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물의 연인들 - 김선우 장편소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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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다. 이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라고 확신하는데, 나는 시처럼 쓰여진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프롤로그는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같고 구름같은 것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서 있는 느낌의 글이 아니라 붕 떠올려진 느낌. 이런식으로 감정적인 글에는 난 몰입할 수가 없는데. 내가 물론 이야기보다 문장에 더 끌릴지언정, 그것이 문장에 집착하느라 내용파악이 힘들어서는 결코 안되는것이지 않은가. 이 책을 더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프롤로그만 읽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했다.


그러나, 프롤로그만 그랬다. 그 붕- 떠있는 문장들은. 프롤로그를 지나고나서부터는 땅에 좀 더 가까이 내려온 느낌이었고, 곧 단단히 설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이제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중간까지는 그랬다. 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건가, 하고 내용 파악보다는 시처럼 쓰여진 문장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중간을 지나고나서부터야, 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고, 그 때부터는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재미있다는 건 아니다. 이 책은 마치 시 같고, 책 속의 사랑은 현실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이 사랑은 실재하는 사랑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환상이 만들어낸게 아닐까 싶어지는거다. 그러니 이 책의 주요한 배경이 되고 목적이 되고 모든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와이강이 파헤쳐진다는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것은 철저하게 만들어진 이야기, 더도 덜도 아니었다. 



홍수를 막아야아? 홍수는 막는 게 아니라 피해 사는 거다. 해서 우리 조상님네들 홍수터엔 집 안 짓고 살았다. 홍수 나면 넘치는 거 알면서 전망 좋다고 그 땅에 기득기득 금 긋고 막아서 쪼빗하게 제방 쌓고 길 닦고 집 지어 팔고 하니 피해지. 큰 비 와서 물 넘치는 땅은 사람들 게 아니라 강의 것이라. 그렇게 한 번씩 물이 넘쳐야 땅도 좋고 강물도 몸 풀어서 깨끗해지고 하는 거지. 그래야 또 거기서 온갖 것들이 살고. 그게 순리라.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제 잇속만 차리느라 금 긋고 둑 쌓았다 무너지는 게 사람 잘못이지 하늘 잘못이냐? 두고 봐라. 물길 막은 저놈의 댐 때문에 언젠가 사방에서 피눈물 흘리는 날이 올 거다. 물 많이 저장한다고? 허우구, 저렇게 강바닥 모래 퍼내서 물 많아지면 사람도 쑥 빠져 죽는 깊은 물만 있어 가지고 물 것들 날것들은 어째 살아? 깊은 물만 있으면 물 것들은 못 산다. 무릎 아래 오는 요래 야트막하게 흐르는 여울이라야 피라미, 모래무지, 송사리, 버들치 같은 게 살지. 사람 키 훌쩍 넘는 깊은 물에 살 수 있는 물고기는 많지 않은 법이다. 물 것들한텐 강바닥 모래랑 자갈이 집인데 그거 싹 긁어 가 버리면 알은 어디다 낳고? 새들도 얕은 물이라야 요래 걸어 다니면서 먹이를 잡지 쑥 빠지는 깊은 물만 있으면 먹이를 어째 잡아? 강변 모래밭, 자갈밭 수풀에 알 낳는 새들은 또 어쩌고. 강바닥 다 긁어 버리고 콘크리트 퍼부어 네모 번듯한 둑이랑 문으로 막아 놓으면 물이 많아져 서울 사람들 좋아하는 유람선은 뜨겠다만, 허이구, 아무것도 못 사는 더러운 물만 있는 그게 강이냐? 물이 흐르지 못하면 썩는 게 당연한 이친데 썩은 물이 바다처럼 많으면 뭘 해. 물 것들 다 죽어 없어지고 엔간히 더러운 물에도 참고 살 수 있는 잉어, 붕어만 득시글하게 남겠구만. 물을 그래 저장해 가지고 그 물을 다 먹나? 한강? 그 똥물 나도 봤다. 시멘트 벽 만들어 딱 가둬 놓은 한강 물 그래 양이 많은데 그 물은 왜 안 먹나? 안 먹는지 못 먹는지 왜 그 물은 유람선 띄우는 데나 쓰고 먹는 물은 멀찌가니 딴 데서 끌어다 먹고 이젠 그 짓도 모자라 이런 데까지 그 꼴 마들려 하는지. 온 나라 강들을 다 그래 만들어 가지고 썩은 물만 많아지면 참말로 먹는 물은 어쩔려고!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고? 나 같은 늙은이도 가만 앉아 생각해보면 아는 이치를 많이 배운 사람들이 하늘 무서운지 왜 모르는지, 참말! (pp.200-201)



책 속 무위암 할머니의 말들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유경의 어머니가 당하는 폭력과도 맞닿는다. 약하고 힘이 없어 아버지에게 늘 당하기만 해야했던 어머니. 이 책에 내가 별 하나를 더 줄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폭력과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에 대한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에 대한 공통점을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해설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경은 10대 소녀였던 어머니 한지숙을 강간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폭력이 바로 '생명의 강 살리기'로 포장된 '녹색 뉴딜' 정책을 닮았음을 간파한다. 아버지가 '저 여자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지른 온갖 폭력은, '내가 저 강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와이강에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너무도 유사했던 것이다. (p.272, 작품해설 中)



새삼 작가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없었던 인물을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써내려간다는 것이, 그것을 하고 싶은말과 연결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결코 흉내내지 못할 일들인 것만 같아서. 게다가 인쇄되어 책으로 나온이상 이 책은 불특정 다수가 읽을 수 있다. 한 명이 읽을 수도 있고 전 국민이 다 읽을 수도 있다. 그런점에서 작가가 '책'을 통해 하는 말은 얼마나 힘이 센가. 이 책은 분명 의미가 있지만 조금 더 단단하게 쓰여졌다면 지금보다 훨씬 힘이 센 책이 됐을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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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10-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내기가 쉽지 않으셨나 봅니다.

시처럼 쓰여진 소설이라....흠흠


다락방 2012-10-29 11:23   좋아요 0 | URL
중간까지는 몇 번의 갈등을 겪었어요. 그만 읽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다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Mephistopheles 2012-10-29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자면 "공주부양" 스타일 소설이군요.

다락방 2012-10-29 11:24   좋아요 0 | URL
프롤로그가 너무 안개같았어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그렇지만 중간부터는 잘 읽혔답니다. ㅎㅎ

레와 2012-10-2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중이 안되다가 어느순간 빠져들고 있음. 해서 락방 리뷰는 책 다 읽고 보겠음! ^^

다락방 2012-10-29 13:03   좋아요 0 | URL
ㅇㅇ 이 리뷰에 별 말 없어요. 다 읽고 구매자평 남겨봐요, 레와님. 꼭!!

moonnight 2012-10-29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시인으로 데뷔했다가 소설도 쓰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유경은 행복해졌나요? +_+;

다락방 2012-10-29 13:04   좋아요 0 | URL
흐음. 행복해졌다기 보다는 '행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쯤으로 말하는게 나을것 같아요. 지금은 결코 행복하지 않네요, 책 속의 유경은. ㅠㅠ

야클 2012-10-2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 이름은 일단 마음에 드네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2-10-29 13:13   좋아요 0 | URL
그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12-10-30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름은 맘에 들어요2 ㅎㅎ 일단은 대략 감 잡았어요. ㅋㅋ 근데 요새 단감이 단단하고 맛나요. 썰렁^^

다락방 2012-10-30 12:5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 책은 저보다는 프레이야님이 훨씬 더 잘 읽어내실 것 같아요. 프레이야님의 마음에 드는 책이 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전 확 좋진 않네요. ㅎㅎ 주인공 이름은 저도 마음에 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