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원태와 박진성 

엄원태 시인의 병과 시를 보며, 일명 病詩 불리는 박진성 시와 겹쳤습니다. 박진성 시인은 공황장애를 오래도록 앓고 있다고 하더군요. 최근 나온 박진성 식물의 밤(2014, 문학과 지성사)은 읽어보지 못했으나, 제가 읽었던 시집(목숨』 『아라리)이 그 투쟁의 역사임은 분명했습니다.

 

 

 

외도

 

 

 

일행이 배[]에 오르고서야 바다를 본다 外島 바깥에는 낡은 선착장이 있

 

고 수령 몇 백 년 느티가 있고 오래 사람에 섞이지 못한 내가 있다 지금 나의

 

우울은 외도 외도 외워지지 않는 낡은 시집 구절 때문일까 어떤 싯구는 내

 

동공에 닿아 종이의 결을 버리고 격렬함으로 출렁인다, 출렁인다, 사람 밖

 

에서 사람을 쓰겠다는 나의 각오는 지나친 外道였다 한려해상국립공원 관

 

광안내 표지판 지나 外島에 가까운 선착장 부두에 앉는다 해금강이라든가

 

매물도 같은 지명들이 시집 사이에서 뒹굴었다 外島, 시집 한 켠을 다 읽고

 

나서야 나는 늙은 배를 손질하는 어부 지느러미 같은 장화를 본다 알약을

 

삼키는데 내 안에서 外島가 꿈틀댔다 숙취로 속은 엉망인데 ‥‥‥ 유람선 밖

 

으로 일행들이 걸어 나온다 나는 그걸 구토, 라고 쓰는 대신 귀환이라고 적

 

는다 태평양 너른 바다에 내 오랜 외도를 버리고 싶었다 뼈아픈 외도가

 

에 닿을 때까지 나는 얼마나 더 물결처럼 흔들려야 하나, 일행이 外島

 

바람이라며 두 손 가득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나의 指紋들이 내가 알 수 없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격렬하게

 

 

 

 

 

 

 

 

 

 

박진성 아라리(2008)

 

 

 

 

 §§ 병과 나 

제 개인사를 잠깐 말해도 될까요. 저는 아주 어렸을 때 늑막염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집안이 망해서 시골로 야반도주 한 형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죄 때문에 아이가 이리 된 것이라 많이 우셨고, 철없는 저는 다시 만난 어머니의 사랑이라 아프면서도 좋았습니다. 어머니 등에 꼬옥 업혀 병원 가는 게 그리 싫지 않았고,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지진아 반에 들어가 구구단을 외워도 그리 괴롭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겐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이 눈부신 천국 같았습니다. 병이 나았을 때 평범해진 운동장을 보고 천국과 환상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20년 뒤에 또 폐결핵을 앓게 됐는데, 제 병을 걱정하기보다 주변 사람에게 옮겼을까봐 이 사람 저 사람 가까이 지낸 이들에게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하는 상황인 게 초라하고 슬펐습니다. 폐결핵은 나라에서 관리하는 병이라 돈이 그리 들지 않아 이번에도 살아남았지요. 이런 과정을 겪어온 터라 을 앓는 시인들의 를 저는 공감하며 관심 있게 보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 어둠 속에 웅크려 흔들리지만 환한 빛의 세계를 꿈꾸는 일을 말이죠. 병 속에서는 이성적 관념이 존재할 공간이 없습니다. 그곳은 감각과 직관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며, 어떠한 것도 절실한 소망이며, 죽을힘을 다해 부여잡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 그로테스크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

기형도 작품 중 「미로」라는 단편은 병든 귀를 치료하러 간 이야기지요. 누구든 아프면 삶은 즉각 '죽음을 향한 미로'가 됩니다. 작가는 병, 아픔을 통해 임사(臨死) 상태가 되며, 글로 옮길 때 샤먼이 되죠. 저는 기형도 시인의 시와 소설을 엄살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경험벼랑 끝의 체험일 수 있습니다.

'그로테스크'의 양식과 기능, 목적은 매우 다양합니다. 기형도 작품에서 보는 그로테스크의 특징으로 이 문장을 가져와 볼 수 있겠습니다.

 

그로테스크는 낯설어진 혹은 소외된 세계의 표현이다. , 새로운 관점에서 봄으로써 친숙한 세계가 갑작스럽게 낯설어진다(그리고, 아마도, 이러한 낯설음은 희극적이거나 또는 으스스한 것,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로테스크는 터무니없는 것과 벌이는 게임이다. 다시 말해서 그로테스크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존재의 깊은 부조리들과 반쯤은 우스개로 반쯤은 겁에 질려 장난을 한다.

그로테스크는 세상의 악마적 요소를 통제해서 쫓아내려는 시도이다“(ㅡ카이저, p24)

 

기형도는 부정성에 깊이 천착했지만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해 그로테스크 요소와 사실 요소를 끊임없이 병렬했습니다. 그런데 흔적님이 말씀하시는 평론가들의 이의제기는 '김현은 어떻게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을 같이 붙여서 볼 수 있는가' 이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연상되기도 하는, 기형도의 등단작 <안개>만 살펴봐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한밤중에 입이 틀어 막히고 사라지는 여공과 안개 속에 한 사내의 반쪽이 잘리는' 그 시가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이라 지칭되는 사내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쥐새끼처럼 끽끽대는 게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그로테스크의 절정이라 생각되는 <포도밭 묘지> 연작 시에서 자신이 주인인지 종()인지 헷갈려하며 벌벌 떨고 있는 지경을 그로테스크하지 않고 리얼하지 않다고요? 여기 그로테스크와 리얼리즘은 단절보다 보족적이며 교류가 잘 되고 있습니다.  제발 시인이 세계를 극한으로 껴안고 병과 약을 제 스스로 앓고 먹고 있듯이 평론가들도 절절히 앓아보고 그런 재단을 하길 강권합니다. 귀납이니 연역이니 이론으로 갈기갈기 찢으려고 하지 말고, 그들이 제대로 해 본적 없는 창작을 해보고 그런 소리를 하기를.

 

단절과 연결에 대해서,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연결해 말씀드리자면, 입과 항문은 서로 단절적인 관계가 아니고, 항문과 똥은 서로 단절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로의 지점에서 단절되지만 그 속성의 연결고리는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겁니다. 입의 역할없 똥이 나올 수 있습니까. 똥 없는 항문은 항문입니까. 좀 거칠고 외람된 비유를 써서 죄송합니다만, 바슐라르와 김현 평론가의 감싸기'는 이 지점과 연결을 보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봅니다. 프로이트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법칙과 이론 속에서 가차없이 잘라내고 신화까지 끌어들여 환원했듯이, 그렇게 재단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도 바흐찐의 그로테스크는 그게 아니었다 등등을 거론하며 어디 잘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이든 조금의 진실은 있겠으나 100% 진실은 아닌 법이죠. 부디 그들이 갇힌 곳이 빈집이 아니길 기원합니다해석이 권위나 쟁취가 되어서는 안될 겁니다. 김현 평론가의 기형도에 대한 잘못이 있다면 해석보다는 애도에 더 가까웠다는 점이겠죠.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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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ar 기형도 -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듯
    from 공 음 미 문 2015-06-05 21:35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입 속의 검은 잎> 中) 당신을 안 지 20년이 지났어. 누군가에겐 20살 넘은 아들이 있다면, 내겐 20년 넘은 허무가 있는 셈이야. 책갈피로 꽂아두었던 낙엽이 페이지를 누렇게 물들이는 것을 매해 지켜보았고, 년도를 확인할 수 없는 메모들 속에 올해도 몇 자 끄적였어. 이건 희망일까.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 中) 당신의 시집 속에 ‘희
 
 
2015-06-05 0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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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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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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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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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5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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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6-0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진성은 잘 모르고요.
엄원태는 아우는 어머니의 아픈 무릎이다 (?)하던 시인이죠?
따뜻해서 좋아했어요~^^

AgalmA 2015-06-05 21:52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엄원태 시인은 알게 됐어요. 저도 알게모르게 독서 시장성에 좌우된 모양입니다;;
이 기회에 읽어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