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은 예수이다. 예수는 본인이 한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사후 그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는 인물들에 의해서 성경이라는 종교적 경전을 통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전부이다. 성경은 역사적으로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료라기 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서 신학적인 작업이 가미된 종교적 기록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성경을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한다. 사료써서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그 당시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경의 사복음서를 참조해야 한다. 예수 생존과 가장 가까운 기록은 성경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1차 사료로써 성경보다는 2차 자료로써 자료들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는 작업조차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예수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로써의 예수, 즉 신앙적 예수로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에 성경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최근에 ‘노아’가 그러했고 또 조만간 ‘선 오브 갓’이라는 예수 생애에 관한 영화가 나온다. 두 번째 영화는 그 내용이 얼마나 성경에 충실한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개봉한 ‘노아’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얼개만 성경을 차용했을뿐 내용이나 인물이나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이였다. 한마디로 영화 ‘노아’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해낸 다른 이야기이다. 즉 노아의 내용과는 철학과 메시지가 전혀 다른 것이다. 후자 ‘선 오브 갓’도 어떻게 그러질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전자와 같이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한다. 이와같이 적어도 성경에 충실해서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성경 이야기라 할지라도 단순히 새로운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꺼낸이유는 바로 역사적인 예수를 연구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이와같다는 것이다.

 

이 책 <젤롯>은 이란 사람으로 처음에는 기독교인이였다가 이슬람으로 돌아간 레자 아슬란이 쓴 책이다. 솔직히 나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예수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리메이크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책은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자료에 의한 역사적 예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러가자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고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제목처럼 ‘젤롯’ 즉 그 당시 로마에 반대한 유대 정치당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가 바로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로마 제국에 맞서서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혁명가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학자이므로 그가 사용하고 서술해 나가는 역사적 사료를 사용하고 서술해 나가는 예수 이야기는 충분히 귀기울여 들을만 하지만 최종적인 결론으로 예수를 ‘정치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라는 것은 적어도 가장 역사적 예수와 근접한 저작인 사복음서에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라고 할수 있다. 성경을 오래동안 천착하여 읽어온 바로 사복음서는 절대로 예수가 정치적인 인물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가 전파한 ‘하나님 나라’는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정의와 사랑의 정치적 나라가 아니다. 예수는 정치적이지 않았으며 정치에 대해서 직접적인 개입이나 언급이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말을 책잡기 위해서 세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을때도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말하면서 정치적인 올무를 벗어났다. 실제로 예수는 정치적 혁명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죄의 올무에서 해방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예수가 새롭게 조명되고 저술되는 것이 확실히 그가 논쟁적이거나 신비의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이천년동안 지속적으로 재정의되고 재진술되는 것을 보면 예수라는 인물은 이 세상 역사적 관점과 지성적 관점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역사가 예수라는 인물을 기점으로 나뉘고 지금까지 흘러간 역사의 흥망성쇠가 이 한 인물의 영향력을 간과할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면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을 들여다 볼필요가 있다. 역사와 신앙은 분리되지 않으며 신앙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적어도 가장 시간적 거리가 근접한 성경을 통해서 진지하게 예수를 연구해 본다면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예수 사이에 간격은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자신의 근원을 궁금해하고 자신들의 역사의 미래를 궁구한다면 그 중심에 놓여있는 한 인물이 역사 흐름의 본류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천년전의 인물이 누구인지 재구성하는 것인 고고학 지식의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가 누구인지 사려깊은 사람은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이다.

 

우리가 아는 한, 예수가 태어날 즈음 나사렛에는 목수가 할 만한 일거리가 별로 없었다. 전통적으로 예수의 직업은 어쨌든 목수(그리스어로 ‘테크톤’)로 알려져 있는데, 신약성서 전체에서 그가 목수라는 보도는 딱 한 번 나온다.(마가복음 6:3)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용직 직공인 예수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최하층 계급에 속하는 셈이다. 그 밑으로는 거지나 노예만 있었을 뿐이다. 로마인들은 목수로 번역한 그리스어 ‘테크톤tekton’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문맹 소농을 가리키는 속어로 사용했는데, 예수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호텔 - 영혼과 심장이 있는 병원, 라구나 혼다 이야기
빅토리아 스위트 지음, 김성훈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오늘 종합검진 결과를 보기 위해 종로에 있는 하나로 의료재단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진단서가 필요해서 두주전에 예약을 하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새로 이전한 하나로 의료재단을 처음으로 방문했는데 현대적이고 세련된 병원 시설에 놀랐다. 건물 자체도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들어가는 곳부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자 마자 맞이하는 안내원들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이였다. 들어가는 과정을 통제하고 엘리베이터도 개별 엘리베이터에서 가고자하는 층을 누르는 시스템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존입구에 있는 작은 시스템을 통해서 중앙에서 통제되었다. 병원에 들어가서는 깔끔하게 수트를 차려입은 안내원들이 들어가자 마자 친절히 안내해 주었다. 그곳에서 행정과 안내 그리고 진찰로 나누어진 병원의 각 구조들이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깔끔했다. 최근에 경험한 이 병원은 현대적이였지만 딱딱하지 않은 무언가를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라기 보다는 검진을 하는 진단소였기에 그러한 특징을 유지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병원은 현실을 팍팍하고 어렵다. 당장 수술에 필요한 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되면 매일매일 엄청난 병원비가 늘어난다. 의료보험 혜택이 아니면 누구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충분한 재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병원이라는 곳이 그다지 반가운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현대적인 시설들이 그러한 이미지 상당수를 변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최근 티비에 방영되는 의학 드리마를 통해서 의술을 펼치는 의사들의 이면에는 다른 자본과 권력의 논리가 작동되는 현실이 있음을 보게된다. 티비를 통해서 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돌보아야 하는데 얼마나 어려울까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를 의사가 일로써 진단하고 치료해야할 환자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한사람으로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고충도 알게된다. 아마도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와 병원이라는 시스템은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상품을 것이다.

 

이 책 <신의 호텔>은 라구나 혼다 병원의 의사와 환자 이야기를 다룬 의학 에세이다. 특별히 의학적인 기술을 다룬다거나 환자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다룬 책이 아니라 그저 의사가 가장 기본적으로 환자들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성껏 진료할 때 대부분의 환자는 치료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 빅토리아 스위트는 이 병원에 2달간 일할 것을 생각하다가 20년동안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이다. 이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것은 현대의학에 밀려 인격의학이 빚을 잃어가고 있는 이시대에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인격의학을 다시금 재발견해준다는 것이다. 오래동안 알려지지 않는 의학 서적들을 발굴하여 그것을 소개하여 인간을 치료함에 있어서 따뜻함과 인격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잔잔하지만 감동적이고 설득적이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저자가 경험한 각각의 환자를 치료하는 경험을 통해서 느리지만 따뜻하고 인격적인 태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환자들이 고침을 받는지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것이 자본과 효율의 논리로 지배되는 이시대에 참된 인격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의학이라는 것이 단지 치료를 파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을 치유하는 인격적인 행위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현대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오래된 전통이 새롭게 재조명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의학도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인간을 치유하는 인격적인 행위라는 것을 설득력있고도 감동적으로 보여준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병원의 모든 비효율성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만약 그런 비효율성을 모두 합쳐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부정확한 진단 대신 더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을까? 의사들이 환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응급실에 찾아갈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분이 진정되고, 안경이 고쳐지고, 공짜로 닭을 구경하는 즐거움까지 누렸으니 말이다. 한 의사가 밖으로 나가 월마트에서 신발을 사온 까닭에 불필요한 입원으로 인한 손실을 막을 수 있었으니, 거기서 절약된 비용으로 좋은 음식이나 음료, 마사지, 신선한 꽃다발, 대체의학 같은 여유를 즐길 돈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나는 지금이 비록 근거중심의학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라구나 혼다의 비효율적인 보건의료 모델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p.106~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모의 자격 - 내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 건가
최효찬.이미미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에도 뭔가 트렌드가 있다. 책이라는 물건 자체가 단순한 물건이 아니기에 트렌드가 지적 유행에 지나지 않다고 보기에는 과한면이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요즘 교육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어지는 것들을 볼때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슈는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출판동향이 나타내주는 트렌드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한국의 부모라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특히 아직 학벌사회인 한국에서는 교육이라고 한다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가져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이라는 의미가 이러한 세속적인(?) 의미로 축소 전락한 것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러한 책들이 도움이 되고 팔리는 것은 잘못된 교육의 수렁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너무나 귀한 우리네 청소년, 청년들과 부모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부모의 자격>은 현 교육에 대한 트렌드적인 교육문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저자 최효찬은 명문 가문에 대한 큰 관심으로 국내외 명문가들에 대한 교육을 책으로 여러권 펴낸바 있다. 이 책은 아내와 함께 한국 교육의 문제점과 그것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담은 책으로 중고등학교 학생을 자녀도 두고 있다면 실제적인 유익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현 사회의 교육적 문제의 트렌드에 치중하다보니 진정한 교육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숙고하기 보다는 교육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잘못된 공식으로 힘들어하는 한국 부모들에 대한 가벼운 처방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좀 아쉬웠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다’, ‘강남의 아이들이 더 잘된다’, ‘교육은 경제력이다’ 이러한 현실의 교육을 담고 있는 모토 자체가 지금의 교육이 인격을 위한 도야가 아니라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해 버렸는지를 보여준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단지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집값이 비싼 강남이나 목동으로 빛을 져가면서까지 이사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아이들이 단지 공부잘하는 기계가 되도록 독려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헌신(?)에 열심히 공부하지만 단순히 스트레스만 늘어가고 자신이 왜 공부해야되는지 모르며 극심한 경쟁에 시달려 자기 자존감을 잃어버린다.

 

교육이 지금 이지경까지 왔는데 정작 대한민국 교육 관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귀한 아이들이 매년 수백명씩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정작 이들의 책임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이러한 교육환경이 부모와 아이들을 스트레스도 내 몬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부모의 책임도 회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려면 지금 이대로는 절대로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책도 좀 씁쓸한게 교육의 본질이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교육제도속에서 학부모들이 좀더 괜찮은 학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을 설명할 뿐이라는 것이다.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좀더 좋은 학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을 말하고 있을 뿐이여서 이 책의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책이 나온것 자체가 현재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교육이 교육의 참된 의미를 살리고 한 인간으로써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자아를 발견하고 세워가는 것으로의 교육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엄마는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안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편안하게 해줄게.” 그러나 아버지는 아이를 산 정상으로 데려가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세상이다. 네게 세상을 보여주겠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모성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이 모성 본능은 자녀양육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러나 모성 본능은 자녀교육에서 때로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모성 본능을 앞세워 자녀가 어디를 가든 따라가서 뒷바라지해 주려고 한다면 그 자녀는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홀로서기를 하는 데 시련을 겪을 확률이 높다. 부모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생활태도는 위기 때 빛을 발하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난관을 헤쳐 나가 꿈을 이루게 하는 힘의 원천임을 알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때 꿈은 이루어지고 단계적으로 더 높은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보스 이야기 - 세계 거물들은 올해도 그곳을 찾는다
문정인.이재영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다보스 포럼? 다보스라는 말은 언론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심심찮게 들어온 말이라서 어떤 곳이며 무엇을 위한 모임인지 전혀 알지못했지만 그냥 낯설지 않은 느낌이였다. 다보스라는 말의 어감도 좋고 그래서 그런지 그냥 친근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다보스 포럼의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얼마전 매스컴에서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에 초청을 받아 연설한 기사가 올라왔다. 창조경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통일은 대박이라 라는 말에 대한 논평이였다. 솔직히 나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통일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두고 단순히 대박이라는 경박한 말을 쓴 것에 대해서 격에 맞지 않은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박'이라는 말을 외국에서는 '잭팟'이라고 번역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의중은 만일 남과 북이 통일이 되면 세계 경제에 큰 이익을 줄것이라는 뜻이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내가 이 기사를 읽었을때 박 대통령이 쓴 '대박'이라는 표현이였지 그녀가 참석한 '다보스 포럼'에 관한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다보스 포럼을 이미 40년전부터 시작해서 매년 개최하는 국제적인 논의, 의결 기구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매우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 경제인, 학자들이 모여서 세계적인 아젠다를 성장하고 그것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격조 높지만 자연스러운 국제적인 모임이다.

 

우리나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국제 기구 유엔의 총장이 되면서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 또한 한때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그곳에서 한번 일해보고 싶은 열망에 관련된 책과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 제한과 외국어에 대한 높은 기준 때문에 그냥 관심을 가져본 것이로 만족해야 했다. 최근에는 젊은 이들의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 관한 책들이나 그런곳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방법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다보스 포럼이라고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 또한 그러한 국제기구중 하나이다.

 

다보스 포럼은 원래 명칭은 세계경제포럼(WEF)이다. 다보스 포럼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알려지게 된것은 세계경제포럼(WEF) 회의가 스위스의 작은 마을 '다보스'라는 곳에서 개최되면서 다보스 포럼이라고 알려지고 회자되면서 다보스 포럼이라는 명칭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 다보스는 인구가 만명이 채 안되는 휴양도시이다. 이곳에서 세계 정관계 거물들이 스스로 많은 회비와 3성급 호텔에 머물면서 오는 이유는 이 회의의 격조와 자연스러움과 국제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모인 수백 명의 거물인사들은 정치, 경제, 사회를 총 망라하는 글로벌 이슈를 상정하고 이것에 대해서 깊은 대화와 성찰을 나눈다고 한다. 그리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며 40년동안에 가중 주목받는 국제회의로 위상을 떨치게 되었다.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왼쪽), 이재영 국회의원(오른쪽)

 

이 책은 다보스 포럼과 깊이 관련을 맺고 있는 두 사람, 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와 이재영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다. 문정인 교수는 다보스 포럼 패널로 참석한 사람이고 이재영 의원은 다보스 회의를 준비한 사람이다. 이 두사람의 시각이 한나로 모여 이 책이 만들어졌는데 문정인 교수는 외부의 시각으로 다보스 포럼을 조망하고 이재영 의원은 내부 준비자의 시각으로 포럼을 조망하여 이 책은 다보스 포럼에 대한 가장 입체적인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이재영 의원의 경험과 세계경제포럼(WEF)의 내부 사정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은 것이고 2부는 문정인 교수가 패널 참석자로서 전문적인 견해를 밝혔다. 3부는 동아일보사 황일도 박사의 사회로 함께 대담을 나눈 것들이 정리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미치는 거물들이 세계 문제의 아젠다를 상정하고 그것에 대해서 토의하고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다보스 포럼을 위상을 말해주고 이 포럼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다. 가장 앞서가서 세계의 미래를 진단하고 위험요소를 발견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얼마나 숭고하고 멋진 모습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서 한때나마 꿈꾸었던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열정이 되살아 났다. 글로벌한 시대에 좁은 지역적 행동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일하고 싶은 그 열정 말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신학자인 자끄 엘륄은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고 했다. 아마도 이 모토는 지성인의 행동강령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다보스 포럼과 같은 곳에서 일하고 참석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세계적으로 행동하는 모토를 실현시킬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인 기구에서 발언권이 있어야 하고 우리나라 젊은 이들은 굼을 가지고 국제적인 무대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굳이 엄청난 거물이 아니여도 세계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머리를 맞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매력적이고 멋진 일이 아닐까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보스 포럼에 대한 정보보다는 그러한 젊었을때의 열정과 꿈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서 행복했다.

 

내가 말하는 '포럼 외교'란 이처럼 포럼이 세계의 공익을 위한 외교집단으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1997년에 포럼은 세계 공익에 이바지하겠다는 스스로의 노력과 다짐을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를 모토로 삼고 공식적으로 로고화했다.

 

"Committed to improving the state of the World"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헌신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대인의 형제 교육법 - 엘리트 삼형제를 키워 낸 자녀교육 리얼 스토리
에제키엘 이매뉴얼 지음, 김정희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교육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민족이 우리나라와 이스라엘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도 그것이 비록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긴 했어도 세계적으로 한국의 교육열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교육에 관해서 한국을 여러번 인용할 정도로 한국인들은 미국에서도 교육에 대단히 열정적인 민족으로 잘 알려져있고 정관계에 진출한 훌륭한 한국인들도 여러명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창의적이며 인류에게 새로운 이익을 준 인물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이러한 것을 노벨상이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인류에게 유익한 문화유산과 학문과 평화에 공헌한 사람들에 대한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노벨상 수상자는 고작해야 1명이다. 그것도 평화상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이 바로 수상자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충청남북도를 합친 크기이고 인구도 700만정도로 우리나라의 6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 세계인구의 0.2%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거의 매년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하고 있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 중에 20%정도라고 하니 유대인들의 교육 수준은 가히 전세계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특히 교육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교육방법이나 교육시스템을 배우기를 원한다.

 

 

<왼쪽 : 첫째 에제키엘 이매뉴엘, 오른쪽 위 : 둘째 람 이매뉴엘, 오른쪽 아래 : 세째 아리 이매뉴엘>

 

나도 오래동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유대인들의 교육법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배워왔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교육방법이 특별히 역사와 종교와 깊은 관련이 있으로 쉽게 방법론만을 배워서는 그들의 깊이 있는 교육법을 알 수가 없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대교와 관련된 교육이 가장 밑바탕을 이루므로 그들의 종교를 떠나서는 결코 유대인들의 교육을 배울 수 없다. 내가 읽어온 유대인들의 교육에 관한 책들은 거의가 그들의 종교, 즉 유대교의 토라교육이나 탈무드 교육, 하브루타라고 하는 토론교육에 관한 것이여서 종교적인 부분과 매우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최근에 읽은 책중에 <유대인의 공부법>이라고 하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얼마전에 티비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국계 유대인 릴리 마골린의 아버지 힐 마골린이였다. 힐 마골린은 세속적인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랍비가 되려고 했을만큼 강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고 자녀들을 유대교적인 방식으로 키웠던 분이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유대교적 전통이 어떻게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이였다. 그러나 이 책 <유대인의 형제 교육법>은 종교로써의 유대교적인 영향은 적고 문화로써 유대교적인 영향이 많이 보이는 책이다. 즉 무신론자로써 유대교적인 이스라엘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가정에서의 교육이 어떠한지를 볼 수 있는 책이였다. 아무래도 전자의 책과는 조금 색깔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에제키엘 이매뉴얼은 이스라엘 출신의 바르고 생기있는 아버지와 정의에 대한 사회참여를 실천한 양육전문가 어머니 사에에서 태어난 삼형제 중의 장남이다. 이매뉴얼 삼형제들을 스스로를 행동과잉장애라고 부를 만큼 행동이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형제들이다. 지금은 첫째 에제키엘 이매뉴앨은 의사와 교수로써 생명윤리와 종양학계를 이끄는 세계적인 석학이고, 둘째 람 이매뉴엘은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비서실장을 역임했으며, 막내 아리 이매뉴얼은 헐리우드 에이전시로 활약하고 있다. 모두가 특출한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형제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녀들의 양육에 있어서 부모들의 분명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매뉴얼 삼형제의 부모들은 평범한 부부들과 마찬가지고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주일에 70시간씩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가장이고, 어머니는 시끄러운 삼형제와 며느리 때문에 아들을 빼았겼다고 생각하며 항상 자신의 아들과 헤어지기를 종용하는 고약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주부이다. 그리고 돈 때문에 언성을 높여 싸우고 서로의 가치관 때문에 대립하며 여행가서 의견충돌로 싸우는 평범한 부부였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점은 그들이 자녀 양육과 교육을 위해서 자신들의 분명한 역할을 확실히 감당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늘 아이들을 사랑하고 친절히 대하며 무엇을 하든지 지지해 주어서 세 자녀가 아버지는 늘 자신들의 편이며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특히 어머니는 자녀양육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만큼 양육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말썽꾸러기이자 통제불능인 세아들에게 늘 관심을 베풀고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재능을 찾아주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매우 지혜로운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의를 위해서 집회에 참석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였다.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린 '나는 꿈이 있습니라'라고 외친 마틴 루터 킹 집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하였고 집에는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기위해 모임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이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약자를 도와야하며 그것이 그들의 당연한 의무라는 것을 몸소 배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써 중심을 잡아주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며 자녀 교육에 확실한 지원을 하고 어머니는 자녀들이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도울줄 아는 관대한 사람으로 양육시키는 역할을 분명히 감당할 때 자녀들은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뿐 아니라 약자를 돕는 당당한 사회인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들 이매뉴얼 가족은 정통적인 유대인 가정이 아니라 무신론자인 세속적인 유대인들이다. 비록 자녀들을 종교적인 방식으로 키우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양육방식에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깊이 흐리며 전해져 내려오는 유대교적인 방식이 깊이 묻어있음을 볼 수 있었다.

 

교육은 단순히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양육방식은 역사와 문화속에 깊이 침투되어 하나의 문화유전자로써 그 문화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려운 이웃의 자녀들을 몇 년이고 맡아서 자신의 아들처럼 키워주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에 깊이 흐르는 전통인 것이다. 자녀들을 말로써 키우려고 하는 부모들을 많이 본다. 책 사주고 공부하라고 하면 그렇게 될줄로 알고 소리높에 공부하라고 하고 필요한 것들을 사준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그들의 바램대로 양육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철저히 배운 것 중에 하나는 부모들의 삶이 바로 자녀들에게 하나의 교과서였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성실함과 어머니의 정의감을 자녀들이 몸소 보며 자랐기 때문에 그러한 DNA가 세자녀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평생의 거의 정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시킬 것인가? 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건강한 사회인으로써 키우는 것인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나 자신만 보아도 옆에 가까운 지인들을 보아도 그들의 인격과 삶속에는 부모의 영향력과 가정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래서 부모는 한 사람의 인생을 주조하는 거룩한 성직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어떠한 아버지가 될 것인가? 어떠한 부모가 될 것인가? 이 책은 정답은 아니지만 분명한 부모가 몸소 삶으로 부모의 순기능을 감당할 때 자녀는 건강한 인격을 가지고 타인을 돕는 훌륭한 사회인이 될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부모가 너무 좋지만도 않고 너무 지배적이지도 않으면서 아이들의 원래 완전한 인격과 개성이 발휘될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는 것이 부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하나님이 부모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이런 다양성은 불안, 애착, 두려움, 지루함 등 여러 가지 특성으로 발현되는데, 이런 특성들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치라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이며, 여기서 부모의 유연한 태도가 요구된다. 남자아이나 여자아이나 몇 살 때는 어떠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생각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태도에는 득보다 실이 많다. 오히려 어느 정도 한계만 정해 놓고 내버려 두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이것을 재즈식 양육jazz parenting이라고 부른다. p.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