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비밀 - 원본 그리고 창작자와 사기꾼에 대해서

  § 유시민의 온몸과 김수영의 온몸

 

신경숙 표절 사건에서 많은 부분이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기쁨을 아는 몸은 결정적이었다. 이 표절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예전에 유시민 <글쓰기 특강> 읽을 때 매우 중요한 단락에서 석연치 않았던 표현이 있었다. 오늘 pek0501님 글을 읽다가(http://blog.aladin.co.kr/717964183/7606172) 다시 보게 되니 신경숙 표절 사건도 있고 해서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고 싶다. 어떤 분란을 조장하려는 의도는 없다.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제시하는 바를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싶어서다.

 

글을 잘 쓰려면 왜 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그런 내면을 가지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260)

-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pek0501님 인용문 가져옴)

 

 

내가 독서를 잠시 멈췄던 것은 "글은 온몸으로"라는 대목이다. 이 문구를 이성복 시인이 쓴 거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문학 평론가들이 출처 제시 없이 쓰고 있기도 하다. 평론계에서는 유명해서 다들 알 거라고 쓰고 있는 것도 같고, 일반에서는 김수영에게서 읽었지만 잊었거나(어떻게 잊을 수 있지!) 여기저기서 듣다보니 원 출처를 모른 채 쓰고 있는 것도 같다.

여하간 "온몸으로"라는 표현으로 글쓰기에 대해 말하며, 국내에서 명문화(明文化)한 원조는 내가 아는 바로는 김수영이다. 외국 사례까지는 모르겠다.

<시여, 침을 뱉어라> 1968 문학 세미나에서 나온 말인데, 옮겨 본다.

 

"사실은 나는 20여 년의 시작 생활을 경험하고 나서도 아직도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되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면 다음 시를 못 쓰게 된다. 다음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태까지의 시에 대한 사변(思辨)을 모조리 파산(破算)시켜야 한다. 혹은 파산을 시켰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을 바꾸어 하자면,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온몸으로 동시에 무엇을 밀고 나가는가. 그러나나의 모호성을 용서해 준다면<무엇을>의 대답은 <동시에>의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 온몸으로 동시에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되고, 이 말은 곧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 된다. 그런데 시의 사변에서 볼 때,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p398)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는 나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롤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p403)

 

<김수영전집 2 산문>

 

 

 

 

 

 

 

 

 

 

 

글 전체에 온몸이 워낙 강렬하게 반복되기 때문에 이 글을 읽은 뒤 나는 글을 논하는 문장에서 온몸이란 단어만 보면 바로 김수영을 떠올릴 정도다. 실제 詩 뿐만 아니라 글쓰기 강의 초반에 <시여, 침을 뱉어라>는 자주 언급되는 텍스트다.

자세히 보면 유시민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 문장 배열은 김수영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 문장 배열과 매우 유사하다.

 

신경숙 표절 건을 논하는 pek0501님의 글에서 나는 유시민도 표절이 의심된다! 말하려는 게 아니다. 명백한 표절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우리는 영향을 받는다는 점, 아주 조금이니까 괜찮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쓰는 것도 글 쓸 때 유념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다.

 

 

 

§§ 홍세화는 괴테도, 합리적 사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 같다

 

pek0501님 글에서 홍세화가 괴테를 언급한 부분에서 나는 응?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음 대목이다.

 

토론은 주로 글쓰기에 필요한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의 추구 등이 수학교육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길러진다는 주장과, 수학적인 차가운 논리가 오히려 창조적 감성이나 미적 상상력을 해칠 수 있다는 반론 사이에 벌어진다. 반론자들은 하나의 좋은 예로 괴테를 내세운다. 독일의 으뜸가는 시인인 괴테가 수학에는 아주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토론에는 한 가지 흥미있는 재치응답이 있다. 반론자가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수학과 글쓰기 사이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라치면, 상대방이 당신이 그렇게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실은 수학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응수하는 것이다.(192~193) 

- 홍세화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에서 (pek0501님 인용문 가져옴)

 

 

괴테가 수학을 못 했다는 반론자의 인용으로 그친 것 같아 아쉽다. 괴테를 그저 시인이나 소설가 정도로만 여기는 것 같다. (그 분야에서도 최고인데...) 이 본문에서 그들이 수학과 수학적 사고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괴테(1749~1832) <색채론>1790년에서 1810년 사이에 걸친 연구로, 뉴턴의 색채 이론이 광학에 초점을 둔 것에 반박하기 위해 괴테가 프리즘을 들여다보며 색채 생성의 원리를 탐구해 나간 연구서다. 그의 책이 과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괴테의 자연상(自然像)과 기술-자연과학의 세계」(1967)란 논문을 쓰기도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처럼 자연적인 삶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인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파우스트가 악마에게 몸을 파는 것에 비유하면서, 근대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전을 따르고 있는 과학자들이 악마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이 입증하고 있듯이, 자연의 기본 구조 자체가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직관에 의해서든 그리고 이성적 추리에 의해서든 자연에 대한 접근의 가능성은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이젠베르크는 두 사고방식 사이의 궁극적인 공존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괴테로부터 배울 점은 우리가 하나의 기관, 즉 합리적 분석에 의존함으로써 다른 모든 기관을 위축시킬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괴테 <색채론> 번역자 장희창 서문 p20

 

 

 

 

 

 

 

 

<색채론>에는 수학적 수식이나 공식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관찰과 인식의 연결들이 논리력, 추리력, 분석력, 정확성’을 추구하려는 수학적 혹은 합리적 사고가 아니라고 나는 볼 수 없다. <색채론>의 저작 의도처럼 괴테는 자연과학적인 사고에 치중하지 않으려 했고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괴테는 색채론 외에도 식물학, 해부학, 광물학, 지질학 등 광범위하게 관심을 보였다.

좋은 글쓰기라면 홍세화는 위 대목에서 괴테의 이런 점을 짚어줬어야 했다.

 

<색채론>“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자연과학의 기계론적,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의 위험성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재조명”(<색채학>에서 인용)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사고가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수용에 취약하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글쓰기가 이 무수한 노고 속에 완성된다는 게 우릴 절망에 빠뜨리지만.

 

 

Agalma

 

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
……
지금의 언어도 좋고 앞으로의 언어도 좋다. 지금 나도 모르게 쓰는 앞으로의 언어.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中 (<김수영 시전집 2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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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6-2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의식중에 쓰여지는 표현들을 어떻게 걸러내야 할지... 알고 있다고 믿고있는 지식도 가물가물해지는데...
쓴다는 행위가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해서 써야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AgalmA 2015-06-21 03:24   좋아요 0 | URL
많은 글을 섭렵하면 사실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고 쓰는 표현들이 많아지죠~_~;
정말 내 머릿속으로 생각한 표현이 앞서 출판된 책에 이미 존재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이런 경우는 정말 속 쓰리지만ㅎ;;;
하지만 영향을 받은 건지, 안 받은 건지 두 작품을 대면했을 때 작가는 분명 알아요.
신경숙 작가는 표절도, 영향도 일체 부인했기에 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2015-06-2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5-06-21 03:25   좋아요 0 | URL
신경숙 작가의 표절은 명확한 것으로 저는 앞서 페이퍼로도 밝혔습니다/
이 글은 그 표절 건에 대한 pek0501님 글에서 유시민, 홍세화의 발언의 의혹과 문제점에 초점을 둔 글입니다~

저도 제 글이 도용된 사례를 이리저리 전해 듣긴 했는데, 캐자고 들면 피곤할 거 같아 내버려 둔 적 있어요.
아예 문장을 가져다 썼다고 사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는데, 그제서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그렇더군요....

2015-06-21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5-06-21 0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정도의 영향이란 영향받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국내 저자의 상당수 자기계발류나 에세이 심지어는 인문 과학 관련책에서 레퍼런스를 전혀 싣지 않는 경우도 이번 기회에 철저히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의 일화같은 건 정말로 비슷비슷한 글들이 온갖 책에서 화자되지만 누구 하나 그 일화의 소스가 어디인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게.. 그러면 독자는 그 사실을 그냥 성경처럼 믿습니다 라는 책에 대한 근거없는 신뢰로 읽으면 되는 일인지 .. 아갈마님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AgalmA 2015-06-22 01:05   좋아요 0 | URL
좋은 지적이십니다. 우리나라 논문 표절도 이런 경향에 기인한 것도 있다고 봅니다. 출처를 정확히 옮기지 않으니 어디서 가져오든 상관이 없는 거 잖습니까. 그러다보니 와전되고 오류도 상당하고...필자에 따라 논점이 바뀌는 것도 다반사고...독자들은 그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할 수밖에요.
`너 자신을 알라`도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확실히 믿고 있는 사람 주변에서 많이 보고 있어요-,-);;
guiness님 리뷰도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antibaal 2015-07-0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북플에 대한 단상을 읽다가 이 글도 읽게 되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읽고 쓰는 것과 정직하게 사는 것에 대해 다시금 정신 번쩍 차리며 생각하게 되네요. 글 감사합니다.

AgalmA 2015-07-01 18:06   좋아요 0 | URL
기억을 우리가 다 감당하긴 어렵지만 서로서로 반성하고 보완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 같아요...말씀처럼 정직성!

antibaal 2015-07-0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저기 글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