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우시카와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는 것

 


  "담배는 삼가주시겠습니까, 우시카와 씨?" 키 작은 남자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책상 너머 상대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고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세븐스타로 눈길을 돌렸다. 담배에 불은 붙어 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남자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우시카와는, 내가 왜 이런 걸 손에 들고 있나 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해요. 담배는 안 되지. 물론 불은 안 붙일 겁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버린다니까."
  남자는 턱을 1센티미터쯤 끄덕였지만 시선은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초점은 변함없이 우시카와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시카와는 담배를 다시 갑에 넣어 서랍 속으로 치워버렸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키 큰 남자는 입구에 서서 문틀에 닿을락 말락 슬쩍 몸을 기대고, 마치 벽에 묻은 이라도 쳐다보듯이 우시카와를 보고 있었다. 아무튼 기분 나쁜 자들이라고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지만, 번번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 넓지 않은 우시카와의 사무실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키 작은 스킨헤드 남자는 우시카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말하는 건 전적으로 이 사람이 맡았다. 포니테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신사 입구에 모셔놓은 동물 석상처럼 꿈쩍도 않고 오로지 우시카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삼 주입니다." 스킨헤드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탁상 달력을 들고 거기에 적힌 메모를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지난번에 만나고 오늘로 딱 삼 주가 지났네요."
  "그동안 나는 당신에게서 한 번도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에요.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우시카와 씨."
  "그거야 나도 알지요." 우시카와는 담배 대신 금빛 라이터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건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스킨헤드는 우시카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시카와는 말을 이었다. "단지 말이죠, 나로서는 얘기를 찔끔찔끔 내놓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거 슬쩍 저거 슬쩍 흘리는 건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고, 이런저런 사실들이 연결되고, 그 진위가 확인되는 선까지 가고 싶은 거지요. 섣부른 소릴 내놓았다가는 공연히 고생만 할 수도 있어요. 나 좋은 대로 하는 소리 같지만, 그게 내 나름의 방식입니다, 온다 씨."
  온다라고 불린 스킨헤드는 싸늘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우시카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준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말하자면 그게 일반적인 상태였다.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아내와 자식들도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았다. 만일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건 다소 신경이 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아무렇지도 않다.
  "우시카와 씨, 우리도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방식을 존중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존중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이번 일은 얘기가 다릅니다.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래도 말이죠, 온다 씨, 그쪽에서도 여태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내 연락만 기다린 건 아닐 텐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내 쪽의 활동과 병행해서 그쪽은 그쪽대로 여기저기 손을 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온다는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은 수평으로 다문 채. 표정도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지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시카와는 느낌으로 알았다. 그들은 조직을 풀가동해서 지난 삼 주 동안 아마도 우시카와와는 다른 루트로 한 여자의 행방을 추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분 나쁜 이인조가 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뱀이 다니는 길은 뱀이 안다, 라는 말이 있지요." 우시카와는 양손을 펼치며 마치 재미있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말했다. "내가 바로 그 뱀이에요. 보시는 바와 같이 생김새는 영 시원찮지만, 코 하나는 아주 좋습니다. 희미한 냄새 하나로 저 깊은 속까지 슬슬 더듬어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요, 애초 태생부터 뱀이고 보니 내 방식대로, 내 페이스대로가 아니면 일을 못 해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그쪽에서 참아주시지 않으면 자칫 모든 일이 엉망이 되는 수가 있어요."
  우시카와의 손안에서 돌고 있는 라이터를 온다는 참을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것을 일부분이라도 말해주시겠습니까? 우시카와 씨의 입장도 잘 알지만, 나도 뭔가 구체적인 성과를 조금이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윗선에서 이해해주지를 않아요. 우리도 입장이 난처합니다. 게다가 우시카와 씨, 지금 당신이 처한 입장도 결코 마음 편치는 않을 겁니다."
  이자들도 궁지에 몰린 거라고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둘 다 격투기에 뛰어난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아 리더의 보디가드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의 코앞에서 리더가 살해되고 말았다. 아니, 살해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교단 내의 몇몇 의사들이 사체를 검안했지만, 외상이라고 할 만한 건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교단 내 의료시설에는 간단한 기기밖에 없다. 게다가 시간 여유도 없었다. 전문의가 철저히 부검을 했다면 혹시 뭔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미 때늦은 얘기다. 사체는 벌써 교단 내에서 비밀리에 처리해버렸다.
  어쨌든 리더를 제대로 경호하지 못했으니 이 두 사람의 입장이 묘하게 되었다. 현재 그들에게는 사라진 여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자를 찾아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들은 시큐리티나 보디가드 업무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전문적인 기능을 갖췄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을 추적하는 노하우는 없다.
  "알겠습니다." 우시카와는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낸 몇 가지를 말씀드리지요. 모두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부분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온다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도 좋습니다. 우리도 약간은 알아낸 게 있어요. 당신이 그걸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모를 수도 있겠죠. 어떻든 서로 알고 있는 걸 공유하도록 하지요."
  우시카와는 라이터를 내려놓고 책상 위에서 양손가락을 깍지 꼈다. "아오마메라는 젊은 여자가 호텔 오쿠라의 스위트룸에 출장을 와서 리더의 근육 스트레칭을 했다. 9월 초, 도심에 거센 뇌우가 쏟아지던 날 밤의 일이었지요. 그 여자는 별실에서 한 시간쯤 스트레칭 시술을 한 뒤에 떠났고, 리더는 잠이 들어 있었다. 두 시간쯤 그 자세로 푹 자게 해드리라고 여자는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그 말대로 했다. 하지만 리더는 잠든 게 아니었다. 그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외상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심장발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여자가 사라졌다. 아파트도 미리 짐을 옮겨버렸다…… 방은 허물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스포츠클럽에도 그다음 날로 사표가 들어왔어요. 모두 다 계획적으로 착착 진행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 아오마메라는 여자가 의도적으로 리더를 살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이견이 없었다.
  "당신들의 목적은 이번 일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 여자를 잡아야겠지요."
  "아오마메라는 여자가 정말로 그분을 사망에 이르게 했는가. 만일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나 경위가 있는가.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우시카와는 책상 위에서 깍지 낀 자신의 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물건을 관찰하듯이. 그러고는 눈을 들어 앞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당신들은 이미 아오마메의 가족관계를 체크했을 겁니다. 그렇지요? 가족이 모두 '증인회'의 열성적인 멤버다. 부모는 아직도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 서른네 살 된 오빠는 오다와라의 증인회 본부에서 근무중이고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다. 오빠의 아내도 열성적인 ‘증인회’ 신자다. 가족 중에서 아오마메만 ‘증인회’를 떠나,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배교'를 했고, 따라서 가족과의 인연도 끊겼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이 가족은 아오마메와 접촉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오마메를 감싸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이 여자는 열한 살 때 스스로 가족과의 인연을 끊었고, 그후로 거의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한때 신세를 졌지만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사실상 독립했어요. 참 대단하죠. 의지가 강한 여자예요."
  스킨헤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도 이미 파악한 정보일 것이다.
  "이번 일에 '증인회' 쪽이 관여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증인회'는 철저한 평화주의, 무저항주의로 알려져 있어요. 그들이 교단 차원에서 리더의 목숨을 노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 점에는 동의하시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증인회'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혹시나 해서 그녀의 오빠와도 얘기를 해봤습니다. , 이라는 차원에서.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확인 또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손톱까지 뽑으셨군요?" 우시카와가 물었다.
  온다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아, 물론 농담입니다. 썰렁한 농담이죠. 그렇게 심각한 얼굴은 하지 마시고요. 아무튼 그 오빠라는 사람은 아오마메의 행동에 대해서도, 행방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나는 날 때부터 평화주의자라서 난폭한 짓은 전혀 하지 않지만, 그런 정도는 압니다. 아오마메는 가족과도 '증인회'와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어떻게 보건 아오마메의 단독행동은 아니에요. 네, 혼자서 그런 복잡한 짓은 못하지요. 교묘하게 세팅이 이루어졌고, 그 여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냉철하게 행동에 옮겼습니다. 자취를 감춘 방식도 정말 감쪽같아요. 사람과 돈을 넉넉히 쏟아부은 일입니다. 아오마메의 배후에 있는 사람 혹은 조직이 어떤 이유에서든 리더가 죽기를 강하게 원했다. 그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견을 함께할 수 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그런데 그게 어떤 조직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 여자의 교우관계 같은 것도 물론 조사하셨겠죠?"
  온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웬걸, 그 여자는 이렇다 할 교우관계 같은 것도 없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친구도 없고 아무래도 연인도 없는 것 같고요.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일단 직장을 벗어나면 누구와도 개인적으로 사귀지 않았어요. 최소한 내가 조사한 바로는, 아오마메가 누구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젊고 건강하고 생긴 것도 나쁘지 않은 여자인데, 왜 그랬을까?"
  우시카와는 그렇게 말하고 문 앞에 서 있는 포니테일 남자를 보았다. 그는 아까부터 자세도 표정도 전혀 변함이 없다. 애초에 표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바꿀 수도 없다. 저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을까,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만일 이름이 없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당신들은 아오마메의 얼굴을 직접 목격한 분들이에요." 우시카와는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 여자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까?"
  온다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매력적인 젊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남의 이목을 끌 만한 미인은 아니에요. 매우 조용하고 침착했어요. 자신의 기술에 분명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주의를 끌 만한 점은 없었어요. 전체적인 인상이 매우 희미합니다. 얼굴의 생김새 하나하나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신기할 정도로."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입구의 포니테일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혹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 기미조차 없었다.
  우시카와는 스킨헤드를 보았다. "최근 몇 달간 아오마메의 전화 통화기록도 물론 조사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아직 안 했습니다."
  "그건 해야죠. 꼭 해봐야 합니다." 우시카와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곳에 전화를 하고 다양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와요. 통화기록만 조사해봐도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저절로 보입니다. 아오마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지요. 개인의 통화기록을 입수하는 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못 할 것도 없어요. 보세요, 뱀이 다니는 길은 뱀이 안다니까요."
  온다는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아오마메의 통화기록을 살펴보니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나더군요. 여자치고는 몹시 드문 케이스지만, 아오마메는 전화 통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통화 횟수도 적고 통화 시간도 별로 길지 않아요. 어쩌다 긴 통화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입니다. 대부분은 스포츠클럽과의 통화였는데, 그 여자는 반쯤은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일을 꽤 했어요. 스포츠클럽 카운터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클라이언트와 직접 상담해서 일정을 짜는 겁니다. 그런 전화 통화가 상당히 많았어요. 내가 살펴본 바로는 그리 의심스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우시카와는 거기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손에 밴 담뱃진의 색깔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담배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내뿜는다.
  "하지만 딱 두 가지 예외가 있었어요. 하나는 경찰서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112 신고전화가 아니에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였습니다. 그쪽에서도 몇 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오마메는 자동차 운전은 하지 않았고, 보통 경찰은 고급 스포츠클럽 개인 레슨 같은 건 안 받아요. 그러니까 아마 그 부서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것과는 별도로, 어느 정체불명의 전화번호와 몇 번이나 긴 통화를 했다는 겁니다. 그쪽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오마메 쪽에서는 한 번도 건 적이 없고요. 이 번호는 아무리 찾아봐도 캐낼 수가 없었어요. 물론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해둔 전화번호는 많지요. 하지만 그런 것도 손을 쓰면 금세 알아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 번호는 아무리 알아봐도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물쇠를 채워둔 거죠. 보통은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보통이 아니다?"
  "그렇지요. 틀림없이 프로가 관여하고 있어요."
  "또다른 뱀." 온다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벗어지고 비뚤어진 제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며 히쭉 웃었다. "그렇지요, 또다른 뱀. 그것도 상당히 센 놈입니다."
  "최소한 그 여자의 배후에 프로가 있다는 건 점점 드러나는군요." 온다가 말했다.
  "그렇죠. 아오마메의 배후에는 모종의 조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조직은 아마추어가 짬짬이 꾸려가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온다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그 아래로 흘끗 우시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포니테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포니테일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는 다시 우시카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요?" 온다가 물었다.
  "그래서." 우시카와가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입니다. 그쪽에서는 뭔가 짐작 가는 게 없나요? 이를테면 당신들의 리더를 말살하려 할 가능성이 있는 단체라든가 조직 같은 거요."
  온다는 긴 눈썹을 하나로 모았다. 코 위에 세 줄의 주름이 잡혔다. "그런 게 있겠습니까, 우시카와 씨? 우리는 어디까지나 종교단체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어울려 살며 하루하루 농사일과 수행에 힘쓰고 있어요. 대체 어느 누가 우리를 적으로 삼겠습니까? 그래봤자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우시카와는 입가에 애매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떤 세계에나 광신적인 인간은 있는 법이지요. 광신에 빠진 사람이 언제 어떤 생각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잖습니까?"
  온다는 그 말에 담긴 빈정거림은 무시해버리고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짐작 가는 일은 우리 쪽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여명'은 어떻습니까? 그 잔당이 아직 근처를 어슬렁거리지는 않습니까?"
  온다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여명' 관련자들을 아예 후환이 없도록 깨끗이 짓뭉갠 것이다. 아마 흔적도 없이.
  "알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종의 조직이 당신들 리더의 목숨을 노렸고, 거기에 성공했다. 대단히 교묘하고 솜씨 좋게. 그러고는 연기처럼 하늘로 휘익 사라져버렸다. 이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지요."
  "우리는 그 배경을 밝혀내야 합니다."
  "경찰과는 무관하게."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문제지, 사법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좋아요. 그건 당신들의 문제지, 사법상의 문제가 아니다. 얘기가 확실하군요. 아주 간단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미리 물어볼 게 있는데."
  "그러시죠." 온다는 대답했다.
  "교단 내에서 리더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몇 명쯤 알고 있나요?"
  "우리 둘이 알고 있습니다." 온다는 말했다. "시신을 내가는 걸 거들었던 사람이 두 명 더 있습니다. 내 아랫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교단의 최고 간부 다섯 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아홉 명이죠. 세 명의 무녀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곁에서 모시던 여자들이라 그리 오래 감춰둘 수는 없어요. 그리고 우시카와 씨, 물론 당신이 알고 있죠."
  "모두 합해서 열세 명."
  온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시카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온다는 말했다.
  "이제 와서 새삼 이런 소리를 해봐야 별수 없겠지만, 리더가 사망한 그 시점에 당신들은 즉시 경찰에 연락했어야 합니다. 뭐가 어찌됐건 일단 그 죽음을 공표했어야 해요. 그런 엄청난 일은 계속 덮어둘 수 있는 게 아니죠.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이라니, 그건 더이상 비밀도 아니에요. 당신들은 이러다가 완전히 궁지에 몰릴 수도 있어요."
  스킨헤드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판단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주어진 명령에 따를 뿐이죠."
  "그러면 대체 누가 판단을 내리는 거지요?"
  대답은 없었다.
  "리더를 대신할 인물이?"
  온다는 역시 침묵을 지켰다.
  "뭐,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당신들은 아무튼 누군가 윗사람의 지시를 받고 리더의 사체를 비밀리에 처리했다. 그쪽 조직에서는 위에서 떨어진 명령은 절대적이란 얘기겠군요. 하지만 사법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명백히 사체손괴죄에 해당합니다. 상당한 중죄예요. 그건 물론 알고 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혹시 이 일로 경찰과 얽히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리더의 사망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걸로 해주시죠. 형사범으로 문초당하고 싶지는 않군요."
  온다는 말했다. "우시카와 씨는 리더의 사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외부 조사원으로서 우리의 의뢰를 받아 아오마메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고 있을 뿐이지요. 법률에 위반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예, 좋아요.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우리로서도 가능하면 리더의 살해에 대해 외부인인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오마메의 신변을 조사해서 고go 사인을 낸 건 우시카와 씨 당신이고, 당신은 이미 이 일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를 수색하는 데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은 입이 무거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건 내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그 일이 내 입을 통해 외부로 새어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만일 그 비밀이 새어나가고, 그 정보가 당신에게서 나왔다는 게 드러나면 이래저래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우시카와는 책상 위에 놓인 열 개의 퉁퉁한 손가락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것이 자신의 손가락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몹시 놀란 듯한 표정으로.
  "이래저래 불행한 일." 우시카와는 얼굴을 들고 상대의 말을 되풀이했다.
  온다는 슬쩍 실눈을 떴다. "리더의 사망은 어떻게든 감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비밀은 지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절대 안심하세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협력해서 잘해왔어요. 나는 당신들이 대놓고 하기 어려운 일들을 뒤에서 떠맡아왔습니다. 때로는 힘겨운 일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보수는 충분히 받았어요. 내 입에는 이중으로 단단히 지퍼를 채웠습니다. 나는 신앙심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돌아가신 리더께는 개인적으로 큰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아오마메의 행방을 찾고 있어요. 그 배경을 밝혀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입니다. 그리고 꽤 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에요.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줘요. 머지않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테니."
  온다는 의자에서 아주 조금 자세를 바꾸었다. 입구에 선 포니테일도 거기에 호응하듯이 다리의 중심을 다른 쪽으로 옮겼다.
  "당신이 밝힐 수 있는 정보는 현재로서는 그 정도인가요?" 온다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오마메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에 두 번 전화를 했어요. 그쪽에서도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한 상대의 이름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어쨌든 경찰서니까 대놓고 물어봤자 알려주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때 내 이 못생긴 머리통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라면 뭔가 기억나는 게 있는데, 하고 말이죠. 아니, 꽤 오래 궁리를 했어요. 대체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에 어떤 기억이 있는 걸까. 무엇이 내 비참한 기억의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건가, 하고 말이죠. 생각해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어요. 나이 먹는다는 거, 참 싫지요. 기억의 서랍이 뻑뻑해져요. 예전에는 뭐든지 금세 술술 나왔는데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일주일 전에 그게 뭔지 드디어 생각이 났습니다."
  우시카와는 거기서 문득 입을 다물고, 꾸민 티가 역력한 웃음을 지으며 스킨헤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스킨헤드는 참을성 있게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올 8월에 일어난 사건인데,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의 젊은 여경이 시부야 마루야마초 인근 러브호텔에서 누군가에게 교살당했습니다.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관제품 수갑이 채워진 채로요. 물론 이건 꽤 큰 스캔들이 되었죠. 근데 아오마메가 신주쿠 경찰서의 누군가와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게 그 사건이 터지기 전 몇 달 동안에 집중되어 있어요. 당연히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는 한 번도 통화가 없었습니다. 어때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지요?"
  온다는 잠시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오마메가 연락을 취했던 게 그 살해된 여경이 아니냐?"
  "나카노 아유미라는 게 그 여경의 이름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 살. 꽤 귀염성 있는 얼굴이에요. 아버지도 오빠도 경찰인 경찰 집안입니다. 성적도 꽤 우수했던 모양이에요. 경찰에서는 물론 필사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실례일지 모르지만, 그 사건에 대해 혹시 뭔가 아시는 건 없을까요?"
  온다는 이제 막 빙하에서 잘라온 것처럼 딱딱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는 말했다. "설마 우리가 그 사건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시카와 씨? 우리 쪽의 누군가가 그 여경을 저속한 러브호텔로 데려가 수갑을 채우고 목을 졸라 죽인 게 아니냐고?"
  우시카와는 입을 오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죠, 그럴 리가요. 설마,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했어요.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뭔가 그 사건에 관해 짚이는 게 있느냐는 거죠. 그냥 그뿐입니다. 예, 뭐든 좋아요. 어떤 사소한 실마리라도 내게는 아주 귀중하니까요. 알량한 지혜를 아무리 쥐어짜봐도 시부야 러브호텔 여경 살해사건과 리더 살해사건 사이의 관련성을 나는 찾을 수가 없어요."
  온다는 잠시 뭔가의 치수를 재는 듯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멈췄던 숨을 천천히 토해냈다. "알겠습니다. 그 정보는 위에 전달하지요." 그는 말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나카노 아유미. 스물여섯 살.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 아오마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죠."
  "그밖에는?"
  "또 한 가지, 꼭 물어볼 게 있어요. 교단 내부에서 누군가 맨 처음에 아오마메라는 이름을 꺼낸 사람이 있을 겁니다. 도쿄에 근육 스트레칭을 잘하는 스포츠 인스트럭터가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아까 당신도 지적했던 대로 내가 그 여자의 신변조사를 맡게 되었던 것이죠.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야 물론 항상 하던 대로 성심껏, 철저히 조사했어요. 하지만 이상한 점이나 수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구석구석까지 깨끗했죠. 그리고 당신들은 그 여자를 호텔 오쿠라의 스위트룸으로 불렀어요. 그다음은 그쪽에서도 아시는 그대롭니다. 애초에 대체 어느 누가 그 여자를 추천했던 겁니까?"
  "그건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그쪽 교단 내부에서 누군가 아오마메 얘기를 꺼내기는 했는데, 그게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얘기입니까?"
  온다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상한 말씀이네요." 우시카와는 그야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온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얘기군요. 어디서 나왔는지, 언제 나왔는지도 모른 채 그 여자의 이름이 나왔고, 누가 추진했는지도 모르게 일이 저절로 굴러갔다, 그런 얘깁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적극적으로 그 일을 추진한 건 리더 본인이셨습니다." 온다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간부들 중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물론 우리 경호팀에서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더께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렇게 진행하라고 직접 나서서 강력히 주장하셨죠."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라이터를 집어들고 뚜껑을 열어 상태를 시험해보듯이 불을 켰다. 그리고 곧바로 뚜껑을 닫았다.
  "리더께서는 매사에 퍽 조심스러운 분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극히 주의 깊고 조심성 많은 분이셨죠." 그다음에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가와나 덴고에 대한 겁니다. 그는 야스다 교코라는 연상의 유부녀와 교제중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그 여자가 그의 아파트에 찾아왔지요. 그리고 친밀한 시간을 보냈어요. 뭐, 아직 젊으니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돌연 전화를 걸어와서, 그녀가 더이상 그쪽에 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뚝, 연락이 끊겼어요."
  온다는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작스레 이야기가 그쪽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군요. 가와나 덴고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 거기까지는 나도 모릅니다. 단지 그 일이 전부터 좀 마음에 걸렸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떤 사정이 있었건 여자 쪽에서 전화 한 통쯤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깊은 관계였는데 말예요. 근데 말 한마디 없이 여자가 휘익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나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아주 싫어요. 그래서 일단 확인차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혹시 당신들 쪽에서는 짐작되는 게 없습니까?"
  "적어도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습니다." 온다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스다 교코. 가와나 덴고와 관계가 있었다고요."
  "열 살 연상이고 유부녀지요."
  온다는 그 이름도 수첩에 메모했다. "그것도 일단 윗선에 전하죠."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런데 후카다 에리코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죠?"
  온다는 얼굴을 들고, 비뚤어진 액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보았다. “우리가 왜 후카다 에리코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합니까?”
  "그녀의 행방에는 관심이 없다?"
  온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어디에 갔건, 어디에 있건, 우리와는 관계없습니다. 본인의 자유지요."
  "가와나 덴고에게도 더이상 관심이 없고?"
  "그쪽도 우리와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때는 이 두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온다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의 관심은 현재로서는 아오마메라는 한 점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나날이 바뀐다?"
  온다는 아주 조금 입술의 각도를 바꾸었다. 대답은 없었다.
  "온다 씨, 당신은 후카다 에리코가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읽어봤습니까?"
  "아뇨. 교단 내에서는 교의에 관한 서적 외에는 독서가 금지되어 있어요. 소지할 수도 없습니다."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온다는 틈을 두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 났다. 온다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상의 옷깃을 바로잡았다. 포니테일도 벽에서 떨어져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우시카와 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일에서는 시간이 지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온다는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우시카와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오마메의 행방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도 물론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당신도 또다른 측면에서 활발히 움직여줘야 합니다. 아오마메를 찾지 못하면 서로 간에 난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어쨌든 당신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중요한 지식에는 중요한 책임이 따른다."
  "그렇습니다." 온다는 감정이 결락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스킨헤드의 뒤를 따라 포니테일이 사무실을 나가며 소리도 없이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가버리자 우시카와는 책상 서랍을 열고 카세트리코더의 스위치를 껐다. 기계 뚜껑을 열고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라벨에 볼펜으로 날짜와 시간을 써넣었다. 그의 글씨는 생김새와는 달리 단정했다. 그러고는 세븐스타 담뱃갑을 서랍에서 꺼내 한 개비 뽑아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연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천장을 향해 크게 뿜어냈다. 그리고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 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뜨고 벽시계에 시선을 던졌다. 시곗바늘은 두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기분 나쁜 자들이라고 우시카와는 새삼 생각했다.
  , 고 스킨헤드는 말했다.
  우시카와는 야마나시 산 속에 있는 '선구' 본부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뒤편 잡목 숲속에 설치된 특대형 소각로를 보았다. 쓰레기나 폐기물을 태우기 위한 시설이지만, 상당히 고온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체를 던져넣어도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몇 사람이나 되는 사체가 그곳에 던져진 것을 우시카와는 알고 있었다. 리더의 사체도 아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시카와는 그런 꼴은 당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지만, 가능하면 좀더 온화한 죽음이기를 바란다.
  물론 우시카와가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는 손안의 카드를 모두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작은 숫자의 카드라면 슬쩍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큰 숫자의 카드는 철저히 덮어둔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보험이라는 게 필요하다. 이를테면 테이프에 녹음된 비밀 대화 같은 것. 우시카와는 그런 게임 수순에 능통하다. 그저 그런 젊은 보디가드와는 쌓아온 내공이 다르다.
  아오마메가 그동안 개인 인스트럭터로서 지도해온 사람들의 이름을 우시카와는 입수했다. 약간의 고생만 감수하면, 그리고 약간의 노하우만 깨치면 웬만한 정보는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아오마메가 담당한 그 열두 명의 개인 클라이언트의 신변에 대해 우시카와는 한차례 샅샅이 알아보았다. 여자가 여덟 명, 남자가 네 명.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사람들이다. 살인 계획에 합세할 것 같은 인물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그중 한 사람, 칠십대의 부유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는 가정폭력으로 집을 탈출한 여자들을 위해 세이프하우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자택의 넓은 부지 바로 옆 2층짜리 아파트에 불행한 처지의 여자들을 거두어 살게 해주었다.
  그 자체는 훌륭한 일이다. 수상쩍은 점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가 우시카와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가 자신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찰 때, 우시카와는 항상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집중 탐색해왔다. 그에게는 동물적인 후각이 구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직감을 신뢰해왔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몇 차례나 목숨을 부지해왔다. '폭력'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번 일의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이 노부인은 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우시카와는 자신이 직접 세이프하우스라는 곳을 살펴보러 나갔다. 그 목조 아파트는 아자부의 높직한 일등 주택지에 서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나름대로 풍취 있는 건물이다. 문의 격자 틈새로 바라보니 현관 앞에는 아름다운 화단이 있고 잔디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큼직한 떡갈나무가 정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현관문에는 무늬가 새겨진 작은 판유리가 끼워져 있다. 요즘에는 이런 건물들이 확연히 줄어들어버렸다.
  하지만 건물의 느긋한 외관과는 딴판으로 경계는 유난히 삼엄했다. 벽은 높직하고 가시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튼튼한 철문은 굳게 닫혔고, 그 안쪽에는 독일 셰퍼드가 있어서 사람이 다가가면 거칠게 짖었다. 방범용 카메라도 몇 대나 작동하고 있었다. 아파트 앞 도로는 거의 통행인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한적한 주택가이고 근처에 대사관도 몇 군데 있다. 우시카와처럼 수상쩍은 풍모의 남자가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렸다가는 곧바로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된다.
  아무리 봐도 경비에 지나치게 공을 들였다. 아무리 폭력으로부터의 피난처라지만 이렇게까지 단단히 가드할 일이 있을 리 없다. 이 세이프하우스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내야 한다. 우시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경비가 철저하다 해도 어떻게든 그걸 뚫어야 한다. 아니, 철저하면 할수록 그건 꼭 열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좋은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알량한 지혜나마 쥐어짜서.
  그리고 그는 리틀 피플에 대해 온다와 나눈 대화를 되새겼다.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적어도 한 박자쯤 틈을 두고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리틀 피플? 하고 그 울림을 머릿속에서 일단 검증해보고, 그러고 나서 대답이 나오는 게 보통사람들의 반응이다.
  그자는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의미며 실체까지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우시카와는 짧아진 담배를 끄고 잠시 생각에 잠겼고, 그것이 일단락되자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참 전부터, 폐암에 걸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생각을 집중하는 데는 니코틴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이삼 일 뒤의 운명도 모르는 것이다. 십오 년 뒤의 건강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세 개비째의 세븐스타를 피우고 있을 때, 우시카와는 한 가지 작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잘될지도 모르겠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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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스버거 2010-07-2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오~ 정녕 이것이 1Q84 3권인가효 +_+ 도착할 때까지 어케 기다려~

U_U 2010-07-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디어 나왔군요! 정말 기대됩니다 ^_^

Ally 2010-07-2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앞머리 재미나네요. 두근두근. 빨리 다 읽고 싶어요. ㅎㅎ

tomozo 2010-07-2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둥, 마침내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는 건가요...

해라 2010-07-2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반구제기 2010-07-2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BiNe™ 2010-07-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9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나...ㅠ.ㅠ

최유진 2010-07-2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매일 라디오로 광고 듣는 1Q84 ㅋㅋㅋㅋㅋㅋ

정유호 2010-07-2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고세트걸리길 간절히

Lee 2010-07-2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카에리 세트 번데기 통조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떻해 ㅋㅋㅋㅋㅋ

김민영 2010-07-2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흑

2010-07-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교에서야하다고 책수거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권은읽었는데 이권못읽엇어ㅠㅠ

kak10000 2010-07-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고선물 받아보고 싶네요^^

mcjw48 2010-07-27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카에리 셋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셋트인데 왜 번데기1개인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ㅋㅋㅋㅋㅋ 차라리 봉지에 공기담아주지 ㅋㅋㅋㅋ

갱갱 2010-07-27 10:19   좋아요 0 | URL
푸하하.. 봉지에 공기 담아주는것도 재미있네요. 풍선? 번데기랑 같이 해서 셋트로. ㅋㅋ

MOPIPY 2010-07-2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권에서의 기대가... 주문했는데 얼른 받아보고 싶어요... *^^*

쑤쑤a 2010-07-2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뒷편 이야기 엄청 궁금하네 ㅠ~ 빨리 왔음 좋겟다 ㅠ ~

EHtopia 2010-07-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엽감는 새>에 나왔던 '우시카와'와 동일인물 같군요.
하는 행동이나 하는 일도 비슷한 걸 보니 말이죠.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같은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재미있게 굴러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