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우울증 테스트 질문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을 읽자마자 든 생각은 '희망은 애당초 없는 것 아닌가? 희망 따위에게 관심 줄 여유 같은 거 난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과감하게 전혀 아니다에 체크했다. 이런 질문도 있었다. '나의 건강이 염려된다.' 이것은 더 이상 나에겐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건강하지 않으니까. 이 점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전혀 아니다에 체크했다.


유일한 진리는 태어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 진리 앞에 내가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저 죽음을 향한 고통이 적기를 바라는 정도의 희망은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희망일까???


아무튼 기세 좋게 우울증 테스트 진단 후 점수를 계산했더니 '우울 증세 없음'이라는 훌륭한 성적표가 나왔다. 


나는 인생에 대한 큰 기대 없이 일상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해도 현상 유지나마 하고 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점점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 둘 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받아들여지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고집멸도라고 하지 않았던가. 집이 멸하는 것을 달관이라고 하고 그 달관이 충분히 되었다면 죽을 준비가 된 것이고 그러면 죽게 되는 거겠지.(영화 소울 참고, 태어날 준비가 되면 태어난다는 것에 착안한 생각. 영화 소울을 보고 나는 반대로 사는 건 죽음을 준비하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ㅎㅎㅎ)


미래에 대한 낙관도 비관도 없이 하루하루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루 3끼 먹고 잠자고 일하고 주말에는 충분히 잠자고 쉬고, 좋아하는 팟캐스트 들으면서 집안일하고, 좋아하는 옷 브랜드에서 입고 싶은 옷을 사고, 가끔은 샤넬이나 디올 같은 부띠끄 매장에 가서 100만원 미만의 액서서리를 구입하는 걸로 사치를 채우고...


대의, 정의, 환경 그런 거 난 모르겠다, 이젠. 그런 거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우울증 걸릴 것만 같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 그러니 그릇이 큰 당신들이 환경이나 대의를 생각하라. 난 그런 거 생각하기 싫어서 번식도 거절하고 비수도권에서 안분지족하고 사는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


번식에의 욕망, 성공에의 욕망으로 부글부글하는 수도권 라이프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나는 기화해버릴 것만 같다. 


뭘 선택했든 원망 말고 행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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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요즘 유행어로 풀이하면 꾸안꾸가 가능했던 시절에는 나도 영적인 충만감 같은 걸 추구했었다. 그래서 시중에 출판된 헬렌 니어링 부부의 책을 죄다 사서는 읽고 또 읽곤 했다. 특히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레시피를 따라 하고 싶었으나 도무지 재료를 구할 수가 없어서(요즘 보다 식재료 판매 범위가 넓지 않았던 시절) 아쉬웠었다. 최근 미인가 대안학교에서 벌어진 코로나 감염사태를 봤을 때는 스콧 니어링 자서전에서 읽은 그가 세운 학교가 생각나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 식의 학교는 그가 학교를 세워 경영했던 100년 전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하나의 안아키 집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몇 년 전 자동차 구입을 시작으로 나는 물신주의에 물들기 시작했고, 전 지구적으로는 코로나가 개인적으로는 건강을 잃기 시작한 작년, 궁여지책으로 조금이라도 더 즐거워지고 싶어서 내가 취한 행동은 영적인 충만이 아닌 내 손에 쥐어지는 물리적 충족이었다. 의식주 중에서 의생활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관계로 옷을 사고 또 샀다. 옷만이 아니고 액세서리도 사고 또 사고했다. 기분전환에 옷과 장신구만 한 것이 없다는 주의다. 신체의 긍정적 변화를 위해 고행 같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헤어 스타일 변화처럼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음식처럼 먹는 순간에는 즐겁지만 그 즐거움은 길어봤자 1시간 정도에 불과한, 더 나아가서는 기분을 좋게 하는 음식이 건강을 나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그런 것도 아니다. 

옷만큼 즉각적으로 나를 변신시키면서 긴 시간(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 기분)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없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그래서 한창 자아정체성을 확립해 가던 고등학교 시절의 복장과 두발에 대한 학칙은 정서적 학대 혹은 학살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학교가 감옥같이 여겨진 것의 큰 이유가 교복 및 복장 두발 단속 탓이었던 이유가 크다. 양말, 헤어 액세서리, 신발까지 단속했으니...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그런 이유로 내가 진로를 결정할 때 일 순위로 제거한 직업은 유니폼이 있는 모든 직업이었다. 의생활에 관해선 태초의 아담과 이브에서 전혀 진화하지 못한 인류, 즉 의복을 수치심을 줄이고 더위와 추위로부터의 신체 보호 정도의 수단으로 대접하는 인간들이 남의 복장에 대해서 TPO 운운하면서 옷이 짧네, 화려하네, 직업에 맞지 않네, 단정하지 못하다고 트집 잡는 걸 보면 유전자 깊숙이 잠들어 있는 수렵 본능에 근거한 살생 욕구가 느껴질 때가 있다. 타인의 복장과 두발에 대한 지적질과 간섭은  전체주의적 본능, 즉 지배욕 이상도 이하도 하니다. 그래서 한 때 내가 미니멀리즘에 빠졌을 때 읽었던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 의복 편은 어떤 부분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미니멀리즘도 좋지만, 남의 의복 취향에 평가해가면서 일해라절해라 하는 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나이 들어서 꽃 프린트 화사한 블라우스 입을 수도 있지!!!!!! 왜 그걸 비난해? 니가 뭔데??? 회색, 베이지, 블랙만 사 입으라니!!!! 이건 뭐 음식으로 치면 초저염식만 먹고살라는 것과 진배 없는 말 아닌가!!!!! 

뒤늦게 행복과 의생활의 상관관계를 깨달은 남동생의 일화를 조금 서술해 둔다.
사회 초년생의 빠듯한 지갑 사정으로 인해 나뭇잎에 의존해서 약간의 수치심을 가리고 정도의 의생활을 한 태초의 아담 같은 의생활을 했던 추구했던 남동생은 "옷은 유니클로면 충분하지."라고 하면서 생필품을 리필하는 것보다 더 성의 없는 자세로 유니클로에서 양말, 팬티, 바지, 후리스 등을 구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손에 이끌려 '솔리드'를 접신한 후 금단의 사과 맛을 본 아담이 되어 버렸다. 이어서 나는 우영미 선생님의 세계로 남동생을 인도했고, 남동생은 인생은 짧고 패션은 길기에, spa 브랜드에 인생을 낭비할 day가 단 하루도 없다고 했다. 우영미 모직 셔츠를 입고 출근했던 날, 마데 이태리가 최고야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회사 상사가 동생에게 "내가 이 회사에서 우영미를 보게 될 날이 올 줄을 몰랐다."라고 감격해했다고 한다. 메종 키츠네 로고 여우를 보고 그건 시바견이야 하고 묻는 패알못 회사 동료도 우영미 셔츠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생리통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먹어두는 진통제처럼 나는 우울하기 전에 미리 옷을 사 둔다. 품절, 추가 세일, 셋업 상품, 관부과세까지 계산해가면서 치밀하게 우울을 예방하고 있다. 그래서 느긋하게 책 읽을 시간이 더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품절될 거 같아서 구입한 옷이 품절은 고사하고 추가 세일 항목이 되면 조금은 기분이 다운되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내 이득만을 취할 수는 없으니 다음번에는 더 잘해보자라고 생각을 하는 한편, 아 나는 절대 주식하면 안 되지 안돼 하는 생각도 한다. 빨리 입고 싶어서 비싸게 산 옷이 반값에 팔리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맘이 쓰리다. 그렇지만 반대로 좀 느긋하게 기다려서 엄청 할인받아서 산 옷도 있으니깐... 주식 시장만큼 알 수 없는 것이 패션계의 품절과 추가 세일이다. 이건 분명 품절될 각인데 하는 게 비인기 상품이기도 하고, 어떤 건 세일까지 가지도 않고 판매중지 후 다음 시즌에 정상가로 팔리기도 하고. 천조국 미국의 의류 판매 경영철학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우울해지기 전에 미리 우울 예방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버티고 버티다가 우울과 피곤이 겹쳤을 때가 되어서야 지친 육신을 이끌고 백화점으로 가서 즐겨 찾는 브랜드에서 이거 저거 따지지도 않고 대충 입어보고 몸에 맞는 건 다 사버리기도 했다. 우울할 때는 과소비를 하게 된다. 또는 합리적 계산과 기다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구매하게 된다. 그런 손실을 줄이고자 요즘 나는 상비약처럼 옷을 미리미리 사두고 단 하루도 이상한 의복을 입지 않도록 늘 준비해둔다. 

이런 이유로 나는 물신주의자가 되었다. 누군가가 보기엔 내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옷을 버리고 사고 버리고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나는 옷 수집가는 아니다. 더 이상 나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 옷은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본전이 생각나서, 추억 때문에 간직하는 옷 같은 건 없다. 나에게 옷은 철저하게 실용주의의 영역일 뿐이라서 단지 소유했다는 것만으로는 전혀 즐겁지 않다. 입지 못하는 옷을 소장해 두는 건 그저 공간 낭비일 뿐이다.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는 옷이나 가방 같은 것은 없다. 내가 그 옷과 가방을 착용하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나는 내가 고작 옷을 사는 것만으로 즐거울 수 있고, 스스로 즐거워지는 방법을 찾아낸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술, 고기, 담배, 마약, 집착과 다른 없어 보이는 수집벽 같이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것을 취하지도 않으며 악플, 정치, 도박과 다름 없어 보이는 주식, 부동산 투기, 자식 낳아서 대리 욕구 충족하기, 중성화 수술까지 시키면서 동물 반려하기 등처럼 다른 존재를 불행(의존 혹은 이용)하게 하는 것도 아닌 그저 나 자신을 조금 아름답게 꾸미는 것으로 우울을 방어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집에 있을 때는 대체로 즐겁다. 집사로서 집안을 운영해 나가는 것은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회사에서 노동하는 것에 비하면 즐거움의 영역이다. 심지어 나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손빨래를 하거나 집안을 청소, 정리 정돈하는 것을 좋아하기까지 한다. 내 인생 대부분의 불행은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고, 회사에서도 나는 유사한 불행을 느낀다. 억압당하고 있다, 자유가 없다, 싫은 것을 해야 한다, 싫어하는 사람을 봐야 한다는 점 등등.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내가 깨어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회사이기에 나는 그 회사에서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불행을 줄이고 싶은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함과 동시에 내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은 옷 말고는 없다. 영화보기, 책 읽기도 내 기분을 좋게 하긴 하지만 그것을 회사에서 일을 하는 동시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옷은 다르다. 일을 함과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옷을 계속 입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고되지만 그 긴 시간 내내 내가 원하는 옷을 입고 있어서 조금은 덜 불행하다. 

어떤 물건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즉각적으로 불행을 희석할 수 있는 성향이야 말로 축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 구매로부터 불행을 희석하지 못한다. 물건을 통해서 불행을 희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술 고기 중독자가 되거나, 주식& 부동산 투자(투기?)에 빠지거나, 일중독자가 되어서 가족을 방임하고 집안을 방치한다.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서 더 손쉬운 다른 존재(주로는 자식과 반려동물)을 관리하는 하는 것으로 지배욕을 채운다. 앞에 열거한 부류 중에서 일중독자가 제일 같잖다. 자신이 엄청 유능한 줄 아는데 너는 무책임하고 게을러서 그저 일로 도피했을 뿐이거든. 내 일상에  술 고기, 주식, 부동산, 일, 다른 존재에 관한 중독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내가 무엇을 구매하면 불행이 희석 되지를 알아내고 그것을 구매할 뿐이다. 그래서 술 고기, 주식, 부동산, 일, 다른 존재 사육하기에 중독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인류로서 서로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공존할 뿐이다. 나는 내가 좀 더 진화한 인류라고 여긴다. 미래의 인류는 결국 자기 자신과 AI(감성을 공유할 수 있는 자신 자신의 취향으로 세팅한 무언가)와 함께 할 테니 말이다. 그때 나는 자기 자신(AI)과 연애하는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되어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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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돈은 없었지만 시간만은 넘쳐나서 구입한 책은 최소 2번 이상 정독했다. 어른들의 책을 사놓고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고 하는 푸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 안 되었던 용돈으로 책을 사고, 비디오를 빌려 보고, 영화잡지를 사면 간식을 사 먹을 수가 없었다. 먹는 것에는 큰 흥미가 없었던 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디오도 꼭 2번 이상 반복해서 보고 난 후에 반납했다. 토요일에 한 번  보고, 일요일에 한 번 더 보고 반납을 하면 연체료도 없고 깔끔하다. 


팟캐스트에서 책 소개를 듣고는 너무 읽고 싶어서 당장 결제를 했고, 책은 다음 날 바로 배송 완료가 되었다. 들뜬 마음으로 포장을 뜯고 게걸스럽게 십여 페이지를 읽다 피곤해서 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책장을 펼친 기억이 없다. 책은 일주일 넘게 내 배우자라도 되는 듯 퀸 사이즈 침대의 한 자리를 자치하고 있을 뿐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어떤 경우에도 내 침대에 오를 수 없지만, 내가 구입한 새 책은 언제라도 침대 옆 자리가 가능하다. 


찐 찹쌀을 씹어먹듯이 한 문장 한 문장 정성껏 책을 읽던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내 인생 최초의 즐거웠던 독서 경험은 딱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던 중2 여름방학의 어느 날에 펄 벅의 <대지>를 하루 종일 읽었던 때이다. 선풍기 혹은 부채로 더위를 치우면서 나름 쾌적한 기분으로 오란의 인생을 읽어나갔다. 그때도 왕룽, 이 나쁜 새끼가 하면서 빡이 쳤었다. 


언제쯤이면 나는 다시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무해한 나태 속에서 아무 근심 걱정도 없이 책 읽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될까...


내가 집 안에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집사나 하인을 들이기 전에는 불가능하리라. 어렸을 때는 부모라는 집사와 하인이 집안일을 해주었기에 집에서의 나는 딱히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이 느긋하게 독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혹은 주말에 우선 집사와 하인으로서의 해야 할 일 이 있는 것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밥하기, 각종 공과금 및 세금 내기, 수리와 보수 그리고 다 쓴 생필품 구매까지... 아 또, 여러 가지 할인, 적립금 및 혜택을 챙기는 것도 무시 못할 시간 도둑이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많이 읽고 책도 자주 쓰냐는 질문에 이다혜 작가는 "전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다. 냉장고를 열면 썩은 채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반면 나는 쾌적한 집안을 추구하기에 집안일에도 에너지와 시간을 제법 투자하는 편이다. 최근에 섬유유연제 주문하는 걸 미뤘다가 급하게 쿠팡을 열어 주문하면서 "움베르토 에코는 섬유유연제 같은 거 직접 주문한 적이 없겠지. 그 사람이 아무리 천재더라도 나처럼 집안일까지 했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쓰진 못했을 거야."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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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2-07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너무 그윽하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단.... 하 ㅜㅜ 그래도 오늘하루는 무해한 나태 속에서 풍족히 독서 하시길..

먼데이 2021-02-09 13:1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요일 오후엔 해야 할 일들을 미뤄두고 미뤄둔 독서를 했는데 역시 책 읽기만 한 사치가 없는 듯하여 행복했었답니다. 곧 설연휴이니 공쟝쟝님도 무해한 나태를 즐기시길 바래요.
 

남동생은 풀옵션 5평 오피스텔에 산다. 나는 맨날 <와세다 1.5평 청춘기> 혹은 "김비서, 혹시 요즘 유행한다는 미니멀라이프 하나?"(드라마 <김비서가 왜 이럴까>에 나오는 대사, 난 이 대사가 너무 웃겼다)라고 놀린다. 이사 후 2년을 채운 동생은 절박한 미니멀라이프에서 벗어나고자 여기 저기 집을 보러 다니더니 지금 사는 집보다는 조그 더 넓은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한다고 했다. 수납공간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 


이사는 어떻게 하냐 했더니, 친구 1명 불러서 둘이서 한다고 했다. 

침대는 어떻게 하냐 했더니(입주 후 구매), 그것도 suv차량에 넣어진다고 했다.


동생은 아웃도어형 인간이라서 집에서는 잠만 자기에 소형 오피스텔 라이프가 가능한 것일수도 있지만, 선산과 집과 재실을 물려받은 종가집 장손 같이 버릴 수 없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어버린(심지어 이젠 집에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피아노도 있다)내 입장에선 가벼운 생활이 조금은 부럽다. 


시원한 핫초코 주세요.

아이스티 따뜻한 걸로요.

하는 마음처럼 공간을 정확하게 분리해서 사용하는 넓은 집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자동차에 가진 짐을 요령있게 담아서 홀가분하게 여기 저기 이사를 다니면서 사는 것도 바란다.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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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 복도 대기용 의자에 앉아서 맞은 편 벽면의 진료과목과 세부적인 질병의 종류와 구체적인 사례를 읽고 있노라면 사이코패스적 악의를 가지고 피와 살과 뼈를 가진 어떤 동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세상 물정 모르는 존재가 떠오른다. 어떤 동물의 구체적인 예로 인간을 들어 보자. 만약 선의로 인간을 만들었다면 사고, 질병, 노화 등으로 인해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무수한 육체적 고통의 존재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이 육체를 통해서 느끼는 쾌감과 행복에 비해 인간이 육체를 통해서 느끼는 고통의 종류와 크기가 절대적으로 더 많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종합병원 로비와 각 진료과의 대기실을 보면서 인간들은 다들 생로병사하려고 태어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병원에는 명의가 1명 있다. 다른 사람들은 과장님으로 불리는데 그 명의만은 원장님으로 불린다. 나는 종합병원 내의 서열직책을 모르기 때문에 전부다 선생님으로 부른다. 아무튼 명의가 있고, 내가 봤을 때 그 명의는 과로사 위험이 있어 보였다. 


나는 늙으면서 병들어 가고 있다. 몸의 이곳저곳이 닳고 낡아서 제 기능을 못하는 듯도 하다. 머리도 귀밑 3cm로 잘라 버렸다. 어떤 책이더라 나이든 여자가 젊었을 때처럼 머리를 치렁치렁 기른 것을 한심하다고 서술한 책이 이었는데... 무슨 책이었더라? 올리브 키터리지였나? 새치 염색도 시작했다. 배에는 수술 자국이 아직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너무 빨리 늙고 병이 든다. 


어차피 사람은 금방 병들고 늙어 죽을 건데 자식을 낳는 사람들은 그 진리를 모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빈도가 점점 많아진다. 또한 번식하지 않은 나 자신의 현명함에 자아도취하는 횟수도 점점 빈번해진다. 어차피 죽을 목숨을 굳이 낳아서 고통받게 하는 이유가 뭘까?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그런 마음을까? 아니면 너무 멍청해서 그냥 이 이승이 좋은 걸까? 그래서 이 좋은 걸 나혼자 즐길 수는 없지, 박애의 의미로 번식하는 걸까? 이쯤되면 생을 교주로 하는 사이비 종교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어제도 방송했다지...보진 않았다만)사이비 종교 신자들과 다를 바 없다. 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노예 혹은 가축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납득이 안가는 것처럼 나는 생 맹신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케빈에 대하여>를 다시 봤는데 이번에 보니 피해자는 낳아짐 당한 케빈이었다. 10여년 전 영화제에서 봤을 때는 그저 단지 케빈의 악한 인성에 경악했을 뿐이었다. 이번에 봤을 땐 내 마음(괜히 태어났다)이 그래서인진몰라도 아기 케빈이 울어재끼고 엄마를 괴롭히는 게 '나를 왜 낳았어? 난 태어나기 싫었는데. 당신이 나를 낳아서 나는 너무 힘들다.'하는 걸로 보였다. 케빈을 직접적으로 잉태하고 낳은 것은 엄마이므로 케빈이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악의를 품고 괴롭히는 것이리라. 아빠는 간단히 죽여버리면 되지만 엄마에 대한 원한과 원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죽이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주기 위해서 죽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케빈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는 하루 종일 tv만 본다. 그것도 범생이들이 나오는 걸 보는 게 아니라 나 같은 범죄자들이 나오는 것만 골라 본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다." 나도 늘 하는 의아해하는 점이다. 왜 악이 재미있을까? 더 정확히는 악이라기 보단 권선징악. 권선징악이 되려면 선과 악이 동시에 있어야 하고 그게 재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리고 인간이) 글러먹었다고 생각한다. 나쁜 일이 발생하고 그것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 과정이 재미가 있는 것이다. 해결이 되지 못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범죄수사물을 보는 것이다. 해결이 되니까. 


하지만 세상사는 드라마처럼 간단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분통만 터질 뿐 그 어떤 쾌감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는 뉴스 같은 거, 정치 시사 그런 거 애초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실제 인간사 유일한 해결책은 태어나지 않는 것 혹은 낳지 않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입장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은 선택할 수 없지만 낳지 않는 것은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실천했고 그걸로 내 의무는 다 한 거라고 여긴다. 특히 친환경적 관점에서 그렇다. 


살 빼는 유일한 방법은 절대적으로 적게 먹는 것 뿐인 것처럼,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낳지 않는 것 말고는 없다. 


이상이 내가 노인으로 특화된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보고 느낀 바이다. 




p.s. 태어난 것이 불찰이고 낳지 않은 것만이 내가 이 생에서 유일하게 한 선행이다. 이것이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내가 사용한 일회용 마스크를 쓰레기통에 버릴 때마다 하는 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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