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한 스푼 - 365일 미각일기
제임스 설터.케이 설터 지음, 권은정, 파브리스 모아로 / 문예당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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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 다는 것'을 단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의식주의 하나로써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것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인간생존의 필수조건인 '의식주'는 시대가 지날수록 그것이 하나의 문화이며 의식이 되어왔다. 그래서 입고 먹고 거주하는 것은 그것의 필수적인 기능을 넘어서 인류가 만들어온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의식주는 새로운 기능이 계속적으로 첨가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를 알려주는 기호로써의 기능이다. 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인 이론가인 프랑스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는 현대의 소비는 단순히 필요한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기호란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행위의 기본동기인 필요위에 그것를 넘어서 새롭게 생산된 모든 의미를 말한다.

 

예를 들어서 핸드폰을 살때는 원래 필요에 의한 기능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상대방과 원거리에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통화의 기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햅틱이나 이아폰을 구입하여 필요에 의한 기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을 소비하므로써 인류가 축적해온 문명을 소유하고 그러므로 자신이 현대문명에 깊이 소속되어 있다는 정체성을 갖게된다. 이것이 '기호'로써의 '소비'의 의미이다.

 

그중에 특히 '식' 즉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인 위치와 계급을 표시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닐 뿐 만 아니라 독특한 의식으로써의 기능도 첨가되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먹는 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인간은 타자와 함께 음식을 나눔으로 인간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음식을 나눔으로 더이상 자신과 심리적으로 동떨어진 타자가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절대로 아무나 하고 음식을 나누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은 생명을 함께 나누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그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먹는 것은 거룩한 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의식을 통해서 나와 너는 남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의 기본 개념은 '식구(食口)'이다.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 바로 '식구(食口)' 즉 가족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먹는다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성한 의식'이다.

 

이 책 <위대한 한 스푼>은 먹는다라는 것을 하나의 문화와 의식으로써 쓰여진 책이다. 요리책도 아니요 그렇다고 음식에 대한 문명사도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어떤한 그림이 그려진다. 이 책을 쓴 두저자 제임스 솔터와 케이 솔터는 부부이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두 사람이 함께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서 그 음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음식에 얽힌 이야기와 문학 이야기 그리고 댜양한 이야기들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간단한 음식 레시피가 적혀있긴 하지만 이것은 기술적인 요리책이 아니라 두 사람의 신성한 의식으로써의 음식만들기와 먹기를 간략하게 적은 것이다. 참 멋진 광경이다. 음식을 통해서 함께 생명을 나누는 '우리'임을 의식하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멋진 광경이 떠오른다. 1년 365일 그들이 나눈 '신성한 의식'으로써 '음식 만들기'와 '음식 나누기'를 엿보면 이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곱게 그리고 멋지게 나이들어 가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이였다. 앞 날개 사진에 찍혀있는 그들을 보면 신성한 의식을 행한 그들이 얼마나 하나로 묶여져 있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단순하게 보면 요리책도 아니고 음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음식에 대한 소견을 주저리 주저리 나열하는 분명한 정체성없는 잡다한 책같지만 이 책은 나에게 분명하게 음식은 '신성한 의식'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나에게도 옛날부터 한가지 꿈이 있었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서 하루의 삶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며 논쟁하는 신성한 의식을 만들고 싶다는 작은 꿈이였다. 식사하게 전에 촛불의식을 행하며 하루를 감사하고 서로 나누며 축복해주는 멋진 의식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식사법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도 했다. 이제 조금씩 신성한 의식으로써의 식사를 실천해 봐야 겠다. 

 

"우리는 이 책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음식을 단지 생존을 위한 것 이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으면 한다." (p. 9)

 

"태초부터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식량이었다. 사실 먹는 것이 섹스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그 횟수 또한 잦다. 음식과 노동의 격조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원시 인류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고 배고플 때 음식을 먹다가 차츰 일정한 시간에 먹는 방식으로 발전했으며, 더불어 먹을 때마다 가족이나 씨족이 자연스럽게 함께 모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인류가 집단을 형성하고 점차 사회로 발전되면서 도시가 생겨났으며, 이를 통솔하기 위해 정치가 시작되어쏙 식량 때문에 전쟁이 터지기도 했다." (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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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09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처음 보는 것이데요 ^^ ㅎㅎ 역시나 멋지구나 ~ ㅋ

불꽃나무 2012-11-10 23:01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써놓은 리뷰여요~ㅎㅎ 감사!
 
반 고흐 : 태양의 화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
파스칼 보나푸 지음, 송숙자 옮김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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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적인 삶속에서는 대부분 스쳐가는 대상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한 대상들은 나의 시선을 비켜가고 나 또한 그러한 대상을 비켜가 진정한 본질적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일상적인 삶에서 만나지는 대상들의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 나의 직관을 사로잡고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찰나의 순간에 대상과의 본질적인 만남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대상들이나 인물들이 있다. 이러한 만남은 순간 본질과의 마주침으로 인해 매우 강렬하며 진한 아우라를 경험하게 한다. 대부분 이러한 대상들은 매우 모순된 인물이거나 강한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뚜렷하게 자신의 삶을 산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의 집요한 탐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아니라 트라우마까지도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했던 인물은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는 매우 모순된 인물이면서 가장 뚜렷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였다. 그래서 더욱 흡입될 수 밖에 없는 인물이였다. 그는 열정적이였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늘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극과 극을 오고갔다. 신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그를 종교인이 되게 하였지만 그 종교적인 열정은 그를 사람에게서 단절되게 하였고, 그림에 대한 열정은 곧 자기를 파멸하는 열정으로 바뀌었다.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창녀였고 그 사랑의 열정은 가족들에게서도 비난을 받았다.

 

사람과 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사람과 신에게서 버림받았고, 살아서는 비난과 멸시를 받았지만 죽어서는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된 사람, 사랑했지만 그 사람을 떠나야 했던 모순과 히스테리와 광기로 가득찬 사람. 그렇지만 한없이 공감해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이다. 그를 알았을때 애정과 불쌍함과 의문과 신앙과 삶과...정말이지 풀어지지 않는 복잡한 실타래처럼 여러 가지 생각들이 얽히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한없이 끌리고 공감하고 싶고 또 한없이 반대하고 부정하고 싶은 묘한 모순이 더욱 그에게 애착을 가지게 하였다.

 

그를 통해 일어나는 질문들.. 그는 자신의 길에 충실하였나? 단순히 그가 자신을 잘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창조성과 종교는 늘 반대의 길에 서 있는가?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가? 이어져 나오는 물음표...실타래처럼 얽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고흐를 통해서 본질적인 삶을 살아간 한 사람을 만난다. 자신의 삶을 살다간 사람을 만난다. 그의 글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하고 신성하리 만큼 종교적이다. 그의 삶은 어떤 구도자보다 더 철저하게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본질에 근접했고 어떤 종교적인 명제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나는 고흐를 통해서 오늘도 갈망한다. 모든 스치는 만남속에서 본질과의 마주침이 있기를, 본질에 근접한 삶을 살기를, 그리고 누구의 삶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삶을 살기를 갈망한다. 그것이 다른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절하된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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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2-11-0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했지만 그 사람을 떠나야 했던 모순과 히스테리와 광기로 가득찬 사람. 그렇지만 한없이 공감해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이다.고흐를 보면서 연민해마지 않았던 부분을 너무 정확히 표현해주셨네요 ^^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네요 ^^ 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것.. 또 다른 김수영을 보는 기분 ^^ㅎㅎ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
장 베르쿠테 지음 / 시공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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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2권으로 발간된 책이다. 시공 디스커버리는 인류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는데 중점은 두는 총서이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읽어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총서인것 같다. 이번 <잊혀진 이집트를 찾아서>는 내가 읽은 4번째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의 시리즈이다. 이 총서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글로 다소 건조한 느낌이 있어서 잘 읽혀지지는 않으나 고급스러운 종이질과 도판을 많이 넣어 시각적 읽기를 함께 시도하고 있어 딱딱한 문체가 보완되는 것 같다.

 

고대근동의 세계는 참으로 낯설고 생소하며 이국적인 세계이지만, 그 거대하고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문명의 세계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주로 파라오들의 연대와 그 업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나로써는 이집트의 도굴과 발견의 역사위주로 쓰여진 이 책에 그리 썩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이집트 발견의 역사 흐름에 대해서 간략하고 쉽게 쓰여져서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기에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첫장은 고대근동의 패권자이자 거대한 문명을 이룩한 이집트 문명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배경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4세기 이후 비잔틴 제국에서는 카톨릭이 지배적이었다. 391년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 안에 있는 이교도 신전을 모두 패쇄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그 무렵 이집트에는 전통적인 신(神)이나 여신을 신봉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신전의 패쇄는 예상치 못했던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까지 그곳 주민 사이에 쓰이던 상형문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집트 문명이 사라진 배경은 그리스 로마 제국에 의해 이집트가 점령되고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교도 신전의 패쇄 명령으로 인해 시작되었다. 신전이 패쇄되고 신관이 쫓겨나면서 이집트 문자는 점차 사라지게 되고 이집트 역사 사본이 보관되어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 없어지므로 이집트의 기억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이집트 문명이 그때 사라지지 않고 역사속에서 전달되었다면 오늘날의 건축이나, 천문학등 많은 학문들은 이집트 문명에 많은 빚을 졌을 것이고 처음 인류세계에 대한 더욱 명확한 그림을 그릴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잊혀지고 파괴되어진 이집트 문명을 그 자체의 매혹과 거대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여행자들의 방문을 받게 되면서 서서히 잊혀졌던 문명에 대한 기억들이 복원되기 시작한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세계를 점령하뎐 제국주의 시대에 드농, 드로베티, 벨조니, 솔트와 같은 전문적인 도굴꾼들-이 책에서는 위대한 모험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도 돈이 될만한 이집트 유물들을 수집하여 프랑스와 영국에 비싼 값에 팔아버린 도굴꾼에 지나지 않는다-에 의해 이집트의 유적이 발견되고 유물들이 수집되면서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해독되어 감추어진 문명을 드러내는 단초를 마련해 주게 되었다.

 

고고학에서는 유물자료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유물을 해석하는 문서자료이다. 그래서 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한 문명을 재발견하는데 매우 필수적인 것이다. 이집트 문명을 재발견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799년 알렉산드리아 근처 로제타에서 프랑스 육군 장교에 의해 발견된 로제타 스톤이였다. 이 로제타 스톤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으로 그리스어와 아랍어 그리고 이집트 상형문자로 구성된 비석이였고 이것을 프랑스의 고문서 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에 의해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해독되게 된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여러학자들의 연구가 쌓이고 자료들이 축적됨에 따라 이집트 문자에 대한 해독이 가능하게 되었다. 계속해서 투탄카멘이나 프수세네스 무덤과 같은 거대한 유적이 계속적으로 발견되면서 이집트의 역사는 조금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고 새롭게 발견되어 그 거대함과 이국적인 문명의 실체를 드러내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드러나는 이집트 문명의 거대함의 끝자락을 보고 나타내는 사람들의 반응은 놀람과 경외감이다. 1776년부터 3년동안 카이로에 머물면서 피라미드 내부들어간 사바리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간신히 1.2km쯤 전진했을 때, 두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의 머리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왕국과 제국이 붕괴하고 폐허가 되는 가운데서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고대의 유적을 바라보면서 경외감이 솟아올랐다. 이들을 건설한 사람들의 위대함에 영광이 있으라!

 

이집트는 놀랍과 경외의 시선을 갖게 한다. 인류역사상 이렇게 거대한 문명을 이룩한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종교가 생활이였고 이생보다 내세의 삶을 더욱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거대한 신들을 모신 신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다. 신비와 거대함과 놀람과 경외와 신으로 가득찬 이 이국적인 나라는 죽음 너머에 있는 내세에 대해 희망을 갖게하고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이상을 품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집트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문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첵에 오타도 여러곳에서 발견되더라. 특히 66쪽 '2차로 그러모은'은 '2차로 끌어모은'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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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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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성군이였던 정조. 그는 조선의 정치적 격량속에서 정치개혁과 학문의 진보 그리고 더 나은 조선을 향하여 매진했던 후세인이 기억하는 위대한 군주였다. 그는 먼저 학문에 끊임없이 학문의 진보를 위해 잠을 줄여가면 책을 읽었던 학자이며, 심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조선의 정치상황을 예민하게 조율하려 했던 노련한 정치가였다. 원래 임금이라는 나라의 최고어른은 평범한 사람이 근접하기 어려운 인물인 만큼 그에 대한 기록 또한 실록이라는 정사를 통해서만 단편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조라는 한 인물의 입체적이면서 한 인간으로써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보다 한 나라의 국부로서의 존경할 만한 이미지를 위해 첨삭, 은폐되어 국부로써의 모습으로 미화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정사나 실록을 통해서 온전히 알 수 없는 정조의 다각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바로 정조의 어찰첩이다. 어찰첩이라는 것은 이 책의 정의대로 한나라의 군주가 그의 신하들에게나 친족들에게 직접 써서 보낸 편지를 말한다. 이 어찰첩도 하나의 공식적인 정치적 행위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통 특정한 형식과 군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는 문체로 작성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정조의 어찰첩은 그러한 어찰첩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정조의 어찰첩은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견제인이였던 삼환지에게 4년에 걸쳐서 쓴 297통의 편지로써 매우 개인적인 어찰이였다. 이것은 정조가 삼환지에게 편지를 받고 바로 없애라는 어명을 여러번 내렸을 정도로 그의 개인적인 사견이나 감정들이 많이 포함된 편지였다. 이것이 바로 정조 어찰의 사료적 가치로써뿐 만아니라 정조라는 한 인간을 조명해 볼 수 있는 귀한 사료인 것이다.

 

나는 이 책 <정조의 비밀편지>를 읽으면서 불운하게 불귀의 객이 된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억울한 마음과 정치적으로 그러한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공격하는 정치적 상황속에서 유일한 혈육이였던 어머니 혜경국 홍씨와 의지하면서 온몸으로 한 나로 조선을 짊어진 정조가 한없이 가여웠고 그가 감당했어야 할 짐 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정조의 면모를 몇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정조는 군자학이나 성학론에 나오는 성군이기 보다는 자신의 성향을 자주 드러내는 독설이나 기만을 통해 벽파 집권세력에 대해 견제하고 그리고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정치가였다. 먼저 대중들이 알고 있는 정조의 이미지는 이산이라는 티비 드라마를 통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 이산에 나타난 정조의 이미지는 철인이며 학자인 군자형 선비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정조의 어찰첩을 통해서 밝혀진 그의 진정한 모습은 독설 마다하지 않고 본인에게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다혈질적인 정치가의 모습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치고 빠지는 예리한 정치가이다. 그는 신하들과 세상풍조의 어지러움을 화제로 대화하면서 모든 신하들이 나약하고 복지부동하다며 호통을 치는 반면에 심환지가 갑자기 소식이 끊겼을때는 약을 보내고 음식을 보내주면서 그의 환심을 사고 마음을 달래려는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정조는 정치적 상황을 파악하고 그것에 능동적이고 적절하게 대처한 정치가였다.

 

둘째 정조의 정치가라기 보다는 글 읽기를 사랑한 학자에 가깝다. 정조의 어찰첩에 자주등장하는 내용 중의 하나가 그가 책 읽기에 바빴다는 것이다. <주서>를 읽는 중임을 밝힌 편지중에는 그가 주자의 저서 100권을 앞에 놓고 밤낮 비점과 권점을 찍으며 책읽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조는 그의 만년에 거의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눈이 좋지 않고 온갖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독서에 열중하였다. 이것은 그의 본래 성향은 정치가라기 보다는 책읽기와 학문을 사랑한 학자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 어떤 군주로서 업무의 과중함도 책읽기의 열정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였다.

 

셋째 정조는 정치가이며 학자이기 이전에 외롭고 병약한 한 인간이였다. 그는 그 시대의 정치적 격동을 온몸으로 안고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였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병이 많았고 는 화병과 가슴의 심한 통증이 많다고 호소하였다. 그가 사망하기 전에 쓴 편지에는 그의 병세의 심각함이 자세히 드러나 있다. 이것은 그가 한 시대를 감당하며 달려온 그의 열정에 대한 반작용이였다. 의지할 사람없이 홀로 외로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품으며 감당했던 그의 무게는 그를 위대한 군주이기 이전에 홀로 외로운 한 인간이였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조의 비밀편지를 통해서 나는 한 시대를 감당하며 짊어져야 했던 한 인간으로써의 정조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의 후손으로써 그의 나라에 살고 있는 한사람으로써 무한한 감사와 애정과 연민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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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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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정말이지 과연 ‘열풍’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만해도 인문학은 찬밥이였다. 이공계 계열의 학과가 인기가 높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졸업하면 취업이 잘된다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이과를 선택하라고 하셨다. 그때 내가 순진했는지, 나 자신을 잘 몰랐는지, 아니면 그냥 효자(?)여서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과를 선택해서 갔다. 이과를 가자마자 나의 적성과는 전혀 다른 분야라서 꽤나 방황을 하며 학과 공부를 멀리했던 기억이 있다. 한창 전자분야가 각광을 받았던 터라 전기전자공학과는 매우 큰 인기 학과였다. 어쨌든 이렇게 홀대받던 ‘인문학’이 이제는 대세다. 확실히 그렇다. 고전을 공부하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르네상스가 이미 지났음에도 다시 인문학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만큼 인문학의 인기는 높다. 그 어렵고 잘 보지 않는 고리타분한 책으로 여겨지는 논어, 공자, 대학, 중용등의 동양고전에 대한 강의가 여기저기서 개최되고 사람들이 미어터질만큼 인기가 높다. 한 광고 크리에이터는 참된 창의력은 인문학의 바탕에서 나온다고 외친다. 성과를 중요시하는 경제경영분야에서도 그러한 성과를 내기 위한 기초토양으로 인문학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인문학, 인문학을 외친다. 적어도 인문학 책을 한권정도 보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딱이 확실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꼬집어서 설명해주는 사람을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인문학하면 그냥 읽기 어려운 문사철 정도의 책이라고만 설명할 뿐이다. 이렇게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음에도 인문학이 무엇이냐는 기초적인 질문에도 분명한 답을 잘 듣지 못하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는것 같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인문학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학문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어디까지가 인문학인가? 인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에서부터 역사, 그리고 문학, 즉 문사철이 인문학인가. 아니면 인문학의 반대학문인 과학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인문학인가. 암튼 인문학 열풍 만큼이나 인문학에 대한 무지의 열풍도 거세보인다. 나도 인문학을 좋아한다. 철학과 역사는 나의 적성에 맞고 상대적으로 가벼워보이는 소설이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하는 과학보다 인문학 분야가 나에게 훨씬 적성에 맞고 좋다. 그런데 정작 인문학을 어디서부터 공부해야할지를 물으면 도저히 답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성과와 창의의 기초가 되는 인문학은 범위도 넓지만 그 깊이도 깊어야 제대로 창의와 성과의 기초 토양분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문학의 열풍이 불지만 그 실체를 잡을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손에 잡힐만한 인문주의를 표방하려면 문사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넓이와 깊이에 조금이라도 맞닿아야 내공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한다면 철학에서부터 창의와 성과까지의 열매를 얻으려면 매우 높고 깊은 수준의 철학공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은 어디에서부터 공부해야 하는가? 이것은 인문학공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열풍이 불지만 그 실체가 잡히지 않은 넓고 깊은 인문학의 바다에서 조금이라고 인문학의 아웃라인을 잡기위해서는 안내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책 <START,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이 언급되어야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거대한 인문학의 바다에서 전체의 지형을 그려주고 각 분야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지식들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서 잘 정리해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을 인문학의 범위를 문사철로 좁게 잡은 것이 아니라 매우 포괄적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7개의 영역으로 인문학의 범위를 정하였다. 첫째는 심리학, 둘째는 회화, 셋째는 신화, 넷째는 역사, 다섯째는 현대 이전의 철학, 여섯째는 현대의 철학, 일곱째는 글로벌 이슈로 나누었다. 이러한 카테고리 분류는 인문학의 바다를 어디정도 항해할 수 있도록 전체 지형도를 그려준 것이다. 문학이 빠진것이 좀 아쉽기도 하고, 마지막 장에 글로벌 이슈를 포함시켜줌으로써 인문학이 단지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오늘날의 문제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보통 이러한 전체 지형을 그려주는 책은 전체내용을 가볍게 터치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이 빈약하고 지식의 나열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가벼운 터치이긴 하지만 내용이 부실하지는 않다. 각 분야의 지식들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서 가장 핫한 지식의 향연을 펼쳐주기 때문에 한 분야만 읽어도 그 아웃라인을 그릴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정도 정리를 위해서는 매우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전체적인 지형이 잡혔다. 특히 심리학 분야에서는 왜 인지심리학의 현재 최고 각광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뇌과학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었다. 전체 지도를 그려주는 시중에 나와있는 관련 서적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아마도 인간과 세상을 좀더 잘 이해하고 좀더 잘 관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도 느낀다. 인문학적 교양이 있는 사람들은 훨씬 이해의 폭이 넓고 그렇기에 함부로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좀더 깊고 넓게 볼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인문학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문학의 열풍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인문학의 바다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려는 이러한 책들은 우리들에게 인문학의 깊고 넓고 풍부한 세계로 안내해 주리라 생각한다. 확실히 인문학적 소양을 인간과 세상을 풍성하게 한다. 확실히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인문학의 내공을 풍기는 사람은 확실히 좀더 삶을 풍요롭게 살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조금의 역할을 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소개하는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들은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인문 교양의 주제들이다. 이 분야들은 소설에서부터 산업 전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담론을 불러일으키는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하나의 체계를 잡아둔다면 더없이 좋은 독서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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