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 마음산책
중언부언인 것 같지만,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칭찬해두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듯하다. 당신은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흐르는 자신의 피를 보게 될 것이며,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할 것이며,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사이에 스며든 '살아간다는 것'의 서글픔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은 완벽한 가을 남자/가을 여자가 될 수 있다. 가을 남자/가을 여자가 된다는 건 지금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 쓰라린 감정을 겪으며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후회하며, 누군가는 금세 잊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책을 쓰기도 한다. 눈부신 단어나 문장 같은 것은 없다. 담담한 단어 하나, 평이한 문장 하나가 줄줄이 이어져 읽는 이의 마음을 옭아맨다. 그저 좋은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마땅히 김연수의 팬이 아니라도, '문단'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은 거두었더라도 이 책은 읽어볼 만 하다. 소설이니 문학이니 관심 없어도 상관없다. 김연수의 단편들은 보편의 감성에서 출발해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과 감정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연애'가 세상에서 가장 중차대한 일이 된 세대에게 권장할 만 하날까? 아니면 그들에 대한 어떤 가능성? 쉽사리 떠올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대중적'이라 할 만한 영역 안에서 '꼭 거기 있어야만 할' 이유를 가지고 서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대체로 믿고, 그가 풀어낸 이야기의 실타래를 얼마간 좋아한다. 그가 직접 말했듯 '우연에 우연을 거쳐 필연 같은'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네코무라씨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
헤어진 도련님과 만나기 위해 가정부가 된 고양이 네코무라 네코. 네코무라 네코가 좋은 이유라면, 앞치마 매듭을 세로로 묶을 줄 알고 (그 모습이 앙증) 네코무라이스를 잘 만들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궁금) 무엇보다 "하아~ 생선을 입에 물고~ 뛰어라 3번가로~ 뛰어라~ 뛰어라~ 뛰어라 4번가로 하아~" 혹은 "아아~ 열혈~ 열혈~ 열혈 형사~ 귀신의 눈에도~ 부처의 눈물은 흐른다네~ 울보~ 울보~" 같은 노래를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부를 줄 안다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좀 흥겹기도 하고... 라고 해둘까. (대충 넘어가고 있어요.)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데, 열심이기도 하고, 배려도 좋다. 친구 삼고 싶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배우 배용준의 첫 번째 산문집. 방송인들의 글쓰기 열풍이 거세진 하반기에 ‘눈에 띄는 방송인 에세이’로 이 책을 꼽고 싶다. 배용준이란 이름 석자만 아는 상황에서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그가 보여준 책에 대한 진지함이었다. 이 책에는 여행체험, 명소 소개를 넘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발로 뛰며 체험한 지난 1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곳곳에는 그가 수집한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은 차(茶) 소개글, 그 중에서도 와인과 차를 비교한 부분이었다. 추석연휴, 혹은 주말에 쉬엄쉬엄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다카페 일기  모리 유지 지음 / 북스코프
예술 MD의 서재를 엿보다 우연히 발견한 주옥같은 책. 2006년 일본 블로그 대상을 수상한 모리 유지의 블로그 '다카페 일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아내 다짱, 딸 바다와 아들 하늘 그리고 개 와쿠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짤막한 일기가 전부일 뿐이지만, 단 두가지 요소 만으로도 '행복은 바로 이것!'이란 깨달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보고 또 봐도 행복해지는 이 책을 지인분들께 선물해 드렸다. 한결 같은 반응은, '정말 마음이 따듯해지는 좋은 책이더라’ 였다. 후속편 번역서의 12월 출간예정 소식을 접했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지인에게 선물은 해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경험상, 100% 대만족!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 섬앤섬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에 소개된 이 책은 아프리카 여성할례에 관한 실화를 소개한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이자 유엔의 특별인권대사인 와리스 디리의 실제 삶을 다룬다. 유목민이었던 유년시절 부터 수차례의 강간 사건, 런던에서의 가정부 생활, 모델생활, 위장결혼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까지, 그녀의 파란한 인생이 <사막의 꽃>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와리스 디리의 용기있는 고백을 통해 한 여성의 고난 극복과정과, 아프리카 여성의 인권 실태를 접할 수 있다. 후속작 <사막의 새벽>과 베스트셀러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함께 추천한다.

읽어보면 좋은 책 : 사막의 새벽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 문예출판사
“긴 하루를 채우는 일들, 우리와 동류인 인간들과의 관계를 위해 고독에서 우리를 떼어 내는 집착들의 총체를 사람들은 추락이니, 일상적 삶이니, 또는 동물성이니, 타락이니, 추잡한 물질주의니, 이렇게 쓸데없이 부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코 하찮은 일일 수 없다. 진정한 시간은 본질적으로 무아지경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시계를 산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분명 일상적 삶은 구원에 몰두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휴일은 필요하다. 문제는, 레비나스도 우리에게 2009년 추석이 이렇게 짧은 이유를 납득시킬 수는 없다는 데에 있다.

삶으로서의 은유  G. 레이코프 & M. 존슨 지음 / 박이정
“아마도 가장 명백한 존재론적 은유는 물리적 대상을 사람으로 구체화하는 은유일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개체에 대한 넓고 다양한 경험을 인간의 동기화나 특성, 활동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해 준다. 여기에 몇 가지 실례가 있다.” - Life has cheated me. (삶이 나를 속여 왔다.) - The long matrix of XLS file has attacked him. (기나긴 엑셀 파일 속 숫자의 행렬이 그를 공격했다.) - Holiday bonus knocked his door and said, “Oops, wrong house!” (추석 보너스가 그의 방문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이런, 집을 잘못 찾았네!”)

에티카   B.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제3부 정리 28. 우리는 기쁨을 가져오리라고 우리들이 표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에 모순되며 슬픔을 가져오리라고 표상되는 모든 것은 멀리하거나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증명 : 나는 언제나 멋진 글을 쓰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영혼을 팔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았고, 이내 나는 그것을 버렸다. 명절을 싫어하게 된 것이 그 전인지 그 이후인지는 이 정리의 증명대상이 아니다. - Q.E.D.

읽어보면 좋은 책 : 끝과 시작  / D에게 보낸 편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필립 퍼키스 지음 / 눈빛
얇은 책. 어디를 펼쳐도 상관없는 책. 문단 사이 어디에나 정적이 시간을 타고 흐른다. 그러나 사진 찍는 많은 사람들이 느꼈겠지만, 이 책은 다소 고통스럽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내, 그러나 목적 없는 인내가 거기에 있다. 눈앞에서 사그라지는 저녁의 빛을 아무 조바심 없이 바라보기. 또는 수십 년의 흐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어쩌면 그것들이 '살아가기'의 다른 이름이어서 읽기가 이렇게 뻐근한지도 모르겠다. 해를 거듭하며 읽을 때마다 마음이 더 아려오는 책. 읽고 나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책. 그러니까, 늘, 조용히 혼자 떠날 때 읽는 책.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숀 탠 지음 / 사계절출판사
요즘 어디 떠날 때는 짧은 이야기를 읽게 된다. 각 단편을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서다. 흡입력 있는 장편 스릴러가 시간을 보내기에는 가장 좋지만, 다섯 시간 정도를 혼자 앉아 있을 기회가 점점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에는 일부러 읽지 않는다. 짧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정말 아무 할 일이 없는 채로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숀 탠이라면 더더욱 좋을 거다. 특유의 아름답고 쓸쓸하고 쉽게 중심을 찾아낼 수 없는 이야기들은 좋은 초콜렛처럼 깊고 진하다. 이런저런 추억 때문에 몇 년 동안은 읽지 못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첫 이야기를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 황금가지
야구란 무엇인가? 우연과 확률이 뭉뚱그려진 운명과 각양각색의 의지가 부딪히는 격전지. "모두들 실수한 가운데 한 명만이 정신을 차렸지만, 그 멀쩡한 한 명 때문에 점수를 내준" 아이러니의 박물관.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의도를 읽고 또 읽는 하드보일드 포커 하우스. 각종 공격 작전이나 수비 시프트, 오늘은 왜 커브가 말을 안들을까와 같은 수많은 딜레마가 있고, 그 모든 인간적인 딜레마를 초월한 듯한 초인이 갑자기 출현하기도 한다. 야구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모든 것이다. 야구 팬들은 이 멋진 책 한 권의 진가를 알 수 있어서 좀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야구 책? 가을은 무엇보다 야구의 계절이니까.





할머니의 레시피   이미애 지음 / 아이세움
올해 들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요리 학원에 등록하겠다는 계획을 연말까지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감자조림 정도는 기똥차게 만들고 싶고, 제과제빵에 꽃게탕까지 마스터 하고 싶은... 마음만, 마음만 굴뚝 같다. <할머니의 레시피>에서 잔잔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또 나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도 음식에 대한 관심이나 기억이나 욕망은 상당 부분 가족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크 상뻬 지음 / 별천지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읽고, 짝사랑했던 국어 선생님께 선물했던 책이다.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습장에 따라 그리기도 많이 했었고... 다시 읽어보니 애틋한 기억이 새록새록.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꼭 한번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처음 읽었던 10년 전에도 오늘도 그 친구가 많이 보고 싶다.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예옥
감격. 이런 호강(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을 읽는)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누려본다. "시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산문처럼 생활한다"는 구절에서 한 번 멈추고, (직장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을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 업신여기고 싶기도 하며 또 측은하게 여기고도 싶었다."라는 문장에서 또 한 번... 아름답다. 게이타로의 독백은 너무도 적나라하고, 그 눈길은 너무도 사소한 것에 머문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데엔 늘 또렷한 이유가 있었다. 우아함과 기품,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할 유머 감각. 이 세 가지는 독서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 직장인 도시락 전략 / 결혼하고 싶어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 지음 / 민음사
카인과 아벨, 팜므파탈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은 역시 대가의 작품답다. 1권만 해도 505쪽 분량, 3대에 걸친 가족사, 원죄와 인간 등에 대한 심오한 고찰... 하지만 한번 잡으면 손에서 떼어놓기 어렵다. (2권이 없어서 따로 주문하고 어쩌고 하며 손을 놓았다가 아직 못 읽고 있지만 ;;) 내가 생각하는 1권의 클라이막스는 캐시가 애덤의 어깨에 총을 쏘고 갓 태어난 쌍둥이를 버려둔 채 떠난 후, 새뮤얼(실제 존 스타인벡의 외조부를 바탕으로 한 인물로 살리나스로 이주해 온 애덤의 정착을 돕는 이웃사촌이랄까)과 애덤의 요리사 리가 실의에 빠진 애덤을 위로하며 쌍둥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다. 새뮤얼과 리가 벌이는 카인과 아벨, 원죄에 대한 대화는 만들다 손 놓아버린 애덤의 정원(에덴동산) 한 구석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면 왠지모를 아쉬움에, 종교가 없는 나도 성경을 한번쯤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친구가 되기 5분 전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 푸른숲
친구 사이란 책이나 영화에서처럼 극적이거나 운명적이지 않다. 어쩌다 짝이 되어 친해지거나, 친구의 친구와 다같이 어울리거나, 사소한 오해로 아예 멀어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한 두명의 친구로 만족하지만, 또 어떤 이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과 친해져야만 한다. 이 책에는 학창 시절의 모든 것(?)이랄 수도 있는 친구 사이, 그 관계의 미묘함과 주인공들의 성장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다양하게 녹아있다. 겉으로 보이는 친구 사이의 우정, 해맑음 이런 것 말고 그 관계들 속의 처절함과 복잡미묘함이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십년 이십년 이어지는 우정도 작은 사건, 사소한 시간과 함께 시작되고 '친구가 되기 5분 전'의 어색함과 설레임은 참 좋은 기억으로 평생 남는다. 오늘은 오랫만에 먼저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헤티 판 더 레이트.프란스 X. 프로에이 지음 / 북폴리오
이 책의 부제는 이렇다. '0~20개월까지, 꼬마 아인슈타인을 위한 두뇌육아법'. 그래서 살까말까 고민했다. 나는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말 못하는 우리 아가의 마음을 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좋은부모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으면서 함께 산 이 책이 내 마음을 가장 달래 주었다. 부제만 빼면 최고다! - '천사처럼 잠든 아가'라는 말은 한 시간마다 한번씩 깨서 운다든지, 엄마 품에서 내려놓으면 칭얼대서 엄마를 불면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예요, 아기들은 항상 똑같지 않아서요, 어제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었지만 오늘은 어디 아픈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마를 힘들게 한답니다. 오늘 하루종일 우는 아가를 보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시죠? 나만 왜 힘든가, 나는 엄마 자격이 없나 우울하시죠? 아가들은요.. 엄마를 괴롭히려고 그러는게 아니예요, 아가들은 매일 매일 세상에 적응하고 눈부시게 자라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힘차게 도약하느라 그러는 거니 엄마들이 조금 더 따듯하게 안아주세요. 내일 아가는 몸도 마음도 한뼘씩 쑥쑥 자라 있을 거예요.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 구름빵 (책+인형): 한정판




야구 아는 여자   김정란 지음 / 나무수
야구의 인기가 예년보다 더했던 한 해, ‘야구 모르는 여자’로 사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더구나 프로야구라는 세계는 대강의 야구 지식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거대해 보였다. 그래서 손에 쥐기 시작한 여러 야구 도서 중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 <야구 아는 여자>의 장점은 간단 명료하다. 내용이 쉽고 구성이 간결하며 무엇보다 야구 기자였던 지은이가 프로야구를 알기 쉽도록 친절히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야구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좋은 책 한 권과 좋아하는 선수가 생겼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흐뭇하다.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오소희 씨의 여행 이력은 특이하다.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들과 터키, 라오스 여행은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동행했다. 그 중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을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서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낯선 여행지에서 도리어 작가의 삶을 마주하게 될 때라면, 그러한 지점에서 오소희 씨의 여행기는 눈부시다. 평소에도 열린 마음과 올곧은 성품으로 세상을 살 것 같은 그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벌써 새로운 여행기가 기다려진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2009년은 두 대통령의 서거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 역사에 이례적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가 실린 이 책의 추천사에서 故 김대중 대통령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라고 당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현대사를 위해서라도 남은 이들에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고인이 된 두 분의 대통령에 대해 공부할 의무가 있단 생각이 든다. “열매가 그렇게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싹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싹이 있어야 하나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결실이 있는 일인지는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하고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싹을 틔우고…… 말하자면 물을 주고 키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안 된다고 전제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고, 멀리 보면 결국은 다 그렇게 가게 되어 있는 일 중에 내 몫이 얼마인지 몰라서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시야를 짧게,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지 진짜 안 되는 건 없다, 하물며 노력할 가치조차 없는 것은 정말 없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p. 41, 42 중에서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이의 사생활  / 지미 코리건




1歲から100歲の夢   日本ドリ-ムプロジェクト 엮음 / いろは出版
타이틀 그대로 1살짜리 아기부터 100세 할이버지까지, 100명의 '꿈'을 개개인의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글을 모르는 아이는 그림으로, 겨우 글자를 배운 아이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5살 스기우라 코우키의 꿈, '어른이 되면 엄마를 어깨에 태워 구름 위를 보여주는 것' 22세 오구치 마사오의 꿈, '불꽃놀이 장인이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것' 92세 야스다 노부의 꿈, '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작년에 시작한 대학통신교육 사진 코스를 졸업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책.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蛇藏&海野?子 지음 / メディアファクトリ-
외국인을 상대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본어 학교 교사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코믹 에세이. 짧은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お』와『を』, 『才』와『歳』, 『教えて頂けますか』와『教えて下さいませんか』의 차이 등, 외국인이 가지는 일본어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에세이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일본어 테스트' 와 ' 외국인 학생이 모국에 가져가고 싶은 것('とりあえず全部'라는 대답에 한참 웃었다)'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는 원래 '코믹에세이극장' 이라는 사이트(http://www.comicessay.com/series/nihonjin.html)에 연재되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지금은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2가 연재 중이다. ('코믹에세이극장' 에서는 타카기 나오코(たかぎなおこ)나 오구리 사오리(小栗左多里)의 에세이도 볼 수 있다)

書店繁盛記 田口 久美子 지음 / ポプラ社
지하 1층 + 지상 9층, 도쿄 최대의 서점인 쥰쿠도 이케부쿠로점에서 일하는 저자의 '서점 뒷이야기'. 지난주에 구입해서 아직 몇 장 읽지 못했다. 모든 서점이 번성하기를' 바라며'서점전성기' 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첫 장의 '私はリアル書店で働いています' 라는 문장에 끌려 구입했는데, 짧은 한 문장만으로도 '(인터넷 서점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서점에서 책을 접하며 일하고 있다' 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환경 자체가 다른 부분이 많지만, 목차만 훑어봐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밀레니엄 3부작  스티그 라르손 지음 / 아르테
올해 읽은 추리.스릴러 소설 중 단연코 가장 재미있다.('가장 재미있다'에 밑줄과 따옴표 추가.) 비밀을 간직한 대가족과 소녀의 실종, 미디어와 재벌, 첨단 기술과 해킹, 여성학대와 냉전의 잔재...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여러 소재들을 정교하고 설득력있는 줄거리 속에 영리하게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생각했으나, 책을 읽어갈수록 정신없이 빠져들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시대 배경과 주변 인물 하나하나까지 제대로 구축했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와 비밀의 열쇠를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도 발군이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사상 최강(?!)의 여성 캐릭터 리스베트가 등장한다. 그녀의 능력은 사실 비현실적으로 초인적인 것이지만 묘하게도 그냥 납득이 간다. 작가가 이 3부작을 완결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안도하면서도, 이후 리스베트와 미카벨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이 아쉬움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가 나이 50도 안되어 사망한 아쉬움에 비견된다.) 장르소설 팬이라면 필독을 권함. 단, 3부작, 총 6권이므로 바쁠 때는 집어들지 말 것.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 GONZO
<은하수...> 이야기가 나온 김에 SF소설 한 권. 올 늦여름 출간된 <여름으로 가는 문>은 처음 소개되는 책은 아니다. 이전에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완역본이 정식 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지극히 '낭만적인' SF 소설이다. 시간여행과 로봇이 등장하긴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구닥다리처럼 보일 정도로 소박한 상상력이다. 허나 출간 50년이 지난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상상력보다는, 이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 삶에 대한 희망과 낙관이다. 책의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에 그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주인공의 고양이 피트는 난방 문제에 예민하다. 피트는 겨울을 매우 싫어하여 문밖에 눈이 보이면 바깥 나들이를 거부한다. 주인공의 집에는 문이 열두 개 있는데, 피트는 그 문 중 하나는 여름으로 이어진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매번 문 열두 개를 일일이 열어보이며 바깥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줘야만 한다. 그러나 피트는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는 작업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러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다. 이러한 긍정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삶에 플러스 에너지가 된다. 나도 여전히 믿고 싶다. 거기 어딘가에 나의 '여름으로 가는 문'이 있다는 것을. SF 팬이 아니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볍고 낭만적인-약간은 닭살스러울 수도-사랑 이야기. (단, 하인라인의 다른 작품도 이럴 거라고 오해하지는 말 것.)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애니북스
걸작 만화 <바나나 피시>의 작가 요시다 아키미의 최신작. 이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어른스러운지, 그리하여 읽는 이를 부끄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쳐야 할 때를 안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확실히 나아간다. 크게 웃고 크게 울고, 또한 솔직하다. 무심하고 평온해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일들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것인지... 바닷가 마을 네 자매의 다음 이야기가 얼른 나오길.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웃라이어 / 야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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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 동문선
“나는 기호를 찾는다? 그러나 무엇의 기호를? 내가 읽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아니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혹은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또는 고문서학과 점성술을 혼합한 방식으로 내게 일어날 일의 예고가 기록된 것을 해독하면서 내 미래를 읽으려는 걸까? 결국 내가 매달려 있는 질문은, 그리하여 내가 그 사람의 얼굴에서 끈질기게 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난 당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죠?라는 질문이 아닐까?” (305p, ‘기호의 불확실성’ 중에서)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레나타 살레클 / 비(도서출판b)
“사랑하는 사람은 타자 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 - 대상 a, 혹은 라캉이 또한 아갈마agalma라 부르는 것-을 지각한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이 이 대상을, 즉 사랑받는 사람 속에 있는 그/녀 자신보다 더한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사랑에 빠진다.” (78p, ‘사랑과 욕망’ 중에서) 라캉을 전유하는 살레클의 문맥에서 바르트의 마지막 질문을 번역하자면 그것은 이렇게 될 것이다. “나에게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 a가 있나요?”

향연 - 사랑에 관하여   플라톤 지음 / 문학과지성사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았을 때 / 우리는 막 둘로 찢겨 있었지 / 당신은 나를 보고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어 / 당신은 어딘지 낯익었지만 / 나는 알아보지 못했지 / 당신의 얼굴과 내 눈 위를 흐르던 피 때문에 / 하지만 당신의 표정에 난 맹세할 수도 있어 / 네 영혼에 깊이 박힌 고통이 / 내 영혼에 박힌 고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 그건 고통 / 똑바로 잘려 내려가 / 심장을 반으로 나눈 그것을 /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 다시 한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 우리는 사랑을 나누지 / 사랑을 // 춥고 어두운 저녁 / 아주 오래전 / 제우스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 이건 아주 슬픈 이야기 / 어떻게 우리가 외롭게 두발로 선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 그래 이건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영화 ‘Hedwig’의 O.S.T 중 ‘origin of love’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바로 <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이건 분명 일반적인 의미와 바르트적인 의미 모두에서의 ‘신화’이지만, 나는 다시 바르트를 인용한다.

“완전한 결합에의 꿈. 사람들은 그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지속된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아테네의 묘비 위에는 죽은 사람을 영웅시하는 묘비 대신에 손을 잡고 있는 부부가 서로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제삼의 힘만이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 ‘당신 없이는 나 또한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라는 표현을 완성하는 장례이다.” 나는 바로 이 재현된 장례에서 내 꿈의 증거를 찾는다. 나는 그것이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믿을 수 있다(불가능의 유일한 형태가 불멸이다).” (325~326p, '결합‘ 중에서)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의 역사  • Love and Other Demons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오멜라스
인식론적인 한계를 기반으로 수많은 의미를 뿜어내는 SF지만, 종종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은 사랑했던 기억들과 강제로 만나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다. 현실로 되살아난 추억과 재회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다는 이야기는 추억과 상실 때문에 후회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자각이다. 끝난 일은 끝난 일이다. 추억은 사라진 것들이므로 쓰라리지만,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더께가 앉을 때까지 상처로 남고,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나가야만 한다. 심지어 추억이 흉터를 찢으면서 되살아 나타나더라도.

느릅나무 밑의 욕망  유진 오닐 지음 / 범우사
욕망은 자주 빗나가고 때로 오해할지언정 성실하고 거짓이 없다. 때문에 욕망-애정은 거의 생존과 같은 '올인' 등급에 놓여 마땅...할지도 모른다. 프론티어 정신이란게 보통 물신주의와 폭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는 폭력은 선명한 욕구(누가 거기에 선악의 이름을 감히 들이대는가?)에 의해 밝게 불타오르며 일체의 도그마를 부정하고 거기에 도전한다. 영화 '도그빌'에서 마을의 대로 이름이 (느릅나무 없는) 느릅나무 거리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느릅나무가 뿜어내는 그 처절한 애욕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서부극 같은 판타지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종이시계   앤 타일러 지음 / 문예출판사
아는 분이 말씀하시길 “'그래도' 내일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될 때쯤이면 좋아지는 소설”이라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노부부의 하루. 부인의 가족애는 자꾸 정반대의 결과를 내고, 남편의 유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일매일은 별날 것도 없고 실수 투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잘자요라고 말하고 오늘 밤을 지내고 나면, 일생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온 신뢰라는 마법이 그 모든 잡음들까지 기억의 앨범 속에 고이 포개놓을 것이다. 생활과 사랑은 결코 함께일 수 없다는 연애론자들에게 날리는 쌉쌀하면서도 따뜻한 반격, 소설이 현실에 선물하는 최대치의 애정이다.

읽어보면 좋은 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Back to Black




아기 오는 날   이와사키 치히로 지음 / 프로메테우스
'엄마는 오래오래 집에 없었어 / 그치만 오늘은 / 아기랑 함께 온대' 이러고 시작하는 그림책 <아기 오는 날>. 물기를 듬뿍 머금은 붓터치의 그림, 동생을 처음 만나는 설레임과 기대에 가득찬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곧 첫 아이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은 아이가 말하고 있지만 어른에게 더 감동스럽다. 조용히 가만가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야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나도 마냥 설레인다.. 아기 오는 날, 귀여운 내 아기.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 문이당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사회적 편견이 있고, 작은 거짓말을 한 아이가 있고, 그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와 비슷하다. 하지만 1969년, 카스트 제도가 사람들을 나누고, 공산주의가 사회를 막 뒤흔들기 시작한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는 훨씬 처절하다. 처음,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무'와 그 쌍둥이 아이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작가의 재치넘치는 말장난과 함께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이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건의 복선이 되고... 나는 읽으면서 엉엉 울었고, 사흘 밤낮을 마음이 허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감성이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읽은 지 7~8년은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이보다 더 마음 아프고 잘 쓰여진 소설은 보질 못했다

바람의 나라 스페셜 에디션 1   김진 지음 / 이코믹스미디어
치밀한 역사고증이나 빡빡한 대사는 너무나 내 취향이 아니라 건성으로 읽었다.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방대한 줄거리 속에 숨어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아름답다. 마음이 약해서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자식들을 죽여서까지 왕의 자리를 유지해야 했던 아버지 유리왕,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힘겹게 왕이 되고, 또 대륙 정벌의 원대한 꿈을 꾸는 대무신왕 무휼, 무휼의 사랑하는 연이, 그 아내가 목숨을 바쳐 지켜내었으나 자신과 대립되는 수호신을 가졌기에 죽여야 할지 모를 아들 호동, 그리고 신분 상승의 욕심만큼 사랑도 원했던 무휼의 정비 이지 등 모든 사랑과 모든 마음들이 아름답고 안타깝고 애절하다. 그나저나, 완결은 언제쯤..?

읽어보면 좋은 책 :최종병기 그녀 1  • 타인에게 말걸기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이 단편에는 사랑이라 불리는 것의 대부분이 들어 있다. 열여덟 나이에 감상적으로 찾아드는 사랑에 대한 예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 만남 자체가 '우주적인 기적'이라고 하는 나름의 정의, 서로에게 100퍼센트는 되어줄 수 없다고 하는 명백한 진실, 그러나 명백히 빛나던 한 순간에 대한 기억, 이후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슬픈 현실까지. 무엇보다도 이것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은 가상의 기억이라 고백하는 마지막 문장이 가장 진실되지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이자 폄하 같은 단편. 열여덟살의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4월에 만났으면 했지만.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지음 / 문학과지성사
'도시의 눈 - 겨울 판화 2'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 날,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 눈을 털어내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스매싱 펌킨스가 Try, Try, Try의 뮤직 비디오에서 극단적 '병든 우리 사랑' 전형을 보여줬다면, '도시의 눈'은 뭐랄까 현실적으로 병든 우리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아 종종 떠올리게 된다. 그저 단어와 문장이 튀는 느낌이 그랬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새벽 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 있다.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河口로 뛰어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 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

Release   Pet Shop Boys / 이엠아이(EMI)
그들의 의도가 어찌하였건 존재 자체가 사랑과 연애담에 수렴해 보이는 펫샵보이스. 가난한 이민자를 노래한 'London', 길거리에 좌판을 벌인 연인을 그리워하는 'Home and dry', 실제로는 정치적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온전한 실연가로도 보이는 'I get along', 호모포비아에 의해 처형된 게이 청년을 노래하는 'Birthday boy', 'Love is a catastrophe'는 제목부터가 '사랑은 재앙'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발라드처럼만 들리는 이들을 어찌할고. 사랑하면 오르는 이미지의 최대치는 이들의 멜로디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저씨들의 새 앨범 [Yes]의 첫 싱글 제목은 'Love Etc.'라고 한다.)

읽어보면 좋은 책 :100편의 사랑 소네트  •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미나 지음 / 걷는나무
<그 남자 그 여자> <아이 러브 유>의 작가 이미나 신작.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섬세하고 감각적인 사랑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처음 하는 이별도 아닌데 무너져 내리는 마음' 때문에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두려울 때가 있다.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읽다보면 '곁에 있는 사랑이 고맙고 소중하다' '아프더라도 사랑은 다시 시작되어야만 한다'를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게 된다. 마음을 울리는 111가지 사랑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 은행나무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사랑을 말해줘>는 소리없는 세계에서 살아온 교코와 시끄러운 생활에 익숙한 슌페이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정적과 소음이란 대립적 상황을 통해 독특한 연애가 펼쳐진다. 남자주인공 슌페이가 교코의 정적을 경험하면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모든 것을 소통해야만 진심이 전해진다'고 믿었던 나. <사랑을 말해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진실된 교감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지음 / 열린책들
프랑스 작가 카롤링 봉그랑의 두 번째 작품. 25살의 콩스탕스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서 우연히 낙서를 발견한다. 대여하는 책마다 발견되는 밑줄을 통해 정체모를 '밑줄 긋는 남자'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나가는 여정은 그녀의 무미건조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결국 밑줄 긋는 남자는 찾지 못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러브스토리. 영화 '아멜리에'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특이하고도 흥미진진한 사랑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읽어보면 좋은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연애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 북폴리오
은근히 내 취향에 맞았던 소설.(표지까지도..) 가슴을 후벼파거나 아주 불타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의 다른 작품처럼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때로는 약간의 눈물이 필요해지는 장면도 있다. 뭐랄까, 아련한 그리움에 잠기게 하는 잔잔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레볼루션 No.3>이다.

심리 브레이크   김은선 지음 / 책만드는집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의 인기코너를 책으로 펴낸 것인데, 그야말로 읽는 재미 102%이다. 물론 잘 맞지 않는다해도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당신은 스토커 기질이 있는가?', '당신의 연애 유효기간은?',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뭘 하겠는가?'와 같은 재미있는 연애 심리 테스트가 96개나 담겨 있다.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Keith Jarrett / ECM
조용하고 아늑한 응접실도 좋고, 여의도의 야경을 바라보며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도 좋다. 이 음반을 틀어 놓으면 그 행복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하는 밤의 멜로디'라는 앨범 제목이 주는 느낌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키스 자렛의 마니아로서 가장 아끼는 음반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마지막 강의




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 민음사
'이 소설에는 섹스도 SM도 마약도 전쟁도 없다' 좀처럼 자기 글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지 않는 무라카미 류가 <교코>의 후기에서만큼은 저렇게 밝히고 있다.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 없고, 하나 없어 보이는 일본인 교코. 트럭 운전일을 하며 살아온 그녀를 지탱하는 희망은 단 하나 뿐이다. 어린 시절 미군 기지 근처에서 자신에게 댄스를 가르쳐준 호세를 만나는 것. 만나서 뭐 어쩌겠다는 심산도 아니고, 그저 그를 만나 다시 한 번 함께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 하나 뿐이다.

괴한들에게 겁탈을 당할 뻔해도, 어린 나이를 무기로 등쳐먹으려는 사기꾼 소년을 만나도, 갖은 고초 끝에 만난 그가 에이즈에 걸려 다 죽어가는 지경이라도, 그녀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떤 모습이건, 결국 그 또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 사랑하고, 사랑받는 모두가 구원받는다. 교코는 호세를, 호세는 교코를, 또 둘은 독자를 구원한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  히와타리 사키 지음 / 대원씨아이
'우리들은 몇 번이고 환생을 거듭해 가면서 모두 미래로 돌아가는 거야. 이렇게 그리운 것도 틀림없이 또 미래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해적판 <내 사랑 앨리스>가 정식 출간되었을 때, 국내 팬들은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원제는 'ぼくの地球を守って(Please Save My Earth)'. 전생을 테마로 시공을 넘나드는 탓에 스케일도 크고, 등장인물도 많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밤을 새도 읽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를 수호하는 힘(키체스)을 타고난 모쿠렌, 그녀에 대한 애증으로 환생을 거듭하는 시온. 많고 많은 등장인물 중 주축은 이 둘이다. 우주에 파견된 이들은 정체불명의 병원체에 전염, 목숨을 잃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환생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 모쿠렌은 시온에게 숨이 다하기 직전까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부탁이니 살아주세요." 그녀보다 명이 좀 더 길었던 시온은 9년이라는 세월을 죽지도 못하고 그녀의 시신을 지킨다. 지옥 같은 시간을 감내한 끝에 환생에는 성공하지만, 시간차 때문에 다시 만난 그녀는 자기보다 9살이나 연상. 이쯤되면 연상연하에 관대한 지금 생각해도 살짝 위험할 지경. 더 이야기하면 스포가 될테니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모쿠렌과 시온 커플 덕에 일본에서 당시 '전생붐'이 일어날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다는데, 시공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 작가의 필력도 대단하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길 없는 <미래의 전각>도 함께 추천.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의 기하학  • 오만과 편견



캣 위스퍼러  클레어 베상 지음 / 보누스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원. 고양이의 습성을 파악하라.

사랑의 지속은 관심과 노력에 기반한다.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을 식구로 맞을 때 고려해야 할 점 역시 마찬가지다. 첫 눈에 반해 고양이를 집에 데려간다 해도 막상 낯선 행동을 접하게 되면 '이 생명체는 도대체 뭐지?'하는 당혹감에 부딪치게 된다. 고양이의 습성을 알지 못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영국 고양이 자문 사무국의 위원장인 지은이를 통해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양이를 키워 볼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냄새를 교환하라'와 같은 사랑하는 방법부터 먼저 체크해 볼 일이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브렛 위터, 비키 마이런 지음 / 갤리온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투. 고양이와 인간의 교감 현장을 답습하라.

책 표지에 늠름하게 자리한 잘생긴 오렌지빛 고양이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듀이'. 미국 스펜서 공공도서관에서 수 많은 방문자와 더불어 즐겁게 생을 살아간 고양이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무엇이 이 고양이에게 사람과 친숙한 성격을 가지게 했느냐 묻는다면, 천성도 그러했지만 버려졌던 새끼 고양이 '듀이'를 발견한 어머니이자 도서관장인 비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겠다. 실로 책 내용 역시 듀이와 비키의 삶을 전반적으로 보여 준다. 친구이자 듀이 평생의 동반자 사이였던 한 사람과 한 마리 고양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연구해 보도록 하자.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지음 / 비룡소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쓰리. 자율적인 사랑에 관대하라.

어린이에게 고양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쳐 주는 책. 어느 주인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고양이의 독립성, 한 때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라며 거만을 부렸으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갖는 겸손, 사랑의 행복감을 만끽할 줄 아는 동시에 상실로 인한 슬픔까지 감내하는 마음. 죽음과 사랑이 어렵지 않고 자연스레 묻어난다는 점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거의 언제나 뒤표지의 고양이 연인 모습은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다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고양이에게 얄미운 감정이 들만한 내용도 있지만 지금에서야 밝히건대, 이번 책들의 진짜 주제는 '고양이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언니네 이발관 5집 - 가장 보통의 존재  • 조규찬 - Remake (리메이크)




How Do I Love You? (Board book)   Marion Dane Bauer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Cartwheel Books
‘I Love You Through and Through’와 ‘How Do I Love You?’ 두 권 모두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 엄마가 아기에게 읽어주는 책이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말로 하기에는 쑥스럽고 어색해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볕 따스한 날에 공원의 초록 잔디에 앉아 책의 끝을 한쪽씩 잡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친구에게, 엄마가 아이에게,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읽어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How do I love you? Let me tell you how." "I love you as the waking bear loves the smell of spring." “I love you as the sea loves the sandy shore.”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 작가정신
‘나’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당신’을,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려 하지만 좀처럼 나오지 못하는 ‘당신’을 12년간 쭉 지켜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카와바타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으로 ‘현대의 순애소설’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순애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짝사랑을 그린다. 조금 더 가까워질 때도 있고, 조금 더 멀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는 ‘당신’ 오다기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당신’이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가끔 불러주는 술자리에, 골절로 입원해 있는 병원에. 만나서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비슷한 대화를 하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부르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십 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짝사랑은, 둘을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며, 남매같이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저 아는 사람도 아닌, 특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하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도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만큼이나 길지는 않더라도, 짝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행동, ‘나’의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학교에 가는 이유가 바뀌고, 인사 한 번 하는데도 손끝까지 떨리고, 잔뜩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실망한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만나야겠다 싶으면 가야 한다. 그런 내가 싫고 또 괴로워서 에이, 이제 그만하자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거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단편 <오다기리의 변명>에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내가 알지 못한 ‘나’와 ‘당신’ 사이를 확인할 수 있다.


Love Actually   Richard Curtis 지음 / Griffin Trade
이번 '내맘존책' 주제가 '사랑'이란다. 책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어디에든 제일 많이 다뤄지는 흔한 주제이건만, 막상 어떤 책을 써야할 지 한참을 망설여졌던 건 왜인지.

그러다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내 손에 들어온 <Love Actually>가 떠올랐다. 커버의 빨간 리본이 꼭 포장된 선물상자를 받는 느낌였기도 했고, 영화 장면 장면들과 시나리오에, 편집된 씬부터 비하인드 스토리, 배우들에게 던진 사랑에 관한 퀴즈까지~ 다시 한 번 영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어 참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이 영화를 본 지도 꽤 오래 지났지만 그 잔잔한 감동이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고, 매번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아련히 떠오른다. 러브액츄얼리하면 생각나는, 이젠 너무나 흔한 프로포즈 방법이 되어버린 그 장면까지도,, 절친한 친구의 부인에게 조용히 종이에 적어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한 남자의 'To Me, You Are Perfect!'~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에 등장하는 공항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 포옹장면에서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사랑에 관해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혼의 영국수상과 비서의 사랑, 새 아빠와 엄마를 잃은 어린 아들의 순수한 짝사랑, 애인에게 상처받은 영국작가와 말도 문화도 다른 포르투칼 여인의 사랑,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는 직장여성과 그녀가 짝사랑하는 회사동료와의 사랑, 중년부부의 사랑과 그 남편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젊은 여직원의 사랑, 새 신부와 남편의 절친한 친구와의 안타까운 사랑, 퇴물 락가수와 그의 오랜 매니저와의 오랜 우정을 담은 사랑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러브스토리는 그저 흔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기만 하다. 사랑은 정말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Love actually is all around)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 겨울, 다시 이 잔잔한 사랑이야기에 빠져보시길..


읽어보면 좋은 책 :He's Just Not That into You  • Love You Forever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가야북스
"봄이 되면 자신은 싹이 튼 버드나무를 보며 또 이 사람을 떠올릴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벚꽃 꽃잎이 지면, 한심하게도 또 생각할 것이다. 자신답지 않게 생각에 잠기는 날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마, 이제는... ...... ('어째서 그때...' 하고 앞으로 이 날의 일을 몇 번이나 떠올리겠지.) 이 마음은 사그라져갈까, 깊이 쌓여갈까. 해가 가면서 점점 마음을 덮쳐 눌러, 언젠가 밤에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노스케는 자신의 품에서 양손을 내놓지 않았다."

<샤바케> 작가의 연작 추리소설집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무사태평 캐릭터 마노스케가 주인공이다. 기본 얼개는 추리소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노스케의 '내어놓지 못하는 사랑'의 안타까운 정조가 이 책을 관통한다. 열여섯 살적, 꽃같은 사람에게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던 시절을 자책하지만, 뒤돌아보아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일 그때 .. 했더라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도 없다. 닿을듯 말듯 간격을 유지하며, 그저 나란히 곁에 머무르는-어쩌면 '지나치게 아련하여' 사랑이라 부르기도 조심스러운 감정이 작품 전반을 통해 차분하개 그려진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이 책이 추리물보다는 연애소설로 읽힌다.;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 Media2.0
"둘은 악수를 하고 서로 어깨를 툭 쳤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십 미터로 멀어졌고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일 킬로미터도 채 못 가 에니스는 누군가가 내장을 손으로 한 번에 일 미터씩 끄집어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길 옆에 멈춰 섰다. 눈송이가 소용돌이치는 속에 토하려 들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여태 이렇게 기분이 더러웠던 적은 없었고, 다시 기운을 차리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천둥이 으르렁대던 늦은 오후, 예전과 다름없는 낡은 녹색 픽업이 굴러왔다. 에니스는 잭이 트럭에서 내리며 낡은 레시스톨 모자 앞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뜨거운 동요가 일어 에니스는 등 뒤로 문을 당겨 닫으며 계단으로 나갔다. 잭은 계단을 두 칸씩 두 번 올라섰다. 두 사람은 어깨를 움켜잡았다. 서로의 숨을 쥐어짰다. 힘껏 껴안으며 개자식, 개자식, 읊조렸다. 꼭 맞는 열쇠가 자물쇠를 풀듯 쉽게, 그것도 세게, 둘의 입이 하나로 맞닿았다. 잭의 큰 이빨 때문에 피가 났다. 잭의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짧게 깎은 수염이 사각거렸고 축축한 침이 흘렀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알마가 비틀린 에니스의 어깨를 잠시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꽉 부둥켜안고 있었다. 가슴과 사타구니와 허벅지와 다리를 맞붙이고 서로의 발끝을 밟은 채 숨이 막혀서야 비로소 몸을 뗐다. 그리고 애정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에니스가 자기 말과 딸들에게나 하던 말을 했다. 내 사랑. 문이 다시 비죽 열렸다. 알마가 그 틈새에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알마, 이쪽은 잭 트위스트야. 잭, 여긴 내 마누라 알마."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잭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담배, 사향 비슷한 땀 냄새, 풀 같은 희미한 단내, 그리고 그 냄새와 함께 산의 한기까지도. "알마, 잭하고 나는 4년만에 처음 만났어." 변명인 양 말했다. 계단 불빛이 어둑한 것이 다행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다."

지독하고 강렬하다. 기억에 남는 모든 소설 중에, 잭과 에니스, 두 사람이 처음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위 장면만큼 가슴이 턱턱 막혔던 적이 없다. 단순히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한 어떤 감정이 목 끝까지 꽉 차오른다. 40여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믿기지 않게, 더이상의 보탬도 수식도 불필요한-그 자체로 완벽한 사랑 이야기.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하얀 밤을 걷다- 태양을 잃어버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엔 <용의자 X의 헌신>도 꽤나 애절하지만, <백야행>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주인공 남녀의 관계는 소설 내내 한번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러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진실, 말하지 않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그들의 사연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나, 끔찍한 인연으로 얽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혹은 갉아먹으며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다니... 어쩌면 가장 끔찍하고 지독한 연애소설이라 해도 무방할지도.


읽어보면 좋은 책 :프랑스 중위의 여자  •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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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본디 불완전한 것일까?
    from 마지막 키스 2009-02-15 22:25 
    결국 그녀는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고, 장님이 그 침대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임종을 지켰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같이 살았으며, 일도 같이 했고, 잠도 같이 잤다. 물론 섹스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장님은 그녀를 땅에 묻어야 했다.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건 확실히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장님에게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
  2. 레인보우 로맨스
    from Truly, Madly, Deeply 2009-02-17 12:48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소녀 시절,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아버린 소설. 언젠가 김혜수, 손창민 주연의 TV문학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범벅이 된 혼란상태에서 자기를 건져 내야 한다고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며 늘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을 내맡길 수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고 또 그 마음 가는 일 자체에 대해서도 분열된 생각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사춘기의 풋사랑이 혼돈인 까닭은 ‘미지’이기
  3.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from 유리동물원 2009-02-17 17:56 
    끔찍이 좋아하는 에밀리 브론테의<폭풍의 언덕>도 있고,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있고, 곧 영화화 된다는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도 있고,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있고,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도 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소설은 너무
  4. [러브]사랑하고 싶어질 때♡
    from 즐거운 상상 2009-02-26 18:13 
        27p 소리 없이 나를 지켜봐 주던 사람, 연필로 내 이름을 쓰던 사람, 그러면서 나를 피해 도망치던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잖아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곤 했어요. 햇살이었죠. 나는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를 엮은 이미나 작가의
  5. 사랑을 말하다,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그대가, 그대를 2009-03-05 16:29 
    비록, 쪼꼬레트 주고 사탕 받을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 이야기는 늘 두근두근이라는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마, 사랑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꼽아본다.   지치지도 않고 추천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며칠 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영화를 보면서도 이 책이 생각났다.  벤자민은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몸을 갖고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6. 사랑을 말하다, 내 맘대로 좋은 책(만화편)!
    from 그대가, 그대를 2009-03-05 17:03 
    소설에 비해서 만화 쪽이 좀 더 반짝반짝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비오는 날, 사랑 만화 한 편, 급 땡겨주시겠다.  작년에 이 만화를 알고서 몹시 기뻤더랬다. (날개님 다시 한 번 만세!)  평이한 제목이었지만 작품 속에서 '모래 시계'가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한다면 꼭 필요한 제목이라고 느낄 것이다.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자살로 갖게 된 트라우마. 진정한 사랑을 만났음에도,
  7. 너는 이런 사랑을 하렴
    from 두 아이와 함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다 2009-03-09 08:55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르겠지만, '나중에 이런 공주(^^)가 되어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리해둘까 한다.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구나'라는 것이 '이렇게 사랑을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종이 봉지 공주 >>처럼 당당한 공주로 자라렴. 너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남자친구 또는 가족을 네가 구해주거나 지켜줄 수도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