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드샤 칸 역사 인물 찾기 14
에크나스 에아스와란 지음, 김문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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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과 옛 인도의 국경부근에는 파탄족이라는 부족이 살고 있었다. 그 일대에 거주하는 부족 가운데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다. 그들은 ‘바달’이라 불리는 복수의 의무를 대를 이어 수행한다. 그 때문에 파탄족 남성들의 평균 수명은 서른을 넘기지 못했다. 잔인한 연쇄 복수극의 ‘전통’을 끊은 사람은 한세기 전 출현했던 비폭력적인 이슬람 전사 바드샤 칸이다. 칸은 무슬림의 교리를 충실히 이행한 인물이면서도 이슬람 세계에 비폭력의 전통을 세운 ‘이슬람 세계의 간디’다.

이 책 ‘바드샤 칸’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동명의 인물에 대한 평전이다. ‘칸’은 마을의 지도자, ‘바드샤’는 왕을 뜻한다. 가장 호전적인 지역을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만든 그는 자신의 민족으로부터 ‘칸중에서도 왕’(바드샤 칸)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인도가 영국 통치 하에 놓여 있었을 때 그는 영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었다. 인도 내부에 만연한 폭력을 일소했으며, 가장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영국인들을 몰아냈다. 칸과 간디는 평생의 동지이면서 그들의 신조인 ‘섬김과 자유’를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그의 비폭력 저항은 세계 최초의 비폭력 군대인 ‘쿠다이 키드마트가르’(신의 종들)를 통해 이뤄졌다. 그들이 수행한 전쟁은 이렇다. “앞에 있던 사람이 총을 맞아 부상을 입어 쓰러지면, 뒤에 있던 사람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앞으로 나와 총탄을 막고 나섰다. 어떤 사람은 몸에 총탄을 스물한 발이나 맞았는데, 사람들은 겁에 질리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결국 그곳에는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자들의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되었다.” 칸은 독립에 앞서 중요한 것은 자기 민족 내부의 폭력성이라고 생각해 이런 비폭력 군대를 구상했다. 페샤와르에서 영국인들이 대학살을 자행한 뒤 이 군대의 ‘군인’은 1천명에서 8만명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바드샤 칸의 생애와 최근 매일이다시피 벌어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슬람 전사들의‘자살테러’는 사뭇 대조적이다. 테러의 폭력성 이전에 그 사태를 불러온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혹은 무슬림들을 오로지 ‘테러리스트’의 모습으로만 비추는 서구의 ‘미디어 제국’이 우리에게 허깨비를 보여주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슬람 세계에 ‘위대한 평화주의자’가 존재했었음을 일깨워준다.

간디가 암살되었듯이 칸의 말년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파키스탄과 분리됐고, 칸은 그 나라의 총리가 되었지만 군사 쿠데타로 결국 아프가니스탄에 망명해야 했다. 그가 1988년 98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내전 중이던 파탄족은 애도를 위해 하룻동안 전쟁중지를 선언했다. 저자는 “폭력없는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인류를 한걸음 더 발전시켜 나갈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쓰고 있다. 이 ‘하 수상한’ 시절에 바드샤 칸의 생애를 가장 먼저 되새겨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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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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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에는 화장하는 여자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샤넬 립스틱 번트 레드”를 바르다 남편의 죽음을 전해듣지만 태연하게 “윗입술을 마저 바르고 검은색 투피스를 꺼내 입은 다음” 114에 전화를 건다. 혹은 정부를 꽃병으로 내리쳐 살해한 뒤 “클렌징 크림을 덜어 이마와 눈두덩, 뺨과 입술까지 가볍게 마사지한 뒤 화장솜으로 차근차근” 닦아낸다. 천연덕스럽게 화장에 몰두하는 그녀들은 악마적이기까지 하다. 

 

화장은 일종의 위장술이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위장술에 능하다. 표제작에서 미국 로스쿨 출신의 부잣집 막내아들과 결혼을 꿈꾸는 여성이 내세운 자신의 연애 ‘컨셉트’는 청순함이다. 그녀는 섹스를 하기 직전, 샤워는 혼자서 남자보다 먼저 하라, 은은한 화장을 하라, 엉덩이를 들지 말라, 머리를 촉촉하게 적셔라 등의 경구를 되새기며 남성적 시선이 요구하는 청순함을 ‘연기’한다. 정이현의 소설에서 사랑은 탈낭만화되고, 남성적 위선은 가볍게 전복된다.

이 신인 여성작가의 첫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여덟편의 단편을 싣고 있다. 그녀의 소설이 가진 새로움은 앞세대 여성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또렷하다. 은희경이나 전경린 등 앞세대 여성 작가들은 관습화된 사랑과 결혼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여성들을 통해 ‘여성적 욕망’을 전면화시킨 바 있다. 하지만 정이현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훨씬 더 노회한 ‘팜므 파탈’들이다.


전세대가 낭만적 사랑과 일부일처제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에 몰두했다면, 그녀는 섣부른 해체와 혁명을 꿈꾸지 않는 대신 그 안에서 안락한 삶을 구가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 방법이 바로 화장의 기술, 곧 위장술이다. 어차피 세상은 가짜들로 이뤄진 곳이다. “진정으로 강한 여자”가 되기 위해선 마치 짝퉁처럼 ‘진짜 같은 가짜’가 돼야 한다는 게 그녀가 제시하는 사랑의 ‘정치학’이다.

정이현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명품을 걸치고, 압구정동 거리를 활보하며 깔깔거리는 2000년대의 여성들이다. 요즘 여자들의 생리를 그려내는 작가의 문장은 시니컬하면서도 단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신인이면서도 소설을 맛깔스럽게 이끌어가는 솜씨와 ‘물건’을 만들 줄 아는 내공이 만많치 않다. 그녀의 소설을 통해 최근 한국 사회의 풍속도를 그려볼 수 있다면, 확실히, 요즘 여성들은 더 무서워졌다.

 

“강북 필”이 나는 오빠와의 로맨스를 위해 “폴로 랠프 로렌의 니트 스웨터”를 입고 ‘여우짓’을 실행하는 16세 소녀는, ‘미소녀 헤어누드’를 찍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를 상대로 가짜 납치극을 벌인다. 그녀들은 남편과 정부를 죽이거나 남자의 사타구니를 걷어차 버린다. 호주제 폐지 공청회가 양반을 자처하는 인사들에 의해 난장판이 되는 세상이지만, 한국의 여성 소설은 당분간 이런 나쁜 여자들이 지배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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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끝나지 않았다 - 화성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의 수사일지
하승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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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먼저 저자의 이런 절규로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그래서 매순간 네 모습을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네 놈의 얼굴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해두고 또 기억해둔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도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늘 네 놈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억해 둔다. 우린 꼭 만날 것이다. 널 미치도록 잡고 싶다.” 강력계 형사 경력 30여년의 베테랑인 저자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에게 보내는 편지다.  

 

저자 하승균씨는 1986년 12월 발생한 연쇄살인의 세번째 사건부터 수사에 참여해 수사팀을 이끌었던 중심 인물이다. 과천 아파트 부부 토막살인 사건, 광주 여대생 공기총 살인 사건 등 숱한 대형 살인 사건을 해결했던 강력계 수사관으로 현재 경기도경 강력계장이다. 이 책은 1986년 9월 15일부터 1991년 4월 3일까지 5년여 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일지다. 그는 현장을 떠난 지금까지도 수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수사요원 30만명, 일반 경찰 27만여명, 여경 5천여명, 방범대원과 민간 기동대원까지 연인원 2백만여명이 동원된 전무후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시 일반인의 기억 속에 불러낸 것은 올해 개봉된 영화 ‘살인의 추억’이다. 영화는 이 사건을 통해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80년대를 ‘추억’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이 사건은 추억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다. 저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부하 한명이 과로로 한쪽 몸이 마비됐다. 용의자에 대한 과실치사로 경찰 세명이 구속됐고, 상관이 옷을 벗어야 했다. 무엇보다 희생자가 9명이나 나왔다. 그에게 이 사건은 영화처럼 픽션이 아닌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책에서 영화와 같은 어떤 드라마틱한 흥미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책의 몸통을 이루는 것은 모두 9건의 연쇄살인에 대한 건조하고 분석적인 설명이다. 이 사건에 얽힌 풍문과 신화를 싹 걷어내고 실체를 정확히 알리자는 게 저자의 목적이다. 물론 범인에 대한 분노와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도 갈피갈피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본 뒤 저자는 눈물을 흘리며 “아직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한다.

저자는 형사들이 살인 사건 수사에 매달리는 것은 스스로 ‘알파’라 부르는 어떤 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의감이나 분노가 아닌 이 ‘알파’ 때문에 살인 사건 해결에 몸을 내던진다는 것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도 바로 그 알파의 힘이다. 이 책의 건조한 기술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그 알파의 감염력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어쩔 수 없는 강력계 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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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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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여름, 대만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던 네덜란드 선박이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에 표류해 왔다. 후일 ‘하멜 표류기’를 써 서구세계에 한국의 존재를 알린 하멜 일행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과 인연을 맺은 최초의 네덜란드인은 아니다. 그들보다 26년 전 조선에 표류해와 아예 눌러 앉은 얀 얀스 벨테브레(한국명 박연)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네덜란드인 방문자다. 올해는 하멜 일행이 한국에 당도한지 3백50주년이 되는 해로,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은 2003년을 ‘하멜의 해’로 정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 나라는 월드컵 4강 신화를 남긴 히딩크의 나라로 한국인들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에는 연이은 노동파업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네덜란드 모델이 떠오르면서 또 다시 주목받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여전히 낯선 나라다. 조선후기의 문인 이덕무는 “그들은 눈이 깊고 코가 길며 머리카락이 모두 붉고 발길이가 1척 2촌인데, 항상 개처럼 한발을 든 채 오줌을 누며, 서양의 예수교를 배워 이를 믿는다”고 말했는데, 현재 우리의 인식 역시 이같은 편견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네덜란드 역사 문화기행이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네덜란드의 현재(1부)와 역사적 형성(2부)을 소개한다. 서구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비 서구 사회를 그려냈다면, 비 서구 사회는 그 역편향인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거나 반대로 맹목적 서구 추종에 빠지곤 했다. 이 책은 타문화 소개서들이 빠지기 쉬운 이같은 ‘편향’에서 벗어난 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타자는 숭배와 저항의 대상이 아닌, 자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던가.

육지가 바다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물에 빠져 죽지 않으려면 일단 서로 협력해야 했다. 그들의 ‘사회적 합의’의 토대는 이같은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자본과 노동간의 대타협이 이뤄지고, 우파 정당인 자유당과 좌파 정당인 노동당의 ‘자주색 연정’이 출범한 나라. 국가 주도형 경제성장을 뜻하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한국 사회가 네덜란드를 주목하는 것도 ‘사회적 합의’의 정신 때문이다.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관용도 타산지석이 될 만하다.

독일·프랑스·영국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에서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었던 이 나라의 사례는 미·일·중·러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에게 쓸모있는 참고가 될 것이다. 프랑스인 데카르트와 영국인 로크는 이곳에 머물며 대작들을 펴냈고, 탈근대 철학의 시조가 된 스피노자는 여기에서 철학적 사유를 살찌웠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국가적 자존심은 그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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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드 대 맥월드
벤자민 바버 지음, 박의경 옮김 / 문화디자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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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는 맥도널드·MTV·매킨토시·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맥월드’라 부른다. 맥월드는 현재 세계가 도달해 있다고 믿는 테크노피아를 풍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가 1995년 펴낸 ‘지하드 맥월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그것이 초래할 역풍을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9·11 테러 이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그 이후 상황에 더 잘 들어맞는다. 저자인 바버는 메릴랜드대 교수로서 시민운동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사상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처럼 세계적 질서의 양상을 분석하는 책이지만, 그 두 책이 가진 미국중심의 시각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바버가 ‘맥월드’라는 개념을 창안한 것은 그와 대척점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마련인 ‘지하드’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하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감행하는 ‘성전’(聖戰)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언론에 의해 미국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투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쓰이곤 한다. 맥월드가 공공선을 무시하고 광포하게 이윤을 추구하면서 지하드는 테러와 같은 극단적 투쟁을 선택하게 된다.  

 

 

당초 지하드는 “정치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의 사회운동”에서 시작됐지만, “산업현대화가 가져온 획일성과 식민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되고 급기야는 테러로 귀결된다. 바버는 맥월드와 지하드를 각각 “할리우드 카우보이와 국제적 무법자”라 부른다. 맥월드가 ‘동물적 탐욕의 세계’라면, 지하드는 ‘본능적 두려움의 세계’다. 그런 점에서 두 세계는 서로의 존립을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테러는 지하드와 맥월드의 ‘기생적 변증법’에서 독버섯처럼 자란다. 바버는 “지하드와 맥월드 모두에 대한 민주주의 투쟁만이 지구를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전세계적인 시민운동의 활성화다. 맥월드의 시장논리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고, 지하드의 원리주의도 타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비관적인 현실 진단에 비해 대안은 다소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다른 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바버의 제안은 우원(迂遠)하고 답답하나마 세계를 인간화시키기 위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이성적 질서를 지상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헤겔처럼 바버는 민주주의가 세계를 구원한다는 견고한 신념 아래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의 원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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