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라딘에 올라온 글들 중 좋았던 글이 L 님의 글이었는데, 삼십대의 연애가 이십대의 그것과는 좀 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적에 감정이 폭죽처럼 터지는 것 같았다면 삼십대에는 밀려오는 감정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고. 


요즘의 나는 여러가지 면으로 노화를 실감한다. 작년부터 보이기 시작한 새치도 그렇고 푸석해진 머릿결이 그렇다. 짧아진 생리주기와 적어진 생리양에서도 노화를 느낀다. 예전엔 샤워를 해도 피부가 언제나 촉촉했는데, 이제는 건조해져서 가끔 바디로션을 바르고 싶어진다(라고 해서 바르진 않는다). 핸드크림을 필수로 겨울에 가지고 다니게 된 것도 노화를 느껴서이다. 손을 씻고나서 손이 건조하다는 걸 이렇게 실감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노화가 내게 가져다 준 것이다. 이런 신체적인 변화들이 많이 두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 먹는 것 자체가 싫지는 않다. 


나는 내가 여러가지 면에서 더 성숙해졌다는 걸 안다. 여전히 어린 시절처럼 고집 센 나이지만, 내가 나를 좀 더 잘 알게 된 것은 그동안의 삶이 내게 가져다준 것이다. 나이들면서 내게 좀 더 잘 맞는 사람들을 찾아 곁에 둘 수 있게 된 것 같다. 연애는 말해 무엇하랴, 내게 최상의 상대를 맞춤하게 찾아 함께할 수 있는 것도 나이 들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확실히 나이들수록 나는 점점 더 좋은 상대와 친구가 되고 아주 좋은 상대와 연애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나간 삶에 대한 반성도 나이들면서 가능해졌고, 내가 가진 단점이 무엇인지 또 장점은 무엇인지도 나이들면서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나는 과거의 나보다, 어린 시절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어 있었고, 그리고 지금의 나, 나이들고나서 내가 하는 연애가 좋다. 나는 삼십대 이후부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삼십대이후부터가 정말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서 다행이고, 이런 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사랑과 이별에 대해서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므로 익숙해진 것도 사실이다. 익숙해졌다해서 이별 후에 아프지 않은 건 결코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거다. 그렇지만,



삼십대를 살면서도 나의 사랑의 감정은 폭죽처럼 터진 적이 있다. 물론 늘상 그런것도 아니고 연애의 상대마다 그랬던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삼십대 후반까지도 내 감정이 정말로 말 그대로 지랄요동을 쳤던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게 싫어서 언제나 안정적인 상대와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자 했던건데, 그 격렬한 감정을 피하고 싶어서 조용한 연애를 선택했었던 것인데, 실상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때는 그 격렬한 감정을 맞닥뜨렸을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것이 괴로워 몸부림치지만, 그러나 나는 그런 극한의 고통을 행복으로 느꼈던 것 같다. 아아, 가장 최근에 그 격렬한 감정을 느꼈던 때가 떠오른다. 몇 해전이었는데, 아아아아아, 진짜 하루종일 그 남자 생각이 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거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아아, 차라리 이 남자를 모르는 채로 지낼까 생각할만큼 내 감정은 지독하게 격렬했다. 너무나 혼란스럽고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던 나는, 아니야 안정적인 내가 되어야 해,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자, 마음을 다스리자, 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하기 위한 액션을 취하기로 한다. 나는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사람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 그럼 어쩐다? 그래서!!!!!!!!!!!!!!!!!!!!



백팔배를 했었다.



백팔배 어플을 실행시켜두고 방안에 스탠드만 하나 켜두고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백팔배를 했다. 아니지, 차분한 마음이 되기 위해 한거지. 이거 하면 어차피 운동도 되고 마음이 가라앉을 거야. 나는 차분해질 거야. 평안이 찾아오겠지. 어느순간 몸이 힘들어지면, 나는 그남자 생각을 잊고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면, 나는 안정적인 잠으로 빠져들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백팔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일어났다 다시 절을 하는 매 순간순간마다 그 남자 생각만 나더라. 다 끝낸 후에도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고 감정의 폭풍에 휩쓸렸다. 



으음 이게 아니군, 이건 안되겠어, 다른 방법을 찾자. 뭐가 좋을까?


그리고 찾아낸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색칠공부!!!!!!!!!!!!! 그래, 이거야, 이걸 하자! 나는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두었고 이걸 하자고 36색 색연필까지 사두지 않았는가. 그러나 사두고 색칠을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혹여 이걸로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였다. 힐링북이라는데 힐링 되기 보다는 뭔가 칸을 메꾸고 색을 칠하는 것이 어떤 의무감으로 느껴져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시작하지 않고 있었더랬다. 그런 색칠공부에 나는 의존해보기로 한다. 그래서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자, 여길 연두색으로 칠했으니 여기는 초록색으로 칠할까, 아 이 색깔 썼으니 그렇다면 금색으로 칠해볼까, 아, 여기는 어떤 색으로 칠하지? 주황색이 좋을까? .... 하고 열심히 색을 칠하는 동안, 나는 온전히 색을 칠하는 행위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남자 생각이 1도 안났다. 내 머릿속엔 어떤 색으로 칠할까, 이것 밖에 없더라. 이것은 원래 멀티가 안되고 하나에만 집중하는 나의 성향 탓일 거다. 어쨌든 그런 영향으로 이것의 색을 칠하는 동안에는 내가 몹시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던 거다. 팔이 아프게 칠을 하는 동안, 나는 오로지 색연필과 그림에만 집중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이 책이 달고 있는 타이틀대로 '힐링북'이 되어주진 못했지만, 내게는 다른 생각을 잊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어줬다. 어떤 생각을 잠시라도 '잊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24시간 365일 내내 이 책에 색을 칠하며 지낼 수는 없다. 팔이 아파서 그만두는 시간이 찾아오고, 하다보면 또 지겨워져서 그만 두게 된다. 실상 내가 칠한 것도 이 책에서 두 장쯤 되나.... 두 장도 마저 다 칠하지도 않았어....그래서 색연필을 정리하고 책장을 덮으면 그때부터 또다시, 아, 팔아프다, 하고 주무름과 동시에 또다시!!!!!!!!




남자 생각이 난다. -0-




답이 없다. 생각나면 생각할 밖에. 이런 싯구가 있었는데...이런 비슷한 뉘앙스의 시 구절이 떠오를듯 말듯 안떠오르네? 뭐지? 찾았다!!! 아 나는 천재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말할 수 없는 애인

 

 

물이 없어도 표류하고 싶어서

외롭거나 괴롭지 않아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거나 영 돌아오지 않겠지

가까운 곳에서 찾았어

우리는 모였지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

지난해 여름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불규칙적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어휘와 문법을 습득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더라

말이 무색해서 팔다리를 브이 자로 벌렸지

매알매일 뱃멀미가 났어

멀리서 돈 벌러 온 한 이방인에게 나는 미약했지만

그의 까만 손가락이 내 얼굴을 두드렸지

장난스럽게 단지 두드리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

전혀 두드리지 않았는지 몰라

적절한 문장을 못 찾겠어 도무지 사랑할 수밖에

그는 자신의 긴 이야기를 음악 소리로 듣는 마을에 가서

내 갈색 귀에 다 털려버렸지 코 고는 소리도 뭔가 이상했어

외국인 남자는 어떨까 상상하지 않았다면

말 못할 관계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어

생면부지의 것들을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건 아니지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했어

시험 문항을 만들고

혼혈의 아이들을 낳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모국어를 섞어 말할지도 몰라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그래서 생각한건데, 나는 어쩐지 나이가 육십이 되고 팔십이 되어도 언제든 폭죽처럼 감정이 터지기도 할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아주 많은 것들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지만, 폭죽처럼 터지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계속계속 내 안에 있으면서 나를 구성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내가 손 쓸 수가 없는, 내가 도무지 해결할 수가 없는 성질의 것인 것 같다. 터진다면 터질 수밖에. 아하하하하.


아침부터 타 블로그에서도 좋은 글을 읽고 알라딘에서도 좋은 글을 읽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과거 회상도 하고... 나는 이런 글들이 좋다. 공감의 글, 생각하게 하는 글. 아 난 역시 글이 좋아 ㅠㅠ 글이 좋고 책이 좋다 ㅠㅠ 여러분 글을 많이 많이 써주세요!!!




아침에는 여자저차해서,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먹고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와서 빵을 먹었다. 과정을 쓰자면 길어서 생략하고 결론은 내가 먹었다는 건데, 내가 먹은 빵은 이것이었다.



스타벅스의 크랜베리 아몬드 롤! 그리고 사무실에서 내린 아메리카노. 아아, 진짜 넘나 좋은 맛. 눈물 나게 맛있었다. 크렌베리 아몬드 롤과 아메리카노는 진짜 환상의 궁합이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맛이랄까. 먹으면서 맛있다고 계속 감탄하면서 울고싶었다. 좋아 ㅠㅠ 이 맛있는 빵과 커피.. 아메리카노는 맛있는 빵을 먹을 때 진짜 베프이며 절친이야. ㅠㅠㅠㅠㅠㅠㅠ 아 빵과 커피가 너무나 좋구나. 나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 다이어트 하지 않는 삶이 이만배쯤 더 행복해.




동료와 나는 내 말에 빵터져서 웃으며 행복하게 먹는 일을 계속했다. 

정말 그렇다. 다이어트 하지 않는 삶이 다이어트 하는 삶보다 이만배쯤 더 행복하다. 이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살찐다면 살찔 수밖에. 술과 고기를 사랑하고 버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아,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오늘은 퇴근후에 강원도로 가는 기차를 탄다. 강원도에 도착해서 뭘 먹을까, 먹을 거 생각하면서 나는 또다시 행복에 잠긴다..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언제나 이렇듯 손 닿는 데 가까이 있지. 가까운 식당에, 레스토랑에, 까페에 .. 행복은 널려있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16-03-11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아침마다 빵을 먹는데 확실히 빵은 뭔가 살찌는 급행열차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행복감이 드는 건 짱짱맨입니다 ㅋㅋㅋ

다락방 2016-03-11 10:32   좋아요 0 | URL
저는 빵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응?) 아메리카노랑 먹을 때 진짜 행복감이 파도를 쳐요 ㅜㅜ ㅋㅋㅋㅋㅋ

웽스북스 2016-03-11 10: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달달한 빵일 수록 아메리카노 필수! ㅋㅋ

다락방 2016-03-11 10:36   좋아요 1 | URL
왜 행복한데 살이 쪄야하죠? 왜죠? ㅜㅜ ㅋㅋㅋㅋㅋ

젤리곰 2016-03-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저 이 글 즐찾해두고 싶어요 ㅠㅠ

다락방 2016-03-11 10:36   좋아요 0 | URL
제목 옆에 별을 찜하세요! ㅎㅎㅎㅎㅎ

젤리곰 2016-03-11 11:36   좋아요 0 | URL
찜!

다락방 2016-03-11 11:42   좋아요 0 | URL
굳! (쓰담쓰담)

레와 2016-03-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원도 먹방 사진 기대합니돠!!! 다락방~ ㅎㅎ

다락방 2016-03-11 11:42   좋아요 0 | URL
지금 목표는 소고기랑 감자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6-03-11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몇 십분씩 전화통 붙들고 씨름하고 나서,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오랜만에 알라딘을 들어왔는데,
다락방님의 이 글을 읽으니 일 생각은 다 날아가고,
웃음이 나네요. ^^

또 일에 시달려야겠지만, 잠시 웃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6-03-11 13:40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감은빛님께 웃음을 드릴 수 있었다니, 정말 좋은데요! 쉬엄쉬엄 하세요, 감은빛님.
조만간 소주 한 잔 합시다!

시이소오 2016-03-11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벚꽃 떨어질때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는 김훈의 문장이 떠오르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웃다 가요^^

다락방 2016-03-11 14:05   좋아요 0 | URL
아, 김훈이 그런 문장을 썼습니까? ㅎㅎ
저는 실상 남자 생각이라기 보다는 `그 남자` 생각에 쩔쩔맸었죠. 어떤 이에 대한 애정은 가끔 통제불능이에요. 휴..

시이소오 2016-03-1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남자`님 이었군요. 행복한 남자님이네요 ^^

다락방 2016-03-11 14:27   좋아요 1 | URL
그랬어야할텐데요. 그무렵 저는 행복했는데 그는 어땠을지 잘 모르겠어요. ㅎㅎ

사소한 분노 2016-03-1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책도 여럿 소개 받았네요:)

다락방 2016-03-14 09:27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

2016-03-14 0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4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