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일 수 없는 역사 - 르몽드 역사 교과서 비평
고광식 외 옮김, 김육훈 해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획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유와 행복을 꿈꾼다.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같은 속성의 다른 양태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릴 권리. 역사 속에서 이것은 늘 투쟁의 핵심이었다.

가장 가까운 1968년 68 혁명 외에도 파리에서는 중요한 혁명이 여러 차례 있었다. 1792, 1830, 1848년, 그리고 다른 혁명과 구별되는 1871년 리 코뮌은 투쟁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의 새로운 혁명이었는데, 자취권 쟁취를 위한 민중 봉기였다. 파리 코뮌에 대해 역사학자 자크 루즈리는 ‘민주주의에서 절대 자유의 문제‘를 제기했다. 파리 코뮌은 권력관계를 변화시켰지만 남성 위주의 지배 구조를 바꾸지 못했고, 착취를 근절하고자 했으나 사적 소유는 예외로 두었다. 이것은 여러 혁명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딜레마이자 투쟁 논점이다. 약 1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파리 코뮌은 ‘피의 일주일‘로 불리며 19세기 유럽에서 민간인에 대한 폭력 중 가장 규모가 큰 사건이었다. 파리 코뮌 이후 선포된 공화국은 민주적이지도 사회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라 여겨지는 스파냐 내전(1936~1939)은 사망자가 50만 명이 넘는데,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개혁을 촉구하는 민중운동과 보수파들의 군사 쿠데타가 대치되는 상황이었다. 에스파냐 내전은 우익세력의 ‘백색 테러‘가 더 많은 희생자를 낳았는데, 그 수장인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명분은 무시무시하다. ˝에스파냐를 구하기 위해 해야만 했다면, 나는 에스파냐 국민의 절반을 총살했을 것이다. ˝
에스파냐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보수파 쿠데타군을 지원하고 있었는데도 프랑스와 영국은 ‘불간섭‘ 정책을 내세웠다. 이 태도는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기 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 프라하를 점령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와 영국은 서로를 견제하고자 독일의 ‘자력 회복‘을 허용하는 실책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키우지 않았던가. 소련과 나치스가 ‘독소불가침협약‘을 했을 때도 유럽은 안일했고, 유럽 연합국과 독일의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미국도 눈치만 살폈다.
1943년 인도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처칠 영국 총리가 식량 비축분을 인도 주민에게 보내지 않고 식량이 풍부했던 영국군 부대에게 보내고도 뱅골 주민 300만 명의 죽음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은 것을 정당하다 말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군의 동부 전선 전투가 아니라 미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헐리웃 영웅주의,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전승국 중심의 잘못된 착각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동부 전선에서는 독일군 165개 사단이 동원되었으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독일군 76개 사단에 불과했다.

오늘 한국은 건국절과도 같은 3·1절.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아직도 참혹하게 겪고 있는 이들 중 팔레스타인 난민을 생각했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 이후 본격 대두된 시오니즘과 서구의 협조로 1948년 창설된 이스라엘 국가, 나라를 잃고 분쟁에 휘말린 팔레스타인. 어느 한 쪽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여기서 사라지는 쪽은 또 약자일 것이다.
세계대전 종전 후 회담을 통해 대재앙의 근원은 ‘개별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국제연맹의 무능‘이라고 연합국 사이에서 반성이 있었지만, 이 점은 파리 코뮌이 해결하지 못한 저 두 결론(지배 구조와 사적 소유)처럼 아직도 여전하다. 1945년 이후 이어진 냉전 체제와 그 산물인 세계 연맹 기구들의 설립 배경들을 보면 대재앙의 근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은 내부도 좀먹어 들어갔는데,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의 매카시즘과 소련의 즈다노비즘(즈다노프의 주도로 시행된 소련 문화 통제정책)은 자기 체제의 인간을 만들려고 했다. 자국의 기술을 과시하던 미-소 대결에서 어부지리는 과학 발전이라 볼 수 있을까. 모든 걸 날려버릴 핵 무장을 확산시킨 걸 생각하면 전혀 득이라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냉전의 종식까지 역사를 ‘단의 시대‘라 부른 에릭 홉스봄의 취지를 이어받아 산업화, 식민화, 대중의 정치 참여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1830년대부터 현재까지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다. 이 흐름들을 따라오며 식민지를 쟁탈하는 제국주의가 가장 문제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토 확장에 따른 수많은 문젯거리는 2차 세계 대전의 파시즘과 전체주의 속에 더 첨예해졌다. 서구 열강이 제 욕심에서 나눈 국경선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프리카 분쟁, 한국의 분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을 비롯한 수많은 식민지 독립 전쟁들, 서구 원조체제를 통한 또 다른 식민지화. 지금도 세계적인 긴장 요인은 영토 문제 같다. 한국에 사드 배치로 인한 긴장 구조만 봐도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1930년대 대공황이 요인이기도 했지만 에 있어 문제는 더 심층에 있다. 유럽과 트럼프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와 자국 보호주의는 자국 경제의 위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 표피만 보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하며 노동조합과 개혁주의 정당을 약화시켰다. 소위 선진국들은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 거대 국제금융기구를 통제하며 자기들 이익에 기여하는 규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제적인 금융기관이 긴축정책, 금융 규제 완화, 세계 무역을 지휘하면서 예전 식민지 강국-선진국, 특권층들의 부만 늘릴 뿐이었다. 피해는 크고 광범위했다.(1980년대 초 제3세계의 부채 위기, 1990년대 말 신흥공업국의 금융 위기, 2007년부터 미국의 ‘서브 프라임‘ 위기에 의해 촉발된 심각한 경제 침체) 오늘날 다국적 기업은 국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한 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치 지도자들의 행보는 의미 있었으나 2008년 세계적 경제 위기로 독자적 행보에 더 탄력을 받지 못한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굴레 속에 빠진 세계에서, 빈민 청소년을 위한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의사와 석유를 서로 교환하는 시스템은 얼마나 멋진가!

경제뿐 아니라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마저 강자 패권주의로 치닫는 현실에서 진정한 평화는 어떤 식으로 구축될 수 있을까. 19세기 말 첫 번째 세계화는 구 제국과 신흥 경쟁국들 사이의 첨예한 경쟁 및 민족 분열 속 경제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 상황과 비슷하다. 우리는 계화된 자본을 어떻게 현명하게 조율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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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1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4:02   좋아요 1 | URL
네. 어제 전시 가느라 일을 많이 못해서ㅜㅜ... 서평도 올려야 하고 너무 바빴음ㅜㅜ;;

2017-03-01 0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4:19   좋아요 1 | URL
스케치, 소장품 같은 건 복사하기 어려운데 온 거 보면 그림도 원화로 온 게 아닐까 싶은데요^^

AgalmA 2017-03-01 0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담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패러디한 ˝보이지 않는 손을 가진 자유시장맨˝ 카툰 너무 재밌었음ㅎ! 이런 경제 만화가 국내에 필요하다~

서니데이 2017-03-01 05:38   좋아요 1 | URL
이 만화 아깐 없었던 것 같은데요??

AgalmA 2017-03-01 05:41   좋아요 1 | URL
깜빡하고^^; 매력적인 사진, 놀라운 통계, 방대한 지도들이 이 책에 한가득이라 뭘 중점 소개해야 하나... 정리가 무척 힘들었습죠;;

2017-03-01 0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5:47   좋아요 1 | URL
그래서 더 바쁜지도 모르죠ㅎ; 낼모레쯤 <신의 입자> 도착하면 그 책 서평도ㅜㅜ....서평 도서 연달아 하자니 읽고 싶은 책 못 읽어서 그게 좀 안 좋네요^^;; 여러 책을 병행해 읽는 습관이 있어 한 책을 오래 읽고 오래 고민하자니 좀이 쑤셔요ㅎ;; 그럴만한 책이었지만^^...덕분에 필수 공부는 하는 셈~ 전 공부책을 서평신청하는 편이니까^^

2017-03-01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3-01 05:49   좋아요 1 | URL
스스로 만들어하는 과제물이라 의미있죠^^

겨울호랑이 2017-03-02 0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Agalma님의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를 관통하는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마치 스타워즈 시리즈 5편 <제국의 역습>을 생각나게 하는 ‘신자유주의‘의 역습에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하나 과제를 제시한 의미있는 책이라고 느껴지네요. 어제 밤을 새우신 듯하니, 편히 쉬는 하루 되세요.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AgalmA 2017-03-02 02:48   좋아요 1 | URL
어후, 겨울호랑이님 정리력 잘 압니다만 이리 서평 정리도 멋지게 해주시다니 어찌나 멋진지^^! 지난번엔 ˝제갈공명 출사표˝로 근사하게 장식해 주시더니 이번엔 ˝제국의 역습˝! 이 글 제목으로 바꾸고 싶어지네요ㅎㅎ;;
언제나 그렇지만 부족한 글에서 의미를 캐서 가져가 주셔서ㅎ 감사합니다^^
그리고 겨울호랑이님 건강 정말정말 잘 챙기시길~ 그래야 제게 이런 알토란 같은 빨간펜 댓글을 주시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