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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 마음산책
중언부언인 것 같지만,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칭찬해두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듯하다. 당신은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흐르는 자신의 피를 보게 될 것이며, 어딘가로 날아가버린 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할 것이며,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사이에 스며든 '살아간다는 것'의 서글픔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은 완벽한 가을 남자/가을 여자가 될 수 있다. 가을 남자/가을 여자가 된다는 건 지금 무언가를 잃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 쓰라린 감정을 겪으며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후회하며, 누군가는 금세 잊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런 책을 쓰기도 한다. 눈부신 단어나 문장 같은 것은 없다. 담담한 단어 하나, 평이한 문장 하나가 줄줄이 이어져 읽는 이의 마음을 옭아맨다. 그저 좋은 책.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마땅히 김연수의 팬이 아니라도, '문단'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은 거두었더라도 이 책은 읽어볼 만 하다. 소설이니 문학이니 관심 없어도 상관없다. 김연수의 단편들은 보편의 감성에서 출발해 당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간과 공간과 감정으로 당신을 이끌 것이다. '연애'가 세상에서 가장 중차대한 일이 된 세대에게 권장할 만 하날까? 아니면 그들에 대한 어떤 가능성? 쉽사리 떠올릴 수 없는 이야기들이 '대중적'이라 할 만한 영역 안에서 '꼭 거기 있어야만 할' 이유를 가지고 서 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말을 대체로 믿고, 그가 풀어낸 이야기의 실타래를 얼마간 좋아한다. 그가 직접 말했듯 '우연에 우연을 거쳐 필연 같은' 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네코무라씨  호시 요리코 지음 / 조은세상
헤어진 도련님과 만나기 위해 가정부가 된 고양이 네코무라 네코. 네코무라 네코가 좋은 이유라면, 앞치마 매듭을 세로로 묶을 줄 알고 (그 모습이 앙증) 네코무라이스를 잘 만들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궁금) 무엇보다 "하아~ 생선을 입에 물고~ 뛰어라 3번가로~ 뛰어라~ 뛰어라~ 뛰어라 4번가로 하아~" 혹은 "아아~ 열혈~ 열혈~ 열혈 형사~ 귀신의 눈에도~ 부처의 눈물은 흐른다네~ 울보~ 울보~" 같은 노래를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부를 줄 안다는 것 때문인 것 같다. 좀 흥겹기도 하고... 라고 해둘까. (대충 넘어가고 있어요.)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데, 열심이기도 하고, 배려도 좋다. 친구 삼고 싶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배우 배용준의 첫 번째 산문집. 방송인들의 글쓰기 열풍이 거세진 하반기에 ‘눈에 띄는 방송인 에세이’로 이 책을 꼽고 싶다. 배용준이란 이름 석자만 아는 상황에서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그가 보여준 책에 대한 진지함이었다. 이 책에는 여행체험, 명소 소개를 넘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직접 발로 뛰며 체험한 지난 1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곳곳에는 그가 수집한 자료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내용은 차(茶) 소개글, 그 중에서도 와인과 차를 비교한 부분이었다. 추석연휴, 혹은 주말에 쉬엄쉬엄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다카페 일기  모리 유지 지음 / 북스코프
예술 MD의 서재를 엿보다 우연히 발견한 주옥같은 책. 2006년 일본 블로그 대상을 수상한 모리 유지의 블로그 '다카페 일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아내 다짱, 딸 바다와 아들 하늘 그리고 개 와쿠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짤막한 일기가 전부일 뿐이지만, 단 두가지 요소 만으로도 '행복은 바로 이것!'이란 깨달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보고 또 봐도 행복해지는 이 책을 지인분들께 선물해 드렸다. 한결 같은 반응은, '정말 마음이 따듯해지는 좋은 책이더라’ 였다. 후속편 번역서의 12월 출간예정 소식을 접했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지인에게 선물은 해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경험상, 100% 대만족!

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지음 / 섬앤섬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에 소개된 이 책은 아프리카 여성할례에 관한 실화를 소개한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이자 유엔의 특별인권대사인 와리스 디리의 실제 삶을 다룬다. 유목민이었던 유년시절 부터 수차례의 강간 사건, 런던에서의 가정부 생활, 모델생활, 위장결혼 그리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까지, 그녀의 파란한 인생이 <사막의 꽃>에 오롯이 드러나 있다. 와리스 디리의 용기있는 고백을 통해 한 여성의 고난 극복과정과, 아프리카 여성의 인권 실태를 접할 수 있다. 후속작 <사막의 새벽>과 베스트셀러 <천 개의 찬란한 태양>도 함께 추천한다.

읽어보면 좋은 책 : 사막의 새벽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 문예출판사
“긴 하루를 채우는 일들, 우리와 동류인 인간들과의 관계를 위해 고독에서 우리를 떼어 내는 집착들의 총체를 사람들은 추락이니, 일상적 삶이니, 또는 동물성이니, 타락이니, 추잡한 물질주의니, 이렇게 쓸데없이 부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결코 하찮은 일일 수 없다. 진정한 시간은 본질적으로 무아지경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시계를 산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분명 일상적 삶은 구원에 몰두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휴일은 필요하다. 문제는, 레비나스도 우리에게 2009년 추석이 이렇게 짧은 이유를 납득시킬 수는 없다는 데에 있다.

삶으로서의 은유  G. 레이코프 & M. 존슨 지음 / 박이정
“아마도 가장 명백한 존재론적 은유는 물리적 대상을 사람으로 구체화하는 은유일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아닌 개체에 대한 넓고 다양한 경험을 인간의 동기화나 특성, 활동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해 준다. 여기에 몇 가지 실례가 있다.” - Life has cheated me. (삶이 나를 속여 왔다.) - The long matrix of XLS file has attacked him. (기나긴 엑셀 파일 속 숫자의 행렬이 그를 공격했다.) - Holiday bonus knocked his door and said, “Oops, wrong house!” (추석 보너스가 그의 방문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이런, 집을 잘못 찾았네!”)

에티카   B.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제3부 정리 28. 우리는 기쁨을 가져오리라고 우리들이 표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에 모순되며 슬픔을 가져오리라고 표상되는 모든 것은 멀리하거나 파괴하려고 노력한다. 증명 : 나는 언제나 멋진 글을 쓰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서는 영혼을 팔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사지 않았고, 이내 나는 그것을 버렸다. 명절을 싫어하게 된 것이 그 전인지 그 이후인지는 이 정리의 증명대상이 아니다. - Q.E.D.

읽어보면 좋은 책 : 끝과 시작  / D에게 보낸 편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필립 퍼키스 지음 / 눈빛
얇은 책. 어디를 펼쳐도 상관없는 책. 문단 사이 어디에나 정적이 시간을 타고 흐른다. 그러나 사진 찍는 많은 사람들이 느꼈겠지만, 이 책은 다소 고통스럽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인내, 그러나 목적 없는 인내가 거기에 있다. 눈앞에서 사그라지는 저녁의 빛을 아무 조바심 없이 바라보기. 또는 수십 년의 흐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 어쩌면 그것들이 '살아가기'의 다른 이름이어서 읽기가 이렇게 뻐근한지도 모르겠다. 해를 거듭하며 읽을 때마다 마음이 더 아려오는 책. 읽고 나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책. 그러니까, 늘, 조용히 혼자 떠날 때 읽는 책.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숀 탠 지음 / 사계절출판사
요즘 어디 떠날 때는 짧은 이야기를 읽게 된다. 각 단편을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서다. 흡입력 있는 장편 스릴러가 시간을 보내기에는 가장 좋지만, 다섯 시간 정도를 혼자 앉아 있을 기회가 점점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에는 일부러 읽지 않는다. 짧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정말 아무 할 일이 없는 채로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숀 탠이라면 더더욱 좋을 거다. 특유의 아름답고 쓸쓸하고 쉽게 중심을 찾아낼 수 없는 이야기들은 좋은 초콜렛처럼 깊고 진하다. 이런저런 추억 때문에 몇 년 동안은 읽지 못할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첫 이야기를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 황금가지
야구란 무엇인가? 우연과 확률이 뭉뚱그려진 운명과 각양각색의 의지가 부딪히는 격전지. "모두들 실수한 가운데 한 명만이 정신을 차렸지만, 그 멀쩡한 한 명 때문에 점수를 내준" 아이러니의 박물관.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의도를 읽고 또 읽는 하드보일드 포커 하우스. 각종 공격 작전이나 수비 시프트, 오늘은 왜 커브가 말을 안들을까와 같은 수많은 딜레마가 있고, 그 모든 인간적인 딜레마를 초월한 듯한 초인이 갑자기 출현하기도 한다. 야구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모든 것이다. 야구 팬들은 이 멋진 책 한 권의 진가를 알 수 있어서 좀 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야구 책? 가을은 무엇보다 야구의 계절이니까.





할머니의 레시피   이미애 지음 / 아이세움
올해 들어 요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요리 학원에 등록하겠다는 계획을 연말까지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 감자조림 정도는 기똥차게 만들고 싶고, 제과제빵에 꽃게탕까지 마스터 하고 싶은... 마음만, 마음만 굴뚝 같다. <할머니의 레시피>에서 잔잔하게 드러나는 것처럼, 또 나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도 음식에 대한 관심이나 기억이나 욕망은 상당 부분 가족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따뜻하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크 상뻬 지음 / 별천지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읽고, 짝사랑했던 국어 선생님께 선물했던 책이다.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연습장에 따라 그리기도 많이 했었고... 다시 읽어보니 애틋한 기억이 새록새록.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꼭 한번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처음 읽었던 10년 전에도 오늘도 그 친구가 많이 보고 싶다.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 예옥
감격. 이런 호강(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을 읽는)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누려본다. "시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산문처럼 생활한다"는 구절에서 한 번 멈추고, (직장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을 사랑하고 싶기도 하고 업신여기고 싶기도 하며 또 측은하게 여기고도 싶었다."라는 문장에서 또 한 번... 아름답다. 게이타로의 독백은 너무도 적나라하고, 그 눈길은 너무도 사소한 것에 머문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데엔 늘 또렷한 이유가 있었다. 우아함과 기품, 모든 사람을 무릎 꿇게 할 유머 감각. 이 세 가지는 독서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 직장인 도시락 전략 / 결혼하고 싶어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 지음 / 민음사
카인과 아벨, 팜므파탈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지만,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은 역시 대가의 작품답다. 1권만 해도 505쪽 분량, 3대에 걸친 가족사, 원죄와 인간 등에 대한 심오한 고찰... 하지만 한번 잡으면 손에서 떼어놓기 어렵다. (2권이 없어서 따로 주문하고 어쩌고 하며 손을 놓았다가 아직 못 읽고 있지만 ;;) 내가 생각하는 1권의 클라이막스는 캐시가 애덤의 어깨에 총을 쏘고 갓 태어난 쌍둥이를 버려둔 채 떠난 후, 새뮤얼(실제 존 스타인벡의 외조부를 바탕으로 한 인물로 살리나스로 이주해 온 애덤의 정착을 돕는 이웃사촌이랄까)과 애덤의 요리사 리가 실의에 빠진 애덤을 위로하며 쌍둥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다. 새뮤얼과 리가 벌이는 카인과 아벨, 원죄에 대한 대화는 만들다 손 놓아버린 애덤의 정원(에덴동산) 한 구석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면 왠지모를 아쉬움에, 종교가 없는 나도 성경을 한번쯤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친구가 되기 5분 전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 푸른숲
친구 사이란 책이나 영화에서처럼 극적이거나 운명적이지 않다. 어쩌다 짝이 되어 친해지거나, 친구의 친구와 다같이 어울리거나, 사소한 오해로 아예 멀어져 버리기도 한다. 어떤 이는 한 두명의 친구로 만족하지만, 또 어떤 이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과 친해져야만 한다. 이 책에는 학창 시절의 모든 것(?)이랄 수도 있는 친구 사이, 그 관계의 미묘함과 주인공들의 성장이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다양하게 녹아있다. 겉으로 보이는 친구 사이의 우정, 해맑음 이런 것 말고 그 관계들 속의 처절함과 복잡미묘함이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십년 이십년 이어지는 우정도 작은 사건, 사소한 시간과 함께 시작되고 '친구가 되기 5분 전'의 어색함과 설레임은 참 좋은 기억으로 평생 남는다. 오늘은 오랫만에 먼저 전화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헤티 판 더 레이트.프란스 X. 프로에이 지음 / 북폴리오
이 책의 부제는 이렇다. '0~20개월까지, 꼬마 아인슈타인을 위한 두뇌육아법'. 그래서 살까말까 고민했다. 나는 아이를 천재로 키우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말 못하는 우리 아가의 마음을 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좋은부모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으면서 함께 산 이 책이 내 마음을 가장 달래 주었다. 부제만 빼면 최고다! - '천사처럼 잠든 아가'라는 말은 한 시간마다 한번씩 깨서 운다든지, 엄마 품에서 내려놓으면 칭얼대서 엄마를 불면에 빠지게 한다는 뜻이예요, 아기들은 항상 똑같지 않아서요, 어제는 정말 천사가 따로 없었지만 오늘은 어디 아픈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엄마를 힘들게 한답니다. 오늘 하루종일 우는 아가를 보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시죠? 나만 왜 힘든가, 나는 엄마 자격이 없나 우울하시죠? 아가들은요.. 엄마를 괴롭히려고 그러는게 아니예요, 아가들은 매일 매일 세상에 적응하고 눈부시게 자라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힘차게 도약하느라 그러는 거니 엄마들이 조금 더 따듯하게 안아주세요. 내일 아가는 몸도 마음도 한뼘씩 쑥쑥 자라 있을 거예요.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 구름빵 (책+인형): 한정판




야구 아는 여자   김정란 지음 / 나무수
야구의 인기가 예년보다 더했던 한 해, ‘야구 모르는 여자’로 사는 일은 낯선 경험이었다. 더구나 프로야구라는 세계는 대강의 야구 지식으로 이해하기에 너무 거대해 보였다. 그래서 손에 쥐기 시작한 여러 야구 도서 중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 <야구 아는 여자>의 장점은 간단 명료하다. 내용이 쉽고 구성이 간결하며 무엇보다 야구 기자였던 지은이가 프로야구를 알기 쉽도록 친절히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야구를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좋은 책 한 권과 좋아하는 선수가 생겼으므로 그것만으로도 든든하고 흐뭇하다.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오소희 씨의 여행 이력은 특이하다. 갓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들과 터키, 라오스 여행은 물론이고 아프리카까지 동행했다. 그 중 아프리카를 여행한 기록을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행서가 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낯선 여행지에서 도리어 작가의 삶을 마주하게 될 때라면, 그러한 지점에서 오소희 씨의 여행기는 눈부시다. 평소에도 열린 마음과 올곧은 성품으로 세상을 살 것 같은 그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벌써 새로운 여행기가 기다려진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2009년은 두 대통령의 서거 사실만으로도 대한민국 역사에 이례적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인터뷰가 실린 이 책의 추천사에서 故 김대중 대통령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라고 당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현대사를 위해서라도 남은 이들에겐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고인이 된 두 분의 대통령에 대해 공부할 의무가 있단 생각이 든다. “열매가 그렇게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싹이 다 열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싹이 있어야 하나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결실이 있는 일인지는 그리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하고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는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싹을 틔우고…… 말하자면 물을 주고 키우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안 된다고 전제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고, 멀리 보면 결국은 다 그렇게 가게 되어 있는 일 중에 내 몫이 얼마인지 몰라서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 시야를 짧게, 인과관계를 너무 단순하게 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지 진짜 안 되는 건 없다, 하물며 노력할 가치조차 없는 것은 정말 없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p. 41, 42 중에서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이의 사생활  / 지미 코리건




1歲から100歲の夢   日本ドリ-ムプロジェクト 엮음 / いろは出版
타이틀 그대로 1살짜리 아기부터 100세 할이버지까지, 100명의 '꿈'을 개개인의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글을 모르는 아이는 그림으로, 겨우 글자를 배운 아이들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5살 스기우라 코우키의 꿈, '어른이 되면 엄마를 어깨에 태워 구름 위를 보여주는 것' 22세 오구치 마사오의 꿈, '불꽃놀이 장인이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감동시키는 것' 92세 야스다 노부의 꿈, '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작년에 시작한 대학통신교육 사진 코스를 졸업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어떤 꿈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책.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蛇藏&海野?子 지음 / メディアファクトリ-
외국인을 상대로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본어 학교 교사인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코믹 에세이. 짧은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お』와『を』, 『才』와『歳』, 『教えて頂けますか』와『教えて下さいませんか』의 차이 등, 외국인이 가지는 일본어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은, 에세이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일본어 테스트' 와 ' 외국인 학생이 모국에 가져가고 싶은 것('とりあえず全部'라는 대답에 한참 웃었다)'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는 원래 '코믹에세이극장' 이라는 사이트(http://www.comicessay.com/series/nihonjin.html)에 연재되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지금은 日本人の知らない日本語 2가 연재 중이다. ('코믹에세이극장' 에서는 타카기 나오코(たかぎなおこ)나 오구리 사오리(小栗左多里)의 에세이도 볼 수 있다)

書店繁盛記 田口 久美子 지음 / ポプラ社
지하 1층 + 지상 9층, 도쿄 최대의 서점인 쥰쿠도 이케부쿠로점에서 일하는 저자의 '서점 뒷이야기'. 지난주에 구입해서 아직 몇 장 읽지 못했다. 모든 서점이 번성하기를' 바라며'서점전성기' 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첫 장의 '私はリアル書店で働いています' 라는 문장에 끌려 구입했는데, 짧은 한 문장만으로도 '(인터넷 서점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서점에서 책을 접하며 일하고 있다' 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기본적인 환경 자체가 다른 부분이 많지만, 목차만 훑어봐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밀레니엄 3부작  스티그 라르손 지음 / 아르테
올해 읽은 추리.스릴러 소설 중 단연코 가장 재미있다.('가장 재미있다'에 밑줄과 따옴표 추가.) 비밀을 간직한 대가족과 소녀의 실종, 미디어와 재벌, 첨단 기술과 해킹, 여성학대와 냉전의 잔재... 진부하게 여겨질 수 있는 여러 소재들을 정교하고 설득력있는 줄거리 속에 영리하게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이 작가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생각했으나, 책을 읽어갈수록 정신없이 빠져들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어내렸다. 시대 배경과 주변 인물 하나하나까지 제대로 구축했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와 비밀의 열쇠를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도 발군이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사상 최강(?!)의 여성 캐릭터 리스베트가 등장한다. 그녀의 능력은 사실 비현실적으로 초인적인 것이지만 묘하게도 그냥 납득이 간다. 작가가 이 3부작을 완결하고 세상을 떠난 것에 안도하면서도, 이후 리스베트와 미카벨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이 아쉬움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가 나이 50도 안되어 사망한 아쉬움에 비견된다.) 장르소설 팬이라면 필독을 권함. 단, 3부작, 총 6권이므로 바쁠 때는 집어들지 말 것.

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 GONZO
<은하수...> 이야기가 나온 김에 SF소설 한 권. 올 늦여름 출간된 <여름으로 가는 문>은 처음 소개되는 책은 아니다. 이전에 여러 차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번에 처음으로 완역본이 정식 발간되었다. 이 소설은 지극히 '낭만적인' SF 소설이다. 시간여행과 로봇이 등장하긴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구닥다리처럼 보일 정도로 소박한 상상력이다. 허나 출간 50년이 지난 이 소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상상력보다는, 이 작품 전반에 녹아있는 삶에 대한 희망과 낙관이다. 책의 제목 '여름으로 가는 문'에 그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주인공의 고양이 피트는 난방 문제에 예민하다. 피트는 겨울을 매우 싫어하여 문밖에 눈이 보이면 바깥 나들이를 거부한다. 주인공의 집에는 문이 열두 개 있는데, 피트는 그 문 중 하나는 여름으로 이어진다고 확고히 믿고 있다. 매번 문 열두 개를 일일이 열어보이며 바깥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줘야만 한다. 그러나 피트는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는 작업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러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찾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다. 이러한 긍정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삶에 플러스 에너지가 된다. 나도 여전히 믿고 싶다. 거기 어딘가에 나의 '여름으로 가는 문'이 있다는 것을. SF 팬이 아니라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가볍고 낭만적인-약간은 닭살스러울 수도-사랑 이야기. (단, 하인라인의 다른 작품도 이럴 거라고 오해하지는 말 것.)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요시다 아키미 지음 / 애니북스
걸작 만화 <바나나 피시>의 작가 요시다 아키미의 최신작. 이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어른스러운지, 그리하여 읽는 이를 부끄럽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삶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쳐야 할 때를 안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확실히 나아간다. 크게 웃고 크게 울고, 또한 솔직하다. 무심하고 평온해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일들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것인지... 바닷가 마을 네 자매의 다음 이야기가 얼른 나오길.

읽어보면 좋은 책 :  아웃라이어 / 야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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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 동문선
“나는 기호를 찾는다? 그러나 무엇의 기호를? 내가 읽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아니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혹은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또는 고문서학과 점성술을 혼합한 방식으로 내게 일어날 일의 예고가 기록된 것을 해독하면서 내 미래를 읽으려는 걸까? 결국 내가 매달려 있는 질문은, 그리하여 내가 그 사람의 얼굴에서 끈질기게 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난 당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죠?라는 질문이 아닐까?” (305p, ‘기호의 불확실성’ 중에서)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  레나타 살레클 / 비(도서출판b)
“사랑하는 사람은 타자 속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 - 대상 a, 혹은 라캉이 또한 아갈마agalma라 부르는 것-을 지각한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이 이 대상을, 즉 사랑받는 사람 속에 있는 그/녀 자신보다 더한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사랑에 빠진다.” (78p, ‘사랑과 욕망’ 중에서) 라캉을 전유하는 살레클의 문맥에서 바르트의 마지막 질문을 번역하자면 그것은 이렇게 될 것이다. “나에게 정말 당신이 사랑하는 대상 a가 있나요?”

향연 - 사랑에 관하여   플라톤 지음 / 문학과지성사
“마지막으로 당신을 보았을 때 / 우리는 막 둘로 찢겨 있었지 / 당신은 나를 보고 나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어 / 당신은 어딘지 낯익었지만 / 나는 알아보지 못했지 / 당신의 얼굴과 내 눈 위를 흐르던 피 때문에 / 하지만 당신의 표정에 난 맹세할 수도 있어 / 네 영혼에 깊이 박힌 고통이 / 내 영혼에 박힌 고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 그건 고통 / 똑바로 잘려 내려가 / 심장을 반으로 나눈 그것을 /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 다시 한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 우리는 사랑을 나누지 / 사랑을 // 춥고 어두운 저녁 / 아주 오래전 / 제우스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 이건 아주 슬픈 이야기 / 어떻게 우리가 외롭게 두발로 선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한 / 그래 이건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영화 ‘Hedwig’의 O.S.T 중 ‘origin of love’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바로 <향연> 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건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이건 분명 일반적인 의미와 바르트적인 의미 모두에서의 ‘신화’이지만, 나는 다시 바르트를 인용한다.

“완전한 결합에의 꿈. 사람들은 그 꿈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지속된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아테네의 묘비 위에는 죽은 사람을 영웅시하는 묘비 대신에 손을 잡고 있는 부부가 서로 작별을 고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제삼의 힘만이 파기할 수 있는 계약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 ‘당신 없이는 나 또한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라는 표현을 완성하는 장례이다.” 나는 바로 이 재현된 장례에서 내 꿈의 증거를 찾는다. 나는 그것이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믿을 수 있다(불가능의 유일한 형태가 불멸이다).” (325~326p, '결합‘ 중에서)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의 역사  • Love and Other Demons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오멜라스
인식론적인 한계를 기반으로 수많은 의미를 뿜어내는 SF지만, 종종 떠올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은 사랑했던 기억들과 강제로 만나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다. 현실로 되살아난 추억과 재회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없다는 이야기는 추억과 상실 때문에 후회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씁쓸한 자각이다. 끝난 일은 끝난 일이다. 추억은 사라진 것들이므로 쓰라리지만,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나간 모든 것들은 더께가 앉을 때까지 상처로 남고, 살아남은 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나가야만 한다. 심지어 추억이 흉터를 찢으면서 되살아 나타나더라도.

느릅나무 밑의 욕망  유진 오닐 지음 / 범우사
욕망은 자주 빗나가고 때로 오해할지언정 성실하고 거짓이 없다. 때문에 욕망-애정은 거의 생존과 같은 '올인' 등급에 놓여 마땅...할지도 모른다. 프론티어 정신이란게 보통 물신주의와 폭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는 폭력은 선명한 욕구(누가 거기에 선악의 이름을 감히 들이대는가?)에 의해 밝게 불타오르며 일체의 도그마를 부정하고 거기에 도전한다. 영화 '도그빌'에서 마을의 대로 이름이 (느릅나무 없는) 느릅나무 거리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느릅나무가 뿜어내는 그 처절한 애욕의 세계는 '현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서부극 같은 판타지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종이시계   앤 타일러 지음 / 문예출판사
아는 분이 말씀하시길 “'그래도' 내일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게 될 때쯤이면 좋아지는 소설”이라고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어느 노부부의 하루. 부인의 가족애는 자꾸 정반대의 결과를 내고, 남편의 유머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일매일은 별날 것도 없고 실수 투성이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잘자요라고 말하고 오늘 밤을 지내고 나면, 일생의 대부분을 함께 지내온 신뢰라는 마법이 그 모든 잡음들까지 기억의 앨범 속에 고이 포개놓을 것이다. 생활과 사랑은 결코 함께일 수 없다는 연애론자들에게 날리는 쌉쌀하면서도 따뜻한 반격, 소설이 현실에 선물하는 최대치의 애정이다.

읽어보면 좋은 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 Back to Black




아기 오는 날   이와사키 치히로 지음 / 프로메테우스
'엄마는 오래오래 집에 없었어 / 그치만 오늘은 / 아기랑 함께 온대' 이러고 시작하는 그림책 <아기 오는 날>. 물기를 듬뿍 머금은 붓터치의 그림, 동생을 처음 만나는 설레임과 기대에 가득찬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곧 첫 아이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은 아이가 말하고 있지만 어른에게 더 감동스럽다. 조용히 가만가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야기,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나도 마냥 설레인다.. 아기 오는 날, 귀여운 내 아기.

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 문이당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사회적 편견이 있고, 작은 거짓말을 한 아이가 있고, 그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이언 매큐언의 <속죄>와 비슷하다. 하지만 1969년, 카스트 제도가 사람들을 나누고, 공산주의가 사회를 막 뒤흔들기 시작한 인도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는 훨씬 처절하다. 처음,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무'와 그 쌍둥이 아이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작가의 재치넘치는 말장난과 함께 그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이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사건의 복선이 되고... 나는 읽으면서 엉엉 울었고, 사흘 밤낮을 마음이 허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 감성이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읽은 지 7~8년은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이보다 더 마음 아프고 잘 쓰여진 소설은 보질 못했다

바람의 나라 스페셜 에디션 1   김진 지음 / 이코믹스미디어
치밀한 역사고증이나 빡빡한 대사는 너무나 내 취향이 아니라 건성으로 읽었다. 하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방대한 줄거리 속에 숨어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아름답다. 마음이 약해서 오히려 견디지 못하고 자식들을 죽여서까지 왕의 자리를 유지해야 했던 아버지 유리왕, 그런 아버지 아래에서 힘겹게 왕이 되고, 또 대륙 정벌의 원대한 꿈을 꾸는 대무신왕 무휼, 무휼의 사랑하는 연이, 그 아내가 목숨을 바쳐 지켜내었으나 자신과 대립되는 수호신을 가졌기에 죽여야 할지 모를 아들 호동, 그리고 신분 상승의 욕심만큼 사랑도 원했던 무휼의 정비 이지 등 모든 사랑과 모든 마음들이 아름답고 안타깝고 애절하다. 그나저나, 완결은 언제쯤..?

읽어보면 좋은 책 :최종병기 그녀 1  • 타인에게 말걸기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이 단편에는 사랑이라 불리는 것의 대부분이 들어 있다. 열여덟 나이에 감상적으로 찾아드는 사랑에 대한 예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본질이 만남 자체가 '우주적인 기적'이라고 하는 나름의 정의, 서로에게 100퍼센트는 되어줄 수 없다고 하는 명백한 진실, 그러나 명백히 빛나던 한 순간에 대한 기억, 이후 세월과 함께 낡아가는 슬픈 현실까지. 무엇보다도 이것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은 가상의 기억이라 고백하는 마지막 문장이 가장 진실되지만.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꺼내 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이자 폄하 같은 단편. 열여덟살의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4월에 만났으면 했지만.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지음 / 문학과지성사
'도시의 눈 - 겨울 판화 2'
도시에 전쟁처럼 눈이 내린 날, 여기저기 가로등 아래 모여 눈을 털어내는 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할까? 지나간 봄 화창한 기억의 꽃밭 가득 아직도 무꽃이 흔들리고 있을까? 스매싱 펌킨스가 Try, Try, Try의 뮤직 비디오에서 극단적 '병든 우리 사랑' 전형을 보여줬다면, '도시의 눈'은 뭐랄까 현실적으로 병든 우리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아 종종 떠올리게 된다. 그저 단어와 문장이 튀는 느낌이 그랬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새벽 안개 속에 뜬 철교 위에 서 있다.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河口로 뛰어가고 너는 말했다. 물이 보여. 얼음장 밑으로 수상한 푸른 빛.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면 은빛으로 반짝이며 떨어지는 그대 소중한 웃음. 안개 속으로 물빛이 되어 새떼가 녹아드는 게 보여? 우리가.’

Release   Pet Shop Boys / 이엠아이(EMI)
그들의 의도가 어찌하였건 존재 자체가 사랑과 연애담에 수렴해 보이는 펫샵보이스. 가난한 이민자를 노래한 'London', 길거리에 좌판을 벌인 연인을 그리워하는 'Home and dry', 실제로는 정치적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온전한 실연가로도 보이는 'I get along', 호모포비아에 의해 처형된 게이 청년을 노래하는 'Birthday boy', 'Love is a catastrophe'는 제목부터가 '사랑은 재앙'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발라드처럼만 들리는 이들을 어찌할고. 사랑하면 오르는 이미지의 최대치는 이들의 멜로디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저씨들의 새 앨범 [Yes]의 첫 싱글 제목은 'Love Etc.'라고 한다.)

읽어보면 좋은 책 :100편의 사랑 소네트  •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   이미나 지음 / 걷는나무
<그 남자 그 여자> <아이 러브 유>의 작가 이미나 신작.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섬세하고 감각적인 사랑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처음 하는 이별도 아닌데 무너져 내리는 마음' 때문에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두려울 때가 있다. <사랑 고마워요 고마워요>를 읽다보면 '곁에 있는 사랑이 고맙고 소중하다' '아프더라도 사랑은 다시 시작되어야만 한다'를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기게 된다. 마음을 울리는 111가지 사랑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 은행나무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사랑을 말해줘>는 소리없는 세계에서 살아온 교코와 시끄러운 생활에 익숙한 슌페이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정적과 소음이란 대립적 상황을 통해 독특한 연애가 펼쳐진다. 남자주인공 슌페이가 교코의 정적을 경험하면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모든 것을 소통해야만 진심이 전해진다'고 믿었던 나. <사랑을 말해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진실된 교감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지음 / 열린책들
프랑스 작가 카롤링 봉그랑의 두 번째 작품. 25살의 콩스탕스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속에서 우연히 낙서를 발견한다. 대여하는 책마다 발견되는 밑줄을 통해 정체모를 '밑줄 긋는 남자'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 밑줄 긋는 남자를 찾아나가는 여정은 그녀의 무미건조한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결국 밑줄 긋는 남자는 찾지 못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러브스토리. 영화 '아멜리에'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특이하고도 흥미진진한 사랑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읽어보면 좋은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연애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 북폴리오
은근히 내 취향에 맞았던 소설.(표지까지도..) 가슴을 후벼파거나 아주 불타오르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의 다른 작품처럼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때로는 약간의 눈물이 필요해지는 장면도 있다. 뭐랄까, 아련한 그리움에 잠기게 하는 잔잔한 이야기라고나 할까. 그나저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레볼루션 No.3>이다.

심리 브레이크   김은선 지음 / 책만드는집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의 인기코너를 책으로 펴낸 것인데, 그야말로 읽는 재미 102%이다. 물론 잘 맞지 않는다해도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당신은 스토커 기질이 있는가?', '당신의 연애 유효기간은?',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뭘 하겠는가?'와 같은 재미있는 연애 심리 테스트가 96개나 담겨 있다.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Keith Jarrett / ECM
조용하고 아늑한 응접실도 좋고, 여의도의 야경을 바라보며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도 좋다. 이 음반을 틀어 놓으면 그 행복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수 있다. '당신과 함께하는 밤의 멜로디'라는 앨범 제목이 주는 느낌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키스 자렛의 마니아로서 가장 아끼는 음반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마지막 강의




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 민음사
'이 소설에는 섹스도 SM도 마약도 전쟁도 없다' 좀처럼 자기 글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하지 않는 무라카미 류가 <교코>의 후기에서만큼은 저렇게 밝히고 있다.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 없고, 하나 없어 보이는 일본인 교코. 트럭 운전일을 하며 살아온 그녀를 지탱하는 희망은 단 하나 뿐이다. 어린 시절 미군 기지 근처에서 자신에게 댄스를 가르쳐준 호세를 만나는 것. 만나서 뭐 어쩌겠다는 심산도 아니고, 그저 그를 만나 다시 한 번 함께 춤을 추고 싶다는 열망 하나 뿐이다.

괴한들에게 겁탈을 당할 뻔해도, 어린 나이를 무기로 등쳐먹으려는 사기꾼 소년을 만나도, 갖은 고초 끝에 만난 그가 에이즈에 걸려 다 죽어가는 지경이라도, 그녀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 그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어떤 모습이건, 결국 그 또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모습일 것이다. 마지막? 사랑하고, 사랑받는 모두가 구원받는다. 교코는 호세를, 호세는 교코를, 또 둘은 독자를 구원한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  히와타리 사키 지음 / 대원씨아이
'우리들은 몇 번이고 환생을 거듭해 가면서 모두 미래로 돌아가는 거야. 이렇게 그리운 것도 틀림없이 또 미래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해적판 <내 사랑 앨리스>가 정식 출간되었을 때, 국내 팬들은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뻐했다. 원제는 'ぼくの地球を守って(Please Save My Earth)'. 전생을 테마로 시공을 넘나드는 탓에 스케일도 크고, 등장인물도 많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밤을 새도 읽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를 수호하는 힘(키체스)을 타고난 모쿠렌, 그녀에 대한 애증으로 환생을 거듭하는 시온. 많고 많은 등장인물 중 주축은 이 둘이다. 우주에 파견된 이들은 정체불명의 병원체에 전염, 목숨을 잃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환생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 모쿠렌은 시온에게 숨이 다하기 직전까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한다. "부탁이니 살아주세요." 그녀보다 명이 좀 더 길었던 시온은 9년이라는 세월을 죽지도 못하고 그녀의 시신을 지킨다. 지옥 같은 시간을 감내한 끝에 환생에는 성공하지만, 시간차 때문에 다시 만난 그녀는 자기보다 9살이나 연상. 이쯤되면 연상연하에 관대한 지금 생각해도 살짝 위험할 지경. 더 이야기하면 스포가 될테니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모쿠렌과 시온 커플 덕에 일본에서 당시 '전생붐'이 일어날 정도로 그 인기는 대단했다는데, 시공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이 작가의 필력도 대단하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길 없는 <미래의 전각>도 함께 추천.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의 기하학  • 오만과 편견



캣 위스퍼러  클레어 베상 지음 / 보누스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원. 고양이의 습성을 파악하라.

사랑의 지속은 관심과 노력에 기반한다.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동물을 식구로 맞을 때 고려해야 할 점 역시 마찬가지다. 첫 눈에 반해 고양이를 집에 데려간다 해도 막상 낯선 행동을 접하게 되면 '이 생명체는 도대체 뭐지?'하는 당혹감에 부딪치게 된다. 고양이의 습성을 알지 못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반드시 구비해야 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영국 고양이 자문 사무국의 위원장인 지은이를 통해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고양이를 키워 볼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냄새를 교환하라'와 같은 사랑하는 방법부터 먼저 체크해 볼 일이다.


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브렛 위터, 비키 마이런 지음 / 갤리온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투. 고양이와 인간의 교감 현장을 답습하라.

책 표지에 늠름하게 자리한 잘생긴 오렌지빛 고양이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듀이'. 미국 스펜서 공공도서관에서 수 많은 방문자와 더불어 즐겁게 생을 살아간 고양이계의 전설적인 존재다. 무엇이 이 고양이에게 사람과 친숙한 성격을 가지게 했느냐 묻는다면, 천성도 그러했지만 버려졌던 새끼 고양이 '듀이'를 발견한 어머니이자 도서관장인 비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겠다. 실로 책 내용 역시 듀이와 비키의 삶을 전반적으로 보여 준다. 친구이자 듀이 평생의 동반자 사이였던 한 사람과 한 마리 고양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연구해 보도록 하자.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지음 / 비룡소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는 방법! 스텝 쓰리. 자율적인 사랑에 관대하라.

어린이에게 고양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가르쳐 주는 책. 어느 주인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고양이의 독립성, 한 때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라며 거만을 부렸으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갖는 겸손, 사랑의 행복감을 만끽할 줄 아는 동시에 상실로 인한 슬픔까지 감내하는 마음. 죽음과 사랑이 어렵지 않고 자연스레 묻어난다는 점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거의 언제나 뒤표지의 고양이 연인 모습은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다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고양이에게 얄미운 감정이 들만한 내용도 있지만 지금에서야 밝히건대, 이번 책들의 진짜 주제는 '고양이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말하고 싶다.


읽어보면 좋은 책 :언니네 이발관 5집 - 가장 보통의 존재  • 조규찬 - Remake (리메이크)




How Do I Love You? (Board book)   Marion Dane Bauer 글,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 Cartwheel Books
‘I Love You Through and Through’와 ‘How Do I Love You?’ 두 권 모두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 엄마가 아기에게 읽어주는 책이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말로 하기에는 쑥스럽고 어색해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햇볕 따스한 날에 공원의 초록 잔디에 앉아 책의 끝을 한쪽씩 잡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친구에게, 엄마가 아이에게,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읽어주는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How do I love you? Let me tell you how." "I love you as the waking bear loves the smell of spring." “I love you as the sea loves the sandy shore.”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이토야마 아키코 지음 / 작가정신
‘나’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당신’을, 막다른 골목에서 나오려 하지만 좀처럼 나오지 못하는 ‘당신’을 12년간 쭉 지켜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카와바타야스나리 문학상 수상작’으로 ‘현대의 순애소설’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순애소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짝사랑을 그린다. 조금 더 가까워질 때도 있고, 조금 더 멀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나’는 ‘당신’ 오다기리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당신’이 ‘나’를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간다. 가끔 불러주는 술자리에, 골절로 입원해 있는 병원에. 만나서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비슷한 대화를 하는 정도이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부르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십 년이 넘게 계속되어 온 짝사랑은, 둘을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며, 남매같이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저 아는 사람도 아닌, 특정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들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던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하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도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만큼이나 길지는 않더라도, 짝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행동, ‘나’의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학교에 가는 이유가 바뀌고, 인사 한 번 하는데도 손끝까지 떨리고, 잔뜩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실망한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만나야겠다 싶으면 가야 한다. 그런 내가 싫고 또 괴로워서 에이, 이제 그만하자 싶지만, 그것이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거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 단편 <오다기리의 변명>에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의, 내가 알지 못한 ‘나’와 ‘당신’ 사이를 확인할 수 있다.


Love Actually   Richard Curtis 지음 / Griffin Trade
이번 '내맘존책' 주제가 '사랑'이란다. 책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어디에든 제일 많이 다뤄지는 흔한 주제이건만, 막상 어떤 책을 써야할 지 한참을 망설여졌던 건 왜인지.

그러다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내 손에 들어온 <Love Actually>가 떠올랐다. 커버의 빨간 리본이 꼭 포장된 선물상자를 받는 느낌였기도 했고, 영화 장면 장면들과 시나리오에, 편집된 씬부터 비하인드 스토리, 배우들에게 던진 사랑에 관한 퀴즈까지~ 다시 한 번 영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어 참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이 영화를 본 지도 꽤 오래 지났지만 그 잔잔한 감동이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고, 매번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아련히 떠오른다. 러브액츄얼리하면 생각나는, 이젠 너무나 흔한 프로포즈 방법이 되어버린 그 장면까지도,, 절친한 친구의 부인에게 조용히 종이에 적어 자신의 마음을 전하던 한 남자의 'To Me, You Are Perfect!'~

영화의 처음과 끝 장면에 등장하는 공항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 포옹장면에서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을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사랑에 관해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미혼의 영국수상과 비서의 사랑, 새 아빠와 엄마를 잃은 어린 아들의 순수한 짝사랑, 애인에게 상처받은 영국작가와 말도 문화도 다른 포르투칼 여인의 사랑,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는 직장여성과 그녀가 짝사랑하는 회사동료와의 사랑, 중년부부의 사랑과 그 남편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젊은 여직원의 사랑, 새 신부와 남편의 절친한 친구와의 안타까운 사랑, 퇴물 락가수와 그의 오랜 매니저와의 오랜 우정을 담은 사랑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러브스토리는 그저 흔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하기만 하다. 사랑은 정말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Love actually is all around)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 겨울, 다시 이 잔잔한 사랑이야기에 빠져보시길..


읽어보면 좋은 책 :He's Just Not That into You  • Love You Forever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가야북스
"봄이 되면 자신은 싹이 튼 버드나무를 보며 또 이 사람을 떠올릴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벚꽃 꽃잎이 지면, 한심하게도 또 생각할 것이다. 자신답지 않게 생각에 잠기는 날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마, 이제는... ...... ('어째서 그때...' 하고 앞으로 이 날의 일을 몇 번이나 떠올리겠지.) 이 마음은 사그라져갈까, 깊이 쌓여갈까. 해가 가면서 점점 마음을 덮쳐 눌러, 언젠가 밤에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노스케는 자신의 품에서 양손을 내놓지 않았다."

<샤바케> 작가의 연작 추리소설집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주변의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무사태평 캐릭터 마노스케가 주인공이다. 기본 얼개는 추리소설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노스케의 '내어놓지 못하는 사랑'의 안타까운 정조가 이 책을 관통한다. 열여섯 살적, 꽃같은 사람에게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던 시절을 자책하지만, 뒤돌아보아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일 그때 .. 했더라면"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도 없다. 닿을듯 말듯 간격을 유지하며, 그저 나란히 곁에 머무르는-어쩌면 '지나치게 아련하여' 사랑이라 부르기도 조심스러운 감정이 작품 전반을 통해 차분하개 그려진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이 책이 추리물보다는 연애소설로 읽힌다.;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 Media2.0
"둘은 악수를 하고 서로 어깨를 툭 쳤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십 미터로 멀어졌고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일 킬로미터도 채 못 가 에니스는 누군가가 내장을 손으로 한 번에 일 미터씩 끄집어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는 길 옆에 멈춰 섰다. 눈송이가 소용돌이치는 속에 토하려 들었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여태 이렇게 기분이 더러웠던 적은 없었고, 다시 기운을 차리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천둥이 으르렁대던 늦은 오후, 예전과 다름없는 낡은 녹색 픽업이 굴러왔다. 에니스는 잭이 트럭에서 내리며 낡은 레시스톨 모자 앞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뜨거운 동요가 일어 에니스는 등 뒤로 문을 당겨 닫으며 계단으로 나갔다. 잭은 계단을 두 칸씩 두 번 올라섰다. 두 사람은 어깨를 움켜잡았다. 서로의 숨을 쥐어짰다. 힘껏 껴안으며 개자식, 개자식, 읊조렸다. 꼭 맞는 열쇠가 자물쇠를 풀듯 쉽게, 그것도 세게, 둘의 입이 하나로 맞닿았다. 잭의 큰 이빨 때문에 피가 났다. 잭의 모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짧게 깎은 수염이 사각거렸고 축축한 침이 흘렀다. 그때 문이 열렸다. 알마가 비틀린 에니스의 어깨를 잠시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꽉 부둥켜안고 있었다. 가슴과 사타구니와 허벅지와 다리를 맞붙이고 서로의 발끝을 밟은 채 숨이 막혀서야 비로소 몸을 뗐다. 그리고 애정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 에니스가 자기 말과 딸들에게나 하던 말을 했다. 내 사랑. 문이 다시 비죽 열렸다. 알마가 그 틈새에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알마, 이쪽은 잭 트위스트야. 잭, 여긴 내 마누라 알마."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는 잭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담배, 사향 비슷한 땀 냄새, 풀 같은 희미한 단내, 그리고 그 냄새와 함께 산의 한기까지도. "알마, 잭하고 나는 4년만에 처음 만났어." 변명인 양 말했다. 계단 불빛이 어둑한 것이 다행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녀를 피하지는 않았다."

지독하고 강렬하다. 기억에 남는 모든 소설 중에, 잭과 에니스, 두 사람이 처음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위 장면만큼 가슴이 턱턱 막혔던 적이 없다. 단순히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한 어떤 감정이 목 끝까지 꽉 차오른다. 40여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이 믿기지 않게, 더이상의 보탬도 수식도 불필요한-그 자체로 완벽한 사랑 이야기.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 없지."

'하얀 밤을 걷다- 태양을 잃어버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엔 <용의자 X의 헌신>도 꽤나 애절하지만, <백야행>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주인공 남녀의 관계는 소설 내내 한번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러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진실, 말하지 않고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그들의 사연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소년과 소녀가 처음 만나, 끔찍한 인연으로 얽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혹은 갉아먹으며 그렇게 긴 세월을 보내다니... 어쩌면 가장 끔찍하고 지독한 연애소설이라 해도 무방할지도.


읽어보면 좋은 책 :프랑스 중위의 여자  •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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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은 본디 불완전한 것일까?
    from 마지막 키스 2009-02-15 22:25 
    결국 그녀는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고, 장님이 그 침대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임종을 지켰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같이 살았으며, 일도 같이 했고, 잠도 같이 잤다. 물론 섹스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장님은 그녀를 땅에 묻어야 했다.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건 확실히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장님에게 약간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한
  2. 레인보우 로맨스
    from Truly, Madly, Deeply 2009-02-17 12:48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소녀 시절,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나를 사로잡아버린 소설. 언젠가 김혜수, 손창민 주연의 TV문학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뒤범벅이 된 혼란상태에서 자기를 건져 내야 한다고 어두운 강물을 바라보며 늘 생각하는 것이었다. 마음 가는 대로 몸을 내맡길 수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고 또 그 마음 가는 일 자체에 대해서도 분열된 생각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사춘기의 풋사랑이 혼돈인 까닭은 ‘미지’이기
  3. 밤이여 오라 종은 울려라
    from 유리동물원 2009-02-17 17:56 
    끔찍이 좋아하는 에밀리 브론테의<폭풍의 언덕>도 있고,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도 있고, 곧 영화화 된다는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도 있고,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도 있고,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도 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소설은 너무
  4. [러브]사랑하고 싶어질 때♡
    from 즐거운 상상 2009-02-26 18:13 
        27p 소리 없이 나를 지켜봐 주던 사람, 연필로 내 이름을 쓰던 사람, 그러면서 나를 피해 도망치던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이잖아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지곤 했어요. 햇살이었죠. 나는 그렇게.. 당신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아름다운 101가지 사랑이야기를 엮은 이미나 작가의
  5. 사랑을 말하다,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그대가, 그대를 2009-03-05 16:29 
    비록, 쪼꼬레트 주고 사탕 받을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 이야기는 늘 두근두근이라는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마, 사랑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책들만 꼽아본다.   지치지도 않고 추천하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  며칠 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영화를 보면서도 이 책이 생각났다.  벤자민은 늙은 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몸을 갖고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6. 사랑을 말하다, 내 맘대로 좋은 책(만화편)!
    from 그대가, 그대를 2009-03-05 17:03 
    소설에 비해서 만화 쪽이 좀 더 반짝반짝 머리 속에 떠올랐다. 이렇게 비오는 날, 사랑 만화 한 편, 급 땡겨주시겠다.  작년에 이 만화를 알고서 몹시 기뻤더랬다. (날개님 다시 한 번 만세!)  평이한 제목이었지만 작품 속에서 '모래 시계'가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한다면 꼭 필요한 제목이라고 느낄 것이다.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엄마의 자살로 갖게 된 트라우마. 진정한 사랑을 만났음에도,
  7. 너는 이런 사랑을 하렴
    from 두 아이와 함께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다 2009-03-09 08:55 
    아직 어린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르겠지만, '나중에 이런 공주(^^)가 되어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정리해둘까 한다.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구나'라는 것이 '이렇게 사랑을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종이 봉지 공주 >>처럼 당당한 공주로 자라렴. 너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남자친구 또는 가족을 네가 구해주거나 지켜줄 수도 있는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칼 구스타프 융 지음 / 김영사
마침내 <융 기본 저작집>이 완간되고 두툼한 평전인 <융 - 분석심리학의 창시자>까지 나와 반가운 한 해. 두 권 모두 꼽기에 손색 없지만 굳이 재출간 된 자서전을 고른 이유는 그 중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닥 멋진 이유는 아닐지몰라도 굳이 그런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 자체로, 그냥 멋진 책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파버 카스텔, 몰스킨으로 시작한 올해를 (내맘대로 좋은 책 08년 1월 참고) 또 다른 융 관련 책과 클레르퐁텐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Cure - 4:13 Dream  큐어(Cure) / 한이뮤직
킬러스도 시규어 로스도 콜드 플레이도 좋았지만 올해의 앨범은 누가 뭐래도 큐어의 13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4:13 Dream>다. 비록 Spin이니 Mojo니 Rolling Stone이니 하는 음악지들이 의례 꼽는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긴 했지만, 심지어 allmusic.com에서는 별을 두 개 달아주는 만행을 저지르긴 했지만 정말이다. 큐어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80년대 영국음악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 앨범은 하나의 선물이다. 그때의 큐어는 물론이고 뉴 오더와 스미스가 함께 있는, 2008년에 나온 '신보'란 말이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지음 / 레디앙
그녀의 삶을 둘러싼 담론들. 쌀롱 좌파니 좋게 봐야 자유주의니 도피니 하는 지루하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들은 집어 치우자. (형평성엔 어긋나지만 그녀가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방식에 대한 미학적 논의도 잠시 접어두자) 어쨌거나 그녀는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2008년을 사는 우리에겐 어느새 낯설어진) 방법으로 행복을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닌가. 모두들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쥔 주먹을 놓지 못하고 살 때, 가볍게 보자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긴 거다. 그러니 그저 축하할 일이다.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건 옵션으로 남겨두고.

읽어보면 좋은 책 :밤은 노래한다   • 데이빗 린치의 빨간 방




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열린책들
사랑은 어렵다. 왜 어렵냐면 이게 인간 존재를 완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이다,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다들 멋지게 사랑할 수만 있다면 역사는 끝나고 세상은 낙원이 되겠지. 그렇지만 유토피아란 애시당초 불가능의 다른 이름이라서, 결국 사랑이란 불가능한 꿈이고, 그래서 점점 더 갈망하고, 더욱 마음만 아플 거라는 이야기. 마음에 들었다. 흡입력이 좋았음에도 힘겹게 읽어 나갔고, 힘겹게 읽어갔음에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68혁명 세대를 불러내서 여러 방법으로 산산이 분해시켜버린 전개도 멋졌다. 올해 읽은 가장 인상적인 소설.

히드라  마커스 레디커 외 지음 / 갈무리
두꺼운 책이라 미뤄 놓았다가 '대통령을 폄하하는 구호를 외쳤느냐'는 심문을 받고 돌아와서 독파했다. 최근 유행이라고 할 수 있는 미시사 이야기라고 하자니 그 스케일이 큼직하고 메시지가 우렁차다. 소위 사회주의적 평등 공동체가 특정 시대상황과 특정 정치의식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다. 즉,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이러한 진보적 코뮤니즘은 피지배자의 선험적인 미덕이며 본질적인 특성이란거다. 한 노예선의 선상 반란이라는 작은 사건은 이렇게 살아나 낮은 곳의 사람들을 긍정한다. 위대한 발견!

중력과 은총 시몬 베유 지음 / 이제이북스
중력은 인간의 조건이다. 그러나 은총은 반중력이 아니고 반중력의 '뉘앙스'일 뿐이다... 이 짧은 성찰 속에서 수백 가지의 아포리즘이 어둠 속의 꽃처럼 피어난다. '모른다'와 '이미 알고 있었다'가 샴 쌍둥이처럼 붙어있고,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희미하게 만드는 안개가 자욱하다. 이 미묘한 지옥의 이름은 <지옥은 신의 부재>이며, 우리는 여기서 이것저것을 더듬거리다가 종종 (부재중인) 신의 팔을 붙잡겠지만 아마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하고, 그러면 신을 만났음을 알 수 없게 되는 이 아름다움. 올해 최고의 책.

읽어보면 좋은 책 :잃어버린 기독교의 비밀  • 내 영혼의 그림 여행




자유가 뭐예요?  오스카 브르니피에 지음 / 상수리
우리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꿈들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책이 나는 좋다. 프랑스의 철학자 오스카 브르니피에가 쓴 어린이 철학책은 올해 만 일곱 권이 나왔는데, 한 권 한 권이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빼어나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어린이들이라면, 오스카 브르니피에의 책에서 도움을 받으면 참 좋겠다.

두 사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 사계절
읽는 내내 나와 가까운(웠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감미롭고, 달콤하다. 믿고 싶지 않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연인은 물론 가족, 친한 친구)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차이를 이 책에서 다시 본다. 우리가 때로 소중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을 알게 된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멋진가를 다시 한번 느끼고, 가장 가까운 단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연습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을 묘사하는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우게 된다.

제로니모의 환상모험 1 제로니모 스틸턴 지음 / 사파리
단 1분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재미있는 책. 판타지에 통 흥미가 없는 나도 흠뻑 빠져들어 읽었다. 복잡한 구조 때문에 헷갈리거나, 등장인물의 이름을 외우느라 애쓰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단순함'이 이야기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군데군데 등장하는 행복에 관한 잠언들. "그래, 우린 행복한 순간이 왔을 때,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누려야 해! 최대한 말이야" 같은 세상에 흔한 문장을 들으며 그래, 맞아, 맞장구를 쳤다. 크리스마스에 뜨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읽다 잠이 들면 꿈에서 만날 것만 같은 제로니모. 내일이 오면, 이런 멋진 동화 또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린다.

읽어보면 좋은 책 :보리 국어사전  • 책 읽는 도깨비




우리는 친구  앤서니 브라운 지음 / 웅진주니어
유아 분야 MD를 맡고 나서 가장 맘에 들었던 책 <우리는 친구>. 먼저 크고 네모난 판형에 가득찬 고릴라와 고양이 모습이 좋았고, 페이지마다의 짤막한 이야기와 큼지막한 주인공 그림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친구를 위해 자신이 사고를 저질렀다고,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귀여운 고양이와 그 결말을 보고는 그냥 그림책을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다. 보고 또 봐도 재미있고 볼 때마다 얼굴 한 가득 미소가 머금어지는 이쁜 이야기, 너무 사랑스러운 그림책.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 소담출판사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소개한다기에 기대하고 봤더니, 자기들끼리 정신없는 농담만 주고 받다 끝났다. 쇼 프로그램의 한계 때문인지, 남자들의 감성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건지... 알콜중독 아내와 게이 남편, 그리고 남편의 애인. 자극적이고 황당한 소재같지만 이야기는 오히려 평탄하고 제목처럼 반짝반짝 감성이 빛난다. 각자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만났을 뿐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결혼, 그래서 그 결혼은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것, 지켜낼 가치가 있는 무엇이 된다.

로마인 이야기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 한길사
얼마 전, 로마 여행을 다녀왔다. 포로 로마노에 들렀다 카이사르의 화장터를 발견한 것은 뜻밖의 반가움. 초라한 흙무더기 위에 놓인 알록달록한 꽃송이들을 보면서 가슴 뭉클해지고, 이번에야말로 <로마인 이야기>를 완독하리라 결심했었다. 그리고, 또 그 결심은 언제나처럼 공기중으로 사라지면서.. 한 때 내가 그토록 빠져있던 사람은 카이사르가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50이 넘은 나이에 일 년에 한 권씩 십년 동안 로마사를 쓰겠다고 공언하고 그것을 지켜냈던 작가의 끈기와 열정, 참으로 부럽다.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열일곱 살의 털




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소멸과 가난에 대해 이처럼 처절한 글을 본 일이 없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언제인가, 현재가 아닌 순간에 그가 쓴 것들이다. 여전히 소멸이 두려운 나는 죽음의 순간 그의 글을 떠올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호감과는 다른 말로 존재하는 경이의 존재처럼 여겨진다.

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 북스피어
빌 밸린저와의 첫 만남. 서스펜스나 스릴보다는 이야기의 아름다움과 그 행간의 쓸쓸함에 주목하게 되는 책. 반전은 놀라울 것 없으나 그 속에 짙게 벤 '애수'가 마음에 든다. 히치콕보다는 카사블랑카에 가까운 이 이야기는 시절에 대한 향수이자 존재할 수 없었던 '행복의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곳엔 '아메리카 드림'으로 대변된 열패자들의 꿈이 있으나 그 꿈들은 처절하게 실패한다. 완전범죄를 성립시켰다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를 고민해보면 이야기의 잔혹함은 더욱 처연하게 변해간다. 잔인한 잿빛 따뜻함, 이랄까. 말이 된다면.

타임 패트롤 폴 앤더슨 지음 / 행복한책읽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야 이 시리즈를 읽고 있는 중인 뒤늦은 독자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잖나. 처음과 같이 이제야 항상 영원히, 나는 이 책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 '펄프'한 느낌의 화장실에서 생각했다. 시간을 감시하는 '시효경찰'의 이야기로 <바다의 별>,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로 이어지는 시리즈 두 편은 국내 최초로 완역되었다(고 한다.) 하드-보일드한 카버 류의 형사가 등장하는 SF-대체역사물(이라고 한다). 재미도 탁월(하다고 하며), 어쨌든 엄동설한 세 권의 책으로 동면에 가까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선택할 책.

읽어보면 좋은 책 :사랑의 기하학  •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헤르메스미디어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대범하게 드러낸 이 책은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지난 10년 간의 내밀한 이야기를 모은 첫 번째 산문집이다. 13년간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발산한 '사람 냄새'가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가난하고 아픔이 많았던 유년시절, 스무살 시절의 사랑과 순정, 상처주고 상처받았던 일, 어머니와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용서, 노희경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온 고백은 노희경 작가의 성숙함과 여유로움을 온전히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첫사랑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동안은 내가 노희경 작가가 되고, 노희경 작가가 내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들만큼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현대문학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2007년 아마존 베스트북 1위‘이라는 화려한 타이틀보다도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 마음이 이끌렸다. 이 책은 사회적인 지위와 부를 가진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마리암, 내전의 희생량이 된 라일라 두 여인의 고달픈 인생 여정을 다룬 장편소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이 소설은 여성의 지위에 대한 억압과, 그에 수반되어진 희생과 인내를 그린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처절한 환경 가운데서도 보여준 위대한 우정과 모성애는 큰 감동으로 남는다.

20대, 자기계발에 미쳐라 이지성 지음 / 맑은소리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낸 저자 이지성의 또 다른 자기계발서. 서문부터 날카로운 꾸짖음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30대의 발판을 마련하는 준비단계로써의 20대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가를 강조하면서 20대를 치열하게 보내야만 하는 이유와 방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행동/관계 각각 10일 플랜으로 나누어 자기계발의 실질적인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꼭 20대가 아니어도 좋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 내는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자기계발서를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는 작업만으로도 많은 도전이 될 것이다.

읽어보면 좋은 책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 알자스




4시간  티모시 페리스 지음 / 부키
물론 이 책은 혁명과도 같은 ‘주 4시간 근무’(주 4일 근무도 완전 불가능해 보이는 마당에)에 대한 책은 아니다. 온갖 쓸데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대인들이 진짜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이자,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는 책이다. 사실, ‘이메일 확인을 하루에 한 번으로 줄여라’, ‘원격근무로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줘라’와 같이 일반적인 한국 사회에서도 과연 가능할까 싶은 내용들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읽어둘 필요가 있는 책이 아닐까.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 지음 / 살림
‘마지막 강의’를 영상으로 먼저 접했는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가 마치 나의 스승이고 나의 친구인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진정성 앞에 여러 차례 소름이 돋았고,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었다.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그리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그이지만, 그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며 아버지로서, 삶의 나침반으로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 했던 랜디 포시. 비록 그는 떠났지만 이토록 소중한 강의를 남겨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뉴욕 아이디어 박진배 지음 / 디자인하우스
신혼여행을 뉴욕으로 갈 예정인 홍MD가 수집 중인 뉴욕 관련서 중 가장 아끼는 책. 아마도 2008년에 가장 오랜 시간 내 손에 있던 책일 듯하다. 최신의, 가장 믿을만한 정보를 담고 있는 ‘Just Go’ 같은 가이드북들도 물론 좋지만, 어딘가 설명이 부족하다거나, 조금 더 특이한 컨셉이 필요할 때 이 ‘뉴욕 아이디어’ 같은 책들이 큰 도움이 된다. 색으로 주제를 구분하여 보기에도 좋고 찾기도 편하다. 뉴요커를 꿈꾸는 홍MD 추천 1순위 뉴욕 책!

읽어보면 좋은 책 :화폐전쟁  • 화차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 문학동네
-Are you real brave?
-Just medium.
-What's the bravest thing you ever did?
-Getting up this morning, he said.

-아빠가 이때까지 한 일 중에 가장 용감했던 건 뭐예요?
-오늘 아침에 일어난 것이란다, 얘야.

매카시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름답고 선한 것만이 인간을 교화하는 법은 아니다. 도처가 추하지만 이 책의 존재만큼은 눈부시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 르네상스
해리포터로 돈방석에 앉은 조앤 롤링이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던 가난한 싱글맘이었고, 동네 카페 한 켠에 갓난아이를 재우고 집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녀의 대답은?

'냉기뿐인 셋방 이야기는 완전히 그럴 듯하게 꾸며진 이야기다.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맸다니, 그런 일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커피 맛이 좋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알아서 빈 잔을 채워주는 카페를 골라 다녔을 뿐이다.'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은 그녀가 자신에게 헌정한 시집을 경매장에 내놓았으며, <롤리타>로 희희낙낙하던 출판업자는 나이트클럽 두 개, 레스토랑 하나, 술집 세 개, 극장 하나를 열었지만 곧 도산했다. '뒷담화'로 가득한 책이지만 애서가라면 솔깃할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습지생태보고서>에 이미 너무 많은 점수를 주었기에, 이번 해에는 그냥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당치 않게 꽉 찬 작가는 또 한 번 좋은 책을 내주었다. 내심 이러저러한 실패작(이라기보다는 대중에게는 구미가 떨어지지만 평론가들에게는 박수 받을, 혹은 그 반대인)도 보고 싶지만, 느긋하면서도 신중한 이 젊은이는 매번 양쪽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살짝 내비친 소망처럼, 내년에는 더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내질러주었으면 한다.

읽어보면 좋은 책 :유리문 안에서  • 리틀 포레스트 1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2008년 내맘대로 최고의 여행서. 몇 장만 펼쳐 보아도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제주 사랑하는 마음이 제주 앞바다의 푸른 파도처럼 넘실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에 못지 않게 제주를 동경하는 나에게는 '걷기여행'이라는 방법 역시 매력적이고 반갑게 다가왔다. 사색까진 아니더라도 제주 바람을 맞으며 한나절 걷고 나면 그간 쌓였던 고민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질 것 같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지만 2009년에는 책과 함께 '놀멍 쉬멍 걸으멍' 올레 길을 걷고 있을 내 모습을 그리며 오늘도 흐뭇한 마음을 가져 본다.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 문학동네
<로드>의 세계는 암울하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덮힌 지구 위에 아버지와 아들은 생존을 위한 여행을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고 끝부분을 먼저 보았다. 감동은 줄었음에 분명하지만 단 하나의 희망을 미리 맛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미 수많은 찬사와 화려한 수상 실적으로 인정받은 책이지만, 코맥 매카시의 굴곡진 인생이 녹아든 이 걸작을, 아직 못 본 이들이 있다면 보다 담담한 심정으로 접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꼭 마지막 장까지 전진하라는 당부도 함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유난히 OST가 귓가에 남는 영화가 있듯, 음악으로 기억되는 책도 있는 것 같다. 쓸쓸한 늦가을에 위로가 되었던 제프 버클리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유작인 'liac wine'을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어떤 우연이었을까. CD가 한바퀴를 돌 때까지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페이지를 펴 놓고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이틴 로맨스물같은 몇몇 페이지에 낯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사랑을 할 땐 아이처럼 유치해져도 좋으나 헤어질 땐 보다 성숙해야 한다고, 이 책은 사랑하는 법을 일러주고 있다.

읽어보면 좋은 책 :콩지의 착한 베이킹  • 초등 읽기능력이 평생성적을 좌우한다




이보디보,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  션 B. 캐럴 지음 / 지호
엄격한 과학적 기준에 의하면서도 흥미롭게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알게 해준 깔끔한 교양 과학서인 이보디보(evo devo-진화발생생물학의 약자)는 동일한 유전자가 복잡한 형태로 각기 다르게 발전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서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즉, 초파리의 눈 발생 유전자를 생쥐의 배아에 이식 시키면 생쥐의 정상적인 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생명체마다 구조나 구성재료, 작동 방식에서 차이가 있음에도 말이다. 진화와 발생 두가지에 현대 생물학을 통합한 책이다.

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지만 정작 경험했던 자신들도 쉽게 잊고 지나치기 마련인 가족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60~70년대를 지나온 작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역사로, 민중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 시절을 지내온 삶에 대한 책이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틀리고, 심지어 세대가 틀린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울컥하는 걸 보면 가족을 생각하는건 누구나 같은 듯하다. 특히, 그리움이라는것..

괴물의 탄생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이 책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등장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사회를 지배하는 최고의 법칙으로 등극한 나라에서, 땅투기꾼들이 드디어 정치권력마저 획득한 순간에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대전환'에 관한 책이다. 예언서라기보다는 정상적인 국민경제의 회복 혹은 상식적인 국민경제로의 전환에 관한 실천을 얘기해보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책인지라 저자의 말로 대신한다. 2008년은 저자의 책들을 통해서 사회를 바라본 한 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읽어보면 좋은 책 :탐욕의 시대  • 로드




Like the Flowing River  파울로 코엘료 지음 / HarperCollins (UK)
소소하지만 무엇보다 가치있는 삶.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알며, 자연과 함께하고 그 풍경에 사랑하는 이가 함께 하는 평온한 삶. 바쁜 일상 속에서 한번 쯤 꿈꾸는 삶이 아닐까..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인생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해 주고, 영감을 주는 글로 사랑받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 생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은 지혜의 글들과 그가 직접 듣고 겪 은 이 일화들을 통해 들여다본 그의 범인으로서의 삶이 그러했다. 언젠가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과 꼭 닮아 있는..
그는 언제나 말한다. 삶은 늘 행복할 이유가 있고, '우리 각자에게 실현해야할 신화가 있다'는 것.또 우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몸이 안 좋아 잠시 쉬는 동안에도 앞서는 걱정들로 조급하기만 하던 내게, 너무나 오랫동안 바빴던 내게, '아무것도 하는 않는 동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웠던 고마운 책.

The Elements of Style   윌리엄 스트렁크 지음 / Dover Publications
수많은 명작들이 오랜 세월동안 사랑받고 있지만, 계속해서 개정판이 쏟아져 나오는 문법책 종류가 이리도 오래 사랑받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게다.
물론 E.B. 화이트 등이 개정판을 내고 여러 유명인들의 추천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게 사실이지만, '윌리엄 스트렁크'가 간결한 영작법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을 위해 자비출판한 이 책은 제자들에 대한 그의 마음이 극진해서 였을까. 최근에 와서 봐도 모자람이 없을만큼 (현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들이 종종 있을지라도) 핵심만을 모은 참 알찬 책이다.
언어구사능력이 떨어질 때도 주저리 주저리 말수만 많아지는 만큼 작문 실력이 딸리게 되면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포함해 군더더기 표현이 넘쳐 장황해지기 마련. 작가는 'Vigorous writing is concise.'(글의 생명은 간결성이다 ?)를 말한다.
두꺼운 문법책에 질린 독자라면, 'The little Book'이란 애칭만큼 얇고 작지만 알찬 이 책 한권을 가지는 것만으로 이미 그 부담감에서 약간은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펼쳐 볼 때마다 '간결한 글짓기'으로의 안내를 받게 될지니.

읽어보면 좋은 책 :The Kite Runner  • The Last Lecture


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 열린책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팬이 된다는 건 축복이자 저주라고 쓴 적이 있다. 내 경우는 폴 오스터가 그러하다. 누군가처럼 10년에 한번 신작을 발표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그의 작품 개수가) 부족하다. 따라서 오스터의 최신작 <어둠 속의 남자>를 읽는 것은 기쁘지만 슬픈 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그 다음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테니까.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겹쳐 있다. 9.11 이후 남은 자들의 하루와, 불면의 밤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떠올려낸 폐허의 세계... 이야기의 중간 부분이 약간은 갑작스런 파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폴 오스터가 이제 완전히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자신의 이야기 세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노년, 완숙한 폴 오스터의 작품 세계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독.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 비채
새로운 재능을 만나는 건 언제나 신나는 일. 올해 국내 일본소설 편집자들이 가장 주목했다는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는 그야말로 '새로운 재능'이라는 호칭에 100% 어울리는 작가다. "지금은 이렇게 생겨먹은 나지만, 날 때부터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다는 말을 우선 해두고 싶다."는 해괴한 선언으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대화와 줄거리로 구성된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작품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 오쿠다 히데오나 이사카 고타로, 온다 리쿠보다 소구하는 폭은 좁을지 모르지만, 일단 좋아하게 된 사람은 떠올리기만 해도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들 작가다.
이 작가의 키워드는 교토, 청춘의 사랑과 우정. 어리벙벙한 대학생과 그의 사랑을 받는-어여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엉뚱한 아가씨가 등장, 돌고 돌며 반복되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폭을 무한히(!) 넓혀간다. 혹자에 따라 '괴상'하다고도 여길 수 있는 특유의 문체도 매우 인상적. 한마디로 재기발랄(음, 음울찌질일지도;;;), 새로운 일본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면 강추.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에 이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태양의 탑> 등의 작품이 연달아 국내에 소개되었다.

맛의 달인 100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
드디어 100권째를 돌파한 만화 <맛의 달인>. 여느 음식 만화처럼 <맛의 달인> 역시 대결 구도로 구성되지만(완벽한 메뉴 vs 최고의 메뉴), 대결의 승패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사연과 갈등, 화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만화를 무려 100권이 나오도록 계속 사서 모으게 한 것은 나아갈수록 무르익어가는 캐릭터와 특유의 개그 감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감한 시대적 현안-광우병, 첨가물, 포경 금지, 쌀 수입 개방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룰 뿐 아니라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정치적으로 공정한 시각을 보여준 점도 일조. 주인공들이 결혼한 이후 이야기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각종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반복되는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의미있는 만화책.

읽어보면 좋은 책 :블랙 스완  •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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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의 책 읽기
    from 마지막 키스 2008-12-23 17:57 
     3월달에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으며 놀라워했다. 이 작은 책 한권 안에 달걀과 베이컨과 책이 들어있고, 이 작은 책 한권 안에 기쁨과 놀라움과 행복과 슬픔이 다 담겨져 있다니. 이 작은 책이 이토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니! 나는 너무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내가 그러했던것 처럼 따뜻함으로 가득차기를 바랐다. 5월달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었다. 책장을 넘길때마
  2. 내맘대로 뽑은 2ㅇㅇ8년의 책 세 권...
    from 글샘의 샘터 2008-12-23 23:07 
    이런 거 참 어렵다. 무슨무슨 책을 세 권, 다섯 권 뽑아라~~ ㅠㅜ  올해도 이백 권 가까운 책을 읽었는데... 공부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책 한 서른 권 빼고 나면, 좀 초라한 목록이다.  그것도 서평단에서 보내준 책 겨우 읽고 쓰는 요즘엔, 아이들 대학 입시 상담으로 입도 머리도 말라버린 상태여서 좀체 글이 나오지 않는다. 휴~ 역시, 글이란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하다가, 어느 순간, 운전을 할 때거나, 울퉁불
  3.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Mrs. Nobody 2008-12-24 16:27 
    <소설>  애니 프루,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담담한데, 그 속에 폭풍같이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 황량한데, 그 속에 뜨거운 불덩어리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   갈등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고 플롯이 완벽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사람의 - 전세계 평균 이하라 할 만한? - 인생을 나직히 이야기하고 있을 뿐인데.. 참 좋았다.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인생에 숨어 있는 드라마가. 그리고
  4. 2008년 독서 총정리
    from 졸린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2008-12-25 10:41 
    읽은 책 목록 도전하라 한번도 실패하지 않은 것처럼 - 수잔 제퍼스 88만원 세대 - 우석훈, 박권일 이채원의 가치투자 - 가슴 뛰는 기업을 찾아서 - 이채원, 이상건 쥬라기의 인디안기우제투자법 - 쥬라기 경제의 진실 - 존 케네스 갤브리에스 전설의 사원 - 도에 에이지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 - 노암 촘스키 외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권 - 강준만 카르마 경영 - 이나모리 가즈오 함께 있을 수 있다면 1 - 안나 가발다..
  5. 2008년 내가 사랑한 책들....
    from 아침햇살님의 서재 2008-12-30 15:13 
     혼자서 많이 힘들때 우리학교 학생이 읽고 있는것을 발견하고 읽게 되었다.   진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혼자서 밥도 못먹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 신경쓰지 않고 혼자서 밥 먹는것도... 혼자서 커피마시며 책을 보는것도... 혼자서 쇼핑하는 것도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6.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엄마는 독서중 2008-12-31 05:28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을 뽑아 봤어요. 개인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책을 좋은 책이라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2008년 출간도서중에서 골랐지만 아닌 것도 있답니다.^^ 어린이책  형들이 우표와 동전 모으는 걸 부러워하다가 자기만의 독특한 수집거리를 찾아낸 맥스가 사랑스러워요. 낱말을 모아 문장을 만들며 신나는 맥스~ ^^ 낱말의 위치만 바꾸면 어떤 문장도 다 만들수 있는 걸 보고 형들은 자기 수집품과
  7. 2008년에 읽은 내마음대로 좋은책
    from 희망찬 하루 2008-12-31 13:23 
    아이들이 어려서 늘 아이들 눈높이의 책을 읽게되네요. 그 어느해 보다도 바쁘게 생활하면서 책과 좀더 친하게 지내지 못한게 조금은 후회도되구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책이 나자신에게 주는 보너스는 참 많다는 생각이드네요. 아이들 키우면서 늘 바쁘게만 생활하다보니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데,  그래도 책을손에 쥐고 조금씩 읽어가며 바쁜생활에서 조금의 여유를 가질수 있다는게 즐겁네요. 대단한 책이 아니어도 책을 통해 작은기쁨을 발견할
  8. 2008 내맘대로 뽑은 최고의 책^*^
    from 책과 함께 하는 사서 세실~ 2009-01-01 16:23 
    2008 내 맘대로 뽑은 최고의 책을 분야별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가족의 소중함, 특히 엄마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게 해준 책으로 ^*^             신경숙님의 '엄마를 부탁해'는 치매가 있는 우리 엄마를 읽어버렸고, 집에 돌아올 수도 없다면.... 그 아득함에 그만 한참을 울었다. 엄마의 부재가 가져오는 상실감은 강한
  9. 2008년 최고의 소설 BEST10
    from 리아트리스의 서재 2009-01-03 15:51 
    2008년 최고의 소설 BEST10   올해도 한 해의 독서를 정리하는 의미로 2008년 최고의 소설을 선정해 보았다. 개인적인 기준에 의거한 것이며, 언제나처럼 소설적 상상력과 재미를 일차적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재미 다음으로 문장의 유려함과 구성의 치밀함을 비롯한 소설적 완성도를 보았고, 마지막으로 작품의 문학적 성과를 나름대로 고려해 보았다.  2007년 12월부터 2
  10. 내가 뽑은 2008 올해의 책
    from 천국보다낯선 2009-01-03 17:26 
    또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08년에는 유독 많은 일이 있었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자꾸만 남루해지는 것 같다.. 광우병으로 시작된 촛불집회.. 전 세계를 들썩인 유가 폭등.. 위태롭게 몰락하는 미국 경제.. 국민 배우 최진실 사망.. 코스피 지수 1000 포인트 붕괴.. 치솟는 환율로 경제 불안정.. 소설가 이청준, 박경리 별세.. 등등.. 하지만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받아들여야 한
  11. 음,,, 내, 내 맘대로 좋았던 2008년의 책!!
    from 만사가 귀찮은 者 2009-01-04 22:26 
    새로운 대학이라는 환경 속에서 지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나만의 러블리 베스트 도서들!! 읽은 책들 중에서, 열심히 고르고 골라서, 딱 세 권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해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는 스테프니 메이어의 뱀파이어 시리즈 첫 번째, 트와일라잇이다. 사실 초판이 있지만, 그냥...ㄱ-)ㅎㅎ;; 개인적으로 세 개의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든다. 각각의 캐릭터가 다들 예쁘게 살
  12. 2008 바람돌이 맘대로 좋은 책
    from 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2009-01-06 00:30 
    올해 읽은 책들 중 내 맘대로 좋은 책들.
  13. 2008 멋진 세계로의 초대
    from 작은 일에 충성을 2009-01-09 11:38 
    바쁜고 번잡한 일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재잘거기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머물때와    책속에서 읽는 짧은 구절하나가 나의 시간을 오래도록 붙잡아 줄때이다.  추운 겨울이 따스하게 느껴질때 역시   비록 죽마고우 멀리 있어 이야기 나누기 힘들더라도   나를 낯선세계로 초대해주며 늘 새로움을 공급해 주는  
  14. 2008년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그대가, 그대를 2009-01-11 01:25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걸 한참만에 기억해냈다. 2009년이 되고도 열흘이 지났지만 늦깍이로 정리해 본다.   2008년도에 내가 읽은 책은 모두 515권이다. 동화책이 많이 끼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숫자다. 금년에는 사기보다 사둔 책을 좀 읽어내는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_<)      1. 소설           가장
  15. 2008년 나만의 책 BEST(문학)
    from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2009-01-11 19:40 
    올해가 아마도 책을 가장 많이 읽은 해 중 하나일 것이다.  올해 목표는 100권이었는데 127권으로 초과 달성하였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꼽으니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눠봤는데도 재밌게 읽은 책이 많아서 책을 골라내기가 너무 어려워 그냥 괜찮았던 책들을 모두 정리했다. 목록을 보니 역시 추리소설을 비롯한 미스터리류가 대세다. ㅋ  좀 편식하는 경향이 있
  16. 2008년 나만의 책 BEST(비문학)
    from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2009-01-11 19:42 
    비문학 분야 읽은 책 중 좋았던 책들을 정리했는데 역시 자기계발서나 경제, 경영 관련 서적들이  주류를 이뤘다. 상대적으로 인문, 역사 등의 교양서적들이 적은 편이어서 2009년에는 개선이 필요할 듯
  17. 2008년 출간 추천 도서
    from 폴리아나 2009-01-12 19:54 
    개리 프로보스트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08년 6월 글쓰기의 기본 원칙과 기초 방법 100가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원제는 100 Ways to Improve Your Writing다. 당신의 글쓰기를 향상시키는 방법 100가지. 번역 제목과 달리, 전략적 글쓰기는 이 책에 딱히 있지 않다. 짧고 명확하게 글쓰기 방법을 제시했다.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18. 서른, 나는 그런 책들을 읽었다
    from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 2009-01-13 04:35 
       2008년에 나는 서른살이었다. 때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서른도 그랬다.   나는 서른 살을 어떻게 살지 이십대 내내 고민해왔다. 무려 십년이나 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막상 서른이 되니까 그 해답들을 다 잊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살았다.      여러모로 보편적인 한해였다. 대단한 사건도, 굉
  19. 2008년 추천도서
    from Devil May Cry 2009-01-13 15:59 
      2008년에는 그 전해에 비해 독서량은 감소. 반대로 구매량은 폭증했던 언밸런스한 한해였다. 작년에 읽은 책중 베스트3을 꼽아본다. 다소 현학적일지는 몰라도 모두 두꺼운 책들만 추천한다. 그리고, 이런 딱딱한 류의 책들이 기억남는건 의외다. 3권 모두 아직 리뷰 등을 남기지 못했다. 좋은 책일수록 더 애정을 담아 리뷰를 쓰겠다는 생각에 차일 피일 미루다 쓰지 못했다. 모두 핑계일뿐이지만...   이마미치 도모노부라는 일
  20. 내가 뽑은 2008년 올해의 책
    from 진달래의 작은 서재 2009-01-14 10:58 
    2008년에 읽은 책 가운데에서 뽑아야 하니 참 한정적이다.   겨우 124권 가운데에서 말이다.   이래 저래 좋은 책들, 이 분야, 저 분야에서 각각의 좋은 책들이 많았지만 내가 책 안 읽는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책들만 일단 최고의 책으로 뽑아보았다. ^^;; 책 읽기 좋아하고 책 잘 읽는 친구들은 이미 다 읽었을만한 책이니까.    <완득이&g
  21. 2008년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길 모퉁이 작은 책방 2009-01-14 11:59 
    왜 올 해는 "내맘대로 좋은 책"을 뽑지 않는걸까 의아했다. 2008년 한 해, 유난히 변화가 많았다고 생각되는 알라딘인지라 아마도 하지 않으려나 보다 했는데 그럼 그렇지, 잊으셨을리가 없다.  이 주제로 해마다 내가 뭘 읽었더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생각해보니 책에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해마다 중점적으로 읽은 책들이 있었다.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읽은 것은 전혀 아니였는데 목록을 살펴보다 보니 첫 해는 역사, 그 다음
  22. 2008년 나를 변화시킨 책들
    from miniway님의 서재 2009-01-15 02:50 
    비폭력대화  보면서 참으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판단하거나 쉽게 반응해 버린다던지, 욕구를 명확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 알아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거나 상대방에게 실망한다던지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죠. 좋지 않은 사례들은 한 번씩은 다 해당되는 것 같았습니다. 책은 비폭력 대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단계단계 잘 성명해 주고 있습니다. 몇번 씩 두고두고 읽고 연습한다면,
  23. 2008년, 내 마음대로 좋은 책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1-15 21:36 
    2008년에 읽은 책 중 내 마음대로 좋은 책을 골라 보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 날 책제목을 보며 <완득이>가 뭐냐며 깔깔댔던 게 기억난다. 요즘도 이렇게 촌스런 이름을 짓나 싶어서. 하지만 그 덕분에 완득이가 더 만만했던 걸까? 완득이와 똥주 선생은 금방 나의 친근한 이웃이 되었고, 공부하느라 머리 터지고 있는 중학생 조카들에게 선물하느라 바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시골이라서 정말 다문화 가
  24.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존재증명, 부재증명 2009-01-16 01:41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그 해의 책'을 꼽는 일은 쉽지 않다. 게다 독서량이 충분치 않았다면 더욱이나. 특별할 것도, 특별하지 않을 것도 없던 한해 였다면 더더욱이나. 특별해서 독서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작년(2008)의 목표 중에 하나는 '알라딘 리뷰 총 100개 채우기'도 있었다. 서재를 꾸리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는데도 리뷰 편수가 너무 적어 스스로 조금 안타까웠던 탓. 그런데 작년에 여섯 편을
  25. 2008년을 함께한 책들 - 국내소설.
    from 그대 영혼에. 2009-01-16 18:10 
    이제 2008년이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75권 이상 읽기!를 목표하고 올해를 시작했었는데 과연 그 목표에 얼마만큼이나 다가갔는지, 그리고 올해는 예년보다 어느 정도나 편식했는지(워낙 소설 중심, 여자 작가 중심, 추리소설 다독, 이 세 가지 취향으로 편중된 터라;) 정리해 보려 한다. 포스팅 하나로는 좀 힘들듯 싶어 국내소설/국외소설/국외추리소설/기타등등-_-으로. * 2008년에 읽은 국내소설 (작품명 순) 감기 (윤성희/문학동네) 거기,..
  26.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識案 2009-01-16 22:56 
     제대로 된 책읽기를 소망함은 말 뿐이었다. 언제나 급한 밥을 먹듯이 체할 듯 그렇게.. 그리하여, 한 해를 지나고 보니 이 책이다, 라고 소리내어 말할 책들은 또 얼마나 되는지...  소중한 책들에 대한 감사, 그리고 책을 아끼는 마음에 대한 표현을 좀 더 많이 하고 싶었는데, 나의 표현은 언제나 어떤 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역시나 한국문학중 소설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시를 많이 읽으려 했으나 한 권, 한
  27. 올해 읽었던 책 중에서.
    from 읽고 쓰고 생각하기 2009-01-17 01:19 
    올해 읽은 책 중에서 리뷰를 남기지 못한 책들을 정리해봤다. (별점 다섯개 만점) 로이의 글을 인터넷 상에서 접해서 읽게 되었다. 명쾌하고 깔끔하게, 잘 적힌 글.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 많다. 다시 꼼꼼하게 읽고 싶은 책. 인도의 환경과 자본에 대한 운동, 그리고 종교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미국인들도 함께 대항하고 살기 위한 이야기도 나오는. 에세이집. 별점 다섯개
  28. 2008년, 내맘대로 올해의 책
    from 자유를 찾아서 2009-01-18 12:43 
       가장 소중한 만남이었다. 일찍이 <서로주체성의 이념>과 <도덕교육의 파시즘>, <호모에티쿠스>로 만난 철학자 김상봉과, 그때까지 읽은 책은 없었지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서경식 선생님과의 만남. 두 분이 만나 주고 받은 대화가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두 분의 만남도 소중했겠지만, 두 분의 만남은, 두 분과 독자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나와 김상봉 선생님과의 지속적
  29. 2008년 내게 행복을 준 책들
    from 꽃게잡이님의 서재 2009-01-18 14:49 
    많은 사람들이 뽑아놓은 2008년의 책들을 봤다. 읽은 책이 몇 권 되지 않지만 모두들 좋은 책인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책 [난 할거다]가 빠져서 아쉬움이 남는다.    시골에서 도시의 고등학교로 유학온 남학생의 뼈아픈 성장기가 담겨진 멋진 책이다.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얼마나 단련되고 성장할 수 있는지, 또한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잡초같은 생명력이 무엇인지
  30. 2008년 내맘대로 올해의 일본추리소설 by 하이드
    from little miss coffee 2009-01-18 16:32 
    2008년 올해 읽은 좋았던 책에 대한 포스팅은 12월 중순에 이미 한지라, 2008년에 나온(읽은이 아니라 나온) 일본 추리소설들중 좋았던 것을 뽑아보고자 한다.   아직 사 놓고 읽지 못한 책들이 있어서, 리스트는 수정될 수 있다.  1.  2008년에 나온 일본 추리소설들을 리스트업해보았다. 추리소설이라 애매한 것도 있을 수 있고, 빠진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일단 할 수 있는한.. 최대한 2.
  31. 2008 내 맘대로 좋은 책
    from 인생의 도피처 2009-01-18 23:59 
    내 맘대로 좋은 책이라니 이거야 말로 정말 반가운 소리다.  늘 출판사에서 정하는 목록이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들이 대부분 차지하는 가운데 내 맘대로 좋은 책을 선정한다는 것은 개인적이면서도 각자의 취향대로 책을 재미있게 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기분좋고 무엇을 자신이 좋아하고 잘 받아들였는지 다시한번 되새겨보게 만드는 기회인것 같다.  2008년 유난히도 책을 많이 읽고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던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다
  32. 2008년을 함께한 책들 - 국외소설.
    from 그대 영혼에. 2009-01-25 00:08 
    정리하는 게 은근히 귀찮아서 계속 미루다보니 이제서야-_- 설날 전까지는 정리를 끝내버려야겠다. 으흑. 2008년을 함께한 국외소설들 목록! 개조심 (로알드 달/강) 고래 여인의 속삭임 (알론소 꾸에뜨로/들녘) 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아르테) 기상천외한 헨리슈거 이야기 (로알드 달/강)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들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기욤 뮈소/밝은세상)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문학동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신 카..
  33. 2008년을 함께한 책들 - 추리소설 &amp; 기타.
    from 그대 영혼에. 2009-01-29 15:11 
    드디어 마지막. 우선 목록 나열부터...헉헉헉. 리가타 미스터리 (해문) 죽은 자의 어리석음 (해문) 카리브 해의 비밀 (해문) 비둘기 속의 고양이 (황금가지) 테이블 위의 카드 (황금가지) 골프장 살인사건 (황금가지) 블루 트레인 미스터리 (황금가지)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문학동네) 벤슨 살인사건 (반 다인/황금가지) 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열린책들) 아임 소리 마마 (기리노 나쓰오/황금가지) 주홍색 연구 (코넌 도일/황금가지) 지하인간 (로..
 
 
starla 2008-12-2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역시 무슨무슨 기준 정해놓고 뽑는 것보다 그냥 '내맘대로' 뽑는 게 최고!
많은 책을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MD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알라딘도서팀 2009-01-15 15:44   좋아요 0 | URL
starla 님 / starl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꽃게잡이 2009-01-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랙백을 어떻게 거는지 몰라서...
간단히 방법 좀 알려주세요

알라딘도서팀 2009-01-15 15:43   좋아요 0 | URL
꽃게잡이 님 / 트랙백(먼댓글) 활용방법을 소개한 페이퍼가 있어서 바로 올려드립니다.^^ http://blog.aladdin.co.kr/proposeBook/1759359 해보시고 그래도 잘 안되시면 문제점을 알려주세요^^
 

 

"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작가의 나이를 의심할 것이다. 아니, 이 만화가 77년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그러나 작가는 인터뷰에서,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100% 실화라고 단언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60~70년대로 돌아간듯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사실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묵묵히 세월을 참아낸 어머니, 공부를 잘해 온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라는 장남과 그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세 딸들... 그런 집안의 막내로 자란 만화가는 자신의 가족들을 취재,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단편단편, 작은 웃음, 약간의 그리움을 자아내는 이 만화책을 내맘대로 좋은 책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로 다음의 단 한 장면 때문이다.

이제 늙어버린 엄마는 옥수수를 먹으며 처녀적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재종오빠의 친구 하나가 자신에게 호감을 지녀, 학교 정자나무 아래로 불러냈던 이야기. 그 자리에 나갔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아이구 동네에 말이라도 나모 우짤라꼬!" 손사래치며 나가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한다.

'그 남자 안 본 대신
나 같은 아들을 낳았으니
더 잘된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려다 그만뒀다.

50년을 하루도 빼지 않고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기어서라도
아침밥을 지었던 삶을 긍정할 만큼
내가 괜찮은 아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엄마가 긍정하더라도
난 그것을 믿을 자신도 염치도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세상 모든 자식들의 마음이란 게. 직접 되어보지 않고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세상 모든 아들 딸들의 마음 역시 모두 같다. 언제나 늘, 부족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늘 너무 늦게,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지하철에서 저 장면을 읽으면서 울컥, 눈물이 솟았던 건, 아마도 그런 세상 모든 자식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내기 주부의 서재에는.."

어제 저녁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서재가 당신을 말한다'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글의 내용처럼 오랜 세월 바뀌어온 주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서재는?'..기사를 읽고, 바로 내 뒷쪽을 쓰윽 훑어보았더니, 서재라 하기엔 어설픈 책장에 좋아하는 책, 읽다 만 책, 만날 읽어야지 생각만 하는 두껍고 폼나는 책들이 조금은 뒤죽박죽 꼽혀 있다.

어릴 적 TV 드라마 속 회장님 댁에서나 존재하는 걸로만 알았던 '서재'. 어찌나 그럴 듯해 보였는지 언제인가부터는 나도 그들만의 전유물같았던 그 '서재'란 방을 하나 만들어서 고급 책장에 좋은 책들을 꽉꽉 채워놓으리라 다짐까지도 했었고 지금도 그 희망은 여전하다.
 
결혼을 하면서 가진 책들의 일부만 데려왔으니 현재의 나의 서재는 완성된 '나만의 이야기책'은 아니었지만, 읽던 당시의 느낌과 그 나름의 배움들을 기억해 내며 한 권 한 권 둘러보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 덧 책장 한 켠에는 8개월 남짓한 '대한민국 아줌마'로서의 나의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얻고 사서 모아 둔 요리책, 육아책, 재테크 책이 꽤나 꼽혀가고 있었던 거다.
 
밥 먹고 사는 거 별거 아니더라고 큰 소리 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나물이네 밥상 2>.
평소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지라 대충 어떤 음식에 모가 들어가겠거니 짐작 정도는 하더라도 막상 만들어 보려면 막막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럴 때마다 친정엄니한테 전화해서 요리법을 물어볼 때처럼 계량 스푼 없이도 쉽게 쉽게 뚝딱 먹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내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그 중에서도 '비빔 만두', '낙지 볶음', '비지 찌개', '로스트 포크' 는 하기도 쉽고, 맛도 그럴 듯 해서 우쭐해 했던 요리들이기도 하다.
주중엔 바쁘단 핑계로 대충 때우게 되지만 주말에는 요리책들을 뒤져 이것 저것 만들어서 실컷 먹고 나면 정말이지 행복한 기분에 마구 빠져들게 해 주니 나같이 단순한 이들에겐 요리책은 '행복책'이기도 하다.
 
요리 외에 또 다른 관심사가 된 '재테크'에 관한 책들은 요리책처럼 쉽지도 만만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꾸준히 보던 경제신문과 몇 권 읽은 재테크 책이 큰 도움이 되서 용어 개념 정리도 어느 정도 되었었고 청약부금이며 종신보험이며 필요하다는 것들은 이것 저것 들어놓곤 했었다. 그런데 어째 나이들면서 점점 그 쪽에는 큰 관심이 없어 언제부턴가 '재무 테크놀로지'는 다른 사람 얘기인 듯 그저 수동적인 적금, 펀드 정도나 하는 정도였다. 
 
결혼하고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 입장에 서 보니 책임감이 막중해져 개념부터 다시 세워보자며 예전에 읽다 말았던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도 다시 들추어 보고, 며칠 전부터는 '신혼 3년 재테크 평생을 좌우한다'를 보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있다.

표지부터 '짠돌이 카페' 얘기를 운운하길래, 이거 영 나와는 적성이 맞지 않는 '남한테 빌붙기'나 '자린고비되기' 등의 처세술이 등장하면 어쩌나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무일푼에서 시작한, 그저 나같이 평범한 주부들이 어떻게 해서 집을 마련했고, 경매에 성공했는지의 실제 경험담들을 가계부까지 공개해 가며 세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었다.

 하도 억억하는 세상이다 보니, 그네들의 성공을 푼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부익부'가 아닌 '빈'에서 철저한 노력으로 '작은 부자'가 된 그이들은 누구보다도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부의 축적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재테크에서도 부부가 얼마나 서로 합심해서 노력하는가가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가슴 찡한 이야기들도 담아 내고 있어 딱딱한 기술만을 알려주는 경제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든다.
 너무도 큰 부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지만,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이루어낸 이 '작은 부'는 참으로 눈물겹고, 그 실행 방법부터가 팍팍 와 닿으니 나같은 재테크 초보들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훗날 나의 많은 세월과 관심사들을 드러낼 서재에 어떤 책들이 얼마나 꼽혀있게 될런지 모르겠지만, 요리와 재테크 이 두 방면에서 고수가 되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으니 이 분야 서적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만 같다. 다만 이 두 방면의 독서에서는 앎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행동력과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불면의 밤을 헤쳐가다"

이번 장마철은 유난히 힘겹다. 굳이 비가 오지 않더라도 그렇다. 일조량 때문일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향으로 창이 나 있어서 여름 오후 4시만 되어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자취방에서조차 별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에 힘들었던 상황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한 해가 흘러 비슷한 기후가 되자 머릿속의 기억까지 깨워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주중에는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우울해하며 허우적댈 틈은 없었다. 직장인의 양심에 비추어서도 '차라리'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게 훨씬 나았으므로, 간만에 아주 그냥 마음껏 빠져들었다. 책의 효용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집중해서 넋을 놓게 하는' 역설적인 능력만큼 마술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행복한 밤들이었다.

<로드>는 전율스럽다기보다는 성실하게 쌓여진 스산함을 느끼게 하는 미국 스타일의 걸작이었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읽었다. 절망의 롤러코스터 같은 걸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류 문학이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제대로 손잡은 멋진 사례. '질질 짜는 쇼 따위는 포커 페이스 밑에다가 숨기란 말이야, 이 풋사과 같은 놈.'(누구? 최근의 폴 오스터? ㅎㅎ)
(그런데 이런 걸 정말 많은 사람들이 즐기나? 이상할 정도로 너무 많이 팔린다는 염려(?)를 지울 수 없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같은 걸 기대한 분들에게는 큰일인데...)

<슬픈 미나마타>는 의외의 일격이었다. 미나마타 병이라는 센세이션에 전혀 매몰되지 않은 진짜 인간 스케치다. 서서히 부서져가는 어촌의 분위기, 결국 삶에 섞여들면서 느리게 진행되는 절망과 함께 일종의 권태까지 품게 되는 그 모습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공장 부지로 매립되어 버린 바다를 고향으로 갖고 있는 나도 그 느낌을 대강 안다. 어느새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과 르뽀의 중간에서 춤추고 있는 이 묘한 작품은 그 미묘한 변화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마루야마 겐지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었는데, 그가 보여주었던 건조한 뜨거움 같은 것을 꽤 오랫만에 만난 것 같다.

그래픽 노블 두 권. <재미난 집>은 문학적으로 풍부한 텍스트였고(그야말로 그래픽+노블이다), 여러 종류의 숨겨진 묘사와 비유를 찾느라 즐거운 독서였다.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이런 데서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게다가 감동적이었고. 반면에 <진과 대니>는 그야말로 '성장만화'였다. 서유기와 TV 시트콤 형식과 자전적인 스토리가 얽히고 설켜 결국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는 씁쓸하달까 싸하달까 묘한 기분이 들기까지. 신화와 하급 문화를 차용한 방식은 멋졌고, 게다가 어렵지도 않았다.

아.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도 좋았는데. 이것도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 되려나...음.

그렇지만 역시 넋놓고 보기에 가장 좋았던 녀석은 <세계대전 Z>. 무슨 '악의 축 리턴즈'도 아니고 갈수록 노골적이어지는 정치색에 나중에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지만, 어쨌거나 재밌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름 신선한 발상의 좀비물 같은 걸 마주할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불싯, 쎄자르, 이 세상엔 로코코코적인 것은 없어"

섬에 가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도, 박광수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니 굳이 대자면 위저의 'Island in the Sun' 정도일까? 그냥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땅에 발을 붙이고, 때론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고 있음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한도 한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 여기서 나를 묶고 있는 이 고무줄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을까.
 
그래서 거문도였다. 신지끼의 전설도, 하얀 등대도, 환상적인 트래킹도 내 알바 아니었지만 빈약한 상상력과 졸렬한 검색 실력의 한계였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은 개도. 조율이 맞지 않은 인생은 때론 악보와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선착장에선 하얀 진도개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달리며 <로드>를 읽었고, 배를 타고 나가며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를 읽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리고 있는 묵시록-창세기는 결국 시작과 끝 사이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였다. 세상이 망하거나 나쁘거나,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다는 것은 경악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경악도, 깨달음도 없는 삶은 무엇일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뒤늦게 <여행할 권리>를 읽었고, 나는 여전히 “이 것뿐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껏 늘어났던 고무줄은 더 큰 반동으로 나를 떠밀어 흔들었으니까. 문득 이런 격언이 떠올랐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은…, 오늘은 이러고 있네.” 세상에 로코코코적인 건 없다지만.
 
*이번 달의 앨범은 배 위에서, 산 속에서, 적막한 민박집에서도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돌아온 James의 <Hey Ma>, 앨범 표지를 꼭 여기에 넣고 싶은, 말도 안 되게 행복해져 돌아 온 Sigur Ros의 <Með suð ? eyrum við spilum endalaust> 정도? 마침내 라이센스 된 Postal Service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니 먼 곳을 여행하는 동안 혹시나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면 너를 기다리며 노래하는 나를 기억해"






"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재미있고, 들고 다니면 폼이 나는 것 같다.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돕는다. 그런데 읽다 보면 뽐내기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주말 오전 커피숍과 어울리는 책.







"블루스와 날개 달린 외야수 J.C."는 지금은 품절되어 알라딘에서는 구할 수 없는 판타스틱 6월호에 실린 찰스 부코우스키의 단편. 날개 달린 외야수 J.C.로 꼴찌에서 우승 직전까지 당도한 야구팀과 이 친구를 믿고 일생 일대의 도박을 건 감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꼬기와 비아냥 정서를 천형처럼 타고난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아이슬란드어는 독음도 불가능하지만 앨범 제목은 대략 '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 정도인 것 같다. 일전에 NME는 Sigur Ros의 이전 앨범을 두고 '천상의 신이 황금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 했다는데, 원래 허풍이 심한 매체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그닥 틀린 말 같지도 않다. 이들 앨범 중에서 가장 팝적인데, 말 그대로 듣자마자 심장이 뛸 정도로 놀랍고 아름답다. 오랜만에 만난 성문영씨의 훅(hook)이 있는 해설도 (아마 계속 해오셨겠지만) 반갑고.

혼자만 사는 세상도 아닌데 고집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옹졸함이 되고 타협을 모른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쉽게 바보취급 당하곤 하지만, 가끔 이런 고집들이 승리를 가져오는 때도 있는 법이다. 비록 그 승리가 영원하진 않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 보위(David Bowie)가 'Heroes'에서 노래한 것처럼 - 그것이 단 하루일망정, 그들은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거다. / ... / 그리고 이 모두가 작은 경이이다. 적어도 이전의 시규어 로스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애증의 공간, 화장실에 관하여"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다. 그럭저럭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사실은 어릴 때 화장실에 빠진 적이 있어요.'라고 고백하면, 그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얼굴에 놀라움을 가득 표하며 "아니, 어떻게 살았대요 거기서?" 정도의 반응은 너무나 고맙다. 고마워서 두 손을 덥썩 잡고 냉면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대부분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정말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그 순간 돌연, 나와 그의 물리적 거리는 10cm 이상 벌어진다. 마음이 미어진다. 이제부터 그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나란 사람은 *뚜깐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난 여자, 정도에 그칠 것이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두번째 책 <화장실에 관하여>에는 몇 편의 중,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이자 표제작 '화장실에 관하여'는 뒷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환을 그려낸 작품이다. 모든 사건 사고의 배경에는 뒷간만큼이나 뒤숭숭한 중국 역사의 고비고비가 스미어져 나온다.


십칠 년 전, 양하이링이 후이하이루에서 바지를 적셨을 때, 나는 상점에 뛰어 들어가 판매원에게 애걸했다. 간신히 화장실 사용 허락을 받은 나는 쏜살같이 뛰어나와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해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현장에 있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양하이링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시의 혼란스런 장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수군거렸고 양하이링은 얼굴을 감싸쥐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114p)


몇 년 후, 양하이링은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 (115p)


작업장 주임은 양하이링을 무슨 희한한 동물 보듯 당황하며 말했다.
"하이링, 못 알아보겠네.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 옛날엔 아무리 고민이 있어도 말 못 하고 속으로 삭히더니 말야. 난 그땐 벙어린 줄 알았어. 그해 상하이에 갔을 때......"
양하이링은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가 하얘지더니, 다시 퍼렇게 변했다. 작업장 사무실에는 정적이 찾아들었고 사람들은 긴장했다. 주임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자 모두들 웃었고 양하이링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따라 웃었다. 모두 눈치 빠르게 인사를 했고, 미소를 지은 채 공장 문을 나선 양하이링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귀신같은 곳에 다시는 오나봐라."
울적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126p)

 
쑤퉁, 하진, 비페이위. 경제 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중국의 상승세를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문학MD께서는 '중국문학 추천전'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뭐든 트렌드가 되겠다 싶으면 삐딱선을 타는 심보 탓에, 중국 문학이라고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이후 통 외면한 것이 사실. 갑자기 '중국풍(風)'이 불었는지, 이번 달 들어 읽은 중국 문학책만 4권. 쑤퉁은 선방이었고, 비페이위는 반짝거리는 잠재력이 돋보였다. 내친 김에 고전까지? 하는 마음에 손에 잡은 것은 <명심보감>. 마음을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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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반쪽 2008-07-15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문학책이 많내요. 청의는 구입해서 집에 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화장실에 관하여도 읽고싶은 책이었는데..^^
갠적으로 문학 말고 다른 장르 책 중에서 뮤지코필리아에 눈이 자꾸만..자꾸만 가내요^-^

피어스 2008-07-22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장실.. 정말 애증의 공간이죠...ㅋㅋㅋ
 

 

"live high?"

마지막으로 책을 보며 웃은 것이 도무지 언제일까, 생각조차 까마득해 질 무렵 <최후의 끽연자>를 읽었어요. 이름 정도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아이큐가 178이라는 건 책 날개를 보고 처음 알았네요. 키도 아니고 아이큐가 178이라니 징그럽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고민했는데, 제목이 귀엽기도 하고, 표지도 그래서 한 번 읽어보기로.
 
첫 단편인 '급류'에서 그리는 것은 시간이 급류처럼 빨리 흘러간다면? 이란 상상. 사실 기발한 건 아니죠.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아니면 글핀지 그렇다면 모래가 오늘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모두들 이미 살고 있으니까요(How soon is now?). 그럼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는 것은 작가의 기발한 문장들 때문. '지상 최후의 끽연자'를 그려낸 표제작을 지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는 웃음은, 진짜 정통 역사물인 '야마자키'와 '망엔원년의 럭비'(아 제목 센스)에서 빵빵! 아 이렇게 말해 보았자 사실 웃기지도 않고 하니 직접 읽어보시라는 말밖에 더는 드릴 말이 없지만요.
 
근데 이렇게 말해 놓고도 자꾸만 웃음이 나서 오늘 점심 시간에는 문학MD님께서 "뭘 그리 쪼개냐"라고 핀잔을 주시기도 했는데, 문학MD 앞에서 소설 얘기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웃기만 했어요. 어쨌거나 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진심으로, 문학에서 '천재'란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달의 음반은 Jason Mraz의 <We Sing, We Dance, We still things>. 제목부터 맘에 쏙 드는 (사실 <Mr. A-Z> 같은 제목은 너무 했잖아요) 이번 앨범은, 디지팩이라는 점만 빼놓고는 대만족. 비트볼에서 쏟아낸 Iron & Wine 님하의 앨범 중 <The Creek Drank the Cradle>도 역시 엄지 손가락쯤 들어줄만 하겠죠.
 
그 외에 <상징의 비밀>, <융 학파의 꿈 해석>, <불교가 좋다>도 좋았어요. <심층심리학적 꿈 상징 사전> 같은 경우는, 나쁜 책은 아니지만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 박사가 말씀하셨듯, 사실 책으로 정리하기는 힘든 내용임이 틀림 없었으니. (이 책에 대한 아마존 서평 중에는 저자 에릭 애크로이드가 살았던 집에 이사 온  후로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는 남자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 배달된 한 박스의 저자 증정본을 받았다고;;;;) 사실 진짜 제일 좋았던 것은 <융 기본 저작집 9권 세트>이긴 하지만, 다 읽질 못해서… 정말 시간이 너무 빨라 책 읽을 시간도 없다니까요!

 

 

 

 




"열두 살의 내가 들었더라면"

초등학교 시절, 발표 시간만 되면 곤욕스러웠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러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내 답이 틀렸다는 지적을 듣는 것도 괜찮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다른 누군가의 대답에 이렇게 말하실 때는.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나는 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는데 선생님은 야단을 치실 때. 면박을 받는 친구를 보는 것이 답답했다. 그런 안타까움을 되살아나게 한 동화를 한 편 읽었다. 
 
구덕천은 같은 반 강주명의 주도로 따돌림을 당하고 상습적인 구타에 시달린다. 더이상 견딜수가 없을 때 선생님께 사실을 고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덕천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6학년 1반 아이들 전부가 아는데도, 선생님만은 모른다. 그래서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도. 그리고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다.
 
작품의 화자는 셋이다. 덕천이를 도와주려다 자신까지 주명이의 표적이 된 현수, 오빠 덕천이의 죽음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여동생,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에까지 '사람 죽인 놈'이라는 굴레에서 못하는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주명이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이어진다.
 
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처음 한 사람이 응해주지 않았다. 덕천이는 단념했고, 주명이도 그랬다. 거기서 끝이 난 줄로만 안다. 그게 아닌데. 억울하고 분한 일이 생겼을 때, 이 상황을 혼자 해결하지 못할 때는 도움을 꼭 청해야 하는데. 나의 말을 들어줄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있다. <6학년 1반 구덕천>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열두 살의 내가 들었더라면 참 좋았을 말이다.






"꼭 필요했던 책, 반갑다!"

증권업계 1위는 어디일까? 미래에셋증권? 아니다. 우리투자증권이다. 2위가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은 8위다. 보통 펀드를 많이 들기 때문에 펀드=미래에셋=증권업계1위로 생각하기 쉽지만 증권업계 매출은 펀드 판매만 포함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 포털 업계 1위는 당연히 네이버다. 그럼 2위 Daum과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 NHN(네이버)가 트래픽 점유율 43%, Daum이 23%이다. 하지만 순수익은 2813억 대 156억원으로 18배나 많다.
 
나도 지금까지 몰랐는데 이 책을 보고야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긴 했지만 인터넷을 찾아서는 막상 알기 힘든 대한민국 업계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그래프와 도표로 보여주는 반가운 책이다. 업계 1위는 누구이며 매출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지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반갑기만 하다. 매년 연말이 되면 꼭 찾아보는 책으로 <SERI 전망서>가 있는데 이제 이 책도 추가해야겠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찾기"

어느 덧 여름이 성큼 다가와 버렸습니다.
2008년도 금방 가겠다 싶어 마음도 급해지기만 하네요.
하루에 한번쯤은 나를 돌아보자 마음먹었지만, 그저 한 일과 해야할 일들을 나열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고 있자니,
씁쓸해 지기도 합니다.
 

이번 주는 잡다한 생각들로 불면증에 시달렸더랬습니다.
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만 같이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온전히 내가 아닌 모습으로 서 있는 건 아닌지,,,
온갖 의무도 놓아버리고 싶어지구요.
이미 가진 것들의 소중함은 잊은 채 행복의 기준을 저 밖에 두고 서글퍼하고만 있었습니다.
봄이 떠나기 직전 제 마음을 한번 살짝 잡았다 놓았던 것일까요..5월의 마지막을 뒤숭숭하게만 보냈네요.
 

이러했던 제 심정때문인지,
이 책들이 모두 저에게는 한결같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찾기'를 권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행복해야 하고, 그렇다면 내가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야 한다' 고 법정스님께서 조용히 타일러 주셨고,
작가 공지영이 딸 위녕에게 조근조근 들려주는 이 '응원'은, 상처주는 이들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이들이 내 주변에도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제게도 다시 일깨워 주었습니다.
어린이 동화답지 않게 검은 색과 흰 색의 무채색만으로 표현되었지만(알고 보니 석판화로 찍은 그림이라네요,,),
그래서 더욱 섬세했던 '검은 새'에서는 '제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힘'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어린 소녀의 밝아진 미소에 저도 같이 웃울 수 있었습니다.
 
 
이미 꿋꿋하여 외부에 소음에도 흔들림이 없는 경지를 꿈꾸어 보지만, 아직도 나약하기만 함을 봄날이 무심한 듯 지나가며
제게 일깨워 주었네요.
언제나 '마땅히 행복한 사람'이 되어보자 다짐해 보면서, 일상의 소소한 일 속에서도 고마움과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그런 저의 모습을 바래봅니다. 6월을 힘차게 맞이해야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하세요 ~
 

P.S. 먼 곳으로 떠나기 전, 6명의 친구들 각각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화책을 일일이 골라 선사해 준 J 양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검은 새'는 요즘의 나에게 딱 맞는 이야기였소 ~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 두 권"

현실의 비극을 눈 앞에 둘 때마다 책은 작아진다. 즐겁게 읽어야 할 책들은 더 이상 즐겁지 않고, 배우고 익혀야 할 책들은 컴컴한 현실 앞에서 그 빛을 잃는다. 오래 전 읽었던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다시 훑었다. 어느새 내가 쌓아온 벽이 이리도 높고 두터웠구나.

고집불통이었던 후배가 시위 중에 부상당해 광대뼈가 내려앉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 달 동안 읽어 온 책 리스트를 지웠다. 좋은 책들은 물론 많았다. 읽을 수 있었어서 감사한 책들이었다. 문제는 나다. 지금 내가 뭘 보면 '감탄'할 수 있을까.

그저 지금에 대해 희망을 얘기하는 책들을 불러보자니 두 권이 남았다.
 
예수의 독설 - 민중신학은 늘 가슴 아픔을 수반한다. 인류 역사를 뒤흔든 예수의 뜨거운 저항과 우리네 민중의 역사를 뒤섞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바로 지금과 맞물려 있는 얘기다. 더듬더듬이지만 씹어먹듯이 읽었고, 다시 성경을 읽기로 했다.
 
히드라 - 소외받는 자들이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서 자존하는 세계는 있(었)는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자잘한 꼬뮌 얘기를 하면서 흐지부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라. 이 책은 말한다. 그런 세계는 '있었고', 있을 것이다라고. 책을 덮으면서는 울지도 못하고 가슴이 막혀서 털털 뛰어다녔다. 달리기 박자에 맞춘 구호는 대강 이런 것이었다. 협상무효 고시철회 같은거.

 

 

 

 



 

"Der Morgen will kommen(아침은 온다)"

4월 29일, '2008년 4월 내맘대로 좋은책'에 <주기율표>를 끼워넣을 때만 해도, 한 달 뒤에 다시 이 작가의 책을 꺼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는 파시즘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갇혀 지낸 뒤, 극적으로 살아난 인물이다. 분노, 공포, 불안감에 휩싸인 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곳에서 이성과 판단력을 잃지 않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지켜본다.

증언 문학의 일종인 <이것이 인간이다>를 여러 번 주변인에게 권했지만, 이번 달만큼 절절하게 권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족이 서로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한계를 간접 체험하다보면 진저리가 날 지경이다. 희망을 버린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가스실로 끌려가게 되는 곳에서 그는 이야기한다.

"수용소의 언어들 중 결코 사용하지 않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가? 'Morgen Frueh(내일 아침)'이다."
"이 곳 사람들은 지옥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목숨을 손에 쥐고 압도적인 두려움을 등에 업은 권력 앞에 수그려만 했던 사람들을 지켜봐야 하는 마음은 언제나 그렇듯 참담하고 슬프다. 하지만 여럿이지만 혼자여야 했던 그들의 처지는 달라졌다. 정말 다행이다. 





"휴일, 혼자 놀기 좋은 고대인 이야기"


<유럽의 잃어버린 문명>을 선물 받은김에 이것저것 고고학 관련 서적 몇권을 뒤적거렸습니다.
유럽 거석 문화를 아일랜드~지중해까지 배로 항해 하면서, 고대인의 과학,건축 지식에 대한 놀라움을 여행기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는 사진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책꽂이에 있던 <신의봉인>도 휘릭 뒤적거리게 되고,  온라인 지식 짱들 생각도 온라인 검색으로 찾아보고.. 
하니 휴일 하루가 금방 가네요. 혼자 놀기의 진수는 고고학 책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7권까지 보고, 8권~10권을 한꺼번에 샀다가, 읽기 대기 상태로 있는 와중에
15권을 예약판매로 사면 '로마인이야기 길라잡이' 준다는 고마움에 11~14권은 생각안하고 일단 사두었습니다.
몇 년 전인지, 몇개월 전인지도 모르겠네요.
8권 부터 다시 보려니, 영~ 흥미가 안나서 1권 부터 다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중간에 이빠진 도서들도 제 책꽃이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학원을 끊어놓고, 결국 두 번 밖에 못갔다. 처음엔 못가는 거였는데, 나중엔 못간건지 안간건지 모르겠다. 사실은, 2주 정도 지나고는 학원을 끊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오늘은 이거, 이거, 이걸 해야지, 하고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우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지만, 스트레스도 받는다. 벌써 몇 개월 째 지키기 힘든 리스트를 만들고, 없애고 했는데,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내가 되고 싶을 때 보통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으로 자신을 바꾸는 것은 힘들어. 누구든 하루 24시간이라는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미 그 그릇은 회사 다니고, 친구 만나고, 잠자고 하면서 꽉꽉 채워져 있는데 거기에다가 새로운 걸 집어 넣으려고 해봤자, 들어갈리가 없지. 이미 꽉 차있는걸. 일단 지금 채워져 있는 것 중에서 무언가를 버려야 다른 것도 넣을 수 있는 거지. 일단 하루만이라도, 지금까지 하고 있던 걸 하나를 그만둬. 그리고 그 시간에 대신 무엇이 들어가는지 잘 지켜봐'

자기계발서를 거의 읽은 적이 없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기계발서에서는 보통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고, 잠잘 시간도 줄여서 무언가를 시작하라'고 할 것 같다. '꿈을 이루어주는 코끼리'에서 하는 말도 결국은 쓸데없는 걸 할 시간을 줄여서 그 시간에 가치있는 일을 하라는 건데, 무조건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고 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그만두라'고 해서,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이 책, 작년 8월에 일본에서 출판된 이후, 벌써 몇 개월째 베스트 10위 안에 들고 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단다. 읽다가 말다가, 거의 한 달 걸려서 다 읽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번역본이 나와 있어서 살짝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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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7 10: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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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3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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