분석하려고 시도하였다. 내가 그러한 책들을 본결과 결론은 딱 하나였다. 그것은 종교적 체험은 심리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초자연적인 실재와의 만남이 아니라 그 사람안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심리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종교적 경험의 살피는 책들은 미리 초자연적 실재를 재단한다. 하늘을 잘라버리고 인간 심리현상으로 축소한다. 포이에르바흐가 기독교를 비판한 <기독교의 본질>에서도 종교적 현상은 인간 소원의 투사이므로 신을 알면 인간을 알수 있다는 ‘신학은 곧 인간학이다’라는 매우 유명한 말로 정리하였다. 즉 인간의 종교적 경험은 인간 소원이 신의 형상으로 투사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신의 흔적을 찾아서>는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나 포이에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과 같은 것을 시도한다. 종교적 경험을 증명하고 그것을 통해서 신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위의 두 책은 심리적, 철학적 차원에서의 규명이라면 이 책 <신의 흔적을 찾아서>는 과학적 차원에서 규명하려고 한 책이다. 저자는 DNA 분석, 뇌 스캔과 뇌파 촬영, 신경생리학등을 통해서 신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소위말하는 ‘영성 과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 신과 인간, 과학과 종교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시도는 매우 광범위하고 진지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시도되었지만 언제나 이러한 시도는 성공적이 못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인생에는 증명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객관적 증명의 메스를 들이데는 순간부터 인생에는 신비와 의미와 가치가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것들은 증명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믿음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과학적 데이터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믿음은 과학의 위에 우선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로 세계와 인간을 떠 받치고 있다. 앞으로도 아무리 과학적인 증명으로 신비와 의미의 세계를 증명하려고 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종교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의 방식으로 과학을 이용한다. 그리고 마지막 저자는 자신의 신앙을 옹호함으로 결론을 맺는다. 참 특이한 방식이 아닐수 없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신앙을 가급적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서술한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힌 청년으로 언급한다. 저자의 과학적 증명 방식을 통해서 저자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결론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믿음은 언제나 종교적인 방식으로 시작한다. 즉 믿음은 증명을 통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상당히 우회하였고 마치 과학적은 방식에 의해서 믿음의 결론이 맞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미 종교적인 믿음이 있는 곳에 과학적인 증거 방식은 필요치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믿음이 독단적인 방식이라는 말이 아니라 과학의 방법이 도달하지 않는 세계에 있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아주 모호한 길을 걸어 믿음의 땅에 도달한 저자의 변증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여정을 시작하게 만든 물음으로 책을 마치고자 한다. 이것 이상의 무엇이 존재하는가? 그렇다. 나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영성을 연구하는 새로운 과학이 내 직감을 뒷받침해준다. 과학은 당신과 내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고 따라서 우리는 때때로 영적 세계를 들여다보고 신을 알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몸의 유전자 언어, 우리 몸이 보이는 화학반응, 우리 뇌의 신경회로,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우리가 알게 되기를 바라는 그분의 솜씨다. 과학은 영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활짝 열어 젖혀 모두가 볼수 있게 해주고 있다. 우리는 온통 신의 지문투성이다. p.3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구달 & 루이스 리키 :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 지식인마을 28
진주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즐겨보는 지식인 마을 28번째 책 <제인 구달 & 루이스 리키,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를 보았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학자이다. 우리나라 최재천 교수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대 초반에서부터 시작해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탄자니아 곰비 지방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한 학자이다. 루이시 리키는 인류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들었다. 모두가 인류학과 영장류학을 개척하고 뚜렷한 학문으로 정립시킨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음 연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이렇다할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스스로 자료를 만들고 그것을 정립하여 이론을 세우고 계토을 세워 학문을 만든다는 것을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난서 진정한 열정과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책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인간에게는 앎에 대한 욕구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근원적으로 지속되는 앎에 욕구는 근원에 대한 욕구였다. 즉 어디서부터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냐는 것이다. 인류학과 영장류학, 진화론과 유전학 이런 것과 관련된 것은 모두가 인간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느냐는 근원에 관한 학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고 싶어한다. 이러한 욕구에서 시작하여 많은 학문들이 성립되었는데 인류학과 영장류학은 바로 인간과 동물의 생물학적 근원을 밝히려고 하는 학문이다. 이 책은 인류학과 영장류학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루이스 리키와 제인 구달의 이야기와 그들이 세워놓은 인간과 동물에 관한 차이와 유사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주로 이야기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개략적인 학설이 담겨져 있지만 그 학설의 탄생배경이 흥미로운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와 맞물려져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체적인 학설보다는 이러한 탄생 배경과 함께 학설이 설명된다면 훨씬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루이스 리키는 루이스 부부와 그들의 아들 부부 그리고 손녀까지 평생을 인류학에 바쳤을 정도로 그들이 인류학에 공헌한 부분은 거의 독보적이다. 이들 리키 가문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은 인류학 연구에 투신하게 되었다. 제인 구달도 자신의 침팬지 연구를 위해 평새을 탄자니아 오지에서 보냈다. 이들의 열정과 헌신은 그들은 지금까지 인류학의 거목으로 칭송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 책은 인간과 생명의 기원을 찾아감에 있어서 진화적 관점에서 보고 있다. 매우 오래된 인간의 기원을 땅에서 발견된 화석과 뼈의 증거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인간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가설적 이론으로 채워진다. 이러한 방법은 이성을 충족시키는 과학적 방법일지라도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면에서는 그것또한 하나의 가설이나 학설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이들이 말하는 인류기원에 관한 학설보다는 인류학자들이 평생을 걸고 연구해나가는 그 열정과 도전정신이 매우 흥미로웠고 즐거웠다. 한우물을 파는 사람들, 어쩌면 인류학이라는 연구가 매우 장구한 세월동안의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필연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야하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 세월은 인간의 기원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세월일 것이다. 루이스 리키의 가문이 삼대를 거쳐서 인류학에 투신하여 인류학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기원을 밝히려 한 그 열정과 투지는 가히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세월동안 연구 자료와 학설이 쌓여서 명제와 반명제의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어떠한 학설이 살아남을 지는 어떠한 인류학자라 할지라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밝혀지지 않는 영원한 신비로 남아야 하는 것이 가장 인간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루이스 리키는 화석 인류를 통해, 또 제인 구달은 침팬지를 통해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사람들인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밟은 리키와 구달. 그들의 열정과 끈기는 여전히 인류학과 영장류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되었다. p.2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인즈 & 하이에크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지식인마을 27
박종현 지음 / 김영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내가 즐겨보는 시리즈 기획 가운데 하나이다. 기획은 주도한 장대익 선생의 강연에도 참석하면서 지식인 마을 시리즈가 아주 방대한 기획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보통 한 사람의 지식인의 주장을 담은 책을 보면 그 주장을 판단하고 평가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으면 거의가 설득당하기 마련이다. 아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대가가 하는 말에 ‘그렇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그래서 깊은 논리와 주장으로 일관하는 책들을 보면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지식인들중에 서로 반대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을 쌍으로 다룸으로 독자로 하여금 한 주장과 이론에 대한 반대 주장과 이론을 접하고 어떤 것이 더 공정하고 정확한지 판단할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동서양의 지식인들을 미리 기획과정에서 선정해서 정하므로 이 세상의 거대담론을 담고 있는 지식의 지도를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지식인 마을의 기획이 상당히 참신하고 도전적이며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즐겨보는 편이다 .

 

나는 경제를 잘 모른다. 한마디로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고 할수 있다. 돈이 어떻게 굴러가고 돈을 어떻게 벌고 돈을 어떻게 관리하여 재산을 불린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고 아껴쓰는 개미형 경제관념이 내가 가진 빈약하기 그지 없는 경제관념이다. 그래서 최근에 돈을 모으는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배우기를 원해서 먹물(?)의 근성에 따라 책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 내가 철학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돈을 버는 방법보다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작동되는 경제구조, 하부 시스템에 더 관심이 갔다. 보험이나 투자보다는 그 근저에 깔린 경제 원리가 무엇인지가 더 궁금했다. 재테크니 부동산이니 금융이니 자본주의니 이러한 거대담론들의 기저(基底)에 깔려 있는 가장 기초적인 상황적 배경이나 개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에게 지식인 마을 시리즈 27번 <케인즈 &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은 자본경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그 중심이라고 할수 있는 시장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잡게해 주었다. 그 발생 배경을 보니 역시나 아주 쉬웠다.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은 시장이다. 자본주의는 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시장이 무엇이냐가 곧 경제학이였다.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시장이다. 그동안 시장의 본질, 시장의 장점, 시장의 문제점, 시장과 사회의 관계등을 둘러싸고 여러 담론들이 나왔다. 그리고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남은 이론들이 쌓이면서 오늘날의 경제학이 경겨났다는 점에서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그 자체가 경제학이라는 ‘나무’의 나이테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70)

 

시장은 자본주의 경제학이 생긴 핵심 개념이고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처음에 자급자족을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다가 잉여상품이 남게되고 이 잉여상품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에게 사고 팔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를 위해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팔면서 이윤을 얻기위해 상품이 생산되면서 본격적인 의미에서 시장이 형성하게 되었다. 이것을 가장 먼저 이론화한 사람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아담 스미스였다. 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에 관한 여러 이론이 생기게 되었는데 1929년 대공황 이후로 본격적으로 시장에 관한 이론들이 생산되게 되었고 크게 케인즈와 하이에크로 대변되는 두학파가 형성되었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맞길 때 공황이 오게되고 이로인해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가 한 케인즈 이론과 시장은 그 자체로 완전하므로 그대로 놓아두면 된다고 주장한 하이에크가 크게 두 학파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 슘페터는 천재적인 지식으로 시장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였다.

 

케인즈는 시장은 불완전하므로 그대로 둘 때 무제한적 경쟁으로 인해 양극화 현상과 불황 같은 같은 문제점이 생기므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고, 하이에크는 시장은 인간의 불완전한 지식을 보완해주는 자발적 시스템이므로 정부의 개입은 그 자유를 억압하는 노예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케인즈의 이론으로 이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면서 하이에크는 케인즈에 대해 패배한 상대자로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하이에크의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과연 시장이 답인가. 시장에 정부든 무엇이든 개입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노예의 길인가. 오늘날 시장 만능주의는 오히려 더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고 보여진다. 인간은 그 자유가 극대화되고 적절한 제어장치가 없을 때 도덕적으로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다. 하이에크는 이것을 모랐던 것일까? 단순히 케인즈를 적수로 두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반대였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전에 읽은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도 결국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논쟁의 핵심인 시장에 관한 것이였다. 시장을 그대로 두면 진정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는가. 그것이 인간을 위한 자유라는 말인가. 이 책에서는 오늘날 모든 것을 시장에 맞겼을 때 인간의 신체장기, 죽음, 보험 등과 같이 결코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 것이 시장가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결국 인간의 도덕이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인간사회가 부도덕하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고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경제이론을 거의 잘 모른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유에 맞길 때 반드시 인간의 도덕은 물질로 환산되는 비도덕적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이 두가지 이론이 맞서고 있다. 시장은 자생적으로 정화기능을 가진 인격적인 기구가 아니므로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적절하게 개입되고 통제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 <케인즈 & 하이에크,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는 경제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시장의 발생 배경과 그것에 대한 두가지 이론을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이 어떤것인지 알게한 유익한 책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인문학독서법 - 삶의 기적을 일으키는 인문학 독서법의 비결
김병완 지음 / 북씽크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자기계발서를 보기 시작했다. 자기를 계발한다는 것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신만의 성공의 도구가 될 뿐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지나치게 실용적이며 피상적이여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책들에게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열린마음으로 도움을 얻으려고 한다. 최근 작가 김병완씨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에 10년동안 근무하다가 돌연 사표를 쓰고 자신에 대해서 철저히 배수진을 치고 3년동안 15시간씩 독서하여 폭발적인 작가로 변신하였다. 3년동안 몇천권의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집필에 대한 아이디어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의 책을 북카페에서 보다가 마음먹고 그의 책중의 한권을 읽었다. 3년동안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뀐 그의 삶에서 뭔가 변화에 대한 것들을 읽을수 있었기 때문이였다.

 

동네 도서관에서 <기적의 인문 독서법>을 읽었다. 일년에 4권씩의 책을 집필한다는 작가의 내공이 어느정도인지, 그리고 그의 책읽기 비법을 배우고 싶었다. 한자리에서 한권을 다 읽는 다는 목표를 세우고 세시간 만에 다 읽었다. 일단 그는 인문학 예찬자였다. 독서중에 일반 책이 아니라 인문학 독서가 삶을 바꾼다고 했다. 앞부분은 왜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었고 중간부터는 문학과 역사 철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후반부에는 본격적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3년 독서법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읽어야 할 인문학 독서 목록이 나와있었다. 이 책의 주제는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오는 인문학 독서가 주는 실제적인 이유가 꽤나 배울만 했다. 그리고 곳곳에 도움이 될만한 팁들이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였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장과 용어와 주제가 책의 흐름을 끊었고, 짧은 호흡과 깊은 주제가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만을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는 듯한 느낌이 역시 자기계발서의 한계를 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배우고 오직 책을 통해서 책을 쓰다보니 진짜 인문학 서적의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이나 깊은 여운은 그 깊이가 현저히 얕았다.

 

하지막 마지막 부분에 실천면에서 인문학 독서와 학문의 차이점, 그리고 3년, 그리고 직장인들은 6년동안 최소한 1000권의 책을 읽기위한 팁들은 상당히 구체적인 도움을 주었고, 인문학 독서는 학문이 아닌 만큼 학문처럼 한분야에 대한 깊은 탐구와 연구가 아니라 의식과 생각의 변화와 확장을 목표로 한다는 부분에서는 명쾌한 정리와 도움을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독서에 대한 열만이 더 커졌다는 것은 분명 자기계발서로서 유익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1년에 4권을 집필하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듯한 반복되는 문장이 많았고 저자도 많은 책들을 소위 ‘신들린 듯’ 집필하면서 중요한 디테일은 상당히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인문학 독서가 열풍이 불고 있다. 분명 독서는 유한한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보충하고 자기를 확장시키는 역사적으로 검증이 된 명제이다. 독서로 인생역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신의 삶을 기름지게하고 확장시키는데 저비용, 고효율로 인문학 독서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은 저자의 경험에서 검증된 부분을 알려주므로 유용한 교훈들은 있지만 상당히 아쉬운 부분도 많다.

 

모든 인생은 인문학이다.

 

그리고 그 인문학은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네 삶으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 독서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