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누군가 있다 - 우리 마음속 친구, 뮤즈, 신, 폭군에 관한 심리학 보고서
찰스 퍼니휴 지음, 박경선 옮김, 박한선 감수 / 에이도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감수를 맡았고 정신과 전문의이자 신경인류학자인 박한선의 소개에 따르면, 조현병(*)은 불과 백여 년 전에 발명되었다. “1893년에야 처음 제안되었고, 정신분열병이라는 진단명은 1908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중략)조현병의 여러 증상은 사실 일반인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정신의학계에서도 대중도 불편해했고, 1938년 슈나이더 박사가 환청과 관련된 몇몇 증상을 조현병의 일급 증상으로 명명해 대중적 편견이 굳어졌다. “침묵 속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내적 반추 경험인 환청은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신활동이지 광기가 아니라는 것을 찰스 퍼니휴는 이 책을 통해 증명하려 한다.

 

(감수자 주*)조현병schizophrenia은 이전까지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다. schizo는 분열, phrenia는 정신을 뜻한다. 일본에서 서구 정신의학을 도입하며, 원어의 뜻을 그대로 번역하여 정신분열병으로 옮겼는데,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도입되었다. 일본은 약 10여 년 전 통합실조증이라는 새 명칭을 사용했는데, 우리나라도 곧 조현병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조현調絃이란 악기의 현을 고르는 행위를 말한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미겔 데 우나무노가 말했듯이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다른 사람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덕택에 우리들 각각은 자기 자신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됐는데,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여러 개념과 인상으로 이루어진 내적 흐름을 따라 움직이며, 바로 이 흐름이 우리의 행동을 이끌고, 기억을 찾아내고, 경험의 주요 줄기를 만든다.”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4분의 1 내지 5분의 1은 수많은 혼잣말로 가득 차 있는데 대부분 섬세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운동 선수 경우 스스로를 칭찬하는 등의 긍정적인 혼잣말로 경기에서 좋은 효과를 끌어낸다. 예술가와 작가들은 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한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표상된 목소리는 작가의 주요 건축 자재다. 소설가 데이비드 미첼은 인터뷰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은 일종의 통제된 인격 장애로 이게 가능하려면 머릿속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고 심지어 그 목소리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해야만 한다라고 표현했다.

 

패트리샤 워프의 표현에 따르면, “내분비계가 아니라 몸, 마음, 환경, 언어, 시간 전체에 걸쳐 있는 경험으로서의 자아를 조립하는 일이다. 힐러니 맨틀은 이러한 자기 창조 행위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매일 아침 글을 씀으로써 나 자신을 존재하게 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종이에 적을 단어들이 충분할 때 당신은 바람 속에 서 있을 만큼 단단한 등뼈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저 오래된 깃펜 한 자루처럼 바싹 말라버린 어느 등뼈, 달각거리는 척추 한 줄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작품의 주인공마냥 베케트 자신도 내적 발화에 푹 빠져 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집필할 당시 친구 조르주 뒤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자네 말이 맞아. 뇌가 기능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요, 죄악이지. 마치 늙은 사내의 사랑처럼 말이야. 뇌가 할만한 더 나은 것들이 있거든. 가령 잠시 멈춰 서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인다든가 하는 일 말야.”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런 종류의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후회를 내뱉는다. “나는 나한테 실컷 말한 적도 없고, 내 말을 충분히 듣지도 않았고, 나한테 충분히 대답하지도 않았으며, 게다가 나를 실컷 위로한 적도 없었어.

베케트의 글은 인간 경험에 관한 역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한 내러티브를 통해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며, 그런 내러티브 덕분에 우리는 그 이야기의 작가이자 내레이터이자 주인공이 된다. 우리는 우리 머릿속 목소리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그 자체. 우리는 그 목소리를 내뱉을 뿐 아니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목소리들은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우리를 구축한다. 그러나 머릿속의 이 목소리를 광기나 병리학적 상태로 볼 수는 없다. 서사학자 마르코 버니나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목소리들은 내적 발화라는 자연적인 소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작가(베케트)가 이 정신적 발화들이 자아와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허구적 실험으로서 이 목소리를 조율되지 않은낯선 형태로 제시한다는 얘기다.

 

고흐 자신도 우리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내면의 생각들은 늘 겉으로 드러날까? 우리 영혼 안에 거대한 불이 있을지라도 아무도 자기 자신을 그 불에 데워본 적이 없으며,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 한 가닥을 본 행인들은 그저 가던 길을 갈 뿐이다.”

철학자들은 일찍이 이 메커니즘을 알고 있었다.

 

플라톤 테아이테토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묻는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우리 마음속에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다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이 개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실내 가운을 걸치고 벽난로 옆에 앉아 자기 자신의 사고 과정을 들여다본 그는 자신이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그 사고 과정의 존재였음을 발견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기 자신의 정신적 상태를 반추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방법 1법칙이었다. 미국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에 쓴 글에서 의식 상태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 내면에서 의식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어렵고 오류가 있을 수 있는일이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을 관찰하는 것은 분명 가능했으며, 세계를 묘사하는 여느 방법과도 원칙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 충분히 신중하게만 접근한다면, 내면 관찰을 더 잘하도록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철학자의 안락의자에서 내성을 끌어내 실험실에 집어넣은 것은 바로 독일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의 연구였다. 1879년 라이프치히에 최초의 심리학 교과서 저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내적 경험에 대한 사고를 통해 그는 두 종류의 내성을 구분했다. 첫째, ‘자기관찰이라 지칭한 것으로,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기 나름의 정신 과정에 대한 인과적 고찰이다. 데카르트가 아니더라도 벽난로 옆에 앉아 자신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학문적으로 긍정적 기여를 하느냐는 것이다. 분트가 보기에 좀 더 형식적인 범주인 내적 지각은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가능하면 과학적 방법은 관찰자가 관찰 과정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분트가 마음에 두었던 두 번째 접근방법인데, 이 방식에는 관찰자를 관찰 대상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고단한 작업이 포함된다. 내적 지각 기법에서 연구자는 실제로 본인의 생각에 대해 임상적으로 분리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분트는 내적 지각기법이 그 자체로는 괜찮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나, 실험 참가자들을 철저히 훈련시킴으로써 보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략)

분트의 노력으로 내적 경험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이 구축됐고 이는 결국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까지 퍼져갔다. 에드워드 티치너 같은 분트의 제자들에 의해 내성법은 점점 편협해지고 기계론적으로 변했으며, 약점들특히, 입증 불가능한 자기관찰에 의존하는 것은 더 뚜렷이 드러나고 말았다. 20세기 중반 영미 심리학은 존 B. 왓슨과 B. F.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에 사로잡혔다. 오직 관찰 가능한 행동들을 측정하는 것만이 엄밀한 정신과학을 보장해주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윌리엄 제임스의 표현에 따르면, 내성은 경험 자체라기보다는 늘 어느 정도는 경험에 대한 기억이고, 기억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도, 경험을 관찰하는 행위 자체가 경험을 변화시킨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제임스는 자기 생각을 반추해보려 애쓰는 것은 마치 "암흑이 어떤 모습인지 보기 위해 재빨리 가스불을 켜는 곳"과도 같다는 인상적인 표현을 썼다.

많은 이들이 보기에 1950년대 시작되어 이후 20여 년간 가속도가 붙었던 인지혁명은 내성을 관에 눕히고 박아 넣은 최후의 못과도 같았다.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한 통찰을 얻기 어려운 가운데 저자는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아이들이 언어에 숙련되어 혼잣말에 능숙해지는 과정을 보며 내적 발화의 단서를 짐작한다. 발달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아이의 독백이 사실 아무런 사회적 목적이 없는 자기중심적 발화라고 보았지만, 같은 시기 모스크바의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언어를 습득하면서 아이는 타인과의 의사소통 수단을 갖게 되고, 거기서 비롯된 대화는 아이가 이후 자기 자신과 나누는 혼자만의 대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내적 발화의 토대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저자는 "혼잣말소리 내어 하는 내적 발화에는 자기조절(ex- 본인의 이름이나 2인칭 대명사로 지칭하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과제 수행 시 감정 제어나 행동 조절에 유리하게 작용) 이외에도 제2언어 연습, 자서전적 기억의 직조, 환상의 세계 창조 등 여러 부차적인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저자는 내적 발화의 4가지 주요 요인을 대화’, ‘압축’, ‘타인’, ‘평가로 정리했다.

 

명칭이 말해주듯, 첫 번째 요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내적 발화가 서로 다른 관점 간 대화의 형태를 띤다고 느끼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내적 발화가 종종 갖는 압축 또는 축약의 특성을 포착한다. 세 번째 요인은 소수의 사람들(응답자의 4분의 1 정도)에게 나타나는 경향으로 내적 발화에 타인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이 요인에 속한 한 가지 항목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였다). 마지막 요인은 사람들이 내적 발화가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고하는 정도에 관한 것이다. 가령, 이런 사람들은 나는 내적 발화를 통해 내 행동을 평가한다. 예를 들면, ’좋았어라든가 멍청한 짓이었어라고 혼잣말을 한다같은 항목에 동의 표시를 할 것이다.

 

당신이 신에게 말을 건다면 당신은 기도 중인 것이지만, 신이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당신은 조현병에 걸린 것이다”(토머스 사스 2의 죄The Second Sin란 유명한 문구도 있듯이 청각 언어적 환각과 초자연성과는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 양원제 마음의 해체와 의식의 기원(한국어판 의식의 기원)에 의하면 호메로스의 두 텍스트 일리아스, 오디세이정신의 거대한 저장고를 상징한다. “기원전 1200년경까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내적 발화 형식으로 혼잣말을 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빈번하게 청각 언어적 환각을 경험했는데, 여러 문화적 이유에서 환각이 초자연적인 존재들로부터 온다고 여겨졌다. 여러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이었다.” 제인스의 양 반구 분석은 지나친 단순화여서 문제점과 논란이 있긴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영적 존재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현상을 소급해 생각하는데 단초가 되어준다. 신의 계시를 들었다는 숱한 간증의 실체를!

 

영국의 이 두 신비가(마저리 켐프 & 노리치의 줄리안. 이들이 속한 계보에 있는 잔다르크 같은 이들도 마찬가지)를 진단하려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조현병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다. 문헌을 가지고 소급적인 감별진단을 하자고 들면 끝이 없다. 만일 잔다르크가 조현병이 아니라면 청각적 특성이 동반되는 특발성 부분 뇌전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를 듣는 것과 결합된 마저리의 강박적 울음과 고함 역시 측두엽 뇌전증의 징후였을지 모른다. 마저리가 보는 환영에 떠다니던(본인은 이를 천사를 목격한 것으로 해석했다) 흰 반점들은 편두통 증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마저리가 들은 긍정적이고 온정적인 목소리는 의학적 증상들로 단순 환원하기는 힘들다.

 

임재감臨在感이라는 심리적 경험을 다룬 연구는 많지 않다. 임재감은 흔한 형태로는 아이가 갓 태어난 부모들의 경우 아기가 침대에 같이 있는 듯 느끼는 경우가 있다. 최근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는 것 역시 사별을 경험한 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임재감은 뇌전증을 비롯한 다양한 신경장애에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며, 수면마비 경험을 동반하는 경우는 더 흔하다. 수면마비의 경우 잠들거나 깨어나는 순간에 일시적으로 마비를 경험한다. 물론 자애로운 존재의 느낌은 종교적 경험의 전형적 특징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지켜봐주는 수호천사가 있다고 느끼는데, 이런 존재들에게 늘 목소리가 있지는 않다.(중략)오늘날 우리는 사회적 존재 표상의 바탕이 되는 인지체계 및 신경 체계에 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과정들이 엉망으로 흐트러지면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일까? 현재까지 나와 있는 신경영상 증거를 보면 그렇지 않다. 환청을 겪는 동안 사회적 인지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아무런 확실한 증거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흥미로운 단서가 있다. 마음이론과 밀접하게 연관된 영역인 측두정엽의 손상은 일부 뇌손상 사례에서 임재감과 연관이 있었던 반면, 이 영역의 인위적 자극은 임재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화적 내적 발화의 신경 서명에 관한 우리 팀의 연구에서 우측 측두정엽 근처의 한 영역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내적 대화가 마음이론 체계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우리의 연구결과는 목소리를 듣는 경험에서 사회적 처리 과정이 내적 발화 네트워크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이 될 수도 있다.

 

 

종교적 신비주의, 초자연성에 대한 사례 얘긴 끝이 없을 거 같아 이쯤에서 갈무리하고 생물정신의학의 건강한 움직임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목소리를 듣는 경험자들의 오픈 모임 ‘히어링 보이스 무브먼트접근법이 소개되고 있다. 현재 23개국에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고, 영국에만 180여 개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이 운동은 환청이 뇌 안에서의 언어 처리나 발화 지각 네트워크 문제가 아니라 트라우마성 기억과 연관성을 찾으려고 한다. “목소리를 듣는 경험과 어린 시절의 불행, 특히 아동기의 성적 학대와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는 이미 나와 있다. 최근 리처드 벤털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성폭행은 이후 삶에서 나타나는 환각과 아주 밀접하게 구체적으로 연관돼 있었다.” ‘히어링 보이스 무브먼트사람들이 고통스러운 내적 목소리를 제거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좀 의외였다. 원인을 파악하되 자신을 형성한 것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치유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내면 발화가 이렇게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 몰랐다. 저자는 반복해서 말한다. “내면의 혼잣말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기원하며”,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일종의 소통 행위다. 이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정서적으로 유대를 맺고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온라인에 숱하게 올리는 글들도 그 변형일 것이다. ‘어떤 다른 은유도 마땅치 않아.’라고 말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자를 쓴 베케트처럼 치열하지는 않더라도 내 안의 무수한 목소리 속에서 표류하지 말고 함께 스스로가 되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8-25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현병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나라의 ‘무병‘의 경우 신내림이라는 전통적인 방법 외에 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가 가야할 미지의 영역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AgalmA 2018-08-25 07:37   좋아요 1 | URL
예. 이 책 저자도 함부로 재단해서 말하지는 않고 있어요.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많다는 입장에서 의견 개진하고 있지요. 신중하면서도 많은 걸 포용하려는 자세가 올리버 색스랑 많이 닮기도^^
신화부터 종교, 뇌과학 종횡무진 내적 발화 얘기 재밌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