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모으는 재미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 실컷 읽을 생각만 했다. 벗의 죽음 뒤 남은 가족이 책 처리에 애먹는 거 보니 나는 참 이기적으로 죽을 생각만 하고 있었구나 했다. 죽고 난 뒷일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사무치게 느꼈다. 나에 대한 최대한의 책임.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선 최선을 원하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선 최소한도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생각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가지고 있는 책을 모두 중고도서 DB에 올려 처리하기 쉽게 만들어 놔야지 했다. 벗이 내게 주고 간 교훈이 많다.

가지고 있는 동안 다 읽으면 원이 없겠네...

 

 

 

 

● 극복의 노력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난 슬픔에도 우울에도 잠식되지 않을 거야.

이건 대상 집중에서 빠져나오려는 리비도의 작용이기도 하겠지. 그렇더라도 나는 무력하게 끌려다니지만은 않겠어. 내 상황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끊지 않는다.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야겠어.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과학으로 끌어올리려 하다가 한계를 느껴 해석학으로 폭을 넓힌 게 흥미롭다.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과학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니 당연.

프로이트가 개진한 개념들을 종합해 조감할 수 있어 프로이트 전집에서 이 책을 처음 읽는 것도 좋겠다.

"리비도"와 "이기적 유전자"를 이어서 생각해 본다면?

📎

"우울증의 특징은 심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낙심,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중단,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모든 행동의 억제,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고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을 정도로 자기 비하감을 느끼면서 급기야는 자신을 누가 처벌해 주었으면 하는 징벌에 대한 망상적 기대를 갖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우울증의 상황은 우리가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특징들이 다 슬픔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한 가지 예외란 바로 슬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자애심(自愛心)의 추락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모두 동일한 특징들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깊은 슬픔에도 우울증과 똑같은 고통스러운 마음,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의 상실(외부 세계가 사랑하는 사람을 상기시키지 않는 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로 사랑하던 사람을 대신할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던 이를 생각나게 하는 어떤 행동도 금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와 같은 자아의 억제와 제한이 오로지 슬픔의 감정에 빠져 버린, 따라서 다른 목적이나 관심을 가질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가 있다. 이런 슬픔의 태도가 우리에게 병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실은 우리가 그 슬픔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중략)... 그렇다면 슬픔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슬픔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 것이 무리는 아닐 듯싶다. 현실성 검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은 사랑하는 대상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그 대상에 부과되었던 모든 리비도를 다 철회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물론 이런 요구는 당연히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런 반발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랑하던 대상을 대신할 대체물이 보장되더라도 리비도적 입장을 포기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발심이 너무 강하다 보면 현실에 등을 돌리는 일이 일어나게 되고, 환각적인 소원 성취의 정신병을 매개로 하여 예전의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그래도 현실에 대한 존중이 우세하게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그 현실의 명령을 그 즉시 따르지는 않게 된다. 말하자면 현실의 요구와 명령은 조금씩 조금씩, 많은 시간이 경과되고, 많은 에너지의 소비가 있고 난 뒤에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잃어버린 대상은 마음속에 계속 존재하게 된다. 결국 사랑하던 대상에 리비도를 집중시켰던 때의 어떤 기억과 기대가 각기 되살아날 때마다 리비도가 과잉 집중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실을 존중하는 가운데 리비도의 이탈도 이루어진다."

 

 

이 책 다음으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 책 중 제일 손이 안 가기도 했지만 정말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하고도 있었다. 이성적으로 이런 책들을 읽을 때는 정보적인 것만 파악하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물론 나는 이성적으로 이 상황을 보려 하기 때문에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을 찾아 읽으면서도 마음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서도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찾는다. 매 순간 양가적이다. 하루 종일 자고 또 자면서 나를 달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 일을 하러 나가고 책을 읽는다. 벗이 내게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은 것들을 내내 곱씹으며 '왜 그랬을까',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랬으니까' 같은 수많은 자문자답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내게 더 이상 기댈 수 없었을지도 몰라.' 내가 타인에게 그렇듯이. '내가 그때 이랬다면 저랬다면' 자책의 순간이 오면 입술을 깨물고 지나가길 기다린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이랬다면 저랬다면' 원망의 순간이 오면 얼른 다른 것에 주의를 돌린다. 아무리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심연에서 발이 묶이고 그러다 보면 이렇듯 멍한 채 일어나 아침을 맞는다. 하루라도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하는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하는 우리는 결코 홀로 자신이 되지 않는다. 섬은 바다가 있기에 다른 육지들이 있기에 섬이다. 섬 속에서 섬을 알게 되듯이 고통은 고통을 통해서야 만 발견할 수 있다. 많이 겪었다 생각했는데 苦 앞에 나는 늘 이리 어린아이다.

 

 

 

 

 

※ 저를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아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는 신호로 이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드리고 여러분 각자의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힘을 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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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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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1-1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른 이유지만 절판이나 품절되는 종이책들을 생각하면 전자책으로 갈아타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원서를 읽는 방법도 있긴 합니다만, 쉽진 않네요...
 

당신도 짜장면에 고량주 혼자 먹어 봤어?
당신에게도 그런 날 있었겠지. 왜 없었겠어.
그러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왜 취하지 않고 외롭기만 한 거야.
시 하나하나 문장 모두에 당신이 보여서 미칠 거 같아.
아무리 불러도 귀찮게 해도 이제 당신은 나타나지 않을 거지.
응?
응?

그장소!
그장소!
그장소!

울면서 나 혼자 짜장면 먹게 만들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 터지게 만들고. 나타나지도 않을 거면서.
시집 좋아하는 당신이 이 시집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지 나는 다 안다. 그런데 아는 게 이것뿐이었던 거 같아.

밤을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이젠 어두워지는 게 너무 싫어.
나도 제발 단단한 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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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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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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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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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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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0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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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6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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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7 08: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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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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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보낸 마지막 책. 같이 읽으려고 같이 재밌으려고 그랬는데... 이 태엽은 우리의 태엽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걸까. 당신이 내게 건넨 돌릴 수 없는 태엽. 난 어떤 예언도 감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당신을 보냈다. 한동안 내겐 모든 책이 당신의 암호 같을 거 같아.

「무슨 일이 생기면 나와 구미코는 서로에게 농담처럼 그 말을 하곤 했다. ˝물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웃었다. 우리는 젊었고, 예언은 필요하지 않았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예언 행위나 다름없었다.」(p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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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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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보낸 마지막 책 중 하나. 우리는 결코 소설 같지 않았다. 같이 보낸 2019년 달력도 에코백도 당신에게 이젠 영영 필요하지 않다.
당신과 책의 비밀은 오로지 당신 것으로 남았다.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떠한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얽어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는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그러니 아무도 우리에게 책과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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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송대 - 영화-소설
크리스 마커 지음, 이윤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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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읽고 싶어 한 마지막 책 중 하나. 그 맥락을 나는 오래 생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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