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휠덜린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한국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모르는 걸 감추기 위해 다른 걸 자꾸 가져오는 무능력자이거나, 자기가 아는 것 외엔 알려고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이거나, 사대주의가 아닌 척하는 사대주의자이거나, 주목받는 음악만 쫓아다니며 인증사진 찍기 바쁜 그루피이거나, 자기 회고를 섞어 파는 직업적 감상주의자이거나, 타인의 음악을 제 보석인 양 떠들어대는 속물이거나,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길 좋아하는 그저 수집광들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비밀에 서약한 연주자도, 이거 좀 팔아 주십사하는 판매자(이 부분은 좀 의심스러운 공모가 더러 보이지만)도 아니면서, 해석자라는 직위만 이용할 뿐 직분에 대한 책임은 없다.

미셸 슈나이더의 음악 에세이를 보면 늘 놀랍다.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풍부하면서도 겸손한 문학적 스케치, 음악 작법에 따른 철저한 분석, 음악가에 빙의된 듯한 정신분석 접근을 담아 그의 책은 다시 한편의 음악이 된다. 나는 한국에서 이런 음악평론가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비평이 사고수습 같은 성질이긴 하지만 뉴스 브리핑 같은 글들이나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인터뷰들은 정말이지…….

누군가 듣고 계시오? 나는 당신이 비밀리에 수행 중이라고 믿고 싶소. 어떤 징후를 가져올지 기대합니다.

 

 

 

 

 

 

 

 

 

 

 

 

 

 

 

 

 

 

▦ (p72) 우리는 슈만 특유의, 16분 음표 다섯 개로 이루어진 주제가 『유령변주곡』전체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주제가 더 전개되지 않는 것은, 일부 사람들의 추정처럼 전개시키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슈만의 사고는 조금 다른 논리, 파편의 논리를 따른다. 되풀이되는 고통, 우울과 광기와 그의 우유부단한 감정 분출, 그중 어느 것 하나 형식적 전개를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p85)『사육제』(제 17곡 「파가니니」의 간주곡) 속에는 그와 반대되는 효과가 자리 잡고 있다. '스포르찬도(전후를 고려해 특히 세게)'로 동시에 힘주어 연주된 네 개의 음 뒤에, '트리플 피아노'라고 적힌, 그 곡의 끝부분에 나오는 마지막 화음은 연주될 필요도, 직접 들을 필요도 없다. 건반들은 선으로 연결된 해머를 건드리지 않은 채 눌리고, 지음기damper가 열려 있어 페달을 눌러야만 들린다. 여기서 다시 결과와 원인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난다. 유령의 화음인 것이다.

 

(p96)  슈만의 하모니는 귀에 거슬리는 큰 음정(9도, 7도 도약음)을 드물게만 사용하고, 전체적으로 다분히 조성 음악에 머물러 있다. 거기서는 조성에 대한 기묘한 집착(정신병자의 고정된 시선이나 강박관념을 연상시키는)까지 엿보인다. 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몇몇 작품들(앞서 인용된『사육제』의 모티브가 그 좋은 예이다) 속에서 상승하는 기분(고양, 도취취)과 하강하는 기분, 곧바로 다시 떨어지고 추락하는 것, 강박적인 하강의 모티브, 축소된 하모니, 다른 조성을 향한 모든 시도가 이전 조성으로 되돌아오는 그 불가피한 회귀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확인한 바 있다. 

 

(p99) 언어 밖의 이 상태 속에서 의미의 부재(이것이 바로 고통이다. 그리고 가까운 것과 먼 것을 연결해주는 언어의 강, 그것을 뛰어넘어야 할 때를 우리는 광기라고 부른다)는 당연히 고통과 음악 사이의 이 본질적인 유사성에서 온다. 고뇌가 언어에 의해 언어에 연결되어 있다면, 고통은 언어에, 의미를 치유하는 능력에 이를 수 없는 데서 온다. 타자의 죽음, 우울, 사고, 질병에 기인한 손상이 일어날 때, 그 상처는 삶의 텍스트 위에, 인간으로, 상징적인 동물로 살기 위해 우리 각자가 입는 언어의 천 위에 생긴다. ▦

 

 

 

§§ 슈만과 신해철

슈만과 신해철은 "후모어Humor(유머+기분)"를 공통적으로 가졌다고 본다. 사람들이 우울을 유머로 바꾸듯 음울한 내면을 지닌 음악가들은 후모어로 음악을 만든다. 슈만의 후모어적인 특징인 "진부한 화성적 급변, 리듬 상의 왜곡과 유치한 멜로디…돌연 놀라운 화음"(p27)은 내가 신해철에게서 종종 느끼던 점이기도 하다. 후모어적인 음악은 슈만에겐 '낯선 땅, 광기로의 침잠'을 가속화했다면, 신해철에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는 '시니컬한 광대 기질'로 발휘되었다.

신해철이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대에게' 동영상을 다시 봤다. 4/4박자 행진곡 스타일을 전주로 시작해 종결부로 마무리할 때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신나게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사실 진짜는 이거 거든! 하듯이 신해철은 가녀린 미성의 읊조리는 발라드로 청중의 뒤통수를 쳤다. 이 곡이 해외 록 발라드 음악(가령 Queen 같은), 국내 록 밴드에서 모티브를 얻어 왔다고도 볼 수 있지만, 행진곡과 발라드는 그의 모든 음반에서 교차되며 나타나는 특징이다. 단순한 작곡 습관일까. 미셸 슈나이더는 후모어로만 슈만의 음악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짐작했다. 나도 동의한다. 음악은 '광기', '광대기질' 등을 조정하는 유동적인 힘일 것이다. 음악가의 '고통' 과 '갈망'이 만든 그들 내부 얼개에 따라 융기되어 나타나는 힘. 언어마저 압도하는 원초성. 그러나 그들이 왜 하필 음악과 만나게 되는지는 신비에 싸여 있다. 포획된 그 황홀한 시간들은 왜 모닥불처럼 우리를 모이게 만드는지 또한.

신해철의 '시니컬한 광대 기질'은 이후, 세상에 대한 자조 섞인 조소('재즈카페', '도시인',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Goodbye Mr.Trouble'), 일렉트로닉을 통해 말없이 밀어붙이기(노 댄스, crom, Monocrom으로 발표한 음악들), 장중하게 펼치는 자괴감과 고독('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길 위에서', '불멸의 관하여', '민물장어의 꿈') , 자기 놀이(『 Reboot Myself Part 1』(2014.6) :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에 자기 목소리만을 중복 녹음하고 직접 엔지니어링과 믹스를 했던 혼자만의 마지막 놀이)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신해철의 2집 '재즈카페'에서 색소폰과의 조우는 그 당시 재즈 열풍과 접점이 닿기도 했지만 그가 밤무대를 돌며 부르주아 세계에서 가져온 모티브이기도 했다. 그런 매끄러운 세계의 화장품은 곧 폐기된다. '시니컬 광대 기질'답게! 국악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국악의 애상보다 선언적인 요소들(각설이 조 타령, 꽹과리 같은 시끄러운 전통악기)을 더 집중적으로 끌어와 행진곡 스타일에 첨가했는데, 그것은 또 하나의 음악 성찰이 되었다. 앞선 김수철의 국악 대입은 대중화보다 음악 탐구로 너무 멀리 가버렸다. 이상하게 우리나라 대중음악가들은 국악을 만나면 탐구와 소명의식 사이에서 미아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서태지는 살짝 발만 담그고 나온 걸로 그쳤고 신해철은 지속적으로 실험했고 안정적으로 진입했다. 아무래도 그 '시니컬한 광대 기질'의 힘인 듯하다. 이 국악과의 크로스오버는 공연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인디계에도 훌륭한 작업들(어어부 밴드, 잠비나이… )이 있지만 빛을 보지 못하는 건 대중성의 문제일까, 운일까, '시니컬한 광대 기질' 같은 매력 부족일까?

국내에서 국악 마니아보다 클래식 마니아가 1000배는 많을 것이다. 음악 소비자만 있고 매니아 자체가 별로 없는 음악시장을 생각해보면 그 숫자는 더욱 참담할 것이다. K-POP/아이돌 그룹은 예약 음반이 쇄도하지만 잘 팔리지도 않는 국악 음반은 뭐 좀 사려고 하면 죄다 품절 상태다. 최근에 있었던 서울 시향 문제보다 국악에 좀 신경 써줬으면 한다. 국악은 내재적 폐쇄성과 외부적 방치에다 들어줄 관객도 없는 총체적 난국이다. 국악 공연장 가 보았나. 꽃다발을 든 지인들과 관련된 학생들, 무료 관람으로 오신 어르신들밖에 없다. 나라의 대표 음악이 펼쳐지는 곳이 동네잔치 수준이다. 어째서 신년 클래식 음악회는 흥하는데 신년 국악회는 찬바람일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라며 국악에게 시장경쟁력 운운해야 될 문젠가. 그 대단한 애국심은 국악에겐 해당이 안 되는가. 신경 쓴 게 이 정도인가. 하긴 국민도 제대로 못 돌보는 나라지. 오래전 공중파에는 국악 정규 TV프로그램이 있었다는 걸 요즘 누가 기억하고 그 사라짐에 대해 누가 안타까워 하는가. 물론 국악방송도 생겼고, 황병기 선생, 숙명여대 가야금, 김덕수 사물놀이, 이자람 판소리 등 훌륭한 명맥들이 이어져 오고 있고, 민족음악연구회 같은 단체의 노력도 주목되는 바다. 아, 이 문젠 여기서 논하기엔 방대하므로 여기서 이만.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제례악!

 

 

 

 

 

 

§§§ 음악을 따르다

『 Monocrom 』의 앨범 재킷에서 그들은 왜 사공(Chris Tsangarides)과 비장하게 죽음의 길 떠나는 기사(신해철) 같은 포즈는 취했을까. 모든 예술이 그렇겠지만 음악은 절대적 헌신을 요구하는 강력한 종교다. 어떤 이들은 재정적인 궁핍 속에, 어떤 이들은 인간관계의 파탄 속에, 어떤 이들은 창작의 고뇌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잃더라도 감수한다. 음악이 자신의 주체가 되는 역전을 받아들인 슈만은 계속되는 음의 채찍과 추락 같은 음의 층들 속에 언어와 음악의 조화를 꿈꾸며 버텼다. 방도를 찾아볼 수 있는 의식주와 달리, 보이지 않는 "어떻게?"로만 다가오는 음악 앞에, 그는 결국 무너졌다.

 

 

▦ (p118)  대답이 질문이라면 평온은 찾아오지 않는다.

(p120)  슈만의 작곡 과정 속에서 전개에 해당하는 것은 하모니만 가볍게 교체될 뿐 하나의 모티브가 줄곧 반복되는 것(「왜」의 마지막 악절)에 지나지 않는다.

(p130)  그때까지 그가 연주하고(기분) 즐겼던(유머) 자신의 분신들이 그를 연주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

 

 

 

§§§§ 다시 한국 (대중)음악 평론가들에게....

유재하 음악에서ᅳ플루트를 분 사람이 그의 짝사랑 여인이었다 그런 뒷이야기 말고ㅡ클래식과 보사노바가 어떤 식으로 조합되어 불멸의 음악이 될 수 있었는지, 김현식의 블루스는 왜 그 당시에는 수용 가능했고 지금은 미사리 카페나 가야 환영받는지 그 장르는 지금 어떤 식으로 살아남아 있는지, 윤이상은《예악》에서 서양 관현악에다 한국 전통악기의 어떤 특징들을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배치했는지(이건 대중음악 분야가 아니지만), 하여간 ㅡ 한국 음악 감상자들은 이런 거 관심도 없을 거야, 알려줘도 모를 거야 하지 말고 ㅡ 한국 (대중)음악 평론가들은 심혈을 기울인 분석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대가 없는 성취일지라도 당신에게도, 내게도 그건 분명 뜻있는 일이다. 아직도 폐간된 영화잡지《키노》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비평은 관광지나 맛집 소개가 아니지 않은가. 지면 핑계보다 당신의 열정과 투지를 찾는 게 시급하다.

 

 

§§§§§ 휠덜린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의 전모는 이게 아니었다. 이 글은 참 맘에 들지 않게 와 있다.

이해할 수 없이 죽은 그들에 대한 애도도 아닌 괴상한 불평들만 가득하다.

아름다운 이 책과 어느 곳도 닮지 않았다.

이 글의 잘못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친다.

끝나지 않을 언어처럼, 음악처럼.

어디선가 또 하나의 세계가 닫히고 있을 것이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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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통과 고뇌에 대한 보고서
    from 공음미문 2016-12-04 19:36 
    나는 여러 언어로 누구나 참여해 만들어가는 위키 백과를 인간의 은유로 자주 느낀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탐구해 기록하고 누군가 그것을 보완 수정한다. 이곳 알라딘에 있으면서 나는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누군가(작가) 썼고 우리(독자)는 그것을 읽고 또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작가일 수도 독자일 수도)가 또 다른 글(작품일 수도 리뷰일 수도)을 쓴다. 나는 내가 읽었던 《슈만, 내면의 풍경》을 다시 읽으며 '나를 다시 읽는' 기분이 들
 
 
만화애니비평 2015-01-0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왕님!

AgalmA 2015-01-09 20:41   좋아요 0 | URL
저한텐 난돌아빠로 시작되었는데...에휴,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서 마왕 책은 볼 엄두가 안 나요.

AgalmA 2015-01-10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이 이 글을 읽고 thanks to로 책을 사 주셨더군요. 감사드립니다. 그 금액은 좋은 책 사는데 보탬이 됐습니다. 서재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돼서 thanks to라는 거 이런 건지 처음 알았는데, 앞으로 더 신중하게 글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분께...

[그장소] 2015-02-01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대체 못하는게 뭐예요?
음악에 미술에 경제,철학 글,,^^
너무 멋진거 아님?! Agalma님을 알게되서 영광~입니다! 진심!^^
그냥 넘어가려다.. 대충 빌려보려다..결국 요즘 사서 볼 책이 없네요..그래서 이걸로..하기로 ..

AgalmA 2015-03-04 00:37   좋아요 0 | URL
과찬이십니다. 그래봐야 아마추어죠. 알라딘에 저보다 뛰어난 고수가 한둘이신가요; 식탐처럼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게 많습니다. 그리고 매일 전문성의 한계를 느낍니다;
읽고싶어요 책 많으시잖아요? 음악책이 읽고 싶으시다면 음악의 기쁨 시리즈 나오는 게 훨씬 평도 좋고 전문적이던 거 같던데요.
미셸 슈나이더 슈만보다 전 글렌굴드가 더 좋았습니다. 더 소설같아서... 그 책 보시고 스티브 맥퀸 <셰임>영화 꼭 보세요. 폭풍 눈물나도 전 모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